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소스와 오시리스

그리스인들은 디오니소스(Dionysos)를 이집트 신인 오시리스(Osiris)와 같다고 보았다. 관련 자료를 모아 보았다.

 

※ 그리스 신화와 이집트 신화 – 신들의 비교 : http://yellow.kr/blog/?p=1262

 

‘죽음과 부활의 신’인 오시리스(Wesir, Asr, Ausir, Asiri, Ausar, Osr등)는 이집트에서 가장 유명한 신이다. 그러나 그 기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세기 초에 제인 해리슨(Jane Ellen Harrison)은 이렇게 썼다. “모든 이집트 신 가운데, 아니 어쩌면 고대의 모든 신들 중에서 오시리스만큼 오랫동안 살아남아 큰 영향력을 행사한 신은 없었다. 그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위대한 부활신 계급의 표본으로 우뚝 서 있다.”

 

1

– 오시리스의 녹색 피부는 재탄생을 상징한단다.

 

신왕국(BC 1539~1075) 이전의 오시리스의 형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시기에 묘사되는 오시리스의 모습은 한 손에 지팡이를, 다른 한 손에 도리깨를 쥔 채 팔짱을 끼고 있는 미라의 형상이었다. 턱수염을 가늘게 땋아내렸으며 상(上)이집트의 흰 왕관에 2개의 붉은 깃털을 꽂은 아테프 왕관을 머리에 쓰고 있다.

 

유명한 신이므로 나중에 따로 정리가 필요하겠다:

※ 오시리스 : https://en.wikipedia.org/wiki/Osiris

※ 이시스와 오시리스 신화 (Osiris Myth) : http://yellow.kr/blog/?p=1218

 

 

디오니소스의 기원도 역시 불분명하다. 그의 이름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BC 1500 ~ BC 1100 경의 고대 그리스 미케네 문명 시기로 보고있다.

일반적으로 디오니소스는 에게 해 연안의 고대 그리스의 여러 부족들 사이에서 일찍부터 새로운 계절의 활력을 가져다 주는 신으로 숭배된 것으로 보이며, 기원전 8세기를 전후로 고대 그리스 신화가 틀이 잡히면서 널리 알려지고, 디오니소스를 둘러싼 여러 가지 신화가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디오니소스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는 오늘날 주로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박카이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호메로스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2

– 술잔(칸타로스)을 들고있는 면류관을 쓴  디오니소스 / BC 6세기 후반

 

죽었다 부활한 오시리스는 디오니소스(그리스), 탐무즈(메소포타미아), 미트라(페르시아), 아티스(소아시아), 아도니스(시리아), 바쿠스(로마), 예수와 비슷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Dying-and-rising_god

https://en.wikipedia.org/wiki/Dionysus

 

3

– AD 3세기의 부적 그림(?)

ΟΡΦΕΟΣ ΒΑΚΚΙΚΟΣ(ORPHEOS BAKKIKOS), 오르페우스 바쿠스(디오니소스)

 

다음과 같이 자료를 찾았다.

 


헤로도토스 역사

–  헤로도토스 / 박현태 역 / 동서문화사 / 2008.07.01

 

…… 다른 배로 갈아타고 12일 걸려서 메로에라고 하는 큰 도시에 닿는다. 이 도시는 에티오피아의 이전 수도라고 한다. 이 도시의 주민들이 숭배하는 신은 제우스와 디오니소스 둘(제우스는 암몬, 디오니소스는 오시리스를 가리킨다) 뿐인데, 그들이 이 두 신을 숭상하는 마음은 매우 두텁다. 여기에는 제우스의 신탁소가 있으며, 신이 신탁을 내려 싸움을 명하면 어디든 신이 가리키는 대로 군을 진격시킨다.

……

모든 이집트인이 한결같이 같은 신을 숭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시스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와 같은 신이라고 그들이 말하는 오시리스 두 신만은 예외이다. 이 신들만은 모든 이집트인이 똑같은 방식으로 숭상하고 있는 것이다.

