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와 이집트 신화 – 신들의 비교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의 모든 신들의 이름은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왔다.”

 

프랑스 혁명기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샤를 프랑수아 뒤피(Charles-Francois Dupuis)도 헤로도토스를 따라 이집트 신화와 그리스 신화가 같다고 보았다. 그는 이집트 신화는 본질적으로 별자리의 움직임을 재구성한 것이며, 그리스도교는 이 웅대한 전승의 잘못 이해한 파편을 모아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예를들면 춘분점세차가 황소자리일때 이집트는 주로 황소 숭배, 즉 아피스 황소 숭배, 음네비스 숭배, 멘투 숭배가 유명하고 기원전 2000년경 춘분점 세차가 양자리 시대로 이동하자 이집트의 국가적 숭배가 숫양 신 아몬(Amon)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헤라클레스의 12가지 노역 같은 신화와 1년을 주기로 12궁도를 통과하는 별의 운행 사이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상응, 비유 혹은 일치 등도 있다.

 

◎ 별자리와 문명 : http://yellow.kr/blog/?p=522

 

고대 그리스의 기원에 대한 논란이 존재한다. 기원전 5세기에서 18세기 말까지 존재했던, 이집트인과 페니키아인에 의해 그리스가 문명화되었다는 ‘고대 모델’과 그것이 19세기 초에 허물어지면서 1840년대에 대체된 ‘아리안 모델’이 그것이다. 지금도 논란이 진행 중이지만 ‘아리안 모델’은 유럽 문명의 우월성을 위한 그리스 문명 뛰우기와 당시 제국주의 시대와 관련하여 다른 고대 문명 죽이기 등의 정치적 동기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쨌든 고대 그리스는 그리스와 가까운 지역의 훨씬 이전부터 발달했던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상식적일 것이고 증거도 많다. 고대의 저자들은 영혼의 불멸성에 관심을 가졌던 피타고라스와 오르페우스, 소크라테스, 플란톤 등의 인물들이 그것을 이집트로부터 배웠다고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기준으로 그리고 + α 로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이집트 신화 그리스 신화 + α 관련 글
 아문 (Amun), 아몬, 암몬, 아멘  제우스 (Zeus)  http://yellow.kr/blog/?p=1612
 오시리스 (Osiris)  디오니소스 (Dionysus)  http://yellow.kr/blog/?p=1648
 이시스 (Isis)  데메테르 (Demeter)  http://yellow.kr/blog/?p=1737
 호루스 (Horus)  아폴론 (Apollon)  http://yellow.kr/blog/?p=2152
 세트 (Set)  포세이돈 (Poseidon)

티폰 (Typhon)

야훼 (Yahweh)

 http://yellow.kr/blog/?p=2431
 네이트 (Neith)  아테나 (Athena)  http://yellow.kr/blog/?p=2200
 바스테트 (Bastet, Bubastis)  아르테미스 (Atremis)  http://yellow.kr/blog/?p=2372
 하토르 (Hathor)  아프로디테 (Aphrodite)  http://yellow.kr/blog/?p=2343
 토트 (Thoth)  헤르메스 (Hermes)
 프타 (Ptah)  헤파이스토스 (Hephaestus)
 민 (Min)  판 (Pan)
 아피스 (Apis)  에파포스 (Epaphus)
 네프티스 (Nephthys)  페르세포네 (Persephone)

코레 (Kore)

 콘수 (Khonsu) ?  헤라클레스 (Herakles)

 

 

 


헤로도토스 역사

–   헤로도토스 / 박현태 역 / 동서문화사 / 2008.07.01

 

또 그들의(멤피스의 사제들) 말로는, 열두 신의 호칭을 정한 것도 이집트인이 처음이고, 그리스인은 이집트인으로부터 그것을 배웠다고 한다. 또 신들의 제단이나 신상(神像)이나 신전을 세우는 것도, 돌에 모양을 조각하는 것도 이집트인이 창시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항에 대해서 사제들은 대부분 실례를 제시해 그것이 진실임을 증명해 보였던 것이다.

