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 피렌체

 

지옥의 가장 암울한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를 읽고 책에 나오는 피렌체의 명소를 온라인으로 탐방해 보았다. 등장하는 예술작품도 같이. 책에 나오는 글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 베네치아 탐방 : http://yellow.kr/blog/?p=3429

※ 이스탄불 탐방 : http://yellow.kr/blog/?p=3446

 

 

– 구글 지도에서의 피렌체

 

 

– 1493년의 피렌체

 

 

자 출발 !

 


◎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 (La Mappa dell’Inferno)

뼈 속에서 튀어나온 그림은 인간의 고통을 주제로 한 암울한 분위기의 유화였다. 수천 명의 영혼이 제각기 지옥의 여러 단계에 갇혀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지하 세계는 지구의 단면도 형태로 묘사되었는데, 전체적으로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깔때기 모양의 구조였다. 지옥의 구덩이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고통의 참상이 점점 더해졌고, 각 단계마다 온갖 종류의 죄인들이 고통에 못이겨 몸부림치고 있었다.

랭던은 한눈에 그 그림을 알아보았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대작-<지옥의 지도(La Mappa dell’Inferno)>-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진정한 거장 가운데 한 사람인 산드로 보티첼리의 작품이었다. 지하 세계의 청사진을 정교하게 그려낸 <지옥의 지도>는 지금까지 창조된 사후 세계의 풍경 중에서도 가장 무시무시한 작품으로 꼽힌다. 요즘 사람들도 이 어둡고 끔찍하고 암울한 작품을 대하면 자신도 모르게 동작을 멈추게 마련이다. 보티첼리는 화려한 색상으로 생동감 넘치게 표현한 <봄>이나 <비너스의 탄생> 같은 작품들과 달리, 이 <지옥의 지도>만큼은 빨강과 세피아, 갈색으로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

보기만 해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그림인 것도 사실이지만 랭던을 더욱 심란하게 만드는 것은 이 그림의 기원이었다. 랭던은 이 무시무시한 그림의 밑바탕이 된 영감이 보티첼리 본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보티첼리보다도 200년을 앞서 살았던 누군가에게서 비롯된 영감이었다.

‘다른 사람에게서 영감을 받은 위대한 작품.’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는 사실 14세기에 등장한 한 문학작품에 바치는 헌사에 다름 아니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문학작품이자, 오늘날까지도 그 생명력이 고스란히 살아 있을 만큼 생생하고 선명한 지옥의 묘사.

바로 단테의 <인페르노>였다.

 

 


◎ 포르타 로마나 (Porta Romana)

피렌체는 한때 성벽으로 에워싸인 도시였다. 한때는 이 도시를 드나들기 위해, 1326년에 축조된 석조 성문 포르타 로마나를 통과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 있었다. 도시 외곽의 성벽은 대부분 수 세기 전에 파괴되었지만 포르타 로마나는 아직도 건재했고, 차량 행렬은 거대한 요새와도 같은 이 아치 밑의 터널을 통해 도시로 들어갔다.

성문은 15미터 높이의 벽돌 및 석조 구조물인데, 빗장이 달린 거대한 나무 문짝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서 차들이 드나든다. 이 성문 앞에서 여섯 개의 주요 도로가 만나 로터리를 이루고, 잔디를 심어놓은 분리대에는 머리에 커다란 꾸러미를 이고 도시를 떠나는 여인의 모습을 묘사한 피스톨레토의 조각 작품이 우뚝 서 있다.

 

 


◎ 보볼리 정원 (Boboli Gardens)

“피티 궁은 저쪽이에요.” 랭던은 이솔로토의 반대편인 동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가 가리킨 쪽에 서에서 동으로 이 정원을 가로지르는 중앙로, 비오톨로네가 뻗어 있었다. 어지간한 2차선 도로와 맞먹는 너비의 이 길 양편으로 400년 묵은 늘씬한 삼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랭던은 비오톨로네 입구의 빽빽한 산울타리를 가리켰다. 울창한 관목이 벽처럼 에워싼 가운데, 아치 모양의 조그만 입구가 뚫려 있었다. 그 입구 너머로 좁다란 오솔길이 눈길 닿는 곳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랭던은 비오톨로네와 평행선을 그리며 뻗어 있는 그 오솔길을 터널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양쪽에 늘어선 너도밤나무를 1600년대부터 길 안쪽으로 굽어지도록 세심하게 전지한 덕분에, 지금은 그 가지들이 머리 위에서 서로 얽혀 길 전체를 덮는 차양처럼 우거져 있었다. 이 오솔길의 이름이 ‘체르키아타’-‘원형의’ 또는 ‘고리 모양의’란 뜻이다-인 것도 나뭇가지로 이루어진 통로 천장이 원통, 즉 이탈리아로 체르키 모양이기 때문이었다.

