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 존재하는 피라미드는 몇 개일까? 이집트 고고학자 자히 하와스가 2008년 말에 118개라 했으니 그 근처일게다. 물론 다른 갯수를 말하는 학자들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글에서 주요 이집트 피라미드를 시간별로 나열했지만, 사실 거대 피라미드는 이집트 고왕국 제4왕조에 집중된다. 규모면이나 기술적인 면에서 압도적이다. 아래 그림은 연도별 피라미드 크기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인데 스네푸르, 쿠푸, 카프레의 통치기에 집중된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때 그렇게 큰 피라미드가 필요했을까?
< 연도별 피라미드 부피 – Stadelmann(1980, 438)과 Kemp(1983, 88) >
이 글은 위키백과의 List of Egyptian pyramids을 기본으로 하고, 미로슬라프 베르너의 『피라미드』를 많이 참조했고, 왕의 연도는 위키백과를 참조했다.
그리고 이집트 피라미드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따로 정리하겠다.
※ 관련글 :
– 세계의 피라미드 – 세계산 : http://yellow.kr/blog/?p=1490
– 이집트 피라미드 : http://yellow.kr/blog/?p=2039
–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 : http://yellow.kr/blog/?p=2055
– 대피라미드 : http://yellow.kr/blog/?p=3765
– 주요 이집트 피라미드들 : http://yellow.kr/blog/?p=1908
– 이집트학과 유사 피라미드학 발전사 : http://yellow.kr/blog/?p=1991
–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 방법에 대한 조사 : http://yellow.kr/blog/?p=2096
이집트의 주요 피라미드 군(群). 모두 나일강 서쪽에 있다.
아래의 표는 여기에 언급 된 주요 피라미드들의 연대표이다.
Pyramid / Pharaoh | Reign | Field |
Djoser (조세르) | c. 2670 BC | Saqqara (사카라) |
Sneferu (스네페루) | c. 2612–2589 BC | Dashur (다흐슈르) |
Sneferu (스네페루) | c. 2612–2589 BC | Meidum (메이둠) |
Khufu (쿠푸) | c. 2589–2566 BC | Giza (기자) |
Djedefre (제데프라) | c. 2566–2558 BC | Abu Rawash (아부 라와슈) |
Khafre (카프라) | c. 2558–2532 BC | Giza (기자) |
Menkaure (멘카우라) | c. 2532–2504 BC | Giza (기자) |
Userkaf (우세르카프) | c. 2494–2487 BC | Saqqara (사카라) |
Sahure (사후레) | c. 2487–2477 BC | Abu Sir (아부시르) |
Neferirkare Kakai (네페리르카라) | c. 2477–2467 BC | Abu Sir (아부시르) |
Nyuserre Ini (니우세라) | c. 2416–2392 BC | Abu Sir (아부시르) |
Amenemhat I (아메넴헤트 1세) | c. 1991–1962 BC | Lisht (리슈트) |
Senusret I (세누스레트 1세) | c. 1971–1926 BC | Lisht (리슈트) |
Senusret II (세누스레트 2세) | c. 1897–1878 BC | el-Lahun (엘라훈) |
Amenemhat III (아메넴헤트 3세) | c. 1860–1814 BC | Hawara (하와라) |
Khendjer (켄제르) | c. 1764–1759 BC | Saqqara (사카라) |
Piye | c. 721 BC | El-Kurru |
Taharqa | c. 664 BC | Nuri |
조세르(Djoser, BC2668 ~ BC2649)의 계단형 피라미드
– 고왕국시대 제3왕조
– 사카라 / 밑면 121 x 109m / 높이 60m
사카라의 계단형 피라미드 같이 인류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 역사적 기념물은 많지 않다. 주변에 세워진 여러 가지 건축물들은 피라미드와 함께 거대한 묘역을 이루고 있다.
사카라 남부에서 찾아낸 제19왕조 시대의 한 비문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조세르를 두고 ‘돌을 연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곧 ‘석조 건축의 창시자’ 라는 뜻일 터이다.
