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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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04/12 | 미국,남북 전쟁 |
남북 전쟁 (南北戰爭, American Civil War, 줄여서 Civil War)은 미국에서 일어난 내전이다. 1861년 4월, 노예제를 지지하던 남부주들이 모여 남부연합을 형성하며 미합중국으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한 뒤, 남부동맹군(이하 '남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항의 섬터 요새를 포격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1865년까지 4년 동안 벌어진 전쟁이다. 전쟁 결과 남군이 패했고, 미국 전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날짜 : 1861/04/12 ~ 1865/05/09 | |
1861/12/08 | 프랑스의 멕시코 원정 |
프랑스의 멕시코 원정. 멕시코 제국과 프랑스 제2제국이 멕시코 1857년 헌법에 근거하여 멕시코 합중국과의 주도권 다툼으로, 보수냐 혁신이냐 하는 독립 후 멕시코의 체제를 결정하는 전쟁이며, 프랑스 제국과 미국의 대리 전쟁이기도 했다.
* 날짜 : 1861/12/08 ~ 1867/06/21 | |
1862/06/05 | 베트남,프랑스에 항복 |
프랑스 해군은 리고 드 주누이(Rigault de Genouilly) 제독 지휘하에 다낭과 사이공을 점령(각각 1858년 9월 1일과 1859년 2월 17일)하였다. 사이공의 점령은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식민지화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해군은 남부 베트남의 요충지에서 베트남군을 패퇴시켰다. 프랑스는 1861년에는 대대적인 침략을 감행하였다. 결국 뜨득 황제는 항복하고 만다(1862년).
* 날짜 : 1862/06/05 | |
1862/09/23 | 비스마르크,프로이센 수상 취임 |
비스마르크,프로이센 수상 취임.
* 날짜 : 1862/09/23 | |
1864/09/28 | 제1인터내셔널 결성 |
제1인터내셔널(First International) 또는 국제노동자협회(國際勞動者協會, International Workingmen's Association)는 1864년 9월 28일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최초의 국제적인 노동 운동 조직으로, 1863년 폴란드 봉기 탄압에 항의하는 집회를 계기로 결성되었다. 186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제1차 대회가 열렸다. 카를 마르크스는 제1인터내셔널의 결성 선언문과 규약을 작성하는 등 제1인터내셔널의 결성을 적극 지도했으며 1870년에는 마르크스파가 제1인터내셔널의 지도권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1871년 프랑스에서 수립된 파리 코뮌이 붕괴된 이후 제1인터내셔널은 쇠퇴하게 되었고 결국 1876년에 해체되고 만다.
* 날짜 : 1864/09/28 | |
1865 | 러시아, 중앙아시아 칸국들 합병(~1876) |
러시아, 중앙아시아 칸국들 합병(~1876).
* 날짜 : 1865 ~ 1876 | |
1866 | 로스차일드 가(家)의 시대 |
로스차일드 가문(Rothschild family)은 유대계 국제 금융재벌 가문이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주요 국가들의 공채 발행과 왕족과 귀족들의 자산 관리를 맡아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철도와 석유산업의 발달을 주도하며 유럽의 정치와 경제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 날짜 : 1866 ~ 1931 | |
1866/06/14 |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또는 보오전쟁은 소 독일주의로 통일을 추구하던 프로이센과 대 독일주의를 지향하던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 간에 독일 연방내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벌인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함으로써 독일은 프로이센 중심의 소 독일주의로 통일을 하게 된다.
* 날짜 : 1866/06/14 ~ 1866/08/23 | |
1866/07/03 | 쾨니히그레츠 전투 |
쾨니히그레츠 전투는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중 프로이센군이 보헤미아의 도시 쾨니히그레츠(지금의 흐라데츠크랄로베) 북서쪽의 사도바 마을에서 벌인 전투로 사도바 전투라고도 불린다. 이 전투에서 프로이센은 대승을 거두었고 오스트리아는 군대가 거의 괴멸되어 대패했다.
* 날짜 : 1866/07/03 | |
1866/10/25 | 병인양요 |
프랑스 군함이 병인박해 때 프랑스 선교사 사살 책임을 물으며 1866년 두 번이나 침입해 왔다. 이들은 처형배상, 통상조약 체결을 요구하며 강화도를 점령하였다. 대원군의 통상거부와 지쳐 버린 프랑스군은 강화도의 중요서적과 귀중품을 약탈하고 철수하였다.
* 날짜 : 1866/10/25 | |
1867 | 노벨,다이너마이트 발명 |
니트로글리세린을 연구하고, 이를 이용하여 다이너마이트를 발명, 1867년에 특허를 얻었다. 1869년부터 파리 연구소에서 연구에 전념하여, 1875년 무산 화약 발리스타이트를 발명하였다.
* 날짜 : 1867 | |
1867 | 남아프리카 다이아몬드 발견 |
1867년에는 이 곳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고, 1884년에는 금 광산이 발견되어 엄청난 규모의 경제 발전과 인구 증가가 시작되었다. 이 광물들의 발견으로 남아프리카 지역의 중요성을 깨달은 영국은 이 곳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였고, 이 때문에 원래의 흑인 거주민들과 네덜란드계 보어인들, 그리고 새롭게 이주해들어오는 영국인들 사이에서의 갈등은 점차 커져만 갔다.
* 날짜 : 1867 | |
1867/03/30 | 러시아, 알래스카 미국에 매각 |
알래스카 매매 또는 알래스카 매입(Alaska Purchase), 알래스카 매각은 1867년 미국 국무부 장관 윌리엄 슈워드의 명령으로 미국이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한 사건이다. 매입한 영토는 600,000 평방마일 (1,600,000 km²)로 현재 알래스카 주다.
* 날짜 : 1867/03/30 | |
1867/05/29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성립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867년부터 1918년까지 중부 유럽에 존재했던 입헌군주제 국가이자 열강 중 하나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다스렸으며, 1867년의 대타협으로 형성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함으로 인하여 해체되었다.
* 날짜 : 1867/05/29 | |
1867/07/01 | 캐나다 자치령 |
1867년 7월 1일, 영국령 북아메리카 법을 통하여 온타리오, 퀘벡, 노바 스코티아, 뉴브런스윅, 이 4개의 주가 합쳐져 공식적으로 캐나다 자치령이 설립되었다.
* 날짜 : 1867/07/01 | |
1868/01/03 | 일본,메이지 유신 |
메이지 유신(일본어: 明治維新 (めいじいしん) 메이지 이신[*], 영어: Meiji Restoration, 1868년 1월 3일 ~ 1889년[1])은 일본에서 에도 막부(에도 바쿠후)의 체제에서 일본 천황이 직접 통치하는 체제로의 전환과, 전쟁(보신 전쟁), 근대 자본주의 체제로의 개혁을 말한다. 일본의 정치, 사회 구조를 크게 바꾼 일련의 사건들이다. 미 해군의 제독 매슈 페리가 이끌고 온 흑선은 에도 막부(에도 바쿠후)와 일본 근현대사 방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 날짜 : 1868/01/03 | |
1869/05/10 | 미국,첫 대륙횡단철도 완공 |
미국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첫 대륙횡단철도는 6년 간의 공사를 거쳐 1869년 완공되었다. 캘리포니아 주의 세크라멘토에서 네브래스카 주의 오마하를 잇는 길이 2826킬로미터(1756마일)의 철도이다.
* 날짜 : 1869/05/10 | |
1869/11/17 | 수에즈운하 개통 |
1869년 이집트는 지중해와 홍해, 인도양을 이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세계 최대의 해양 운하인 수에즈운하를 개통하였다.
* 날짜 : 1869/11/17 | |
1870 | 록펠러, 스탠다드 오일 |
스탠더드 오일 (Standard Oil)는 석유의 생산, 운송, 정제, 마케팅 분야에서 다른 회사들에 비해 월등한 영향력을 가진 회사였다. 스탠더드 오일은 1870년 존 D. 록펠러가 동업자들과 함께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에서 설립하였다. 1890년 기준으로 스탠더드오일은 미국 내 88%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였다.
* 날짜 : 1870 | |
1870/07/19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
비스마르크의 엠스전보사건에 대응하여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1870년 프로이센에 선전포고를 했으나 프랑스의 패전으로 파리에 공화정이 선언되고 국방정부가 성립되었다.
* 날짜 : 1870/07/19 ~ 1871/05/10 | |
1870/09/01 | 스당 전투 |
스당 전투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당시 프로이센이 뫼즈 강 연안 스당 요새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한 결정적인 전투로 이 전투에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포로로 잡혀 프랑스 제2제정의 몰락을 초래했다.
* 날짜 : 1870/09/01 | |
1871 | 이탈리아 통일 |
이탈리아의 통일운동이 시작된 시기와 그 끝이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많은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나폴레옹 1세가 몰락하고 빈 체제가 시작된 1815년부터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끝난 1871년까지로 보고 있다.
* 날짜 : 1871 | |
1871/01/18 | 독일 통일 |
독일의 통일은 1871년 1월 18일 프로이센의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승리한 뒤, 베르사이유 궁전의 거울방에서 독일 통일과 함께 독일 제국을 선포한 사건이다.
* 날짜 : 1871/01/18 | |
1871/03/18 | 파리 코뮌 |
파리 코뮌(프랑스어: Commune de Paris,1871년 3월 18일~5월 28일)또는 파리 꼬뮌은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스 민중들이 세운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자치 정부이다. 세계 최초로 노동자 계급의 자치에 의한 민주주의 정부라고 평가되고 있는 파리 코뮌은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정책들을 실행에 옮겼으며, 단기간에 불과하였지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 날짜 : 1871/03/18 ~ 1871/05/28 | |
1871/06/10 | 신미양요 |
미국 함대는 제너럴셔먼호 소각을 빌미로 조선과 통상관계를 맺기 위해 1871년 강화도를 침범하였다. 로저스 제독은 대원군이 교섭을 거절하자 수도와 가까운 강화도를 공격ㆍ점령했으나 결국 완강한 쇄국정책에 철수하고 말았다.
* 날짜 : 1871/06/10 | |
1872 | 독일, 금본위제 채택 |
독일, 금본위제 채택.
* 날짜 : 1872 | |
1873/06/06 | 삼제 동맹 |
삼제 동맹(三帝同盟)는 19세기 독일 제국이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묶은 동맹이다. 독일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중재로 1873년 6월 6일에 체결되었다.
* 날짜 : 1873/06/06 | |
1873/10/01 | 세계경제 대불황 |
장기불황(Long Depression, 1873년 –1896년) 또는 대불황(Great Depression)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 후반기에 발생한 세계 경제 위기를 가리킨다. 대불황은 제2차 산업 혁명과 남북 전쟁이 끝난 후 강력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었던 유럽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왔다.
* 날짜 : 1873/10/01 ~ 1896/3/31 | |
1875/06/02 | 벨,전화기 발명 |
영국 태생의 미국 발명가 벨은 1876년 전기식 전화기의 특허를 받은 뒤, 1877년 벨전화회사를 세웠고, 축음기를 발명하였으며, 가장 빠른 속도를 기록한 보트를 설계하기도 하였다.
* 날짜 : 1875/06/02 | |
1875/07/09 | 발칸 위기 |
비스마르크의 구상에 위기 상황이 도래한 것은 1875년에 헤르체고비나에서 기독교 농민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이것이 보스니아로 확산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였다.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의 반란은 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아의 지원을 받으며 불가리아로 파급되었다. 반란은 오스만 투르크 정부에 의해 가혹하게 진압되었다.
* 날짜 : 1875/07/09 ~ 1878/07/13 | |
1875/11/25 | 영국,수에즈 운하 매수 |
영국의 디즈레일리 총리, 재정 위기에 빠진 이집트로부터 수에즈 운하 매수. 신용대출을 내준 로스차일드가의 자금이 아니었다면 영국은 수에즈 운하를 차지할 수도, 프랑스와 독일의 세력 팽창을 막을 수도, 인도의 지배권을 다질 수도 없었다.
* 날짜 : 1875/11/25 | |
1876/02/27 | 강화도 조약 |
조일수호조약(朝日修好條約)은 1876년 2월 27일(고종 13년 음력 2월 3일) 조선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통상 조약이며, 한일수호조약 또는 병자수호조약 등으로 부르기도 하며, 흔히 강화도조약이라 한다. 한일 관계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으며, 근대 국제법의 토대 위에서 맺은 최초의 조약이며, 일본의 강압적 위협으로 맺어진 불평등 조약이다.
* 날짜 : 1876/02/27 | |
1877/04/24 | 러시아-터키 전쟁 |
유럽 각국은 이스탄불에서 회담을 갖고, 발칸에서의 오스만군의 철수, 동서 불가리아의 분할 및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대한 자치권 부여를 결의했다. 오스만이 유럽 각국의 일방적 결정에 불복하자, 범슬라브주의를 표방하며 발칸에 가장 큰 이해 관계를 갖고 있던 러시아가 1877년에 오스만에 대한 전면전을 시작했다.
* 날짜 : 1877/04/24 ~ 1878/03/03 | |
1878 | 세계적 기근 |
19세기 후반은 기상 악화로 인해 세계 각지에 극심한 재앙들이 들이닥쳤던 시기다. 1876년부터 1879년까지 무려 4년 동안 계절풍이 불지 않아 아시아 여러 지역에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가뭄이 들었다. 거의 1천만 명(!)의 아사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도가 가장 큰 피해를 보았지만 자바, 필리핀, 한국, 브라질, 남아프리카, 마그레브에서도 가뭄과 기근이 보고됐다.
* 날짜 : 1878 | |
1878 | 프랑스, 금본위제 채택 |
프랑스, 금본위제 채택.
* 날짜 : 1878 | |
1878 | 제2차 아프간 전쟁 |
19세기에 영국과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에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1839년~1842, 1878년~1880년, 1919년)과 바라크자이 왕조 성립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영국에게서 상당한 영토와 자치를 얻어냈다.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나, 1919년 아무눌라 칸이 왕위에 오르면서 아프가니스탄 왕국이 성립하여 아프가니스탄은 외세에게서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 날짜 : 1878 ~ 1880 | |
1878/03/03 | 산스테파노 조약 |
산스테파노 조약(Treaty of San Stefano)은 1878년 3월 3일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양국이 산스테파노(현재 이스탄불 서쪽의 예실키)에서 체결한 평화 조약이다.
* 날짜 : 1878/03/03 | |
1878/07/13 | 베를린 회의 |
베를린 회의(Congress of Berlin)는 러시아-튀르크 전쟁 이후 체결된 산스테파노 조약을 개정하기 위해 1878년 6월 13일부터 7월 13일까지 베를린에서 개최된 회의로, 유럽 열강들은 이를 통해 발칸 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확장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 날짜 : 1878/07/13 | |
1879 | 미국, 금본위제 채택 |
미국, 금본위제 채택.
* 날짜 : 1879 | |
1879/01/11 | 줄루 전쟁 |
1879년 줄루족의 왕 케츠와요가 영국군에 대항해 줄루 전쟁을 일으켜 이산들와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나 결국 패배하여 줄루 왕국은 해체당하고 분열된다.
* 날짜 : 1879/01/11 ~ 1879/07/04 | |
1879/10/07 | 독오 동맹 |
독오 동맹(獨墺 同盟)은 1879년 10월 7일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이에서 체결된 군사 동맹이다.
* 날짜 : 1879/10/07 | |
1879/10/21 | 에디슨,전구 발명 |
백열등(白熱燈) 또는 백열전구(白熱電球)는 높은 온도를 이용해서 빛을 내는 전기적인 조명 장치이다. 1879년에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하였다.
* 날짜 : 1879/10/21 | |
1880/12/20 | 제1차 보어 전쟁 |
보어전쟁(Boer War, Anglo Boer War) 또는 앵글로 보어전쟁은 영국과 당시 남아프리카지역에 정착했던 네덜란드계 보어족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 날짜 : 1880/12/20 ~ 1881/03/23 | |
1881/03/13 | 알렉산드르 2세 암살 |
알렉산드르 2세(1818년 4월 17일 - 1881년 3월 13일)는 러시아 제국의 차르이다. 본명은 알렉산드르 니콜라예비치 로마노프이다. 로마노프 왕조의 12번째 군주로 러시아 제국의 근대화를 위해 앞장선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아나키스트에게 1881년 암살당했다.
* 날짜 : 1881/03/13 | |
1881/04/15 | 포그롬(러시아 제국) |
1881년 알렉산드로 2세가 암살된 후 러시아 정부가 유대인을 비난하면서 반유대인 박해 사건은 수년 동안 지속되었다.
