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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승 제50호 / 영월 청령포 (寧越 淸泠浦) / 2008년 12월 26일 지정 /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번지 등
문화재청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영월 청령포는 어린 나이에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유배지로 서쪽은 육육봉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고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섬과 같이 형성된 곳으로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전하는 노산대, 망향탑 돌무더기 등 슬픈 역사가 남아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천연기념물인 ‘관음송’을 비롯하여 단종의 어가 주변에 조성된 크고 오래된 소나무림이 270° 돌아흐르는 서강과 어우러져 자연 경관이 뛰어난 명승지이다.
『세조실록』에 따르면 단종은 1457년 6월 22일 창덕궁을 출발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현재의 광진구 화양동에 있는 화양정터. 화양정은 당시 세종의 별장이 있던 곳으로 세조는 내시 안로(安璐)를 시켜 이곳에서 조촐한 잔치를 마련해주며 단종을 배웅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고지도와 단종의 유배와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단종은 화양정에서 광나루로 온 후 이곳에서 배를 타고 여주의 이포나루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의 여정은 여주에서 원주, 영월로 이어지는 길을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주군 상구리의 ‘단종 어수정’, 단강초등학교에 남아 있는 ‘단정지(단종이 쉬어간 정자)’ 등은 단종과 관련된 유적지다. 6월 28일 단종은 청령포에 도착했는데,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한쪽은 기암절벽으로 구성되어 마치 사방에 요새를 설치한 모양을 띠고 있다. 육지면서도 철저히 고립된 섬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어 외부와 완전히 고립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두어 달간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그해 뜻밖의 큰 홍수로 인하여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니 단종은 영월부의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처소를 옮겼고 12월 29일 17살의 어린나이에 숨졌다.
청령포는 소나무숲이 울창하고 서강의 물이 맑아 예로부터 ‘영월 8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명소로서 피서객과 낚시꾼이 많이 찾아온다.
– 청령포 안내도
– 구글어스
– 청령포 관음송 / 민정기
– 2000년 4월 5일 단종문화제와 때를 맞춰 건립된 단종 어가는 승정원일지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나름대로 재연했다. 어가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 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사랑채가 있으며 밀납인형으로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가 담장 안에 유지비각이 위치해 있다. 이 어가는 어가 또는 적소라는 명칭에 대한 논란과 주거형태, 어가의 위치 등 여러 가지 문제로 한동안 논란을 겪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승정원일지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재현했다.
– 청령포 소나무 숲
– 청룡포 관음송 (천연기념물 제349호)
관음송은 영월의 청령포 안에서 자라고 있으며 나이는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5.19m의 크기로 1.6m되는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위로 하나는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자라고 있다.
청령포는 세조 2년(1456)에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으로 단종은 유배생활을 하면서 둘로 갈라진 이 나무의 줄기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은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해서 ‘볼 관(觀)’자를, 단종의 슬픈 말소리를 들었다하여 ‘소리 음(音)’자를 따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무의 껍질이 검은색으로 변하여 나라의 변고를 알려 주었다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귀하게 여기고 있다.
이 나무는 단종과 관련된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역사적·학술적 자료로서의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문화재청
네이버 매거진캐스트 : 역사가 바로 세운 이름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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