……

디오니소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신의 이름은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들어갔다. 그리스의 신들이 그리스 이외의 나라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은, 내가 직접 조사해서 확인한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은 이집트로부터 전래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외로서는 앞에서도 말한 포세이돈과 디오스크로이 외에 헤라 · 헤스티아 · 테미스 · 카리테스 · 네레이데스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이외의 신들의 이름은 줄곧 이집트에 있었다. 이상 나는 이집트인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인이 이름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신들은, 포세이돈을 제외하고는 펠라스고이인이 명명한 것일 것이다.

……

켐미스가 떠 있는 섬이라고 하는 데에 관련해서 이집트인이 말하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그것에 따르면 이 섬은 애초에는 떠 있지 않았으나, 이집트 최고(最古)의 신인 8신의 한 사람으로 자기의 신탁소가 있는 부토에 살고 있던 레토가 이시스로부터 아폴론을 맡았는데, 예의 티폰이 오시리스의 아들(아폴론)을 찾으려고 세계를 샅샅이 뒤지면서 이 땅에 왔을 때 이 섬에 아폴론을 숨겨서 구했다고 한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디오니소스(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로, 레토는 두 아이의 유모이자 그들을 구한 사람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아폴론은 이집트어로 말하자면 오로스(호로스), 데메테르는 이시스, 아르테미스는 부바스티스이다. 에우포리온의 아들 아시스키로스가 아르테미스를 데메테르의 딸로 삼고 있는 것은 이제까지의 시인으로는 그 예가 없던 일로, 지금 말한 전설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블랙 아테나

– 마틴 버낼 / 오흥식 역 / 소나무 / 2006.01.10

 

그리스 종교와 비교할 수 있는 종교는 알공킨이나 태즈메이니아의 종교처럼 시공간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동일한 시기에 지중해의 끄트머리라는 동일한 지역에 위치했던 두 체제 사이에 존재했던 종교이다. 더욱이 고전기와 헬레니즘 시기의 그리스인은 스스로 자신의 종교가 이집트에서 건너왔다고 주장했으며, 헤로도토스는 심지어 신들의 이름이 한두 개를 빼고는 모두 이집트어임을 일일이 언급하기까지 했다. 인도유럽어 문화로부터 그럴듯한 어원이나 제식상의 유사성을 이끌어 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집트로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

플루타르코스는 적어도 기원전 4세기부터 교양 있는 그리스인이 공유한 것으로 보이는 이집트 종교에 대한 이미지를 상세히 기록했다. 이에 따르면, 이집트 종교에 나타나는 동물 숭배와 명백한 미신은 단지 대중을 위한 비유적인 겉치장일 뿐이었다. 사제들, 그리고/또는 이집트 종교의 비전을 전수받은 자들은, 동물 숭배와 환상적인 신화들이 실제로 우주에 관한 깊이 있는 추상 개념들과 심오한 이해를 감추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시스와 오시리스』에서 이집트 종교 철학의 근본적인 관심사는, 성장하고 쇠퇴하는 덧없고 물질적인 ‘생성’의 세계가 아니라 수數와 기하학, 그리고 천문학에서 특히 뚜렷하게 나타나는 불멸하는 ‘존재’의 영역이었다.

 


신화적 상상력과 문화

–  정재서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 2008.02.29

 

가령 중국 신화의 경우를 보자. 중국 신화는 본 민족인 한족(漢族)의 신화와 55개의 소수 민족 신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본래부터 이질적인 소수 민족 신화는 차치하고서라도 본 민족인 한족의 신화도 단일한 계통으로 볼 수 없다. 중국의 선사 시대는 사방의 각 종족이 교류하는 다원적인 문화 상황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이에따라 신화 역시 상호 텍스트적으로 얽혀 있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한족 신화도 다양한 각 종족 신화 간의 결합의 산물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비교적 완전한 신화 체계를 갖추었으므로 주변의 중동 및 근동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인 문화권 내에서 생산되었다고 인식하기 쉽지만, 사실 이 지역은 일찍부터 소아시아 · 이집트는 물론 중앙아시아의 문명과도 관계를 맺었고, 우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서 이러한 영향의 흔적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의 문화사 (달력, 시계 그리고 문명 이야기)

