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게시판

박문환 - 욤 키푸르와 우크라이나 (2022-03-17)

작성자
hsy6685
작성일
2022-03-19 13:04
조회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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욤 키푸르와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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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가 전학오기 전까지 영철이는 전교 짱이었습니다.
폼나던 인생이 철수 때문에 망가져 버렸죠.
그 동안 3차례나 철수에게 도전했지만 주짓스 브라운 벨트인 철수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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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루가 지옥같았습니다.
그래서 영철이는 다시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다만, 정면 대결은 도저히 손도 닿지 않으니, 점심 식사 후 낮잠 자는 시간을 노리기로 했습니다.
영철이는 자고 있는 철수를 내리쳤습니다.
얼굴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죠.
이제 드디어 승리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왠걸...
철수는 피범벅이 된 채로 벌떡 일어나 영철이를 노려봅니다.
그리고는 성큼 성큼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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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얼어붙어버린 영철이에게 또 한 명의 친구가 다가와 은밀한 제안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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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는 우리 조직에 있어. 우리와 친구가 된다면 너는 안전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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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엇나가 보이기는 해도, 과거와 미래를 가장 잘 보여주는 메타포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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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푸어 선언> 이후 새롭게 생긴 <이스라엘>은 새로운 중동의 강자였습니다.
주변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우습게 알고 3차례나 찝쩍 되었지만, 번번히 깨지기만 했습니다.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와 시리아는 3차에 걸친 중동 전쟁에서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서 또 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다만 정면 대결은 도저히 손도 닿지 않으니, 예배 시간을 노리기도 했습니다.
<욤 키푸르>...속죄의 날에 기습을 했죠.
무방비 상태에서 일격을 당한 이스라엘은, 거의 국토 대부분이 점령당하는 등, 심각한 위기에 몰리게 되었죠.
개전 직후 10여일 만에,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10여년 동안 잃은 병력보다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이스라엘은 피범벅이 된 채로 곧장 반격을 시도합니다.
실지를 모두 회복하고 시리아와 이집트의 국경을 막 넘으려는 순간, 침략자들은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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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죠.
정말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생깁니다.
전쟁 발발 10일 후, 그러니까 1973년 10월 16일 최초의 OPEC 6개국은 석유 가격을 17% 인상한다고 발표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의 권리가 회복될 때까지 매월 원유 생산을 5%씩 감산하겠다고 발표하게 되죠.
1973년 초 배럴 당 2달러 60센트였던 석유는 달랑 1년만에 11달러를 넘어서게 되면서 1차 오일 쇼크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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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으로만 본다면, 미국의 무능이 도처에 보입니다.
그해 6월에는 닉슨 대통령을 실각하게 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국은 중동을 제대로 통제할 여력도 되지 못했었지요.
조만간 시리아와 이집트로부터 공격이 임박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알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유가를 급등시킨 중동의 집단 행동도 막지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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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역사 책에 나오는 <욤 키푸르> 전쟁의 전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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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저의 방식으로 역사의 이면을 살짝 재조명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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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덩치가 10배나 더 큰 아랍인들은 3차례에 걸친 중동 전쟁에서 쥐콩만한 이스라엘에게 박살이 났었습니다.
몹씨 부끄러웠죠.
4차 전쟁은 반드시 이기기 위해서 기습을 했고 이스라엘 군에 상당한 수준의 타격을 주었지만, 오히려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건드린 격이 되어버렸습니다.
피범벅이 된 채로 벌떡 일어나 노려봅니다.
그리고는 성큼 성큼 다가옵니다.
이제 중동의 운명은 보장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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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미국에서 천재 <키신저>가 중재자로 나타납니다.
질풍노도와 같은 속도로 밀려오는 이스라엘 군 앞에서 풍전등화의 처지가 되어버린 이집트에게 키신저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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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무섭지?
이스라엘과 미국은 절친 사이야.
이집트가 미국의 친구가 된다면 그들이 이집트의 국경을 넘지는 않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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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 이집트는 미국과 상호 보호 조약을 맺고 우방이 됩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에는 OPEC의 석유는 오로지 달러로만 판매할 수 있다는 계약을 만들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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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석유는,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공군력의 유지에 필요한 중요한 전략 자원이었습니다.
오로지 달러만으로 살 수 있었으니 모든 선진국들은 달러를 쟁여둘 수밖에 없었겠지요?
1971년부터 3년 동안 밤낮으로 윤전기를 돌려 찍어낸 달러는 석유를 사기 위해 장사진을 친 선진국들의 무작정 사자에 모두 완판되어버렸습니다.