……

이집트에서는 일반적으로 돼지를 신의 제물로 바치는 일을 금하고 있다. 다만 세레네(달의 신)와 디오니소스*에게만은 같은 때, 즉 같은 보름날에 돼지를 제물로 바치고 그 고기를 먹는다. 이집트인은 다른 제례에서는 돼지를 금기시하는데, 왜 이 제례 때만은 돼지를 제물로 바치는가에 대해서는 이집트인 사이에 전승이 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

디오니소스에게는 제사 전날 저마다 집 앞에서 새끼돼지를 잡아서 바치고, 그 돼지새끼는 그것을 판 돼지치기에게 주어 가지고 돌아가게 한다. 그 이외의 점에서는, 이집트의 디오니소스 제사는 그리스와 거의 동일하게 거행되는데, 다만 그리스와 같은 가무 행사는 없다. 이집트인은 남근상(男根像) 대신에 다른 것을 고안하였는데, 이것은 길이 1페키스(약 4.5 cm) 가량의 실로 조작하는 상像이다. 동체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정도로 긴 남근이 움직이는 장치를 여자들이 짊어지고 마을을 돈다. 피리를 선두로, 여자들은 디오니소스의 찬가讚歌를 부르면서 그 뒤를 따른다. 상像이 그와 같이 큰 남근을 갖추고, 또 몸의 그 부분만이 움직이는 유래에 대해서는 성설화(聖說話)가 전해오고 있다.

여기서 나는, 아미테온의 아들 멜람푸스**는 위의 희생식(犧牲式)에 대해서 모르기는 커녕 이에 정통했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멜람푸스야말로 디오니소스의 이름을 비롯하여, 그 희생식이나 남근상의 행렬 등을 처음으로 그리스인에게 소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멜람푸스는 이 모든 것을 일관해서 가르친 것이 아니고, 그보다 뒤에 나타난 현자들이 그의 교설敎說을 부연敷衍 · 발전시킨 것이다. 여하튼 디오니소스를 위해 남근상을 메고 행렬하는 의식을 소개한 것은 멜람푸스 바로 그 사람으로, 그리스인이 현재 행하고 있는 행사는 그의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생간건대 멜람푸스는 유능한 사람으로, 스스로 예언술을 생각해 내기도 하고, 또 이집트로부터 여러 가지 것을 배워서 그다지 변경을 하지 않고 그대로 그리스에 소개했는데 디오니소스의 행사도 그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이집트에서 행하여지는 이 신의 행사와 그리스에서 행하여지는 행사의 유사점이 적어도 우연의 일치는 아니라고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만약에 우연의 일치라고 한다면 이러한 행사도 그리스다운 성격을 지녀야 했을 것이고, 그 기원도 새로울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행사나 그 밖의 풍습을, 이집트인이 그리스인으로부터 도입한 것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내 생각에 멜람푸스는 디오니소스의 행사를 티로스 사람 카드모스나 그를 따라 페니키아에서 오늘날 보이오티아라고 불리는 지방으로 내왕했던 사람들로부터 들어서 알았으리라고 하는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디오니소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신의 이름은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들어갔다. 그리스의 신들이 그리스 이외의 나라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은, 내가 직접 조사해서 확인한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은 이집트로부터 전래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외로서는 앞에서도 말한 포세이돈과 디오스크로이 외에 헤라 · 헤스티아 · 테미스 · 카리테스 · 네레이데스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이외의 신들의 이름은 줄곧 이집트에 있었다. 이상 나는 이집트인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인이 이름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신들은, 포세이돈을 제외하고는 펠라스고이인이 명명한 것일 것이다.

……

그런데 이집트인이 하는 말로는, 지하계(地下界)를 지배하는 것은 데메테르와 디오니소스 두 신이라고 한다. 또 인간의 영혼은 불멸이며, 육체가 죽으면 차례로 태어나는 다른 동물의 체내로 들어가서 머문다는 설을 처음으로 주창한 것도 이집트인이다.

……

…… 신들이 사람보다 앞선 시대에 이집트를 지배했다. 이 신들은 인간과 함께 살고, 주도권은 언제나 이 신들 중 하나에게 있었다고 한다. 신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이집트의 왕이 된 것은 오시리스의 아들 오로스(또는 호로스)로, 이는 그리스에서는 아폴론이라고 불리는 신이다. 이 신이 티폰을 타도하고 이집트에 군림한 마지막 신인 것이다. 오시리스는 그리스 이름으로 말하자면 디오니소스이다.

그리스에서는 헤라클레스와 디오니소스와 판을 가장 새로운 신으로 여긴다. 반면 이집트에서는 판이 최초의 신들이라고 일컬어지는 8신에 포함되고, 헤라클레스는 제2의 신들 이른바 12신의 한 사람이고, 디오니소스는 12신에서 태어난 제3의 신들의 계열에 들어간다.

