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차일드 가의 시대(1866 ~ 1931) : http://yellow.kr/blog/?p=3214 글에서도 인용했지만, 리오 휴버먼(Leo Huberman)은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책을 읽어 보면 이런저런 왕들의 야망 · 정복 ·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장황하게 이어진다. 그런 책들의 강조점은 완전히 틀렸다. 국왕들의 이야기에 지면을 할애하기보다 왕권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힘, 즉 그 시대의 상인과 금융업자의 이야기에 지면을 할애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아인 랜드(Ayn Rand)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무지하고 우매한 사람만이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눈으로 본 것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바로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여기에서는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말들을 모아 보았다. 새로 찾게되는 말들은 계속 추가하면서 수정할 예정이며, 이 말들에 대한 검증은 각각 인용한 책에게 돌린다.
발언자의 로스차일드와의 관계와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정치적, 경제적 발언이 그렇듯이 과장된 말이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바쿠닌
– Judaica 1950, p. 101 / Wheen 1999, p. 340
– http://www.connexions.org/RedMenace/Docs/RM4-BakuninonMarxRothschild.htm
– https://en.wikipedia.org/wiki/Mikhail_Bakunin#Antisemitism
일부 작품에서,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미하일 바쿠닌(Mikhail Bakunin, 1814~1876)은 노골적으로 반유대주의적 견해를 지지하며 다음과 같이 마르크스와 로스차일드를 비난한 바 있다.
런던과 프랑스, 특히 독일에서 유대인 마르크스는 음흉하고 시류에 민감한, 그렇고 그런 약삭빠른 유대놈들에 둘러싸여 있다. 모든 곳에서 상업, 은행업에 종사하는 유대인이 금융브로커인 것처럼 문필, 학계, 정계, 또는 각종 색깔의 언론계에 있는 유대인들은 문학과 지식, 정보의 브로커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금융브로커인 것처럼 유대인은 한 발은 사회주의 운동에, 또 한 발은 자본주의에 담고 있으며 독일 언론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 있다(놈들은 모든 신문사들을 거머쥐고 있다). 거기서 그 어떤 메스꺼운 쓰레기들이 쏟아져 나올런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하나의 거대한 착취적 종파, 거머리의 민족, 왕성한 식욕을 가진 기생충 집단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누구보다 강력하게 결속되어 있는 이 유대인 세계는 오늘날 전체적으로 마르크스와 로스차일드의 손 끝에 놓여 있다. 나는 로스차일드는 마르크스에게, 그리고 마르크스는 로스차일드에게 본능적인 경외심을 품고 있을 거라 확신한다.
어떤 이에겐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공산주의와 국제금융자본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단 말인가? 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를 원한다. 그리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부가 있는 곳에 중앙은행이 있으며 또한 기생충 같은 유대민족이 있다. 정부와 중앙은행을 장악한 유대인들은 인민을 더욱 악착같이 착취할 수 있으며 스스로를 살찌울 것이다. …… 실로 마르크스가 주창하는 사회는 진짜 프롤레타리아들에겐 노예수용소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제복을 입은 노동자 남녀는 북소리에 맞춰 일어나고 잠들고, 일할 것이다. 이들 위에 군림하는 특권은 영리한 유대인 소수에게 돌아갈 것이며 이들은 중앙은행들의 국제적 연결망을 통한 가렴주구로 만국 민중의 노동을 착취할 것이다.
화폐전쟁
– 쑹훙빙 / 차혜정 역 / 랜덤하우스 / 2008.07.21
내가 한 국가의 화폐 발행을 관장할 수 있다면 누가 법을 정하든 상관없다.
– 메이어 암셸 로스차일드
수표나 신용화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극소수의 사람은 그 시스템이 형성하는 이윤에 큰 관심을 두거나, 그 시혜자인 정치가와 결탁해 자기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시스템으로 파생되는 자본이 가져오는 거대한 이익에 대해 알 도리가 없다. 그들은 압박을 받으면서도 전혀 불만을 품지 않는다. 심지어 이 시스템이 자신의 이익을 해치지 않을까 의심하지도 않는다.