A : 남묘 / B : / C : 장제신전 / F : 입구 / H : 남쪽 집 / I : 북쪽 집
묘역 전체의 꽃인 계단형 피라미드는 이미 몇 십년에 걸쳐 샅샅이 연구되었다. 그런데 약간 과장을 덧붙인다면, 연구로 밝혀진 소득만큼의 새로운 의문들이 생겨났다.
연구 결과 피라미드의 원래 설계는 몇 차례에 걸쳐 수정되었고, 지금의 형태는 부단히 첨삭되어 전개된 일련의 발전 과정 끝에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실험적 요소도 적지 않았고 즉흥적 발상도 한몫한 것 같다. 처음에 만들어진 것은 네모난 형태의 마스타바(M1)다. 이것이 점차 두 배로 확장되면서 네 변의 길이가 같은 정방형이 되었다(M2). 그런 다음 다시 동쪽으로만 더 확장된다(M3). 이미 앞서 설명한 묘실 건축 방법으로 만들어진 마스타바는 이미 M3 단계에서 계단형을 취했다.
계단형 마스타바는 처음에는 네 층 구조(P1)로, 나중에는 결국 여섯 층 구조(P2)의 피라미드로 개축되는 두 단계의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주목을 끄는 것은 그 기본 터가 장방형이 아닌 정방형을 취하면서 동서쪽으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이다.
세켐케트(Sekhemkhet, BC2649 ~ BC2643)의 계단형 피라미드
– 고왕국시대 제3왕조
– 사카라 / 한변 120m / 높이 7m(미완성 피라미드, 완성했으면 70m ?)
터널의 가장 아래에 있는 왕의 묘실은 상부 피라미드 바닥에서 수직으로 약32미터 정도 되는 깊이다. 묘실로 들어가는 통로에는 점토로 빚어 만든 잠금 장치가 있는데, 그 위에는 옥새로 세켐케트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이 피라미드의 주인을 세켐케트라고 보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카바(Khaba, BC2643 ~ BC2637)의 피라미드(?)
– 고왕국시대 제3왕조
– 자위예트 엘아리안 / 한변 84m / 높이 20m (미완성 피라미드)
피라미드의 북쪽에서 미국의 탐사대는 커다란 마스타바를 발견했다. 이 마스타바는 네크로폴리스의 지도에 ‘Z-500’이라는 기호로 표시되어 있다. 마스타바 안에서는 제3왕조의 왕 카바의 이름이 새겨진 여덟 개의 설화석고 통이 발견되었다. 이것이 근거가 되어 중층 피라미드가 카바의 것이리라는 짐작이 나온 것이다. 그렇지만 달리 생각하는 학자가 없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셀림은 중층 피라미드의 주인이 제3왕조의 다른 왕인 네페르카(Neferka)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스네페루(Sneferu, BC2613 ~ BC2589)의 피라미드들
– 고왕국시대 제4왕조
스네페루는 후니의 직접적인 후계자다.(물론 둘 사이의 정확한 인척 관계가 무엇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프톨레마이오스의 역사가 마네토(Manetho)는 스네페루를 제4왕조의 초대 왕으로 간주하고 있다.
거의 반백 년에 이르는 그의 통치 기간 중 그가 남긴 업적 중에는 네 개의 피라미드를 지은 것이 있다. 두 개는 그의 새 왕궁이 있는 다흐슈르 근처에 있으며, 나머지 두개는 메이둠과 세일라(Seila)에 있다.
정말 많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도대체 왜 스네페루는 피라미드 하나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렇게 많은 피라미드들을 지은 것일까? 또 피라미드들이 건설된 순서는 어떻게 되는가? 과연 스네페루가 진짜 묻힌 곳은 어느 피라미드인가?