 

* : 디오니소스는 오시리스이지만, 세레네는 어느 신에 해당하는지 잘 알 수 없다. 네케프나 이시스로 추정되고 있다.

** : 전설상의 예언자 중 최고最古의, 그리고 가장 이름이 높은 인물이다.

 


블랙 아테나

–  마틴 버낼 / 오흥식 역 / 소나무 / 2006.01.10

 

기원전 15세기 중반 이집트 제18왕조는 레반트에 강력한 제국을 확립한 후 에게해 지역에서 공물을 받았다. 제18왕조의 유물이 그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었는데, 나는 이를 이집트의 영향력이 다시 고조된 결과라고 믿는다. 아마도 바로 이 시기에 디오니소스 숭배(전통 학설은 더 늦은 시기에)가 그리스에 도입되었을 것이다. 특히 나는 데메테르를 섬기는 엘레우시스 신비 의식이 이 시기에 확립되었다는 고대 전승을 받아들인다.

……

이집트에서 숫양/염소 숭배는 아몬 및 오시리스와 관련되었고, 에게 해 지역에서는 그리스의 아몬과 오시리스 격인 제우스 및 디오니소스와 관련되었다.

……

그렇다면 암몬의 아들은 누구였을까? 초기 이집트 전승에 따르면, 오시리스는 라의 아들이었다. 제12왕조에서 아몬 숭배가 융성하자 아몬과 라는 아몬-라로 합쳐졌다. 후기 신왕국 시대에 이르렀을 때에는, 라와 오시리스가 신비적인 융합을 이룬다고 여겨졌다.

……

어쨌든 알렉산드로스는 스스로를 암몬과 암몬의 아들이 합쳐진 신성한 존재로서 여겼던 듯하다.

알렉산드로스가 이룬 현실상의 정복으로 디오니소스 혹은 오시리스(디오도로스는 디오니소스를 오시리스라고 불렀다)가 광대한 원정을 통해 동방을 문명화시켰다는 신화의 중요성이 더더욱 커졌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한 원정의 흔적은 제18왕조나 혹은 중왕국 시대부터 전해내려 온 이집트 전승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제임스 프레이저가 지적했듯이, 심지어 그리스에서도 알렉산드로스가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에우리피데스가 그러한 원정에 대해 개략적으로 서술한 바 있었다. 디오니소스에 대한 알렉산드로스는 긴장감을 느꼈으며, 적어도 정복 이후에는 디오니소스에게 일종의 경쟁심을 느꼈다. 알렉산드로스는 인도 북서부 산악 지대에 있는 니사(Nysa)에 도착하여 원주민들로부터 니사가 디오니소스와 관련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의 일이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그는 디오니소스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는 또한 디오니소스가 니사를 건설했다는 이야기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 이야기대로라면, 그는 디오니소스가 도달한 곳에 이미 도달한 것이며, 디오니소스보다 더 멀리 가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알렉산드로스의 인도 여행이 ‘디오니소스 주신제(酒神祭)를 흉내낸 것’이라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알렉산드로스가 수시로 벌인 긴 주연(酒宴)에는 정치적이고 제례적인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알렉산드로스의 행동에 결정적인 배경을 제공한 것이 오시리스(디오니소스)가 수행한 문명화 임무라는 점은 의심할 나위 없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와 유사하며 그의 경쟁자이기도 한 암몬의 아들로 인정받는 것은 그가 세운 인생 계획의 핵심이었다.

……

더구나 플루타르코스는 또한 이집트 종교와 그리스 종교 사이에 보다 근본적인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시스와 오시리스』를 클레아에게 바치는 헌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오시리스가 디오니소스와 동일한 신이라는 것을 어느 누가 클레아 당신보다 더 잘 알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델포이 무녀들(디오니소스에게 귀의한 자들)의 우두머리이며, 거룩한 오시리스 의식에서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의해 신께 바쳐졌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그는 이집트 제식과 델포이 제식의 유사점을 상세히 서술했다. 이 책에서 플루타르코스는 세 번에 걸쳐 디오니소스와 오시리스가 같다고 했다. 이시스와 데메테르가 같음을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둘 또한 같다고 여겼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블랙 아테나 2