* 날짜 : 1881/04/15 ~ 1884 | |
1881/05/12 | 바르도 조약 |
이 조약으로 프랑스 군대의 무한주둔이 허락되었을 뿐만 아니라, 튀니지에 상주하는 프랑스 공사가 양국 사이의 연락을 맡도록 하였으며, 지방총독의 권한은 내정에 한정되게 되었다. 이로써 튀니지는 프랑스의 보호령이 되었다.
* 날짜 : 1881/05/12 | |
1881/06/18 | 삼제 협상 |
1873년의 삼제 동맹은 1878년 베를린 회의를 통해 사실상 소멸되었다. 1881년에 삼제 협상(三帝 協商) 형식으로 부활되었으나 이것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 날짜 : 1881/06/18 | |
1881/08/12 | 마흐디 전쟁 |
마흐디 전쟁(Mahdist War) 또는 마흐디의 난은 1881년부터 1899년까지 영국(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오늘날의 수단에서 수행한 식민전쟁이다.
* 날짜 : 1881/08/12 | |
1882/05/20 | 삼국동맹 결성 |
1882년부터 1915년까지의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3국간에 체결된 방어비밀동맹.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1879년 2국동맹을 체결하였는데, 1881년 프랑스가 튀니지를 점령하여 보호국화하자, 일찍부터 곳에 야심을 품고 있던 이탈리아가 프랑스의 튀니지 점령을 인정하지 않고 1882년 5월 20일, 5년 기한으로 독일·오스트리아와 함께 이 동맹을 체결하였다.
* 날짜 : 1882/05/20 | |
1882/09 | 영국,이집트 점령 |
인도로 가는 해상로를 보호하기 위해 먼저 영국 군대는 1882년 이집트를 점령했다.
* 날짜 : 1882/09 | |
1882/10/04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은 1882년 음력 8월 23일 조선과 청이 맺은 통상장정이다.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 대한 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과정 속에서 체결되었다. 본래 명칭은 "중국조선상민수륙무역장정"이며, 조선을 청의 속방으로 명기한 불평등 조약이다. 조선에서의 청 상인의 내륙 무역을 허용하는 결과를 낳아 거류지 무역의 균열을 초래하였다. 이 장정으로 청 상인의 경제적 침투가 본격화됨으로써 조선에서의 일본 상인과 청 상인간의 경쟁이 가속되었다.
* 날짜 : 1882/10/04 | |
1883/08/26 |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 |
크라카타우 화산의 대규모 분출을 전 세계에서 느낄 수 있었다.
* 날짜 : 1883/08/26 | |
1884/12 | 베를린회의(1884년) |
베를린 서아프리카 회의(Berlin Conference) 또는 콩고 회의(Congo Conference)는 비스마르크의 중재로 베를린에서 개최된 아프리카 분할에 관한 회의로, 주최국인 독일 제국은 카메룬과 탄자니아, 나미비아 등을 얻었다.
* 날짜 : 1884/12 ~ 1885/02 | |
1884 | 청, 신강성 설치 |
반란세력들 간의 내전 결과, 야꿉 벡이라는 인물이 통일 국가를 수립하였다. 그는 이슬람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근대식 소총과 화포를 구입하여 무력을 증강하였고, 영국과 러시아의 승인을 받기도 하였으나 1876년 청군과의 전투에서 패한 직후 급사하였다. 이후 청은 1884년 이 지역에 신강성을 설치하여 자국의 영토로 합병하였다.
* 날짜 : 1884 | |
1884 | 남아프리카 금 광산 발견 |
1867년에는 이 곳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고, 1884년에는 금 광산이 발견되어 엄청난 규모의 경제 발전과 인구 증가가 시작되었다. 이 광물들의 발견으로 남아프리카 지역의 중요성을 깨달은 영국은 이 곳에 대한 통치를 강화하였고, 이 때문에 원래의 흑인 거주민들과 네덜란드계 보어인들, 그리고 새롭게 이주해들어오는 영국인들 사이에서의 갈등은 점차 커져만 갔다.
* 날짜 : 1884 | |
1884/08 | 청프 전쟁 |
청프 전쟁(中法戰爭)은 1884년 8월에서 1885년 4월까지 베트남 북부의 통킹을 프랑스가 차지하기 위하여 벌인 전쟁이다. 이 전쟁은 베트남에 대한 청나라의 종주권을 놓고 프랑스와 청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기도 하다. 청불전쟁(淸佛戰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날짜 : 1884/08 ~ 1885/04 | |
1884/12/04 | 갑신정변 |
1884년(고종 21) 김옥균(金玉均)을 비롯한 급진개화파가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
* 날짜 : 1884/12/04 | |
1885 | 내티 로스차일드, 영국 상원의원으로 |
1885년 라이오넬의 장남 너대니얼(내티)은 영국 여왕으로부터 상원의원에 임명되면서 역사상 첫 유대인 세습 귀족이 탄생.
* 날짜 : 1885 | |
1885/04/15 | 거문도 사건 |
거문도 사건(巨文島事件)은 1885년(고종 22년)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조선의 전라도에 있는 거문도를 불법 점거함으로써 일어난 사건이다.
* 날짜 : 1885/04/15 ~ 1887/02/27 | |
1885/11/14 | 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 |
1885년 동루멜리아 지역 내 불가리아계 주민들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저항하는 반란을 일으켜 동루멜리아 지방을 장악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고 동루멜리아 지방의 불가리아계 주민들은 동루멜리아에 대한 불가리아와의 합병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베를린 조약 과정에서 할당된 자국 영토들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세르비아가 불가리아가 동루멜리아 지방의 흡수를 통해 강성해지는 것에 반발하여 1885년 11월 14일 불가리아를 무력 침공하면서 양국 사이에 전쟁으로 이어졌다.
* 날짜 : 1885/11/14 | |
1886 | 벤츠,휘발유엔진 자동차 생산 |
벤츠,휘발유엔진 자동차 생산.
* 날짜 : 1886 | |
1886/05/04 | 헤이마켓 사건 |
헤이마켓 사건(Haymarket affair) 또는 헤이마켓 폭동(Haymarket riot)은 1886년 5월 4일,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시의 헤이마켓 광장에서 진행되던 노동시위 와중에 벌어진 폭탄투척 사건과 그 결과 일어난 폭력사태이다. 헤이마켓 사건은 국제노동절의 유래가 된 중요 사건으로 생각된다.
* 날짜 : 1886/05/04 | |
1887/06/18 | 재보장 조약 |
재보장 조약(再保障 條約)은 1887년 6월 18일 독일 제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에서 체결된 비밀 조약이다. 188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러시아 제국 간의 관계가 긴박해지자 양국은 삼제 협상(三帝協商)의 갱신을 거절했다. 독일 제국은 프랑스의 보복에 대비하기 위해 러시아 제국의 중립이 필요했고 러시아 제국도 아시아에서 영국과의 경쟁을 계속하고 있었으므로 독일 제국의 지지가 필요했다.
* 날짜 : 1887/06/18 | |
1887/07/07 | 페르디난드 1세 (불가리아) |
불가리아 왕위 계승과 관련하여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관계는 1886년 말부터 1887년 초까지 전면전의 위기로 치달았다. 비스마르크는 러시아를 설득해 불가리아 의회가 선출한 작센코부르고타 공국 출신의 중립인사인 페르디난트의 왕위 계승을 받아들이도록 했다.
* 날짜 : 1887/07/07 | |
1888/06/15 | 빌헬름 2세 즉위 |
빌헬름 2세(Wilhelm II, 1859년 1월 27일 ~ 1941년 6월 4일)는 독일 제국 황제 겸 프로이센의 왕이었다(통칭은 "카이저"). 본명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빅토어 알베르트(Friedrich Wilhelm Victor Albert)"이며 독일의 빌헬름 1세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프리드리히 3세이고, 어머니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인 빅토리아 공주이다.
* 날짜 : 1888/06/15 | |
1889/05/31 | 영국,two-power standard |
영국 해군이 세계 2,3위 국가의 해군력을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한 해군력을 유지한다는 내용.
* 날짜 : 1889/05/31 | |
1890/03/18 | 비스마르크 사직 |
비스마르크는 물러나면서 '이런식으로 가면 내가 떠나고 15년 후엔 파멸이 올 것이다.'라고 했다.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 날짜 : 1890/03/18 | |
1890/06/18 | 재보장 조약 소멸 |
재보장 조약(再保障 條約)은 1887년 6월 18일 독일 제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에서 체결된 비밀 조약이다. 기한은 3년이었지만 1890년 독일 제국이 조약 갱신을 거부하면서 소멸되었다.
* 날짜 : 1890/06/18 | |
1890/10/01 | 매킨리 관세 |
매킨리 관세법(Tariff Act of 1890, 흔히 매킨리 관세라고 불린다)는 미국 상원 의원 윌리엄 맥킨리가 입안하여 1890년 10월 1일 발효시킨 미국 의회의 법이다. 관세는 수입품에 대한 평균 관세를 거의 50%로 인상했으며, 외국과의 경쟁에서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었다.
* 날짜 : 1890/10/01 | |
1891 | 범독일 동맹 |
독일의 급진적인 민족주의자들은 범독일 동맹(Pan-German League)을 창설했다. 독일의 사회주의자이자 경제학자인 막스 베버는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 정부 정책에 대해 지닌 반감을 1895년 프라이부르크대학 취임 강연에서 이렇게 요약했다. "강력한 독일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독일 통일이 그 시작이 아니라 완성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더 이상 비용을 들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 날짜 : 1891 | |
1891 | 시베리아철도 착공 |
프랑스 자금을 바탕으로 1891~1892년에 걸쳐 착공하고 1897년 부분적으로 개통되었다.
* 날짜 : 1891 | |
1891/05/20 | 에디슨, 영사기 |
에디슨,영사기.
* 날짜 : 1891/05/20 | |
1894/01/04 | 러불 동맹 |
러불 동맹(Franco-Russian Alliance)은 프랑스 제3공화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에 1892년부터 1917년까지 성립된 군사 동맹이다. 1882년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왕국이 결성한 삼국 동맹에 대항하기 위한 차원에서 형성되었으며 한 동맹국이 공격을 받으면 다른 나라가 군사적 지원을 하는 내용으로 정해졌다. 이 동맹은 영불 협상, 영러 협상과 함께 삼국 협상을 형성하는 계기가 된다.
* 날짜 : 1894/01/04 | |
1894/06/23 | 국제 올림픽 위원회 설립 |
국제 올림픽 위원회(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IOC)는 스위스 로잔에 본부를 둔 국제 기구로 1894년 6월 23일 피에르 드 쿠베르탱과 드미트리우스 비켈라스에 의해 설립되었다.
* 날짜 : 1894/06/23 | |
1894/08/01 | 청일 전쟁 |
동학농민전쟁을 빌미로 조선에 주둔한 청과 일본은 1894년부터 1895년까지 조선의 통치권을 두고 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승리하자 곧 조선과 중국의 식민지화에 착수하였다.
* 날짜 : 1894/08/01 ~ 1895/04/17 | |
1894/12 | 드레퓌스 사건 |
드레퓌스 사건은 19세기 후반의 수년 동안 프랑스를 양분했던 정치적 추문 사건이다. 19세기, 프랑스는 독일을 상대로 한 방어 전쟁에서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독일 자신이 원하는 배상금을 주면 파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하자, 온 나라 국민이 돈을 모아 갚으면서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갈수록 반독일 감정이 높아졌고, 반유대주의도 온 유럽을 휩쓸고 있었다.
* 날짜 : 1894/12 ~ 1906/07/12 | |
1894/12/15 |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은 이탈리아 왕국과 에티오피아 제국 간의 전쟁으로 1895년부터 1896년까지 이어졌다. 이 전쟁 이후 아프리카 대륙의 독립 국가는 에티오피아 제국과 라이베리아 밖에 없었으며, 조나스에 따르면 "유럽의 거침 없는 확장에서 에티오피아는 홀로 그들의 독립을 성공적으로 지켜낼 수 있었다."
* 날짜 : 1894/12/15 ~ 1896/10/23 | |
1895 | 디젤 엔진 발명 |
디젤 엔진(Diesel engine)은 '디젤기관'이라고도 불리며, 독일의 기술자 루돌프 디젤(Rudolf Diesel)이 발명한 내연 기관으로 1895년에 특허를 받았다. 주로 대형자동차, 철도차량, 건설기계, 농업용기계, 선박 등의 엔진에 이용된다.
* 날짜 : 1895 | |
1895/04/17 |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
청·일전쟁의 전후처리를 위해 1895년 4월 17일 청국과 일본이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체결한 강화조약. 이 조약은 5개 항목으로 청나라의 조선간섭을 물리치고 일본이 조선과 만주까지 지배력을 뻗칠 수 있게 하였다.
* 날짜 : 1895/04/17 | |
1895/04/23 | 일본에 삼국간섭 |
청일전쟁의 강화조약인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에서 인정된 일본의 랴오둥반도[遼東半島] 영유(領有)에 반대하는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공동간섭.
* 날짜 : 1895/04/23 | |
1895/05/10 | 일본,타이완 총독부 설치 |
대만총독부(臺灣總督府) 또는 타이완 총독부(중국어: 臺灣總督府/台湾总督府, 일본어: 台湾総督府 (たいわんそうとくふ), 영어: Governor-General of Taiwan)는 일본 제국의 타이완에 대한 식민 통치 기관이다. 중앙 기관 소재지는 타이베이 시(臺北市). 1895년 5월 10일에 설치되었고, 1945년 10월 25일에 폐쇄되었다.
* 날짜 : 1895/05/10 | |
1895/12/26 | 최초로 영화 상영 |
1895년 12월 26일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는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이때 상영된 세계 최초의 영화는 '열차의 도착' 이라는 3분의 짧은 내용의 작품이였다. 이 영화는 아무런 스토리도 없이 단순히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만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지만 19세기후반 사람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래서 이를 본 카페의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고 스크린에서 열차가 올 때 진짜로 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하여 '으악'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고 한다.
* 날짜 : 1895/12/26 | |
1895/12/29 | 제임슨 습격사건 |
제임슨이라는 인물이 수백 명의 무장병을 이끌고 보어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금광지역 트란스발을 공격한 사건. 케이프 식민지 총리인 세실 로즈가 사직하고 트랜스발 금광의 보어인 지배력 강화, 보어 전쟁(1899–1902)의 원인이 되었다.
* 날짜 : 1895/12/29 ~ 1896/01/02 | |
1896 | 벨 에포크 |
벨 에포크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 말・에드워드 시대(Edwardian era)와, 독일의 빌헬름 시대와 대응하는 프랑스의 시대를 의미하나, 대부분의 유럽 국가의 이 무렵 시절을 말할 때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유럽 문명권의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겠다. 이 시기는 영국 자유무역 제국주의의 정점을 보여 줬다. 영국뿐 아니라 전체 서구 세계 자산계급의 부와 권력은 전례 없는 고점에 이르렀다.
* 날짜 : 1896 ~ 1914/07/28 | |
1896/02/11 | 아관파천 |
아관파천(俄館播遷)은 1896년 2월 11일부터 1897년 2월 20일까지 1년간 조선 고종과 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어가를 러시아 제국 공사관으로 옮겨서 거처한 사건이다.
* 날짜 : 1896/02/11 ~ 1897/02/20 | |
1896/03/08 | 세계 최초의 가솔린 차량 |
1986년에는 엔진을 장착한 4륜 자동차(다임러 1호)가 달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가솔린엔진 시대의 개막이었다.
* 날짜 : 1896/03/08 | |
1896/04/06 | 제1회 아테네 올림픽 개최 |
1896년 하계 올림픽(영어: 1896 Summer Olympics, Games of the I Olympiad)은 393년을 마지막으로 끝난 고대 올림픽 대회 이후 열린 첫 번째 근대 올림픽 대회다. 1896년 4월 6일부터 4월 15일까지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되었다.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가 올림픽의 발상지여서 첫 근대 올림픽이 열리기에 적당한 장소였던 아테네는 1894년 6월 23일에 파리에서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쿠베르탱이 주관한 올림픽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개최지 자격을 얻었다. 또한 하계 올림픽이 진행 되는 동안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가 조직되었다.
* 날짜 : 1896/04/06 | |
1896/06/02 | 마르코니 무선전신 |
1896년 6월 2일 영국 정부로부터 무선전신(wireless telegraph) 특허를 획득한다. 나아가 영국 정부는 마르코니의 작업을 후원했다. 중상주의와 해외 식민정책으로 많은 수의 선박과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던 영국 정부는 효율적인 통신체계 수단으로서 마르코니의 무선전신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 날짜 : 1896/06/02 | |
1896/06/03 | 청러 밀약 |
1896년 청러밀약으로 중동철도(시베리아 철도를 만주까지 연장)와 뤼순ㆍ따렌 항구 조차권등 만주의 각종 이권이 러시아에게 이양되게 되었다. 나아가 이를 둘러싼 영ㆍ미ㆍ일과 러시아의 대립이 러일전쟁으로 나타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 날짜 : 1896/06/03 | |
1897 | 시베리아철도 부분 개통 |
1891~1892년에 걸쳐 착공하고 1897년 부분적으로 개통되었다.
