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계와 역사

복잡계 이론으로 역사를 살펴보자. 역사의 예측 불가능한 패턴을 복잡계라는 현대 물리학으로 읽어보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마크 뷰캐넌의 『우발과 패턴』을 주로 발췌하고 아래의 여러 참고자료들로 정리해 보았다.

 

옥스퍼드대학의 역사가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기에 수많은 역사철학자들이 역사가 ‘과학’인가 하는 문제를 논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말한 과학이라는 개념이 이미 구식이 된 19세기의 유물임을 알지 못한 것 같다. 게다가 과학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역사가들은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깜짝 놀랐을 것이다. 어쩌면 이 깨달음으로 그들은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현대 자연과학의 수많은 발전에서 놀라운 측면은, 그것들이 근본적으로 역사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Virtual history, 1997).

 

이 글에서 자주 언급할 모래더미 게임과 복잡계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글을 먼저 읽어보자.

※ 복잡계와 멱함수 : http://yellow.kr/blog/?p=2824

 

유럽의 역사에서 비교적 길었던 평화로운 시대가 끝나고 갑자기 찾아온 제1차 세계대전을 예언한 역사가가 있었을까? 소련의 갑작스런 붕괴를 예상한 역사가는 있었을까? 소련이 해체되자 ‘신 세계 질서’의 도래를 주장하며 세계의 민주화와 평화가 지속되리라 예상한 역사가들은 또 어떠한가? 현재의 역사가들은 방대한 자료와 명료한 시야로 이제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마치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하고 이를 설명하기에 급급한 경제학자들 처럼 말이다. 그리고 지진을 예측하지 못하는 지진학자들 처럼.

 

역사에서 전쟁이나 혁명을 일종의 격변으로 이해하면 복잡계의 예로 자주 등장하는 지진, 산불, 주식시장의 붕괴, 모래더미 게임 등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계들은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임계상태에서 격변을 기다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울산과기원 신국조 교수는 복잡계에 관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혼돈으로부터의 질서가 얻어진 후 일정 시간이 흐르면 그 계가 다시금 불안정해지며 또 다시 나타나는 분기점에서 새로운 혼돈 상태로의 진화가 이루어진다”며 “자연 현상이 혼돈에서 질서로, 다시 질서에서 혼돈으로의 진화가 이루어지듯이 인류의 역사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버드대학에서 오랫동안 과학사를 연구한 토마스 쿤(Thomas Khun)은 이제는 고전이 된 1962년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과학이 진행되는 방식을 설명했다. 과학에 대한 쿤의 생각은 다양한 분야에서 매우 영향력이 컸느데, 역사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쿤의 연구가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모든 과학적 변화의 경우에 적용되는 일반화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패러다임이란 잘 작동한다고 증명된 과학적 개념이나 관행을 말한다. 패러다임은 과학자들에게 언제나 수수께끼였던 것을 설명하는 ‘좋은 개념’의 다발이다. 패러다임의 ‘좋은 개념’은 과학자들에게 기초를 주고, 결과적으로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에 종교적 열정을 가지게 된다. ‘정상과학’은 패러다임을 설명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패러다임에 속한 개념들이 함의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활동이다. 이것은 단순한 성장에 비교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과학은 매우 보수적이다.

정상과학의 연구는 좋은 개념의 네트워크를 확장해서 자연의 더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 빈틈을 메워서, 완벽하고 기운 데 없이 전체가 통합된 것으로 만드는 활동이다.

그러나 모든 과학이 정상과학은 아니다. 네트워크를 어떤 방향으로 성장시키려고 노력하거나 어떤 빈 영역을 채우려는 노력을 하다가도, 도저히 패러다임에 맞지 않는 현상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서 정상과학에 문제가 있음이 알려지고, 부적응이 만들어져 쿤이 말한 과학혁명이 일어날 무대가 만들어진다.

