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해인사 일원 – 명승 제62호

※ 황성열의 세계 – 문화재 : http://yellow.kr/nt.jsp

※ 명승 제62호 / 가야산 해인사 일원 (伽倻山 海印寺 一圓) / 2009년 12월 09일 지정

문화재청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해인사를 두고 있는 가야산은 높이가 해발 1,430m이며, 우뚝하고 기이한 모습으로 우리나라 8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신령스러운 산이다. 이곳의 돌과 물, 붉은 소나무숲은 다른 절이나 명산에서도 보기 힘든 자연경관을 갖고 있다.

해인사는 가야산의 서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애장왕 2년(802)에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순응과 이정, 두 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부터 고종 때까지 2백여 년간 7차례나 불이 나서 건물 대부분이 타버렸고, 지금의 건물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에 세운 것들이다.

현재 절 안에는 고려 고종 23년(1236)에서 1251년까지 15년간에 걸쳐 완성된 호국안민의 염원이 담긴 고려대장경판(국보 제32호)이 있다. 그 밖에 장경판전(국보 제52호), 반야사원경왕사비(보물 제128호), 석조여래입상(보물 제264호), 원당암다층석탑 및 석등(보물 제518호), 합천 치인리마애불입상(보물 제222호)이 있다.

뛰어난 가야산의 자연경관과 역사의 숨소리가 살아 있는 해인사 지역의 문화유산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불교에서 삼보, 즉 세가지 보배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 부처님 말씀, 부처가 되고자 하는 스님 이 세가지를 말한다. 해인사는 통도사(通度寺:佛寶사찰)·송광사(松廣寺:僧寶사찰)와 더불어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하나로 법보(法寶)사찰로 유명하다.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그 도도한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고 선양한다는 기치 아래, 이른 바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세워진 가람이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 무렵에 중앙아시아에서 성립된 대승 경전의 최고봉으로서, 그 본디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동양문화의 정수라고 일컬어진다.  이 경전에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해인사 이름은 바로 이 ‘해인삼매’에서 비롯되었다.

해인삼매는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 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곹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 속에(海)에 비치는(印) 경지를 말한다. 이렇게 여실如實한 세계가 바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우리 중생의 본디 모습이니, 이것이 곧 해인삼매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해인사는 해동 화엄종의 초조初祖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의 법손인 순응順應화상과 그 제자인 이정理貞화상이 신라 제40대 임금 애장왕 3년에, 곧, 서기 802년 10월16일에 왕과 왕후의 도움으로 지금의 대적광전에 자리에 창건하였다.

이리하여 화엄종은 개화기를 맞던 신라시대를 거쳐, 해인사를 중심으로, 희랑希朗대사를 위시하여 균여均如, 의천義天과 같은 빼어난 학승들을 배출하기에 이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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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은 소백산맥의 지맥인 대덕산 줄기로서, 주봉인 상왕봉(1,430m)을 중심으로 두리봉, 깃대봉, 단지봉, 의상봉, 남산제일봉 등의 암석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그 가운데로 아름다운 가야천이 흐르고 있어 옛부터 우리나라 팔경의 하나로 손꼽혀 왔습니다.

가야산 중턱에 위치한 법보종찰 해인사에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민족문화의 정수이며,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과 경판전이 보존되어 있으며, 가야천 홍류동계곡의 절경과 더불어 이곳 가야산의 자랑거리 입니다.

이러한 민족문화의 보고요, 천혜의 수려한 자연자원을 간직한 이곳 가야산을 올바르게 보존하기 위하여 1972년 10월 13일 우리나라 9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보호 · 관리하고 있습니다.

< 국립공원 가야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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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은 우리나라의 불교 전통이 가꿔온 성지로서 예로부터 이름난 명산이자 영산(靈山)이다. 가야산의 ‘가야(gaya)’는 ‘최상의’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성도하신 붓다가야에서 따왔다고도 하고, 옛날 가야국이 있던 곳의 산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가야산은 서남쪽 자락에 해인사를 품고 있으며, 곳곳에 암자와 석물, 옛 사찰 터와 고적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남조시대의 지공(誌公) 스님(418~514)은 해동의 가야산에 대가람이 세워져 불법이 번창하리라는 예언을 했다고 전한다. 그로부터 약 300년 후인 서기 802년에 해인사가 창건되었다. 홍류동 계곡은 가야산 주봉인 상왕봉과 남산제일봉(일명 매화산) 사이를 굽이쳐 흐르면서 주변의 기암괴석, 송림 등과 어울려 사시사철 절경을 이룬다.

경상일도무석화성이유합천가야산 석첨연행여화재리(慶尙一道無石火星而惟陜川伽倻山石尖連行如火災離)(중략)임란금강지리속리덕유개불면왜인독오대소백급차산불지고자고역칭삼재불입내유해인사(任亂金綱智異俗離德裕皆不免倭人獨五臺小白及此山不至故自古亦稱三災不入內有海印寺)

 

경상도에는 돌로 된 화산(火山)이 없다. 오직 합천 가야산만 뾰족한 돌이 이어져 마치 불꽃처럼 잇달아 솟아오르는 듯하고, 공중에 따로 솟아 극히 높고 빼어나다. (중략) 임진왜란 때 금강산·지리산 ·속리산 ·덕유산은 모두 왜적에게 화를 면치 못하였으나 오직 오대산·소백산과 이 산에는 들어오지 못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삼재가 들지 않는 곳이라 한다. 산 안쪽에는 해인사가 있다.

