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변동은 경제가 호황-후퇴-불황-회복의 경기 국면을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현상을 말한다. 경기변동의 주요 파동으로 유명한 것은 40개월(3~5년) 주기로 움직이는 키친 파동(Kitchin cycles), 10년(7~11) 주기의 주글라 파동(Juglar cycles), 17년 주기의 한센 파동, 15~25년 주기의 쿠즈네츠 파동(Kuznets swing), 45년~60년 주기의 콘트라티예프 파동(Kondratiev wave)이 있다.
대불황과 이어지는 세계적인 활황(벨에포크) 사이의 대조는 세계 자본주의 발전에서의 ‘장기파동’에 대한 최초의 고찰인 ‘콘드라티예프 파동’을 만들어 냈다.
※ 대불황 (1873년 ~ 1896년) : http://yellow.kr/blog/?p=2927
콘드라티예프 파동(Kondratieff Wave)는 슈퍼사이클(supercycles), 장기 파동, K-waves, 장기 경기순환 등으로도 불리는데, 공산주의 러시아 시대의 경제학자인 콘드라티예프(Nikolai Kondratiev)에 의해 만들어졌다. 콘드라티예프는 1925년에 『장기 파동론(The Major Economic Cycles)』을 발표했는데, 그는 다양한 경제 자료를 이용해 경기순환의 커다란 주기는 45 ~ 60년의 기간을 두고 반복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콘드라티예프의 이런 생각은 1939년 조지프 슘페트(Joseph Schumpeter)에 의해 잘 알려지게 되었다. 슘페트는 처음으로 ‘콘드라티예프 순환’ 또는 ‘콘드라티예프 파동’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그는 이러한 순환의 근본 원인은 새로운 기술혁신이며, 그것이 광범위하게 적용됨으로써 경제와 사회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슘페트는 콘드라티예프의 장기순환 이론을 받아들여 자본주의 신봉자들이 좋아할 만한 이론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콘드라티예프 파동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20년대 이후로, 실제적으로는 1900년경 이후로 몇몇 관찰자들은 20~30년에 걸친 경제적 팽창과 번영의 시기와 20~30년에 걸친 경제적 어려움의 시기가 서로 엇갈리면서 진행되는 장기적인 세계경제 패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패턴들은 ‘콘드라티예프 파동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어느 누구도 콘드라티예프 파동의 주기를 만족스럽게 설명하거나 분석하지 못했다. 통계학자들과 다른 사람들은 콘드라티예프 주기의 존재를 부인했다. 그럼에도 콘드라티예프 주기는 예언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몇 안되는 주기에 속한다.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 교수도 세계체제론에서 콘드라티예프 파동을 인용한다.
콘드라티예프 주기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주요 생산과정의 이윤실현이 감소하는 어떤 시점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에 따라 이 과정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스스로 재배치에 들어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핵심부 지역에서는 실업이 증가하고, 이 실업증가가 결국 전지구적인 유효수요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각각의 기업들은 비용을 줄일 수 있을 테지만, 기업들 전체로 볼 때는 상품을 충분히 소비할 수 있는 규모의 소비자를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세계적으로 충분한 유효수요를 회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일반적으로 핵심부 지역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사실 이같은 현상은 콘드라티예프 B국면(정체국면) 후반기에 종종 일어났는데, 이런 임금상승을 통해서 새로운 선도제품들을 소비하는 구매자를 창출하는 데 필수적인 유효수요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임금수준의 상승은 그만큼 기업가들에게는 이윤의 저하를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세계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이윤의 손실은 임금노동자의 범위를 세계의 다른 곳으로 확장함으로써, 다시 말해 더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도 일하려고 하는 노동자들을 포함함으로써, 보전된다.
콘드라티예프 파동은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유명한(?) 마크 파버(Marc Faber)의 저서 『내일의 금맥(Tomorrow’s Gold)』에서 거의 절반을 할애해서 설명하는 바람에 우리나라 투자가들 사이에서 상당히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콘드라티예프 파동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근대세계체계 이후로 5번의 파동이 있었고 2008년 금융위기를 5차 파동의 종료신호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6차 파동의 시작에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일컫는 인공지능 등의 포스트 정보기술 혁명, 생명공학 및 헬스케어 등에 의해 추진 될 것이라고 믿고있다.
