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 斷續平衡說)은 진화 생물학의 이론으로 진화는 짧은 기간에 급격한 변화에 의해 야기되나 그 후 긴 기간이 지나도 생물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stasis)고 이야기하고 있다.
고생물학이나 화석학에서 출발하고 있는 단속 평형설에 의하면 화석에서 볼 수 있는 종간의 뚜렷한 단절을, 새로운 종이 형성될 때에 생물은 급격하게 형질이 변하나 그 변화가 일단 완료하게 되면 다시 안정된 상태(stasis)가 유지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진화론은 생물이 끊임없이 변화(점진주의)한다고 주장하였다.
1972년에 고생물학자 엘드리지(Niles Erdredge, 1943∼)와 스티븐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는 그들의 이론을 정리한 획기적인 논문을 발표하고 그것을 단속평형(punctuated equilibria)이라고 불렀다. 엘드리지와 굴드의 주장은 진화는 다윈이 생각했던 것처럼 일정한 속도로 서서히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점진주의의 증거가 화석 기록에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안정된 상태(stasis)가 대부분의 화석의 역사를 지배한다고 제안했다.
굴드는 생물이 오랜 기간 동안 거의 변하지 않다가, 환경이 변화하면 갑작스럽게 형태의 변이나 종의 분화가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즉 생물은 생태계가 안정된 평형 상태(stasis)에서는 오랜 동안 거의 진화하지 않다가 빙하기, 운석 충돌 등으로 평형 상태가 깨지면서 순식간에 진화하거나 소멸한다는 것이다.
– 단속평형이론(斷續平衡理論, punctuated equilibrium, 위)과 계통점진이론(系統漸進理論, phylectic gradualism, 아래)의 비교. 단속평형이론은 형태학적인 안정(stasis)과 드물게 신속한 분기진화(分岐進化, cladogenesis)를 통해서 진화과정의 변화가 발생한다고 본다. 이것은 훨씬 더 점진적이며, 지속적인 계통점진이론과는 대조된다.
– 나비의 예로 계통점진이론(왼쪽)과 단속평형이론(오른쪽)의 차이점을 보여준다.
찰스 다윈 이후 종의 분화에 대한 메커니즘이 지속적으로 연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짧게는 수만 년, 길게는 수백만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종 분화의 과정은 가설만이 난무할 뿐 검증할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진화론의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였다. 동굴 속의 종유석이 어느 순간 둘로 나뉘어 자라는지 관찰할 수 없듯이 종분화라는 현상은 이루어진다는 확신만 있을 뿐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많은 진화학자들은 단기간 내에 관찰되는 소진화 (Micro Evolution) – 이에 견주어 종분화를 포함하는 진화의 과정을 대진화(Macro Evolution) 라고 부른다 – 의 과정이 종분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즉 우리가 진화의 증거라고 배워왔던 나방의 색깔 변화와 같은 소진화의 메커니즘을 파충류에서 조류의 진화에 그대로 적용시켜 왔던 것이다. 이를 단순화시켜 생각하면 소진화의 축적이 대진화로 이어진다는 설명이 된다. 종분화에 대한 이와 같은 단순적용의 이면에는 찰스 다윈이라는 넘지 못할 산이 버티고 있었다. 다윈은 진화를 충분한 시간 속에서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현대의 진화학자들 또한 이를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굴드는 다윈의 영향력을 과감히 벗어 던졌다. 그는 다윈이 골머리를 썩이며 불완전한 화석상의 증거때문이라고 결론지은 현상들(단속되어 나타나는 화석들과 캄브리아기의 대폭발과 같은)을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 했던 것이다.
굴드는 새로운 종은 그의 부모 종으로부터 이미 완전히 분화되어 화석기록 속에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하나의 새로운 종이 출현하면 그 종은 일반적으로 멸종할 때까지 더 이상의 진화적 변화를 겪지 않거나 딸종들로 갈라지기 전까지 더 이상의 진화적 변화를 겪지 않는다는 점을 의식했다. 즉 평균적으로 500만년 정도 되는 종의 수명에 비추어 볼 때 평균적으로 5만년 정도에 걸쳐 이루어지는 종분화의 과정은 지질학적 척도로 볼 때 ‘순간’이라는 것이다. 종은 점진적으로 진화해서 새로운 종이 되지는 않으며 새로운 종은 전형적으로 국소 개체군들 중 하나 혹은 둘의 빠른 종분화에 의해서 부모 종으로부터 갈라지면서 생겨난다는 것이 단속평형설의 핵심이었다. 진화학자들의 영웅인 찰스 다윈의 가설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듯한 이 도전적인 가설은 발표 직후부터 수 십년 동안 엄청난 비난의 화살을 받았다. 어떤 진화학자는 단속평형설을 조롱하기 위해 ‘Punk Eek’ 혹은 ‘Evolution by Jerks’ 라는 말을 만들었다. 단속평형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일단의 창조과학자들은 이를 ‘신이 생물을 창조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라며 기뻐하는 코메디를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연구와 증거들은 종분화의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며 굴드의 말처럼 누적적이고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소진화에 비해 종분화는 ‘순식간’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증명해 냈다. 그리고 그 수십 년간의 논쟁 끝에 이제 단속평형이론은 진화학계에서도 당당히 인정 받는 하나의 이론으로 자리잡고 있다.
