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과 예수

아미타불은 대승불교의 부처 가운데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이다. 아미타여래 혹은 아미타불은 산스크리트로 아미타브하(Amitabha, 무한한 광명을 가진 것) 혹은 아미타유스(Amitayus, 무한한 수명을 가진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한문으로 번역하면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이다. 태양이 지는 서방에 있는 지극히 행복한 나라에 상주해 있다고 하는데, 그 나라를 서방정토(西方淨土)라고 부른다.

 

아미타불의 기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대부분의 고대 신과 마찬가지로 불분명하다.

 

※ 옐로우의 세계(신화/종교) : http://yellow.kr/blog/?page_id=1246

 

대승불교에서는 석가모니 이외에 많은 부처가 신앙되어진다. 그 부처들이 각각 살고 있는 세계를 불국토(佛國土) 또는 정토(淨土)라고 한다. 수많은 정토 중에서도 극락정토에 사는 아미타불의 신앙은 서역(실크로드)을 거쳐 중국, 한국, 일본에까지 꽃을 피운다. 아미타신앙을 설한 경전을 정토경전이라 하는데, 그 중에서 무량수경과 관무량수경, 아미타경을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라 한다. 이 정토삼부경에 따르면, 아미타불은 과거에 법장(法藏)이라는 보살이었는데,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큰 뜻을 세우고 오랫동안 수행한 결과, 그 뜻을 성취하고 지금으로부터 10겁(劫:매우 오랜 세월) 전에 부처가 되어 현재 극락세계에 있다고 한다. 이 서방정토에 왕생하게 되면 자연 무량한 수명을 얻게 된다는 믿음이 바로 아미타정토신앙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 그 광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정토종(淨土宗) 즉 아미타신앙은 불교 종파 가운데 기독교와 가장 가까운 것으로 간주되는데 타력을 이용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예수의 공로를 받들어 천당에 태어나는 것이나 아미타불의 원력을 빌어 극락에 태어나는 것이 똑같은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죄성을 강조하는 면에서도 닮은 점이 있다.

 

16세기에 일본에서 포교 활동을 했던 가톨릭 신부들은 아미타불교의 가르침과 개신교의 가르침이 깜짝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경악했다.

일본 정토교의 기초를 세워 일본의 마르틴 루터라고 불리는 신란(親鸞, 친란, 1173~1262)은 보통 정토진종(淨土眞宗)이라 불리는데 여느 불교 종파와는 달리 타력을 가장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종파의 교리에 따르면 우리의 힘으로는 성불할 수 없고 반드시 부처 가운데 하나인 아미타불의 힘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20세기 개신교 신학의 거장이었던 칼 바르트(Karl Barth)도 이 종파를 접하고 교리가 기독교와 너무 비슷한 데에 크게 놀랐다는 뒷이야기가 전해진다.

 

기원전 270년경, 인도에서 아소카왕이 집권한 이후, 인도의 모든 지역과 실론, 시리아, 이집트, 그리스까지 그가 보낸 불교 선교사들이 기독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쿠샨 왕조가 들어서기 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세워진 인도의 그리스왕국인 박트리아는 그레코 불교라 하여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였고, 불교와 헬레니즘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서양의 일부 학자들은 헬레니즘이 대승불교의 태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쿠샨 왕조는 기원 전후부터 5세기 중엽까지 존재한 북서 인도에서 중앙아시아에 미치는 왕조였는데 각 나라로 연결되는 실크로드를 지배하며 다양한 종교를 허용했다. 불교. 힌두교,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등 세계 종교의 용광로였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대승불교가 나타난다. 대승불교가 중심이된 화려한 불교 문화가 꽃피워지고, 중국 등 동아시아로 전파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간다라 미술’로 유명한 간다라 지역은 오래전부터 동서 문화의 십자로였으며 쿠샨 왕조의 중심지였다.

※ 옐로우의 세계 – 역사지도 : http://yellow.kr/maps.jsp?y=200

 

경교(景教)라고도 불리는 네스토리우스(Nestorius) 기독교와 불교 사이의 제설혼합주의(諸設混合主義)는 고대와 중세시기에 실크로드를 따라 널리 퍼져 있었으며 특히 경교 경전(Jesus Sutras)에 의해 입증 된 것처럼 중세 중국의 네스토리안 교회(Church of the East)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정토종은 인도 불교에서 사상적 조직화(?, 인도에서는 아직 아미타불 조상彫像의 예가 발견되지 않았다)를 거쳐, 중국 불교에 이르러 발달하였는데, 특히 수 · 당에 이르러 널리 유행하였다. 특히 당 제국의 시기에는 불교, 조로아스터교, 네스트리우교, 이슬람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가 공존하는시기였다.

