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기자 피라미드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이집트 기자(Giza)의 피라미드 단지이다. 피라미드의 정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도 대표격인 쿠푸(Khufu)의 대피라미드가 있고 가장 크고 오래된 유명한 스핑크스도 있다.

 

기자의 3대 피라미드는 이집트 수도 카이로 도심지에서 남서쪽으로 13㎞ 정도 떨어진 기자의 사막고원에 있다. 이집트의 다른 피라미드들과 마찬가지로 나일강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4500년 전인 피라미드 왕조라 할 수 있는 고대 이집트 왕국 제4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기자 피라미드는 쿠푸왕의 피라미드, 카프레왕의 피라미드, 멘카우라왕의 피라미드 등 크게 3개로 나눌 수 있다.

 

논란이 있지만 쿠푸의 대피라미드에는 건설에 동원되었던 노동자들이 남겨놓은 낙서 속에 ‘쿠푸 왕 재위 17년’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다른 피라미드 내부에는 왕의 이름이 쓰여진 경우가 없다. 그 때문에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의 피라미드를 순서대로 제1피라미드, 제2피라미드, 제3피라미드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각 피라미드의 데이터는 다음과 같다.

 이름  고대의 이름  밑변 (m)  높이 (m)  경사각도
 쿠푸의 대피라미드  쿠푸의 지평선  230.4 × 230.4  146.5 (현재 138.8)  51°50’24
 카프레의 피라미드  위대한 이는 카프라다  215.28 × 215.28  143.5 (현재 136.4)  53°08′
 멘카우레의 피라미드  멘카우레여, 그대는 신이도다!  102.2 × 104.6  65  51°20’25

 

 

기자 지역은 지반이 견고한 석회암으로 된 고원이다. 따라서 이 석회암을 이용하여 3개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들었을 것이고, 화강암이나 하얀 석회암 같은 다른 재료들은 주로 배를 이용하여 수송했을 것이다.

 

지진과 종교적인 이유 또한 도시 건설을 위한 무분별한 석재 반출 등의 피해에도 원래의 모습을 잃지 않고 존재한다는 사실이 대단하기만 하다. 정말 전체 인류의 유산이라 할 수 있다.

 

기술 발달이 미미한 시대에 이렇게 경이로운 건축물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은 이집트 종교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고, 사회가 얼마나 잘 조직돼 있었는지 말해준다.

 

※ 관련글 :

– 세계의 피라미드 – 세계산 : http://yellow.kr/blog/?p=1490

– 이집트 피라미드 : http://yellow.kr/blog/?p=2039

–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 : http://yellow.kr/blog/?p=2055

– 주요 이집트 피라미드들 : http://yellow.kr/blog/?p=1908

– 이집트학과 유사 피라미드학 발전사 : http://yellow.kr/blog/?p=1991

–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 방법에 대한 조사 : http://yellow.kr/blog/?p=2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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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 지역(Giza Necropolis). 사진 위쪽이 북쪽이고 스핑크스가 있는 쪽이 동쪽이다. 사진을 보면 이 모두가 단일 프로젝트로 추진되었다는 설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이집트 제4왕조 시대의 이 피라미드 지역은 오늘날과 같은 황량한 사막이 아니라, 어느 정도 동물과 식물이 번성한 사바나(savanna)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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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쿠푸의 피라미드 (Pyramid of Khufu)
2. 카프레의 피라미드 (Pyramid of Khafre)
3. 멘카우레의 피라미드 (Pyramid of Menkaure)
4. 카프레의 장제 신전 (Funerary Temple of Khafre)
5. 장제 신전 (Funerary Temple)
6. Subsidiary pyramid
7. 카프레의 하안 신전 (Valley Temple of Khafre)
8. 멘카우레의 하안 신전 (Valley Temple of Menkaure)
9. 헤테페레스의 무덤 (Queen Hetepheres’ tombs, 쿠푸의 어머니)
10. 켄트카우스(Khentkawes) 1세의 계단형 분묘
11. 여왕의 피라미드 (Pyramids of Queens)
12. 마스타바 (Mastabas, 고대 이집트 묘의 한 형식)
13. 스핑크스 (Great Sphinx)
14. 스핑크스 신전 (Temple of The Sphinx)
15. Tomb of Hemon
16. Office of pyramids studies
17. 정문 매표소 (Ticket Office)
18. 배 구덩이 (Boat pits)
19. Modern road
20. Rock cut tombs
21. Builders’ quarters
22. 카이로(Cairo)
23. Village of Nazlet el-Samman
24. 둑 길 (Cause way)
25. Menkaure quarry
26. Modern cemetery
27. Southern field of mainly rock cut tombs
28. Enclosure wall
29. Mastabas and rock cut tombs
30. 서쪽 공동묘지 (Western cemetery)
31. 동쪽 공동묘지 (Eastern cemetery)
32. Central field of Mastabas and rock cut tom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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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핑크스와 카프레의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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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의 옆 모습이다. 엎드린 사자에 파라오의 머리를 갖다 붙인 거상이다. 길이만 70미터이며, 높이는 20미터여서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조각상으로 군림한 것이 바로 이 스핑크스다. 이 거상은 거대한 석회암 바위를 깎아 만든 것으로, 오랜 세월의 침식을 거치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비교적 정확하게 동서축에 맞춰 방위를 잡은 스핑크스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비율상으로 보면 몸통에 비해 머리가 약간 작은 편이다. 이를 두고 과거에 머리를 따로 손질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현재 학계의 지배적인 의견은 스핑크스가 카프라의 작품이며, 카프라 피라미드 묘역의 공사 개시와 함께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확한 연대 매김(즉 쿠푸냐, 카프라냐) 못지않게 이집트 연구가들이 골치를 앓고 있는 문제는 도대체 스핑크스의 정확한 정체와 기능이 뭐냐라는 것이다. ‘스핑크스’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전의되는 과정에서 약간 의미가 달라진 것으로, 원래의 ‘세셉안크(schesep-anch)’는 (왕의) ‘생동하는 모습’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스핑크스가 쿠푸나 카프라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고 있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기자의 왕묘들을 지키는 전설적인 존재이거나 심지어 태양신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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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 앞에서 왼쪽이 카프레의 하안 신전(Valley Temple of Khafre)이고 오른쪽이 스핑크스 신전(Temple of The Sphinx)이다. 하안 신전과 스핑크스 신전 양쪽의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는 것은 암벽을 깨고 만든 통로다. 거의 정방형에 가까운 하안 신전의 벽은 거대한 석재로 이루어졌다. 석재의 무게는 어떤 경우에는 약 150톤에 달할 정도다. 그 위를 장식하고 있는 것은 화강암 판들이다. 담의 윗부분은 약간 경사를 주어 둥글게 만들어져 있어서, 신전의 전체 외관은 마치 마스타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신전의 동쪽 전경 앞에는 석회암 판을 깔아 만든 널찍한 테라스가 있는데, 여기에 있는 두 길을 따라 내려가면 나일 강 운하를 만나게 된다.

