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 베네치아 (베니스)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를 읽고 이번에는 베네치아를 온라인으로 탐방해 보았다. 사진 밑의 글은 책에 나오는 글을 그대로 인용하였다.

 

※ 피렌체 탐방 : http://yellow.kr/blog/?p=3391

※ 이스탄불 탐방 : http://yellow.kr/blog/?p=3446

 

지옥의 가장 암울한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 구글 지도에서의 베네치아

 


◎ 산타 루치아 역 (Stanzione di Venizia Santa Lucia)

베네치아의 산타 루치아 기차역은 회색 벽돌과 콘크리트로 지어진 야트막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다. 현대적인 미니멀리즘 스타일로 설계된 이 건물의 외관에는 이탈리아 국영철도(Ferrovie dello Stato)를 상징하는 날렵한 모양의 ‘FS’라는 심벌 외에는 간판이나 표지판이 전혀 없어 더욱 우아한 느낌을 준다.

역이 대운하의 서쪽 끝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베네치아에 도착한 승객들은 역에서 한 발만 빠져나오면 베네치아 특유의 광경과 냄새와 소리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랭던의 경우, 언제나 베네치아에서 제일 먼저 그의 감각을 사로잡는 것은 소금기가 물씬 느껴지는 공기였다. 역 앞의 노점에서 파는 하얀 피자 냄새가 양념처럼 섞인 깨끗한 바닷바람이 그를 맞아주었다. 오늘은 마침 동쪽에서 바람이 불어와, 대운하에서 시동을 건 채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 수상 택시의 행렬에서 뿜어 나오는 시큼한 경유 냄새도 섞여 있었다. 택시와 곤돌라, 바포레토와 자가용 모터보트의 주인들이 활기차게 손을 흔들며 관광객들을 유혹했다.

‘물길도 혼잡스럽기는 마찬가지군.’ 랭던은 대운하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선박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보스턴에서라면 짜증스럽기만 할 교통 정체가 이곳 베네치아에서는 아주 색다른 풍경으로 다가왔다.

 

 


◎ 산 시메오네 피콜로 성당 (S. Simeone Piccolo)

운하 너머로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거리에 있는 산 시메오네 피콜로 성당의 녹청색 돔이 오후의 하늘에 걸려 있었다. 유럽 전역을 통틀어 건축의 절충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교회가 바로 이곳이었다. 이례적이라 할 만큼 가파른 돔과 원형의 성소는 비잔틴 양식에 포함되지만, 기둥이 달린 대리석 프로나오스(고대의 신전 건축에서 볼 수 있는 성소 앞의 문간방)는 로마의 판테온으로 대변되는 고전 그리스 양식을 본뜬 것이었다. 정문 위에는 순교한 성인들의 모습을 그린 섬세한 대리석 부조의 박공이 얹혀 있었다.

 

 


◎ 산 제르미아 성당 (San Geremia)

불과 몇 초 만에 혼잡스러운 산타 루치아 역 앞을 빠져나온 마우리치오는 대운하를 따라 동쪽으로 배를 몰았다. 우아한 스칼치 다리 밑을 지날 때는 근처의 둑 위에 늘어선 레스토랑에서 새 나오는 이 도시의 특산물, 오징어 먹물 요리 특유의 달콤한 향내가 느껴졌다. 운하의 만곡부를 돌아 나오자, 거대한 산 제레미아 성당의 돔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타 루치아.” 랭던은 성당의 측면에 새겨진 성인의 이름을 나직이 읊조려 보았다. “장님의 뼈.”

“뭐라고요?” 시에나는 랭던이 수수께끼의 시에 대해 뭔가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 것인가 하는 기대를 품고 그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랭던이 대답했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요. 별것 아니에요.” 그는 성당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글씨 보이지요? 산타 루치아가 저기 묻혀 있어요. 가끔 성인화-기독교 성인들의 모습을 그린 미술 작품-에 대해 강의를 하는데, 갑자기 산타 루치아가 장님들의 수호성인이라는 사실이 생각나서요.”

“시(네), 산타 루치아!” 마우리치오가 기다렸다는 듯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님들의 성인! 거기에 얽힌 이야기도 알아요?” 청년이 고개를 돌려 랭던 일행을 바라보며 요란한 엔진음을 이길 만큼 큰 소리로 말했다. “루치아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남자들이 그녀를 보기만 하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어요. 그래서 루치아는 하느님 앞에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눈을 뽑아버렸지요.”