– 마틴 버낼 / 오흥식 역 / 소나무 / 2012.03.25

 

19세기 비교종교학의 위대한 선구자인 로버트슨 스미스는 전설적인 영웅 멤논의 한 측면을 멤논과 가나안의 나아만(Naaman, ‘내 사랑’) 사이의 혼동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았다. 나아만이라는 별명은 가나언어의 아도니(Adoni, ‘나의 주’)에서 유래한, 그리스어로는 아도니스로 알려진 젊어서 죽은 신을 나타내기 위해 일반적으로 쓰인다. 그리스의 꽃 이름 아네모네(Anemone)는 아마도 나아만에서 파생된 것 같다. 그러한 동음이의법이 사용되었든 아니든 간에 나아만의 경우는 멤논의 정복이나 죽어가는 신들인 오시리스 및 디오니소스(아도니스와 닮은 짝들이다)의 정복과 잘 맞아떨어진다. 또한 북서 아나톨리아에는 젊어서 죽은 후 부활한 신 아티스(Attis)를 주목해야 한다. 이 신의 숭배는 오시리스와 아도니스의 숭배와 매우 닮았다.

 


황금가지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 박규태 역 / 을유문화사 / 2005.06.01

 

고대 저술가들은 오시리스, 아도니스, 아티스, 디오니소스, 데메테르 등의 신화와 의례를 본질적으로 동일한 유형의 종교로서 함께 묶어 분류했다. 이 주제에 관한 고대 저술가들의 의견 일치는 너무나 분명해서 그것을 단순한 상상으로 치부하거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오시리스 의례가 비블로스의 아도니스 의례와 너무 비슷해서, 비블로스 주민들조차 때로는 그들이 죽음을 애도한 신은 아도니스가 아니라 오시리스였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만일 두 신의 의식이 거의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유사하지 않았다면, 이런 주장이 나왔을 턱이 없다. 또한 헤로도토스는 오시리스 의례와 디오니소스 의례의 유사성이 현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후자만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그는 디오니소스 의례란 당시 그리스인이 이집트의 오시리스 의례를 약간 변형시켜 차용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더 나아가 탁월한 비교종교학도였던 플루타르코스도 오시리스 의례와 디오니소스 의례의 유사점을 상세하게 예거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고대 저술가들이 분명하게 인식했던 사실에 대해, 그처럼 지적이고 신뢰할 만한 증인들이 제시한 증거를 부정할 수 없다.

 


세계의 모든 신화

–  케네스 C. 데이비스 / 이충호 역 / 푸른숲 / 2008.11.20

 

디오니소스가 떠맡은 또 하나의 중요한 역활은 부활하는 신이었다. 한 전설에 따르면, 디오니소스는 헤라의 부탁을 받은 티탄에게 붙들려 일곱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긴다. 티탄은 갈기갈기 찢은 그의 몸을 솥에 넣고 요리해 먹어버렸다. 그러나 디오니소스는 불사의 몸이라 다시 살아나는데, 정확하게 어떤 단계를 거쳐 부활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디오니소스는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같은 그 이전의 부활신과 연결되며, 그리스도교가 마침내 그리스로 전파되었을 때에는 초기의 그리스도교 의식하고도 연결되었다.

 


베르낭의 그리스 신화

–  장 피에르 베르낭 / 문신원 역 / 성우 / 2004.09.08

 

그리스 신들 중에서 디오니소스는 조금 유별난 신이다. 그는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신이다. 따라서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신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지나는 곳에서 제대로 인정받고 특권을 누리기를 바라는 신이다. 특히 그는 테베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테베 사람들이 그를 숭배하기를 바랐다. 그는 아주 먼 곳에서 온 나그네인 척하며 테베에 들어간다. 그는 대접하고 인정받기 위해서, 말하자면 공적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고향인 테베로 돌아간다.

루이 제르네(Louis Gernet)의 표현을 빌리면, 디오니소스는 방랑자이면서 한 곳에 머물기 때문에 그리스 신들 중에서 타자의 얼굴, 즉 다르고 당혹케하며 무질서한 것을 상징하는 신이다. 또한 마르셀 드티엔(Marcel Detienne)이 말했듯이, 그는 전염성이 강한 신이기도 하다. 전염병처럼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 불쑥 찾아가도, 그가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곳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면서 그를 향한 숭배가 파도처럼 퍼져나간다.