폴라니가 지적했듯이, 과학 사회는 개념 변화에 대한 ‘심적 저항’을 가지고 있고, 과학적 개념 체계는 스트레스가 문턱을 넘었을 때만 혁명을 겪는다.

정상과학의 연구는 대륙판의 느린 이동과 비슷하고, 과학혁명은 지진과 비슷하다. 이 비유는 더 확장될 수도 있다. 지진에는 전형적인 크기가 없다. 처음에 바위 몇 개가 미끄러지면서 근처에 있는 다른 바위까지 미끄러지게 할 수 있다. 지각은 자연적으로 임계상태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이 연쇄적인 미끄러짐이 얼나 멀리 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지진에 전형적인 크기가 없듯이 과학혁명도 그렇다는 암시를 준다.

부분적으로는 내가 제시한 예 때문에, 또 부분적으로는 관련된 공동체의 성질과 크기에 대한 나의 모호함 때문에, 이 책을 읽은 몇몇 독자들이 내가 코페르니쿠스, 뉴턴, 다윈, 아인슈타인과 같은 거대한 혁명에만 관심을 가진다고 결론을 내렸다. …… 내가 말하는 혁명이란, 집단이 의지하는 준거를 재구성하는 특별한 종류의 변화다. 그러나 이것은 큰 변화일 필요가 없고, 그 집단 밖에서도 혁명적으로 보일 필요가 없으며, 어쩌면 25명 이하의 소규모 집단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과학철학 문헌에서 거의 인지되거나 토의되지 않았지만, 작은 규모로 그렇게도 자주 일어나는 이 혁명적(축적적이라는 말의 반대 의미로)인 변화에 대해 꼭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 1969년 『과학혁명의 구조』 개정판 후기에서

 

역사가 폴 케네디(Paul Michael Kennedy)는 역사의 거대한 리듬은 주로 국가들의 이익이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스트레스의 자연스러운 축적과 방출의 결과라고 제안했다.

자연적인 변화에 따라 어떤 국가들의 경제적 기반은 쇠퇴했고, 또 어떤 국가들은 새로운 경제적 힘을 발견해서 더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불가피하게 긴장이 고조되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자, 사소하고 우연한 위기의 결과로 균형이 갑자기 무너졌다. 대개 스트레스는 무장 충돌을 통해 해소되었고, 충돌이 끝난 뒤에 각국은 실질적인 경제력에 따라 대략 균형을 회복했다.

국가 안의 여러 집단과 개인 사이에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난다. 어떤 사회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역사적 우연에 의해 어떤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강해져서, 국가 내부의 경제적인 문제, 민족 문제 등이 불거진다. 모든 사회에는 사회적 관습, 도덕적 금지, 계급 구조, 법 등의 전통에 고착된 구조가 있다. 이것은 안정성을 유지하고 구성원들 사이의 충돌을 조정하는 목적을 가진다. 그러나 전통 고착적 구조가 항상 적절한 것은 아니다. 모든 과학이 정상과학이 아니듯이, 정치는 항상 평온하게 통제되지 않는다. 토마스 쿤은 스스로 이런 비유를 사용했다.

정치적 혁명은 …… 기존의 제도가 부분적으로 스스로 만들어낸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증가하면서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과학혁명도 …… 기존의 패러다임이 부분적으로 그 자신의 탓으로 자연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될 떄 일어난다. 정치와 과학의 전개 모두에서, 기존의 체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생각이 혁명의 전제조건이다.

 

코니어스 리드(Conyers Read)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끊임없이 재조정하여 부적응을 해소하지 않으면, 이 부적응은 혁명의 전조가 될 것이며, 혁명이 러시아의 형태를 취하든 이탈리아의 형태를 취하든 …… 나는 역사의 연구가 바로 이러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본다.