– 로스차일드 형제, 1863년
로스차일드 가문은 세계 금융시장을 주도하면서 다른 분야도 거의 장악했다. 그들은 이탈리아 남부 지역 전체의 재정 수입을 담보로 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유럽 모든 국가의 국왕과 정부 각료가 이들의 영향력 안에 있었다.
– 벤저민 디즈레일리, 영국 수상, 1844년
내게는 중요한 적이 둘 있다. 하나는 내 앞의 남부군이며, 나머지 하나는 뒤에 도사린 금융기관이다. 둘 중 후자가 더 큰 위협이다. 장차 나를 떨게 할 위기가 가까이 왔음을 느낀다. 내 나라의 안위가 걱정이다. 금전의 힘은 사람들을 계속 통치하고 그들을 해치면서, 모든 재산이 소수의 사람 손에 들어가고 우리 공화국이 붕괴하기까지 지속될 것이다. 나는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심지어 전쟁 때보다 더 초조하다.
– 링컨, 미국 16대 대통령
화폐전쟁2
– 쑹훙빙 / 홍순도 역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05.03
누가 세계의 권력 균형을 주관하는가?
누가 우리들의 국회를 통치하는가, 자유파인가 아니면 황제를 보위하는 보황당인가?
누가 스페인을 두려움 모르는 애국자로 일깨웠는가?
그것이 고통스럽든 코ㅐ락적이든 누가 세계로 하여금 구질서를 유지하는 동시에 신기원을 열도록 만들었는가?
누가 정치를 마음대로 주무르는가?
나폴레옹 대제가 용기의 그림자를 배가시켰을까?
아니다. 주인공은 유대인인 로스차일드 가와 그들의 동료이자 기독교도인 베어링 가 사람들이다.
– 바이런: 『돈 후안』
최근 200여 년의 역사를 가만히 살펴보면 로스차일드 가는 두 가지 큰 사건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건 다름 아닌 전쟁과 혁명이다. 전쟁이든 혁명이든 교전에 임하는 쌍방 모두 규모가 상당하고 조직적인 폭력 행동을 위해 필연적으로 대량의 자금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 닐 퍼거슨, 하버드 대학 역사학과 교수
로스차일드 가는 대단히 독특한 집안이다. 그들은 서로 쉬지 않고 논쟁을 벌인다. 그러나 단결할 때는 하나가 돼 세계를 상대로 싸운다.
– 영국 정치가 찰스 딜크, 1879년 3월
로스차일드 2
– 니얼 퍼거슨 / 박지니 역 / 21세기북스 / 2013.03.19
루트비히 뵈르네의 독설처럼, 로스차일드는 “귀족에게 자유를 음해할 힘을 주고, 인민에게는 폭정에 맞서 싸울 용기를 박탈하는 자”요, “자유, 애국심, 명예 그리고 모든 시민적 미덕을 자신의 제단에 희생시키는 공포의 대사제”였다.
바이런이 『돈 후안』에도 썼듯이, 로스차일드가는 “왕정주의자와 자유주의자 모두”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로스차일드가 “채권의 힘을 최고권으로 끌어올리고 과거에 토지가 갖고 있던 특권을 돈에 부여함으로써 토지의 우위를 무너뜨렸”으니 로베스피에르와 맞먹는 혁명가라고 쓰기도 했다.
하이네는 또 이런 인상적인 선언도 남겼다. “돈은 우리의 신이요, 로스차일드는 그의 선지자로다.”
상원의 귀족 의원들이 유대인 해방에 반대한 심사는 어떤 것이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왕의 삼촌인 컴벌랜드 공작(당시에는 하노버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가 이 주제를 놓고 쓴 편지들을 살펴보면 된다. 어느 정도 그는 “구세주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승인하는 것”을 “끔찍하다”고 여겼던 영국 국교회의 입장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느낀 불안은 세속적인 불안이기도 했다. 그는 “이 나라의 모든 부가 점차 유대인들, 제조업자들, 옥양목 직조인들의 손 안에 떨어질 것”이라 예견하며, 암셸이 프랑크푸르트에서 누리고 있는 지위가 유대인들의 사회적 허세를 극명히 보여 준다고 주장했다.