디오니소스의 등장과 함께 이타성(異他性), 즉 자아가 아닌 타자가 가장 친숙한 곳에서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만든다. 그는 전염병과 비슷하다. 방랑하면서도 균형감을 잃지 않는 그는 인간과 가까운 신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신들과는 다른 식으로 인간과 관계를 맺는다. 더 친밀하고 더 개인적으로 더 가까운 관계이다. 디오니소스는 그의 숭배자와 일종의 대면 관계를 갖는다. 숭배자는 최면에 걸린 듯한 눈빛으로 디오니소스의 얼굴, 아니 가면을 본다.

이렇게 디오니소스는 인간과 가까운 신인 동시에 어쩌면 인간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신, 가장 접근하기 힘든 신비로운 신, 우리가 이해해서 어떻게 정의할 수 없는 신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통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여신이고, 아테나는 전쟁과 지성의 여신이며, 헤파이스토스는 불과 대장간의 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디오니소스는 뭐라 딱히 규정지을 수가 없다. 그는 어디에도 없는 동시에 모든 곳에 있으며, 존재하는 동시에 부재한다.

이러한 상반된 두 면의 긴장관계를 고려할 때 디오니소스의 이야기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인간 역시 방랑하고 배회하며 잠시 들렀다가는 언제나 다시 길을 떠나는 여행자이지만, 확고한 자신의 자리를 갖고 인정받는 것을 넘어 자신이 선택받는 가정을 원한다는 것이다.

 


축제의 문화사

–  윤선자 / 한길사 / 2008.04.15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는 바빌로니아의 사세 축제와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 디오니소스 축제 때에도 역시 사람들은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의 도래를 기뻐하며 들판을 행진하였고 요란한 가장행렬과 연극제를 벌이며 난장을 즐겼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카니발의 기원을 찾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디오니소스와 관련된 신화는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없고 다양한 판본과 해석이 있다. 시인 논노스(Nonnos)가 전하는 디오니소스 신화는 이렇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페르세포네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는 태어나자마자 제우스의 왕좌를 빼앗는 패륜을 저지른다. 그 때문에 티탄들의 습격을 받게 되고 디오니소스는 수소로 변신해 도망쳤다. 그러나 결국 티탄들에게 잡혀 몸이 갈기갈기 찢겨 죽임을 당하였다 (여기서 몸이 찢기는 테마는 오시리스와 비슷하다). 그런데 파르미쿠스 마테르누스가 전하는 내용은 이것과 좀 다르다. 그에 의하면 디오니소스는 크레타의 왕 유피테르의 서자였다고 한다. 유피테르가 잠시 여행을 떠난 후 그의 아내 유노는 디오니소스를 질투하여 딸랑이와 만화경으로 디오니소스를 유인하여 숲으로 데려갔고, 거기서 유노의 하수인인 티탄들이 디오니소스의 사지를 토막 내 살해하였다는 것이다.

디오니소스를 제우스와 데메테르의 아들로 묘사한 또 다른 판본도 있는데 여기에는 디오니소스의 부활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 판본에 의하면 데메테르는 티탄들에 의해 토막 난 아들의 유해들을 찾아내 그것을 봉합해 원래대로 부활시켰다고 한다 (이 대목은 오시리스를 부활시킨 이시스를 떠올리게 한다). 이와 달리 죽은 디오니소스의 심장을 삼킨 제우스가 세멜레와 잠을 자 다시 그를 낳아 부활시켰다는 판본도 있다. 애초에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디오니소스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설에 의하면 제우스의 부인 헤라가 세멜레를 질투하여 그녀를 제우스의 번개에 태워 죽였는데 그때 제우스는 세멜레의 몸속에 든 디오니소스를 구해 자신의 허벅지에 넣어 키웠다.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세멜레의 언니인 이노(Ino)에게 맡겨 키워졌지만 헤라의 저주를 받고 이노 역시 미쳐버렸다. 이후 디오니소스는 나사(Nysa)로 가서 사람들에게 포도재배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런 다양한 판본들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끌어낼 수 있는데 그것은 디오니소스가 육신이 찢겨 죽임을 당하고 다시 부활했다는 테마이다. 이 육신의 찢김과 부활의 테마는 그의 숭배 의례에서도 핵심을 이룬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그러한 테마가 이시스의 테마와도 유사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시스 숭배와 디오니소스 숭배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이후 카니발 축제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  베르나르 베르베르 / 임호경,이세욱 역 / 열린책들 / 2011.03.03

 

< 신비 의식 >

고대의 많은 종교에는 입문자들에게 심오한 교의를 전수하기 위한 비밀 의식이 있었다. 그리스어로는 그것을 ‘미스테리아(신비 의식)’라고 부른다.