시에나는 얼른 그 입구로 달려가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오솔길을 들여다보더니, 랭던을 돌아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훨씬 낫네요.”

시에나는 지체 없이 그 오솔길로 들어서서 나무들 사이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랭던은 옛날부터 이 체르키아타야말로 피렌체에서 가장 평화로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시에나가 그 어두컴컴한 오솔길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다시 한 번 제발 출구에 도달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산호초 동굴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그리스의 잠수부들이 떠올랐다.

랭던도 얼른 자기 나름의 짧은 기도를 읊조린 뒤, 서둘러 그녀의 뒤를 쫓았다.

 

 

물줄기가 6미터 넘게 공중으로 치솟았다.

랭던은 분수에서 솟구친 물줄기가 도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이제 목적지가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들은 막 체르키아타의 나뭇가지 터널을 빠져나와 조그만 잔디밭을 가로지른 끝에 울창한 황벽나무 숲으로 들어선 참이었다. 스톨도 로렌치의 넵튠 청동상이 세 갈래의 삼지창을 움켜쥐고 있는, 보볼리의 가장 유명한 분수대가 한눈에 바라다보였다. 현지 사람들이 무례하게도 ‘포크 분수’라고 부르는 이곳은 정원 전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볼거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피티 궁전 (Palazzo Pitti)

거리상으로는 아직 400미터 넘게 떨어져 있지만, 벌써부터 좌우로 길게 뻗은 피티 궁의 석조 외관이 풍경을 지배하고 있었다. 불룩한 석재를 거칠게 마감한 건물의 외관 자체가 강력한 권위를 내뿜는 가운데, 덧문이 달린 창과 아치 모양의 출입구가 연속적으로 반복되어 더욱 위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전통적인 궁전들은 고지대에 자리를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야 정원에 선 사람들이 올려다보는 각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피티 궁은 아르노 강가의 나지막한 계곡에 위치해 있어서 보볼리 정원에서 볼 때 궁전이 아래쪽으로 내려다보인다.

이것은 오히려 더욱 극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어느 건축가는 이 궁전이 자연 그 자체에 의해 만들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마치 산사태로 밀려 내려온 거대한 돌들이 더없이 우아한 바리케이드처럼 자연스럽게 쌓여 이 궁전의 벽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지대가 낮아서 방어에는 약점을 드러낼 수도 있지만, 피티 궁의 석조 구조물은 워낙 탄탄한 위용을 자랑하기 때문에 나폴레옹이 피렌체에 주둔할 당시 본거지로 사용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맙소사, 마음만 먹으면 지구상의 어떤 예술 작품도 손에 넣을 수 있었을 메디치 가문이 하필이면 저런 걸 선택했을까?’

그들 앞의 조각상은 커다란 거북 위에 두 다리를 벌리고 앉은 뚱뚱한 몸집의 난쟁이를 묘사한 것이었다. 난쟁이의 고환이 거북의 등껍질 위에 맞닿아 있고, 거북은 병에 걸린 것처럼 입에서 침을 흘리고 있었다.

“흉측하지요?” 랭던이 계속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브라치오 디 바르톨로예요. 유명한 궁정 난쟁이지요. 솔직히 말해서 저건 아까 우리가 지나온 거대한 욕조 속에 있어야 할 작품이에요.”

 

 

석굴의 입구 위로 단검 같은 종유석이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할 만큼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입구 안쪽에는 마치 돌이 녹아서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처럼 기묘한 풍경이 연출되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사람의 형상이 벽 속에서 군데군데 튀어나와 있었다. 시에나는 그 동굴의 모습에서 자신도 모르게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를 떠올렸다.

무슨 까닭인지 랭던은 너무나 태연한 모습으로 동굴의 입구를 향해 달려갔다. 조금 전에 그가 바티칸 시티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시에나는 교황청의 담벼락 안에 이토록 괴기스러운 동굴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시에나의 눈길은 동굴 입구 위쪽을 가로지르는 특이한 풍경에 고정되었다. 딱히 형체를 정의할 수 없는 돌들과 종유석이 제멋대로 어우러져 비스듬한 자세의 두 여인을 집어삼키는 형국이었는데, 여인들 사이에 여섯 개의 공이 박힌 방패-메디치 가의 유명한 문장-가 자리하고 있었다.

랭던은 갑자기 입구를 외면하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곳에 시에나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조그만 회색 문이 하나 달려 있었다. 풍파에 찌든 이 나무 문은 너무 초라해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고, 조경 장비나 그 밖의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창고 같은 인상을 주었다.