– 콘드라티예프 파동의 많은 예 중의 하나
그러나 콘드라티예프 파동과 같은 장기파동이론(long-wave theory)은 많은 경제학자들이 인정하지 않는다. 그 이론을 받아들인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파동의 원인과 특정 파동의 시작과 끝 모두에 대한 합의가 부족하다. 또한 콘드라티에프 파동은 특별히 자본주의적 현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 무엇을 보여 주는지에 대해 문헌상 일치점은 없다. 이는 근대세계체계에서 특별히 자본주의적인 것의 모순과 팽창을 밝혀 주는 신뢰성 있는 지표는 아니다.
Murray Rothbard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콘드라티예프 파동은 규칙적인 기간을 갖는 잘 정리된 하나의 주기에 의해 움직이지는 않으며, 이러한 주기는 자연적인 현상에 따른 파동이 아니고, 정부의 간섭과 외부의 요인들에 의한 것이며, 일정의 50년 정도의 주기를 갖는 것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경제시스템은 복잡계이다. 따로 정리하겠지만 최근의 장기 파동에 대한 연구 중에 복잡계에서의 접근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복잡계 경제학에서는 경기 사이클, 성장,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경제적 패턴들을 시스템의 상호 작용으로부터 내생적으로 일어나는 창발적 현상들로 본다.
※ 복잡계와 멱함수 : http://yellow.kr/blog/?p=2824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찾았다.
호황의 경제학 불황의 경제학
– 군터 뒤크 / 안성철 역 / 비지니스맵 / 2009.11.30
일반적으로 세계 경제는 현재까지 다섯 번의 커다란 장기 경기파동이 있었던 것으로 본다. 이 경기변동의 연도와 그래프는 위키피디아에서 얻은 자료를 인용하겠다. 여기에 나오는 연도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되고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물론 학자인 나로서는 깔끔한 이론이 성립될 수 있도록 이 경기파동의 길이가 모두 똑같기를 바라지만 복합적인 문제가 원래 그러하듯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어쨌든 이런 취약점은 있지만 다음의 시기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 제1시기(대략 1780 ~ 1849년) : 초기 기계화 시대, ‘증기기관 콘드라티예프’
– 제2시기(대략 1849 ~ 1890년) : 제2 산업혁명 시기, ‘기차 콘드라티예프’ (베세머강과 증기선)
– 제3시기(대략 1890 ~ 1940년) : ‘전기공학과 중공업 콘드라티예프’ (화학 포함)
– 제4시기(대략 1940 ~ 1990년) : ‘자동화 콘드라티예프'(기초기술혁신:집적회로, 핵에너지, 컴퓨터, 자동차)
– 제5시기(대략 1990년 ~ ) : ‘정보통신기술 콘드라티예프’
지식역사 – 피터 드러커의 역사관
– 이재규 / 한국경제신문사 / 2009.11.20
자본주의 경제는 이처럼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경제공황을 경험해왔다. 공황의 특징은 주식시장 붕괴, 은행의 도산, 기업과 개인의 파산, 극심한 실업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통계학자 클레망 쥬글러(Clement Juglar, 1819~1905)는 영국, 프랑스, 미국 등 당시 선진국가들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경기침체 현상을 연구한 결과 평균 6~10년에 걸쳐 일정한 주기로 경제가 호황-침체-회복이라는 3단계의 변동 국면을 연출한다는 사실을 1862년 발표했다. 과거에는 흔히 경제를 인체에 비유해 공황기는 경제적으로 질병을 앓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였으므로 성장과 번영만이 정상적인 건강상태라고 보았다. 그러나 클레망 쥬글러는 경기의 주기적 변동이 오히려 경제의 정상적인 모습이라는 주장을 내세운 것이다.
그 후 다른 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를 연구했다. 특히 소련의 경제학자이자 통계학자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Nikolai Kondratiev, 1892~1938)는 19세기 물가행태와 관련된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18세기 말부터 1920년 사이 대략 50년을 주기로 하는 장기파동이 있었으며, 한 국가의 경제는 성장과 침체가 반복된다는 경기순환이론을 제시했다. 이를 콘드라티예프 파동이라고 한다. 슘페트는 콘드라티예프 파동에 대해, 제1차 파동은 산업혁명의 약진기로서 이 시기에 새로운 기업들이 집단적으로 출현하여 이것들이 장기적으로 물가를 상승시킨 결과였고, 제2차 파동은 제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철강산업의 부흥과 철도수송 체계의 변혁에서 찾았고, 제3차 파동은 오늘날 주력산업인 자동차산업, 전력 및 화학공업의 대두를 그 원인으로 분석했다.