중국 불교에서 정토종은 남북조 시대부터 당나라 시대의 담란(曇鸞: 476~542) · 도작(道綽: 562~645) · 선도(善導: 613~681) 등에 의해 주창되었다. 한국 불교에서 정토종은 신라에 유행하였는데 원효가 주창하였다.

도작은 “지금이 말법시대로다. 바야흐로 오탁악세에 이르렀으니 오직 정토교 일문(一門)만이 있어 들어가야 할 길이로다”라고 설파하고 구칭염불(口稱念佛) 또는 창명염불(唱名念佛)이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야말로 말법시대에 어울리며 이 방법만이 현실사회에서 유효한 불교적 실천이라고 주장하였다.

 

정토종이 유입되는 시기 동아시아는 위진남북조와 수당교체기라는 수많은 전쟁과 민족의 대이동 시기였으므로 민중의 고초는 말로 못할 지경이었을 것이다. 신라 또한 삼국통일전쟁으로 계속된 전쟁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미타불은 사찰의 극락전, 극락보전, 무량수전, 아미타전에 봉안되며 우협시보살로 관음보살, 좌협시보살로 대세지보살과 함께 삼존불(어떤 학자는 삼존불이 기독교의 삼위일체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이 봉안되어있다.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이 등장하기도 한다. 아미타불의 수인은 아미타정인이나 설법인, 항마촉지인을 주로 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부석사 무량수전 소조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45호)이 유명하다.

 

–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 http://yellow.kr/blog/?p=159

 

 

다음과 같이 자료를 찾았다.

 


신화의 이미지

–  조지프 캠벨 / 홍윤희 역 / 살림 / 2006.02.15

 

오늘날 동아시아 전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붓다인 기쁨을 주는 구원자 아미타불의 전설에서, 그가 지상에서 맡은 역활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겁보다 까마득히 먼 옛날의 겁에 해당된다. 그때는 록슈바라라자(Lokeshvararaja), 즉 ‘세계의 왕이며 주인’이라는 이름의 매우 위대한 붓다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빙 둘러앉아 그의 설법을 듣고 있던 이들 중, ‘미덕의 보고’라는 뜻의 다르마카야(Dharmakāya, 법장法藏, 아미타불의 전생으로, 48가지 서원을 세우고 장자, 거사, 국왕, 제천 등이 되어 무수한 전생을 교화하고 제불을 공양하면서 마침내 깨달았다고 함)라는 이름을 가진 승려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어깨에 걸치고 붓다에게 다가갔다. 땅에 오른쪽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합장한 손을 뻗어 ‘여래’를 찬미하며, 그 자리에서 가장 높고 완전한 지혜를 주십사고 기도를 올렸다.

축복 받은 붓다는 다르마카야가 선한 품성을 지녔음을 알고 그에게 천만 년 동안 8조 1천억 X 1천만 붓다가 살고 있는 불국토의 교리와 미덕들을 가르쳤으며, 그 자신의 유일한 불국토의 자격으로 그런 모든 땅과 붓다의 미덕을 응집시켰다. 그런 다음 승려 다르마카야는 붓다의 발치에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오른쪽으로 도는 예의를 표한 후 떠나갔다.

다섯 번의 겁을 거치는 동안 그는 명상하면서 가르침을 받은 자신의 정신 속에서 81조 X 1천만 불국토의 완전성보다 여든 한 배나 더 측량할 수 없고, 더욱 고귀하고, 더욱 훌륭하게 불국토의 완전성들을 키워갔다. 이 모든 것을 마치고 나서 그는 세계의 왕이자 신께서 계속 가르침을 전하고 있던 곳으로 돌아가 다시 그에게 절하고 자신이 성취한 바를 알렸다.

그러자 붓다가 그에게 말했다. “설법하라. 불자여. 여래가 허락하는도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하지만 그때 다르마카야는 거기서 붓다가 되기를 거절하였다. 대신 그는 자신이 성취한 불국토에, 자기 자신과 모든 존재를 위해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되면 그 자신의 것이 되리라고 기대했던 그 불국토에, 축복 받은 자에게 불국토의 훌륭한 점들이라고 묘사했던, 공전의 조건들이 실현될 것을 요구했다.

즉, 그 불국토에 있는 모든 존재는 황금빛 한 색깔이며 그 곳에는 죽음도, 지옥도, 축생도, 악귀도, 아수라들도 없어야 했다. 모든 존재는 모든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높은 영적 힘을 부여받는다. 즉, 소유에 대한 관념은 없고, 완전한 진실 속에 확립된 신성한 시력과 신성한 청력을 지니고, 모든 존재의 행위와 생각을 알게 된다. 게다가 그 극락에 사는 존재는 셀 수 없이 많아야 한다. 더 나아가 이 경이로운 승려, 다르마카야는 다음의 조건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빛을 비추기를 사양하려 했다. 그의 빛은 측정할 수 없고, 그의 불국토의 모든 생명들도 측정할 수 없고, 그 자신의 생명도 측정할 수 없어야 했다. 수많은 불국토의 셀 수 없이 많은 붓다가 그의 이름을 찬미해야 하고, 그의 이름을 듣고 그 이름에 고요히 생각을 집중하여 명상하는 자들은 죽음의 순간에 그들의 앞에 서 있는 그를 보아야 했다. 게다가 불국토에서 다시 태어나고자 자신의 사고를 이끌었던 이들은 – 삶에서 단지 열 번만 그런 생각을 품었더라도 – 죽음의 순간에 그곳에서 다시 태어나 그들이 쌓는 덕을 더욱 성숙시킬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다시 태어났을 때 그들이 더 이상의 탄생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했다. – 단, 모든 세계에서 보티사트바의 의무, 즉 수많은 존재를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헌신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세계로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자들을 제외하고.