국제관계의 그물망도 어떤 사회의 구조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둘 다에 어떤 형태로든 스트레스가 쌓인다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 스트레스가 쌓여도 즉각 ‘조정’에 의해 해소되지 않을 수 있다. 스트레스가 어떤 문턱 값 이상으로 쌓여야 변화가 일어난다. 공동체의 전통은 사회적 변화를 거부하는 강력한 힘이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쌓여도 전통의 힘에 의해 사물이 그대로 유지되다가, 갑자기 무너진다.

어떤 조건에서는 모든 다양한 요소들 사이의 상호 영향이 계를 임계상태로 조직한다. 이 조건에서, 어느 한 곳에서 스트레스가 갑자기 방출되면 연쇄적인 스트레스의 방출이 멀리까지 갈 수 있다. 어떤 사회 체제에서 이것이 진짜로 옳은지를 증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옳다면, 세계는 필연적으로 전쟁을 겪을 것이고, 모든 사회도 거친 혁명을 겪을 것이며,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사건이 드물지 않게 일어날 것이다.

 

다음은 1820년 ~ 1997년 사이의 유혈 충돌의 사망자 수에 따른 분포이다.

 

– 출처 : https://icr.ethz.ch/teaching/introlecture/

 

전쟁의 빈도와 사망자 수의 관계를 보여주는 위의 그림을 보면 멱함수 법칙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지진의 구텐베르크-리히터 법칙과 똑같다. 이것의 의미는 전쟁의 전형적인 크기는 없고, 소규모 분쟁과 거대한 전쟁의 유의미한 구분도 없다는 것이다.

 

멱함수 법칙으로 이해하면 세계의 정치적, 사회적 구조는 불안정성의 가장자리에 있다. 전쟁도 지진과 산불과 같은 방식으로 퍼지며, 따라서 전쟁의 궁극적인 범위는 거의 예측할 수 없다. 멱함수 법칙이 가진 규모 불변성의 특성은 전쟁이 시작되었을 당시에는 얼마나 커질지 명백한 실마리가 없다고 암시한다. 국가와 사회를 평화롭게 묶고 있는 조직에서 이런 전쟁은 마치 산불처럼 번지며, 모래더미 게임의 사태처럼 번진다.

 

코넬대학의 물리학자 도널드 터콧은 이렇게 추측했다.

전쟁은 산불과 매우 비슷한 방식으로 일어날 것이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범할 수도 있고, 저명한 정치가가 암살당할 수도 있다. 이 전쟁은 불안정한 인접 지역으로 번져나갈 수 있다. 이런 불안정한 지역은 중동(이란, 이라크, 시리아, 이스라엘, 이집트 등)일 수도 있고 옛 유고슬라비아 지역(세르비아,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등)일 수도 있다. …… 어떤 불은 크고 어떤 불은 작다. 그러나 그 빈도와 크기의 분포는 멱함수 법칙을 따른다. 세계 질서에서 작은 분쟁은 큰 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안정화와 불안정화의 영향은 분명히 매우 복잡하다.

 

역사에는 몇 가지 힘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수의 힘이 작용한다. 역사에서 나올 수 있는 전형적인 패턴을 이해하려면, 수많은 독립적인 것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시스템을 다루는 역사과학이 필요하다.

이것은 비평형 통계물리학의 영역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그러면서도 개별적인 사건들의 무질서 속에는 심오한 규칙성이 들어 있고, 매우 간단한 통계법칙이 지배되는 경우도 많다. 멱함수 관계 같은 것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다.

 