시에나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 나왔다. “대단하네요.”

“그런 희생의 대가로 하느님은 루치아에게 더욱 더 아름다운 눈을 선사했어요!” 마우리치오가 말을 이었다.

시에나는 랭던을 돌아보며 속삭였다. “설마,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건 알고 그랬겠죠?”

“신의 역사는 아주 신비로울 때가 많아요.” 랭던은 스무 명도 넘는 유럽의 대가들이 작품 속에 남긴 산타 루치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나같이 자신의 눈알을 쟁반에 담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산타 루치아에 얽힌 이야기는 수많은 형태로 전해 내려오지만, 한결같은 공통점은 루치아가 욕정을 불러일으키는 자신의 눈알을 뽑아 쟁반에 담고는 고집스러운 구혼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다. “여기, 그대가 그토록 갈망했던 것을 가지세요. 부디 간구하오니, 나머지는 제발 그냥 내버려 두세요!” 묘하게도, 루치아의 자해를 유도한 것은 바로 성경이었다. 루치아라는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그리스도의 유명한 훈계가 따라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내 버려라.”(마태복음 18:9)

 

 


◎ 산 마르코 광장 (San Marco Piazza)

베네치아의 대운하 남단에 자리한 산 마르코 광장은 수로가 바다와 합쳐지는 곳이다.

……

눈을 들어 전방의 뭍을 바라보니, 나무가 울창한 조그만 공원이 물가에 맞닿아 있었다. 나뭇가지 위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산 마르코의 붉은 종탑이 우뚝 솟아 있고, 그 꼭대기에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아찔한 90미터 높이에서 지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침하 현상 때문에 고층 건물이 없는 도시에서, 산 마르코의 종탑은 미로처럼 얽힌 운하와 골목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길잡이 봉화와도 같은 역활을 했다. 그 종탑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고개만 들면 산 마르코 광장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듯했다. 랭던은 1902년에 이 거대한 종탑이 무너졌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엄청난 양의 잔해가 산 마르코 광장을 덮쳤는데, 놀랍게도 유일한 사망자는 고양이 한 마리뿐이었다고 한다.

……

이 널따란 산 마르코 광장은 유럽의 다른 광장들과는 달리 L자 모양의 구조를 하고 있었다. 흔히 피아체타라고 불리는 L자의 짧은 다리 쪽은 산 마르코 대성당이 있는 바다를 향해 뻗어 있었다. 거기서 왼쪽으로 90도를 꺾어지면 L자의 긴 다리가 나오는데, 이 광장은 대성당과 코레르 박물관을 연결하는 부위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광장은 직사각형이 아니라 끝부분의 폭이 좁은 사다리꼴을 하고 있다. 덕분에 광장은 실제보다 훨씬 길어 보이고, 그 같은 효과는 15세기 노점들의 경계선에 맞춰 만들어진 바닥의 격자 모양 타일과 맞물려 더욱 극대화된다.

랭던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L자의 두 다리가 만나는 지점으로 다가가니, 정면으로 산 마르코 시계탑의 파란 숫자판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화 <007 문레이커>에서 제임스 본드가 악당을 던져버린 바로 그 천문 시계였다.

 

 


◎ 두칼레 궁전 (Palazzo Ducale)

보트가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하자, 오른쪽에 우뚝 버티고 선 총독 궁전이 해안선을 압도하고 있었다.

베네치아 고딕 건축의 완벽한 전형이라 할 이 궁전은 잘 절제된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프랑스나 영국의 궁전에서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크고 작은 탑이 전혀 없는 대신, 거대한 직사각형 각기둥 형태의 이 건물은 총독이 거느리는 수많은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최대한의 실내 면적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설계되었다.

바다 쪽에서 바라본 이 궁전의 거대한 흰색 석회석 구조는 주랑 현관과 기둥, 회랑과 사엽(四葉) 장식 등을 세밀하게 배치하지 않았더라면 지나치게 위압적인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건물 외관을 가로지르는 분홍색 석회석의 기하학적인 무늬는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을 연상케 했다.