랭던이 서둘러 달려가는 것을 보니 어쩌면 그 문을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듯했지만, 알고 보니 그 문에는 놋쇠로 된 열쇠 구멍이 하나 뚫려 있을 뿐 아예 손잡이가 달려 있지 않았다. 안쪽에서만 열 수 있는 문인 모양이었다.

 

 

이 부온탈렌티 동굴-설계자인 베르나르도 부온탈렌티의 이름을 딴 것이다-은 피렌체에서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티 궁을 찾은 젊은 손님들을 위한 유령의 집과도 같은 이 동굴은 세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자연주의적인 환상과 한껏 과장된 고딕 양식이 혼합되어 대부분의 조각상들이 벽에 묻히거나 돌출된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메디치 시대에는 유난히 여름이 뜨거운 토스카나의 열기를 식히는 동시에 진짜 동굴과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동굴 안쪽의 벽에 물이 흘러내리도록 했다고 한다.

랭던과 시에나는 제일 넓은 첫 번째 방 한복판에 위치한 별 특징 없는 분수 뒤에 몸을 숨겼다. 주위에는 목동과 농부, 음악가, 짐승들, 심지어는 미켈란젤로의 네 죄수를 모방한 복제품에 이르는 다채로운 조각상들이 가득했는데, 다들 바위가 흘러내리는 벽에 갇혀 있기 싫어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는 느낌이었다. 천장에 뚫린 눈알 같은 둥그런 창으로 아침 햇살이 희미하게 스며 들어왔는데, 예전에는 거기에 물이 채워져 선홍색 잉어가 헤엄치는 커다란 유리 공이 얹혀 있었다.

 

 


◎ 바사리 통로 (Vasari Corridor)

일 코리도이오 바사리아노, 즉 바사리 통로는 조르조 바사리가 1564년 당시 메디치 가문의 통치자이던 대공(大公) 코시모 1세의 지시에 따라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시모 1세는 자신의 거주지인 피티 궁에서 집무실이 있는 아르노 강 반대편의 베키오 궁전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했다.

바티칸 시티의 그 유명한 ‘파세토’와 마찬가지로, 바사리 통로 역시 전형적인 비밀의 장막에 가려 있었다. 보볼리 정원의 동쪽 끝에서 옛 궁전의 심장부까지, 베키오 다리를 지나 우피치 미술관을 꾸불꾸불 가로지르는 이 통로는 길이가 거의 1킬로미터에 달한다.

요즘도 이 바사리 통로는 비밀스러운 피난처로 기능하고 있는데, 단지 그 주인공이 메디치 가의 귀족에서 진귀한 예술 작품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이 밀폐된 통로의 벽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피치 미술관에 자리를 잡지 못한 희대의 걸작들이 전시되어 있다.

 

 


◎ 베키오 궁전 (Palazzo Vecchio)

베키오 궁전은 거대한 체스판의 말을 연상케 하는 외관을 가졌다. 탄탄한 사각형 외관은 물론, 역시 사각형 구멍이 뚫린 총안을 거칠게 마감해 건물 전체가 마치 거대한 루크(체스 말의 하나로 성채 모양이며 장기의 차車에 해당함)처럼 보이는데, 위치 역시 시뇨리아 광장의 남동쪽 모퉁이를 지키고 있어 더욱 든든한 느낌을 준다.

다소 특이하게도 이 건물의 첨탑은 단 하나인데, 이것이 사각형 요새의 한복판에 우뚝 솟아 독특한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내고 있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피렌체 특유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탈리아 정부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로 설계된 이 궁전은 다분히 위압적이고 남성적인 일련의 조각상들로 방문객을 압도한다. 우선 아마나티의 <넵튠>이 벌거벗은 모습으로 네 마리의 해마 위에 우뚝 서 있는데, 이는 바다를 지배한 피렌체의 과거를 상징한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남성 누드로 꼽힐- 모조품이 궁전 입구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고, 그 옆에는 <헤라클레스>와 <카쿠스>가 버티고 있어 넵튠의 사티로스들까지 합치면 모두 열두 개가 넘는 남근이 그대로 노출된 채 이 궁전의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한때 500인의 방이 세계에서 가장 큰 방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 홀은 1494년 콘실리오 마조레-공화국 대평의회-의 회의장으로 건축되었는데, 참가 인원이 정확하게 500명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몇 년 뒤에는 코시모 1세의 명령에 따라 상당한 수준의 증개축이 이루어졌다. 당시 이탈리아 최고의 권력자이던 코시모 1세는 이 프로젝트의 감독자 겸 설계자로 조르조 바사리를 선택했다.

바사리는 남다른 공학적 재능을 살려 원래의 천장을 크게 높이고 사면의 벽에 광창(光窓)을 뚫어 자연광이 들어올 수 있도록 했는데, 덕분에 이 방은 피렌체 최고의 건축, 조각, 회화 작품을 소장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전시장으로 변모했다.