지진은 수많은 바위들이 복잡하게 포개진 지각의 네트워크에서 일어난다. 과학혁명은 수많은 개념들이 복잡하게 포개진 개념의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지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나 혁명 같은 격변은 수많은 이질적인 구성원들이 포개져서 만들어진 사회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지진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의 논리가 이렇게 비슷하다면, 우리는 지진과 모래더미 게임에서 인간사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역사의 마당에서는 지금도 어떤 빨간 지점에 모래알이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서로 싸우고 있는 집단을 화해시키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돌발적인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충돌을 조장하려는 시도가 긴 평화를 부를 수도 있다. 우리의 세계에서 시작과 결말은 거의 서로 관계가 없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카뮈의 말은 아주 적절하다. “모든 위대한 행위와 모든 위대한 사상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세계가 여러 수준에서 모래더미처럼 변이를 겪는다는 암시를 위에서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영향은 크게 ‘전파’될 수 있다. 만약 세계의 정치적, 사회적 구조가 진짜로 이런 방식으로 되어 있다면,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고 예상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상대적인 조용함은 다음 세기까지 지속될 수도 있고, 5년 안에 또 다른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무도 알 수 없다. 세계가 임계상태에 있다면, 탐구해볼 만한 국지적인 원인이 있고, 정치와 사회적인 힘이 여기저기에서 역사적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에 그럴듯하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사건이 궁극적으로 어떤 일을 일으킬지는 ‘불안정성의 고리’가 세계를 어떻게 누비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따라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현재의 경향이 계속된다고 볼 수도 없다.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미래는 끊임없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가 될 수 있다. 역사는 정적이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변하지도 않으며, 이 둘 사이의 중간에 불안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 따라서 역사는 모래더미처럼 언제나 극적인 요동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간다.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찾아 보았다.


우발과 패턴

–  마크 뷰캐넌 / 김희봉 역 / 시공사 / 2014.08.20

 

페르 박(Per Bak), 차오 탕(Chao Tang), 커트 위젠필드(Kurt Weisenfeld)가 모래더미 게임을 고안하던 바로 그해, 역사가 폴 케네디(Paul Kennedy)는 『강대국의 흥망』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에서 그는 인류 역사의 거대한 리듬은 정치와 경제의 전 지구적인 그물망에서 압력이 자연스럽게 축적되고 방출된 결과라고 말했다.

폴 케네디의 견해는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다. 국가의 경제력은 자연스럽게 약해졌다 강해졌다 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어떤 국가의 경제적 기반은 점점 약화되고, 어떤 국가는 새로운 경제적 기반을 얻지만, 기존의 상황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 쌓인 스트레스는 대개 무력 충돌의 형태로 방출되며, 충돌이 벌어진 뒤에는 각각의 국가들이 진정한 경제력에 따라 대략 균형을 찾는다.

지각에 스트레스가 서서히 쌓였다가 갑작스러운 지진으로 방출되거나, 모래더미에서 경사가 점점 급해져서 계속 불안정성이 높아지다가 사태가 나는 것이 역사에 대한 케네디의 설명과 비슷하게 들린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쟁은 실제로 지진이나 모래더미 게임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통계적 패턴을 보인다.

……

역사의 마당에서는 지금도 어떤 빨간 지점에 모래알이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서로 싸우고 있는 집단을 화해시키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돌발적인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충돌을 조장하려는 시도가 긴 평화를 부를 수도 있다. 우리의 세계에서 시작과 결말은 거의 서로 관계가 없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카뮈의 말은 아주 적절하다. “모든 위대한 행위와 모든 위대한 사상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에서 시작된다.”

……

 

영국의 유명한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은 “역사는 위대한 사람들의 전기다”라고 말했다. …… 이것은 역사의 ‘위대한 사람’ 이론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예외적인 인간들이 역사의 흐름 밖으로 우뚝 솟아 있고, 그들은 자신들의 ‘위대함의 미덕’을 역사에 집어넣는다.

이런 방식의 역사 해석이 호소력이 있는 이유는 물론 단순한 설명을 주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사악함이 제2차 세계대전의 궁극적인 원인이라면, 우리는 왜 이 전쟁이 일어났으며 누구를 탓해야 할지 안다.

……

그러나 많은 역사가들은 다르게 생각하며, 이런 관점은 진짜 역사의 기괴한 패러디 정도로 본다. 애턴 경은 1863년에 이렇게 썼다. “개인의 성격에 대한 관심으로 역사를 보는 것 이상으로 잘못되거나 불공정한 것은 없다.” 마찬가지로 카도 역사의 ‘위대한 사람’ 이론은 ‘유아적’이며, ‘역사적 사고의 원시적인 단계’라고 지적했다.

