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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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 | 비잔틴 황제 포카스 |
포카스(Phocas)는 602년 전임 황제 마우리키우스로부터 제위를 찬탈하여 비잔티움 황제가 되었고 610년 반란으로 제위에서 쫓겨났다.
* 날짜 : 602 ~ 610 | |
602 | 비잔틴과 페르시아 전쟁(클라이막스) |
당시 서쪽 세계의 양대 제국이던 비잔틴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가 벌인 대결 중 가장 치명적이고, 치열하고, 결정적이었던 전쟁이다. 602년부터 622년까지 사산조 페르시아의 군대는 아나톨리아 반도와 발칸 반도를 제외한 모든 비잔틴 제국의 영토를 유린했고, 아나톨리아 반도로 진군하여 626년에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610년 10월에 비잔틴 제국 황제가 된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622년부터 626년 사이에 사산조 페르시아를 향한 성공적인 원정을 감행하고 627년에 사산조 페르시아의 심장부인 이라크 지역까지 침공함으로써 결정적인 반격에 성공한다. 결국 사산조 페르시아는 방어적인 입장에서 불리한 평화조약에 서명할 수 밖에 없었고, 전쟁은 비잔틴 제국의 승리로 종결된다.
* 날짜 : 602 ~ 628 | |
610 | 비잔틴 황제, 헤라클리우스 |
헤라클리우스(Heraclius)는 610년 악정을 펼치던 전임 황제 포카스로부터 제위를 찬탈하여 동로마 황제가 되었다. 그의 치세 동안 남쪽의 이슬람이 발흥하여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지를 잃었지만 군관구제와 둔전병제를 최초로 실시하여, 무너져가는 동로마 제국의 군대와 행정을 개편하고 라틴어 대신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는 등 제국을 민심에 맞게 변화시켰다. 열강과 이민족의 침략으로 풍전등화 상태였던 동로마 제국이 그가 창안하고 정착한 군사·행정조직 덕분으로 이후 800년이나 더 존속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
* 날짜 : 610 ~ 641 | |
622/09/20 | 이슬람교, 헤지라 |
헤지라는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사건이다. 이슬람교의 기원(紀元) 원년.
* 날짜 : 622/09/20 | |
626 | 아바르족과 페르시아 동맹, 콘스탄티노플 공격 |
아바르족과 페르시아 동맹, 콘스탄티노플 공격.
* 날짜 : 626 | |
627 | 비잔틴과 하자르의 동맹 |
하자르와 비잔틴 사이의 본격적인 동맹은 627년경 체결되었다. 당시 비잔틴은 사산조와의 전쟁을 계속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아바르의 공격에도 대비해야 하는 이중적 고통 속에 있었다. 비잔틴 황제 헤라클리우스는 남하하여 아제르바이잔을 공략 중인 하자르 부족장과 티플리스(Tiflis)에서 동맹을 맺어, 하자르군 40,000명의 지원을 확보했다. 이로써 헤라클리우스는 사산조를 패퇴시켜, 아나톨리아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을 단절시킴과 동시에 사산조의 생존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했다.
* 날짜 : 627 | |
627 | 니네베 전투 |
사산조 페르시아가 비잔틴 군에게 대패.
* 날짜 : 627 | |
630 | 비잔틴 제국이 이집트,시리아 다시 점령 |
비잔틴 제국이 이집트,시리아 다시 점령.
* 날짜 : 630 | |
630/01/11 | 무함마드, 메카 점령 |
무함마드는 메디나의 무슬림군을 이끌고 630년 메카를 평화적으로 점령한다.
* 날짜 : 630/01/11 | |
632/06/08 | 무함마드 사망 |
632년 무함마드는 메카의 카바 신전을 참배하고 메디나로 돌아오던 중 심각한 열병에 걸려 죽게 된다. 그가 사망 할 즈음에 아라비아반도는 이슬람 깃발 아래 통일이 되었다.
* 날짜 : 632/06/08 | |
632/06/08 | 아부 바크르 칼리프 |
아부 바크르(Abu Bakr, 573년∼634년)은 이슬람의 초기 지도자이자, 제1대 정통 칼리파이다. 무함마드의 친구이자 장인. 아이샤의 아버지가 이 아부 바크르다.