– 이중환의 <택리지> 복거총론 산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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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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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건물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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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도장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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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일주문

해인사에 들어서면 일주문, 봉황문, 해탈문 등 세 개의 문을 차례로 지난다. 일주문(一柱門)의 ‘일주’는 일심(一心)을 뜻한다. 즉, 일주문은 일심으로써 속세를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를 향한 첫발을 내딛는 문이다. 해인사 일주문은 ‘홍하문(紅霞門)’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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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바라보면 왼쪽에 원표(元標)가 오른쪽에 당간지주가 있다. 원표는 지금의 이정표와 같은 것이어서 인근의 고을까지의 거리를 기둥의 사방 밑둥 부분에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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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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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지나 봉황문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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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는 신라 40대 애장왕(802년),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의 기도로 애장왕후의 난치병이 완치되자 왕이 이 은덕에 보답코자 법당과 승료등 많은 가람을 헌공하여 해인사를 창건하였고, 이를 기념하여 식수한 나무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 느티나무는 1,200여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성장하여 오다가 1945년에 수령을 다해 고사(枯死)하고, 지금은 둥치만 남아 해인사의 장구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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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VER 백과사전 : 해인사 봉황문(海印寺鳳凰門)

일주문을 지나면 가람과 불교를 수호하는 금강역사와 사천왕이 서 있는 봉황문에 이른다. 천왕문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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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든 사천왕상 – 동방 지국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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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를 든 사천왕상 – 북방 다문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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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과 탑을 든 사천왕상 – 서방 광목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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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여의주를 든 사천왕상 – 남방 증장천왕

1932년 산청에 있는 화백 지송파(地松坡)가 동서 양 벽면에 사천왕 탱화를 조성하여 이듬해 점안(點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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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단(局司壇) – Hall of Mountain Spirit

국사단은 국사대신(局司大神)을 모신 단(壇)으로서 국사대신은 도량이 위치한 산국(山局)을 관장하는 산신과 토지가람신(土地伽藍神)을 가리킨다. 가야산신(山神)인 정견모주(正見母主=깨달음의 어머니)는 하늘의 신 이비가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 큰 아들 이진아시왕은 대가야국을, 작은 아들 수로왕은 금관가야국을 각각 건국하였다 한다. 국사대신은 인간세상을 손바닥 보듯이 하면서, 신미스런 현풍(玄風)을 떨쳐 해인사에 재앙을 없애고 복을 내린다. 가람을 수호하는 신을 모셨기 때문에 도량 입구에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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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당(雨化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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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문에서 계속해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나 부처님 세계인 불이(不二)의 세계에 들어가는 해탈문(解脫門)에 도달한다.(불이문不二門이라고도 한다) 불이는 모든 상대적인 것들을 초탈한 해탈의 경지다. 일주문에서 해탈문에 이르는 계단 33개는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33천(天)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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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문을 통과하면 정면에 구광루(九光樓)가 나타난다. 해인사의 모든 건물 가운데 한가운데 자리 잡은 건물이다. 구광루라는 이름은 <화엄경>의 내용 중에서 따온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홉 군데에서 설법하셨는데, 그때마다 이마의 백호(白虎, 인의 32가지 상호 하나)에서 빛을 뿜으셨다는 이야기다.

구광루 양쪽의 문을 통해 해인사 법당인 대적광전으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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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도 탑돌이

해인도海印圖는 중국 화엄종의 제2조로 추앙 받는 지엄(智儼)스님이 화엄경의 핵심교리를 칠언 삼십구로서 유감없이 잘 나타낸 것을 신라의 화엄초조로 숭상받는 의상대사께서 붉은 점을 찍어 그림으로 만들어 보이자 지엄스님이 찬탄하여 말씀하시길 “네가 법성을 궁극적(窮極的)으로 증득하여 부처님의 의지(意旨)를 통달하였다”라고 인정하였다고 한 <원상록>의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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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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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루 주변에서 이리저리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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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루 오른쪽 문을 통해 해인사 주불전인 대적광전으로 왔다. 본래는 비로전이라 부르던 것을 조선 성종 때 다시 지으면서 대적광전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 8년(1871)에 다시 지은 것을 1971년에 대폭 수리한 것이다.

대적광전 앞 계단 석재들은 장경판전 뒤편에 있었던 돛대바위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다. 돛대바위는 해인사가람에 있어 선장 역할을 하던 존재였는데 일제 때 일본 장교가 돛대바위를 깨트리고 그것을 이용해 지금의 계단을 만들었다.