달러가 빠른 속도로 세상에 퍼지게 하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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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 큰 수확이 있었습니다.
물가 상승에 대한 원망을 벗어낼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물가는 많이 올랐었습니다.
영국 일본 등 당시 주요국들의 물가 상승은 무려 4 년 동안이나 두자리 수의 상승을 기록했었으니까요.
만약, 욤 키푸르 전쟁이 없었더라면, 당시 살인적인 물가 상승은 온통 미국 탓이 되었을 겁니다.
달러를 너무 많이 찍어내서 물가가 올랐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결국 기축 통화의 권리를 내려놓았어야 했을 지도 모를 일이죠.
하지만 전쟁 중에 OPEC는 유가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물가가 올랐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모두 그렇게 알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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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현실로 돌아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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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침공했습니다.
미국은 러시아의 석유에 대해 독자 제재를 결정했습니다.
그 바람에 유가는 한 때, WTI 기준으로 130달러까지 치솟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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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버림받고 있었던 화석 연료가 이렇게 까지 급등할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초기 생각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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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방송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초기 계획은 중동의 석유를 에일라트 아슈켈론 루트를 통해 남유럽에 공급하자는 것이었어요.
당연히, 미국은 중동 지역에 증산 요청을 했었지요.
하지만 사우디가 깔끔하게 거절했습니다.
거절 정도가 아니라 사우디의 실세 <빈잘만> 왕세자는 아예 바이든의 전화를 받지도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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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잘만>은 그럼 <바이든>을 왜 피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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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는 왕가의 비리를 파혜치는 <까슈끄지>가 눈에 가시였습니다.
그를 추적해서는 은밀하게 제거하는데 성공했죠.
그런데, 미국이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까슈끄지>라는 사람을 토막내고 믹서에 갈아 버린 것 같은데, 그 일을 주도적으로 지시했던 사람이 빈살만 왕세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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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얼마 전에는, 사우디를 계속 괴롭히고 있는 <후티> 반군에 대해 테러리스트 지정을 철회했습니다.
지금도 후티는 주간 10여 대의 드론을 사우디에 날려 보내는 바람에 골머리가 아픈데요, 후티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하니, 사우디는 결국 미국에 등을 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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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최근에는 중국에 판매하는 석유에 대해서는 위안화 결제를 허용하겠다는 말까지 했는데요, 이것은 미국과의 의절을 통보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을 내서 따로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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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맡형 격인 사우디가 등을 돌리다보니, 처음에는 미국의 증산 요구에 긍정적인 반응 보였었던 UAE 역시 돌아섭니다.
지난 주말(3/11), "독자 노선을 취하지 않고 OPEC+의 전체 결정에 따를 것이다."라며 기존의 입장을 번복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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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의 핵협상에 기대를 걸었었지만, 그 마저도 러시아가 비상식적인 조건을 내세우는 바람에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가 앞으로의 이란과의 협력에 방해가 될 수 없다는 서면 동의를 원했는데요, 이 조건을 수락한다면 서방의 제재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이란을 통해서 조달이 가능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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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것 저것 다 막혀버린 미국이 자존심 꾹~ 누르고 베네수엘라에 증산을 요청을 했는데요, 워낙 오랜 시간 동안 미국의 제재로 인해 노후된 설비로는 지금 당장 30만 배럴을 뽑아내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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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잘 될 것 같았던 일들이 하나 씩 꼬이기 시작한 것이죠.
나름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모든 시도가 무위에 그치면서 유가 상승을 막을 수 없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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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미국의 시대는 끝이 났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50년 전에 닉슨처럼, 지금의 조바이든이 너무 허약해서 중동 통제에 실패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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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말입니다.
욤 키푸르 전쟁 때에도 허약하다던 미국이 대부분의 실익을 취했듯이,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미국은 비록 모든 정책에서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익을 독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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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몇 가지만 열거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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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달러의 과도한 발행이 물가 상승의 주범이라는 의심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건 정말 가장 중요한 이익입니다.
기축통화는 고고함을 유지해야만 해요.
기축통화가 엄청난 통화 발행으로 인플레를 조장했다면, 당장 그 권력을 내려 놓아야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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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수년 동안 달러는 초과발행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아시다시피 2월 CPI는 엽기적이었죠.
7.9%로, 지난 1982년 6월 이후, 40년래 최고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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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유가가 올랐으니 그렇겠지~
아닙니다.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물가도 무려 6.4%나 상승했습니다.
당연히 이제 머지 않은 시기에, 인플레 주범으로 <달러>가 지목을 당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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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50년 전에도 그랬듯이, 최근에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사람들의 인식은 많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고도의 물가 상승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더욱 연장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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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최근 각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회의에서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주로 거론되기 시작했습니다.