* 날짜 : 632/06/08 ~ 634/08/23 | |
632/06/08 | 정통 칼리프 시대 |
무함마드가 죽은 뒤, 아부 바크르, 우마르, 오스만, 알리 등 4명의 장로들이 교도(敎徒)의 총의에 의하여 잇따라 칼리프(후계자)로서 이슬람 교단을 통솔하던 시대를 말한다.
* 날짜 : 632/06/08 ~ 661/01/27 | |
634/08/23 | 우마르 칼리프 |
우마르(Umar, 586년 ~ 644년 11월 6일)은 이슬람교의 제2대 정통 칼리파이다(재위 634년 ~ 644년). 오마르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무함마드를 박해하였지만, 후에 이슬람교로 바꾸었다. 그는 제1대 칼리프의 정복 사업을 이어받아, 비잔티움 제국로부터 시리아·팔레스타인·이집트를 빼앗았으며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페르시아를 합쳐 이슬람 제국의 바탕을 이룩하였다. 그는 《코란》을 처음으로 편집하였으며, 622년 헤지라의 해를 이슬람 기원 원년으로 정하였다.
* 날짜 : 634/08/23 ~ 644/11/06 | |
636/08/15 | 야르무크 전투 |
야르무크 전투는 정통 칼리프 아랍 무슬림 세력과 비잔티움 제국간에 일어난 대전투이다. 이 전투는 서기 636년 8월에 갈릴리 해 남서쪽 오늘날의 시리아와 요르단 국경 사이 지대를 따라 난 야르무크 강 주변에서 6일간 벌어졌다. 야르무크 전투에서 무슬림은 완승하여 비잔티움 제국은 아나톨리아 남부의 지배권을 영영 잃게 된다. 이 전투는 전쟁사에서 결정적인 전투로 손꼽히며, 무함마드가 죽은 뒤 이슬람이 당시 기독교 세력이 지배하던 레반트로 급속히 진출할 것을 예고하며 무슬림의 정복 역사상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 날짜 : 636/08/15 | |
637 | 이슬람, 시리아 정복 |
이슬람, 시리아 정복.
* 날짜 : 637 | |
638 | 이슬람, 예루살렘 정복 |
이슬람, 예루살렘 정복.
* 날짜 : 638 | |
639 | 이슬람, 아르메니아 정복 |
이슬람, 아르메니아 정복.
* 날짜 : 639 | |
641 | 이슬람, 이집트 정복 |
이슬람, 이집트 정복.
* 날짜 : 641 | |
642 | 이슬람-하자르 1차 전쟁 |
아랍-하자르 전쟁의 첫번째 단계에서 아랍인들의 시도는 모두 격퇴됨.
* 날짜 : 642 ~ 652 | |
644/11/06 | 우마르 암살 |
그에게는 자연히 적도 많이 생겼으며 예루살렘을 정복당한 유대교도와 기독교도, 페르시아인들의 반감을 샀고 결국 644년 기독교도 페르시아계 노예에게 암살당했다.
* 날짜 : 644/11/06 | |
647 | 스베이틀라 전투 |
북아프리카에서 비잔틴 군대의 선봉대는 스베이틀라(Sbeitla) 전투에서 무너져 더 이상 회생하지 못했다. 아랍인이 비잔틴이라 불렀던 로마는 그 후 50년간 아프리카에 더 머물렀지만 카르타고의 항구와 요새화된 도시에만 거점을 남겨 두었다. 무슬림군은 스베이틀라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을 싣고 이프리끼야에서 철수한 후 오랜 기간이 지나서야 다시 아프리카에 나타났다.
* 날짜 : 647 | |
644/11/11 | 우스만 칼리프 |
우스만 이븐 아판(Uthman ibn Affan, ?~656년 6월 17일 아라비아 반도 메디나)는 예언자 무함마드를 계승한 3대 정통 칼리파이다. (재위 644년~656년)
* 날짜 : 644/11/11 ~ 656/06/20 | |
651 | 사산조 페르시아, 이슬람에 멸망 |
사산조 페르시아, 이슬람에 멸망.