1873년의 공황은 그해 6월 증권시장의 붕괴와 9월의 뉴욕 금융공황으로 시작되었는데, 그때부터 시작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20년까지 50년간은 대표적인 콘드라티예프의 장기침체 기간이었다.
하지만 1873년의 공황은 국가마다 사정이 달랐다. 1873년 비엔나 증권시장의 치명적 붕괴로 인해 당시의 오스트리아 정권은 영원히 종말을 맞았고, 영국과 프랑스는 장기침체기를 맞았지만, 미국과 독일에서는 장기간의 산업침체는 일어나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는 그 기간 동안 새로 등장한 기술산업들, 즉 철강, 화학, 전기, 전화, 그리고 자동차 기술이 철도건설, 석탄채굴, 섬유산업과 같은 오래된 산업의 침체를 상쇄할 만큼 충분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장기간의 산업 침체기에 돌입해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미국과 독일에서 실제로 일어난 현상은 콘드라티예프 주기와 일치하지 않으며 영국과 프랑스와는 패턴이 다르다는 사실을 1939년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 1883~1950)가 밝혀냈다. 미국과 독일도 불황의 초기에는 그 충격이 매우 컸다. 그러나 5년 후에는 불황으로부터 벗어났고, 다시 빠르게 성장을 했다.
포스트 자본주의 새로운 시작
– 폴 메이슨 / 더퀘스트 / 2017.01.13
…… 『경기 순환론(Business Cycles)』(1939)에서 슘페트는 자본주의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파도 모양의 순환들로 이뤄지며, 그 순환들은 기업에 재고가 쌓여 생기는 3~5년 단위의 단기순환과 콘드라티예프가 발견한 50년 단위의 장기순환으로 나뉜다고 주장했다.
복잡한 말장난 같은 이론을 제시한 슘페트는 50년 주기로 일어나는 순환의 원인에서 신용주기(credit cycle), 외부 충격, 취향 변화, ‘성장(growth)’이라는 요인을 배제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혁신이다. (…) 얼핏 보기에 다른 요인들 때문이라고 여겨지는 일들도 대부분은 혁신이 그 원인이다. 슘페트는 콘드라티예프가 제시한 파동들을 하나씩 살피면서 그것이 혁신의 순환이었던 이유를 상세히 설명한다. 첫 번째 순환은 1780년대 공장제의 도입으로 발생했고, 두 번째 순환은 1842년 철도 부설에 따른 것이었으며, 세 번째 순환은 우리가 ‘2차 산업혁명’이라 부르는 188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의 수많은 혁신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슘페트는 콘드라티예프의 장기순환 이론을 받아들여 자본주의 신봉자들이 좋아할 만한 이론으로 바꿔놓았다. 슘페트의 이론에 따르면 새로운 순환을 일으키는 사람은 혁신하는 기업가들이다. 반대로 어떤 시기에 경기가 하락하는 이유는 혁신이 소멸되고 자본이 금융 시스템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슘페트의 관점에서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필수적인 한 부분이며, 위기가 발생하면 낡고 비효율적인 모델의 ‘창조적 파괴’가 진행된다.
콘드라티예프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슘페트의 이론은 마치 종교 교리처럼 아직도 굳건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호황과 불황에 관한 기술결정론적 설명은 자본주의 경제가 위기가 닥쳐 주류경제학자들의 일상적인 신념이 깨질 때마다 그들이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 역활을 했다.
……
산업자본주의는 지금까지 4회의 장기순환을 거쳤으며, 다섯 번째 순환이 시작돼야 하는데 지연되고 있다.
1. 1790 ~ 1848
최초의 장기순환은 영국, 프랑스, 미국의 통계에서 발견된다. 공장제, 증기기관, 운하가 새 패러다임의 토대가 됐다. 1820년대 후반의 공황은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1848~1851년 유럽의 혁명적인 위기와, 미 대륙에서의 멕시코 전쟁(1846~1848)과 미주리 협정(Missouri compromise)은 순환을 마무리하는 선명한 마침표였다.