 

 


◎ 탄식의 다리 (Bridge of Sighs)

“일 폰테 데이 소스피리.” 시에나가 대답했다. “베네치아에서 제일 유명한 다리 가운데 하나죠.”

랭던도 고개를 내밀고 복잡한 수로 너머 두 채의 건물 사이에 아치 모양으로 걸린 아름다운 터널을 바라보았다. ‘탄식의 다리다.’ 랭던은 어렸을 때 제일 좋아하던 영화 <리틀 로맨스>를 떠올렸다. 젊은 연인이 산 마르코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해 질 녘에 이 다리 밑에서 키스를 하면 영원히 사랑이 깨지지 않는다는 전설에 바탕을 둔 영화였다. 그 영화에서 경험한 로맨틱한 감정은 랭던의 뇌리에 깊숙이 각인되었다. 물론 그 영화에 당시 열네 살이던 신인 배우 다이앤 레인이 나왔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를 보는 순간 한 눈에 반해버린 사춘기의 랭던은…… 지금까지도 그녀에 대한 연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세월이 흐른 뒤 랭던은 탄식의 다리라는 이름이 사랑의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절망의 한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다리는 총독 궁전과 감옥을 연결하는 통로이기도 했는데, 좁은 운하를 따라 이어진 감옥의 쇠창살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다 죽어가는 죄수들의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아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었다.

랭던도 그 감옥을 둘러 본 적이 있었다. 종종 물이 범람하던 물가의 감방보다는 꼭대기 층의 감방이 더 큰 공포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뜻밖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지붕이 납으로 만든 타일로 덮여 있어, ‘피옴비’라는 이름이 붙은 그 감방은 여름에는 쪄 죽을 듯이 덥고 겨울에는 얼어 죽을 듯이 춥기 때문이었다. 색마로 유명한 카사노바도 이 피옴비 출신이다. 종교 재판소에 의해 간통 및 간첩 혐의로 투옥된 카사노바는 이 감방에서 15개월을 버티다가 결국 간수를 유혹해 탈출에 성공했다.

 

 


◎ 산 마르코 광장의 두 개의 기둥

 

두 개의 기둥 가운데 하나의 꼭대기에는 자신이 물리친 전설적인 용 앞에서 자랑스럽게 포즈를 취한 산 테오도레의 조각상이 얹혀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랭던의 눈에는 용이 아니라 악어 같았다.

두 번째 기둥의 꼭대기는 자타가 공인하는 베네치아의 상징, 날개 달린 사자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는 어디를 둘러봐도 ‘나의 전도사 마르코여, 그대에게 평화가 있기를(Pax tibi Marce, evangelista meus)’ 이라는 라틴어가 새겨진 책을 밟고 선, 날개 달린 사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산 마르코가 베네치아에 도착했을 때 어떤 천사가 언젠가 그의 시신이 이곳에서 영면할 것임을 예언하며 그 말을 했다고 한다. 출처가 극히 의심스러운 이 전설은 훗날 베네치아 사람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산 마르코의 유골을 약탈해 이 곳 산 마르코 대성당에 안치하는 명분으로 활용되었다. 덕분에 오늘날에도 이 날개 달린 사자는 베네치아의 상징으로서 사방에 널려 있다시피 하다.

 

 


◎ 산 마르코 대성당 (Basilica San Marco)

랭던은 시에나와 페리스가 금방 뒤따라올 거라고 믿고 눈앞에 버티고 선 대성당의 정문을 바라보았다. 이따금 ‘출입구가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울 정도다’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 기둥과 아치, 육중한 청동 문을 거느린 입구가 자그마치 다섯 개나 건물의 아랫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유럽 최고의 비잔틴 양식 건축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산 마르코 대성당은 부드럽고 변덕스러운 인상을 준다. 잘 절제된 노트르담이나 샤르트르 대성당의 회색 첨탑과는 대조적으로, 이 산마르코는 상당히 위압적이면서도 세속적인 느낌이 강하다. 높이보다 폭이 더 넓고 꼭대기에 다섯 개의 하얀 돔이 얹혀 있어서, 몇몇 안내 책자는 이 성당을 머랭 얹은 웨딩 케이크에 비유하기도 한다.

 

건물 한복판의 제일 높은 곳에서는 산 마르코의 늘씬한 조각상이 자신의 이름을 딴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의 발은 밤하늘을 상징하는 암청색 바탕에 노란 별들이 그려진 아치 위에 얹혀 있다. 이 현란한 배경 앞에 베네치아의 마스코트라 할 황금빛 날개 달린 사자가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다.