◎ 메이둠 피라미드
– 메이둠 / 한변 144m / 높이 92m / 경사 51° 50′ 35″
주변의 수많은 수수께끼까지 떠안고 있는 이 기묘한 피라미드에 대한 설명은 지금까지 계단형 피라미드라고 했다가 복잡한 과정을 거쳐 ‘표준형 피라미드’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 꺾인 피라미드 – 스네페루는 빛나도다!(남쪽)
– 다흐슈르 / 밑변 188m / 높이 105m / 경사 54° 50′ 35″ /43° 22′
와형 천장의 석재 중 하나에 흘림체의 붉은색 카르투슈로 된 비문이 적혀 있다. 여기에 스네페루의 이름이 나온다. 피라미드의 주인이 스네페루라는 확실한 증거다.
남북축으로 잘라본 단면도
동서축으로 잘라본 단면도
◎ 붉은 피라미드 – 스네페루는 빛나도다!(북쪽)
– 다흐슈르 / 밑변 220m / 높이 105m / 경사 43° 22′
위의 꺾인 피라미드에서 북쪽으로 약 4킬로미터를 올라가면 있고, 현재 그 외벽은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다. ‘붉은 피라미드’라는 이름은 피라미드의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는 돌의 색깔에서 나온 말이다.
쿠푸(Khufu, BC2589 ~ BC2566)의 대피라미드 – 쿠푸의 지평선!
– 고왕국시대 제4왕조
– 기자 / 한변 230.3m / 높이 146.6m / 경사 51° 50′ 40″
– http://en.wikipedia.org/wiki/Great_Pyramid_of_Giza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에 첫 손에 꼽히는 대피라미드.
※ 대피라미드 : http://yellow.kr/blog/?p=3765
제데프라(Djedefre, BC2566 ~ BC2558)의 피라미드 – 제데프라의 별들이 빛나는 하늘(?)
– 고왕국시대 제4왕조
– 아부 라와슈 / 한변 106.2m / 높이 ~68m / 경사 ~52°
제데프라의 피라미드 묘역을 간략하게 표현한 평면도(마라졸리오와 리날디)
이 피라미드와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들은 거의 해결되지 않고 있다. 미셸 발로자(Michel Valloggia)가 이끄는 프랑스와 스위스 합동 팀이 1995년 초에 개시한 탐사 작업에서 많은 의문점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카프라(Khafra, BC2589 ~ BC2566)의 피라미드 – 위대한 이는 카프라다
– 고왕국시대 제4왕조
– 기자 / 한변 215.25m / 높이 143.5m / 경사 53° 10′
– http://en.wikipedia.org/wiki/Pyramid_of_Khafre
뒤쪽으로 쿠푸의 대피라미드가 보인다.
멀리서 보면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들 중에서 가운데 있는 것이 가장 높아 보인다. 그러나 이 피라미드는 사실 대피라미드보다 2미터 정도가 낮다. 이 피라미드는 이곳 피라미드들 중에서도 높은 지반 위에 만들어진 것이며, 특히 그 각도가 아주 가파르고, 정상의 모습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가장 높아 보이는 것은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멘카우라(Menkaure, BC2532 ~ BC2504)의 피라미드 – 멘카우라여, 그대는 신이도다!
– 고왕국시대 제4왕조
– 기자 / 한변 103.4m / 높이 65.5m / 경사 51° 20′ 25″
– http://en.wikipedia.org/wiki/Pyramid_of_Menkaure
기자의 ‘대트로이카’ 중에서 가장 작은 피라미드
셉세스카프(Shepseskaf,BC2504 ~ BC2500)의 파라운 마스타바 – 파라오의 좌대
– 고왕국시대 제4왕조
– 피라미드가 아닌 거대한 마스타바
– 사카라 남쪽 / 밑면 99.6m x 74.4m / 높이 18m / 경사 70°
파라운 마스타바는 사카라 남쪽에 있는 거대한 분묘를 말한다. 원주민들은 이 마스타바를 보고 ‘파라오의 좌대’라고 부른다. 최근까지 이 마스타바를 그냥 지나친 고고학자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왕국시대의 것 중에서 가장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유적이 바로 이 파라운 마스타바다.
