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메테르(Demeter)와 페르세포네(Persephone)의 신화가 서술된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는, 기원전 7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메로스의 아름다운 시편 『데메테르 찬가(Hymn to Demeter)』를 들 수 있다. 이 시편의 목적은 엘레우시스 신비 의식(Eleusinian Mysteries)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데에 있었다.
엘레우시스 신비 의식은 고대 그리스의 마을인 엘레우시스를 기반으로 하는 그리스 신화의 두 여신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의 컬트 종교이자, 이 컬트 종교의 가르침 또는 이 컬트 종교가 엘레우시스에서 매년 개최한 신비 제전 또는 비교 전수 의식을 가리킨다. 엘레우시스 신비 의식은 고대에 존재하였던 모든 신비 가르침들 중 가장 중요한 것들 중의 하나라고 여겨졌다.
엘레우시스 밀교 또는 엘레우시스 신비 의식은 지하 세계의 왕인 하데스가 데메테르로부터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신화를 바탕으로 하는데, “실락 (상실)”, “탐색”, “승천”의 세 단계의 사이클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 단계 중 엘레우시스 밀교의 중심 테마를 이루는 것은 페르세포네가 “승천”하여 그녀의 어머니 데메테르와 재합일하는 것이다. 마을 이름인 엘레우시스(Eleusís)는 선(先)그리스 시대의 것으로 보이며 엘리시움(Elysium)과 여신 에이레이티이아(Eileithyia)의 지상적 대응부를 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기원전 1세기 때의 로마 철학자 키케로는 엘레우시스 비교 의식에 참가한 뒤, “인간은 이 의식을 통해 야만적인 존재를 벗어나 교화되고 정화되어 문명의 상태에 이르게 되며, 행복하게 사는 것만이 아니라 더 나은 희망을 품고 죽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정작 엘레우시스 비교 의식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의식에 대한 비밀이 철저하게 지켜졌기 때문이다.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신화는 내용면에서 시리아의 아프로디테(아스타르테)와 아도니스, 프리지아의 키벨레와 아티스, 이집트의 이시스와 오시리스 신화와 비슷한데 시간적으로 가장 앞선 것으로 판단되는 것은 이시스와 오시리스 신화이므로 이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헤로도토스도 데메테르는 이집트 여신 이시스(Isis)와 같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 이시스와 오시리스 신화 (Osiris Myth) : http://yellow.kr/blog/?p=1218
(이시스와 네프티스 /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 성모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사이의 관련성은…)
그리스의 지하세계의 여왕 페르세포네는 다른 올림포스 신들과 달리 베일에 가려져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여신이다. 페르세포네는 흔히 어머니 데메테르의 납치당한 딸(코레)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원래 독립적인 여왕이었다가 후에 데메테르와 통합되어 모녀 사이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다음은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황금가지』에 나오는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신화 이야기이다.
황금가지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 박규태 역 / 을유문화사 / 2005.06.01
젊은 페르세포네가 싱싱한 들판에서 장미와 백합, 크로커스와 제비꽃, 히야신스와 수선화 따위를 꺾고 있을 때, 대지가 돌연 큰 아가리를 벌리면서 사자의 왕 플루토(Pluto, 하데스)가 심연에서 나타나 페르세포네를 왕비로 삼기 위해 그녀를 황금마차에 태워 저 음산한 저승으로 데려갔다. 슬픔에 젖은 그녀의 어머니 데메테르는 금발의 머리카락을 검은 상복으로 감싼 채 산 넘고 바다 건너 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태양에게서 딸의 운명을 전해 듣고 너무 화가 나서 신들을 멀리하고 엘레우시스에 틀어박혔다. 거기서 여신은 ‘처녀의 샘터’에 있는 올리브나무 그늘 아래 슬픈 기색으로 앉아 있다가, 청동 주전자를 들고 물 길러 나온 왕의 딸들에게 노파로 변장하여 모습을 드러냈다. 딸을 빼앗긴 데에 대한 분노를 삭일 수 없었던 여신은 씨앗들을 언제까지나 땅속에 숨겨둔 채 싹트지 못하게 할 것이며, 또한 올림포스에는 결코 두 번 다시 발을 들여놓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다. 빼앗긴 딸을 돌려받기 전에는 절대 곡물을 발아시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소들이 쟁기를 끌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밭을 갈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씨 뿌리는 자들도 쓸데없이 밭에 보리씨를 뿌리고 있었다. 갈라진 땅에서는 아무것도 발아하지 않았다. 여느 때 같으면 곡식이 누렇게 물결치고 있을 엘레우시스 인근의 평야에는 아무것도 싹트지 않았다. 이에 놀란 제우스가 만약 플루토에게 약탈한 신부 페르세포네를 석방하여 그녀의 어머니 데메테르에게 돌려주도록 명하지 않았다면, 인류는 기아로 말미암아 사멸하고 말았을 것이며, 신들 또한 그들의 몫인 제물을 전혀 받지 못할 뻔했다.