그 불국토에서 완전해진 이들은 그들이 원했던 모든 것을 지녀야 한다. 즉, 그들은 경배자이며 집전자로서 모든 붓다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법의 지혜를 암송하는 데 있어서 박식해진다. 전광석화처럼 강인한 신체를 지니고 그 무한한 불국토의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적어도 [백 리그(거의 50만 킬로미터), 또는 더 높은] 보리수를 정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완전한 앎을 성취해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온갖 종류의 보석으로 만들어진 십만 개의 도기들이 갖가지 향긋한 향수로 가득 채워져 하늘을 향해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은은하게 음악이 울려 퍼지는 구름으로부터 향기로운 보석꽃비가 쏟아져 내리며, 어떤 신이나 인간들도 알지 못하는 지극한 기쁨이 그곳에 있다. 결국 그 완전해진 수도승, 다르마카야는 다른 모든 세계들이나 불국토에 있는 한번이라도 그의 이름을 들은 적이 있는 자들이 불성을 얻어 그들이 바라는 황홀과 삶에서의 기쁨과 즐거움, 그들이 듣고자 하는 모든 불법의 가르침과 고귀한 탄생들과 영적인 노력을 통한 인내를 획득하게 될 때까지 자기 자신의 해탈을 거부했다.

그리고 다르마카야가 붓다 록슈바라라자 앞에서 절했을 때, 대지가 떨리고 수백 가지 천상의 악기들이 일제히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했으며, 저 높은 곳으로부터 향기로운 백단가루가 흩날리고 꽃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이윽고 저 높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이 세계의 붓다가 되리라.”

그리고 정말로, 다르마카야의 온몸에 있는 숨구멍에서 연꽃 향수가 쏟아져 나왔고, 불성(佛性)의 상서로운 조짐이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그의 두 손바닥과 머리카락에서 향수와 향, 꽃, 화환과 깃발과 휘장, 양산과 망토와 예복 같은 모든 종류의 진귀한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온갖 마실 것과 먹을 것과 사탕과자와 같은 음식, 그리고 모든 종류의 기쁨과 즐거움이 쏟아졌다. 이날 여래, 그 불존(佛存)은 돌아가시지 않았고, 현 세계로부터 1천억 X 1천만 불국토만큼 멀리 떨어진 서방정토에서 그는 ‘기쁨의 땅’, 슈카바티 연꽃 연못 위를 환히 비췄고, 한쪽에서는 아미타유스-아미타바 붓다가 수많은 보살들에게 둘러싸여 무수히 많은 성자들에게 숭배를 받았다.

우리 취향에는 지나치게 장식적일 듯하여 일부러 조금 생략하였다. 어쨌거나 주목할 점은 이 모든 초자연적이고 경이로운 일들이 신들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현실적인 인간존재로부터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불교에서는 힌두교에서처럼 신과 인간 사이에 어떤 존재론적 구별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 인간, 짐승, 식물, 광물, 행성 사이에도 존재론적 구별이 없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에서 인용한 그리스의 성자 피타고라스의 말처럼, “영혼은 떠다니면서 이곳으로 왔다가 저곳으로 갔다가 하며 어떤 껍데기든 마음에 드는 것에 깃든다. 짐승의 몸에서 인간의 몸으로, 인간의 몸에서 짐승의 몸으로 옮겨 다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붓다와 보살(그리고 힌두교에서는 신)의 신성한 능력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새로 부여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발견하게 되는 것으로, 혹은 플라톤적인 의미에서 ‘기억나게’ 되는 것이다. 그때, 무지라는 장애물은 천천히 사라져가거나 일시에 초월되는 것이다. 워즈워드가 말했듯, 우리의 생은 “한숨 잠이며 망각일 뿐”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종교 불교

–  최준식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 2007.06.20

 