파라운 마스타바의 복원도- 리케
파라운 마스타바 인근에서는 셉세그카프의 왕족이나 관리의 묘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볼 때, 마스타바가 만들어진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의구심이 깊어진다. 왜 피라미드가 아닌 마스타바일까? 그것도 하필이면 외톨이로?
켄트카우스 1세(Khentkawes)의 계단형 무덤
– 상 · 하이집트의 왕과 상 · 하이집트 왕의 어머니 (융커의 해석)
– 기자 / 밑면 45.5m x 45.8m / 높이 17.5m / 경사 74°
멘카우라의 하안 신전 근처에 있는 두 단으로 쌓인 커다란 무덤을 두고 한때 몇몇 학자들은 기자의 네 번째 피라미드가 아닐까 하는 짐작을 했었다. 그 대표적 인물이 페링이다. 그러나 렙시우스는 초지일관 이 묘를 개인의 묘로 간주해 버리고 자신의 지도에 ‘C’라는 표시를 해 두었다.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횔셔나 라이스너 등은 이 묘가 멘카우라의 후계자 셉세스카프의 미완성 피라미드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묘의 주인을 마침내 왕비인 켄트카우스 1세로 밝혀낸 사람은 하산이다. 하산은 1932년 묘를 본격적으로 탐사했다.
켄트카우스가 셉세스카프의 부인일 것이라고 가정한 하산은, 셉세스카프가 죽자 켄트카우스가 직접 왕위에 올랐으나 오래 가지 않아 결국 신관단의 힘에 굴복하고 말았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 결과 켄트카우스는 우세르카프(Userkaf)와 결혼하게 된다.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라를 섬기는 대제사장 우세르카프는 바로 제5왕조를 세운 인물이다. 그러나 켄트카우스는 죽어서 전 넘편 옆에도, 둘째 남편 옆에도 묻히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선왕들이 묻혀 있는 기자 묘역에서 가까운 곳을 자신의 묘로 택했다는 것이다.
우세르카프(Userkaf, BC2498 ~ BC2491)의 피라미드 – 우세르카프를 섬기는 곳은 정결하다
– 고왕국시대 제5왕조
– 사카라 / 한변 73.3m / 높이 49m / 경사 53° 7′ 48″
오늘날 거의 무너져 내린 피라미드를 보고 이게 원래는 대단히 조화로운 모습을 자랑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기본 설계는 피라미드를 수직으로 잘랐을 때 두 개의 직각삼각형이 맞대어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 삼각형 각 변의 비율은 3 : 4 : 5로 이루어져 있다.
우세르카프 피라미드 묘역의 기본 설계도(마라졸리오와 리날디)
지금까지 다룬 모든 문제들이 그랬듯, 여기서도 하나의 설명은 전반적인 문제 해결은 커녕 또 다른 의문을 낳는다. 우선 왜 꼭 이렇게 공사가 까다로운 곳을 입지로 택했는가 하는 의문이다. 과연 우세르카프의 본심은 무엇이었을까? 왜 그렇게 위험을 감수해 가며 조세르 묘역에 편입되기를 바랐을까? 말하자면 우세르카프가 조세르의 그늘 아래 묻히기를 바란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
사후레(Sahure, BC2491 ~ BC2477)의 피라미드 – 우세르카프를 섬기는 곳은 정결하다
– 고왕국시대 제5왕조
– 아부시르/ 한변 78.75m / 높이 47m / 경사 50° 11′ 40″
당시 피라미드를 만든 사람들이 이 묘역에 붙인 이름은 ‘사후레의 영혼은 빛나도다!’ 라는 것이다. 이 묘역은 그 구성상 선왕들의 묘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사용된 건자재나 특히 그 부조 장식의 특이함은 전대의 그것들과 현격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미 고대 이집트에서조차 사후레의 피라미드는 수많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으며, 오늘날에도 고대 이집트 왕묘 발전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을 정도다.