공산주의가 카를 마르크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이 공산주의의 기원과 성격을 분석하기보다 쉽고, 볼셰비키 혁명을 니콜라스 2세의 우둔함이나 독일의 금 때문에 일어났다고 하는 것이 깊숙이 숨어있는 사회적 원인을 연구하는 것보다 쉽고, 금세기 세계대전의 원인을 국제 체제 붕괴에서 찾기보다 빌헬름 2세와 히틀러가 나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쉽다.

카의 견해에 따르면, 역사에서 진짜로 중요한 힘은 집단적인 운동이다. 집단적인 운동은 한 개인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엄청난 수가 참여하기 때문에 중요할 뿐이다.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역사는 상당한 정도로 수의 문제다.”

……

일반적인 인간 역사에서도, 개인의 능력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사회 체제의 조직일 것이다. 개인의 영향력뿐만 아니라,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력도 마찬가지로 사건들의 조직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

역사가 허버트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 사건에는 어떤 성질이 있어서, 그것이 역사의 경로를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쪽으로 비튼다.”

……

우리의 세계가 여러 수준에서 모래더미처럼 변이를 겪는다는 암시를 위에서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영향은 크게 ‘전파’될 수 있다. 만약 세계의 정치적, 사회적 구조가 진짜로 이런 방식으로 되어 있다면,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고 예상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상대적인 조용함은 다음 세기까지 지속될 수도 있고, 5년 안에 또 다른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무도 알 수 없다. …… 세계가 임계상태에 있다면, 탐구해볼 만한 국지적인 원인이 있고, 정치와 사회적인 힘이 여기저기에서 역사적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에 그럴듯하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사건이 궁극적으로 어떤 일을 일으킬지는 ‘불안정성의 고리’가 세계를 어떻게 누비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따라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현재의 경향이 계속된다고 볼 수도 없다.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미래는 끊임없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가 될 수 있다. 역사는 정적이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변하지도 않으며, 이 둘 사이의 중간에 불안하게 균형을 잡고 있다. 따라서 역사는 모래더미처럼 언제나 극적인 요동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간다.


복잡한 세계 숨겨진 패턴

–  닐 존슨 / 한국복잡계학회 역 / 바다출판사 / 2015.05.01

 

마이클 스패갓과 호르헤 레스트레포와 나머지 연구진은 생각을 계속 이어 나갔다. 전쟁은 거듭제곱 법칙을 따르고, 전쟁은 인간의 활동이다. 그러나 전쟁이 보통 수많은 더 작은 전투와 충돌, 즉 ‘전쟁 안의 전쟁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하나의 전쟁 안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나지 않을까? 달리 이야기하면 하나의 전쟁은 전쟁 속의 전쟁들의 집합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이 정확히 그들이 발견한 사실이다. 이라크 전쟁과 콜롬비아 전쟁이 일어난 기원, 동기 장소, 기간은 달라도 그 안에서 발생한 사건들의 인과관계 그림에 나타난 거듭제곱 법칙 패턴은 유사했던 것이다. 이 결과는 그림 9.3에 나와 있다.

 

<그림 9.3> 전쟁 속의 전쟁. 이라크나 콜롬비아와 같은 어떤 특정 전쟁 중의 사건들에서 발생한 사상자 패턴. 이 그래프는 특정한 전쟁 중에서 N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의 횟수의 사상자 수 N에 대한 로그-로그 그래프를 나타낸다.

 

그들의 발견은 두 전쟁의 조건과 장소가 달랐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 지속 기간이 달랐다는 점 때문에도 놀랄 만한 것이었다. 이라크 전쟁은 기본적으로 사막과 도시에서 교전이 이뤄졌으며, 이 책을 쓸 때까지만 해도 불과 수년 동안 이어졌을 뿐이다. 반면에 콜롬비아의 게릴라전은 주로 산악 정글지대에서 교전이 이뤄졌고, 2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마약 밀거래와 마피아 활동을 상대로 계속되어왔다.

