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 1Q84

 

책의 대표적인 음악인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시작으로 『1Q84 』에 나오는 음악들을 정리해 보았다.

 


◎ 야나체크 – 신포니에타 (Janacek – Sinfonietta)

 

 

택시 라디오에서는 FM방송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곡은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정체에 말려든 택시 안에서 듣기에 어울리는 음악이랄 수는 없었다. 운전기사도 딱히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중년의 운전기사는 마치 뱃머리에 서서 불길한 물때를 읽어내는 노련한 어부처럼 앞쪽에 끊임없이 늘어선 자동차 행렬을 입을 꾹 다물고 바라보고 있었다. 아오마메는 뒷좌석 깊숙이 몸을 묻고 가볍게 눈을 감은 채 음악을 들었다.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첫 부분을 듣고 이건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라고 알아맞힐 사람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아주 적다’와 ‘거의 없다’의 중간쯤이 아닐까. 하지만 아오마메는 왠지 그걸 맞힐 수 있었다.

야나체크는 1926년에 이 작은 교향곡을 작곡했다. 도입부의 테마는 원래 한 스포츠대회를 위한 팡파르로 만들어진 것이다. 아오마메는 1926년의 체코슬로바키아를 상상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오래도록 이어진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에서 마침내 해방된 사람들은 카페에서 필젠 맥주를 마시고 쿨하고 리얼한 기관총을 제조하며, 중부유럽에 찾아온 잠깐의 평화를 맛보고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는 그 이 년 전에 불우한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곧이어 히틀러가 어디선지 불쑥 나타나 그 아담하니 아름다운 나라를 눈 깜짝할 사이에 덥석 집어삼켰는데, 그런 지독한 일이 일어날 줄은 당시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역사가 인간에게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명제는 ‘그 당시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오마메는 음악을 들으며 보헤미아 들판을 건너가는 평온한 바람을 상상하고 역사의 존재방식에 대해 두루 생각했다.

……

아오마메는 정체에 휘말린 택시 안에서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첫 소절을 들었을 때 경험했던, 그 이상한 감각을 떠올렸다. 그것은 몸의 뒤틀림 같은 감각, 몸의 구조가 걸레처럼 쥐어 짜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운전기사가 수도고속도로에 비상계단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나는 하이힐을 벗고 그 위험한 계단을 내려왔다. 그 계단을 맨발로, 강한 바람을 맞으며 내려오는 동안에도 내내 <신포니에타> 도입부의 팡파르는 내 귓속에서 단속적으로 울려퍼졌다. 어쩌면 그것이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아오마메는 생각했다.

……

레오시 야나체크는 1854년에 모라비아 마을에서 태어나 1928년에 사망했다. 책에는 만년의 얼굴 사진이 실려 있었다. 대머리는 아니어서 힘찬 들풀 같은 백발이 머리를 뒤덮고 있었다. 두상까지는 모르겠다. <신포니에타>는 1926년에 작곡되었다. 야나체크는 애정 없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냈지만, 1917년에 63세의 유부녀 카밀라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기혼자 간의 노숙한 사랑이다. 한때 슬럼프로 고민했던 야나체크는 카밀라와의 만남을 계기로 왕성한 창작욕을 되찾았다. 그리고 만년의 겅작이 차례차례 세상의 호평을 받게 된다.

어느 날 그녀와 둘이서 공원을 산책할 때, 야외음악당에서 연주회가 열리는 것을 본 그는 발을 멈추고 그 연주를 들었다. 그때 야나체크는 느닷없는 행복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신포니에타>의 악상을 얻었다. 그 순간 자신의 머릿속에서 뭔가 폭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선명한 황홀감에 휩싸였다고 그는 술회하고 있다. 당시 야나체크는 마침 큰 스포츠 대회를 위한 팡파르의 작곡을 의뢰받은 상태였고 그 팡파르의 모티프와 공원에서 얻은 ‘악상’이 하나가 되어 <신포니에타>라는 작품이 태어났다. ‘작은 교향곡’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구성은 어디까지나 비전통적이고 금관악기에 의한 휘황한 축제 같은 팡파르와 중추적인 차분한 현악 합주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독자적인 분위기를 빚어내고 있다……라고 해설에 나와 있었다.

 


마이클잭슨 – 빌리진 (MICHAEL JACKSON – BILLIE JEANS)

 

 

사람들은 그녀가 하이힐을 벗고 코트를 벗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바로 앞에 서 있던 검은 도요타 셀리카의 열린 창문으로 마이클 잭슨의 새된 목소리가 배경음악처럼 흘러나왔다. <빌리 진>. 스트립쇼 무대에 오른 것 같네, 그녀는 생각했다. 좋아, 보고 싶으면 보라지. 정체에 말려들어 꼼짝도 못 하고 다들 어지간히 따분할 텐데. 하지만 여러분, 더이상은 안 벗어요. 오늘은 하이힐과 코트까지만. 안됐네요.