* 날짜 : 651 | |
652 | 이슬람, 하자르에 대공세 |
최초의 대공세는 칼리프 오스만(Osman)의 재위기인 651~652년경, 살만 라비아(Salman B. Rabia) 장군에 의해 시도되었다. 그의 군대는 데르벤트를 넘어 하자르의 수도 벨렌제르로 공격해 왔다. 하자르는 4,000의 아랍군을 죽이는 전과를 올리면서 살만 장군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그 여세를 몰아 하자르는 다시 남진하여 아르메니스탄에 진입했다. 이후 양국 간에 반 세기에 걸친 국경 충돌이 계속되었다.
* 날짜 : 652 | |
654 | 이슬람, 키프로스 점령 |
이슬람, 키프로스 점령.
* 날짜 : 654 | |
655 | 이슬람함대, 비잔틴함대 격파 |
655년 이슬람군 함대는 키프로스, 크레타, 로도스, 시칠리아 섬을 공략했다. 그리고 같은 해 리키아 앞바다에서 콘스탄스 2세 황제가 지휘하는 비잔티움의 주력함대를 완파하여 지중해 해군력의 균형마저 곧 깨뜨릴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행히 비잔티움 제국은 뱃전에서 화염을 발사시키도록 제작된 비장의 무기 '그리스의 불'을 개발해둔 덕에 그럭저럭 제해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 날짜 : 655 | |
656/06/20 | 이슬람 1차 내전 |
이슬람 1차 내전
* 날짜 : 656/06/20 ~ 661 | |
656/06/20 | 우스만 암살, 이슬람의 분열 |
우스만 암살되고 알리가 칼리프로 뽑힘, 이슬람의 분열.
* 날짜 : 656/06/20 | |
656/06/20 | 알리 칼리프 |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Ali, 598년경 메카 - 661년 이라크 거주기 쿠파)은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으로, 무함마드의 보호자 아부 타리브의 아들이다. 또한 그는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의 남편이었다. 이슬람의 초기 지도자이자 4대 칼리파. 수니파에서는 그를 이슬람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정통 칼리파로 여기고, 시아파는 첫 번째 이맘이자 첫 번째 정통 칼리파로 간주한다.
* 날짜 : 656/06/20 ~ 661/01/27 | |
656 | 낙타 전투 |
예언자 무함마드의 뒤를 이은 정통 칼리프조 말기, 이슬람 신앙의 동요와 잇따른 음모로 혼란이 거듭되었다. 제 3대 칼리프 오스만이 새벽기도 중 암살당하고, 그 암살의 배후가 밝혀지기 전에 알리가 제 4대 칼리프로 선출되었다. 그러자 오스만의 6촌 동생이자 당시 다마스쿠스 총독으로 있던 우마이야(Umayyah) 가문의 무아위야(Mu'awiyah)가 오스만의 복수를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키며 알리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기 시작했다. 알리는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무아위야군과의 첫 전투인 낙타전투(A.D. 656년)에서 승리했다.
* 날짜 : 656 | |
657/07/26 | 시핀 전투 |
무아위야군과의 첫 전투인 낙타전투(A.D. 656년)에서 승리했으며, 두번째 전투인 십핀전투(A.D.657년)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자 불리해진 무아위야군은 협상을 요구했으며,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했다. A.D. 661년, 이라크 지역으로 돌아간 알리가 카와리지파에 의해 암살당하자 힘의 균형은 우마위야에게 기울었으며, 그는 분열된 이슬람 세계를 통합하는 한편 칼리프위에 올라 우마이야 왕조를 세웠다. 후에 안달루스 지방에 성립한 ‘후기 우마이야조(757-1031)’와 구별하여 이것을 ‘전기 우마이야 왕조’라고도 한다.
* 날짜 : 657/07/26 | |
657/11 | 당, 서돌궐을 토벌 |
583년, 수나라의 이간책으로 돌궐이 동서로 분열했다. 그 중의 서역 세력이 서돌궐이라고 칭해졌다. 당 태종에게 일단은 복속했지만, 태종의 사후에 독립해 세력 회복을 완수했다. 그러나 3대 고종이 본격적인 토벌군을 파견해, 657년에 멸망했다.