* 날짜 : 1897 | |
1897 | 브라운,브라운관 발명 |
브라운관은 전기신호를 전자빔의 작용에 의해 영상ㆍ도형ㆍ문자 등의 광학적인 상으로 변환하여 표시하는 특수진공관으로 브라운에 의하여 발명되었다. 이는 텔레비전, 진단기, 계측기 등 많은 부문에 적용되었다.
* 날짜 : 1897 | |
1897 | 일본,금본위제 실시 |
청일 전쟁에서 청나라를 이김으로써 일본은 타이완을 점령했고, 그 배상금을 기초로 하여 금본위제(金本位制)를 수립,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정비하였다.
* 날짜 : 1897 | |
1897/08/29 | 제1차 시오니스트회의 |
시오니즘에 대해 정치적 성향을 부여한 인물은 오스트리아의 저널리스트인 T.헤르츨이었다. 그의 유토피아적인 정치소설 《유대인 국가》(1896)와 《오래 된 새로운 땅》(1903)은 시오니즘을 촉진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897년 헤르츨은 스위스의 바젤에서 제1차 시오니스트회의를 소집하여 바젤계획안을 작성하였다. 이 시오니스트회의는 1901년까지 5차례 개최되었다.
* 날짜 : 1897/08/29 | |
1897/10/12 | 대한제국 선포 |
대한제국(大韓帝國)은 1897년(광무 원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통치하였던 국가이다. 대한제국은 대한민국의 시작을 알리는 근대 국가이다.
* 날짜 : 1897/10/12 | |
1898/03/06 | 독일,칭다오 조차 |
키아우초우(Jiaozhou Bay)는 독일 제국이 중국 북부의 산둥성 산둥 반도 남해안의 자오저우 만에 조차하고 있던 조차지이다. 자오저우(현재의 자오저우 시)의 남쪽으로 하트 모양으로 들어간 자오저우 만의 수면 전역과 만의 입구의 양쪽의 반도가 있는 곳이다. 1898년부터 1914년까지 독일 제국의 조차지가 있었던 곳이다.
* 날짜 : 1898/03/06 | |
1898/03/26 | 영국-독일 해군력 경쟁 시작 |
영국-독일 해군력 경쟁은 20세기 초반 영국과 독일 제국 사이에 있었던 군함 건조 경쟁을 의미한다.
* 날짜 : 1898/03/26 | |
1898/04/21 | 미국-스페인 전쟁 |
미국-스페인 전쟁(Spanish-American War) 또는 미서전쟁(美西戰爭)은 1898년 4월부터 8월까지 쿠바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스페인 간에 쿠바와 필리핀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1898년 12월 10일, 파리 조약은 쿠바와 필리핀, 푸에르토 리코, 괌의 지배권을 미국에게 넘겨주었다.
* 날짜 : 1898/04/21 ~ 1898/08/13 | |
1898/06/11 | 청,변법자강 운동 |
변법자강 운동은 캉유웨이가 추진한 정치 운동이었다. 캉유웨이의 변법자강책에는 과거 제도 개혁, 조세 개혁, 탐관오리 혁파, 각종 경제 개혁 등이 담겨 있었고, 무술변법을 통해 이중 일부를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변법은 광서제의 미약한 권위에 의존했고, 결국 서태후 등 반개혁파에게 패배해 외국으로 망명을 가는 결과로 끝이 난다. 이로 인해 무술변법은 '100일 변법'이라고도 불린다.
* 날짜 : 1898/06/11 ~ 1898/09/21 | |
1898/07/07 | 미국, 하와이 합병 |
미국인을 중심으로 한 미국과 합병운동은 'Newlands Resolution'라 하여 미국에 하와이를 합병해달라는 요청을 하였고, 결국 1897년 6월 16일 매킨리 미국 대통령과 하와이 공화국이 합병조약을 체결하도록 하였고 이 조약을 미국 의회가 1898년 7월 7일에 비준하였다. 조약이 효력을 발생한 날짜가 1900년 4월 30일이다.
* 날짜 : 1898/07/07 | |
1898/09 | 파쇼다 사건 |
1898년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과정에서 영국의 종단정책(縱斷政策)과 프랑스의 횡단정책(橫斷政策)이 충돌한 사건. 그러나 이내 프랑스의 양보로 손쉽게 해결되었다.
* 날짜 : 1898/09 | |
1898/12/10 | 미국,괌 통치 |
1898년에는 미국이 미국-에스파냐 전쟁으로 이 섬의 통치권을 빼앗았다. 마리아나 제도 북부에 있는 섬들이 독일을 거쳐 일본에 넘겨질 동안, 괌은 미국에서 필리핀으로 오고 가는 배들의 정거장 구실을 하게 되었다.
* 날짜 : 1898/12/10 | |
1899/02/04 | 필리핀-미국 전쟁 |
미국과 필리핀의 전쟁으로 미국-필리핀 전쟁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충돌은 스페인-미국 전쟁 이후에 필리핀을 획득한 미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필리핀 제1공화국의 항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날짜 : 1899/02/04 ~ 1902/07/02 | |
1899/05/18 | 제1차 만국평화회의 |
만국평화회의(萬國平和會議) 또는 헤이그 회담(Hague Conventions)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1899년, 1907년에 2차례 열린 국제 평화 회담이다. 1899년, 1907년의 헤이그 회담은 전쟁 행위를 천명한 최초의 다국적 조약이었으며, 대체로 리버 법전을 기반으로 했다. 이 법안은 남북전쟁 중인 1863년 4월 24일 미국의 북부분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서명하고 제출한 법이었다.
* 날짜 : 1899/05/18 | |
1899/10/11 | 제2차 보어 전쟁 |
보어전쟁(Boer War, Anglo Boer War) 또는 앵글로 보어전쟁은 영국과 당시 남아프리카지역에 정착했던 네덜란드계 보어족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 날짜 : 1899/10/11 ~ 1902/05/31 | |
1899/11/02 | 의화단 운동 |
의화단 운동(義和團運動) 또는 의화단의 난은 청나라 말기 1899년 11월 2일부터 1901년 9월 7일까지 산둥 지방, 화베이 지역에서 의화단(義和團)이 일으킨 외세 배척 운동이다. 산둥 지역에서는 일찍이 의화권(義和拳)이라는 민간 결사가 생겨나 반외세 운동을 벌이고 있었는데 1897년 독일이 산둥성 일대를 점령하자 의화권의 반외세, 반기독교 운동이 격화됐다. 의화권은 다른 민간 자위 조직에 침투해 통합을 이루고는 스스로 의화단이라고 칭했다.
* 날짜 : 1899/11/02 ~ 1901/09/07 | |
1900 | 미국으로 이민 점증 |
1820년대에 약 15만 명, 30년대에 약 60만 명, 40년대에 약 170만 명, 그리고 1850년대에는 약 260만 명으로 증가하며, 절정기인 1900년대에는 약 880만 명이 도항하기에 이른다.
* 날짜 : 1900 | |
1900/07 | 러시아,만주 점령 |
의화단운동 진압전쟁의 와중에서 러시아군은 1900년 7월 만주를 점령한 후 청조 당국에게 만주를 자신의 독점적 지배하에 두기 위한 조약 체결을 강요하였다.
* 날짜 : 1900/07 | |
1900/08/14 | 8개국 연합군 북경 함락 |
8월 13일에 8개국 연합군은 베이징에 입성함으로써 점령하였고, 15일에는 서태후가 시안으로 도주하면서 청나라 수도 베이징은 혼란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연합군은 베이징을 점령한 뒤 3일 간, 의화단 색출을 명분으로 끔찍한 살인, 약탈, 강간 등 범죄를 자행했는데, 희생자의 대부분은 의화단과 전혀 무관한 민간인들이었다.
* 날짜 : 1900/08/14 | |
1901/01/10 | 스핀들톱에서 대형 유전 발견 |
텍사스주 버몬트 스핀들톱에서 대형 유전 발견.
* 날짜 : 1901/01/10 | |
1901/09/07 | 신축조약 |
신축조약(辛丑條約)은 1900년 8월에 8개국 열강 연합군이 의화단 운동을 진압하고, 청나라 베이징을 점령한 다음 이듬해 1901년 9월 7일 열강 세력이 청나라 정부를 압박하여 체결한 불평등 조약을 말한다. 베이징 의정서라고도 한다. 이 조약으로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고, 수도 베이징에 열강 군대가 주둔한 것을 허락하였다.
* 날짜 : 1901/09/07 | |
1901/09/14 | 미국 매킨리 대통령 암살 |
미국 매킨리 대통령 암살당해 부통령 데오도어 루즈벨트가 대통령직 계승.
* 날짜 : 1901/09/14 | |
1902/01/30 | 영일 동맹 |
영일 동맹(英日同盟)은 1902년 1월 30일 러시아의 남하에 대비하여 이해를 함께하던 영국(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과 일본(일본 제국) 양국이 체결한 군사 동맹이다. 1902년 1월 30일 영국 런던에 있는 랜스던(Lansdowne) 후작 저택에서 헨리 페티피츠모리스(Henry Petty-Fitzmaurice) 영국 외무장관과 하야시 다다스 주(駐) 영국 일본 공사가 조인하면서 제1차 영일 동맹이 형성되었다. 1905년 8월 12일을 기해 개정·조인된 조약에 따라 제2차 영일 동맹이 형성되었으며 다시 1911년 7월 13일을 기해 개정·조인된 조약에 따라 제3차 영일 동맹이 형성되었다.
* 날짜 : 1902/01/30 | |
1902/05/20 | 쿠바 독립 |
에스파냐의 식민지였던 쿠바는 미국과 에스파냐의 전쟁 이후 1902년 독립하였지만, 미국자본에 종속된 사탕수수 단일작물재배 경제가 형성되어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 날짜 : 1902/05/20 | |
1902/10/01 | 영국,본국함대 창설 |
1902년 영국은 독일의 해상 침략을 막기 위해 본국함대(Home Fleet)를 창설했다. 영국 해군성은 이 본국함대에 모든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 날짜 : 1902/10/01 | |
1903 | 바그다드 철도 |
독일은 오스만 제국과 합의하여 이미 부설되어 있던 베를린-이스탄불의 철로를 바그다드로 연결하는 협약을 맺고 철도 부설권을 얻어낸다. 이 철도를 바스라 항까지 연결하면 독일은 영국이 제패하고 있는 대서양을 거치지 않고도 바로 페르시아 만을 통해 인도양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계획은 중근동 지역에 지배력을 뻗치고 있던 영국과 카프카스 지역의 세력 변동으로 위협을 느낀 러시아의 반발을 사게 된 것이다.
* 날짜 : 1903 | |
1903/04/19 | 키예프 포그롬 |
키예프 포그롬은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러시아 제국의 키예프에서 일어난 반 유대인 폭동이었다. 미국 유대인들은 대규모의 조직적인 재정 지원을 시작했고 이민을 도왔다. 이 사건은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에 전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헤르츨은 유대인 정착을 위한 우간다 계획을 제안했다.
* 날짜 : 1903/04/19 | |
1903/07 | 러시아 극동대총독 설치 |
러시아 극동대총독 설치.
* 날짜 : 1903/07 | |
1903/08 | 시온 의정서 |
1903년 러시아에서 처음 출판된 이후 여러 언어로 번역되면서 세계 전역으로 확산된 저서로, 추후 반유대주의를 조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위서로 밝혀졌다. 이 문서로 인해 유럽과 미국 사회 내에서 반유대주의에 불을 지폈으며, 홀로코스트와 같은 대량 학살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 날짜 : 1903/08 | |
1903/12/17 | 라이트형제,세계 최초 동력 비행기 |
미국의 라이트형제는 여러 번 비행 실험을 통해 동력비행기 개발에 성공했다. 1903년에 4기통 12마력짜리 엔진을 개조하여 새로 설계, 제작한 활공기에 장착하여 플라이어호를 완성했다. 플라이어호는 1903년 12월 17일 오전 10시 30분에 시속 43km의 맞바람을 받으며 37m를 날아 인류최초 동력비행이 시작되었다.
* 날짜 : 1903/12/17 | |
1904 | 존 플레밍,진공관 발명 |
1904년 영국의 전기공학자 플레밍이 2극 진공관을 발명해 특허를 얻었다. 그는 진공관을 무선전신 신호의 흐름을 조절하는 데 이용하였다.
* 날짜 : 1904 | |
1904 | 루스벨트 계론 |
루스벨트 계론(Roosevelt Corollary)은 미국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TR)가 제2차 베네수엘라 위기(1902년 ~ 1903년) 이후인 1904년 먼로주의를 제국주의적으로 수정한 것이며,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미국의 세계경찰 행세의 역사적 기원이 된다.
* 날짜 : 1904 | |
1904/02/08 | 러일전쟁 |
러일 전쟁은 1904년 2월 8일에 발발하여 1905년 가을까지 계속된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의 전쟁으로, 만주와 한반도에서의 주도권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 날짜 : 1904/02/08 ~ 1905/09/05 | |
1904/04/08 | 영불 협상 |
영불 협상(Entente Cordiale)은 1904년 4월 8일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의 적이었던 독일 제국의 진출을 방지하기 위해 식민지에 관해서 맺은 협상이다.
* 날짜 : 1904/04/08 | |
1905/01/22 | 러시아 혁명 (1905년) |
1905년 러시아 혁명(1905 Russian Revolution)은 1905년에 발생한 피의 일요일 사건을 발단으로 하는 러시아 제국의 혁명이다. 1905년 혁명(Revolution of 1905) 또는 제1차 혁명이라고도 불리며, 제2차 혁명은 ‘2월 혁명’을 가리킨다. 특정 지도자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원인과 목적은 단순한 것은 아니었지만, 반정부 운동과 폭동이 러시아 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전국 총파업, 전함 포템킨의 반란 등으로 최고조에 이르렀지만 헌법 제정과 무력 진압으로 점차 진정되었고, 스톨리핀 총리의 1907년 6월 19일의 쿠데타로 종식되었다.
* 날짜 : 1905/01/22 ~ 1907/07/16 | |
1905/02/20 | 봉천 전투 |
봉천 전투(Battle of Mukden)는 러일 전쟁 당시 1905년 2월 20일부터 3월 10일까지 약 20일간 만주의 봉천 근처에서 마지막이자 가장 치열했던 지상전으로 선양 전투라고도 불린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손꼽히며, 또한 러일 전쟁에서 비교적 가장 결정적인 결과를 도출하게 되는 주요 지상전이다. ‘봉천’(奉天)은 현재 ‘선양’으로 불리고 있으며, 랴오닝 성의 성도이다.
* 날짜 : 1905/02/20 ~ 1905/03/10 | |
1905/03/31 | 제1차 모로코 위기 |
제1차 모로코 위기(First Moroccan Crisis) 또는 탕헤르 위기는 1905년 3월부터 1906년 5월까지 있던 국제 분쟁이다.
* 날짜 : 1905/03/31 ~ 1906/05 | |
1905/08/12 | 제2차 영일동맹 |
일본은 러일전쟁(1904~05)에서 승리하여 한국과 만주로부터 러시아 세력을 축출하였고, 한국에 독자적으로 침투할 수 있는 우선권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유리한 환경 속에서, 일본은 영국과 제2차 영일동맹을 체결하여(1905. 8. 12) 일본의 한국 지배를 외교적으로 보장받았다. 그 내용은, 영국은 일본이 한국에서 가지는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이익을 보장하며, 일본은 영국의 인도 지배 및 국경지역에서의 이익을 옹호하는 조치를 취할 것 등이었다. 결국 영일동맹은 제국주의 열강 간의 상호 협조와 동의를 보장받아 약소국을 침략하는 국제 조약인 셈이었다.
* 날짜 : 1905/08/12 | |
1905/09/05 | 포츠머스 조약 |
포츠머스 조약(Treaty of Portsmouth)은 1905년 9월 5일 미국 뉴햄프셔 주에 있는 군항도시 포츠머스에서 일본제국의 전권외상 고무라 주타로와 러시아 제국의 재무장관 세르게이 비테 간에 맺은 러일전쟁의 강화 조약이다. 미국의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이 조약의 주선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 날짜 : 1905/09/05 | |
1905/07/29 | 가쓰라-태프트 밀약 |
태프트-가쓰라 밀약(Taft-Katsura Secret Agreement) 또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러일 전쟁 직후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과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승인하는 문제를 놓고 1905년 7월 29일 당시 미국 육군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제국 내각총리대신 가쓰라 다로가 도쿄에서 회담한 내용을 담고 있는 대화 기록이다. 이 기록의 내용은 미·일 양국이 모두 극비에 부쳤기 때문에 1924년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 기록에는 서명된 조약이나 협정 같은 것은 없었고, 일본-미국 관계를 다룬 대화에 대한 각서(memorandum)만이 있었다.