음흉한 사자의 왕 플루토는 웃으면서 제우스의 명에 따랐지만, 왕비를 지상으로 보내기 전에 그녀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하기 위해 그녀에게 석류씨를 먹였다. 그러나 제우스는 앞으로 페르세포네가 1년의 3분의 2는 이승에서 어머니와 신들과 함께살고, 나머지 3분의 1은 저승에서 남편과 함께 살되 매년 봄이 되어 대지에 꽃이 만발할 무렵에는 이승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명했다. 이렇게 해서 페르세포네는 햇빛이 비추는 지상으로 돌아왔고, 어머니 데메테르는 그녀를 반가이 맞았다. 잃었던 딸을 되찾은 기쁨에 데메테르는 밭에 곡물이 싹터 올라오도록 했으며, 드넓은 대지 곳곳에 나뭇잎과 꽃들이 만발하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녀는 트리프톨레모스(Triptolemos), 에우몰포스(Eumolpos), 디오클레스(Diocles) 등 엘레우시스의 제후들과 켈레오스(Celeos) 왕에게 달려가 그 복된 풍경을 보여주고, 나아가 자신의 신성한 의례와 신비의식을 그들에게 계시했다. 이 대목에서 시인은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이 그러한 풍경을 목격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며, 살아서 그런 풍경을 보지 못한 자는 죽어서 무덤의 어둠 속에 내려가서도 내내 불행할 것이라고 적고 있다. 어쨌든 이후 두 여신은 엘레우시스를 떠나 올림포스 산에서 신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끝으로 시인은 이 찬가에 대한 보상으로 자기에게 기꺼이 생명의 양식을 내려 달라는 경건한 기도를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에게 바치면서 끝맺는다.
블랙 아테나
– 마틴 버낼 / 오흥식 역 / 소나무 / 2006.01.10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비 의식은 크게 이시스가 살해된 남편/오라비를 찾아다니는 내용과 그의 시신을 다시 조합하는 내용, 그리고 아들인 호루스가 아버지를 살해한 세트에 대해 승리를 거두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엘레우시스 이야기는 일견 이와 매우 다른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서는 데메테르가 지하 세계의 신 하데스(Hades)에 의해 납치된 자신의 딸 페르세포네(Persephone)를 찾아 나선다.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를 찾아내지만 구출에는 실패하자 파업을 벌여 자연의 계절적인 성장을 방해한다. 마침내 거래가 성사되고, 그에 따라 페르세포네는 1년의 반을 하데스와, 그리고 나머지 반은 어머니와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그리스의 신비 의식이 이집트에서 유래했다는 고대의 증언을 무시하기에 충분치 않다.