 

 

“‘케르카 트로바’에서 뭔가 짚이는 게 없어요?”

시에나는 어깨를 슬쩍 들었다 놓았다.

랭던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시에나도 모르는 게 있군.’ “이 문구는 정확하게 베키오 궁전에 있는 유명한 벽화를 가리키고 있어요. 500인의 방에 있는 조르조 바사리의 <마르시아노 전투>가 그겁니다. 바사리는 이 그림 윗부분에 잘 보이지도 않는 조그만 글자로 ‘케르카 트로바’라고 적어놓았어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론들이 분분하지만, 아직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

바사리는 약 30년 전, 베키오 궁전의 500인의 방에 있는 벽화 한쪽 구석에서 ‘케르카 트로바’라는 ‘비밀 메시지’가 발견되면서 다시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치열한 전투 장면 속에 파묻혀 거의 보이지도 않는 초록색 깃발 위에 이 조그만 글자들이 적혀 있다. 바사리가 왜 이 이상한 메시지를 자신의 벽화에 남겼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여전히 이론이 분분하지만, 이 벽의 3센티미터 뒤쪽에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프레스코화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후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단서를 남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

‘케르카 트로바’

“바사리의 작품이 어떤 거죠?” 시에나가 벽화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거의 다라고 보면 됩니다.” 이 홀의 증개축 때 바사리와 그의 조수들이 기존의 벽화에서부터 그 유명한 천장을 장식하는 서른아홉 개의 격자 패널까지, 홀 안의 거의 모든 것을 새로 칠했다는 것을 랭던은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 오늘 우리가 보러 온 건 바로 저 벽화예요.” 랭던은 오른쪽 끝의 벽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사리의 <마르시아노 전투>지요.”

폭 17미터에 높이는 3층 건물과 맞먹는 이 벽화는, 한마디로 거대한 작품이었다. 갈색과 초록이 섞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붉은 색조가 지배적인 이 그림에는 목가적인 언덕에서 군사 충돌을 일으킨 병사 말, 창과 깃발들이 격렬한 파노라마처럼 평쳐져 있었다.

“바사리, 바사리.” 시에나가 속삭였다. “저 그림 어딘가에 그의 비밀 메시지가 숨어 있는 거예요?”

랭던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사리가 ‘CERCA TROVA’라는 수수께끼의 메시지를 그려 놓은 초록색 깃발을 찾아보려고 눈을 가늘게 뜨고 벽화를 살폈다. “여기서 쌍안경 없이 육안으로 보긴 힘듭니다.” 랭던이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가운데 윗부분의 언덕 위에 자리한 두 채의 농가 밑을 잘 살피면 비스듬한 초록색 깃발이-.”

“보여요!” 시에나가 벽화의 우상단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스투디올로

유리문 뒤, 그러니까 500인의 방에서 ‘케르카 트로바’라는 문구가 숨겨진 곳과 정면으로 마주 보는 곳에 창문도 없는 조그만 방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바사리가 프란체스코 1세의 비밀 서재로 만든 직사각형의 이 방은 천장이 아치 모양으로 둥그스름하게 되어 있어 안에 들어가면 마치 커다란 보물 상자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방 안에는 온갖 아름다운 보물들이 가득했다. 서른 점도 넘는 진귀한 그림들이 벽과 천장을 빼곡히 장식하고 있어 빈 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카루스의 추락>…… <인생의 우화>…… <프로메테우스에게 눈부신 보석을 선물하는 자연>…… .

 

 

마르타는 이 젊은 여자의 고집이 상당히 이례적일 뿐 아니라 어떤면에서는 무례하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음.” 마르타가 설명을 이어갔다. “단테는 죽고 나서도 피렌체에 들어오는 것이 금지된 상태였기 때문에 라베나에 묻혔어요. 하지만 그의 연인 베아트리체가 피렌체에 묻혀 있고, 단테 본인도 피렌체를 무척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데스마스크를 여기로 가져온 건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는 거라고 볼 수 있죠.”

“그렇군요.” 시에나가 대답했다. “피렌체 중에서도 하필 이 궁전이 선택된 이유는요?”

“베키오 궁은 가장 오래된 피렌체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고, 단테 시대에도 이미 이 도시의 중심부였던 곳이에요. 사실 추방당한 단테가 피렌체의 성곽 바깥에 서 있는 장면을 그린 작품에서도 그 배경에 이 궁전의 탑이 보일 정도였죠. 이런저런 측면에서 우리는 단테의 데스마스크를 이곳에 안치하는 것이 곧 그분의 귀환을 의미한다고 믿고 있어요.”