* 날짜 : 1905/07/29 | |
1905/11/17 | 을사조약 |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 이 조약의 체결됨으로써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의 보호국으로 전락했다.
* 날짜 : 1905/11/17 | |
1906 | 슐리펜 계획 |
슐리펜 계획은 제1차 세계 대전 벽두인 1914년 8월 프랑스와 벨기에를 침공한 배경이 된 독일의 전쟁계획이다. 1891년에서 1906년 사이에 독일 제국 대장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알프레트 폰 슐리펜 야전원수가 1905년에서 1906년 사이에 수립한 계획으로서, 프랑스 제3공화국을 1개 전선에서 상대하여 승리하기 위한 공세계획이었다.
* 날짜 : 1906 | |
1906/11/26 | 일본, 남만주철도 설립 |
남만주 철도 주식회사(南滿州鐵道株式會社) 또는 단순히 만철(滿鐵)은 러일전쟁의 강화 조약인 포츠머스 조약(1905년)에 의하여 일본이 러시아로부터 양도받은 철도 및 부속지를 기반으로 1906년에 설립되어, 1945년에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중국 동북지방(만주)에 존재한 일본의 국책회사이다.
* 날짜 : 1906/11/26 | |
1907 | 1907년 공황 |
1907년 공황(Panic of 1907 또는 ‘1907년 은행 패닉’, 또는 ‘니커보커 위기’로도 알려져 있다)은 1907년 미국에서 발생한 경제 공황이다. 뉴욕증권거래소 주가는 전년도 최고치에 비해 50%까지 폭락해 다수의 은행과 신탁 회사에 뱅크런이 발생했다. 뉴욕에서 시작된 위기는 곧 미국 전역에 퍼져 많은 주법 은행, 증권 회사 또한 국내 은행이나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자 수는 300만명에서 400만명에 달했다. FRB는 이 공황의 결과로 설립되었다.
* 날짜 : 1907 | |
1907/06/15 | 제2차 만국평화회의 |
1907년에 개최된 제2차 회담은 1899년 협약에서 주요한 진보는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끝났다. 그러나 주요 열강들의 모임은 이후 20세기 국제 협력을 미리 형상화시켰다.
* 날짜 : 1907/06/15 ~ 1907/10/18 | |
1907/07/30 | 1차 러일협약 |
외몽골에 대한 러시아의, 조선에 대한 일본의 특수 권익 확인
* 날짜 : 1907/07/30 | |
1907/08/31 | 영러 협상 |
영러 협상은 1907년 8월 31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영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에 맺은 협상이다. 이 협상은 예전부터 분쟁 지역이었던 페르시아, 티베트, 아프가니스탄 관련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한 협상이다.
* 날짜 : 1907/08/31 | |
1908/05/26 | 중동지역 첫 유전 발견 |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큰 페르시아 남부(오늘날의 이란)의 막대한 유전을 발견한 것은 1908년으로, 영국인 기업가 윌리엄 녹스 다시가 설립한 합동 기업 소속인 굴착기에 의해서였다. 그는 오늘날의 브리티시 석유 회사의 전신인 앵글로-페르시아 석유 회사의 창립자 중 한 명이었다.
* 날짜 : 1908/05/26 | |
1908/07 | 청년 투르크당 혁명 |
1908년, 청년 튀르크당은 당원들과 군대를 동원하여 황제 압둘 하미드 2세에게 압력을 가해 미드하트 헌법 부활을 서명하게 한 동시에 퇴위를 강요했다. 이후 더욱 분명한 근대화가 시작되었으며 기관총, 전투기, 수류탄 등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 날짜 : 1908/07 | |
1908/10/06 | 보스니아 위기 |
보스니아 위기는 190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하면서 촉발된 위기를 가리킨다.
* 날짜 : 1908/10/06 | |
1910/07/04 | 2차 러일협약 |
만주에 대한 러일 양국의 특수 권익 확인
* 날짜 : 1910/07/04 | |
1910/08/29 | 한일병합조약 |
1910년 8월 29일 일본의 강압 아래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일본에 양여함을 규정한 우리 나라와 일본과의 조약이 공포되었다. 이후 실질적인 통치권을 모두 일본에 빼앗겼고, 우리 나라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 날짜 : 1910/08/29 | |
1910/11/20 | 멕시코 혁명 |
멕시코 혁명(Mexican Revolution)은 1910년 멕시코에서 장기집권하던 포르피리오 디아스에 대항하여 프란시스코 I. 마데로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시작된 무장 투쟁이다. 멕시코 혁명은 사회주의, 자유주의, 아나키즘, 인민주의, 토지 균분론 운동 등 다양한 사상이 활동하였다. 혁명은 체제에 대한 반란에서 시작하여 여러 편이 갈린 내전으로 발전하였다. 대립이 계속되다 1917년 멕시코 헌법이 통과되었다. 멕시코 혁명은 대개 1920년까지 지속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1920년대에도 산발적으로 소요가 이어졌다.
* 날짜 : 1910/11/20 | |
1911 | 스탠더드 오일 해체 |
1911년에 미국의 반트러스트법(반독점법) 위반으로 인해 저지스탠더드오일(엑슨), 캘리포니아스탠더드오일(셰브런), 뉴욕스탠더드오일(모빌) 등 34개의 독립회사로 해체되었다.
* 날짜 : 1911 | |
1911/04 | 제2차 모로코 위기 |
제2차 모로코 위기(1911년)는 모로코에서 지역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1911년 7월 1일 독일이 모로코의 아가디르 항(港)에 전함 '판터호'를 파견하면서 발생했다. 독일은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나, 사실은 프랑스를 위협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 날짜 : 1911/04 ~ 1911/11/04 | |
1911/05/21 | 시우닫 후아레스 조약 |
1910년에 발생한 멕시코혁명은 20세기 중남미 역사의 커다란 한 획을 장식하고 있다. 혁명군의 드센 공세 앞에 뽀르피리오의 연방군은 무기력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1911년 5월 21일 시우닫 후아레스 조약(Tratado de Ciudad Juárez)이 체결됨으로써 마데로의 혁명은 성공하게 되고 같은 해 11월 6일 마데로는 대통령 직에 취임한다.
* 날짜 : 1911/05/21 | |
1911/07/13 | 제3차 영일동맹 |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인 1921년 워싱턴 회의에서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4개국이 체결한 조약이 성립되면서 폐기되었으며 1923년 8월 17일 영일 동맹은 공식 폐기되었다.
* 날짜 : 1911/07/13 | |
1911/09/29 | 이탈리아-터키 전쟁 |
이탈리아-터키 전쟁은 이탈리아 왕국과 오스만 제국이 벌인 전쟁으로 1911년 9월 29일부터 1912년 10월 18일까지 벌어진 전쟁이다.
* 날짜 : 1911/09/29 ~ 1912/10/18 | |
1911/10/10 | 신해혁명, 청 멸망 |
신해혁명(辛亥革命)은 1911년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성립시킨 중국의 혁명이다. 이 혁명은 중국사에서 처음으로 공화국을 수립한 혁명이라서 공화혁명이라고도 불린다.
* 날짜 : 1911/10/10 ~ 1912/02/12 | |
1911/12/14 | 아문센, 남극점 도달 |
아문센, 남극점 도달.
* 날짜 : 1911/12/14 | |
1912 | 영국,함정 연료 석유로 전환 |
석유업계의 사활을 건 로비도 작용했지만 처칠이 1912년 함정의 연료를 석탄과 석유 공용으로 바꾸었다.
* 날짜 : 1912 | |
1912/03 | 발칸 동맹 |
발칸 동맹 은 1912년 발칸 반도에 위치한 그리스 왕국, 불가리아 왕국, 세르비아 왕국, 몬테네그로 왕국이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결성한 방위 동맹이다.
* 날짜 : 1912/03 | |
1912/04/11 | 3차 아일랜드 자치법 제안 |
영국의 애스퀴스 총리가 1912년 4월, 하원에서 3차 아일랜드 자치법을 제안하면서 북아일랜드에서의 종교적 갈등이 가속화됨에 따라 복잡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 날짜 : 1912/04/11 | |
1912/04/14 | 타이타닉호 침몰 |
영국 사우샘프턴항(港)에서 뉴욕항으로 향하는 처녀항해 중,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0분 뉴펀들랜드 해역에서 부류빙산(浮流氷山)과 충돌하여 2시간 40분 만에 침몰하였다. 이 사고로 승선자 2,208명 중 1,513명의 희생자를 내어 세계를 놀라게 한 사상 최대의 해난사고였다.
* 날짜 : 1912/04/14 | |
1912/07/08 | 3차 러일협약 |
내몽골 분할
* 날짜 : 1912/07/08 | |
1912/10/08 | 발칸 전쟁 |
발칸 전쟁은 1912년에서 1913년까지 발칸 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이다. 발칸 동맹(그리스,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세르비아)과 오스만 제국과의 제1차 발칸 전쟁(1912년 10월~ 1913년 5월)과 그 전후 처리에 대한 대립으로 발생한 제2차 발칸 전쟁(1913년 6월~1913년 8월)으로 나뉜다.
* 날짜 : 1912/10/08 ~ 1913/07/18 | |
1912/12/08 | 빌헬름 2세,전쟁 회의 |
이 비밀회의는 빌헬름 2세의 즉흥적인 판단에 의해 총리를 포함한 민간 출신 내각 요인들을 배제한 가운데 군 수뇌부만을 소집해 실시한 회의였다. 하지만 이를 기점으로 빌헬름 2세는 전쟁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였고 황제의 인식을 접한 군 수뇌부는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를 가속화할 수밖에 없었다.
* 날짜 : 1912/12/08 | |
1913 | 포드시스템의 시작 |
1903년에 설립된 포드자동차회사에서 H.포드에 의해 실시된 대량생산 시스템.
* 날짜 : 1913 | |
1913/02/09 | 멕시코,비극의 열흘 |
비극의 열흘은 1913년 2월 9일~2월19일, 멕시코 혁명의 과정에서 일어난 프란시스코 I. 마데로군과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조카인 펠릭스 디아스의 반란군 사이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이 과정에서 빅토리아노 우에르타는 마데로의 연방군 총사령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란군에 동참해 이후 권력을 잡게 되었다.
* 날짜 : 1913/02/09 | |
1913/12/23 | FRB 창설 |
연방 준비 제도(Federal Reserve system)는 미국의 중앙은행이다. 1913년 연방 준비법에 의해 설립되었다.
* 날짜 : 1913/12/23 | |
1914/06/28 | 사라예보 사건 |
사라예보 사건은 1914년 6월 28일 현재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인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폰 외스터라이히에스테 대공과 조피 초테크 폰 호엔베르크 여공작 부부가 청년 보스니아라는 민족주의 조직에 속한 18세의 청년이자 대학생이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 날짜 : 1914/06/28 | |
1914/07/05 | 독일 황제의 백지수표 |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에 전쟁 지지여부 확인…빌헬름 2세 “무조건 지지”
* 날짜 : 1914/07/05 | |
1914/07/23 |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최후통첩 |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최후통첩을 작성함에 있어 처음부터 세르비아가 수용하지 못할 조건들을 구성하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두 차례에 걸친 발칸전쟁에서 보여준 러시아의 외교력 부재와 독일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발칸반도에서 제3차 발칸전쟁을 통해 세르비아를 완전히 군사적으로 굴복시킴과 동시에 발칸에서의 러시아 영향력을 영구히 제거하려 하였다.
* 날짜 : 1914/07/23 | |
1914/07/28 | 오스트리아-헝가리,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 |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러시아는 그 하루 뒤 오스트리아에 맞서 부분 동원력을 내린데 이어, 그 이틀 뒤에는 독일에 맞서 총동원령을 내렸다.
* 날짜 : 1914/07/28 | |
1914/08/01 | 독일,러시아에 선전포고 |
러시아가 총동원령을 내림에 따라 독일의 슐리펜 계획은 근본부터 흔들렸다. 독일은 프랑스와 러시아의 협공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병력을 소집한 뒤, 잘 조직된 철도망을 활용해 프랑스나 러시아 중 한 나라를 먼저 제압해야 했다. 독일은 8월 1일 총동원령을 내린 뒤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이에 프랑스도 러시아의 기대에 부응해 총동원령을 내렸다.
* 날짜 : 1914/08/01 | |
1914/08/02 | 오스만-독일 동맹 |
독일은 오스만 제국과 1914년 8월 2일 이스탄불에서 비밀동맹협정을 맺었다. 거의 3개월 간 협정체결의 비밀이 유지되는 가운데, 오스만 군대는 참전준비를 하고 있었고, 이스탄불 해협은 폐쇄되었다.
* 날짜 : 1914/08/02 | |
1914/08/02 | 독일,룩셈부르크 점령 |
룩셈부르크가 독일 제국에 점령됨.
* 날짜 : 1914/08/02 | |
1914/08/03 | 독일,프랑스에 선전포고 |
독일은 프랑스를 먼저 공격하기로 하고 하루 뒤인 8월 2일, 벨기에 측에 프랑스로 진격하는 통로를 열라고 요구했다. 독일은 8월 3일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한 뒤 슐리펜 계획에 따라 벨기에를 침략했다.
* 날짜 : 1914/08/03 | |
1914/08/04 | 성내평화정치 선언 |
성내평화정치(城內平和政治, Burgfriedenspolitik)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사회민주당(SPD)을 비롯한 정당들이 취한 노선이다. 노동조합들은 파업을 중단하였고, SPD는 국가의회에서 전쟁채권 발행에 동의했다. 다른 정당들도 정부 내각과 전쟁을 비판하지 않았다.
* 날짜 : 1914/08/04 | |
1914/08/04 | 괴벤과 브레슬라우 추격 |
괴벤과 브레슬라우의 추격은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영국 지중해 함대가 독일의 전함 괴벤과 경순양함 브레슬라우 요격하려 했지만 실패한, 지중해에서 발생한 해군 작전이었다.
* 날짜 : 1914/08/04 ~ 1914/08/10 | |
1914/08/04 | 독일의 벨기에 침공 |
독일의 벨기에 침공은 제1차 세계 대전 서부 전선에서 1914년 8월 4일에 시작된 전역이다. 7월 24일 벨기에는 전쟁 발발 시 중립을 유지한다고 밝히고 7월 31일 군사를 총동원했다. 8월 2일 독일은 벨기에에 최후통첩을 보내 통로를 요구하고 룩셈부르크를 점령한다. 이틀 후 벨기에는 최후통첩을 거부했고 영국은 벨기에에 군사지원을 보장했다. 8월 4일 독일은 벨기에에 선전포고를 하고 국경을 넘어 첫 전투(리에주 전투)가 시작했다.
* 날짜 : 1914/08/04 ~ 1914/10/31 | |
1914/08/04 | 영국,독일에 선전포고 |
독일이 벨기에의 중립성을 훼손하자 영국도 이를 수호하는 차원에서 전쟁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영국은 8월 4일,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다.
* 날짜 : 1914/08/04 | |
1914/08/06 | 1914년 비행선 첫 전략폭격 |
1914년 8월 6일 새벽, 벨기에 리에주 상공. 어두운 하늘에 나타난 거대한 비행선이 폭탄을 뿌렸다. 독일은 침공 4일이 지나도록 벨기에군의 완강한 저항에 막히자 육군 소속 비행선 제펠린 21호(제식명은 Z-Ⅵ)를 띄워 리에주 요새 부근에 대한 무차별 폭격에 나섰다. 첫 야간 공습의 희생자는 9명. 모두 민간인이었다.
* 날짜 : 1914/08/06 | |
1914/08/07 | 국경 전투 |
국경 전투(Battle of the Frontiers)는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서부 전선 로렌과 아르덴에서 벌어진 일련의 전투들을 일컫는 말이다. 국경 전투로 인해 독일 제국이 이기고 프랑스의 제17계획은 실패했다.
* 날짜 : 1914/08/07 ~ 1914/09/06 | |
1914/08/08 | 영국,국토방위법 통과 |
1914년 8월, 전쟁이 시작된 직후 의회는 국토방위법(Defence of the Realm Act, DOR)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다음 두 가지 근본적인 일을 하고자 했다. 1) 영국이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2) 영국국민이 전투를 하고 전쟁노력을 지원하기에 적절한 상태에 있도록 한다.
* 날짜 : 1914/08/08 | |
1914/08/15 | 파나마운하 개통 |
파나마 운하는 파나마의 지협을 가로질러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길이 82킬로미터의 운하이다. 1999년 미국 정부에서 파나마 정부로 소유권이 반환되었다.