–  앤서니 애브니 / 최광열 역 / 북로드 / 2007.06.12

 

거대한 주기를 갖는 이 세차의 일부분이 서양의 달력에 사용된 것은 본디 인류의 서로 다른 시대를 상징하기 위해서였다. 2만6000년의 12분의 1 또는 거의 2200년에 해당하는 각 시대는 춘분점이 황도대의 새로운 집, 즉 새로운 별자리에 들어가는 것으로 표시되었으며, 그 시대에 대한 인식은 신화 창조와 신화의 재창조를 관통해 흐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기독교 시대는 춘분점이 물고기자리에 있고, 그 물고기자리에서 태양이 떠오를 때 시작되었다. 이에 앞선 양자리 시대는 모세가 시나이 산에 도착한 때였다. 또 그 이전 황소자리 시대에는 사람들이 황금 송아지 또는 황소자리 그 자체를 경배했는데, 이는 에게 문명의 중심지였던 크레타 섬의 오래된 도읍 크노소스 궁 안의 미노아 건축물뿐 아니라 이집트의 특정 신들이 착용한 머리장식의 상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화의 세계

– 조지프 캠벨 / 과학세계 역 / 까치 / 2009.03.20

…… 로마인 그리고 그 앞의 그리스인은, 다른 민족이 섬기는 신들과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을 같은 신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들을 우주를 만들고 유지하는 에너지의 의인화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갈리아로 가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케르눈노스라고 부르는 신을, 우리는 플루토(하데스)이라고 부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기원전 327년에 인도에 갔을 때, 크리슈나는 헤라클레스에 해당한다고 인드라는 제우스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따라서 그곳에서는 선교가 아니라 오히려 훌륭한 수용이 있었다.

 


신화의 이미지

– 조셉 캠벨 / 홍윤희 역 / 살림 / 2006.02.14

 

이렇게 천상에 의거한 정치적 사회적 질서를 천상에 의거하여 변모시킨다는 관념은 기원전 2850년경 첫 번째 왕조를 설립했던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기원전 2500년경에는 크레타와 인도에서, 기원전 1500년경에는 중국의 상(商) 왕조에서, 그리고 기원전 1200년경에는 뜻밖에도 중남미의 올멕(Olmec)와 차빈(Chavin) 문화지구에서 출현하였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춘분에 태양이 물고기자리에 위치하는 것과 달리, 예수가 살았던 시기에는 양자리에 있었고, 2000년 전에는 황소자리에 있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72년(오시리스 전설에서 세트의 공범자들의 수와 같다)에 1도씩, 너무나 느려서 거의 감지하기 힘들 정도의 이 편차가 바로 ‘춘분점 세차‘이다. 황도대(또는 플라톤 연(年)’ : 세차 운동이 한 바퀴 도는 주기로서, 모든 행성들이 회전을 끝내면 제자리에 돌아오고 그래서 유래의 출발점부터 다시 똑같은 출발을 하게 된다는 플라톤의 원초적 개념이다. – 옮긴이 주)의 한 주기를 채우려면 25,920년이 걸린다. 그것을 다시 60으로 나누면 432가 된다. 그러므로 432,000년이라는 신화적 수는 어떤 심리학적인 원형이나 기반에 놓인 사고의 산물이 아니라, 몇세기에 걸친 신중한 천문학적 관찰을 통해서 발견된 것이 분명하다.

 


최초의 문명은 고대 인도에서 시작되었다

–  게오르그 포이어스타인 / 정광식 역 / 사군자 / 2000.08.07

 

태고적의 천문학적인 지식의 일부는 신화들에 암호처럼 숨겨져 있다.