Michael Benton은 “진화적 정체(stasis)가 일반적이며, 현대 유전자 연구에서 예견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진화론적 정체(stasis)의 최고의 사례는 양치식물인 음양고비(Osmunda claytoniana)이다. 고생물학적인 증거에 의하면 화석화 된 핵과 염색체 수준에서도, 적어도 1억 8000만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단속평형설은 진화론적 변화가 일어나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모델이지만 종종 잘못된 해석을 한다. 단속평형설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다음과 같다 :
– 자연 선택이라는 다윈의 진화론은 잘못되었다.
– 다윈 진화론의 핵심 결론, 즉 생명은 오래되었고 생물체들이 같은 조상을 공유한다는 의미는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이전의 연구를 부정한다.
– 진화는 단지 급격한 돌발에서만 일어난다.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도킨스와 단속평형설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에서 단속평형설의 약점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점진론에서도 허용될 수준의 오차를 단속평형설이라는 이름으로 특별히 포장했다는 게 그 주요 내용이다. 또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에서 굴드 등 단속평형설을 주장한 과학자들의 고의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 단속평형설은 창조설 사이비론자들이 날뛸 여지를 제공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러 분야에서 단속평형설을 인용하고 있다. 특히 단속평형설은 복잡계의 개념으로도 편입되어 복잡계 이론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다.
대멸종과 단속평형설을 연계하려면 어떤 사건이 있을 수 있을까? 방사선과 관련이 된다면 지구자기장 역전과 같은 지구자기장의 변화, 대규모 화산 폭발로 방사성 화산재의 영향, 초신성의 폭발 등이 떠오른다. 자료를 찾아봐야겠다.
단속평형설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찾았다.
UC 버클리 자료
– https://evolution.berkeley.edu/
단속평형설은 종분화 현상과 연관된 짧은 기간에 많은 진화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음은 단속평형설 모델 작동 방식의 한 예이다.
1. 안정(Stasis) : 연체동물의 서식지는 수십만 년에 한 번 정도 화석화되고 있다. 이 화석들로 볼 때 거의 진화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 격리(Isolation) : 해수면의 하강으로 호수가 형성되면서 소수의 연체동물들이 다수의 연체동물과 격리된다.
3. 강한 선택과 급격한 변화(Strong selection and rapid change) : 소수의 격리된 연체동물은 이전에는 겪어보지 않았던 새로운 환경과 작은 규모의 개체군으로 인해 강한 선택과 급격한 변화를 경험한다. 즉 새롭게 형성된 호수의 환경은 격리된 연체동물에 새로운 선택 압력을 가한다. 또한, 격리된 작은 개체군의 크기가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 遺傳的浮動)으로 진화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격리된 개체군은 급속한 진화론적 변화를 겪는다. 이것은 근소적 종분화(peripatric speciation)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4. 존재하지 않는 화석(No preservation) : 중간 단계의 형태를 나타내는 화석은 상대적으로 개체군 규모가 작고, 급격한 변화의 속도, 격리된 위치 등의 이유로 일반적으로 보존되지 않는다.
5. 재도입(Reintroduction) : 해수면이 상승하여 격리되었던 연체동물이 다수 개체군이었고 동종이었던 연체동물과 재회한다.
6. 확장과 안정(Expansion and stasis) : 격리되었던 개체군이 과거의 범위로 확장된다. 보다 큰 개체군 규모와 안정된 환경은 진화의 변화 가능성을 작게 만든다. 이전에 격리되었던 연체동물 개체군 계통은 조상 연체동물 개체군과 경쟁하여 그들을 멸종시킬 수 있다.
7. 화석 보존(Preservation) : 더 큰 개체군과 더 큰 범위는 1 단계로 돌아 간다 : 특별한 경우 생기는 화석의 보존과 함께 안정된 상태.
위의 과정은 화석 기록에 다음과 같은 패턴을 만들어 낸다.
진화는 종분화와 관련하여 갑작스러운 출현으로 보인다.
우리는 많은 생물체의 화석 기록에서 비슷한 패턴을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특정 유공충(단세포 원생동물) 껍질의 화석 기록은 아래의 구두점을 찍은 패턴과 일치한다.
그러나 우리는 화석 기록에서 점진적이며, 단속되지 않은 진화의 사례도 관찰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답이 필요한 질문은 “단속적인 변화와 점진적인 변화의 상대적인 빈도는 얼마인가?” 이다.