사후레의 피라미드는 나일 강 계곡에서 약 20미터 올라간 사막 언저리의 작은 구릉 위에 세워져 있다. 그 지반에 관한 연구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루어진 일이 없다. 그러나 인근에 있는 프타스켑세스의 마스타바로 미루어 판단하건대, 그곳은 암반이 아니라 원석 그대로의 석회암을 최소한 이중으로 깔아 만든 일종의 기단이다.
네페리르카라(Neferirkare, BC2477 ~ BC2467)의 피라미드 – 카카이는 바(ba)다!
– 고왕국시대 제5왕조
– 원래 계단형 피라미드?
– 아부시르 / 한변 105m / 높이 54m / 경사 73°
원래 ‘카카이는 바(ba)다!’ 라는 이름을 가졌던 네페리르카라의 피라미드는 아부시르에 있는 전체 네크로폴리스 중에서도 단연 압권이다. 이 피라미드는 여기에서 가장 큰 것일 뿐만 아니라, 높이도 나일 강 계곡을 기준으로 33미터에 달해 최고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 피라미드 역시 현재는 돌무덤일 뿐이다. 단지 계단형으로 우뚝 솟은 중심구조만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네페레프레(Neferirkare, BC2460 ~ BC2458)의 (미완성)피라미드
– 고왕국시대 제5왕조
– 아부시르 / 한변 65m / 높이 ?m
니우세라(Niuserre, BC2458 ~ BC2422)의 피라미드
– 고왕국시대 제5왕조
– 아부시르/ 한변 79.9m / 높이 51.68m / 경사 51° 50′ 35″
제드카라(Djedkare Isesi, BC2414 ~ BC2375)의 피라미드 – 제드카라는 아름답도다!
– 고왕국시대 제5왕조
– 사카라 남쪽 / 한변 78.75m / 높이 52.5m / 경사 52°
아부시르의 피라미드들과 비교해 제드카라와 그 후손들의 피라미드는 몇가지 중요한 설계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우선 얼핏 보기에도 중심부의 구조 차이가 두드러진다. 제4왕조와 그보다는 훨씬 못하지만 제5왕조까지 특징적이던 거석 중심의 무덤 문화가 이제부터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중심부를 짓는 데 쓰인 돌은 주로 작고, 모양도 일정치 않은 석회암이다.
우나스(Unas, BC2375 ~ BC2345)의 피라미드
– 고왕국시대 제5왕조
– 사카라 북쪽 / 한변 57.75m / 높이 43m / 경사 56°
우나스의 피라미드는 고왕국시대의 것들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가장 섬세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즉 지하 묘실의 벽에 비문이 등장하는 것은 우나스 피라미드가 처음이다. 우리가 흔히 피라미드 텍스트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비문이다.
※ 피라미드 텍스트 : http://www.pyramidtextsonline.com/
테티(Teti, BC2345 ~ BC2333)의 피라미드
– 고왕국시대 제6왕조
– 사카라 북쪽 / 한변 78.5m / 높이 52.5m / 경사 53° 7′ 48″
사카라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피라미드는 오늘날 쉽사리 접근할 수 있는 자그마한 동산이다. 그 정상에 서면 사카라 전체 묘역들이 마치 접시를 들여다보듯 환하게 보인다. 거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든 장제 신전의 흔적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역사란 무엇일까 하는 감회가 솟아오른다. 한때 ‘테티를 섬기는 곳은 영원하여라!’ 라는 이름으로 불린 곳이 바로 이 피라미드이기 때문이다.
페피 1세(Pepi I, BC2332 ~ BC2283)의 피라미드
– 고왕국시대 제6왕조
– 사카라 남쪽 / 한변 78.75m / 높이 52.5m / 경사 53° 7′ 48″
전부 여섯 단으로 이루어진 피라미드 중심부는 제드카라 이래의 피라미드들과 같은 방법으로 구축된 것이다.