일찍이 기원전 18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엘레우시스의 미스테리아는 서양의 신비 의식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이 의식은 여러 과정을 포함하고 있었다. 바닷물에 들어가 몸을 씻는 목욕재계, 3일 동안의 금식, 기도, 성스러운 잔으로 보리차를 마시는 의식, 죽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내려가는 상황의 재연, 구원과 부활에 관한 깨달음의 전수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디오니소스 신을 숭배하는 오르페우스 밀교의 신비 의식은 다음과 같은 7단계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째, 자각. 둘째, 결단. 셋째, 음복飮福. 넷째, 성적으로 하나 되기. 다섯째, 시련. 여섯째, 디오니소스와 하나 되기. 마지막으로 춤을 통한 해방.

그런가 하면, 이집트에서 거행되던 이시스 신비 의식은 4원소와 연관된 네 가지 시련을 포함하고 있었다. 먼저 흙의 시련이라는 단계에서, 교의를 전수받으려는 입문자는 기름 램프에 의지해서 혼자 깜깜한 미로 속을 나아가야 했다. 이 미로는 깊은 구렁으로 이어져 있었고, 입문자는 사다리를 타고 거기로 내려가야 했다. 불의 시련이란 빨갛게 달군 쇳덩이들을 넘어가는 의식이었다. 쇳덩어리들은 한 발로 겨우 디딜 수 있는 자리만 남겨 놓고 마름모꼴로 배치되어 있었다. 물의 시련은 램프를 든 채로 나일 강을 건너는 것이었다. 공기의 시련은 도개교 위에서 거행되는 의식이었다. 입문자는 다리가 열리는 순간 허공으로 몸을 날려 심연으로 추락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러고 나면 교의 전수자는 입문자의 눈을 가리고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런 다음 눈가리개를 풀어 주고 입문자를 두 개의 각기둥 사이에 세워 두었다. 입문자는 거기에서 자연학과 의술과 해부학과 상징체계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책들의 전쟁

–  조나단 스위프트 / 류경희 / 2003.08.15

 

고대의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광신도들의 흔적은 이집트인들에게서 발견된다. 이들은 그리스에서 비밀 축제, 찬양 축제, 디오니소스 주신(酒神)제 등의 이름으로 알려진 축제 의식을 만든 사람들이다. 이 축제가 오르페우스에 의해 그들에게 소개가 된 것인지, 아니면 멜람푸스에 의해 그들에게 소개가 된 것인지에 대해서 지금 여기서, 혹은 아마 앞으로도, 따져보지 않기로 하겠다. 어쨌든 이 축제는 그리스인들이 디오니소스 신이라고 불렀으며 따라서 박카스 신과 동격이었던 오시리스 신의 영광을 기리기 위한 축제였다. 이 사실 때문에 몇몇 피상적인 독자분들은, 이 축제의 모든 행사가 단지 술에 흠뻑 취하여 고함을 질러대고 짝을 찾아 날뛰는 일들로 이루어져 있었을 거라고 상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상은 몇몇 현대작가들에 의해 속임수로 잘못 전달된 수치스러운 오류이다. 이들 현대작가들은 이 축제를 너무 액면 그대로, 즉 글자 그대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들은 고대 시대란 뒤쪽부터 추적해 나가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유태인들처럼 학문이 일종의 마법이기라도 한 듯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자신들의 책들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권말의 색인을 뒤적임으로써 책을 이해하는 척하며 거들먹거리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마치 어떤 여행자가 궁정의 내실 하나만 보고 와서는 그 궁정 전체를 설명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 태도이다. 또 의뢰인의 엉덩이를 들여다보고 그 사람의 운명을 읽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북아메리카 운명 예언가들의 행태와도 비슷하다.