하긴, 전쟁으로 인해 달러가 초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물가 상승의 원인이 달러 약세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번 주 초에, 엔화는 116엔을 넘어섰고, 원화는 1240원까지 올라섰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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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이익은, 경쟁자 중국에 대한 압박입니다.
딱 이번 주부터 월가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가장 큰 피해국으로 중국을 거론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자재를 수입해서 중간재나 완제품을 만들어 팔아야만 하는 산업 구조가 우리와 매우 흡사하잖아요?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진 중국에게는 당연히 원자재 가격의 급등이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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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세계 최대 식량 수입국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인들이 먹는 밀의 1/4을 생산하는데요, 이번 주에는 드디어 올 것이 왔더군요.
화요일 새벽, 러시아는 오는 6월 말까지 밀과 보리 옥수수 등 주요 곡물의 수출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바야흐로, 식량의 무기화가 시작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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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을 과연 중국은 모르고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시진핑 이전의 중국은 적어도 정치만큼은 우리보다도 선진화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양회에서는, 매우 독특하게도 <식량안보>라는 말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는데요, 그만큼 중국의 지도부가 잔뜩 긴장 중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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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 가격도 중요하겠지만, 당장 옥수수 가격이 상승하면 돼지고기 가격을 올릴 것입니다.
중국인들은 어느 가정에 손님으로 방문했을 때, 돼지 고기를 내오지 않으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리 돼지고기 가격이 폭등한다고 해도, 돼지고기에 대한 소비는 여간해서 줄지 않는 편이죠.
옥수수 가격의 상승은, 특히 중국에서, 극심한 애그플레이션을 만들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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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 째 이익은 유럽에 대한 지배력 강화입니다.
러시아에 의해 유린되는 우크라이나의 모습을 본 동유럽 여러 나라들은 미국의 영구 주둔을 적극적으로 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외에도 미군 감축과 철수를 원하던 나라들의 생각이 전반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는데요, 실제로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의 유로존 주둔군은 이미 10만명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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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독일은 GDP대비 2% 수준까지 국방 예산을 늘리기로 했구요, 이에 추가적으로 1000억 유로 규모의 국방특별예산을 편성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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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새벽에는 미국산 스텔스 전투기 F-35를 최대 35기 사들이기로 했다는군요.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니었다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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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유럽에는 유로파이터가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가 주도해서 만드는 유럽의 핵심 자산입니다.
물론, 유로파이터 역시, 15기를 구매할 예정이라고는 했습니다만, 지난 번 호주 핵잠수함 사건 이후로 미국에게 또 다시 주도권을 내주게 된 겁니다.
하긴, 러시아가 두려워서 미군의 주둔을 바라는 건데요, 미군더러 유로파이터를 연습해오라고 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미군을 부르려면 미군의 시스템을 깔아놔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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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이익은 잉여 유동성의 활용입니다.
난민을 수용하고 수요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유럽 각국에서는 확대 재정이 필요해졌습니다.
아직 독일의 찬성 여부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EU차원의 공동 부채 발행도 논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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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유로존 GDP의 1.5% 수준인 2000억 유로 규모의 자금 조달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지금 조망친 의원의 변절로 인해서 2.3조 달러(협의에 의해 1.8조 달러로 축소)만큼의 재정이 축소된 상황이잖아요?
추가 재정의 우수리 정도는 커버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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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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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돌발 행동에서 50년 전 <욤 티푸르> 전쟁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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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과 같은 점이라면, 엄청난 규모의 양적완화가 있었고, 유가 급등이 수반된 물가 급등이 있었다는 점이죠.
또한 대부분의 이익을 미국이 독식한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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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과 다른 점이라면, 당시에 석유는 절대 권력이었지만 지금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저물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곡창지대에서의 전쟁은 국제 곡물가의 상승이라는 상수를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석유는 비싸지면 안쓰면 되지만 식량은 비싸다고 해서 먹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소 다른 양상의 물가 상승 국면을 만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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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번 전쟁으로 인해 양극화는 좀 더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세상이 다시 갈리게 되면서 비용은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 공조의 시대에는 자신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것만 만들면 되었지만, 공급망이 봉쇄되면서 주요 부품을 모두 만들어야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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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게 무조건 주가 하락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색다른 환경에 적응해왔었으니까요.
실제로, 1차 오일쇼크 때 대부분 나라의 주가는 하락했었지만, 2차 오일쇼크 때에는 유가 상승에도 주가는 상승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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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이후 수십년 동안 유지해왔던 질서로 되돌아가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적절한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질서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우리를 다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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