메렌레 1세(Pepi I, BC2283 ~ BC2278)의 피라미드
– 고왕국시대 제6왕조
– 사카라 남쪽 / 한변 78.75m / 높이 52.5m / 경사 57° 7′ 48″
오늘날 사카라의 묘역을 찾는 방문객은 한때 ‘메렌레의 아름다움은 빛나도다!’ 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린 피라미드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오랜 세월 모래를 뒤집어 쓴 이 폐허가 네크로폴리스 남서쪽 변경에 직접 맞닿은 사막 깊숙한 곳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페피 2세(Pepi II, BC2278 ~ BC2184)의 피라미드 – 페피는 만수무강하여라
– 고왕국시대 제6왕조
– 사카라 남쪽 / 한변 78.75m / 높이 52.5m / 경사 53° 7′ 48″
‘페피는 만수무강하여라’라는 이름을 갖는 피라미드의 묘역 주인은 그 어떤 왕보다도 더 오래 살면서 가장 장기간 왕위를 지켜낸 파라오다. 그러나 페피 2세가 이집트 건축사에서 특별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 피라미드 때문이다. 페피 2세의 피라미드는 고왕국시대의 건축 예술의 전통을 지킨 마지막 작품이다. 이런 사정에다가 사카라 묘역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위치로 인해 중왕국시대의 피라미드 건축가들은 모두 이 피라미드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
이비(Qakare Ibi, ?)의 피라미드
– 제1중간기 제8왕조
– 사카라 남쪽 / 한변 31.5m / 높이 ?m
제6왕조의 마지막 왕들, 특히 메렌레 2세와 저 말썽 많은 여왕 니토크리스의 묘는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다.
제1중간기의 왕인 이비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왕위에 머무른 것도 극히 짧은 동안임이 분명하다. 비록 양도 적고 깨진 조각뿐이며 그 완성도도 형편없지만 이 비문이 이집트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척 크다. 지금까지 발견된 피라미드 텍스트 중에서 가장 나중의 것이기 때문이다.
아메넴헤트 1세(Amenemhat I, BC1991 ~ BC1962)의 피라미드 – 아메넴헤트가 빛나는 (성)소
– 중왕국시대 제12왕조
– 리슈트 / 한변 84m / 높이 55m / 경사 54° 27′ 44″
피라미드는 약 20미터 높이의 폐허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렇게 상태가 열악해진 데는 물론 도굴꾼의 활약이 컸지만, 피라미드가 지어진 방식도 한 몫 단단히 거들었다. 고왕국 때도 건축 방식과 건자재의 질이 계속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고왕국시대의 피라미드는 모두 석조 건축물이었다. 그러나 제12왕조에 들어서자 주요 자재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벽돌이다. 벽돌은 암석에 비해 그렇게 엄청난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좋은 아주 경제적인 건자재다.
전체적으로 묘역은 다흐슈르와 사카라 남부에 있는 고왕국시대의 피라미드들을 그 모범으로 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특히 타리프와 데이르 엘바하리에 있는 선대 왕묘들의 전형적인 요소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세누스레트 1세(Senusret I, BC1971 ~ BC1926)의 피라미드
– 중왕국시대 제12왕조
– 리슈트 / 한변 105m / 높이 61.25m / 경사 49° 24′
세누스레트 1세도 자신의 피라미드를 리슈트에 짓도록 했다. 아메넴헤트 1세의 묘역에서 남쪽으로 불과 1.5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세누스레트는 두 나라들을 굽어보노라!’라는 거창한 이름 때문일까? 묘역은 아버지의 그것보다 규모가 더 크다. 물론 기본 구조는 큰 차이가 없지만 말이다.
아메넴헤트 2세(Amenemhat II, BC1929 ~ BC1895)의 피라미드 – 아메넴헤트는 풍성하게 베푸도다!
– 중왕국시대 제12왕조
– 다흐슈르 / 한변 50m / 높이 ?m
아메넴헤트 2세가 자신의 묘역으로 고른 곳은 다흐슈르에 있는 제4왕조 초기의 왕실 공동묘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막 변경에 있는 저 붉은 피라미드의 동쪽이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피라미드를 ‘아메넴헤트는 풍성하게 베푸도다!’라고 이름 붙인 것 같다. 그러나 현재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기 안타까울 정도로 볼품없는 잿빛 벽돌 더미일 뿐이다.