2. 1848 ~ 1890년대 중반
선진 경제권에서는 2차 장기순환이 뚜렷하게 나타났고, 이 순환이 끝날 무렵에는 세계 전체가 그 영향권에 들어갔다. 철도, 전신, 바다를 항해하는 증기선, 화폐의 안정, 기계산업의 발달이 패러다임을 결정했다. 경기가 고점에 이르렀던 1870년대 중반 이후에 미국과 유럽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이것이 1873~1896년의 장기침체로 이어진다. 1880년대와 1890년대에는 경제적 · 사회적 위기에 대응해 신기술이 발달하고, 이것이 3차 순환의 시작과 맞물린다.
3. 1890년대 ~ 1945
3차 순환의 핵심 기술은 중공업, 전기산업, 전화, 과학적 관리법과 대량생산이다. 위기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발생한다. 1930년대의 대공황에 이어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자본이 파괴되면서 하강기는 종결된다.
4. 1940년대 후반 ~ 1990년대 후반
4차 장기순환의 패러다임을 창조한 기술은 트랜지스터, 합성물질, 소비재 대량생산, 공장 자동화, 핵무기, 계산의 자동화였다. 역사상 가장 긴 호황이 펼쳐졌다. 고점이 언제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오랫동안 경제가 불안정했다가 1973년 10월 오일쇼크가 발생했지만 큰 공황은 없었다.
5. 1990년대 후반 ~
지난번 순환이 끝날 무렵과 비슷하게 5차 장기순환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나타난다. 변화의 원동력은 네트워크 기술, 모바일 통신, 시장의 세계화, 정보재로 판단된다. 하지만 변화는 정체된 상태다. 경기순환이 멈춘 이유는 신자유주의와 관련이 있으며, 신기술 자체의 특징에도 원인이 있다.
이것은 개략적인 그림이다. 경기순환의 시작 지점과 끝나는 지점, 주요 기술들의 명칭과 중대한 위기를 나열했을 뿐이다. 더 깊이있게 분석하려면 자본 축적의 메커니즘을 콘드라티예프보다 많이 이해해야 한다. …… 우리는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하고, 경제 내부에서 그 변이를 촉진하는 요소와 억제하는 요소를 알아야 한다.
콘드라티예프는 우리에게 시스템 이론가들이 경제의 ‘중간 수준(meso level)’이라고 부르는 개념을 이해할 길을 열어줬다. 중간 수준이란 어떤 체제의 추상적인 모델과 그것이 실제로 전개된 역사 사이에 있는 개념이다. 콘드라티예프 덕분에 우리는 외부 요인과 비관적 전망에 중점을 두고 이론을 전개했던 20세기 마르크스주의 학자들보다 자본주의의 변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
……
4차 파동이 시작될 무렵에는 외부세계의 상당 부분이 폐쇄된 영역이었다. 냉전 시기에 세계 GDP의 약 20퍼센트는 시장 외부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1989년에 갑자기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새로운 노동력이 공급되자 파동은 연장됐다. 또 서구 국가들은 그전까지 접근할 수 없었던 중립국에서도 시장을 개척할 수 있게 됐다.
다시 말하자면 1917년과 1989년 사이에 자본주의는 복잡한 적응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으며, 1989년 이후에야 그 잠재력이 폭발했다. 노동력과 시장이 확대되고, 기업은 자유를 획득하고, 경제의 규모는 전례 없이 커졌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국면의 왜곡phase-distortion’이라는 나의 주장은 1989년의 상황만 가지고도 어느 정도 설명된다. 물론 그것이 완전한 설명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장기순환의 패턴은 이미 깨졌다. 4차 장기순환은 예상보다 길어지고, 왜곡되고, 결국에는 자본주의의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요인들에 의해 망가졌다. 그 요인들은 바로 노동운동의 패배와 후퇴, 정보기술의 눈부신 발달, 그리고 장기간 공짜로 돈을 찍어낼 수 있는 초강대국의 성립이다.