……

“사람이 숨을 거두면 그 직후에 얼굴에다 올리브 기름을 바르지.”

랭던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 위에다 젖은 석고를 한 겹 입히는데, 이 때는 머리카락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목까지, 입과 코, 눈꺼풀 등을 모두 덮어야 해. 그 석고가 굳으면 쉽게 떨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석고를 붓는 틀로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거야. 이 두 번째 석고가 굳으면 고인의 얼굴을 완벽하게 복제한 마스크가 탄생하는 거고, 한동안 이런 관행은 권력자나 천재를 추모하기 위해 널리 확산되었어. 덕분에 단테, 셰익스피어, 볼테르, 타소, 키츠 같은 사람들이 모두 데스마스크를 남겼지.”

 

 

지도의방이라 불리는 곳. 따스한 질감의 참나무 징두리 벽판과 나무로 된 격자 천장으로 꾸며져 있어, 삭막한 석재와 석고로 장식된 베키오 궁전의 다른 곳들과 비교하면 딴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을 준다. 원래는 휴대품 보관소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널따란 공간은 한때 대공의 휴대 가능한 자산을 보관하던 수많은 벽장과 캐비닛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지금은 가죽에 수작업으로 그린 53점의 지도가 이 방의 모든 벽을 장식한 채 1550년대 사람들이 알고 있던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방에 소장된 지도들도 인류의 소중한 유산임에 분명하지만, 가장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작품은 뭐니뭐니 해도 한복판에 버티고 서 있는 거대한 지구본이었다. 흔히 ‘마파 문디(Mappa Mundi)’라 불리는 1.8미터 높이의 이 지구본은 당시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큰 회전 지구본이었으며, 손가락만 갖다 대도 돌아갈 만큼 부드럽게 움직였다고 전해진다. 요즘은 수많은 전시실을 거쳐 온 관광객들이 막다른 곳에 다다라 이 지구본을 끼고 한 바퀴 돈 뒤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가는 반환점 역활을 하기도 한다.

 

 

‘소피타(La Soffitta).’ 랭던의 머릿속에 그 단어가 스쳤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락.’

공기에서부터 가벼운 곰팡이 냄새와 함께 오랜 세월의 무게가 물씬 느껴졌다. 수백 년의 세월을 두고 생긴 석고의 먼지들이 너무나 미세하고 가벼워 밑으로 가라앉는 대신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이따금 판자가 삐걱거리는 얕은 신음 소리가 들렸고, 그래서 그런지 마치 살아 있는 거대한 짐승의 배 속으로 기어 들어온 느낌이었다.

랭던은 널따란 대들보 위에 안전하게 발을 내딛고 나서야 캄캄한 어둠 속 여기저기를 손전등 불빛으로 찔러보았다.

앞쪽으로 500인의 방 천장 위의 보이지 않는 골격을 구성하는 기둥과 들보 따위의 구조물들이 미로처럼 얽혀 곳곳에 삼각형과 사각형의 기하학적 무늬를 이루었고, 그것들이 서로 교차하며 이루어진 터널이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뻗어 있었다.

 

 


◎ 단테 교회 (Santa Margherita de’ Cerchi)

흔히 단테 교회로 알려진 키에사 디 산타 마르게리타 데이 체르키(산타 마르게리타 교회)는 교회라기보다는 예배당에 가까운 곳이다. 방 한 칸짜리 이 조그만 예배당은 단테를 경배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인기가 높은 곳인데, 이는 이곳에서 위대한 시인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사건 두 가지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단테가 아홉 살의 나이에 첫눈에 반한 베아트리체 포르티나리를 처음으로 만난 곳이 바로 이 교회였다. 그 이후로 죽을 때까지, 단테는 이 여인에 대한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가슴 아파했다. 베아트리체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스물넷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른 뒤, 단테가 젬마 도나티라는 여인과 결혼식을 올린 곳도 바로 이 교회였다. 위대한 작가이자 시인인 보카치오가 남긴 글에 의하면, 이 여인과 단테는 썩 잘 어울리는 배필이 아니었다고 한다.

……

‘프레스토 가’라는 이름이 붙은 더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 랭던은 다양한 모습을 한 주위의 건물 입구들을 훑어보았다. 단테 교회는 워낙 건물이 작고 별다른 장식이 없을 뿐 아니라 다른 두 채의 건물 사이에 쏙 끼어 있는 모양새라 입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무심코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지나쳐버리기 일쑤였다.