불교가 처음에 자력 종교로 시작했다는 것은 누누이 말한 대로이다. 그러나 신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 민중들에게 자력이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불교에도 다른 힘을 빌려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가르침이 나오게 되는데 그 대표주자가 정토불교이다. 정토라고 하면 일반 독자들은 다소 생경할 텐데 직역하면 ‘깨끗한 땅’이다. 쉽게 말해 보통 극락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그러니까 이 불교 종파는 깨달음보다 극락 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극락(極樂)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쾌락이 극에 달한 곳이다. 경전에는 이러한 극락에 대해 자세하게 적어 놓고 있지만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과 부처님의 설법을 항상 들을 수 있고 자비와 기쁨과 관용과 평화와 같은 온갖 좋은 덕이 넘치는 곳이라는 정도만 언급하자. 여기에서는 정토에 가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지만 사실 정토란 불교도들에게도 과정에 불과하다. 불교도의 영원한 목표는 어느 땅에도 태어나지 않는 해탈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어 다시 정토에 태어난다고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곳에서 더 도를 닦아 해탈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원래 정토종의 목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관행적으로 거의 대부분의 정토종 신자들은 극락에 태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

이 아미타신앙은 불교 종파 가운데 기독교와 가장 가까운 것으로 간주되는데 타력을 이용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예수의 공로를 받들어 천당에 태어나는 것이나 아미타불의 원력을 빌어 극락에 태어나는 것이 똑같은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죄성을 강조하는 면에서도 닮은 점이 있다. 우리가 극락에 갈 수 있는 것은 염불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철저하게 아미타불이 베푼 은혜 덕분이다. 그런데 죄를 많이 질수록 그 은혜가 커진다. 죄가 크면 아미타불의 은혜나 자비를 더 강하게 믿게 되고 그 결과 더 큰 은혜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정토종의 원조처럼 되어 있는 친란(親鸞, 1173~1262)은 “선한 사람도 왕생하는데 하물며 악한 사람이랴”라는 대단히 역설적인 주장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미타신앙은 계속 발전해서 나중에는 서방정토와 아미타불에 대한 급진적인 해석이 생기게 된다. 즉 극락이란 죽어서 가는 저 멀리에 있는 영토가 아니라 이 사바세계, 혹은 더러운 땅이라는 의미에서 예토(穢土)라고 하는 우리의 세상이 바로 정토라는 것이다. 비이원론 혹은 불이론을 기조로 하고 있는 불교다운 해석이라 하겠다. 여기에는 이 사바세계를 극락세계로 만들겠다는 결연한 의지도 포함된다. 아미타불도 굳이 멀리 가서 찾지 않는다. 나와 아미타불은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바로 아미타불의 마음이다. 죽어서 그의 공력으로 극락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아미타불이니 내가 나를 구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미타불이란 참나의 다른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아미타신앙에 대한 설명을 마치기 전에 한 가지 부언할 것이 있다. 이 신앙은 동북아시아 불교에서 가장 대중적인 신앙으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불교도들이 자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염불을 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여기서 ‘나무’란 산스크리트어로 귀의한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왜 관세음보살의 이름도 되뇌는 것일까? 물론 관세음보살이 자비의 화신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불을 보좌하는 역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에 가면 많은 경우 가운데에 불상이 있고 옆에서 보살들이 보좌하는 역활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보살들을 협시불(脇侍佛)이라고 부르는데 가운데 주불이 누구냐에 따라 그 짝이 달라진다. 관세음보살은 아미타불이 거느리는 보살 가운데 하나이다. 관세음보살과 짝을 이루는 또 다른 보살은 보통 대세지보살이라 불리는데 일반 독자들은 그런 자세한 것까지 알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루브르 계단에서 관음 미소짓다

–  박정욱 / 서해문집 / 2000.07.14

 

고려 시대에 가장 장엄한 광경으로 그려지던 불화의 주제는 아미타불의 극락 정토였다.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는 이런 종류의 그림으로서 대표적인 불화의 한 장르인데 부처가 마가다 국의 왕비에게 극락 정토의 여러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을 그린 것이다.

불교의 한 교파인 정토교 또는 아미타불 신앙의 종파는 영혼의 부활을 그 교리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그 교리에 따르면 죽은 이의 영혼을 아미타불이 직접 맞으러 나오는데 문수보살, 관음보살과 함께 내영(來迎)한다. 고려 불화에 <아미타불래영도>가 많은 것은 시대적으로 아미타 신앙, 즉 현세에 덕을 쌓으면 천국에 부활한다는 신앙이 유행했기 때문이다.

이런 아미타불의 내영은 한편으로 서양 기독교의 핵심적 주제인 부활과 예수의 재림과 유사점이 있어 보인다. 단 아미타불은 심판을 하지 않을 뿐이다. 아미타불은 구원받은 영에게만 찾아오기 때문에 사실 심판이 끝난 후 찾아오는 부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미타불은 극락 정토 신앙의 핵심으로 천국을 주재하는 예수와 닮은 점이 있다.