……
봉건제 말기의 장기침체와 비슷한 현상을 현대사회에서 찾는다면 5차 콘드라티예프 순환의 정체일 것이다. 5차 콘드라티예프 순환에서는 자동화가 점점 빠르게 진행되면서 노동이 사라지는 대신 저임금을 받는 나쁜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경제가 침체된 상태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분석
– 이매뉴얼 월러스틴 / 이광근 역 / 당대 / 2005.03.17
우리가 지금까지 묘사한 과정 – 준독점적 선도산업들에 의한 세계경제의 팽창과 준독점의 강도가 약화됨에 따라 발생하는 세계경제의 수축 – 은 이른바 A국면(팽창국면)과 B국면(정체국면)이 교체하는 상·하향 커브 형태를 취한다. A국면과 이에 뒤따르는 B국면으로 이루어진 주기는 때로 콘드라티예프 주기로 불리는데, 20세기 초에 이 현상을 명료하게 서술하였던 경제학자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이다. 지금까지 콘드라티예프 주기는 대략 50 ~ 60년 정도의 시간적 길이를 가지는 것으로 보이며, 정확한 길이는 B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국가들이 동원한 정책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특히 새로운 선도산업을 육성하는 정책들이 성공할 경우, B국면에서 회복하여 다시 A국면으로 진입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하나의 콘드라티예프 주기가 끝났다는 것이 그 주기가 처음 시작했을 당시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B국면에서 탈출하여 A국면으로 접어들기 위해 취해진 처방들이 세계체제의 패러미터(parameter)들을 중요한 방식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세계경제의 과도한 팽창(이것은 자본의 끝없는 축적 가능성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으로 필요한 문제이다)이 야기한 당면(곧 단기적인) 문제를 해결한 변화는 중기적으로 균형을 회복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구조적인 문제들을 양산해 낸다. 이 결과가 바로 우리가 장기적 추세라고 부르는 것이다.
……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어떻게 이것이 드러나는지 한 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하겠다. 콘드라티예프 주기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주요 생산과정의 이윤실현이 감소하는 어떤 시점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에 따라 이 과정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스스로 재배치에 들어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와중에 핵심부 지역에서는 실업이 증가하고, 이 실업증가가 결국 전지구적인 유효수요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각각의 기업들은 비용을 줄일 수 있을 테지만, 기업들 전체로 볼 때는 상품을 충분히 소비할 수 있는 규모의 소비자를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세계적으로 충분한 유효수요를 회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일반적으로 핵심부 지역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사실 이같은 현상은 콘드라티예프 B국면 후반기에 종종 일어났는데, 이런 임금상승을 통해서 새로운 선도제품들을 소비하는 구매자를 창출하는 데 필수적인 유효수요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임금수준의 상승은 그만큼 기업가들에게는 이윤의 저하를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세계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이윤의 손실은 임금노동자의 범위를 세계의 다른 곳으로 확장함으로써, 다시 말해 더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도 일하려고 하는 노동자들을 포함함으로써, 보전된다. 한마디로 새로운 인력을 임금노동자층으로 흡수함으로써 이윤손실이 메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저임금은 새로운 임금노동자들에게는 실제 수입의 증가이다. 물론 임금노동자 층으로 ‘새로운’ 인력을 편입시킬 때마다 임금노동자층 외부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수는 감소할 것이고, 결국 이 외부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존재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정도로 감소하는 시점이 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주제를 21세기의 구조적 위기를 논하는 마지막 장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역사론
– 에릭 홉스봄 / 강성호 역 / 민음사 / 2002.12.10
…… 1920년대 이후로, 실제적으로는 1900년경 이후로 몇몇 관찰자들은 20~30년에 걸친 경제적 팽창과 번영의 시기와 20~30년에 걸친 경제적 어려움의 시기가 서로 엇갈리면서 진행되는 장기적인 세계경제 패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패턴들은 ‘콘드라테프 파동(콘드라티예프 장기 주기)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어느 누구도 콘드라테프 파동의 주기를 만족스럽게 설명하거나 분석하지 못했다. 통계학자들과 다른 사람들은 콘드라테프 주기의 존재를 부인했다. 그럼에도 콘드라테프 주기는 예언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몇 안되는 주기에 속한다. 1970년대의 위기는 예언되었고, 나도 1968년에 위험을 무릅쓰고 그러한 예언을 했다. 그리고 위기가 닥쳤을 때 역사가들은 다시 한번 콘드라테프 경험에 근거하여, 1973년 이후 매년 급속한 경제 상승을 예언했던 정치가들과 경제학자들의 분석을 무시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완전히 옳았다. 더욱이 1984년 이 글을 강연했을 때 나는 비판받을 것을 무릅쓰고 같은 근거에서, 장기간에 걸친 세계 경제의 다음 호황은 1980년대 말이나 1990년대 초 이전에는 전혀 가능하지 않다고 예견했다. 나는 이것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단지 이러한 종류의 패턴은 최소한 1780년대 이후로 작동해 왔던 것으로 보이고, 큰 전쟁으로 인해 왜곡되거나 왜곡을 준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조금 관찰될 뿐이다. 한 가지 더 있다. 지나간 각각의 ‘콘드라테프’ 시기는 순전히 경제적 관점에서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연히 다양한 나라와 지역들의 국제 정치와 국내 정치 측면에서 앞뒤 주기와 아주 확실하게 구별되는 정치적 특징을 가진다. 또한 그러한 콘드라테프 시기 구분이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 같다.