……

위치, 운영 규칙과 역사가 매우 다르더라도, 두 시장의 프랙탈 매개변수 a(거듭제곱 법칙 기울기 α에 해당)는 매우 비슷한 값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뭘까? 이는 결국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다. 스스로 내버려 두면 인간 집단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나 중앙통제자 없이도 상호작용하여, 유사한 특징을 갖는 시장, 유사한 특징을 갖는 전쟁을 만들어 낸다. 이는 또한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인간들의 집합체가 복잡계의 훌륭한 사례이며, 복잡계는 일정 수준의 보편성을 나타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쟁은 시장이나 교통과 마찬가지로 모두 그저 복잡계의 일례일 뿐이다.​

 


불확실성 속의 질서 : 복잡계 이론과 국제정치학

– 민병원 / 논문(한국국제정치학회 2005년) / 2005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반세기를 지탱해왔던 냉전의 종식이나 공산권의 붕괴, 그리고 9.11사태 이후의 세계정세 등 지난 10~20여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일어난 국제정치적 사건들은 모두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국제정치적 현상이 갑작스럽게 다가왔다는 것은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예외적 현상(anomalies)’으로서 토머스 쿤이 말한 과학혁명의 전제조건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국제정치현상들의 예기치 못한 전개는 기존의 지배적 패러다임의 ‘위기’를 가져오게 되고 나아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야기하는 촉매의 역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문제의 핵심은 ‘다이내믹스’에 있다. 기존의 주류 국제정치이론들은 대부분 ‘정학(靜學)’ 차원의 논의에 머물러 있었던 까닭에 갑작스러운 변화를 설명해내는데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이론들이 ‘정학’을 지향하는 이유는 그것이 안정적인 시기 또는 현상을 주된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인데, 시간 축을 기준으로 본다면 이러한 안정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기존 이론들을 탓할 수만도 없다. 예를 들어 국제정치이론 분야에서도 오랫동안 ‘냉전’이라는 안정 구조가 유지되면서 학자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그와 같은 현상을 만들어낸 변인과 과정에 쏠려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기존의 주류 국제정치이론은 아마도 쿤이 말한 ‘정상과학(normal science)’의 지위를 누려왔다고도 볼 수 있다. 국제정치이론의 정상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양대 이론들은 이러한 점에서 부분적인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무정부상태, 근대국가, 이익, 합리성, 권력 등 핵심 전제에 있어 거의 일치하고 있다. 특히 ‘정학’을 지향함으로써 ‘변화’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들은 국제정치 단위체나 구조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변화’가 일어나는가를 설명해내지 못함으로써 냉전의 붕괴나 9.11사태와 같은 격변 현상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

복잡계 이론은 시스템의 속성과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따라서 인간들의 집합체인 사회의 연구에 있어서 이 이론이 적용되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자연계보다도 훨씬 더 복잡한 인간사회의 관계와 거시적 현상들을 설명하는데 복잡계 이론이 갖는 강점은 매우 크다. 개인적 합리성의 한계와 ‘사회적 선택’의 딜레마에 익숙해져 있는 많은 사회과학자들은 이제 그러한 딜레마의 작동원리를 이론적으로 밝혀내기 위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사회과학적’ 방법, 특히 공리주의적 접근법에 기반을 둔 합리적 선택이론이나 통계분석 등의 경험적 방법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현상에 대해 복잡계 이론을 원용한 설명이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기존의 이론들은 대부분 ‘절제(parsimony)의 미덕’을 강조한 나머지 가능한 한 단순한 형태의 이론을 추구해왔다. 하지만 복잡계 이론에서는 무리한 이론화를 통한 현실의 왜곡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단순한 기술의 차원을 넘어 왜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미시적 설명틀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과학적 맥락에 비추어볼 때 매우 복잡하게 작동하는 사회인 국제정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복잡계 이론을 적용해볼만한 가치는 충분히 존재한다.

