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희 – 봄날은 간다

※ 옐로우의 K-Pop : http://yellow.kr/lifeView.jsp?s=yellowKpop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백설희 (1987년)


<봄날은 간다>는 1953년 대구 유니버설레코드사에서 가수 백설희가 발표한 대중가요이다. 손로원이 작사하고 박시춘이 작곡했으며, 한국전쟁 시절 너무 환해서 더욱 슬픈 봄날의 역설이 전쟁에 시달린 사람들의 한 맺힌 내면 풍경을 보여줬기에 이내 공감을 샀던 노래로 평가받았다.

<봄날은 간다>에는 누구나 공감하는 한의 정조가 가득하다. 금사향, 이미자, 배호, 조용필, 나훈아, 은방울자매, 하춘화, 문주란, 최헌, 이은하, 금과은, 심수봉, 김도향, 이동원, 장사익, 한영애, 홍서범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이 곡의 리메이크 대열에 동참했다.

2009년 계간 「시인세계」에서는 현역 시인 100명에게 ‘시인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을 조사해 결과를 발표했다. 여러 시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1위에 오른 노래는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였다.


– 장사익


– 심수봉


– 최백호


– 이미자


– 조용필


– 이선희


– 주현미


– 한영애


이 노래는 허진호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영애, 유지태 주연으로 남녀의 사랑을 따뜻한 봄에 빗대어 풀어나가면서 사랑의 덧없음과 인생무상을 그린 영화로 국제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가수 백설희는 1927년 서울에서 출생해 16세에 조선악극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영화배우 황해의 아내이며, 가수 전영록의 어머니이고, 걸그룹 티아라 전보람의 할머니이기도 하다. 백설희와 황해는 부부동반 예술인의 원조다.


※ 가사는 다음과 같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초판에 수록되지 않은 제2절은 백설희가 다시 녹음한 재판에 수록되었고, 이후 다른 가수들의 녹음에도 대부분 수록되었다.


작사자인 손노원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하는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성장기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초등교육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으나, 독학으로 문학과 무대장치, 포스터 등 공연 관련 미술을 익힌 것으로 보인다. 미술 작업으로 대중예술계와 인연을 맺으면서 1930년대에 이미 작사 활동을 시작했지만, 작사가로 본격적인 이름을 얻게 된 것은 1949년에 오리엔트레코드에서 「귀국선」 등 일련의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반야월과 함께 1950∼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사가로 활동했으나, 반야월과 달리 단체 활동에는 그다지 활발하게 참여하지 않았다. 대단한 애주가로 유명했으나, 사적인 삶에 관한 자료나 증언은 거의 없는 편이다. 1973년에 타계했다.


그런데 1991년 8월 30일 동아일보 <가요100년 그노래 그사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한다.

1945년, 화사한 봄날인데도 금강산의 계곡물은 차가웠다. 상복을 입은 손노원이 무릎을 꿇고 있는 어머니 묘소에도 무성한 나무 그늘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연희전문 문과를 나온 부잣집 외아들 손노원은 조선 8도를 두루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을 때라 어수선한 시국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저것이 마음 붙일 데가 없어 낭인처럼 싸돌아 다니는 거지, 지도 장가를 들고 자식을 낳게 되면 고향에 와 눌러앉게 되겠지…”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어머니는 아들의 방랑병을 이해하면서도 구름처럼 떠돌아 다니는 자식을 그리워하며 혼자서 눈물 짓곤 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보다도 더 많은 농토를 일구며 농사를 짓던 그의 어머니는 결국 과로로 돌아가시게 됐다.

“노원이 장가 드는 날 나도 연분홍 저고리와 치마를 장롱에서 꺼내 입을거야. 내가 열아홉살 때 시집오면서 입었던 그 연분홍 저고리와 치마를 …”

어머니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간신히 남긴 이 말은 곧 유언이었다. 객상을 당한 불효자는 어머니 무덤 앞에서 지난 날을 사죄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금강산과 인접해 있던 그의 고향 철원은 휴전을 앞두고 격전이 벌어졌던 곳.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으로 전쟁 막바지인 53년 봄 손노원은 <봄날은 간다>를 작사했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떠올리면서….



<관련자료 및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한국 대중가요 앨범6000) : 고향은 내사랑 / 봄날은 간다

네이버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손노원

위키백과 : 봄날은 간다(백설희의 노래)

백설희 – 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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