새프츠베리 백작은 (유대인 해방에 반대한 사람이었으므로 불편부당한 의견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마젠타(Magenta)전투(1859년) 직전에 라이오넬 로스차일드가 “거의 광분해 있었다”고 묘사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오스트리아에 롬바르디아를 뺏기는 것이 그에게는 철도와 채권 배당금을 잃는 일에 불과하다! …… 괴이하고 소름 끼치며 굴욕적이지만, 그도 그러려니와 신앙심 없는 유대인에게는 한 나라의 운명도 그저 장난일 뿐일 테니 말이다!”
바티칸과 로스차일드가의 관계는 1830년대 처음 시작될 때부터 늘 불가해한 인상을 주었다. 이 시기에 교황 비오 9세가 취했던 공격적일 만큼 반동적인 태도를 고려하면 그 관계는 무척 기이해 보였고, 파리 주재 교황 대사가 이런 조롱을 받은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명제(these)는 로스차일드를 화형에 처하는 것이요, 가설(hypothesis)은 그와 같이 저녁을 먹는 것이니라.” 그러나 금융계의 “유다”를 “가톨릭 금융 권력”으로 교체하기를 꿈꾸었던 랑그랑 뒤몽소 같은 인물들은 현실적으로 로스차일드 같은 경제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이 옛날 오를레앙파식의 농담으로 제임스 로스차일드와 그의 가족이 프랑스의 진짜 지배자들이라고 말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당대의 일기 작가 중 가장 심술궂은 공쿠르 형제는 구스타브의 결혼식에 모인 74명의 로스차일드가 사람들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렘브란트가 그린 시너고그에서 그들이 햇빛을 받아 황금 송아지처럼 빛나는 모습을 상상한다. 나는 그곳에 모인 남자들의 머리, 수백만 프랑의 광택을 띤, 은행권 종이처럼 희고 따분한 두상들을 본다. 은행 소굴의 축제 …… 세계를 다스리는 비천한 왕들. 오늘날 그들은 신문, 미술, 문단, 왕좌를 불문하고 모든 것에 탐을 내며 그 모든 것을 지배한다. 고리대금업자가 청년의 꿈을 할인해 그를 지배하듯, 나라의 철도를 할인해 국가와 제국을 통제한다. …… 이는 바빌론 유수가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붙잡힌 예루살렘 유수다.
공쿠르 형제에게 제임스는 “기괴망측한 인물 …… 가장 비열한자, 개구리를 닮은 끔찍한 얼굴에 눈에는 핏줄이 서 있고, 눈두덩은 조개 같고, 돈 주머니 같은 입은 군침을 흘리는, 황금으로 만든 사티로스 같은 자”였다. 그러나 페도처럼 제임스를 그의 ‘천연 환경'(즉, 그의 사무실)에서 지켜본 사람이면 그가 내뿜는 순전한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생각에 집중하는, 심지어는 지옥 같은 난리법석 속에서도 골몰할 수 있는 범상치 않은 능력이 있다. 가장 중요한 일과 가장 사소한 일을 동시에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기도 한다. 그의 아들 중 하나, 대개는 장남을 자신의 사무실에 앉혀 증권거래소에서 오는 직원들을 응대하도록 하고, 그러는 동안 자신은 같은 사무실 한구석에 어느 장관이나 대사와 옹송그려 앉아서는 수백, 수천만 프랑이 걸린 사업을 유쾌하게 논의하는 것이다. …… 이 금융의 천재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가공할 만한 능력을 지녔다. …… 이 타이탄은 …… 모든 편지를 읽고, 모든 급보를 받고, 새벽 5시부터 일에 매진하면서도 저녁에는 사교 활동에 참여할 시간을 내는 것이다. 그의 그 거대한 은행에서는 모든 일이 시계태엽처럼 돌아간다! 얼마나 탄복할 만한 질서인지! 얼마나 충직한 직원들인지!