 


◎ 냇 킹 콜 – 스위트 로레인 (Nat King Cole – Sweet Lorraine)

 

 

바에 들어선 건 일곱시 조금 지나서였다. 피아노와 기타의 젊은 듀오가 <스위트 로레인>을 연주하고 있었다. 냇 킹 콜의 오래된 레코드 복사판이지만 나쁘진 않다. 그녀는 늘 하던 대로 카운터에 앉아 진토닉과 피스타치오를 주문했다.

 


◎ 냇 킹 콜 – 이츠 온리 어 페이퍼 문 (Nat King Cole – It’s Onlly A Paper Moon)

 

 

남자는 셔츠의 맨 위 단추를 풀고 자잘한 무늬가 들어간 감색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했다. 양복은 블루그레이, 셔츠는 엷은 블루의 레귤러 컬러. 그녀는 책을 읽으며 커티삭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사이에 블라우스 단추 하나를 자연스럽게 풀었다. 밴드는 <이츠 온리 어 페이퍼 문>을 연주하고 있었다. 피아니스트가 1절만 노래했다. 온더록이 나오자 그녀는 그것을 입으로 옮겨와 한 모금 홀짝였다.

……

오래된 노래가사에 이런 게 있지. “Without your love, it’s d honky-tonk parade.” 남자는 그 멜로디를 조그맣게 흥얼거렸다. “너의 사랑이 없다면 이건 그저 싸구려 연극에 지나지 않아. 이 노래를 알고 있나?”

“<It’s Only a Paper Moon>.”

 


◎ 헨델(Handel) – Recorder Sonata C major

 

 

아오마메는 길쭉한 형태의 선룸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유리창이 정원을 향해 활짝 열렸지만 레이스 커튼에 가려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창가에는 관엽식물 화분이 줄지어 있다. 천장의 작은 스피커에서는 온화한 바로크 음악이 흘러나왔다. 하프시코드 반주가 곁들여진 리코드 소나타다. 방 중앙에 마사지용 매트가 놓였고 그 위에 노부인이 이미 엎드려 있었다. 그녀는 하얀 로브 차림이었다.

 


◎ 바흐(J.S.Bach) – Matthew Passion/BWV244-1.

 

 

“바흐가 좋아요.”

“특히 마음에 드는 건?”

“BWV 846에서 BWV 893.”

……

“그밖에는?”

“BWV 244.”

BWV 244가 무엇이었는지 덴고는 얼핏 생각나지 않았다. 귀에 익은 번호이기는 한 데 곡명이 떠오르지 않는다.

후카에리는 노래하기 시작했다.

……

덴고는 잠시 할말을 잃었다. 음정은 그리 정확하지 않지만 그녀의 독일어 발음은 명료하고 놀랄 만큼 정확했다.

‘<마태 수난곡>.” 덴고는 말했다. “가사를 외우고 있구나.”

“외우고 있지 않아요.” 소녀는 말했다.

……

 

죄의 슬픔은

참회의 마음을 천 갈래로 찢는구나

나의 눈물방울

고운 향유가 되어

참되신 예수여

그 몸에 부어지기를

지난번에 후카에리가 노래한 <마태수난곡>의 아리아 가사다. 덴고는 그게 은근히 마음에 걸려서 그다음 날 집에 있는 레코드를 다시 들으며 번역 가사를 찾아보았다. 수난곡의 첫머리 부분, ‘베다니의 도포塗布’와 관련된 아리아다. 예수가 베다니 마을에서 문둥병 환자의 집을 찾았을 때 한 여인이 예수의 머리에 값비싼 향유를 붓는다. 주위에 있던 제자들은 그 무의미한 낭비를 꾸짖었다. 향유를 팔면 그 돈을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 수 있지 않느냐. 하지만 예수는 분개하는 제자들을 만류하며 말했다. 이걸로 되었다. 이 여인은 선한 일을 하였느니라. 이 여인은 나의 장례식을 위해 이같이 행하여준 것이니라.

여인은 알고 있었다. 예수가 가까운 시일 내에 죽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그래서 자신의 넘치는 눈물을 흩뿌리듯이 그 귀중한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붓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 또한 알고 있었다. 자신이 곧 죽음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는 말했다. “세상 어디든 이 복음이 널리 전해지는 곳에는 이 여인이 행한 일도 알려져 그녀를 기념하게 되리라”고.

그들은 물론 미래를 변경할 수는 없었다.