제국의 시대
– 에릭 홉스봄 / 김동택 역 / 한길사 / 1998.10.15
…… 대공황과 이어지는 세계적인 활황 사이의 대조는 세계 자본주의 발전에서 나타날 ‘장기파동’에 대해 최초의 고찰이 나올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는데, 나중에 이것들은 러시아 경제학자 콘드라티예프(Kondratiev)의 이름과 결부되었다.
다른 한편, 어쨌든 이같은 상황은 자본주의의 미래에 관해 암울한 예언을 했던 사람들이나 그것의 즉각적인 붕괴를 예측했던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과연 운동의 장래에 대해 무엇을 함의하는지에 대한, 그리고 마르크스의 원리가 ‘개정’되어야 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열정적인 논쟁이 전개되었다.
……
때문에 콘드라티예프의 리듬에 관해서는 – 만일 이 용어가 엄격한 의미의 질문대상이 된다면 콘드라티예프 ‘주기’라고 부를 수도 있는 -, 자본주의 시대의 경제성장의 본성에 대해, 혹은 어떠한 세계경제의 성장에 대해 근본적인 분석적 질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약 반세기의 ‘파동’과 더불어 형성되어온, 경제적 번영과 후퇴라는 호기심을 돋우는 변동에 대한 이론들 중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은 없다.
이에 관해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가장 깔끔한 이론은 슘페트(Josef Alois Schumpeter, 1883~1950)에 의한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각각의 하향국면은 경제적 ‘혁신’의 틀이 갖는 잠재적 이윤의 소진(exhaustion)과 결부되어 있으며 새로운 상승국면은 주로 기술적으로 보였던 새로운 혁신의 틀과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이같은 잠재성은 또한 앞으로 소진하게 될 그러한 종류의 기술적인 것으로 간주될 것이었다. 그리하여 경제성장의 ‘주도부분’으로서 행위하는 가운데, 새로운 산업들은 – 예컨대 최초의 산업혁명 시기의 면방직, 1840년대 이후의 철도 등 – 일시적으로 주저앉았던 세계경제를 수렁으로부터 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이론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1780년대 이래로 각각의 세속적인 상승기간은 새롭고도 기술적으로 혁명적인 산업의 등장 및 그것의 팽창과 더불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지구적인 규모의 경제적 활황 가운데서도 가장 특출난 것은 1970년대 초반 이전에 약 25년간 지속되었던 것이었다.