 

 


◎ 피렌체 두오모 /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Florence Cathedral)

광장의 남쪽 가장자리에 다다른 랭던과 시에나는 초록색과 분홍색, 흰색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성당의 외관과 마주쳤다. 건물 자체가 품고 있는 예술성도 예술성이지만, 건물의 폭 역시 워싱턴 기념탑을 옆으로 눕혀놓은 것과 맞먹을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례적이라 할 만큼 화려한 색상의 조합을 선택해 단색의 석조 건물들이 갖는 전통미를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의 구조 자체는 지극히 고전적이고 튼튼한 내구성을 자랑하는 전형적인 고딕 양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랭던은 솔직히 처음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이 건물이 지나치게 선정적이지 않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뒤로 여러 차례 이탈리아를 찾을 때마다 몇 시간씩 이 건물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보면 볼수록 그 미학적 영감에 매료되어 지금은 그 눈부신 아름다움을 한껏 찬양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일 두오모 – 공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는 이그나치오 부소니에게 잘 어울리는 애칭을 선사했을 뿐만 아니라, 피렌체의 영적 중심지이자 수많은 드라마와 음모의 중앙 무대로서 여러 세기에 걸쳐 남다른 명성을 쌓아왔다. 이 건물의 파란만장한 과거는 돔 안쪽에 그려진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바사리의 프레스코화 <최후의 심판>을 둘러싼 논란에서부터…… 돔 자체를 완공할 건축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치열한 경쟁까지를 두루 아우르고 있었다.

결국 당시만 해도 세계 최대의 규모로 알려진 그 대역사를 떠맡아 돔을 완성할 책임자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선택되었고, 한 점의 조각 작품으로 변신한 이 브루넬레스키는 지금도 카노니치 궁전 앞에 앉아 자신의 걸작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

 

 

저만치 우뚝 솟은 종루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성당을 구성하는 세 개의 구조물 가운데 두 번째 건물이었다. 흔히 조토의 종탑이라 불리는 이 구조물은 자신의 소속이 바로 옆에 위치한 대성당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대성당과 똑같은 분홍색, 초록색, 흰색 석재로 장식된 이 사각형 첨탑은 거의 90미터에 달하는 까마득한 높이를 자랑했다. 랭던은 이 갸름한 구조물을 볼 때마다 온갖 악천후와 지진에도 불구하고, 꼭대기에 9톤이 넘는 커다란 종을 품은 채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딘 것이 정말 놀랍다고 생각하곤 했다.

 

 

이제 슬라이드에는 랭던이 조금 전에 보여 주었던 그림이 다시 등장했다. 빨간 옷을 입은 단테가 피렌체 성 밖에 서 있는 모습을 그린, 지금은 두오모에 소장되어 있는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의 그림이었다. “자세히 보시면…… 저 별들이 보일 겁니다.”

랭던은 단테의 머리 위에 드리운 하늘의 별들을 가리켰다. “보시다시피 하늘에는 지구를 둘러싼 아홉 개의 동심원이 그려져 있습니다. 아홉 층으로 이루어진 이 천국의 구조는 지옥의 아홉 고리와 균형을 맞추기 위한 장치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 9라는 숫자는 단테가 집요하게 추구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기도 합니다.”

……

랭던은 미켈리노의 그림을 가리켰다. 단테의 머리 너머 지평선 위에, 원뿔 모양의 산 하나가 하늘로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한 가닥 오솔길이 여러 차례-정확하게는 아홉 번- 산을 휘감으며 꼭대기로 이어져 있었다. 벌거벗은 군상들이 다양한 참회의 과정을 밟으며 힘겹게 그 오솔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바로, 연옥이라는 산입니다.” 랭던이 말했다. “안타깝게도, 지옥의 나락에서 천국의 영광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아홉 구비의 이 험한 오솔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이 오솔길을 오르는 참회의 영혼들이 보이실 겁니다. 그들 각자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질투의 죄를 지은 자는 남의 것을 탐내지 못하도록 눈이 꿰매진 채 올라가야 합니다. 교만한 자는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겸손한 자세를 취하도록 등에 커다란 돌을 지고 올라가야 합니다. 탐식한 자는 마실 것과 먹을 것 없이 이 산을 올라야 하니 극심한 허기로 고통받을 것입니다. 욕정에 눈이 먼 자는 자신의 열정을 정화할 수 있도록 뜨거운 불길을 헤치고 올라가야 합니다.” 랭던은 잠시 숨을 돌린 뒤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 산을 오르며 자신의 죄를 씻을 수 있는 영광을 허락받기 전에, 반드시 이 인물을 거쳐야 합니다.”

랭던이 스위치를 누르자, 슬라이드에 미켈리노의 그림에서 특정한 부분이 크게 확대되었다. 연옥의 산 입구,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는 날개 달린 천사의 모습이었다. 천사의 발밑에는 회개하는 죄인들이 길게 줄을 지은 채 올라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천사가 기다란 칼을 휘둘러 제일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을 찌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혹시 이 천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시는 분 있습니까?” 랭던이 물었다.