* 날짜 : 657/11 | |
661 | 무아위야 1세 칼리프 |
무아위야 1세 칼리프.
* 날짜 : 661 ~ 680 | |
661/01/27 | 알리 암살, 우마이야 왕조 수립 |
이슬람, 제4대 칼리프 알리 암살, 우마이야 왕조 수립.
* 날짜 : 661/01/27 | |
661 | 우마이야 왕조 |
무아위야 1세가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하여 세운 이슬람 칼리프조(661∼750).
* 날짜 : 661 ~ 750 | |
674 | 이슬람, 콘스탄티노플 포위 |
이슬람 교도의 지중해지역 진출이 시작되었으며 마르말라해의 키지코스를 발판으로 거기에서 매년 반복되는 그들의 콘스탄티노플 포위공격(674~678)은 '그리스의 불'로 겨우 격퇴되었다. 그 후 비잔티움제국은 이슬람 제국의 칼리프와 30년간의 휴전협정을 맺었다.
* 날짜 : 674 ~ 678 | |
680 | 야지드 1세 칼리프 |
야지드 1세 칼리프.
* 날짜 : 680 ~ 683 | |
680 | 이슬람 2차 내전 |
이슬람 2차 내전
* 날짜 : 680 ~ 692 | |
680/10/10 | 카르발라 전투 |
알리의 차남 후세인(Hussein)은 680년 10월 10일 이라크의 쿠파(Kufa) 근처 카르발라(Karbala)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우마이야조 칼리프 야지드(Yazid)의 군대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이 사건은 시아파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되었고 종교적 상징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시아파에게 그의 죽음에 대한 애석함과 무관심에 대한 죄책감을 불러 일으켰고 복수와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나게 되었다.
* 날짜 : 680/10/10 | |
683 | 무아위야 2세 칼리프 |
무아위야 2세 칼리프.
* 날짜 : 683 ~ 684 | |
684 | 마르완 1세 칼리프 |
마르완 1세 칼리프.
* 날짜 : 684 ~ 685 | |
685 | 압둘 말리크 칼리프 |
우마이야 왕조의 전성기는 제 5대 칼리프 압둘 말리크와 그의 아들인 왈리드 1세 때이다. 특히 칼리프 왈리드 1세(705-715 재위) 때에는 아랍의 정복사업이 매우 활발하게 펼쳐졌다.
* 날짜 : 685 ~ 705 | |
698 | 아랍 이슬람, 카르타고 점령 |
아랍 이슬람, 카르타고 점령.
* 날짜 : 698 | |
705 | 왈리드 1세 칼리프 |
우마이야 왕조의 전성기는 제 5대 칼리프 압둘 말리크와 그의 아들인 왈리드 1세 때이다. 특히 칼리프 왈리드 1세(705-715 재위) 때에는 아랍의 정복사업이 매우 활발하게 펼쳐졌다.
* 날짜 : 705 ~ 715 | |
705 | 이슬람, 중앙아시아 쪽으로 원정 |
중앙아시아 쪽으로 이슬람을 팽창시킨 주인공은 꾸타이바 빈 무슬림이었다. 그는 후라신의 통치자가 된 후 메르브와 발크를 정복하고 다시 사마르칸트를 점령하여 이 도시를 중앙아시아의 이슬람 중심지로 만들었다. 현재의 아프카니스탄 지역과 더 나아가 부하라와 사마르칸트까지 점령하여 옥수수강의 건너편 땅까지 아랍제국의 영토로 넓힌 것이다. 이로써 중앙아시아 전 지역이 아랍의 통치권에 들어왔고 동시에 주역민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기 시작하여 스텝 지역의 터카인들이 이슬람화되었다. 대체로 705년에서 712년 사이에 이루어진 대장정의 역사였다..