 

그러나 정작 산 마르코가 자랑하는 최고의 보물은 이 황금 사자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것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이는 거대한 구리 종마 네 필이었다.

‘산 마르코의 말들이다.’

당장이라도 광장으로 뛰쳐 내려올 것만 같은 이 네마리의 말은-베니스가 가진 다른 많은 보물들과 마찬가지로- 십자군 원정 때 콘스탄티노플에서 약탈해 온 것이었다.

……

구리로 된 이 네 필의 말 조각상은 4세기경 키오스 섬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느 그리스 조각가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이후 테오도시우스 2세가 콘스탄티노플로 가져와 히포드롬에 전시했다. 그러다가 제4차 십자군 원정 때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베네치아의 총독이 이 소중한 조각상을 자신의 도시로 옮겨 가라고 지시했는데, 당시만 해도 이 조각품의 엄청난 무게와 크기 때문에 배로 그 먼 거리를 운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한다. 곡절 끝에 이 말들은 결국 1254년 베네치아에 도착해 산 마르코 대성당에 설치되었다.

그로부터 거의 500년이 지난 1797년, 이번에는 베네치아를 정복한 나폴레옹이 이 조각품에 눈독을 들였다. 말들은 파리로 옮겨져 개선문 꼭대기를 장식했다. 그 후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전의 멍에를 쓰고 망명길에 오르면서, 결국 1815년에 개선문을 내려와 거대한 바지선에 실린 이 조각품은 베네치아로 돌아와 지금까지 산 마르코 대성당의 발코니를 지키고 있다.

랭던은 이 같은 우여곡절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아는 편이었지만, ARCA 웹사이트는 충격적인 사실을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있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베네치아로 운반될 당시 수송의 편의를 위해 머리를 잘랐다가 다시 붙인 흔적을 감추기 위해, 1204년에 이 말들의 목에 장식을 빙자한 마구(馬具)가 추가되었다.

 

그와 함께 또 하나의 약탈품이  이 대성당의 남서쪽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흔히 ‘분봉왕(The Tetrarchs)’이라 불리는 자줏빛 반암 조각상이다. 이 조각상은 13세기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약탈해 올 당시 한쪽 발이 떨어져 분실된 것으로 유명한데, 기적적으로 1960년대에 이스탄불에서 이 발이 발굴되었다. 베네치아는 그 발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터키 정부는 ‘니들이 그 조각상을 훔쳐 갔잖아. 우리는 발이라도 간수해야겠어’라며 그 요구를 일축했다.

 

 

‘공기 자체가 금으로 이루어진 것 같군.’

로버트 랭던은 지금까지 아름다운 교회들을 수없이 둘러보았지만, 이 ‘황금 성당’이 자아내는 독특한 분위기만큼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지 못했다. 수백 년 전부터 산 마르코의 공기로 숨 쉬는 것 만으로도 더 부유한 사람이 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고였다. 이것은 은유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액면 그대로의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말이기도 하다.

황금 성당은 실내의 박판이 수백만 개에 달하는 고대의 황금 타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실제로 공기 속에 떠도는 먼지 입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미세한 금가루로 이루어져 있다. 공중에 부유하는 이 금가루가 커다란 서쪽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환한 햇살과 합쳐져 독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영혼을 더욱 살찌우고, 나아가 그 공기를 깊이 들어마시면 폐에 금박이 입혀져 세속적인 의미에서도 더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였다.

 

 

제단을 보호하기라도 하듯 멋진 닫집(궁전 안의 옥좌 위나 제단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이 설치되어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제단 장식, 팔라 도로(Pala d’Oro)도 보였다. 커다란 은박의 배경막이라 할 수 있는 이 ‘황금의 천’이 ‘천’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다양한 이전의 작품들-주로 비잔틴 에나멜-을 단일한 고딕 양식으로 짜 넣은 벽걸이 장식이기 때문이다. 1,300여 개의 진주, 400개의 석류석, 300개의 사파이어, 그 밖에 에메랄드와 자수정, 루비 등이 총망라된 이 팔라 도로는 산 마르코의 말들과 함께 베네치아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 베네치아 (베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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