신화들에 포함되어 있는 천문학적인 요소를 살펴보면, 바루나(인도), 우라노스(그리스), 오시리스(이집트)는 근본적인 면에서 동일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세 명의 신들은 모두 위대한 성모 여신들에게서 태어났고 일반적으로 밤하늘을 나타낸다. 더욱 특이한 것은, 그들은 오리온자리를 상징하며, 그들의 신화에는 오리온자리에 있는 춘분점에 대한 언급이 들어있는데 그 시기는 기원전 7000년에서 기원전 5000년대와 일치하고 대략 쌍둥이자리 시대에 해당한다. 고대인들은 춘분점 세차운동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들은 오리온 신화를 황소자리 시대와 후대의 양자리 시대의 상징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유대인의 역사1

–  폴 존슨 / 김한성 역 / 살림 / 2005.03.30

 

그리스인들은 유일신론자가 아니라 다신론자들이었으며, 이미 이집트에서 종교적인 혼합주의를 습득한 상태였다. 종교적 혼합주의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신들을 종합적인 다신론체제 속에서 하나로 통합시키는 합리화를 말한다. 그와 같은 변종 가운데 하나가 태양신인 아폴로, 헬리오스, 헤르메스이다.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디오니소스 제의를 이집트의 이시스 제의와 섞어버렸다. 치료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는 이집트의 신인 임호텝과 융합되었다. 주신인 제우스는 이집트의 암몬 신과 페르시아의 아후라-마즈다 신, 그리고 그들 모두가 관심을 두었던 유대인의 야웨와 동일시되었다. 언급할 필요도 없이 그러한 방식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이해하는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물론 본질적인 문제는 그리스에서 말하는 신에는 유대인들이 품었던 무한한 권능이라는 성격을 담아낼 수 없었다는 데에 있다. 유대인들은 인간과 신 사이에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반면 그리스인들은 계속해서 인간을 높이고 – 그들은 프로메테우스 같은 존재들이었다 – 신을 낮추었다. 그들에게 있어 신들은 단지 존경받는 성공한 조상들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들로부터 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 군주를 신격화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었다.

 


위키백과 : 그리스 신화

 

고대 그리스의 신화는 인도 신화와 더불어 그 짜임새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신화의 수에 있어서 가장 풍부한 신화로 손꼽힌다. 고대 그리스신화의 형성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이미 기원전 8세기를 전후로 신들의 계보와 그들을 둘러싼 갖가지 이야기들이 거의 틀이 잡힌 것으로 보인다. 고대 그리스 신화가 이와 같은 짜임새를 갖추기까지에는 물론 오랜 시간이 걸렸을것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특히 고대 그리스문명보다 앞선 주변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및 이집트 문명에서 적지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이 외부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들을 그들의 환경과 생활 습관에 맞게 다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덧붙여 엮어나감으로서 신화세계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은 이미 기원전 4세기 이래로 많은 신화작가, 역사 지리학자, 철학자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이루졌다.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신화에 관한 서적은 그리 많지 않지만, 여기에 인용된 원전들의 이름들을 미루어 볼 때, 당시의 신화는 고대 그리스문학의 중요한 장르였다.

 

고대 그리스문명의 쇠퇴한 후에도 그들의 신화는 고대 로마인들에 의해 정신적 유산으로 높이 평가되어 로마 신화에 대부분 수용되었다.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네이버 지식백과(종교학대사전) : 그리스 신화

뒤피의 저서 『모든 제례의 기원』: The origin of all religious worship

http://en.wikipedia.org/wiki/Charles-Fran%C3%A7ois_Dupuis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71101101134&Section=

http://www.artic.edu/~llivin/research/greeks_egyptian_gods/index.html

http://www.wisdomworld.org/additional/ancientlandmarks/OsirisIsisHorusAndSet.html

http://www.argyrosargyrou.fsnet.co.uk/Myths.htm

세차운동 (Precession) : http://yellow.pe.kr/110052210925

 

그리스 신화와 이집트 신화 – 신들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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