1864년, 《시카고 트리뷴》은 열변을 토했다. “이제껏 남부 연합 채권을 사들인 벨몬트와 로스차일드가, 그리고 전체 유대인 족속을 부유하게 하기 위해 우리가 불명예스러운 평화를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아니면 그랜트 장군과 셔먼 장군이 포문으로 쟁취한 영예로운 평화를 받아들이겠는가?” 같은 해 10월 《뉴욕타임스》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몇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시카고[전당대회]에 참석했던 저 악명 높은 민주당 위원장은 실상 로스차일드가의 대리인이다. 그렇다. 저 위대한 민주당은 타락할 대로 타락해서 외국 유대인 은행가의 대리인을 수장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한 달 뒤에 있었던 선거 유세에서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어느 링컨 지지자가 야단스럽게 펼친 논조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로스차일드가의 대리인이 민주당 최고 위원이라니! (“동감이오!” 하는 외침과 환호성) …… 만약 매클렐런 씨가 당선된다면 그는 그야말로 일류 재무장관이 되겠소이다! (일동 웃음) 전 세계 그리스도교 국가들 가운데 로스차일드가의 앞발에, 독니에, 발톱에 재무부의 심장을 쑤셔 박히지 않은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 로스차일드가는 바로 여기에서도 똑같은 짓을 하려고 합니다. …… 그들과 제프 데이비스(Jeff Davis) 그리고 악마가 우리를 정복하려 하고 있습니다 (긴 갈채).
그러나 로스차일드가는 전쟁 발발을 개탄하면서도, 영국이든 프랑스든 타국의 개입에는 반대하며 전쟁 초반부터 중립적인 자세를 취했다. 1863년 프랑크푸르트에 주재해 있던 미국 총영사는 마이어 칼과 이야기를 나눈 뒤 《하퍼스 위클리》에 이렇게 전했다.
이곳 M. A. 로스차일드 운트 죄네는 노예제에 반대하고 연방을 지지합니다. 역시 이곳에 적을 둔 개종한 유대인인 에를랑거는 300만 파운드라는 막대한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지요. 로스차일드 남작은 노예제를 인정하는 정부에 돈을 댄 그의 행동을 전 독일이 질타하고 있으며, 에를랑거가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에서 감히 그런 채권을 발행했다는 사실에 반발 여론이 거세다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죄를 범한 것이 같은 신앙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은 배교자들이나 할 일이라는 거지요.
비스마르크는 나중에 이렇게 단언했다. “유대인들이 반드시 우위에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다른 여러 나라의 유감스러운 실상처럼 유대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일이 항상 불가피한 것도 아니다. 총리로서 내가 유대계 금융 실세들과 맺은 관계는 언제나 내가 아닌 그들이 도리를 다해야 하는 관계였다.”
당시 디즈레일리가 이 사태(1863년 폴란드 봉기)에 대해 내놓은 특유의 상상력 넘치는 해석은 그 이후로 지금까지 로스차일드 권력의 증거로 거듭 인용되었다. 7월 21일, 그는 브리지스 윌리엄스 여사(그를 숭배했던 중년의 여성 팬)에게 “폴란드의 질서를 회복하겠다는 구실로 유럽 한가운데서 벌어질 전쟁은 전면전이자 장기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올해 러시아에 하나, 이탈리아에 하나, 모두 두 건의 채권 계약을 한 로스차일드가는 …… 아주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석 달 뒤에도 비관적인 어조는 여전했다. “폴란드 문제는 러셀 경의 신비한 실수로 시체의 파편에서 탄생한 외교적인 프랑켄슈타인입니다. 작금의 세계 평화는 정치가들이 아니라 자본가들에 의해 유지되어 왔습니다. 지난 3개월간 그것은 비밀 결사단들과 유럽 백만장자들 간의 투쟁이었지요. 지금까지는 로스차일드가가 승자였습니다.”
제임스 로스차일드는 1867년 1월, 자녀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이런 자유주의적인 변화가 신용이나 나라에 크게 득이 될 거라고 믿는 것이 나로서는 쉽지 않구나. 그건 사실상 정권이 대단히 취약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징후일 뿐이다.” 그가 아들들에게 쓴 특기할 만한 폊니에서, 제임스는 실상 그의 정치적 유언이라 할 만한 논지를 폈다.