이집트의 경우 오시리스가 의식의 초점이지만 그 의식의 주인공은 이시스였다. 그리스의 경우에는 데메테르 뒤에 디오니소스가 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욱이 이집트 신비 의식에는 사실상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의 여신이 등장한다. 이시스는 여동생인 네프티스(Nephthys)와 늘 동행했으며, 네프티스는 오시리스를 찾아나서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을 뿐만 아니라 오시리스의 살해자인 세트와 결혼한 몸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네프티스는 사랑스러운 측면과 더불어 지옥과 같은 측면을 지니고 있는 페르세포네의 모호함에 정확히 상응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러한 일군의 이집트 및 그리스 신화 안에서 발견되는 광범위한 변형은, 두 신비 의식 사이에서 수많은 세부적 유사점이 발견되는 한, 두 신화 사이의 차이점이 지나치게 중요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주제에 관한 20세기의 연구들은 폴 푸카르(P. Foucart)의 저서에서 시작된다. 그는 엘레우시스에 관한 상세한 연구와 이집트학에 관한 상당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 신비 의식이 이집트에서 유래했다는 고대 전승을 논박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어쨌든 엘레우시스 신비 의식의 핵심이 불멸성의 추구였으며, 그것이 죽음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역설적인 믿음이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신비 의식에 입문함으로써 사람은 상징적인 죽음을 통해 불멸의 존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관념은 고대 근동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지만 이집트에서 압도적으로 강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고대의 저자들은 영혼의 불멸성에 관심을 가졌던 피타고라스와 오르페우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인물들이 그에 관해 이집트로부터 배웠다고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
…… 나는 고대인이 믿었던 바와 같이, 『데메테르 송가』와 분명히 연결되어 있는 엘레우시스 신비 의식이 필시 이집트에서 기원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기원전 9세기에 이르러, 즉 『데메테르 송가』의 전통적인 추정 연대 이전에 엘레우시스에서 이시스가 데메테르와 동일시되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 어쨌든 플루타르코스가 이시스와 데메테르를 동일한 신의 현현으로 보았다는 점을 의심할 이유는 전혀 없다. 대체로 볼 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 철학의 상당 부분이 이집트에서 도입되었으며 이집트 종교와 그리스 종교가 근본적으로 일치한다는 믿음을 플루타르코스가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아가 그는 이집트 종교가 보다 순수하고 보다 오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헬레니즘
– 윤진 / 살림 / 2003.10.15
엘레우시스 비의는 본래 농경신앙을 바탕으로 지모신(地母神), 즉 ‘위대한 어머니’를 섬기던 신앙이 발전되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사실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에는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과 이시스 여신의 신화, 메소포타미아의 이슈타르 여신과 지하세계로 끌려갔던 그녀의 남편 탐무즈(Tammuz) 신화와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계절의 변화와 식물의 죽음과 부활이 이 신화들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엘레우시스 비의에는 풍년에 대한 기원과 아울러 사후세계에서의 축복을 기대하는 면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규정된 입교자들에게만 비의를 전수하는 대단히 개인적인 종교였으며, 비록 아테나이의 국가의식에 통합되기도 했지만, 이런 개인적인 특성 때문에 헬레니즘 시대에는 여러 곳으로 전파되기에 이른다.
그리스 (유재원 교수의 그리스 그리스 신화)
– 유재원 / 리수 / 2007.03.28
엘레우시스 비교 제전은 매해 두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봄 축제는 아테네의 교외에서 치러졌다. 이때에는 비교에 입문하기를 바라는 신입 교인들에 대한 정화와 교리 공부가 이루어졌다. 제전의 주요 행사는 대부분 가을에 벌어졌다. 9월이 되면 아흐레에 걸친 본격적인 축제가 시작된다. 첫날은 전령이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둘째 날, 입문 후보자들은 팔레론 해안으로 가서 몸을 씻는 정화 의식을 치른다. 이때 수많은 돼지를 잡아 여신께 바친다. 셋째 날, 사회 저명 인사들이 의식에 참가한다. 넷째 날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뒤늦게 제전에 참가한 일을 기념하는 의식이 벌어진다. 다섯째 날, 제전 행렬이 아테네의 히에라 성문에 모여 간단한 의식을 치른 뒤, 히에라 호도스를 따라 엘레우시스로 향한다. 아테네에서 엘레우시스까지는 약 22킬로미터 거리이다. 행렬의 느린 걸음으로도 한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행렬이 엘레우시스에 도착하면 성소 밖 광장에서 사제들이 행렬을 맞는다. 그리고 밤새도록 춤을 추며 축제를 벌인다. 여섯째 날과 일곱째 날은 비교 의식을 위해 지어진 신전 안에서 제사가 벌어진다. 그러나 그 내용은 아직까지도 비밀에 싸여 있다. 아마도 페르세포네의 귀환을 기념하는 제전이 벌어졌으리라 추측될 뿐이다. 여덟째 날, 제전의 가장 중요하고 성스러운 행사가 벌어진다. 이 행사에는 신참자들은 참가하지 못하고 적어도 일년 이상 된 신자들만 참석할 수 있다. 아흐렛째가 되는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죽은 자들을 위한 헌주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제전에 참석했던 아테네인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 신성해진 기쁨에 가득 차서 새로운 희망을 느끼며 도시로 돌아온다.