 


NAVER 지식백과 : 디오니소스 신화와 와인

–  문화원형백과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84250&cid=49275&categoryId=49275

 

이집트인들이 오시리스를 와인의 신으로 섬겼듯이 그리스인들은 디오니소스(Dionysos)를 와인의 신으로 섬겼다. 실제로 그리스인들은 오시리스를 디오니소스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마찬가지로 디오니소스는 농업과 곡식의 신으로 간주되었다. 그 자신이 농사일을 하였다고도 전한다. 원래는 쟁기를 사람이 손으로 끌었는데 디오니소스가 처음으로 소에게 쟁기를 끌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농사법을 가르쳐 줌으로써 그는 농부들의 수고를 덜어 주었다고 한다.

……

그리스인들은 디오니소스가 오시리스 같은 식물신(植物神)들과 마찬가지로 폭력적으로 살해당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믿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신성한 의식 속에서 재연하였다.

 


유럽 문명의 아프리카 기원
–  장 필리프 오모툰드 / 경희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역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5.11.20

 

…… 하지만 가장 오래된 전통에 따르면, 디오니소스는 흑아프리카 리비아에서 태어났다. 헤로도토스는 제우스가 디오니소스를 자신의 넓적다리 안에 넣어서 에티오피아의 니사로 옮겼다고 보았다. 하지만 디오도로스와 다른 그리스 석학들의 이야기를 검토해 보면 다음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진다. 즉 그리스인들은 여러 이집트 텍스트들, 즉 이집트 콩트와 전설들은 물론 사자의 서, 피라미드 텍스트, 오시리스와 이시스와 세트 이야기 등을 자신들의 문화 전통, 신앙, 전설들 안에 짜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그리스 영웅 이야기의 상당수 에피소드는 이집트 텍스트(콩트, 소설, 종교 서적 등)의 어느 한 대목과 일치한다. 고대 그리스의 젊은 역사가들이 그리스 신화의 의미를 더 잘 파악하기 위해서 이집트학을 최소한이라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와인의 문화사
–  고형욱 / 살림 / 2006.10.30

 

디오니소스가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났듯이 예수 또한 마찬가지다. 와인의 역사에서 오시리스와 디오니소스, 그리고 예수는 유사한 길을 걷는다. 바로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는 과정이다.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가 지녔던 같은 상징성을 예수 또한 갖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예수는 부활한 오시리스, 디오니소스와 같은 인상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들은 포도나무와 동일한 존재가 된다.

 


고대 작가들의 언급

 

헤로도토스 뿐만 아니라 오시리스와 디오니소스가 같은 신이라는 것을 얘기한 많은 고대 작가들이 있다.

 

“There is only the difference in names between the festivals of Bacchus and those of Osiris, between the Mysteries of Isis and those of Demeter.”

– 디오도로스(Diodorus Siculus), The Library of History, 1.13

 

“Osiris, they say, was reared in Nysa, a city of Arabia Felix near Egypt, being a son of Zeus; and the name which he bears among the Greeks is derived both from his father and from the birthplace, since he is called Dionysos.”

– 디오도로스, The Library of History 1.15

 

“The discovery of ivy is also attributed to Osiris by the Egyptians and made sacred to this God, just as the Greeks also do in the case of Dionysos. And in the Egyptian language, they say, the ivy is called khenosiris, the ‘plant of Osiris’ and for purposes of dedication is preferred to the vine, since the latter sheds its leaves while the former ever remains green.”

– 디오도로스, The Library of History, 1.17.4.

 

“Osiris has been given the name Sarapis by some, Dionysos by others, Pluto by others, Ammon by others, Zeus by some, and many have considered Pan to be the same God; and some say that Sarapis is the God whom the Greeks call Pluto.”

– 디오도로스, The Library of History, 1.25

 

“That Osiris is identical with Dionysos who could more fittingly know than yourself, Clea? For you are at the head of the Thyiades of Delphi, and have been consecrated by your father and mother in the holy rites of Osiris.”

– 플루타르크(Plutarch), On Isis and Osiris, 35

 

“It is proper to identify Osiris with Dionysos.”

– 플루타르크, On Isis and Osiris, 28

 

“Dionysos was the first to bring from India into Egypt two bulls, one named Apis and the other Osiris.”

– Phylarchus

 

“Dionysos and Osiris are the same, who are called Epaphus”

– 므나세아스(Mnaseas)

 

Cicero included Osiris among the many Gods equated with Dionysos by the Greeks.