* 날짜 : 705 ~ 712 | |
710 | 이슬람, 인도 쪽으로 원정 |
인도 쪽으로의 원정은 무함마드 빈 알 까심이 맡았다. 그는 인도의 신드주를 점령하여 오늘날 파키스탄의 모태를 마련하였다. 710년에서 712년 사이에 발루치스탄, 하이데라바드 등을 점령하고는 북쪽으로 나아가 편잡의 물탄에 이를 때까지 정복 사업을 성공리에 펼쳐간다. 그 후 이슬람은 인더스강 지역과 인도대륙으로 전파되었다.
* 날짜 : 710 ~ 712 | |
711 | 이슬람,이베리아 반도 정복 |
서고트 왕국이 711년 이슬람 우마이야(옴미아드) 왕조의 침입으로 붕괴된 후, 1492년까지 약 800년간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의 영토였습니다.
* 날짜 : 711 | |
712 | 이슬람, 신드(파키스탄) 지방 점령 |
이슬람, 현재 파키스탄의 신드(Sindh) 지방 점령.
* 날짜 : 712 | |
713 | 이슬람, 물탄(파키스탄) 점령 |
이슬람, 현재 파키스탄의 펀자브 중남부의 물탄(Sindh) 점령.
* 날짜 : 713 | |
715 | 슐레이만 칼리프 |
슐레이만 칼리프.
* 날짜 : 715 ~ 717 | |
717 | 비잔틴 제국, 레오 3세 |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죽자 몇몇 황제가 즉위하였는데, 마지막 테오도시우스 3세(재위 715∼717)에게 반기를 들어 그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즉위 후 반년 만에 침공한 아라비아 함대와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였으나, 그는 1년 동안 함락되지 않고 전투를 지휘하였으며 마침내 718년 이슬람군을 격퇴하였다. 다시 740년의 아크로이온 전투에서 승리하여 비잔티움과 이슬람 사이의 전투에 종지부를 찍었다.
* 날짜 : 717 ~ 741 | |
717 | 비잔틴, 콘스탄티노플 방어 |
레오 3세가 즉위한 717년 여름 마슬라마가 이끄는 아랍의 8만 대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했다. 레오는 이미 제위에 오른 직후부터 이슬람의 침공에 대비하여 이를 잘 막아내었다. 이슬람군은 1년 동안 육상과 해상을 포위하여 공격했으나 난공불락의 성은 결코 함락되지 않았다. 해전에서는 비잔티움의 유명한 그리스 화약으로 이슬람 함대를 공격했고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혹독한 겨울의 추위는 포위군을 괴롭혔다. 급기야 일부 아랍의 함대가 전선에서 이탈하고 트라키아에 주둔한 이슬람군을 불가르족이 공격해오자 아랍군은 포위를 풀어야만 했다. 용의주도한 레오의 공성전의 승리로 아랍인들은 유럽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되었고 레오는 훌륭한 황제라는 평을 얻었다.
* 날짜 : 717 ~ 718 | |
717 | 우마르 칼리프 |
우마르 칼리프.
* 날짜 : 717 ~ 720 | |
719 | 이슬람, 나르본 점령 |
719년에는 피레네산맥을 넘어 나르본을 점령하여 산맥 너머의 교두보를 확보한다.
* 날짜 : 719 | |
720 | 야지드 2세 칼리프 |
야지드 2세 칼리프.
* 날짜 : 720 ~ 724 | |
721 | 툴루즈 전투 |
툴루즈에서 아키텐 대공 오도가 툴루즈에서 이슬람군을 격퇴하면서 이슬람군은 프랑스 남부에서 물러났다.
* 날짜 : 721 | |
722 | 이슬람-하자르 2차 전쟁 |
이슬람-하자르 2차 전쟁.
* 날짜 : 722 ~ 735 | |
724 | 히삼 칼리프 |
히삼 칼리프.
* 날짜 : 724 ~ 743 | |
724 | 이슬람, 투르기스(돌기시)에 패배 |
724년의 승리로 세이훈 강 동쪽 지역이 아랍의 영향권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세이훈 서쪽에서도 아랍군은 방어적인 위치로 전락되었다. 반면에, 서투르키스탄 일대에서의 투르기스의 영향력이 한층 강화되었다. 더구나 우마이야 왕조의 분열을 가속화시킨 쉬아(Sh'ia) 운동과 동부 지역의 분리 운동에 힘입어 투르크족에게 유리한 상황이 당분간 지속되었다.