 


◎ 존 다울런드(John Dowland) – Lachrimae

 

 

노부인은 트레이닝용 저지로 몸을 감싸고 독서용 의자에 앉아 존 다울런드의 기악합주곡 <라크리메>를 들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곡이다. 아오마메도 곁에서 수없이 들었기 때문에 그 멜로디를 기억하고 있었다.

……

“이 음악을 듣노라면 때때로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신비한 감회가 몰려온답니다.” 노부인은 아오마메의 마음을 읽은 듯이 말했다. “사백 년 전의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듣는 것과 똑같은 음악을 들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뭔가 묘한 기분이 들지 않아요?”

“그렇군요.” 아오마메는 말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사백 년 전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달을 보고 있었어요.”

노부인은 조금 놀란 듯 아오마메를 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군요. 당신 말이 맞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사 세기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똑같은 음악을 듣는 건 그닥 신비로울 것도 없는지 모르겠군요.”

“거의 같은 달이라고 말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아오마메는 그렇게 말하고 노부인의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아오마메의 말은 노부인에게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은 듯했다.

 


◎ 하이든(J.Haydn) – Cello Concerto No.1 in C major : Mstislav Rostropovich

 

 

요리를 먹는 동안 두 사람은 드문드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먹는 일에 집중했다. 음악이 나직이 흐르고 있었다. 하이든의 첼로 콘체르토, 그것도 노부인이 좋아하는 음악의 하나였다.

 


◎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 Partita no.5

 

 

새로 내린 커피를 마시고, 세면실로 가서 FM 바로크 음악방송을 들으며 수염을 밀었다. 텔레만이 작곡한 각종 독주악기를 위한 파르티타. 여느 때와 똑같다. 주방에서 커피를 내려 그것을 마시고 라디오로  <바로크 음악을 당신에게>를 들으며 수염을 민다. 날마다 곡목만 바뀐다. 분명 어제는 라모의 건반음악이었다.

해설자의 말이 흘러나왔다.

 

 

텔레만은 18세기 전반에는 작곡가로서 유럽 각지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지만, 19세기에 접어든 뒤로는 지나치게 많은 곡을 남긴 작곡가라는 이유로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경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딱히 텔레만의 책임은 아니었습니다. 유럽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라 음악창작의 목적이 크게 변화하면서 이러한 평가의 역전이 빚어진 것입니다.

 


◎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 Mother’s Little Helper / Lady Jane

 

 

 

덴고는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했다. 후카에리는 레코드 선반에서 열심히 레코드를 고르고 있었다. 그리 많은 레코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선택하는 데 몹시 시간이 걸렸다. 숙고를 거듭한 끝에 롤링 스톤스의 낡은 앨범을 꺼내 턴테이블에 얹고 바늘을 올려놓았다. 고등학생 때 누군가에게서 빌려왔는데 왜 그랬는지 돌려주지 않은 레코드다. 상당히 오랫동안 들어본 일이 없다.

덴고는 <마더스 리틀 헬퍼> <레이디 제인>을 들으며 햄과 버섯과 브라운 라이스를 넣어 필라프를 만들고 두부와 미역 된장국을 끓였다.

 


◎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 – Little Red Rooster

 

 

덴고는 책상 앞에 앉아 후카에리가 일러준 말에 따라 아오마메에 대해 뭔가 생각해내려고 노력했다.

그 사람에 대해 생각나는 게 몇 가지 있을 것이다. 그게 도움이 될지도.

하지만 덴고는 거기에 의식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롤링 스톤스의 또다른 앨범이 걸려 있었다. <리틀 레드 루스터>, 믹 재거가 시카고 블루스에 심취해 있을 무렵의 연주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깊은 사색을 하거나 진지하게 기억을 파헤치려는 사람을 고려해서 만든 음악은 아니다. 롤링 스톤스라는 밴드에는 그런 종류의 친절함은 거의 없다. 어딘가 조용한 곳에서 혼자가 될 필요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 화려한 패배자(The Thomas Crown Affair) – Windmills of your Mind

 

 

아오마메는 현관에 걸린 전신거울 앞에서 옷차림에 빈틈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녀는 거울을 마주하고 한쪽 어깨를 가볍게 위로 쳐들며 <화려한 패배자>에 나온 페이 더너웨이처럼 보이지 않으려나,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 영화 속에서 차가운 나이프 처럼 냉철한 보험회사 조사원으로 나온다. 쿨하고 섹시하고, 비지니스 정장이 매우 잘 어울린다. 물론 아오마메는 페이 더너웨이처럼은 보이지 않지만, 약간은 거기에 가까운 분위기는 있다. 적어도 없지는 않았다. 일류 프로페셔널만이 풍길 수 있는 특별한 분위기, 게다가 숄더백 안에는 딱딱하고 차가운 자동권총이 들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 1Q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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