 

아미타불의 내영을 그린 고려 불화 <관경변상도>와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예배당 벽화 중 부활의 장면을 그린 <최후의 심판>은 규모는 다르지만 실제로 비슷한 주제와 유사한 구도를 가지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 그려진 여러 폭의 <관경변상도> 가운데 일본 지온인(知恩院)에 소장된, 설충의 <관경변상도>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특히 유사한 인상을 준다. 중앙의 큰 부처상 주위로 원을 그리며 둘러서 있는 나한들의 상은 <최후의 심판>의 중앙부와 흡사한 구도이다. 상하로 4단계의 층을 이루고 부처를 중심으로 좌우로 구분되어 있는 전체 구도 또한 유사하다. 극락의 광경을 보여 주는 이 그림은 지상 세계나 하늘로 올라가는 영혼들에 대한 묘사는 전혀 보이지 않고 영혼들이 천상에서 부활한 그 순간부터 시작하고 있다. 극락의 정원에 서 있는 나무들, 아름다운 누각들은 화려한 극락 세계에 대한 꿈을 저절로 갖게 만든다.

 


교양으로 읽는 세계의 종교

–  아르눌프 지텔만 / 구연정 역 / 예담 / 2006.02.14

 

일본 불교에서는 지금까지 도겐과 동시대 인물인 신란의 가르침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 일본에 있는 불교 종파 중에 가장 규모가 큰 불교의 신앙 공동체는 신란으로부터 유래한다. 그것은 정토진종 또는 진 불교라고 불린다.

신란은 무수한 붓다의 형상 중에서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받아들였다. 어떤 이는 아미타불을 역사상의 부처인 석가모니와 관세음보살의 화현(化現)으로 간주했다. 일본인들은 아미타불을 ‘서쪽의 붓다’라고 불렀다. 사실 아미타불의 이름은 서쪽에서 처음으로 『수트라』에 등장했다. 아미타불은 붓다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승려들과 함께 인도의 북서 지방으로부터 중앙아시아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그는 이란의 영향 아래 ‘정토(淨土)’의 주인이 되었다.

아시아의 민족들이 보기에, 인도식 열반은 그들과 너무나 동떨어진 성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니 어떻게 그들이 완전한 소멸을 바랄 수 있었겠는가? 이 종파에서 이야기하듯이, 누구든지 깊은 신앙심을 갖고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아미타불의 서방정토에 태어나게 된다는 것이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았다. ‘서쪽의 극락정토’를 여기에서 그리고 지금 찾아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황금빛 속에서 보석들, 꽃들 그리고 새들과 함께 떠오르는 극락정토를 보았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낙원에서 은신처를 발견했다. 그곳에서는 모든 피조물들이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했다. 그리고 정토의 주인인 아미타불은 모든 인간들을 구원하여 자신의 정토에 받아들일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더 나아가 열반에 들 것이라고는 약속하지 않는다. 서쪽의 극락정토로 이르는 가장 확실한 길은 공을 많이 쌓아 아미타불에게 헌신하는 삶이다.

……

일본 승려인 신란은 ‘서방정토의 붓다’를 통해 몸소 자비를 경험했다. 아홉 살 때 신란은 천태종의 승려가 되어 그와 동갑인 여러 동자승과 함께 사원에 들어갔다. 스무 살 때 금욕 생활을 하면서 모범적인 수행 생활을 했다. 그때 그는 성자로 존경 받은 쇼토쿠 태자를 꿈속에서 만났다. 그는 당시 일본의 불교를 후원하고 있었다. 태자는 이 젊은 승려에게 아미타불의 신앙을 심화시킬 것을 명령했고, 그 명령에 따라 신란은 금욕 생활을 포기하고 아미타의 ‘본원’에서 구원처를 찾았다. 단번에 그는 우리의 자아(에고)를 없애려는 모든 노력들이 헛되다는 것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아미타의 자비만이 우리에게 삶을 선사한다. 너는 너의 빛을 밝히고 싶은가? 촛불을 들고 햇빛 속으로 나가보라, 그리고 보라, 촛불이 빛나지 않음을. 공덕을 쌓는 것? 선행? 승려의 삶? 자기 자신의 모든 노력은 아미타의 자비의 빛 속에서 빛을 잃는다. 이것을 깨달은 후 신란은 사원을 떠났고 승복을 벗었다. 2년 후 그는 결혼을 했다.

신란은 아미타불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대중들에게 전파했다. 그 사이에 그는 이단자로 규정되어 7년 동안 승단에서 추방됐다. 그 후 그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신란은 동쪽의 섬나라에서 수십 년 동안 가르침을 전파하며 돌아다녔다. 인도의 붓다가 그러했듯이, 아미타불을 부르며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염불하여라. 그러면 극락정토가 너에게 열릴 것이다! 신란은 이러한 가르침을 대중들에게 전파했다. 신란은 공덕을 쌓고 선행을 베풀고자 하는 모든 노력을, 사멸할 수밖에 없는 자아를 유지시키는 경건한 이기주의라고 낮게 평가했다. 신란은 새로운 종단을 설립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승단을 비생산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운명이 정해준 대로 존재한다. 극락정토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면 그 즉시 외면적 삶의 형식은 의미가 없게 된다.