* 날짜 : 724 | |
726 | 레오 3세, 성상파괴령 |
726년 동(東)로마 황제 레오 3세가 야훼·그리스도·성모마리아·순교자·성자 등의 이른바 성상(聖像)에 대한 숭배금지를 명한 것.
* 날짜 : 726 | |
730 | 이슬람-하자르, 아르다빌 전투 |
730년 아르다빌전투에서 우마위야 왕조 군대를 대파하고 모술, 다르카비르까지 진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마위야 왕조는 다시 군대를 모아 이들을 격파했다.
* 날짜 : 730 | |
730 | 교황,비잔티움 황제 파문 |
레오 3세, 교황 그레고리우스2세에 의해 파문됨.
* 날짜 : 730 | |
732 | 투르-푸아티에 전투 |
투르-푸아티에 전투는 732년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의 궁재인 카를 마르텔이 프랑스 투르와 푸아티에에서 옴미아드 왕조의 이슬람군을 무찌른 전투로 이 전투의 승리로 이슬람 세력의 서유럽 확장은 한풀 꺾였다.
* 날짜 : 732 | |
736 | 이슬람, 조지아 정복 |
이슬람, 조지아(그루지야) 정복.
* 날짜 : 736 | |
737 | 하자르,이슬람에게 패배 |
하자르에 대한 아랍군의 본격적인 대공세는 737년에 시작되었다. 우마이야 조 칼리프 히샴(Hisham)의 아르메니아 및 아제르바이잔의 총독인 마르완(Marwan)이 지휘하는 아랍군은 퀴르 강변의 코사크로부터 하자르의 제2도시 스메데레보(Smederevo)를 급습했다. 아랍군의 공세에 저항을 포기하고 퇴각하는 하자르군을 추격한 마르완은 이틸(볼가) 강변에서 하자르 카간을 포위했다. 결국 최후의 저항 세력인 하자르 사령관 타르한이 10,000명의 전사자와 7,000명의 포로를 내고 패배함으로써, 하자르 카간은 아랍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 날짜 : 737 | |
737 | 이슬람, 아비뇽에서 카를에게 패배 |
이슬람, 프랑스 아비뇽에서 카를에게 패배.
* 날짜 : 737 | |
739 | 베르베르족 반란 |
북아프리카와 안달루스의 베르베르족 반란.
* 날짜 : 739 ~ 743 | |
740 | 하자르,유대교로 개종 |
하자르,유대교로 개종.
* 날짜 : 740 | |
740 | 아크로이논 전투 |
동로마 황제인 레오 3세는 공세로 돌아서서 군을 이끌고 아랍군과의 대규모 결전을 준비하였고 지금의 터키 동부 아피온카라히사르(아크로이논)에서 2만의 아랍군과 마주쳤다. 이 싸움에서 동로마군은 대승을 거두고 움마이야 왕조의 급격한 약화를 틈 타 터키 동부까지 영토를 늘렸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움마이야 왕조는 이미 지는 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종교분쟁이 일어났고 움마이야 왕조는 750년에 망하고 그 자리에 아바시드 왕조가 들어섰다.
* 날짜 : 740 | |
743 | 왈리드 2세 칼리프 |
왈리드 2세 칼리프.
* 날짜 : 743 ~ 744 | |
744 | 야지드 3세 칼리프 |
야지드 3세 칼리프.
* 날짜 : 744 | |
744 | 이브라힘 칼리프 |
이브라힘 칼리프.
* 날짜 : 744 | |
744 | 마르완 2세 칼리프 |
마르완 2세 칼리프.
* 날짜 : 744 ~ 750 | |
744 | 하쉬미야 당파의 반란 시작 |
하쉬미야 당파는 진정한 칼리프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계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하쉬미야 가문의 일원인 아바스 가문 출신의 이브라힘(Ibrahim)은 744년부터 후라산을 중심으로 반란을 시작했다.