이 구조물들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파악된 것은 아니지만 피라미드 등에서 사용될 대형 석재를 하역할 선착장 역활을 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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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레의 하안 신전 (Valley Temple of Khafre)의 정면인 동쪽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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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레의 하안 신전과 스핑크스 신전 사이의 틈에 배를 접안하여 피라미드 공사에 필요한 화강암 등의 무거운 석재를 내리는 선착장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장 (『피라미드 축조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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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푸의 대피라미드 – ‘쿠푸의 지평선’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에서도 최고의 불가사의이고 기적이다. 4500여 년 전에 이런 것을 건축하다니 말이다. 일명 대피라미드(Great Pyramid)라고도 하며 고대 이래로 불가사의한 건축물의 하나로 받아들여져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대피라미드는 그 크기로만 위대한 것이 아니다. 피라미드 내부의 복잡하고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내실들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대피라미드의 복잡한 내부 체계를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것임이 분명하다.

대피라미드의 내부 및 외부에 피라미드와 관련된 문자나 그림 등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사진의 왼쪽 아래에 대피라미드 남쪽에 있는 <태양의 배 박물관>이 보인다. 대피라미드 바로 인근에서는 다섯 개의 배를 묻은 굴들이 발견되었다. 그 중에서 동쪽에 있는 두 구멍은 현재 비어 있다. 오르막길의 북쪽 언저리에 있는, 배가 발견된 세 번째 굴은 그 바닥이 볼록하며, 계단을 통해 내려갈 수 있다. 배가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는 나머지 두 개의 굴은 피라미드의 남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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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라미드의 ‘현재의 입구’로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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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배 박물관>에 전시 중인 이 배는 대 피라미드 남쪽 면에서 발견된 것으로, 십여 년 간의 복원 작업을 거쳐 1983년부터 전시 중이다. 거의 대부분 레바논 삼나무로 만든 이 배는 길이가 43미터이고 폭이 6미터에 가깝다. 물에 잠기는 부분이 1.5미터였고 배수량은 50톤 가량이었다(콜럼버스가 기함으로 사용한 산타마리아 호는 26미터에 배수량이 80톤 정도였다). 널빤지들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채소 섬유만을 이용해 단단히 묶었다.