신란의 불교는 ‘개신 불교’라고 일컬어졌다. 인간은 계율서가 아니라 오직 신앙을 통해서 신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라고 고백한 루터의 신앙과 유사하다. 또한 그들의 삶의 내력도 놀랄 만큼 서로 비슷하다. 신란과 루터 모두 처음에는 성실한 수도자로서 정진하다가, 비슷한 나이에 지배적으로 군림하던 율법을 깨고 나왔으며, 곧 결혼하고 이단으로 규정되어 박해를 받았다. 그들은 종교적인 신분 계급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신앙 공동체를 세웠다. 다른 점은 신란이 루터보다 100년 일찍 살았다는 점이다. 16세기에 해 뜨는 나라 일본에서 포교 활동을 했던 가톨릭 신부들은 아미타불교의 가르침과 개신교의 가르침이 깜짝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경악했다. 어떻게 이단자 루터가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단 말인가?

단지 신기에 가까운 일치에 불과한 것일까? 나는 그 이상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루터는 당시 예수와 동시대를 살았던 유대인 바울로를 증인으로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로의 경우에도 먼저 예수의 환영을 보고 나서야 기독교에 귀의하게 되었다. 예수의 부름을 받고 나서 사울은 바울로가 되었다. 그리고 바울로는 신란과 마찬가지로 “오직 믿음으로부터”라는 극단적인 자비의 가르침을 전파했다. 바울로, 신란, 루터라는 세 인물이 이루고 있는 구도에서 포괄적인 관점들이 나오는데, 이 관점들은 종교학에서 아직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누가복음』에 따라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포도주를 주며
37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40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41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42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44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45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역사적 보고가 아니라 수많은 손을 거쳐 작성된 신앙의 증언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예수는 마지막까지 “심령이 가난한 자들” 편에 선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낙원에” 머물 것이다. 그의 마지막 복음을 들은 살인자, 도적과 같은 범법자가 그 곳에 머무는 것처럼.

이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인가. 위의 대목에서 느낀 감정은 두 번 다시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일본의 아미타불교에서도 서구에서 말하는 은총에 해당하는 동방의 자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아미타는 우리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미타는 모든 존재가 불교의 신앙 안에 들 때까지 조금도 쉬지 않을 것을 결심했다. 13세기에 살았던 신란의 스승 호넨이 쓴 글을 읽어보자.

 

자비는 오로지 그것뿐인 것이다. 자비를 통해 아미타는 자신의 힘으로 우리를 돕는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무엇을 신뢰할 것인가? 우리가 끊임없이 죄악에 빠진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가든지 서든지 눕든지 앉든지 간에 말이다. 아무리 우리 안의 순수한 생각들을 깨운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치 물 위에 글자를 쓰는 것처럼 일시적인 것이 아닐까? 그런 다음에는 탐욕과 미움의 파도가 다시 굉음을 내며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달려든다. 그러니 나는 코앞에 밀려오는 죄의 카르마를 어떻게 해야 끝낼 수 있단 말인가? ‘나’라는 이 가련한 죄인이! 신이여, 도우소서! 나무아미타불!

들어보라, 아미타는 자비로운 자이다. 죄인들이 불심에 이르도록 아미타는 돕기를 원한다. 바로 그 때문에 죄인들은 다시 한 번 환생하도록 정해져 있다. 다른 생의 힘을 믿고 있는 자들. 격언에서 이미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선인들조차도 환생하는 마당에 죄지은 자들은 얼마나 많은 생을 반복하겠는가!”라고.

여기에서 동양과 서양의 종교적 차이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호넨의 아미타는 순수한 판타지 상이 아닌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바울로의 그리스도가 역사적 예수 안에서 자신의 지주를 발견한 것처럼, 출가하여 붓다로서 깨달음을 얻은 젊은 싯다르타를 떠올리지 않고서는 아미타를 생각할 수 없다. 싯다르타보다 대략 500년 후에 나타난 예수의 경우도 그와 같다.

나는 이와 같은 유사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유사점들을 통해 종교는 다른 종교들을 뒷받침해 줄 수 있다. 종교가 자기도취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나의 희망도 이런 유사점들 덕분에 강화될 수 있다.

 


Religion in Chinese Garments

–  Karl Ludvig Reichelt / James Clarke & Co. / 2004

 

네스토리우스파(경교)의 영향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특별히 강력했을 수 있다:

아미타불이 “열 개 하늘 영역(시방,十方)의 자비로운 아버지”로 표현되고 있을 때, 삼위일체적 사상의 경향은 더욱 강화되고 발전되었다.  아미타불과 함께 가장 지혜로운 대세지(大勢至)와 자비로운 영적 힘을 가진 관음(觀音)이 나타난다. “서방정토”의 통치자로서 대세지보살과 관음보살은 아미타불과  나란히 서서 “살아있는 모든 것”을 구원할 것이다.