1890년 후반 이후에 관한 문제는 그 기간에 가장 혁신적인 – 광범위하게 언급하면, 화학과 전기 혹은 증기와 더불어 치열하게 경쟁하기 시작한 새로운 에너지원과 결부된- 산업이 세계경제의 운동을 지배하기에 충분한 것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요약하면, 콘드라티예프 주기는 사태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는 까닭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대가 콘드라티예프 주기의 상승과 하락을 포괄한다는 것만을 인지하게끔 하는 데 그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구 경제의 근대사 전체가 이같은 패턴에 곧 빠져들게 된다고 해도 그 자체가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시골의사의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1
– 박경철 / 리더스북 / 2008.10.02
마지막으로 유명한 콘드라티예프 파동을 소개할 차례다. 이 이론은 마크 파버(Marc Faber)가 그의 저서 『내일의 금맥(Tomorrow’s Gold)』에서 거의 절반을 할애해서 설명하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큰 효용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콘드라티예프 파동은 러시아의 경제학자 콘드라티예프()가 자본주의 사회는 40 ~ 60년을 주기로 하는 장기 사이클이 존재한다고 말함으로써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장기 사이클의 침체기가 진행되는 동안 중요한 발명이나 혁신적인 진보가 이루어져 다음 사이클이 발생하고, 이러한 순환을 거쳐 자본주의는 새로운 산업과 기술의 혁명을 끌고 간다고 생각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1차 파동은 1780년에서 1817년에 이르는 기간의 상승으로 시작되었는데 이후 1851년까지는 하강기를 맞았다고 한다. 이후 2차 파동은 1844년에서 1875년까지 상승하고, 침체기는 1875년에서 1896년까지였으며, 3차 파동은 1890년에서 1930년까지 상승하기 시작해서 침체기는 1930년에서 1954년까지 이르는 기간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그의 이론은 상당히 광범위하고 작위적이었으며, 정작 콘드라티예프 파동을 의미 있는 이론으로 정착시킨 이는 앞서 언급한 슘페트다. 기술혁신에 따른 혁명적인 새로운 산업의 등장이 경기의 경기 상승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제1파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제조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의 등장이 원인이며, 이들의 활발한 기업활동이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호황을 이끌어낸다. 제2파는 철강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철도산업, 증기선의 등장에 의한 대규모 물류 이동과 교역이 장기 상승을 이끌어낸 것이다. 또한 제3파는 헨리 포드(Henry Ford)의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부흥한 자동차, 전력, 화학공학의 발화가 이끌어냈다고 설명한다. 반면 대공황기나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시기의 침체기는 이들 산업에 경쟁자가 등장하며 과잉설비가 문제를 유발하여 장기적인 인플레이션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보았다.
그의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면 제4차 상승기는 1954년에 시작되었고, 같은 맥락에서 침체기는 1980년에서 2004년까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상당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콘드라티예프의 경기순환이 맞는다면, 지금 우리는 새로운 상승기에 접어들어야 하고 우리 앞에 세상을 변화시킬 혁명적인 신기술의 깃발이 펄럭여야 한다. 굳이 침체기인 1990년대 말 세계 여러 나라의 외환위기나 2008년경 우리가 겪고 있는 금융위기들이 시간적 오차가 있는 침체기의 마지막 어둠이라고 봐야 하지만, 1980년대 이후는 눈부신 정보통신의 발달로 경제가 성장을 거듭했는데 과연 침체기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이후 조만간 핵융합이나 수소에너지 같은 석유자원을 벗어날 획기적인 인류의 에너지 개발이라는 대사건이 벌어진다면, 콘드라티예프 파동의 흐름을 수긍할 수 있고, 그런 정도의 혁명적 진보에 비한다면 1980 ~ 2000년대는 침체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콘드라티예프 파동에 매혹된 사람들은 지금 마치 메시아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새로운 기술의 발현을 기다리고 있고, 이제 앞으로 시작될 경기의 대상승을 갈망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이론에서 커다란 기술혁신이 새로운 장기상승을 이끌어낸다는 점은 맞지만, 그것이 정말 일정한 주기를 갖고 마치 계절이 바뀌듯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힘들다. 일단 우연성이 짙고 침체에 의한 심한 경기불황이 새로운 기술 혁신을 이끈다는 사실 또한 동의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다만 경기가 침체에 이르면 그것을 돌파하려는 노력이 혁신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아예 세상에 없던 혁명에 가까운 기술이 침체기에 나타난다는 것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뿐 아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경기순환 이론을 내세웠고, 슘페트는 이 세 가지 순환을 혼합해서 장기파동은 ‘단기적인 재고 순환(키친 파동) -> 설비투자 순환(주글라 파동) -> 콘드라티예프 파동’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사실 슘페트의 경기순환 이론은 나중에 설명할 ‘대순환 -> 중간순환 -> 소순환’으로 이어지는 엘리어트 파동과 유사하다. 슘페트는 여러 가지 변수를 짜 맞추어 학문적으로 보이게 한 것이고, 엘리어트는 단순히 주식시장의 가격 변화만을 보고 사이클을 그렸다는 것이 다를 뿐 사실은 같은 논리다. 왜냐하면 세상 어느 누구도 슘페트의 경기순환 이론을 근거로 지금이 경기확장기라고 주장하지 않으며(설령 있다고 해도 그것은 동전 던지기에 불과하다). 또 엘리어트의 파동을 그려서 향후 주가를 예측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의 기원
– 에릭 바인하커 / 정성철,안현실 역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08.27
이제 우리는 경제 예측가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기상 예보자들보다 왜 평판이 나쁜지 그 이유를 알기 시작했다.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성, 경로 의존성, 엄청난 동태적 복잡성 등이 결합되면 경제는 기후처럼 극히 단기간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예측하기 어렵다. 기상 예보자는 최근 몇 년 동안 상당히 예측력을 향상시켰다. 위성과 레이더를 통해 수집하는 매우 질 좋은 데이터들, 컴퓨터 모델을 이용한 보다 복잡한 분석들 덕분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경제 예측 역시 보다 좋은 데이터와 모델이 뒷받침된다면 그 예측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후에 대한 고도로 정확한 장기 예측이 불가능하듯이 경제에 대한 고도로 정확한 장기 예측 역시 불가능하다.