* 날짜 : 1914/08/15 | |
1914/08/23 | 일본,독일에 선전포고 |
8월 15일, 일본은 독일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내용은 독일군이 중국과 일본 해역에서 철수하고 칭다오를 일본에게 넘겨주라는 것이었다. 독일은 무시했다. 다음날 일본정부는 육군 보병 18사단의 카미오 미쓰오미(神尾光臣) 중장에게 칭다오 공격을 위한 동원령을 내렸다. 8월 23일 최후통첩의 사한이 만료되자, 일본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 날짜 : 1914/08/23 | |
1914/08/26 | 타넨베르크 전투 |
타넨베르크 전투(Battle of Tannenberg)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 제국을 침공한 러시아 제국이 독일 제국에게 참패한 전투이다. 1914년 8월 26일에서 8월 30일까지 벌어졌고, 러시아 2군은 거의 전멸 지경에 이른다.
* 날짜 : 1914/08/26 ~ 1914/08/30 | |
1914/08/28 | 헬리골란트-바이트 해전(1914) |
전투는 1914년 8월 28일 새벽, 키스 제독의 영국 잠수함 3척이 헬리골란트 서쪽 해상에서 부상해 독일 구축함을 유인하며 시작되었다. 일상적인 작전을 계속하던 독일 초계함대가 해상에서 갑자기 나타난 물체를 식별하기 위해 서쪽으로 이동하자 북쪽 해상에 매복중이던 타이어휫 제독의 순양함대가 이를 급습해 그 후방을 차단했다. 이 기습으로 앞장섰던 독일의 구축함 1척이 격침되었고, 이어 독일의 경순양함 2척이 돌격하였으나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격퇴되었다.
* 날짜 : 1914/08/28 | |
1914/09/06 | 제1차 마른강 전투 |
제1차 마른 강 전투(1914년 9월 6일 ~ 9월 12일)는 파리 시 근처 마른 강 유역에서 프랑스군이 독일 제국군을 저지한 전투로, 이 전투로 프랑스는 수도를 잃을 큰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 전투 후 전쟁의 조기 종결에 대한 독일의 희망은 무산되었고 참호전으로 이어지는 시작점이 되었다.
* 날짜 : 1914/09/06 ~ 1914/09/12 | |
1914/09/07 | 제1차 마수리안 전투 |
독일 8군은 숨 돌릴 새 없이 굼비넨에 머무르고 있던 러시아 1군을 마수리안 호수로 밀어붙여 다시 한 번 대 포위를 완성하였다. 여기서도 러시아는 12만의 병력과 500문의 대포를 잃었고 6만은 포로가 되면서 처참히 붕괴되었다. 이를 탄넨베르크 전투와 구별하여 1차 마수리안 전투(Battle of 1st Masurian)라고도 한다. 이로써 러시아 북서전선군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 날짜 : 1914/09/07 ~ 1914/09/14 | |
1914/10/19 | 제1차 이프르 전투 |
벨기에의 이프르(Ypres)에서는 4년 동안 무려 5차례나 격전이 벌어졌다. 그 중 1914년 가을에 있었던 제1차 이프르 전투(First Battle of Ypres)는 1차대전의 상징인 참호전을 고착화시킨 역사적인 전투였다.
* 날짜 : 1914/10/19 ~ 1914/11/22 | |
1914/11/01 | 코로넬 해전 |
1차 세계 대전중의 코로넬 해전(Battle of Coronel)은 칠레 중부 코로넬 앞바다에서 1914년 11월 1일 일어났다. 독일 제국 해군의 막시밀리안 폰 스페 해군 중장이 이끄는 동양 함대는 영국 해군의 크리스토퍼 크래독 해군 소장이 지휘하는 남대서양 함대에 승리하였다.
* 날짜 : 1914/11/01 | |
1914/11/03 | 탕가 전투 |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아프리카 최초의 전투로서, 고원지대에 위치한 독일령 항구도시 탕가(Tanga)는 요충지였다. 1914년 11월 5일, 영국군과 인도 용병 8000명, 독일군과 탄자니아 원주민 800명의 전투로 독일의 대승이었다.
* 날짜 : 1914/11/03 ~ 1914/11/05 | |
1914/11/07 | 칭다오 전투 |
칭다오 전투(Siege of Tsingtao)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이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면서 영국군, 이탈리아군과 연합으로 중국 칭다오에 머물고 있던 독일*오스트리아군을 침략해 몰아낸 사건을 말한다. 이 전투로 일본은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공로를 인정받게 되었다. 후에 칭다오는 일본의 조차지가 되었고, 이는 5·4 운동이 일어나는 원인이 된다.
* 날짜 : 1914/11/07 | |
1914/11/14 | 오스만, 연합국에 지하드 선언 |
1914년 11월, 오스만이 독일편에서 전쟁에 가담했다. 오스만은 러시아의 보스포루스 해협 장악을 막고, 유럽 내에서 다시 입지를 확보하고자 했다.
* 날짜 : 1914/11/14 | |
1914/12/08 | 포클랜드 해전 |
포클랜드 해전 또는 포클랜드 섬 해전은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인 1914년 12월 8일 남태평양의 포클랜드 제도 인근에서 일어난 독일 제국해군과 영국 해군 간의 해전을 의미한다. 11월 1일 영국이 코로넬 해전에서 패배한 이후, 대형 함단이 추격하여 독일 순양함 전대를 파괴하게 된다.
* 날짜 : 1914/12/08 | |
1914/12/20 | 제1차 샹파뉴 전투 |
실지(失地) 회복을 열망한 프랑스군은 1915년 2월 중순경부터 샹파뉴 지방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무려 24만 명의 병력손실만 입은 채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영국군 역시 3월 초에 시도한 기습공격이 초반에는 성공하는 듯했으나 독일군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좌절되고 말았다. 이제 전쟁은 점점 더 교착상태로 빠졌다.
* 날짜 : 1914/12/20 ~ 1915/03/17 | |
1914/12/22 | 사리카미스 전투 |
사리카미스 전투(Battle of Sarikamish)는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에 대해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에 패배한 오스만 제국의 군대들은 그에 대한 분을 풀기 위해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을 자행하였다.
* 날짜 : 1914/12/22 ~ 1915/01/17 | |
1914/12/25 | 크리스마스 정전 |
크리스마스 정전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서부 전선의 여러 곳에서 있었던 비공식적 정전이다.
* 날짜 : 1914/12/25 | |
1915/01/08 | 일본, 21개조 요구 |
21개조 요구(Twenty-one Demands)는 1915년 1월 8일 제1차 세계 대전 중 일본 제국이 중국에 대해 요구한 21가지 특혜조건을 말한다.
* 날짜 : 1915/01/08 | |
1915/01/24 | 도거뱅크 해전 |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1월 24일 영국과 독일의 함대 사이에 벌어졌던 해전. 24일 오전의 약 6시간에 걸친 이 해전에서 영국함대는 독일함대를 격파하였다.
* 날짜 : 1915/01/24 | |
1915/02/04 | 무제한잠수함전 |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적국, 특히 영국을 공격하기 위하여 취한 해전전술. 독일은 1915년 초부터 잠수함으로 영국에 대한 통상(通商) 파괴작전을 개시하였으며 영국은 이에 대해 해상봉쇄를 감행하여 맞섰다.
* 날짜 : 1915/02/04 | |
1915/02/07 | 제2차 마수리안 전투 |
동부전선에서 공세를 이어가던 독일은 1915년 2월 제2차 마수리아 호수 전투에서 러시아 군을 격퇴하며 동프로이센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 날짜 : 1915/02/07 ~ 1915/02/22 | |
1915/02/17 | 갈리폴리 전역 |
갈리폴리 전역 또는 다르다넬스 전역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오스만 제국 다르다넬스 해협의 겔리볼루 반도(갈리폴리 반도)에서 벌인 일련의 상륙 전투이다. 연합군은 1915년 2월 19일과 2월 25일, 3월 25일에 각각 다르다넬스 해협의 터키군 포대를 포격했으나 터키군의 반격과 기뢰 등으로 인해 3척의 함대가 격침되고, 3척이 대파되었다.
* 날짜 : 1915/02/17 ~ 1916/01/09 | |
1915/04/22 | 제2차 이프르 전투 |
제2차 이프르 전투는 제1차 세계 대전 서부 전선에서 발생한 전투로 독일군이 독가스를 처음 쓴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예전 식민지 부대(캐나다 제1사단)이 유럽에서 처음으로 유럽 열강(독일)을 이긴 전투다.
* 날짜 : 1915/04/22 ~ 1915/05/25 | |
1915/04/25 | 연합군, 갈리폴리 상륙 |
갈리폴리 상륙작전 실패로 대영제국은 20만 5천 명의 사상자와 실종자, 병사자를 냈으며 프랑스도 4만 7천 명의 손실을 입었다. 터키 측의 피해는 25만 명에 달했다. 갈리폴리에서의 실패로 오스트레일리아인들에게는 영국인들의 무능에 대한 비통함이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 날짜 : 1915/04/25 | |
1915/04/26 | 런던 조약 (1915년) |
런던 조약은 1915년 4월 26일 삼국 협상(영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과 이탈리아 왕국 사이에 체결된 비밀 조약이다. 이탈리아는 이 조약에 서명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연합국 진영에 참전하게 되었고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의 보스포루스 해협 및 마르마라 해, 그리고 다르다넬스 해협 주변의 임브로스 섬과 테네도스 섬 장악을 공식적으로 용인했다.
* 날짜 : 1915/04/26 | |
1915/05/02 | 고를리체-타르누프 전투 |
동부전선에서 공세를 이어가던 독일은 1915년 2월 제2차 마수리아 호수 전투에서 러시아 군을 격퇴하며 동프로이센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여전히 폴란드 남부를 장악한 채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독일군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기위해 고를리체-타르누프 공세를 결정한다. 공세는 포병의 공격준비사격과 함께 시작됐다. 허약하기 그지없던 러시아의 방어선은 독일의 집중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진다. 독일은 고를리체-타르누프 공세를 성공시킴으로서 허약한 오스트리아-헝가리를 러시아로부터 보호하는데 성공한다.
* 날짜 : 1915/05/02 ~ 1915/06/22 | |
1915/05/07 | 루시타니아호 침몰 |
여객선이 U보트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하면서 미국이 전쟁에 개입할 구실을 주다.
* 날짜 : 1915/05/07 | |
1915/05/23 | 이탈리아,오스트리아-헝가리에게 선전포고 |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부는 양면전쟁에 대한 부담으로 이탈리아를 중립으로 묶어두기 위해서 협상을 진행했고, 프랑스령 튀니지와 미회수된 이탈리아의 일부를 할양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협상국은 이탈리아에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고, 이탈리아는 1915년 4월 26일 협상국 편으로 뛰어들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선전포고를 선언하고 삼국 동맹을 파기했다.
* 날짜 : 1915/05/23 | |
1915/05/27 | 오스만,아르메니아인 강제 이주령 |
1915년까지 터키 동쪽 끝 접경지역에선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 해 봄, 아르메니아 인들은 국경 넘어 정교회 동족들과 함께 러시아-아르메니아 자치구를 만들고자 했다. 오스만 제국은 이를 반란으로 보고, 이런 움직임을 보인 아르메니아 주민들에 대해 추방령을 내렸다.
* 날짜 : 1915/05/27 | |
1915/06/23 | 제1차 이손초 전투 |
제1차 이손초 전투는 이탈리아 전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이탈리아 왕국 육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 간 벌어진 전투이며, 1915년 6월 23일부터 7월 7일까지 벌어졌다. 이탈리아군이 전투에서 2대 1의 수적 우세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군의 공세는 실패했다. 이손초 강(현 슬로베니아의 소차 강)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이탈리아 왕국의 국경지대이다.
* 날짜 : 1915/06/23 ~ 1915/07/07 | |
1915/07 | 맥마흔 선언 |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 10월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A.H.맥마흔이 전후 아랍인의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기로 약속한 선언.
* 날짜 : 1915/07 ~ 1916/03 | |
1915/07/09 |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의 항복 |
독일령 남서아프리카에서의 1차 세계대전 중 마지막 전투인 오타비 전투가 1915년 7월 1일에 벌어졌고 그 결과 보타는 리터 소령이 이끌던 독일군을 궤멸시켰다. 결국 1915년 7월 9일에 독일령 남서아프리카 보안군의 마지막 사령관인 빅터 프랑크 중령은 코랍 지역에서 항복하였다.
* 날짜 : 1915/07/09 | |
1915/09/05 | 짐머발트 운동 |
짐머발트 운동(Zimmerwald Conference)은 유럽 사회주의자들의 제1차 세계대전 반전운동이다. 1915년 9월 스위스 짐머발트에서 개최된 짐머발트 대표자회를 시작으로, 1916년 4월 키엔탈 대표자회(제2차 짐머발트), 1917년 9월 스톡홀름 대표자회(제3차 짐머발트)까지 세 차례의 대표자 회담을 거쳐 선언문과 결의안들을 발표했다.
* 날짜 : 1915/09/05 | |
1915/09/25 | 제2차 샹파뉴 전투 |
9월 25일 마침내 연합군의 추계공세가 개시되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대대적인 선제 포격 후에 보병들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후 두고두고 말이 많았지만 제1차 대전의 서부전선에서는 사실 이 방법 외에 구사할 전술이 없었다. 수세적인 입장이었던 독일은 방어선을 2중, 3중으로 더욱 강화해 놓은 상태였다. 연합군은 우세한 병력을 바탕으로 최대 4km까지 전진하였지만 이미 2차 방어 진지로 대피해 방어에 나선 독일의 반격으로 인해 곧바로 진격을 멈추어야 했다.
* 날짜 : 1915/09/25 ~ 1915/11/06 | |
1915/10/14 | 불가리아,세르비아에 선전포고 |
불가리아 왕국은 1915년 10월 14일 본래 친 러시아, 반 오스만 국가였으나 제2차 발칸 전쟁의 패배에 따른 원한을 갚기 위해서 세르비아에다 선전포고를 하면서 동맹국에 가담했다.
* 날짜 : 1915/10/14 | |
1915/12/20 | 갈리폴리에서 연합군 철수 |
갈리폴리에서 영국 및 ANZAC 부대의 주요 철수. 1916년 1월, 굴욕을 감수하고 연합군이 병력을 철수시킴으로 갈리폴리를 적신 피가 멈추었다. 결과는 너무 참혹하여 작전에 투입 된 총 40만 연합군중 무려 25만의 사상자를 내었는데, 이는 영국군 전투사 최대의 치욕이었다.
* 날짜 : 1915/12/20 | |
1916 | 시베리아 철도 완공 |
시베리아 철도를 건설하는 안은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철도가 완성된 후인 1859년에 이미 생겨났다. 이 철도는 극동지방의 군사적 의의의 증대, 식민, 대중국무역 등을 목적으로 계획되었다. 이 계획은 1850~60년대에 최초로 시작되었다. 예정선은 시베리아 가도를 따라 건설하기로 계획하고 1887년에 조사해, 1891~92년에 걸쳐 착공하고 1897년 부분적으로 개통되었다.
* 날짜 : 1916 | |
1916/01/05 | 몬테네그로 전투 |
1916년 1월 세르비아가 패배한 후, 몬테네그로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의해 정복되었고, 왕은 이탈리아, 프랑스로 도망쳤다. 정부는 보르도로 망명하였다.
* 날짜 : 1916/01/05 ~ 1916/01/17 | |
1916/01/27 | 영국 징병제 |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때 영국이 이 전쟁에 참전하였는데 초기에는 자원입대자로 병력을 충원했지만 전쟁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해 많은 병력이 필요하자 영국 정부는 1916년 1월에 병역법(Military Service Act)을 제정·시행해 만 18세부터 만 40세 사이의 영국인 남성을 대상으로 병역의무를 부과함으로 영국에서 징병제가 실시되기 시작했다. 이 징병제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에서만 실시되었으며, 아일랜드는 당시 정치적 상황 때문에 징병을 실시하지 않았다.
* 날짜 : 1916/01/27 | |
1916/02/06 | 다다이즘 |
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스위스에 망명 온 작가들이 일으킨 반 문명, 반 합리주의 예술 운동으로, 전쟁의 살육과 파괴에 대한 증오와 냉소를 기본 정신으로 하여, 모든 문화적 가치, 전통적 가치, 이성에 대한 신뢰를 부정하며 예술 형식의 파괴와 부정을 주장하였다. 다다는 서구의 문학과 각종 예술성 에 있던 무정부주의적인 반항심의 형태를 보였다.