그런데 사찰에 따라서 중심 법당의 이름이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는데, 불교 발전과 더불어 발생한 여러 종파가 그들이 의거하는 경전과 교리 등에 따라 예배 대상인 주존불(主尊佛)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화엄경』을 근본 경전으로 하는 화엄종(華嚴宗)의 사원에서는 비로자나불을 봉안하는 대적광전이, 『무량수경』과 『아미타경』을 근본 경전으로 하는 정토종(淨土宗)에서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전이, 『묘법연화경』을 근본 경전으로 하는 천태종(天台宗)에서는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대웅전이 사찰의 중심 법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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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에는 여섯 개의 주련이 있다. 주련(柱聯)은 기둥이나 벽에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글귀를 일컫는다. 정면에서 봤을 때 오른쪽 두 점은 고종이, 나머지 네 점은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이 쓴 글이다. 15세 때 쓴 고종의 글씨가 단아한 반면 흥선대원군의 글씨는 세상의 풍파를 견뎌낸 그의 인생처럼 활달하고 거칠 것이 없다. ‘곳곳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네’란 뜻을 적은 주련에서는 처음 한 번만 처(處)자를 쓰고, 두번 째 처자는 같은 글자라는 의미로 이수(?)만 쓰는 호방함도 흥선대원군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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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에서 구광루 방향으로 내려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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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 오른쪽 벽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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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 뒷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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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사진에 보이지는 않지만 좌우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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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광전 뒤의 높다란 석축위로 계단을 올라 ‘팔만대장경’이란 현판을 단 문 안으로 들어서면 대장경을 봉안한 장경판전 영역이 시작된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13세기에 만들어진 세계적 문화 유산인 고려 대장경판 8만여장을 보존하는 보고로서 해인사의 현존 건물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장경판전은 정면 15칸이나 되는 큰 규모의 두 건물을 남북으로 나란히 배치하였다. 장경판전 남쪽의 건물을 수다라장, 북쪽의 건물을 법보전이라 하며 동쪽과 서쪽에 작은 규모의 동·서사간판전이 있다.

장경판전을 언제 처음 세웠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1398년 5월, 강화도 선원사를 떠난 팔만대장경이 한양을 거쳐 해인사로 옮겨진 시기는 대략 1399년으로 추측된다. <가야산해인사고적>등 여러 기록을 참조하면 장경판전은 조선 초 무렵인 1488년쯤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 후로 여러 차례 부분적인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국보 제5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서는 대장경판 81,258판(국보 제32호), 고려각판 2,725판(국보 제206호), 고려각판 110판(보물 제734호)이 있으며,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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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판전의 살창과 환기 구멍

참 춘분과 추분 오후3시 3분 정도 장경판전 수다라장에서 연꽃이 핀다는데… 미리 알고 갔더라면 현재의 모양을 한 번 봤을텐데… 도대체 이러한 건축학적인 구도가 왜 필요한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해인사의 춘분 연꽃을 보고 왔습니다 (오후 3시경 단 3분만 피는 꽃을 보기가 어디 쉬운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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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장경판의 제작과 인쇄

이제 대비로전(大卑盧殿)으로 간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을 비로전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불은 왼손 집게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는 중생과 부처, 번뇌와 깨달음이 본래 하나라는 것을 상징한다. 해인사 대비로전에는 9세기에 조성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동형쌍불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다. 비로자나불 내부에서 나온 묵서명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여져 있다. “서원합니다. 대각간님의 비로자나부처님이시여! 오른쪽 부처님은 비(妃)님의 부처님입니다. 중화 3년(서기 883년) 계묘년 여름, 부처님을 금을 입혀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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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로전은 2005년 8월 해인사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비로자나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전 종정예하를 예방한 자리에서 건립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뒤 2년여의 공사 끝에 완공됐다.
해인사 대비로전 낙성대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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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로전에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전각 법보전과 대적광전에 각각 모셔져 있던 ‘동형쌍불 목조 비로자나불’(일명 쌍둥이 부처)을 봉안하고 있다.

이 비로자나불은 2005년 6월 개금(改金·불상에 금칠을 하는 것)을 하는 과정에서 ‘중화3년’(서기 883년)에 제작됐다는 묵서가 나와 국내 최고의 통일신라 목조불상으로 확인됐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 비로자나불이 신라 진성여왕과 대각간 위홍의 사랑과 서원을 담아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제 용탑선원(龍塔禪院)으로 간다. 3.1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인 백용성 스님이 주석하신 암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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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에서 용탑선원(龍塔禪院)으로 들어가는 다리. 앞에 보이는 곳이 용탑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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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탑선원(龍塔禪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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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비탈을 깎아 지은 굴 법당. 법당 안 벽은 전부 석재로 마감했다. 아미타불과 좌우로 관음보살 및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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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탑선원내에 있는 법당인 칠불보궁. 일곱 분의 부처를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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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와 용탑선원을 연결해주는 외나무 다리. 다리 옆엔 ‘이 다리를 건너면 불심 깊은 불자는 업장이 소멸된다’라고 쓰여 있다. 나는 별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참고자료 및 관련기사>

해인사
해인사 홈페이지
NAVER 백과사전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의 세계(허균/돌베개/2000.10.27)
무슨 배를 타야 해인의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화엄종 근본 도량 해인사
용성탑과 고암 스님의 자취가 서린 용탑선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가야산 해인사 일원 – 명승 제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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