……

…… 결국 복잡계 이론은 혼란스러워 보이는 세상 속에서 질서의 현상을 발견하고 설명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삼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시각은 사회과학에서도 오랫동안 다루어져왔던 인식론적 논쟁, 즉 우연성과 필연성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준다. “역사의 테이프를 다시 돌렸을 때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많은 복잡계 이론가들은 부정적으로 응답한다. 나비효과에 의해서매우 미세한 요인이 증폭되면서 결국에는 동일한 변수들로 구성된 역사는 전혀 다른 경로를 밟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상황 의존성(contingency)’의 요소가 너무 강해서 아무리 똑같은 상황에서 역사를 반복하더라도 결코 동일한 종착점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계 이론에서는 역사의 테이프를 반복해서 재생할 경우 역사적 필연성(necessities)이 반복하여 등장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Fontana and Buss 1994). 중요한 점은 한 가지의 원인군(群)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인식하기보다는 상황의존성과 필연성 사이의 상호작용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구조적 원인(遠因)을 강조할 것인가, 아니면 상황의존적 근인(近因)을 강조할 것인가 하는 인식론적 논쟁도 이러한 맥락에서 촉발되었다(Lebow 2000-2001). 변수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보다 그러한 변수들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전쟁을 유발하게 되었는가의 이론적 메커니즘이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편 복잡계 이론은 사물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환원주의(reductionism) 시각을 경계한다. 이는 모든 것을 쪼개어 분석함으로써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뉴턴식 패러다임의 잘못된 신념에 대한 비판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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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계 이론은 구조주의의 한계와 환원주의의 한계를 동시에 극복하기 위해 ‘거친 수준의 환원(coarse-graining)’이라는 방법을 제시한다. 즉 거시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미시적 작동원리를 제시하는 환원적 분석이 필요하지만, 분석수준의 선택에 있어 한두 단계 정도만 아래로 내려오면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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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계 이론에서는 또한 낮은 분석수준에서의 ‘단위체’ 자체보다도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 관계를 규명하는데 더 주안점을 둔다(Gell-Mann 1994, 29-30). 깊숙하게 쪼개 들어가는 것보다는 연구자의 관점에서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하부 단위체 수준에서 일어나는 ‘비선형 상호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 예를 들어 길핀이나 부에노 드 메스키타가 전쟁의 발발을 설명하기 위해 개인이나 국가 단위체의 한계효용 개념을 동원했다면 이는 단위체의 속성에 대한 전제조건에 의존하는 요소환원주의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또한 전쟁의 발발을 월츠와 같이 극화(polarity)현상이나 세력분포와 같은 구조적 변수로 설명한다면 이는 구조를 당연하게 주어진 단위체로 간주하는 구조주의적 물신화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복잡계 이론에서는 적절한 분석수준에서 단위체들 사이의 ‘관계의 규칙’을 찾아내고 그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함으로써 거시적 현상이 일어나는가를 설명하려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기존의 접근방식과 인식론적인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복잡계 이론은 최근에 들어와 국제정치이론의 영역에서도 서서히 관심을 끌기 시작하고 있는데, 제임스 로즈노는 그중에서도 선봉에 서있는 학자이다. 그는 ‘난류(亂流, turbulence)’라는 메타포로 국제정치의 격변하는 모습을 표현하면서 그 배경에 깔려 있는 불확실성과 예측불가능성을 강조한다(Rosenau 2003; Rosenau 1990). 이러한 속성은 복잡계 이론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서, 최근에는 로버트 저비스에 의해 국제정치현상을 재해석하는데 이용되기도 하였다. 저비스는 ‘체제효과(system effects)’라는 개념을 통해 다양한 국제정치의 복잡한 상호작용 현상을 설명하면서 “어떤 일도 결코 원래 의도했던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격언으로써 국제정치의 복잡한 성격을 풍자하고 있다(Jervis 1997). 비록 기술적으로 정교한 모델을 제시하지도 않았고 또 경험적으로 풍부한 자료들을 동원하지도 않았지만, 이들 국제정치이론가들의 복잡계적 시론들은 기존의 주류 이론과는 완연하게 다른 각도에서 국제정치의 맥을 짚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국제정치의 다양한 영역 중에서도 전쟁이나 갈등과 같이 상호작용을 전제로 하는 주제에 있어서 복잡계 이론이 원용될 여지가 크다. 다양한 규모의 전쟁들이 시간축에 따라 특징적인 분포를 나타낸다는 루이스 리차드슨의 연구는 복잡계 이론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 한편 단순한 선형방정식에 의존했던 군비경쟁모델을 비선형 관계로 확대하여 군비경쟁의 복잡한 모습을 담아내려는 카오스 전쟁이론들도 제시되었다. 이러한 이론에서는 변수들 사이의 미세한 비선형 관계가 군비경쟁의 전체적인 모습을 얼마나 복잡하게 만드는가를 보여주고 있다(Saperstein 1995). 클라우제비츠와 같은 군사전략가들도 전쟁을 비선형 관계로 인식하려 했다는 역사연구도 있다(Beyerchen 1992-1993).​