* 날짜 : 1916/02/06 | |
1916/02/21 | 베르됭 전투 |
베르됭 전투(Battle of Verdun)는 1916년 2월 21일에서 동년 12월 18일까지 프랑스와 독일의 육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제1차 세계 대전 서부전선에서 가장 거대한 전투 중 하나였다. 베르됭 전투는 총 303일간 계속되었으며, 인류사상 가장 길고 가장 끔찍한 소모전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 날짜 : 1916/02/21 ~ 1916/12/18 | |
1916/03/09 | 독일,포르투갈에 선전포고 |
1916년 영국이 포르투갈에 포르투갈의 항구에서 독일 배들의 나포와 화물 압수 등을 요구하자 독일은 포르투갈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로써 중립국이었던 포르투갈은 중립을 포기하고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 날짜 : 1916/03/09 | |
1916/03/23 | 프랑스 Sussex호 침몰 |
해상봉쇄를 저지해야 할 수밖에 없었던 독일은 또 1916년 3월에 프랑스의 여객선 Sussex 호를 침몰시키고는 황급하게 Sussex Pledge를 1916년 5월 31일에 또 서명하면서 영국도 국제해상 자유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전쟁 참전을 두려워한 독일은 잠수함 전쟁을 일시 중단하였다.
* 날짜 : 1916/03/23 | |
1916/04/24 | 부활절 봉기 |
부활절 봉기(Easter Rising)는 1916년 4월 부활절 주간에 아일랜드인들이 영국에 대항해 일으킨 무장항쟁이다. 부활절 봉기는 아일랜드 공화주의자들의 주도하에 무력을 통해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성취하기 위해 일으켰다. 이 사건은 아일랜드 독립 운동에서 1798년의 '청년 아일랜드인 협회'의 항쟁 이후 가장 중요한 항쟁로 여겨지고 있다.
* 날짜 : 1916/04/24 ~ 1916/04/29 | |
1916/04/29 | 영국,쿠트 공방전에서 항복 |
쿠트 공반전은 1차 세계대전 메소포타미아 전선에서 일어난 전투로 갈리폴리 전투와 함께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대전 중 가장 주요한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반면 영국에 있어서는 굉장히 굴욕적인 사건이었으며 영국의 역사가인 제임스 모리스는 '영국의 군사사에서 가장 비참한 항복'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영국은 메소포타미아 전선에서 6개월 후에나 설욕의 기회를 얻게 된다.
* 날짜 : 1916/04/29 | |
1916/05/16 | 사이크스 피코 협정 |
공식적으로 소아시아 협정(Asia Minor Agreement)으로 알려진 사이크스 피코 협정(Sykes–Picot Agreement)은 러시아 제국의 동의와 함께 대영제국, 프랑스간에 맺어진 비밀 합의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협상국이 오스만 제국을 격파한 이후 중동의 세력권을 나누기 위한 협정이다. 이 조약은 1915년 11월부터 1916년 3월까지 협상했다 1916년 5월 16일에는 조약을 결론지었다.
* 날짜 : 1916/05/16 | |
1916/05/31 | 유틀란트 해전 |
유틀란트 해전(Battle of Jutland, 1916년 5월 31일 ~ 6월 1일)은 독일 제국과 영국의 함대가 1916년 5월 31일 부터 6월 1일 이틀 동안 덴마크의 유틀란트 부근의 북해에서 벌인 해전이다. 이 전투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의 가장 큰 해전이었고, 역사상 유일한 전함간 함대결전이었다.
* 날짜 : 1916/05/31 ~ 1916/06/01 | |
1916/06/04 | 브루실로프 공세 |
브루실로프 공세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알렉세이 브루실로프 장군이 이끄는 러시아군이 벌인 전투로 제1차 대전 중 유일하게 장군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이 공세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은 거의 괴멸당할 지경에 이르렀고 서부 전선의 베르됭 전투에도 영향을 주었다.
* 날짜 : 1916/06/04 ~ 1916/09/20 | |
1916/06/05 | 아랍 반란 시작 |
아랍 반란은 1916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 나라 없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은 아랍인들은 영국 육군의 후원으로 오스만 제국 육군에 맞서 싸웠으며, 육군중령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와 파이살 왕자가 이들을 이끌었다. 결과는 아랍군 및 영국군의 승리로 끝났다.
* 날짜 : 1916/06/05 | |
1916/07/01 | 솜 전투 |
1916년 서부 전선에서 벌어진 솜 전투(Bataille de la Somme)는 전투 첫날 58,000여 명에 달하는 영국군 사상자(그때까지 하루 사상자 기록으로는 최고 기록이었으며 이 중 3분의 1이 전사자였다)로 인해 잘 알려진 전투다. 이 전투는 1916년 7월 1일 아라스와 알메르트 사이 솜강 북쪽 30km에 걸친 전선에서 시작해서 11월 18일까지 계속되었다.
* 날짜 : 1916/07/01 ~ 1916/11/18 | |
1916/07/03 | 4차 러일협약 |
극동에 대한 양국의 특수 권익 확인, 제3국의 중국 지배 저지
* 날짜 : 1916/07/03 | |
1916/07/04 | 코스티우흐누브카 전투 |
유제프 피우수트스키가 이끄는 친동맹국 폴란드 여단이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에 가담하여 코스티우흐누브카(Kostiuchnówka, 현 우크라이나의 코스튜흐니우카)에서 2~3배에 이르는 러시아군을 상대로 선전하지만 폴란드와 협력하던 헝가리군이 졸전하면서, 단 3일 만에 거의 1/3에 이르는 대 피해를 입으며 결국 패배했다. 이 폴란드 여단은 후에 폴란드가 독립하면서 신생 폴란드군의 주축이 된다.
* 날짜 : 1916/07/04 ~ 1916/07/06 | |
1916/08/04 | 6차 이손초 전투 |
고리지아 전투(Battle of Gorizia)라고도 한다. 1916년 여름 이탈리아는 고리지아를 점령하는 작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탈리아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전선의 고착상태는 풀리지 않았다.
* 날짜 : 1916/08/04 ~ 1916/08/16 | |
1916/08/27 | 루마니아,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 |
루마니아는 제1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국으로 참전하였고 독일,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터키에 대항하였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영토를 획득할 수 있었다. 루마니아는 1916년 8월 27일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하였다. 이 당시 러시아는 브루실로프 공세를 통하여 오스트리아군을 괴멸 직전까지 몰아넣었고, 독일군 또한 피해를 많이 입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 날짜 : 1916/08/27 | |
1916/09/15 | 탱크의 출현 |
마른 전투 이후 전선을 돌파하기 위한 포격 · 독가스 · 탱크 등 여러 가지 공격방법이 등장했다. 그중 가장 혁신적인 것은 탱크였는데, 스윈턴의 제의로 만들어진 탱크는 1916년 솜 전투에서 최초로 사용되었고 영국군은 1917년 캉브레에서 탱크를 통해 전선돌파에 성공했다.
* 날짜 : 1916/09/15 | |
1916/09/30 | 힌덴부르크 프로그램 |
힌덴부르크 프로그램(Hindenburg Programme)은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세 번째 육군최고사령부가 1916년 시행한 군수, 경제 계획을 이르는 이름이다. 파울 폰 힌덴부르크와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이 계획을 통해 독일 산업생산량을 배로 늘려 탄약과 무기 생산을 크게 증가시키고자 하였다.
* 날짜 : 1916/09/30 | |
1916/10/11 | 유대인 인구 조사 |
1916년 독일군 내에서의 '유대인 인구 조사', 1918년 패전에서 반유대주의를 여론 조작을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 즉, '배후 단도설(Dolchstosslegende)'를 통해서 우리는 이미 독일 사회 내에서 부정적 러시아관과 유대관이 팽배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날짜 : 1916/10/11 | |
1916/11/05 | 폴란드 독립 선언 |
피우수츠키 연대나 폴란드 군대를 끌어들이기 위해 1916년 11월에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폴란드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 독립은 외형적인 것이고 군사적인 관계에서는 여전히 독일, 오스트리아와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었으며, 국경선 문제는 결정되지 않았다.
* 날짜 : 1916/11/05 | |
1916/11/21 | 프란츠 요제프 1세 사망 |
1866년까지는 독일의 군주였으나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에게 빼앗겼다. 준식민지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세르비아인들과 갈등을 빚다가 1914년에는 세르비아를 침공, 제1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항상 백발의 노장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그는 68년의 재위 기간 동안 전제 군주로서의 책임을 훌륭하게 완수하였으며, 종이에 여유분이 없으면 공문서조차도 이면지로 사용할 정도로 근면 검소하였다.
* 날짜 : 1916/11/21 | |
1916/12/05 | 독일,조국을 위한 자원봉사에 관한 법 |
힌덴부르크 프로그램이 '조국을 위한 자원봉사에 관한 법'(Gesetz über den vaterländischen Hilfsdienst)과 함께 17세부터 60세의 모든 남성에게 노동의무를 부과하는 법적 기반 하에서 시행된 상황도 초안 계획자들의 희망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본래는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한 인구 전체가 동원되는 구상이었으나, 정부는 이 형태의 계획을 거절하였다. 힌덴부르크 프로그램의 유토피아적 요구와 자원봉사법의 관료주의적 과부하가 상호작용한 결과, 독일은 일련의 새로운 문제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들은 힌덴부르크 프로그램과 자원봉사법이 없었다면 나타나지 않았을 문제들로서, 결국 경제 능력을 더욱 방해하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 날짜 : 1916/12/05 | |
1916/12/28 | 라스푸틴 암살 |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Grigori Yefimovich Rasputin, 1869년 1월 22일(구력 1월 10일)~1916년 12월 29일(구력 12월 16일))은 제정 러시아 말기의 파계 수도자이자 예언자이다. 혈우병에 걸린 황태자를 치료해준 것으로 황제의 신임을 얻었고 이후 황제의 배후에서 정치가 겸 외교관으로 내정 간섭을 일삼다 암살되었다.
* 날짜 : 1916/12/28 | |
1917/01/17 | 치머만 전보 |
치머만 전보(Zimmermann Telegram)는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1월 17일, 독일 제국의 외무 장관인 아르투르 치머만이 멕시코 주재 독일 대사에게 보낸 비밀 전보문이다. 멕시코 정부에게 미국에 대항하는 동맹을 제안하라는 지시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영국이 이 전보 내용을 감청해 암호 해독반인 40호실에서 해독하였다. 이 전보 내용은 미국의 독일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게 하여, 미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 날짜 : 1917/01/17 | |
1917/01/22 | 윌슨,'승리 없는 평화' 연설 |
미국인들은 물론 영국과 프랑스가 더 걱정한 것은 우드로 윌슨이 1917년 1월22일 미 상원에서 행한 연설이었다. 이때 미국은 아직 참전국이 아니었다. “승리 없는 평화”라는 경멸조의 명칭이 붙여진 이 연설에서 윌슨은 전쟁 종식 때 독일을 처벌하는 데 열의가 없는 듯이 보였다.
* 날짜 : 1917/01/22 | |
1917/03/08 | 러시아 2월 혁명 |
2월 혁명(February Revolution)은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7년 3월 8일에 러시아에서 일어난 러시아 혁명이다. 로마노프 왕조가 세운 제국이 무너지고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폐위되었으며, 러시아 제국은 멸망했다. 이후 몇년 간의 혁명과 내전을 거쳐 소비에트 연방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 날짜 : 1917/03/08 ~ 1917/03/16 | |
1917/03/08 | 바그다드 함락 |
대영 제국군이 오스만 제국령 바그다드를 침공해 함락한 사건.
* 날짜 : 1917/03/08 ~ 1917/03/11 | |
1917/03/15 | 러시아,니콜라이 2세 퇴위 |
로마노프 왕조의 14번째 군주로 1917년 2월 혁명으로 퇴위했으며, 이후 알렉산드롭스키 궁에서 가택연금을 당했다. 1917년 여름 임시정부의 결정에 의해 가족과 함께 그는 토볼스크로 보내졌고, 1918년 봄 볼셰비키에 의해 예카테린부르크로 옮겨졌으며, 1918년 7월 이파티예프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총살당했다.
* 날짜 : 1917/03/15 | |
1917/03/26 | 가자 전투 |
1917년 영국군은 오스만 튀르크와 세 차례에 걸쳐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이곳을 점령했다.
* 날짜 : 1917/03/26 | |
1917/04/03 | 레닌의 봉인열차 |
스위스 취리히에 망명 생활 중이던 레닌은 이때만 해도 혁명이 일어났으리라는 사실을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레닌을 비롯한 32명의 러시아 혁명 망명자들은 독일 제국의 지원을 받아 '봉인 열차'를 타고 1917년 4월 3일 늦은 밤에 러시아의 수도 페트로그라드에 도착했다.
* 날짜 : 1917/04/03 | |
1917/04/06 | 미국의 참전 선언 |
윌슨 대통령은 의회에 독일에 선전 포고할 것을 1917년 4월 6일에 제의했다.
* 날짜 : 1917/04/06 | |
1917/04/07 | 쿠바,파나마의 독일에 선전포고 |
쿠바,파나마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 날짜 : 1917/04/07 | |
1917/04/09 | 아라스 전투 (1917년) |
1917년의 아라스 전투(Battle of Arras)는 1917년 4월 9일부터 5월 16일까지 프랑스 아라스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대규모 공격 준비 포격 후, 영국군은 4.5마일(약 7.2킬로미터)을 진격했다. 영국은 15만 명을 잃었으며, 독일은 10만 명을 잃었다. 전략적 돌파구는 얻은 것이 없었다.
* 날짜 : 1917/04/09 ~ 1917/05/16 | |
1917/06/13 | 고타 폭격기,최초 런던 공습 |
독일은 제플린을 통한 공습에 한계를 느끼고 곧 고타 폭격기를 새롭게 개발, 1917년 6월을 기점으로 고타 폭격기를 통한 새로운 공습을 시도하였다. 1918년 5월까지 대략 60대가 넘는 고타 폭격기가 이 과정에서 격추 되었고 고타 폭격기를 통한 공습도 곧 한계를 맞이하게 되었다.
* 날짜 : 1917/06/13 | |
1917/06/19 | 그림-호프만 사건 |
스위스의 중립성은 1917년 그림-호프만의 사건에 의해 심각하게 의문을 받았지만 빠르게 잊혀졌다. 사회주의자이며 스위스 연방 행정부의 7인 각료중 한 사람이었던 그림(Grimm)이 1917년 독일과 러시아 사이의 평화조약을 주선하려다 연합군에게 알려진 사건이었다.
* 날짜 : 1917/06/19 | |
1917/06/30 | 그리스,동맹국에 선전포고 |
그리스는 중립을 유지하길 원했는데, 총리 베니젤로스는 그리스의 이익을 위해선 궁극적으로 연합군에 가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1917년 국왕 콘스탄티누스는 퇴위하고, 둘째 아들인 알렉산드로스가 즉위하였으며 정권을 잡은 베니젤로스는 정식으로 동맹군에 선전포고를 하고 그리스는 연합군측으로 참전한다.
* 날짜 : 1917/06/30 | |
1917/07/01 | 케렌스키 공세 |
러시아에서는 1917년 2월 혁명이 일어나서 차르는 쫓겨나고 케렌스키가 주축이 되는 임시정부가 수립된다. 그러나 케렌스키가 주도하는 임시정부는 독일 오스트리와의 전쟁을 끝낼 의사가 없었고 오히려 전쟁을 독려하기 위해 대규모 공세를 취햇다가 패배해 많은 피해를 입어 민심을 잃게 된다. 그렇수록 러시아 인민의 반전 의지는 더욱 깊어져 케렌스키 정부에 대한 반발이 폭발해 10월에 레닌과 트로츠키가 주도하는 이른바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 날짜 : 1917/07/01 ~ 1917/07/19 | |
1917/07/16 | 러시아,7월 사태 |
7월 정국(July Days)은 1917년 7월 16일-7월 20일 러시아 공화국 페트로그라드에서 일어난 폭동이다. 병사들과 노동자들이 임시정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일으켰다. 볼셰비키는 처음에는 이런 시위대에 반대했으나 곧 시위를 지지하고 오히려 선동했다. 충돌이 일어난 결과 시위대가 패배했다. 레닌은 핀란드로 도망갔고 나머지 볼셰비키 지도부는 체포되었다. 10월 혁명이 일어나기 전 볼셰비키 세력이 일시적으로 쇠퇴하는 결과를 낳았다.
* 날짜 : 1917/07/16 ~ 1917/07/20 | |
1917/07/20 | 코르프 협정 |
영국과 프랑스 등 연합국이 유고슬라비아 국가 수립을 적극 후원하면서 중재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1917년 7월 20일 세르비아 정부의 파시치 수상과 유고슬라비아 위원회 의장인 트럼비치가 당시 세르비아 왕국의 망명지였던 코르프에서 만나서 코르프 협정(the Pact of Corfu)을 발표하게 된다. 이러하여 남슬라브 민족은 그들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의 왕조 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따라서 제 1차 세계대전은 이들에게 민족 해방 전쟁의 의미를 내포하게 되었다.
