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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탈리 칼럼] 겸양과 존중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작성자
hsy6685
작성일
2019-02-26 00:06
조회
34
요즘처럼 전 세계가 혼돈과 불안에 빠져 있을 때 민주주의를 다음과 같이 규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①민주주의는 충분한 일자리도 좋은 일자리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②민주주의는 모두에게 기대치만큼의 구매력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③민주주의는 해일처럼 밀어닥치는 기술 발전과 시장 세계화가 유발하는 중산층의 무산 계급화와 영토의 대규모 공동화 현상을 저지할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④민주주의는 문화 자본과 인맥을 보유하고 있는 소수 집단의 손에 모든 권력을 집중시킨다. ⑤민주주의는 갈수록 입지가 축소되는 기존의 기술 영역 내에 정체돼 있다. ⑥민주주의는 단기적 해결책을 내보일 뿐, 국민의 시선을 당장의 쟁점보다 미래 문제로 돌릴 능력이 없어 보인다. ⑦민주주의는 천연자원을 낭비하고 사회 최약자층의 정체를 야기하는 자본주의에 굴복하고 있다. ⑧민주주의의 많은 지도자가 화려함에 둘러싸여 지금 현실 세계에서 더는 아무런 권력도 행사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⑨많은 유권자들이(모든 상황이 자기 세대에서는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고, 자녀 세대로 가면 훨씬 더 심각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도피할 마음뿐이거나 정치에 관심을 끊을 생각뿐이다. ⑩겉에서 봤을 때, 전체주의가 달성해내는 효율에 감탄한 나머지,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독재가 훨씬 더 훌륭한 체제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그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떠나기를 바라는 데 그치지 않고, 공화국을 구성하는 조직들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여전히 가장 우월한 체제다. 그에 부여된 다음의 3대 임무를 되새길 수 있다면 말이다. ①모든 사람이 학교 교육을 발판으로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도록 하며, 목표 달성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한다. ②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모든 단체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설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한다. ③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다음 세대에 봉사하며, 공동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합의를 끌어낸다.

의회와 정부가 위의 3대 임무에 집중하지 못한다 해도 모든 책임은 유권자에게 있다. 지도자들이 도전에 응할 수준이 안되고, 많은 경우 언론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들에게 표를 준 사람들은 역시 유권자다. 우파에 더 가깝거나, 좌파에 더 가까운 사람들로 그 자리를 대체한다고 해서 뭔가가 바뀌지는 않는다. 오늘날 인간사회에 매우 부족한 윤리적·도덕적 유대를 다시 수립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를 통해 선출된 이들을 독재자나 추첨으로 뽑은 지도자로 대체한다고 되지는 않는다.

현재 난관에서 벗어날 방법이 보다 직접적인 민주주의 형태라는 환영(幻影) 속에 있는 것도 아니다. 국민투표에 극단적으로 많은 힘을 실어주었던 정치체제가 우리를 어떤 막다른 길로 몰아갈 수 있는지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Brexit)가 보여주고 있다. 국민투표를 실행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제기된 문제 자체보다는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향해 응답하고, 제기된 문제와 관련된 유권자의 정보 수준도 불평등하며, 결국은 (시민과 정부 사이에 있는 중개 단체들을 건너뛰려 하는) 강력한 지도자들과 반대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알고 보면 국민투표를 주장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상대편 지도자들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사이의 일종의 암묵적 공모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국민투표는 국민 의견에 기반을 둔다는 명목으로 부지불식간에 대의민주주의를 개인 권력으로 추락시키게 된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진보라 여길 수도 있을 테고, 또 다른 이들은 전 세계에 걸쳐 대부분의 정치체제가 겪고 있는 독단적 추세에 또 한 걸음 가까워졌다고 볼 것이다.

현재와 미래의 주요 쟁점을 두고 고민하는 민주주의 체제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겸양·공감의 태도로 세상 흐름을 이해하고, 진실을 말하고, 악의와 반목을 부추기지 않고, 생각을 바꿀 줄 알고, 경청·존중·신뢰·조력·격려·감탄·찬미하는 능력을 지녔느냐를 기준으로 삼아 지도자들을 뽑아야 한다.

이런 유형의 지도자들을 지속해서 선출하는 나라들은 처음 출발할 때의 이념이나 당파와 관계없이, 논리와 정직이라는 같은 길을 걷는 모든 이와 더불어 성장과 평온의 길을 되찾을 것이다. 오늘날 현안에 대해 흑백논리를 걷어낸 해결책, 훨씬 더 공감할 수 있는 분석, 예상 밖의 화합을 이뤄가면서 말이다. 이제 남은 질문은 ‘언제, 어떻게, 누구를 뽑을 것이냐’다.

- 자크 아탈리 아탈리에아소시에 대표·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출처: 중앙일보] [아탈리 칼럼] 겸양과 존중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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