“죄인의 머리를 칼로 찌르고 있는 것 아닙니까?” 누군가의 목소리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찌르는 겁니까?”

랭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또 다른 의견 없어요?”

청중석 뒤쪽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이마에 뭔가를 쓰고 있습니다.”

랭던은 미소를 지었다. “저 뒷자리에 단테를 잘 아는 분이 계신 모양이네요.” 랭던은 다시 그림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얼핏 보기에는 천사가 저 불쌍한 사람의 이마를 칼로 찌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테의 글에 의하면, 연옥을 지키는 천사는 칼을 이용해 이 산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의 이마에 무언가를 적어 넣는다고 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무엇을 적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랭던은 잠시 청중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신기하게도…… 천사는 똑같은 글자를 일곱 번 되풀이해서 적고 있어요. 천사가 단테의 이마에 일곱 번 적어 넣은 글자가 뭔지 아시는 분 있습니까?”

“P!” 누군가가 대답했다.

랭던은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맞습니다. P라는 글자입니다. 이 P는 ‘죄악’을 뜻하는 라틴어, ‘페카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글자를 일곱 번 되풀이해서 적었다는 것은 셉템 페카타 모르탈리아(Septem Peccata Mortalia), 즉-.”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죄악!” 누군가가 소리쳤다.

“바로 그겁니다. 각 단계의 연옥을 통과해야만 그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한 단계를 올라갈 때마다 천사가 이마에서 P를 하나씩 지워주고, 이렇게 해서 꼭대기에 다다르게 되면 일곱 개의 P가 모두 지워져 마침내 여러분의 영혼은 모든 죄를 씻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랭던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덧붙였다. “이 산이 연옥(연옥을 뜻하는 ‘푸르가토리purgatory’라는 단어에는 ‘영혼의 정화’라는 뜻도 있다)이라고 불리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지요.”

 

 


◎ 산 조반니 세례당 (San Giovanni Battista Firenze)

랭던과 시에나는 조토의 종탑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어 대성당 정면의 광장을 가로 질렀다. 그 부근에 제일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어서, 다들 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나 비디오카메라를 치켜들고 화려한 대성당의 정면을 찍느라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랭던은, 막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 그보다 훨씬 더 작은 건물에 시선을 고정하고 그 웅장한 대성당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성당의 정문 바로 맞은편에 마지막 세 번째 부속 건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랭던이 제일 좋아하는 건물이기도 했다.

산 조반니 세례당.

이 세례당은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다채로운 색상의 석재와 줄무늬 벽기둥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완벽한 팔각을 이루는 특이한 형태로 차별성을 갖는다. 혹자는 층마다 크림을 끼운 케이크와 비슷한 생김새라고 평가하기도 하는 이 팔각형 건물은 3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지붕은 흰색이다.

랭던은 이 팔각형 형태가 미적인 측면과는 관계가 없는 대신, 나름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기독교에서 8이라는 숫자는 재탄생과 재창조를 의미한다. 따라서 팔각형은 엿새에 걸쳐 하늘과 땅을 만든 창조주가 하루를 쉬고 여덟째 날에 세례를 통해 기독교인들을 ‘재탄생’ 혹은 ‘재창조’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시각적 상징인 셈이다. 세계 어디나 세례당의 형태가 팔각형인 데는 이런 이유가 숨어 있다.

랭던은 이 세례당이야말로 피렌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라고 생각하는 쪽이었지만, 그것이 자리한 위치에 대해서만큼은 조금 부당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산 조반니 세례당은 다른 어느 곳에 가져다놓아도 모든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외관을 가지고 있지만, 하필 그 웅장한 두오모 대성당과 조토의 종탑이라는 형제들의 그림자에 가려 땅꼬마 취급을 당하는 것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

랭던은 시에나와 함께 인파를 뚫고 걸음을 옮기면서도 시선만은 여전히 세례당에 고정하고 있었다. 시에나의 움직임이 어찌나 민첩한지, 랭던은 그녀를 따라가기 위해 거의 뜀박질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아직 거리가 꽤 먼데도 랭던의 눈에는 햇살에 반짝이는 이 세례당의 거대한 정문이 환히 보였다.

4.5미터 높이의 금박 입힌 이 청동 문을 완성하기 위해, 로렌초 기베르티는 20년이 넘는 세월을 매달렸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섬세하게 새겨 넣은 이 문은 조르조 바사리가 ‘어느 모로 보나 한 치의 허점도 찾아볼 수 없고…… 지금까지 창조된 모든 예술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이 문의 별명으로 전해 내려오는 결정적인 증언을 남긴 사람은 바로 미켈란젤로였다. 미켈란젤로는 이 문이 ‘천국의 문’으로서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고 극찬했다.