세누스레트 2세(Senusret I, BC1971 ~ BC1926)의 피라미드
– 중왕국시대 제12왕조
– 엘라훈 / 한변 106m / 높이 48.6m / 경사 42° 35′
세누스레트 2세는 언제나 파이윰 오아시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런 그가 그곳을 자신의 휴식처로 삼지 않았다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일 것이다. 왕은 자신의 피라미드를 나일 강 계곡에서 오아시스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엘라훈에 짓게 했다.
세누스레트 3세(Senusret III, BC1878 ~ BC1841)의 피라미드
– 중왕국시대 제12왕조
– 다흐슈르 / 한변 105m / 높이 78m / 경사 56° 18′ 35″
기원전 500년경 헤로도토스가 이집트를 방문했을 당시, 백성들은 세누스레트 3세를 매우 칭송했던 것 같다. 헤로도토스는 비교적 짧은 통치 기간에도 불구하고 세누스레트 3세를 중기 왕국의 가장 중요한 왕으로 떠받들면서 그에 관한 많은 전설을 전해주고 있다. 다흐슈르의 붉은 피라미드 북동쪽에 세워진 세누스레트 3세의 피라미드 묘역은 제12왕조 초에 만들어진 왕들의 무덤을 압도한다. 크기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설계나 바탕에 깔린 종교관 등 여러 모로 세누스레트 3세의 피라미드 묘역은 이전 왕묘들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피라미드 발전사의 한 이정표를 이루고 있다.
세누스레트 3세 피라미드 묘역의 기초도(드 모르강). 그러나 이 설계도는 몇 가지 세부적인 사항에 있어 최신 연구 성과와 들어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피라미드 북쪽과 남쪽에 있는 구조물들은 마스타바가 아니라 작은 피라미드들이다. 특히 이 도면은 드 모르강이 북동쪽에서 피라미드 중심을 향해 파고 들어간 복잡한 터널 때문에 상당히 혼란스러워 보이는 약점이 있다.
아메넴헤트 3세(Amenemhat III, BC1842 ~ BC1797)의 피라미드
– 중왕국시대 제12왕조
– 다흐슈르 / 한변 105m / 높이 75m / 경사 56° 18′ 35″
왕이 자랑스럽게 ‘아메넴헤트는 강하도다!’ 라고 이름붙인 피라미드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잿빛 건댕이의 폐허로 남았다. 현지인들이 부르는 ‘검은 피라미드’가 훨씬 더 그럴 듯해 보일 정도다.
– 하와라 / 한변 105m / 높이 58m / 경사 48° 45′
피라미드 남쪽 벽 앞에서 피트리는 매우 넓고 체계가 확실한 신전의 잔해를 발국했다. 아마도 저 고대의 여행자들이 ‘미궁’이라고 부르던 곳이 바로 이곳 같다. 헤로도토스, 디오도로스, 스트라본, 그리고 플리니우스 등등 이를 증언하고 있는 인물들은 쟁쟁하다. 디오도로스 이후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이곳을 찾은 다이달로스(Daidalos)는 이 신전을 보고 어찌나 감동을 받았던지, 이를 본떠 크레타에 미노스(Minos)를 위한 미로를 짓게했을 정도다.
켄제르(Khendjer, BC1747년경)의 피라미드
– 제2중간기 제13왕조
– 사카라 남쪽 / 한변 52.5m / 높이 37.35m / 경사 55°
제13왕조 기간에 일어난 시대의 변화가 전대 왕조에 비해 얼마나 격심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게 정말 파라오 이름일까 싶을 정도로 의아하기 짝이 없는 왕명 켄제르다. 그 뜻을 말 그대로 풀면 ‘멧돼지’가 된다. 이 이름의 주인공은 아마도 내국인이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당시 이집트에서 활동하던 용병 대장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피라미드 (미로슬라프 베르너 / 김희상 옮김 / 살림)
http://www.guardians.net/egypt/pyramids.htm
http://antikforever.com/Egypte/main_egypt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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