너희는 네 아비가 견해를 바꾼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전에 너희에게 스페인 문제에 대해 썼을 때는 자유주의 편에 섰다가, 또 프랑스를 두고서는 반 자유주의적인 논조로 이야기하니 말이다. 일단 바른말로 너희가 옳다고 해야 되겠다. 그러나 내 안에는 정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면이 있는 한편, 경제적인 면도 존재한단다. [한 나라의] 경제는 자유가 없으면 발전할 수 없지만, 자유가 과도하게 주어져도 발전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옛일을 돌이켜 보자. 루이 필리프가 집권하던 그 15년간 정부가 의원들의 자유로운 국회 연설과 언론의 완전한 자유를 허락했던 때를 말이다. 그래서 어찌 되었느냐? 정권은 무너지고 지금까지의 그 모든 동란과 혁명을 겪어야 했다. 불행히도 프랑스는 허영의 나라, 진정한 국익은 안중에도 없는 웅변가들이 잘 꾸민 연설로 의회에서 목청을 높이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간단한 기사를 출판할 권리, 회자되고 있는 문제에 관해 터놓고 말할 권리는 용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말하는 자유란 황제가 허용하려고 하는 자유와는 전혀 다르다. 솔직히 말해 그런 자유란 매우 심각하고 위험한 것이며, 그 때문에 우리는 결국 좋든 싫든 전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외부의 위협 때문이 아니라 과도한 자유가 너무 빨리, 너무 성급히 주어진 때문에 말이다.
페리에르를 본 빌헬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이만큼 출세할 수 없지. 오직 로스차일드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웨스턴 모닝 뉴스》는 이렇게 썼다. “로스차일드 경의 죽음은 전쟁도 퇴색 시키지 못할 일 대 사건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영국에서는 중요한 정책 결정이 있을 때마다 그 직전에는 ‘로스차일드 경이 어제 총리를 방문했다’는 짧지만 의미심장한 발표가 등장했다. 큰 결단이 임박했을 때, 막후의 인물들은 바로 그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달러
– 엘렌 H. 브라운 저 | 이재황 역 | 이른아침 | 2009.01.16
“오즈님은 위대한 마법사여서, 어떤 모습이든 원하시는 대로 나타날 수 있지. …… 하지만 산 사람들 가운데 진짜 오즈님이 누구고 언제 본래 모습으로 계시는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 『오즈의 마법사』, ‘성문지기’
나는 어떤 꼭두각시가 영국 군주 위에 자리 잡고, 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지배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영국의 통화를 지배하는 자가 대영제국을 지배하는 것이고, 나는 영국의 통화를 지배한다.
– 네이선 로스차일드
로스차일드가는 오랫동안 미국 금융 관련 법들을 만드는 데 물밑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입법 기록을 보면 그들이 옛 합중국은행의 실세였음이 드러난다.
– 구스타프 마이어스(Gustavus Myers), 『The History of the Great American Fortunes』
이건 절대적으로 확실한 얘기지만, 미국이 대등한 힘을 가진 연방들로 나뉜 것은 남북전쟁 훨씬 전에 유럽의 고위 금융 권력자들이 결정한 사항이었다. 이 은행가들은 미국이 한 블록, 한 나라로 유지되면 경제 금융상으로 독립하게 될 것을 우려했다. 그러면 그들의 유럽 및 세계에 대한 금융 지배가 흔들리는 것이다. 물론 금융 ‘핵심부’에서 로스차일드가의 목소리가 가장 컸다. 그들은 자급 능력이 있는 활기찬 공화국 대신 …… 금융업자들의 빚을 진 허약한 두 민주 정부로 바꿔 놓으면 엄청난 이득을 볼 기회가 생긴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밀사를 현장으로 보냈다. 노예제 문제를 이용해 연방을 두 쪽으로 갈라놓기 위해서였다. …… 북부와 남부의 분열은 불가피해졌다. 유럽 금융의 지배자들은 온 힘을 다 쏟아 부어 이를 이루려 했고, 그것을 자기들의 이익으로 돌리려 했다.
–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Pingback: 로스차일드 가문의 시대 (1866 ~ 1931) – 옐로우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