세계 신화 사전
– 낸시 헤더웨이 / 신현승 역 / 세종서적 / 2004.04.20
비밀 의식과 복잡한 입문식을 가진 신비 종교들이 고대 그리스에서 널리 퍼졌다. 그 중에도 가장 성행했던 것은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의 신화가 뒤얽힌 엘레우시스 신비의식이었다.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480년 이 종교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을 대략 3천 명으로 추산했다. 다음은 이 신비의식과 관련된 설명이다.
– 누가 참여할 수 있었는가?
여성과 노예를 포함하여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유일한 예외는 이방인과 살인자(단, 가족을 죽인 헤라클레스는 허용되었다)였다.
– 참여자들은 무엇을 해야 했는가?
2월에 일리소스강에서 목욕하고, 동물을 제물로 바치고(주로 돼지로 구워서 먹었다), 페르세포네와 하데스의 결혼에 관해 배운다. 9월에 바다에서 목욕하고 암퇘지를 제물로 바치고 디오니소스에게 제주(祭酒)를 올린다. 입문자라면 페르세포네가 납치된 후에 데메테르가 금식했듯이 9일 동안 금식한다. 박하유 또는 박하 향을 첨가한 보리차를 마셔 금식을 끝낸다. 특별한 의상을 착용하고, 머리칼을 진녹색으로 물들인다. 아테네에서 엘레우시스까지 행렬에 참여한다. 그 목적은 엘레우시스의 성소에 어떤 신성한 물건(며칠 전에 제거했던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이다. 행렬하는 도중 데메테르를 웃게 만든 이암베를 의식하여 농담으로 음담패설을 외친다. 엘레우시스의 캄캄한 입문 홀에서 수천 명의 신자들이 함께 앉아 갑작스럽게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고 사제의 노래에 귀 기울인다. 신성한 대상을 바라본다. 거룩한 아이의 탄생, 죽음의 여신 페르세포네의 탄생을 축하한다.
– 거룩한 아이는 누구였을까?
아이는 트리프톨레무스, 이아손, 해방자 엘레우테레우스, 디오니소스를 포함하여 몇 가지 이름을 가졌다. 의식에서 아이는 잡아먹혔다. 아이의 살은 빵이 되었고, 피는 포도주가 되었다.
– 의식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기쁘게 살고, 희망을 간직한 채 죽고, 내세에서 보다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 베르나르 베르베르 / 임호경,이세욱 역 / 열린책들 / 2011.03.03
< 신비 의식 >
고대의 많은 종교에는 입문자들에게 심오한 교의를 전수하기 위한 비밀 의식이 있었다. 그리스어로는 그것을 ‘미스테리아(신비 의식)’라고 부른다.
일찍이 기원전 18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엘레우시스의 미스테리아는 서양의 신비 의식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이 의식은 여러 과정을 포함하고 있었다. 바닷물에 들어가 몸을 씻는 목욕재계, 3일 동안의 금식, 기도, 성스러운 잔으로 보리차를 마시는 의식, 죽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내려가는 상황의 재연, 구원과 부활에 관한 깨달음의 전수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디오니소스 신을 숭배하는 오르페우스 밀교의 신비 의식은 다음과 같은 7단계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째, 자각. 둘째, 결단. 셋째, 음복飮福. 넷째, 성적으로 하나 되기. 다섯째, 시련. 여섯째, 디오니소스와 하나 되기. 마지막으로 춤을 통한 해방.