* 날짜 : 1917/07/20 | |
1917/07/31 | 파스샹달 전투 |
파스샹달 전투(Battle of Passchendaele)는 1917년, 벨기에의 파스샹달 지방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제3차 이프르 전투라고도 부른다. 캐나다 영화 '파스샹달'에서 묘사된 것처럼, 이 전투는 1917년에 일어난 전투 중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손꼽힌다.
* 날짜 : 1917/07/31 ~ 1917/11/10 | |
1917/08/14 | 중국,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선전포고 |
일본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고 중국에는 참전을 종용했다. 중국은 1917년 8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그 대가로 일본으로부터 1억 4,500만 엔의 차관을 제공받았다.
* 날짜 : 1917/08/14 | |
1917/10/24 | 카포레토 전투 |
12차 이손초 전투 또는 카포레토 전투는 독일군과 오스트리아군의 연합작전으로 이루어진 제1차 세계 대전 사상 가장 성공적인 전투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전투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벌어졌다. 기습작전으로 이루어진 이 전투에서의 이탈리아군의 후퇴는 당시 정부와 군대의 최고 통수권자였던 루이지 카도르나(Luigi Cadorna)의 사퇴를 초래했다.
* 날짜 : 1917/10/24 | |
1917/10/26 | 브라질,독일에 선전포고 |
브라질은 시 커피 생산량의 90% 이상을 독점하는 커피 플랜테이션 국가였는데, 1차 대전시 동맹국에 대한 해상봉쇄로 커피 판로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후, 미국과 영국이 "커피 재고 우리가 다 사줄테니까 독일에다 선전포고해라"라면서 제안을 했고 브라질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 날짜 : 1917/10/26 | |
1917/11/02 | 벨푸어 선언 |
영국의 벨푸어 외상은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해 유대 자본가 로스차일드가의 협력을 얻으려고 팔레스티나에 유대인 국가를 설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이 1917년의 《벨푸어 선언》이다.
* 날짜 : 1917/11/02 | |
1917/11/02 | 랜싱 이시히 협정 |
1917년 11월2일 워싱턴DC. 로버트 랜싱 미국 국무장관과 일본 특사 이시이 기쿠지로가 협약을 맺었다. 이름하여 랜싱 이시이 협정의 골자는 중국에서의 일본의 특수이익 인정. 양국의 '기회균등'을 확인하되 중국과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일본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는 내용이었다.
* 날짜 : 1917/11/02 | |
1917/11/07 | 러시아 혁명 |
러시아 혁명(-革命)은 1917년 3월과 11월에 러시아에서 발발하여 세계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공산주의 공화국이 수립된 혁명이다.
* 날짜 : 1917/11/07 | |
1917/11/07 | 러시아 내전 |
러시아 내전 또는 적백 내전(赤白內戰, 1917년 11월 7일 ~ 1922년 10월)은 10월 혁명 이후에 볼셰비키가 페트로그라드를 장악하자, 옛 러시아 제국 영토를 둘러싸고 여러 당파와 교전 세력이 전투를 벌인 전쟁을 말한다.
* 날짜 : 1917/11/07 ~ 1922/10/25 | |
1917/11/08 | 러시아,레닌 집권 |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1870년 4월 22일(구력 4월 10일) ~ 1924년 1월 21일)은 러시아 제국과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인, 노동운동가로 볼셰비키의 지도자였다. 공산주의자이면서도 특별히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을 발전시킨 레닌주의 이념의 창시자이자, 마르크스 이후 가장 위대한 혁명사상가인 동시에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혁명지도자로 인정받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흔히 알려진 니콜라이 레닌이라는 이름은 혁명가로서 그가 사용하던 가명이다. 본명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이다.
* 날짜 : 1917/11/08 | |
1917/12/06 | 핀란드 독립선언 |
핀란드 독립선언(Finnish Declaration of Independence)은 1917년 12월 6일 핀란드 의회에서 채택되었다. 이 선언에서 핀란드가 독립된 국민국가임과 러시아의 자치령 핀란드 대공국으로서 존재하는 것을 그만둠을 선포하였다.
* 날짜 : 1917/12/06 | |
1918/01/08 | 우드로 윌슨,14개조 평화 원칙 |
14개조 평화 원칙(Fourteen Points)은 제1차 세계 대전 종전에 쓰인 평화원칙 선언이다. 이 원칙은 1918년 1월 8일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국회 연설에서 밝혔다. 유럽인들은 대체로 환영했으나 핵심 협상국 동료들(클레망소, 로이드 조지, 비토리오 오를란도)은 윌슨 이상주의의 적용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 날짜 : 1918/01/08 | |
1918/01/27 | 핀란드 내전 |
핀란드 내전(Finnish Civil War)은 핀란드 대공국이 러시아 제국에서 독립하면서 신생 핀란드를 누가 주도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내전이다. 핀란드 내전은 제1차 세계 대전(동부 전선)으로 인해 발생한 민족적, 정치적, 사회적 혼란의 일부였다. 내전 주체는 핀란드 사회민주당이 이끄는 적군과 반사회주의적 핀란드 원로원이 이끄는 백군이다.
* 날짜 : 1918/01/27 ~ 1918/05/15 | |
1918/01/28 | 독일,대규모 파업 |
독일에서도 수도 베를린에서 1백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으며, 다른 50개 도시에서도 파업 발생
* 날짜 : 1918/01/28 | |
1918/02 | 스페인 독감 유행 |
스페인 독감(Spanish flu) 또는 1918년 인플루엔자 범유행(1918 flu pandemic)은 1918년에 발생했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이다. 20세기에 들어서서 가장 크게 유행하고 치명률이 높았던 전염병이다.
* 날짜 : 1918/02 ~ 1920/04/30 | |
1918/02/01 | 카타로 반란 |
1917년 5월 15일에 잔크트 게오르크는 일선에서 물러나 카타로 군항에서 장교용 숙박함으로 사용되었는데 1918년 2월에 카타로 군항의 수병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해군은 즉각 진압에 나서 본함의 반란주동자를 체포해 4명을 교수형에 처했다. 해군 역사가 Halpern은 이 사건을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제가 결국은 군주제를 압도할 사회 세력에 대한 마지막 승리로 묘사한다.
* 날짜 : 1918/02/01 | |
1918/02/16 | 리투아니아 독립선언 |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리투아니아는 1918년 2월 독립을 선언하였다. 리투아니아는 1918년 독립을 선언한 이후에, 공산당 세력, 보수 세력, 농민 세력 등 복잡한 이념 세력들의 정권 쟁탈 투쟁으로 국내사정은 극히 혼란하여 정권 교체가 잦은 불안이 계속되어왔었다.
* 날짜 : 1918/02/16 | |
1918/02/09 | 중앙 동맹국과 우크라이나의 강화조약 |
1918년 2월 9일, 중앙 라다의 대표단은 중앙 동맹국과의 강화조약인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어 독오군이 중앙 라다군과 함께 반볼셰비키 전선을 치는 것으로 합의를 보게 된다.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맺어진 최초의 강화 조약이 되었고, 동시에 우크라이나에 있어서 처음으로 자국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이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중앙 동맹국의 군사 협력의 대가로 100만톤의 곡물 제공을 약속하였다.
* 날짜 : 1918/02/09 | |
1918/03/03 |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Treaty of Brest-Litovsk)은 1918년 3월 3일 소비에트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권과 동맹국(독일 제국, 오헝 제국, 불가리아 왕국, 오스만 제국) 사이에 맺어진 평화조약으로, 이 조약의 결과 러시아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이탈하고 동부전선이 마무리되었다.
* 날짜 : 1918/03/03 | |
1918/03/08 | 탐페레 전투 |
탐페레 전투(Battle of Tampere)는 핀란드 내전의 전투 중 하나이다. 적핀란드 측이 점거한 주요 도시 중 하나인 탐페레를 백핀란드 측이 공성하여 공략하는 데 성공, 10,000 여명 이상의 적위대원들을 포로로 잡았다. 탐페레 전투는 1918년 당시까지 핀란드 역사상 가장 유혈낭자한 군사분쟁이었다.
* 날짜 : 1918/03/08 ~ 1918/04/06 | |
1918/03/14 | 트라브존 평화협상 시작 |
1917년 11월, 독립 남캅카스 초대정부는 볼셰비키가 샹트페테르부르크에서 후퇴한 이후 트빌리시에 남캅카스 위원회(남캅카스 연립정부라고도 함)를 수립했다. 이 위원회는 조지아인 멘셰비키인 니콜라이 츠헤이제가 이끌었다. 1917년 12월 5일, 새로운 "남캅카스 위원회"는 오스만 제국의 제3군과 맺어진 에르진잔 휴전 협정을 지지한다고 표명했다. 이 휴전 이후 트라브존 평화협상이 이어졌다.
* 날짜 : 1918/03/14 | |
1918/03/21 | 독일,춘계 공세 |
춘계 공세(Spring Offensive) 또는 루덴도르프 공세(Ludendorff Offensive)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서부 전선에서 이루어진 독일군의 일련의 공격작전이다. 독일은 미국의 압도적인 인적, 물적 자원이 연합군에게 지원되기 전에 서부전선을 정리해야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이 춘계 공세는 1차대전 독일군의 사실상 최후 발악이라고 볼 수 있다. 공세는 1918년 3월 21일부터 개시되었으며,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체결 후 독일군은 동부전선의 군대를 서부로 돌려 거의 50개 사단을 동원, 일시적으로 수적 우세를 점하기도 했다.
* 날짜 : 1918/03/21 ~ 1918/07/18 | |
1918/04/07 | 리스 전투(1918년) |
4차 이프르 전투라고도 알려진 리스 전투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춘계 공세의 일부였다. 독일군의 진격은 실패로 끝나고 독일군, 연합군의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독일군은 4월 29일 철수하였다.
* 날짜 : 1918/04/07 ~ 1918/04/29 | |
1918/05/07 | 부쿠레슈티 조약 (1918년) |
부쿠레슈티 강화 조약은 1918년 5월 7일, 루마니아의 부프테아에서 맺어진 루마니아와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불가리아, 오스만 제국 간에 맺어진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루마니아는 동맹국에 유일하게 항복한 나라로 기록되었다.
* 날짜 : 1918/05/07 | |
1918/05/26 | 조지아 독립 선언 |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러시아를 피투성이의 내전으로 몰아 넣었고, 러시아의 중심에서 떨어진 몇몇 영토들은 독립을 공표했다. 조지아는 그 나라들 중 하나로, 1918년 5월 26일에 독립국으로의 그루지야 민주 공화국(DRG)의 수립을 선언했다. 새로운 나라는 러시아의 볼셰비키에 의해 성립된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뚜렷히 대비되는 다당제가 확립된 사회민주노동당의 멘셰비키 당파에 의해 통치되었다.
* 날짜 : 1918/05/26 | |
1918/05/28 | 아제르바이잔 독립 선언 |
트랜스코사서스 연방 공화국은 민족 간의 갈등으로 허무하게 해체된다. 5월 26일 조지아가 독일의 보호에 들어가면서 독립을 선포하고, 5월 28일엔 아제르바이잔인들도 자신들만의 공화국을 세웠다.
* 날짜 : 1918/05/28 | |
1918/05/28 | 아르메니아 독립 선언 |
트랜스코사서스 연방 공화국은 민족 간의 갈등으로 허무하게 해체된다. 5월 26일 조지아가 독일의 보호에 들어가면서 독립을 선포하고, 5월 28일엔 아제르바이잔인들도 자신들만의 공화국을 세웠다. 아르메니아도 5월 28일 독립을 선포한다.
* 날짜 : 1918/05/28 | |
1918/06/04 | 바툼 조약 |
트랜스코사서스 연방 공화국은 민족 간의 갈등으로 허무하게 해체된다. 5월 26일 조지아가 독일의 보호에 들어가면서 독립을 선포하고, 5월 28일엔 아제르바이잔인들도 자신들만의 공화국을 세웠으며, 결국 홀로 남겨진 아르메니아도 어쩔 수 없이 5월 28일 독립을 선포한다. 5월에 벌인 아르메니아군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오스만과의 평화 협정은 불리하게 진행되었다. 6월 4일 바툼 협정이 체결되면서 아르메니아의 영토는 대폭 축소되고 군대도 제한된다. 어찌됐건 독립을 이룬 아르메니아는 형식적으론 나라꼴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 날짜 : 1918/06/04 | |
1918/06/15 | 피아베강 전투 |
피아베 강 전투는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의 마지막 대규모 공세였으며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와 육군의 괴멸을 초래하는 전투로 알려져 있다. 이 전투의 실패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와해의 길로 들어섬과 동시에 앞으로 있을 비토리오 바베토 전투에 대비할 만한 힘이 없어지게 된다.
* 날짜 : 1918/06/15 ~ 1918/06/23 | |
1918/07/15 | 제2차 마른강 전투 |
2차 마른 전투는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때 독일군이 마른 강에서 펼친 마지막 대공세로 끝내 패배하였고 독일 제국의 항복을 촉진시켰다.
* 날짜 : 1918/07/15 ~ 1918/08/06 | |
1918/08/08 | 아미앵 전투 |
아미앵 전투 혹은 제3차 피카르디 전투는 제1차 세계 대전 동맹국을 패배시킨 100일 공세의 시작을 알린 전투다. 협상국은 첫째 날에 11km를 전군했는데 이는 제1차 세계 대전 최대 규모였다.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이 날을 일컬어 독일군 암흑의 날이라고 일컬었다.
* 날짜 : 1918/08/08 ~ 1918/08/12 | |
1918/08/26 | 바쿠 전투 |
아미앵 전투 혹은 제3차 피카르디 전투는 제1차 세계 대전 동맹국을 패배시킨 100일 공세의 시작을 알린 전투다. 협상국은 첫째 날에 11km를 전군했는데 이는 제1차 세계 대전 최대 규모였다.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이 날을 일컬어 독일군 암흑의 날이라고 일컬었다.
* 날짜 : 1918/08/26 ~ 1918/09/14 | |
1918/09/28 | 제5차 이프르 전투 |
제5차 이프르 전투는 제1차 세계 대전 서부 전선에서 1918년 9월 말부터 10월에 걸쳐 발생한 일련의 전투들을 일컫는 비공식적 이름이다.
* 날짜 : 1918/09/28 ~ 1918/10/02 | |
1918/09/29 | 일본,1918년 쌀 폭동 |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총리대신으로 재직 중 시베리아 출병을 감행하는 등 특히 한국과 중국에서 일본의 권익확대를 꾀하는 제국주의 정책을 수행했다. 그러나 미국의 공동 출병 요구로 인해 쌀값이 폭등하고, 철·석탄·종이 등 생필품도 매점매석으로 폭등했다. 그러던 중 1918년 8월 3일, 도야마현에서 인플레이션을 이기지 못한 민중들이 들고 일어났고, 이 쌀 폭동은 전국 1도 3부 38현으로 확산되었다. 결국 1918년 9월 29일 총리대신 직을 사퇴하게 된다.
* 날짜 : 1918/09/29 | |
1918/10/24 |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 |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Battle of Vittorio Veneto)는 1차 세계 대전중 이탈리아 베니스 북쪽 비토리오 베네토 근처에서 일어났던 전투이다. 이탈리아의 승리는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종전을 가져왔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를 촉진시켰으며, 2주내 1차 세계 대전 종전의 시금석이었다.
* 날짜 : 1918/10/24 ~ 1918/11/04 | |
1918/10/28 |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선언 |
1918년 5월 체코와 슬로바키아 독립운동 단체 간 체결된 피츠버그 협정이 타결되었고, 협상국의 승인과 지지 하에 마침내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 운동 노선이 단일화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국민회의는 체코측 지도자인 토마시 마사리크, 에두아르드 베네시와 슬로바키아 측 지도자인 밀란 스테파니크의 서명 하에 1918년 10월 18일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선언을 발표하였으며, 같은 달 28일 프라하에서도 공식적으로 독립이 선언되었다.
* 날짜 : 1918/10/28 | |
1918/10/29 | 독일 혁명(1918-1919) |
독일 혁명 또는 11월 혁명(German Revolution)은 독일에서 1918년 11월 7일에 발생한 혁명이다. 이 혁명으로 독일 제국 제정이 붕괴하고 의회민주주의적인 공화국이 탄생했다. 혁명의 원인은 4년 넘게 길어지는 전쟁(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극도의 부담이었는데, 이전의 독일 제국의 패배에 대한 만연된 충격, 그리고 사회적인 긴장상태와 권력 엘리트들에 의한 전민주주의적 구조가 이러한 부담을 촉발시켰다.