경제에서 장기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이것이 경제학의 발전에 장애 요인이 되는 건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과학은 예측이 아니라 설명에 관한 학문이다. 경제의 동태적인 특성을 이해한다면 수많은 경제 현상들에 대한 검증 가능한 설명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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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에 전통 경제학은 우리가 경제에서 보는 진동 패턴들을 설명하기 위해 두 가지 경쟁적인 가설을 제시한다. 미시 경제학에 기초한 ‘실제 경기 사이클 이론’은 합리적 균형 모델 관점에 의지하며 경제를 외부 충격을 단지 전파하는 것으로 본다. 이 이론 하에서 경제적 진동의 핵심 원인들은 외부적인 정치 사건, 기술 변화, 그리고 기타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 모델은 경기 사이클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 외생적 요인들상의 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역사 내내 왜 그렇게 끈질기게 반복되는지 그 이유를 우리에게 말해 주지 못한다. 거시 경제학에 토대를 둔 신케인스주의는 전통적 정통성에서 뒤로 물러나 완전하지 않은 합리성, 동태성, 그리고 시간 지체 등을 받아들여 내생적인 설명을 하려고 노력한다. 많은 측면에서 신케인스주의는 복잡계 경제학을 향해 한 발짝 나간 것이다. 그러나 신케인스주의는 균형을 포기할 준비가 안되었다. 그 결과 이론의 실증적 성공은 지금까지 제한적이었다.
…… 복잡계 경제학이 생각하는 궁극적인 업적은 행위자, 네트워크, 진화의 이론에서 시작해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거시적 패턴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이론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런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이론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모습이 어떠할지 그 희미한 빛이라도 볼 수 있게 됐다.
그 이론은 거시 경제학적 패턴을 ‘창발적(emergent)’ 현상들, 다른 행위자나 환경과의 상호 작용으로 생겨난 시스템의 전체적 특성들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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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계 경제학 역시 경기 사이클, 성장, 인플레이션 등과 같은 경제적 패턴들을 시스템의 상호 작용으로부터 내생적으로 일어나는 창발적 현상들로 본다. 복잡 적응 시스템들은 많은 형태의 시스템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테마적인 창발적 패턴들을 갖고 있다. 이 패턴들을 분석하면 그런 시스템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관련 그림>
– 4차 파동 후반부터 장기파동이 깨진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초강대국이라는 존재와 달러라는 신용화폐 발행이 원인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사실 많은 경제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1987~1990년 사이 주식시장에 거품이 터지기 시작하자 1990년대에 제2의 대공황이 나타날 것이라 예측햇다.” 그러나 “그들의 예측은 모두 크게 틀렸다. 1990년대에 대공황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58~60년 주기의 큰드라티예프 사이클을 인용했다.
– 조지 모델스키(George Modelski), 윌리암 R. 톰슨(William R. Thompson), 『The coevolution of global politics and economics(1996)』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위키백과 : https://en.wikipedia.org/wiki/Kondratiev_wave
네이버 지식백과(매일경제용어사전) : 콘트라티어프파동
http://blog.yes24.com/document/6329367
http://blog.koreadaily.com/seeker/65489
2017-11-24 장기파동기 정권의 운명
2016-05-09 2008년 글로벌 위기의 데자뷔, 1873년 공황
2012-05-01 “세계 경기침체의 긴 터널 어디서 끝날 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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