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성열의 세계 – 문화재 : http://yellow.kr/nt.jsp
※ 명승 제44호 / 단양 도담삼봉(丹陽 島潭三峰) / 2008년 9월 9일 지정 / 충북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 195번지 등
문화재청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단양 도담삼봉(丹陽 島潭三峰)」은 절경이 특이하고 아름다워 단양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며 단양군수를 지낸 이황을 비롯하여 황준량, 홍이상, 김정희, 김홍도, 이방운 등이 많은 시와 그림을 남긴 곳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개국공신인 정도전 탄생에 관련한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데 정도전은 자신을 삼봉이라 자호할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고 전한다.
도담삼봉은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원추 모양의 봉우리로 남한강이 휘돌아 이룬 깊은 못에 크고 높은 장군봉을 중심으로 세 개의 봉우리가 우뚝 솟아 그 형상이 기이하고 아름다우며 남한강과 어우러져 뛰어난 절경을 보여주고 있다.
도담삼봉은 남한강이 크게 S자로 휘돌아가면서 강 가운데에 봉우리 세 개가 섬처럼 떠 있어 ‘삼봉’이라고 했고, 섬이 있는 호수 같다고 하여 ‘도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남한강 물줄기가 만들어낸 최고의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1897년에 조선에 와 전국 팔도를 두루 여행했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은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도담의 아름다움에 취해 이렇게 말했다.
한강의 아름다움은 도담에서 절정을 이룬다. 낮게 깔린 강변과 우뚝 솟은 석회 절벽, 그 사이의 푸른 언덕배기에 서 있는 처마가 낮고 지붕이 갈색인 집들이 그림처럼 도열해 있는데 이곳은 내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절경이었다.
조선시대 문인들과 화가들이 도담을 예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겸재 정선, 호생관 최북, 진재 김윤겸, 단원 김홍도, 기야 이방운 등등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다.
도담삼봉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유년시절을 보낸 곳으로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도담삼봉의 아름다움에 빠졌다고 전해진다.
남한강 푸른 강물 가운데 우뚝 선 기암괴석이 모두 남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데, 가운데 봉우리가 가장 높고, 큰 봉우리 허리쯤에 수각(水閣)이 있어 절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망루 구실을 한다. 조선왕조의 개국 공신인 정도전(鄭道傳)이 이곳 중앙봉에 정자를 짓고 이따금 찾아와서 경치를 구경하고 풍월을 읊었다고 한다. 충주댐의 완성으로 약 1/3이 물에 잠기게 되었지만, 월악산국립공원에 이웃하여, 수상과 육상교통이 개발됨에 따라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도담삼봉의 세 봉우리를 장군봉·첩봉·처봉 이라 부른다. 가운데 봉우리가 가장 높고 봉우리 중간쯤에 누각이 있어 절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도담삼봉에 도착하면 유람선을 타고 도담삼봉 가까이에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충북의 최고 관광지는 단양의 도담삼봉인 것으로 나타났다(2017년 1월 19일 연합뉴스).
※ 단양팔경 (두산백과 : 단양팔경)
① 하선암(下仙岩), ② 중선암(中仙岩), ③ 상선암(上仙岩), ④ 사인암(舍人岩), ⑤ 구담봉(龜潭峰), ⑥ 옥순봉(玉筍峰), ⑦ 도담삼봉(嶋潭三峰), ⑧ 석문(石門)
– 아래 사진보다 수면이 높아진 도담삼봉 (출처 : 위키백과)
남한강 한가운데 세 개의 봉우리가 솟아있다. 가운데 봉우리는 남편봉(또는 장군봉)이라 부르고 그보다 좀 작은 북쪽 봉우리는 처봉, 남쪽 봉우리는 첩봉이라 부른다. 처봉은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앉은 모습을 하고 있고 첩봉은 아기를 밴 모습으로 남편봉을 바라보고 있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 선생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젊은시절 이곳에서 청유하였다고 전해지는 도담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매년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어린 소년 정도전이 “우리가 삼봉을 정선에서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으니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장군봉에는 ‘삼도정’이라는 육각정자가 있다. 영조 42년(1766) 가을 조정세 단양군수가 이곳에 능영정을 창건했었는데 폐허가 되었고, 1807년 김도성이 목조 사각정을 건립 보존해오다가 1972년 대홍수로 인하여 유실된 것을 1976년 10월 철근콘크리트 육각정을 신축하고 삼도정이라 명명하였다.
충주호가 건설되면 도담삼봉도 수몰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유량이 증가하여 과거 강변에 있었던 것이 강 가운데 위치하게 되면서 오히려 관광지로서 더욱더 각광을 받고 있다. 도담삼봉은 남한강 중앙의 하천에 남아 있는 잔존암괴이면서도 석회암의 불용성 부분이 남아서 이룬 일종의 라피에(lapie)이다. 라피에는 지표가 용식될 때 차별용식으로 인하여 용식구(溶蝕溝) 사이에 잔존하는 암주모양의 돌출부를 말한다. 이러한 지형을 나출 카르스트(Nackte Karst) 지형이라고 한다. 도담삼봉은 만수시 드러나는 높이는 약 6m에 불과하지만 수직의 절리면이 발달하고 하천수 및 지하수에 의한 차별침식 및 용식작용으로 형성되었다.
– 도담삼봉 왼쪽의 남한강
– 다른 방향에서의 도담삼봉 (출처 : 문화유산채널)
– 도담삼봉의 항공촬영(https://youtu.be/WBKFalZGVMU)
– 최북(1712~1786) ‘단구승유도’. 화가 최북이 도담삼봉에서 뱃놀이하는 풍경을 그렸고 당대 최고 명필 원교 이광사가 유랑 감상을 글로 기념했다.