 


복잡계 워크샵 – 복잡계 이론의 사회과학적 적용

–  복잡계 네트워크 / 삼성경제연구소 / 2006.06.30

 

복잡계 이론이 동적 메커니즘을 구현하는 데 강점을 지닌 이론틀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국제정치 분야에서 냉전의 종식이나 9.11사태와 같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모델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다. 앞에서도 논의했지만, 기존의 국제정치 이론들이 이처럼 중요한 격변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복잡계 이론의 ‘임계성(criticality)’ 관념은 시스템 다이내믹스의 관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협력의 현상뿐 아니라 전쟁이나 폭력과 같은 갈등 현상들의 급격한 발발이 국제정치에서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있으므로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유도해내는 꼭짓점인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의 관념은 앞으로 활용 분야가 넓을 것으로 전망된다(글래드웰,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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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국제정치 이론에서 이와 같은 임계성의 관념과 밀접하게 연관된 연구들이 드물지만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헤게모니의 붕괴에 따른 다자간 협조체제의 등장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셸링(Schelling)의 k-group 이론을 기반으로 하는 이러한 연구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를 지탱해오던 헤게모니 체제가 붕괴된 이후에도 어떤 방식으로 세계경제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있다. 여기에서는 현실주의 이론에서 강조하는 강력한 리더십, 즉 헤게모니가 세계의 관리를 책임질 수 없을 정도로 쇠퇴한다 하더라도, 체제가 붕괴될 경우 헤게모니와 더불어 손실을 더 크게 입게 될 여타 강대국들이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여 헤게모니를 떠받치는 원리를 모델로 구현하고 있다(Snidal, 1985). 아마도 1970년대 초반 미국의 금태환 중지 선언 이후 헤게모니 국가의 지위가 불안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음에도 유럽과 일본 등 기타 국가들이 미국의 경제를 지지해주는 보조적인 역활을 담당해오고 있는데, 오늘날의 G8과 같은 선진국 연합이 이러한 그룹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셸링이 말한 ‘k’란 결국 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협조체제에 동참하는 국가들의 수를 일컫는 것으로, 복잡계 이론에서 제기하는 ‘임계성’ 또는 ‘임계값’의 개념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Schelling, 1978, pp. 213~243).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2017-07-27  [네이버 열린연단] “혼돈과 질서는 복잡하지만 그 반복은 곧 인류 역사”

2011-04-04  당신이 재난을 당한 것은 하늘의 벌이 아니다

복잡계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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