– 키케로(Cicero),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De Natura Deorum) 3.21

 

“He [Kadmos future king of Thebes in Greece and grandfather of Dionysos] showed forth the Euian secrets of Osiridos(Osiris) the wanderer, the Aigyptian Dionysos. He learned the nightly celebration of their mystic art, and declaimed the magic hymn in the wild secret language, intoning a shrill alleluia. While a boy in the temple full of stone images, he had come to know the inscriptions carved by artists deep into the wall.”

– 논노스(Nonnos), The Dionysiaca 4.268

 

“Demeter has the same meaning among the Greeks as Isis amongs the Egyptians: and, again, Kore and Dionysus among the Greeks the same as Isis and Osiris among the Egyptians. Isis is that which nourishes and raises up the fruits of the earth; and Osiris among the Egyptians is that which supplies the fructifying power, which they propitiate with lamentations as it disappears into the earth in the sowing, and as it is consumed by us for food.”

– 포르피리우스(Porphyrius)

 

“Some say he was Dionysos, others say another – who was dismembered by the daimon Typhon and became a great sorrow for the Egyptians, they kept the memory of his dismemberment for all time.”

– 고대 그리스에 관한 백과사전인 수이다스(Suidas, 10세기 말경)의 ‘Osiris(오시리스)’에 대한 설명

 

In a dedicatory stela erected by a Ptolemaic-era prophet of Chnubis, Dionysos is called Petempamenti, “He who is in Amenti”, a title usually reserved for Osiris.

– E. R. Bevan, The House of Ptolemy, 295

 


<관련 그림>

 

4

– 이시스가 안고있는 호루스는 성모마리아와 예수와 비교된다.

 

 

5

– 호루스, 오시리스, 이시스

 

 

– 파라오 호르엠헤브(Horemheb) 무덤의 벽화에 있는 오시리스와 두 아들(?)인 아누비스, 호루스

 

 

7

– 디오니소스의 탄생 / 미국 보스턴 미술관 / ca 470 – 460 BC

바위 위에 앉아있는 제우스의 넓적다리 속에서 디오니소스가 태어나고 있다. 옆에 헤르메스가 제우스의 지팡이를 들어주고 있다.

 

 

8

– 디오니소스의 인도 원정 / 로마 국립 박물관 / 로마제국

디오니소스는 면류관과 표범가죽을 입고있다. 여사제(Maenad)와 실레노스(Silenus)와 동반하였다.

 

 

9

– 디오니소스와 아리아드네와 두 아들 / 대영박물관 / ca 575 – 525 BC

면류관을 쓴 디오니소스와 두 아들을 안고 있는 아리아드네. 왼쪽에는 헤르메스, 오른쪽에는 사티로스이다.

 

 

10

– 베수비오 산의 디오니소스(DIONYSUS ON MOUNT VESUVIUS) /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 로마제국 시대

디오니소스가 신성한 포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기독교의 화체설化體說적 교리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부터, 즉 ‘저 바깥세상’으로부터 포도의 ‘자연적 본질’을 전부 다 신의 ‘신성한 상태’로 바꿔놓으며 내려뜨리고 있다.

 

 

11

– 포도송이로서 그리스도 / the Castle of Valere, in Sion, Switzerland / 13세기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은 모두 그 잔에 담긴 포도주를 마셨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러나온 나의 언약의 피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내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새 것을 마실 그 날까지, 나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마가복음』 14:22-25)

 

※ C.S. 루이스(Lewis)는 오시리스와 디오니소스의 이교 신화가 기독교의 전조(foreshadow)였고 영적 실재(spiritual realities)에 대해 말한 것으로 받아 들였다.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네이버 백과사전 : http://100.naver.com/100.nhn?docid=115593

네이버 지식백과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28368&mobile&categoryId=200000080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 오시리스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16a1079a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 디오니소스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05d2758a

신화의 이미지 (조지프 캠벨)

http://en.wikipedia.org/wiki/Dionysus

http://www.theoi.com/Olympios/Dionysos.html

http://en.wikipedia.org/wiki/Dying_god

http://en.wikipedia.org/wiki/Jesus_in_comparative_mythology

https://en.wikipedia.org/wiki/Crucifixion_in_the_arts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2/12/26/201212260500006/201212260500006_1.html

[미니북] 왜 간다라 미술에 매료되는가

2016-07-17  [김승중 교수의 ‘그리스 문명의 결정적 순간’(5)] 디오니소스의 고향, 테베에서 그린 신화 속 영웅들

 

디오니소스와 오시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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