쿠푸가 타던 왕선(王船)의 발견은 대피라미드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피라미드들에서 과연 배의 무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두고 격론을 불러 일으켰다. 야로슬라프 체르니(Jaroslav Cerny)에 따르면 대피라미드의 동쪽과 남쪽에 있는 모두 네 척의 배는 왕이 어떤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오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오르막길의 다섯 번째 굴에 있는 배는 왕의 미라를 묘지로 싣고 온 바로 그 배라고 한다. 다른 학자들, 특히 에머리와 하산은 배들이 이른바 태양선이라 하는 것으로, 파라오가 그것을 타고 태양신 라를 따라 하늘의 대양으로 오른다고 주장한다. 하와스는 배들이 단 한 번도 물 위에 떠 본 일이 없다고 주장한다. 굴 주변에서 나무 조각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배는 굴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와스도 배의 정체가 태양빛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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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라미드 동쪽의 ‘태양의 배’가 있던 배 구덩이이다. 전체 다섯 개의 배를 묻은 구덩이가 발견되었는데 그 중 동쪽에 있는 두 구멍은 현재 비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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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라미드 동쪽에는 3개의 작은 피라미드들이 있다. 이 피라미드들은 기자의 네크로폴리스를 정리한 고고학 지도에 G 1a-c라고 표시가 된 것 들이다. 그 크기나 설계된 모양 그리고 건축 방식은 세 개 모두 매우 흡사하다. 그 주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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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레의 피라미드 – ‘위대한 이는 카프라다’

멀리서 보면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들 중에서 가운데 있는 것이 가장 높아 보인다. 그러나 이 피라미드는 사실 대피라미드보다 약 2미터 정도가 낮다. 이 피라미드는 이곳 무덤들 중에서도 높은 지반 위에 만들어진 것이며, 특히 그 각도가 아주 가파르고, 정상의 모습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가장 높아 보이는 것은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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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레 피라미드의 정상에는 외장석이 아직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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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레 피라미드의 장제 신전(Funerary Temple)에서 바라 본 스핑크스 근처의 하안 신전(Valley Temple of Khafre)까지 연결된 둑 길 (Caus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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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바라 본 카프레 피라미드의 장제 신전(Funerary Temple)의 흔적과 둑 길 (Caus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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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카우레(Menkaure)의 피라미드 – ‘멘카우레여, 그대는 신이도다!’

기자의 3대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작은 피라미드이고 훼손도 가장 심하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 피라미드의 주인은 로도피스(Rhodopis) 공주다. 전설에 의하면 케옵스(Cheops)는 자신의 피라미드를 짓는 데 따른 재원이 부족하자 딸인 로도피스에게 매춘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로도피스는 하룻밤 사랑의 대가로 남자들에게 석재 하나씩을 요구했는데, 이렇게 모인 돌이 충분했던지 로도피스는 자기 피라미드를 따로 짓게 했다나. 비록 변형된 형태이기는 하지만 마네토도 비슷한 전설을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마네토의 전언에 따르면 피라미드의 주인은 금발과 장밋빛 피부를 자랑한 미인 니토크리스(Nitokris)라고 한다.

미케리노스(Mykerinos)라는 이름의 비문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사람은 디오도로스다. 중세의 아랍 역사가들도 갈수록 폐허가 되어 가는 피라미드를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다. 영국의 학자이자 탐험가 그리브스는 1630년대 말에 이미 피라미드의 외벽이 대부분 뜯겼다고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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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카우레 피라미드와 장제 신전(Funerary Temple)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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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카우레 피라미드 앞에서 바라 본 카프레의 피라미드와 쿠푸의 대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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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 본 기자의 피라미드들 / 오른쪽에서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의 피라미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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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시타델(Citadel)에서 바라 본 기자의 피라미드가 저 멀리 보인다.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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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개 피라미드의 크기 비교

Cheops는 쿠푸, Chephren은 카프레, Mycerinus는 멘카우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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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피라미드 단지 모델 –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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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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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의 기자 피라미드 단지가 계획된 건축이었듯한 상황을 살펴보면:

– 춘분에 스핑크스 정면에서 떠오르는 태양

– 하지에 두 피라미드 사이로 지는 태양

– 3개의 피라미드의 남동쪽 모서리를 연결한 축은 고대 이집트의 종교도시인 헬리오폴리스(Heliopolis)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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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라미드의 네 갱도가 가리키는 곳. 세차운동을 감안하면 기원전 2500년경을 나타낸단다.

 

 

28

– 기자의 3개의 피라미드가 BC 10,500년경 오리온자리의 허리띠를 이루는 세 개의 별과 일치한다는 주장(로버트 보발)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저런 비판으로 좀 시들해진 느낌이다.

 

 

29

– 오리온자리를 고대 이집트인들은 두아트의 주님 오시리스의 천상 이미지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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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7~1899년 사이에 찍은 사진(Maison Bonfils (Beirut, Lebanon), photographers)

 

 

31

– 1938년 사진(Meader, Mary, 1916-2008 – American Geographical Society Library, University of Wisconsin-Milwaukee Libraries)

 

 

32

– 2008년 사진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 기자의 3대 피라미드

위키 백과 : Giza Necropolis

피라미드 (미로슬라프 베르너 / 김희상 역 / 심산 / 2004.11.10)

피라미드 축조의 비밀 (김경제 / 청어 / 2009.07.25)

Who Built the Pyramids?

https://discoveringegypt.com/pyramids-temples-of-egypt/pyramids-of-giza/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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