* 날짜 : 744 | |
747 | 아부 무슬림의 봉기 |
747년 6월 15일에 아부 무슬림은 혁명의 깃발을 들어올렸고 반란은 순식간에 호라산을 비롯한 다른 지역으로 퍼졌으며, 그는 주요 군사조직책으로 활동했다.
* 날짜 : 747 | |
750 | 아바스 왕조(~1258) |
우마이야조의 뒤를 이어 750∼1258년에 동방 이슬람 세계를 지배한 칼리프조(750~1258). 13세기 중엽까지 명백을 유지했으나 아바스가의 칼리프가 종교와 정치 양면에서 최고의 지도자 권력자로서 군림한 것은 945년까지이고, 그 이후는 정치상의 실권이 거의 없었다.
* 날짜 : 750 | |
750 | 자브강 전투 |
750년에 아부 무슬림은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격하여 우마이야 왕조의 군대를 자브강 전투에서 격퇴하고 시리아를 점령하였다.
* 날짜 : 750 | |
751 | 프랑크 왕국, 카롤링거 왕조 성립 |
카롤링거 왕조(Carolingian dynasty) 또는 카롤링 왕조(Carolings)는 프랑크족 카롤링 가문이 세운 왕조이다. 카롤링 가문은 아우스트라시아 출신으로 프랑크 왕국의 전 왕조인 메로빙거 왕조에 종사하는 궁재이었으나, 점차 실권을 잡아 프랑크 왕국의 2번째 왕조를 열었다.
* 날짜 : 751 | |
751 | 탈라스 전투 |
탈라스 전투 (Battle of Talas)는 751년 7월~8월사이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수 고선지장군이 지휘하는 당나라군과 동맹군 티베트가 압바스 왕조, 카르룩 연합군을 상대로 지금의 카자흐스탄 영토인 타쉬겐트 부근 탈라스 강 유역에서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싸운 전투였다.
* 날짜 : 751 | |
751 | 롬바르드족, 라벤나 점령 |
이탈리아에서 성상파괴 운동으로 득을 본 쪽은 롬바르드족이었다. 그들은 로마와 비잔티움을 서로 싸우게 하여 그 틈에서 어부지리를 얻으며 차근차근 힘을 기른 끝에 751년에는 마침내 라벤나까지 점령했다. 그로써 비잔티움의 총독 관할구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탈리아에 남아 있던 다른 비잔티움 영토는 남부의 롬바르드 공국들에 가로막혀 무기력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로마는 이제 적에게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 날짜 : 751 | |
756 | 후後우마이야 왕조(~1031) |
후우마이야 왕조는 코르도바 칼리프국 또는 서칼리프국이라고도 한다. 우마이야 왕조 멸망 후 일족인 아브드알 라흐만이 에스파냐의 코르도바에 피신하여 독립했다. 제8대 아브드 알라흐만 3세 때 칼리프를 자칭하고 왕조는 최성기에 달했다. 그리하여 후우마이야 왕조를 서칼리프국, 아바스 왕조를 동칼리프국이라고도 했다. 양국은 정치적으로는 대립해 있었지만, 문화·경제적 교류는 활발하여 이베리아 반도에는 고도의 이슬람 문화가 꽃피었다.
* 날짜 : 756 | |
759 | 프랑크 왕국, 나르본 점령 |
이 승리는 프로방스에 대한 원정의 종말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유럽 서부에서 이슬람 팽창의 종말을 의미한다.
* 날짜 : 759 | |
762 |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 건설 |
BC 300년대에 도시로 발달했던 유적이 남아 있으나, 그뒤 황폐한 한촌(寒村)이 되었다가, 762년 사라센제국 아바스왕조의 제2대 칼리프 알만수르가 그곳에 신수도를 건설하면서부터 발달하였다.
* 날짜 : 762 | |
771 | 샤를마뉴, 프랑크왕국 통일 |
카롤링거왕조의 제2대 프랑크 국왕(재위768~814)으로 카를대제 또는 카롤루스대제라고도 한다. 부왕 피핀이 죽은 뒤 동생 카롤만과 왕국을 공동통치하였으나 771년에는 동생 역시 죽어 단일 통치자가 되었다. 서유럽의 정치적 통일을 달성하였다.
* 날짜 : 7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