호생관 최북은 1749년 원교 이광사(1705-1777)와 함께 단양에서 노닐며 ‘단구승유도(丹丘勝遊圖)’를 그렸다. 최북은 우리에게 자신의 눈을 찌른 기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미학사상을 토대로 그림을 그린 지조 있는 화가였다. 그림 ‘도담’의 왼쪽에는 도보(道甫)가 쓴 해제가 있다. 도보는 원교 이광사의 자이다.
해제를 풀이해 보면 기사년 봄에 한벽루에서 글씨를 썼다. 그리고 월성 최씨인 식과 함께 놀면서 그림을 그렸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그림을 그린 사람은 최북이고 그림의 대상은 도담삼봉이 된다. 최북의 도담은 현재 주차장이 있는 도담 나루터에서 보고 그린 실경이다. 그렇지만 조금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그것은 사방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대상을 현실적으로 표현하려는 진경산수의 기법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북은 정선의 진경산수에서 김홍도의 실경산수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김홍도필 병진년 화첩 (金弘道筆 丙辰年 畵帖)에서의 도담삼봉도 / 삼성미술관 리움
김홍도의 도담삼봉도는 강에서 올려다 본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김홍도필(金弘道筆) <병진년 화첩(丙辰年 畵帖)>은 조선 후기의 화가 단원 김홍도(1745∼?)가 그린 산수화와 풍속화 등을 모은 화첩이다.
단양 8경의 하나인 사인암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산수화에도 그의 특색이 잘 나타나는데 바위산의 모습을 근접한 시점에서 화면 가득히 배치하여 그 위용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농도와 크기를 달리하는 점과 선들을 자유롭게 사용하여 화면에 강약과 변화를 주고 있다.
– 정선이 그린 <삼도담도> / 조선 1738년 이전, 종이에 엷은 색, 34.8 * 29.2cm, 삼성박물관 리움
가늘고 차분한 필선으로 도담삼봉과 산과 나무의 형태와 표면을 처리했다. 가운데 봉우리 앞으로 선유하는 사람을 실은 배 한 척이 그려져 있는데, 뱃놀이하면서 산수 유람할 수 있는 청풍, 단양 지역 특유의 풍류를 전달한다. 충주댐 건설로 남한강 수위가 높아져서 현재의 상황과는 달리 가운데 바위 앞에 공간이 있고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그림의 운치를 더한다.
– 이방운의 도담(島潭)
단양팔경중의 하나인 석문과 도담삼봉을 그렸다. 석문은 돌이 문처럼 생기고 돌틈 사이로 강물과 구름이 보여 동천(洞天)이라고도 하였다. 이로 인해 석문을 과장하여 산봉우리 위에 그려 하늘과 통하는 문으로 표현했다. 넓은 강물 위에 경치를 즐기는 나룻배의 선비 일행에 비해 도담삼봉은 크기가 작고 배치도 실제 경치와 다르다.
조선시대 후기에 이름을 떨친 산수화가 기야 이방운(1761~1815?)이 남한강 일대를 그린 서화첩 <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 이 화첩에 담긴 8곳의 명승지는 도화동, 평등석, 금병산, 도담, 구담, 의림지, 수렴, 사인암으로 현재 단양 8경과 제천10경에 해당하는 명소이다.
<사군강산삼선수석> 서화첩은 1802년 당시 청풍부사로 재직 중이던 안숙이 남한강 일대의 명승지를 유람하고 그 감상을 시로 짓고, 당대 유명한 산수화가인 이방운에게 당시의 풍경을 그리게 하였다. 이후 김양지라는 사람으로부터 발문을 얻어, 시와 그림과 글을 같이 엮어 내어 탄생한 것으로 시(詩),서(書),화(畵)의 조화를 이룬 서화 명첩으로 평가받고 있다. 화첩 제목의 뜻을 풀어 쓰면 ‘네 개 군의 강과 산, 그리고 세 신선의 고사가 얽힌 물과 바위’ 이라는 의미인데, 여기서 ‘네 개 군’은 조선시대 당시 단양,청풍,제천,영춘을 이르며, 현재의 충북 단양과 제천 일대이다.
조용식의 ‘도담삼봉’ (2009). 도담삼봉 뒤로 보이는 풍경을 다정다감하게 접근한 것이 조선시대의 그림과 다른 특징으로 볼 수 있다.
※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 선생의 시
嶋潭三峰 (도담삼봉) 도담삼봉에서
山明楓葉水明沙 (산명풍엽수명사) 산은 단풍잎 붉었고 물은 모래 맑은데
三島斜陽帶晩霞 (삼도사양대만하) 석양의 삼봉에는 저녁놀 드리웠네.
爲泊仙槎橫翠壁 (위박선사횡취벽) 선사를 대어놓고 푸른 바위에 기대 앉아서
待看星月湧金波 (대간성월용금파) 별과 달이 금빛 물결에서 솟아오르기를 기다리려네.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문화재청 : http://www.cha.go.kr/cha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 도담삼봉
네이버 지식백과(위성에서 본 한국의 지형) : 단양 도담삼봉 라피에
네이버 지식백과(문화유산채널) : 단양 도담삼봉과 사인암
위키백과 : 도담삼봉
국립청주박물관
국민대학교
http://cafe.daum.net/dnstjsrnrhr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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