 

 

‘청동에 새긴 성경.’ 랭던은 눈앞에 버티고 선 아름다운 문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다.

기베르티의 눈부신 <천국의 문>은 각각 구약에 나오는 중요한 장면들을 묘사한 열 개의 정사각형 패널로 이루어져 있다. 에덴동산과 모세에서부터 솔로몬 왕의 신전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한 줄에 다섯 개씩, 두 줄의 패널을 장식한다.

보티첼리에서부터 현대의 비평가에 이르는 수많은 예술가와 미술사가들 사이에서 열 개 가운데 어떤 패널이 가장 뛰어난가를 놓고 몇 세기에 걸친 일종의 인기투표가 벌어지기도 했다. 우승은 왼쪽 줄 가운데 패널을 장식한 야곱과 에서가 차지했는데, 그 이유로는 여기에 사용된 예술적 기법이 아주 다양하다는 점이 꼽혔다. 그러나 랭던이 보기에 그 진짜 이유는 기베르티가 바로 이 패널에 자신의 서명을 남겼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었다.

……

 

 

전설에 의하면, 산 조반니 세례당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위쪽을 쳐다보지 않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랭던은 이미 여러 번 이곳을 다녀갔음에도 불구하고, 신비로운 인력을 느끼며 천천히 시선을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머리 위에 높게 걸린 세례당의 팔각형 둥근 천장이 한쪽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25미터 이상 펼쳐져 있었고, 거기에서 마치 불붙은 석탄 처럼 반짝거리는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 반짝이는 황금색 표면에, 여섯 개의 동심원 구조로 셩경의 여러 장면을 묘사한 수백만 개의 스말티 타일-규사와 유약으로 구운 뒤 손으로 쪼개 회칠을 하지 않고 만든 모자이크 조각-에서 오는 불균등한 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실내 상단부의 이 화려한 드라마를 더욱 돋보이게 하려는 듯, 천장 한복판에 뚫린 오쿨루스- 로마 판테온의 오쿨루스(‘눈’을 뜻하는 라틴어. 돔의 천장이나 벽의 원형 창문-옮긴이)와 아주 흡사하다-에서 자연광이 들어와 어두운 실내로 내리꽂혔다. 여기에 더하여 높은 벽에 깊이 박힌 작은 창문들에서 쏟아지는 빛줄기는 단단하게 뭉쳐서 마치 시시각각 다른 각도로 천장을 떠받치는 견고한 기둥처럼 보였다.

랭던은 시에나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서면서 전설적인 천장의 모자이크를 바라보았다. 《신곡》에 묘사된 것과 아주 흡사한 천국과 지옥이 겹겹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단테 알리기에리도 어렸을 때 이 모자이크를 보았다.’ 랭던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천장에서 영감을 받았겠지.’

랭던의 시선이 모자이크의 한복판에 고정되었다. 중앙 제단 바로 위로 8.2미터에 달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받은 자와 저주받은 자들을 굽어보는 권좌에 앉아 있었다.

예수의 오른쪽에는 영생이라는 선물을 받은 의인들이 자리했다.

그러나 그 왼쪽에는 죄인들이 넋 나간 표정으로 꼬챙이에 꿰인 채 온갖 종류의 괴물들에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고문을 감독하는 자는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로 묘사된 거대한 사탄의 모자이크였다. 랭던은 그 사탄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700여 년 전의 어린 단테 알리기에리도 바로 이 사탄을 두려운 마음으로 올려다보며 지옥의 마지막 고리를 머릿속에 그렸을 터였다.

천장의 모자이크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은 뿔 달린 마귀가 사람을 머리부터 집어삼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잡아먹히는 사람의 다리가 바둥거리는 모습은 단테의 말레보제에 묘사된, 절반쯤 거꾸로 땅에 묻힌 죄인들의 모습과 흡사했다.

‘롬페라도르 델 돌로로소 레뇨.’ 랭던은 단테의 텍스트를 떠올렸다. ‘그 고통스러운 왕국의 황제.’

사탄의 귀에서 꿈틀거리며 기어 나오는 두 마리의 거대한 뱀 역시 죄인들을 삼키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마치 사탄의 머리가 셋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단테가 <인페르노>의 마지막 곡에서 묘사한 사탄과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랭던은 기억을 더듬어 단테가 본 환영을 최대한 떠올려보았다.

‘머리에는 얼굴이 세 개인데…… 세 개의 턱에서 피거품이 뿜어 나오고…… 세 개의 입은 맷돌처럼 한 번에 세 명의 죄인을 갈아버렸다…….’

랭던은 사탄의 사악함이 삼중으로 겹쳐진다는 것이 갖는 상징적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래야 하느님의 삼위일체와 완벽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탓이었다.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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