아미타불 신앙은 일신론적인 노선을 따라 발전했다.

게다가, 인류 공동체의 결속에 대한 이해가 커졌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깊은 감명을 주는 네스토리우스(Nestorian) 기도 의식의 영향은 점차 ‘죽은 자’를 위한 대중들의 기도가 중시되는 경향이 커지게되었다.

강력한 ‘concept of faith(믿음의 개념)’은 이미 대승불교에 소개되었다(아슈바고샤(마명,1~2세기)의 『대승기신론』과 비교). 정토종에서 이것은 더욱 발전되었다.

 


기원 전후 천년사, 인간 문명의 방향을 설계하다

–  마이클 스콧 / 홍지영 역 / 사계절 / 2018.08.03

 

반대로 실크로드 같은 육상 무역로와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 간 해상 무역로의 발달은 수세대에 걸쳐 승려들이 불교를 중앙아시아로, 그리고 동쪽의 중국으로 전파하는 토대를 마련한다. 어떤 이들은 보살을 강조하는 대승불교의 발달이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구원자 예수의 이야기가 동시대에 전파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리스도의 이야기도 무역로를 따라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지중해 지역으로부터 동쪽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예수, 석가를 만나다

–  이명권 / 코나투스 / 2006.12.30

 

삼세제불이라 하면 과거와 현재, 미래에 걸친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를 통칭하는 말이다. 초기 불교에서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자 깨달음을 이루고 가르침을 주었던 석가모니(기원전 563~483)만을 한 분 부처로 인정했지만 후기 대승불교에 이르러서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의 많은 부처를 상정하게 된다. 한국에서 잘 알려진 부처 중에는 아미타부처나 미륵불이 있다. 기원전 5세기경에 성립된 불교 유가瑜伽학파에서는 부처의 위격을 셋으로 구분하여 삼신불을 강조하는데 이는 법신法身, 보신報身, 응신應身으로 설명된다.

 

법신은 자성신(自性身)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우주의 궁극적 근원이자 존재의 바탕이다. 이러한 우주의 근원이 사람 속에도 내재하는데 그것을 일러 ‘깨달은 마음’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고, ‘순수한 마음’ 그 자체로도 설명된다. 이것은 인도 사상에서 우주의 궁극적 존재나 원리를 브라흐만(Brahman)이라고 하고 인간 내면의 원리를 아트만(Atman)이라고 설명하는 것과 유사하다. 다만 불교에서는 이 아트만을 보다 철저히 분석하여 참된 자기가 아닌, 가립된 거짓 자아를 몰아낼 것을 주장한다. 보신은 수용신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아미타부처와 같이 보살도를 완성하고 과보(果報)를 얻은 부처로서, 절대적 법신불이 중생의 구원을 위해 상대적 세계에 나타난 부처다. 응신은 변화신(變化身) 또는 화신(化身)이라고도 하는데 역사적 석가모니를 지칭하는 것으로 특정 시대와 지역에 중생들이 보고 가르침을 받도록 탄생한 부처다.

 

이들 삼신불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설명되는 하나님, 예수, 성령에 구조적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이들 삼신불 가운데 법신은 우주의 궁극적 근원이자 절대자로서 하나님과 비유되며, 보신은 중생의 구제를 위해 상대적 세계에 나타난 것만큼 인간을 위로하고 구원하는 성령의 역활에 비유된다면, 화신으로서의 응신은 하나님이 세상에 독생자를 보내어 성육신하게 한 예수에 비유된다는 점이다. 물론 불교의 부처나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 같을 까닭이 없고 각각의 문화적 토양이 다를 뿐이지만 구원론적 측면에서의 기능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물론 초기 불교에서는 ‘깨달음’ 자체를 중시했지만, 후기 대승불교에 이르러서는 부처에 대한 귀의와 ‘믿음’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러 학자들의 언급>

 

◎ 존 캅(John B. Cobb, Jr.)

“정토불교 신자들이 아미타를 실재의 총체적 양상으로 파악할 때 그것은 마치 기독교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그렇게 파악한 것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말하게 될 때, 우리는 단순히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하느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 속에서 창조적으로 구속적으로 일하시는 영원한 말씀으로서 하느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진리를 향해 문을 여는 진리 자체이다. 마찬가지로 정토불교에서도 아미타는 많은 다른 부처 가운데 한 부처가 아니다. 아미타는 모든 부처들 가운데 성육화된 실재 대신에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서 생기는 질문은 모든 부처 속에 성육화된 것으로서의 아미타와 이 세계 안에서 창조적 구속적 행위를 하시는 분으로서의 그리스도가 같은 실재에 대해 이름하는가이다. 내가 믿기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불교 신자가 아미타에서 배운 것을 연구함으로써 그리스도에 관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반대로 불교 신자들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그리스도로부터 배운 것을 연구함으로써 아미타에 관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 길희성 (비교종교학 박사)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는 아미타불이 된 법장보살의 모습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존재로서 그의 육화라 해도 좋다.”