* 날짜 : 1918/10/29 ~ 1919/08/11 | |
1918/10/30 | 무드로스 휴전 협정 |
무드로스 휴전 협정(Armistice of Mudros)은 제1차 세계 대전 막바지에 연합군과 오스만 제국이 중동 전선에서 양측의 적대 행위를 종식하도록 합의한 휴전 협정이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 에서 크게 패하고 연합군이 진격해오면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정전 협정 체결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 날짜 : 1918/10/30 | |
1918/11 | 윌슨,민족자결주의 선언 |
민족자결주의는 원칙만 고상한 주장이었을 뿐 실제로는 제1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그리고 오스만제국을 해체하기 위한 근거 서류였다. 전승국인 일본이나 미국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조선, 필리핀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 날짜 : 1918/11 | |
1918/11/01 |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 |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은 폴란드 제2공화국과 우크라이나 세력(서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과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사이의 갈등이었다. 분쟁은 해체된 러시아 제국과 오스트리아 제국의 후계국으로서 이 지역에 거주하는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 사이의 민족적, 문화적, 정치적 차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
* 날짜 : 1918/11/01 ~ 1919/07/18 | |
1918/11/03 | 킬 군항의 반란 |
킬 군항의 반란이란 제1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인 1918년 11월 3일 독일 제국 발트 해 킬 만(灣)에 있는 킬 군항에서 일어난 수병들의 반란을 말한다. 이 반란을 시작으로 독일 11월 혁명이 일어났다.
* 날짜 : 1918/11/03 | |
1918/11/07 | 독일 11월 혁명 |
독일 혁명 또는 11월 혁명(November Revolution)은 독일에서 1918년 11월 7일에 발생한 혁명이다. 이 혁명으로 독일 제국 제정이 붕괴하고 의회민주주의적인 공화국이 탄생했다.
* 날짜 : 1918/11/07 | |
1918/11/11 | 콩피에뉴 휴전 협정(1918년) |
콩피에뉴 휴전 협정 또는 1918년 11월 11일의 휴전 협정은 1918년 11월 11일 독일 제국과 연합국 사이에 맺은 휴전 협정이다. 프랑스 콩피에뉴 콩피에뉴의 숲의 열차 차량에서 서명되어, 제1차 세계 대전 서부 전선에서의 전투를 끝맺었다.
* 날짜 : 1918/11/11 | |
1918/12/14 | 1918년 영국 총선 |
1918년 영국 총선은 영국 최초로 21세 이상의 모든 남성과 30세 이상의 모든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선거였으며, 최초로 하루만에 치러진 총선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연립의 지속 여부를 두고 각 당은 분열했고, 연립내각을 이끈 로이드 조지 수상의 연립자유당과 앤드류 보나 로우의 연립보수당은 일명 '쿠폰 선거'라 불리는 연대를 하기로 합의한다.
* 날짜 : 1918/12/14 | |
1918/12/15 | 발틱3국 독립전쟁 |
발틱 해 연안의 이른바 "독립전쟁"은 동유럽에서는 계속되는 전쟁이었다. 독립 선언과 11월 정전 이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군대가 결성되었고, 1919-20년 사이에 독일군, 백핀란드 그리고 볼셰비키도 결국은 몰아냈다.
* 날짜 : 1918/12/15 | |
1919/01/18 | 파리강화회의 |
파리 강화 회의(Paris Peace Conference)는 1919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들이 연합국과 동맹국 간의 평화 조약을 협의하기 위해 개최한 국제 회의이다. 회의는 1919년 1월 18일 개최되어 1920년 1월 21일까지 간격을 두고 지속되었다.
* 날짜 : 1919/01/18 ~ 1920/01/21 | |
1919/01/21 | 아일랜드 독립 전쟁 |
아일랜드 독립 전쟁(Irish War of Independence)은 아일랜드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 정부에 대항해 1918년에 만들어진 아일랜드 공화국군이 일으킨 게릴라전으로, 영국에서는 영국-아일랜드 전쟁(The Anglo-Irish War)으로 불린다. 이 전쟁은 1919년 1월 21일부터 2년반 동안 계속되었고, 1921년 7월 11일 휴전하였다. 이 전쟁으로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자유국과 북아일랜드가 각각 분리되었다.
* 날짜 : 1919/01/21 ~ 1921/07/11 | |
1919/02/14 | 폴란드-소비에트 전쟁 |
폴란드-소비에트 전쟁(Polish–Soviet War)은 1919년 2월부터 1921년 3월까지 폴란드와 소비에트 러시아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폴란드, 소련 분쟁 지역은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지역이었다. 1919년의 국경 전초전은 1920년대 전진적으로 폴란드-소비에트 연방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바르샤바 전투에서 폴란드군이 승리한 이후, 소련은 평화 협상을 요청했고 1920년 10월 휴전 협정으로 끝났다. 두 국가간의 평화 조약인 리가 조약은 1921년 3월 18일 맺어졌으며 소비에트 러시아와 폴란드 사이의 국경 협정과 함께 맺었다.
* 날짜 : 1919/02/14 ~ 1921/03/18 | |
1919/03/01 | 3.1운동 |
일본 식민지 지배하의 한국에 1919년 3월 1일을 기하여 일어난 범민족항일독립운동.
* 날짜 : 1919/03/01 | |
1919/04/13 | 대한민국 임시 정부 |
대한민국 임시 정부(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1919년 ~ 1948년)는 1919년 3월 1일 경성(京城)에서 선포된 3·1 독립선언에 기초하여 일본 제국의 대한제국 침탈과 식민 통치를 부인하고 한반도 내외의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1919년 4월 13일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설립된 망명정부이다. 같은 해 9월 11일에는 각지의 임시정부들을 통합하여 중국 상해에서 단일 정부를 수립하였다.
* 날짜 : 1919/04/13 | |
1919/04/13 | 암리차르 학살 |
영국의 식민지 시절인 1919년 인도의 치안 부대가 이 곳에서 벌어진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반대하는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사건인 암리차르 학살이 벌어졌다.
* 날짜 : 1919/04/13 | |
1919/04/29 | 독일 대표단 베르사이유 도착 |
프랑스에게 있어서 협약의 서명 장소를 선택한다는 것은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패배한 것에 대한 수치심을 씻어버릴 수 있는 기회였다. 1871년 1월 18일에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프로이센이 전쟁의 종전을 선포하고 독일 제국의 황제로서 빌헬름 1세의 대관식까지 열었는데, 프랑스가 40여년 전의 치욕을 갚을 목적으로 이 장소를 선택한 것이다.
* 날짜 : 1919/04/29 | |
1919/05/04 | 중국 5.4 운동 |
중국 5·4 운동(May Fourth Movement)은 1919년, 러시아 혁명(1917년)의 영향을 받아 베이징의 대학생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제국주의·반봉건주의 혁명운동으로서, 중국의 근대화를 서두르는 계기가 되었다. 학생운동이 혁명운동으로 발전한 정치운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국의 신민주주의 혁명의 출발점으로 평가되며, 또한 근대사·현대사의 새로운 기원을 여는 시기로 평가되기도 한다.
* 날짜 : 1919/05/04 | |
1919/05/11 | 포어아를베르크 주민투표 |
제1차 세계 대전 후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독립된 주가 되었다. 곧 1919년 5월 11일에 스위스 연방 편입을 결정하는 주민투표가 실시되었으며, 스위스에 가까운 위치에 있어 주민의 다수가 스위스 편입을 찬성했으나, 연합국·스위스·오스트리아에서 모두 반대하여 계속 오스트리아에 남게 되었다.
* 날짜 : 1919/05/11 | |
1919/05/15 | 그리스-터키 전쟁 (1919–22년) |
그리스-터키 전쟁(Greco-Turkish War)은 1919년 ~ 1922년에 그리스 왕국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그리스가 전쟁을 일으켰으나 결국 오스만 제국이 승리하였다.
* 날짜 : 1919/05/15 ~ 1922/10/11 | |
1919/05/19 | 터키 독립 전쟁 |
터키 독립 전쟁(1919년 5월 19일 ~ 1923년 10월 29일)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여 연합국이 제국을 분리하려 하는데 반발한 터키 민족주의자들이 일으킨 정치 및 군사적 저항이다.
* 날짜 : 1919/05/19 ~ 1923/10/29 | |
1919/06/19 | 체시스 전투 |
1919년 6월 라트비아와 연합한 에스토니아는 체시스 전투에서 발트 해 독일군 부대와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에스토니아 독립 전쟁과 라트비아 독립 전쟁의 결정적인 전투였다.
* 날짜 : 1919/06/19 ~ 1919/06/23 | |
1919/06/28 | 독일,연합국과 베르사유 조약 체결 |
베르사유 조약(Treaty of Versailles)은 1919년 6월, 독일 제국과 연합국 사이에 맺어진 제1차 세계 대전의 평화협정이다. 파리 강화 회의 중에 완료되었고 협정은 1919년 6월 28일 11시 11분에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서명되어 1920년 1월 10일 공포되었다. 조약은 국제 연맹의 탄생과 독일 제재를 규정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독일 제재에 관한 안건은 파리 강화 회의 중 다뤄지지 않았다.
* 날짜 : 1919/06/28 | |
1919/08/11 | 바이마르 공화국 성립 |
바이마르 공화국(Weimar Republic)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8년에 일어난 독일혁명으로 1919년에 성립하여 1933년 히틀러의 나치스 정권 수립으로 소멸된 독일 공화국의 통칭이다.
* 날짜 : 1919/08/11 | |
1919/09/10 | 생제르맹 조약 |
생제르맹 조약은 연합국과 오스트리아의 단독 강화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인해,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 제국의 해체를 선언하면서, 인구가 1/4로 크게 줄어들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분리되었고,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에게 영토를 할양했다.
* 날짜 : 1919/09/10 | |
1919/11/27 | 뇌이 조약 |
뇌이 조약은 1919년 11월 27일 프랑스 일드프랑스 오드센주 뇌이쉬르센에서 체결되어 1920년 8월 9일부터 효력이 발생한 조약이다. 이 조약은 제1차 세계 대전 승전국과 불가리아 사이의 조약이다. 이 조약은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의 독립을 인정함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 날짜 : 1919/11/27 | |
1920/01/10 | 국제연맹 창립 |
제1차 세계대전 종료 후 승전국들에 의해 최초의 국제평화기구인 국제연맹이 생겼다. 그러나 국제연맹은 강제력이 없어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 날짜 : 1920/01/10 | |
1920/03/12 | 니콜라옙스크 사건 |
니콜라옙스크 사건(Nikolayevsk incident)은 니콜라옙스크에서 벌어진 전투와 학살 사건을 가르킨다. 붉은군대 소속의 러시아인 아나키스트·볼셰비키, 중국인 아나키스트, 민족주의·볼셰비키·아나키스트 성향의 한국인 독립운동가의 대규모 학살과 테러로 인해 니콜라옙스크에서 수천명이 사망하고 지역이 폐허가 됐다.
* 날짜 : 1920/03/12 ~ 1920/06/03 | |
1920/04/19 | 산레모 회의 |
산레모 회의의 결과, 오스만 투르크는 아라비아(Arabia)와 북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빼앗겼으며, 시리아와 레바논은 프랑스가, 팔레스타인과 옛 메소포타미아 지역인 이라크는 영국이 위임 통치하도록 되었다. 또한 1917년 영국의 외무장관인 밸푸어(Arthur Balfour, 1848~1930)가 유태인이 팔레스타인에 민족의 고향을 건설하는 것을 지지한다며 발표한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이 영국의 정책으로 승인되어, 팔레스타인에 유태인 국가가 건설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 날짜 : 1920/04/19 ~ 1920/04/26 | |
1920/06/04 | 트리아농 조약 |
트리아농 조약(Treaty of Trianon)은 1920년 6월 4일 헝가리와 연합국 사이에서 맺어진 헝가리의 국경을 확정하는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되었고 특히 헝가리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토 중 72%를 상실하여 국토 면적이 325,111제곱킬로미터에서 93,073제곱킬로미터로 줄어들었고, 인구의 64%를 상실하여 2090만명에서 760만명이 되었다.
* 날짜 : 1920/06/04 | |
1920/08/10 | 세브르 조약 |
세브르 조약(Traité de Sèvres)은 제1차 세계 대전 후인 1920년 8월 10일에 프랑스 파리 근교의 세브르에서 연합국과 오스만 제국이 체결한 조약이다. 오스만 제국은 이 조약으로 인해 광범위한 영토를 상실했다. 연합국은 오스만 제국에서 터키가 아닌 영토를 모두 해체하여 점령하며, 이 조약은 터키 영토의 일부도 점령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였다.
* 날짜 : 1920/08/10 | |
1920/11/15 | 국제연맹 첫 총회 |
국제 연맹의 첫 총회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다.
* 날짜 : 1920/11/15 | |
1920/12/23 | 아일랜드 정부법 (1920년) |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의 영국 정부가 제시한 이 법은 아일랜드를 두 지역(남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으로 나뉘게 했다.
* 날짜 : 1920/12/23 | |
1921/03/18 | 리가 조약 |
1921년 폴란드와 소련이 맺은 조약. 폴란드ㆍ소련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국제 연맹의 중재로 이루어졌으며, 폴란드는 18세기에 폴란드 분할로 잃은 영토를 대부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 날짜 : 1921/03/18 | |
1921/05/23 | 라이프치히 전범 재판 |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서 독일 정부 스스로 재판하는 것으로 정해져 1921년부터 Leipzig에서 재판이 개시되었다.
* 날짜 : 1921/05/23 ~ 1921/07/16 | |
1921/06/29 | 히틀러,나치당의 당수 |
1920년 2월 24일, 뮌헨의 커다란 맥주홀인 호프브로이하우스에 모인 2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 히틀러는 그의 동지들이 추구하고 있는 운동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짧게 나치스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독일어 약자로 NSDAP)이 바로 그것이다. 그 외에도 히틀러는 민주공화제 타도와 독재 정치 강행, 베르사유 조약 타도, 민족주의와 반(反)유대주의 그리고 백화점과 다국적 기업 공격 등을 포함한 25개 조항으로 된 나치당의 당 강령을 발표했다.
* 날짜 : 1921/06/29 | |
1921/10/13 | 카르스 조약 |
카르스 조약은 1921년 10월 13일 터키 카르스에서 체결된 조약이다. 터키 대국민의회(1923년 터키 공화국 수립), 소련의 3개 공화국(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대표가 서명했으며 1922년 9월 11일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비준되었다.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3개 공화국은 1922년 12월에 수립된 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이 되었다.
* 날짜 : 1921/10/13 | |
1921/11/12 | 워싱턴 회의 |
베르사유체제는 동아시아의 제문제를 미해결인 채로 두었고, 또 제1차 세계대전 후 각국의 재정상태 때문에 군비확장 경쟁은 부담이 되었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일괄 토의하기 위하여, 미국의 제창으로 워싱턴회의가 개최되어,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중국·벨기에·네덜란드·포르투갈·일본 등 9개국이 참가하였다.
* 날짜 : 1921/11/12 ~ 1922/02/06 | |
1922/04/10 | 제노바 회의 |
제1차 세계대전 후 소련과 독일이 국제회의에 초청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다. 유럽의 경제부흥계획이 토의되었는데, 미국은 불참하고, 또 프랑스의 요구에 의해서 독일의 군축·배상문제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주요 문제였던 소련과의 경제교류는 프랑스가 대전 전의 러시아의 부채에 대한 승인을 고집했기 때문에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다.
* 날짜 : 1922/04/10 ~ 1922/05/19 | |
1922/04/16 | 라팔로 조약 (1922년) |
같은 달에 개최된 제노바 국제경제재정회의(제노바회의)의 중도에 체결되어 연합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소련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제노바회의에서도 제정러시아의 케렌스키 정부 시대의 외채승인을 요구하는 연합국과 대립하였다. 제노바회의에서의 연합국의 태도에 불만을 품은 소련은 비밀리에 독일과 교섭을 시작하였다. 한편, 독일도 국방군을 비밀리에 재군비하기 위하여 소련과의 협력에 적극적이었고, 독일 중공업계도 소련 시장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경제협력을 지지하고 있었다.
* 날짜 : 1922/04/16 | |
1923/07/24 | 로잔 조약 |
로잔 조약(Treaty of Lausanne)은 1923년에 터키 공화국이 수립된 후에 스위스 로잔에서 터키와 연합국이 세브르 조약에 대한 제약을 없애기 위해서 다시 체결한 조약이다. 터키는 이로써 1894년 당시 소유했던 영토인 스미르나, 콘스탄티노플, 동트라키아 등을 회복하였다. 이 조약은 터키 공화국이 주권 국가로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 날짜 : 1923/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