그런가 하면, 이집트에서 거행되던 이시스 신비 의식은 4원소와 연관된 네 가지 시련을 포함하고 있었다. 먼저 흙의 시련이라는 단계에서, 교의를 전수받으려는 입문자는 기름 램프에 의지해서 혼자 깜깜한 미로 속을 나아가야 했다. 이 미로는 깊은 구렁으로 이어져 있었고, 입문자는 사다리를 타고 거기로 내려가야 했다. 불의 시련이란 빨갛게 달군 쇳덩이들을 넘어가는 의식이었다. 쇳덩어리들은 한 발로 겨우 디딜 수 있는 자리만 남겨 놓고 마름모꼴로 배치되어 있었다. 물의 시련은 램프를 든 채로 나일 강을 건너는 것이었다. 공기의 시련은 도개교 위에서 거행되는 의식이었다. 입문자는 다리가 열리는 순간 허공으로 몸을 날려 심연으로 추락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러고 나면 교의 전수자는 입문자의 눈을 가리고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런 다음 눈가리개를 풀어 주고 입문자를 두 개의 각기둥 사이에 세워 두었다. 입문자는 거기에서 자연학과 의술과 해부학과 상징체계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서양사론 제83호 – 엘레우시스 미스테리아 : 데메테르 · 이시스 · 이난나의 비교
– 최혜영 / 학술논문 / 한국서양사학회 / 2004.12
이 글은 데메테르 여신과 특히 이시스 숭배 사이의 의례 및 유사성에 주목하면서 그 기원과 성격을 논하였다. 이시스 여신과 데메테르 여신의 관련성은 명백하다고 보여 진다. 이는 문헌 자료들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양상이나 언어학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도 뒷받침된다고 하겠다. 이집트의 이시스 여신 숭배는 그리스 농경의 풍요의식과 연결되어 엘레우시스 의식으로 ‘그리스적’으로 발달하였다. 그 경로는 페니키아, 크레타, 트라키아, 테살리아 지방 등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알렉산더로스 대왕 이후에는 그리스의 엘레우시스 의식이 알렉산드리아 등으로 유포되는 등 쌍방향으로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동시에 양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차이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 차이점은 바로 사회의 문화 및 사고방식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데메테르가 이시스와 달리 갖는 그리스적인 특징은 데메테르가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 관련을 갖는다는 것이다. 오시리스와 디오니소스는 고대 여러 문서에 동일시되기도 하지만, 지하 세계의 왕으로서의 오시리스와 정열적 술의 신으로서의 디오니소스는 각각 이집트적이며, 그리스적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엘레우시스 제식의 주인공인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는 계절과 연관이 있다. 일년에 한번씩 지하세계로부터 우리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는 페르세포네는 자연(혹은 곡물)이 의인화한 것이라고도 하겠다. 그런데 이시스와 오시리스는 각각 삶과 죽음, 현세와 내세의 영역을 맡고있다. 데메테르와 짝을 이루는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로 돌아가는 사실은 계절의 변화를 뜻하지만, 이시스가 짝하는 오시리스는 죽음의 세계를 뜻한다.
이들 신화와 공통된 신화소를 가지지만 상당히 다른 의미로 각색되는 것이 수메르의 다산 · 풍요 · 사랑의 이난나 여신이다. 이난나는 천상과 지하의 권력을 모두 가지려고 지하세계로 내려갔다. 이난나는 자기 남편 두무지로 하여금 자기 대신 벌을 받게 하여 지하세계로 보낸다. 두무지는 반년씩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살게 된다. 이 두무지는 그리스의 페르세포네 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난나 여신의 신화에서 지하 세계는 영원한 죽음의 저승이 아니라 해마다 반복하여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그리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난나의 죽음이 양들의 도살을 의미하는 목축 사회를 배경으로 나타난 것이라면, 지하세계의 페르세포네는 씨앗의 저장이라는 농경사회의 모습을 드러내준다고 하겠다.
새로운 천년시대의 예언들
– 태드 만 / 강주헌 역 / 문예마당 / 1999.05.15
에베소와 밧모 섬은 에게해의 동쪽에 가까이 맞닿아 있다. 밧모 섬은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썼던 섬이다. 터키 해안에 있는 에베소는 신비 종교들의 성도였고, 아르테미스 신전의 본향이었으며, 비밀스런 교리의 중심지이자, 신비주의적 색채를 띤 기독교와 불교, 칼데아 철학과 조로아스터교의 정수가 싹튼 곳이기도 했다. 또한 성모 마리아가 말년을 보냈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도 요한의 무덤이 근처의 산에 비밀리에 묻혀 있다는 소문도 있는 곳이다.
이처럼 성령이 깃들인 두 곳이 서로 인접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요한 계시록》은 심원한 신비주의적 기독교정신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엘레우시스 제전과 이집트와 그리스의 신비로운 제전을 기록한 성서라는 의견이 있기도 했다.
이런 모순적 모습 때문에, 이 책은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즉 《요한 계시록》은 기독교 정신을 담은 위대한 책인 동시에 이단적 색채를 농후하게 띠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은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되어 왔고,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건들에 인용되며 기억되었다.