 

 

◎ 이찬수 교수

“정토교와 기독교의 구원론은 인간의 구체적 경험과 경험 이전부터 선행하는 원력의 관계에 대한 설명”

 

대표적인 보신불이 아미타불이다. 아미타불은, 석가모니불의 설법에 따르면, 법장보살이 원을 세우고 수행하여 도달한 붓다이다. ‘아미타’는 ‘무한한 수명'(無量壽, Amitayus) 혹은 ‘무한한 빛'(無量光, Amitabha)이라는 뜻으로서, 불(佛)의 공덕, 법력, 기쁨의 형상이며, 중생을 구원하는 자비의 몸의 상징이다. 한 마디로 법신의 초형상적 구체화이다. 중생이 구원을 얻기 위해 할 일은 그저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고 외우는(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것으로 족하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는 누구나 정토에 태어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자비의 서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신불의 신앙 구조는 예수야말로 하느님의 외아들이기에 “아들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아들이 다 해준다”(요한 14,13-14)고 하는, 하느님의 외아들 혹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에 대한 신앙적 구조와 상통한다.

 

 

◎ 안경식 교수

안경식 교수는 “‘구제’라는 주제를 가지고 기독교와 논할 수 있는 불교가 있다면 그건 바로 정토교”라며 “불교와 기독교 모두 ‘구제’의 의미를 참된 주체의 확립과 관련짓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홍익학당 윤홍식

[3분 인문학] 예수와 아미타불 _홍익학당.윤홍식 : https://youtu.be/N5QoUiRsFK0

 


<관련 그림>

 

– 일본 나라현 호류지(法隆寺) 다치바나부인 불당(橘夫人廚子) 아미타삼존상(阿弥陀三尊像)  / 8세기 초

위의 다치바나 사당에 있는 아미타불의 들어올린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이고, 벌린 왼손은 ‘여원인(與願印)‘이다. 하늘의 연꽃과 땅의 연꽃, 우주와 개별자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는 스스로가 그 양자의 본질이 같음을 입증한다. 그는 기독교의 예수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신비로운 장미’, 즉 성처녀에게서 태어난 진정한 신이자 동시에 진정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 서구의 장미는 동양의 연꽃 상징에 상응한다.

 

 

관경변상도(觀經變相圖) / 고려 1323년 / 일본 경도(京都) 지온원(知恩院) 소장

『관무량수경』에는 극락세계의 여러 가지 장면을 16가지로 관상(觀想)하도록 설명하고 있다. 관경변상도는 이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정토 신앙과 함께 유행한 극락도(極樂圖)의 일종이다.

 

 

– 미켈란젤로의 시스틴 성당 벽화 중 <최후의 심판>은 규모는 다르지만 앞의 그림의 <관경변상도>와 비슷한 주제와 유사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 중앙의 큰 부처상 주위로 원을 그리며 둘러서 있는 나한들의 상은 <최후의 심판>의 중앙부와 흡사한 구도이다. 상하로 4단계의 층을 이루고 부처를 중심으로 좌우로 구분되어 있는 전체 구도 또한 유사하다.

 

 

– 아소카왕이 불교를 포교한 지역 (기원전 260 ~ 218년)

 

 

– 불교 전통의 성립과 발전

 

 

– 예수의 초기 묘사(로마 시대, 소아시아)와 부처(그리스풍 불교 미술, 간다라)

 

 

– 네스토리우스교의 아시아 선교

 

 

– 당나라 시기의 네스토리우스의 예수 이미지 (둔황, 9세기)

 

 



– 성모 마리아와 아시시의 주교 테오발도 폰타노를 그린 지오토의 벽화(위)와 관음보살에게 선지식을 구하는 선재동자를 그린 파리 기메미술관 소장 고려 수월관음도(아래) /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241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위키백과 : 아미타불

위키백과 : 기독교와 불교

https://en.wikipedia.org/wiki/Buddhism_and_Christianity

네이버 지식백과(세계미술용어사전) : 아미타불

네이버 지식백과(종교학대사전) : 정토교

네이버 지식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경교

http://egloos.zum.com/waitsfor/v/4880663

2018-05-22  불교에도 삼위일체 있는 거 아시나요?

2018-04-23  [그림 속 불국토] <8> 비극적 쿠데타, 관경변상도

2017-03-18  ‘구원‧구제’ 정토교와 기독교, “묘하게 닮았다”

2015-12-08  22. 귀명과 구품

 

아미타불과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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