사도 요한의 계시록은 괴상한 모습의 존재들이 등장하는 세상의 종말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정통 기독교 정신과는 큰 차이를 드러낸다. 오히려 옛 중동과 이집트와 그리스에서 확인되는 신비 종교에 더 가까운 느낌을 준다.
<관련 그림>
– 엘레우시스에서 발견된 부조, 아테네 국립고고학 박물관, 기원전 5세기
데메테르(왼쪽), 페르세포네(오른쪽) 모녀와 함께 나란히 그려진 곡식의 전달자 트리프톨레모스(Triptolemus).
엘레우시스 신비의식에서 트리프톨레모스의 역활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다. 트리프톨레모스는 그리스 신화의 엘레우시스의 왕 켈레오스(Keleos)와 메타네이라(Metaneira)의 아들로서 데메테르로부터 곡물재배의 기술을 배워, 용차를 타고 그것을 전세계에 전파했다. 그리스 도기화에는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와 같이 용차를 타고 출발하려는 모습을 되풀이하여 그려져있다. 엘레우시스의 비의에는 양여신에 이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 닌니온 타블레트(Ninnion Tablet): 엘레우시스 밀교와 관련된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기원전 370년경
엘레우시스 고고학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닌니온 타블레트(Ninnion Tablet)의 첫 번째 열에는 데메테르와 이 여신을 뒤따르는 페르세포네와 이아코스(Iakchos)와 다시 이들을 뒤따르는 비전가들의 행렬이 묘사되어 있다. 데메테르는 텔레스테리온 내부에서 키스테(kiste) 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으며 페르세포네가 데메테르 앞에서 횃불을 들고서 이아코스와 비전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비전가들은 각자의 손에 바코이(bacchoi)를 들고 있다. 두 번째 열에는 의식용 횃불을 들고 있는 사제로서의 이아코스가 비전가들을 이끌고 있다. 이아코스는 옴팔로스(Omphalos) 가까이에 서 있으며, 한편, 아직 누구인지 확인이 되지 않은 미지의 여성(아마도 데메테르 컬트 종교의 여사제인 것으로 여겨진다)이 옴팔로스 근처에서 키스테 위에 앉아 있는데 홀(笏 · scepter)과 키케온(kykeon)으로 가득 찬 그릇을 들고 있다. 맨 위의 페디먼트(pediment: 삼각형 부분)에는 춤과 유쾌한 떠들썩함이 있는 밤샘 축제인 판니키스(Pannychis)가 묘사되어 있다.
엘레우시스 신비 의식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희생 제물이 돼지다. 돼지가 중요하게 여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숭배한 것일까? 부정적으로 본 것일까?
이집트 여신인 이시스의 원수라 할 수있는 세트가 돼지와 동일시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 베르기나의 마케도니아 무덤 I / 그리스 베르기나(Vergina) 박물관 / 기원전 4세기
마차를 타고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하데스
– 페르세포네의 귀환 /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 기원전 5세기
헤르메스가 지하세계 밖으로 페르세포네를 안내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페르세포네를 반기는 헤카테(Hekate)와 데메테르(가장 오른쪽)가 보인다.
– 하데스의 궁전에서 페르세포네와 하데스 / 독일 뮌헨 고대미술박물관 / 기원전 330 – 310
–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 그리스 아테네 국립고고학 박물관 / 기원전 450 – 425 BC
오른쪽에 데메테르가 왕관을 쓰고 왕홀(王笏)과 한 다발의 밀을 들고 서있다. 왼쪽에는 페르세포네가 엘레우시스의 횃불을 들고 잔에서 술을 붇고 서있다.
– 왕좌에 앉은 오시리스와 그의 아내 이시스, 그리고 네프티스. 오시리스의 남매이자 세트의 아내인 네프티스는 이시스를 따라 오시리스의 부활을 도왔다.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http://en.wikipedia.org/wiki/Demeter
http://en.wikipedia.org/wiki/Persephone
http://en.wikipedia.org/wiki/Eleusinian_Mysteries
https://en.wikipedia.org/wiki/Mysteries_of_Isis
네이버 지식백과 : 이시스의 방랑과 뷔블로스 이야기
http://www.theoi.com/Olympios/Demeter.html
http://www.theoi.com/Khthonios/Persephone.html
http://lljy3414.blog.me/70018429045
2011-04-15 데메테르가 웃자 비로소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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