판다의 엄지
– 스티븐 제이 굴드 / 김동광 역 / 사이언스북스 / 2016.05.20 (원서:1980년)
다윈의 이론이 그 영토를 넓히는 한편으로, 그동안 신봉되었던 원리들 중 일부가 쇠퇴하거나, 또는 최소한 그 보편성을 잃고 있다. 과거 30년 동안 군림해 왔던 다윈주의의 현대판인 ‘현대의 종합설(modern syntheis)’은 국지 개체군(local population)에서의 적응적인 유전자 치환이라는 모형을 채택하고 있으며, 그 축적과 확대를 통해 생명의 전체 역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 왔다. 그 모형은 작고, 국지적이고, 적응적인 조절이라는 경험적인 영역에서는 훌륭하게 작동할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학명이 비스톤 베툴라리아(Biston betularia)인 나방의 일부 개체군의 몸색깔이 검게 변한 것은 공장 지대의 매연으로 시꺼매진 나무 위에서 눈에 잘 띄지 않기 위해 선택된 반응으로서, 단 하나의 유전자의 치환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새로운 종의 기원이 단지 더 많은 유전자와 보다 큰 효과로 이 과정이 확장되는 것에 불과할까? 생물의 주요 계통에서 나타나는 보다 큰 진화의 경향이 단지 연속한 적응적 변화가 누적된 것에 불과할까?
최근 (나 자신을 포함해) 많은 진화학자들이 이 ‘종합설’에 의심을 품게되면서, 여러 수준에서의 진화적 변화가 여러 가지 원인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계층적 관점이 제기되었다. 어떤 개체군에서 나타나는 소규모의 조절은 순차적이고 적응적인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種)의 분화란 적응과는 관계 없는 여러 원인으로 다른 종과의 불임성(不姙性)을 확립시키는 주요 염색체 변화로 인해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진화적 경향이란 하나의 큰 개체군이 긴 시간에 걸쳐 느린 속도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정적(靜的)인 종에 대한 어떤 높은 수준의 선택을 나타내는 것일수 있다.
……
대부분의 화석 생물의 역사는 점진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다음의 두 가지 특성을 가진다.
1. 정지(stasis). 대부분의 생물 종은 지구상에서 생존하는 기간 동안 특정한 방향성을 띤 변화를 나타내지 않는다. 그들은 화석 기록에 나타날 때나 사라질 때나 똑같은 모습으로 보인다. 대개 형태상의 변화는 제한되고, 더구나 방향성도 없다.
2. 갑작스러운 출현(sudden appearance). 어느 지역에서 특정 생물 종들은 그 선조가 조금씩 변형(transformation)되는 과정을 통해 서서히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완전히 완성된(fully formed)’ 상태로 출현한다.
진화는 두 가지 주요한 양식으로 전개된다. 첫째, 계통의 변형으로, 어떤 개체군 전체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화한다. 그러나 모든 진화적 변화가 이런 양식으로 일어난다면, 생명계는 오랫동안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계통 발생에 의한 진화는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변형을 낳을 뿐이기 때문이다. 멸종(다른 종으로 진화하지 않고 사멸하여 사라져 버리는 것)이 너무나 흔히 일어나서 다양성을 증대시키는 메커니즘을 가지지 않은 생물상은 이윽고 전멸할 것이다. 두 번째 양식은 종 분화로, 이 과정이 지구에 새로 생물을 보급한다. 종 분화란 살아남은 부모의 계통에서 새로운 종이 가지를 쳐 나오는 것을 말한다.
……
엘드리지와 나는 종 분화 자체가 거의 모든 진화적 변화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종 분화가 일어나는 방식 자체가 화석 기록에 갑작스러운 출현과 정지가 지배적인 이유라고 본다.
……
진화가 주로 주변부의 격리 집단에서 발생하는 종 분화라는 형태로 일어난다면, 화석 기록에 포함되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학자들이 발견하는 화석은 보통 규모가 큰 중심부 개체군의 유물이기 때문에, 종은 거의 분포 지역 전체에 걸쳐 정적인 상태에 있을 것이다. 선조 종이 살고 있는 모든 지역에서, 후손 종은 그들이 진화했던 주변 지역에서 이동한 결과로 갑작스럽게 나타날 것이다. 주변 지역에서 종 분화의 직접적인 증거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행운을 얻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이다. 이러한 사건이 이처럼 작은 개체군에서 급속히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화석 기록은 진화 이론이 예언한 것을 충실히 나타내는 것이지, 과거에는 풍부했던 이야기가 형편없이 삭제된 초라한 잔재로 남은 것이 아니다.
엘드리지와 나는 이러한 체계를 ‘단속 평형(단속 평형, punctuated equilibria)’이라고 부르고 있다. 생물 계통은 각각의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지만, 이따금 급격하게 일어나는 종 분화라는 사건으로 그 평온함이 단속, 즉 깨지는 것이다. 그리고 진화는 이러한 단속의 배치와 차등적 생존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단속적인 관점이 생물학적 또는 지질학적 변화의 속도를 다른 어떤 방법보다도 정확하게 그리고 높은 빈도로 잘 설명하리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 이유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정상 상태에 있는 복잡계들이 변화에 공통적이고 강한 저항성을 가진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영국의 동료 지질학자 데릭 빅터 에이저(Derek Victor Ager, 1923~1993년)는 지질학적 변화에 관한 단속적인 관점을 지지하며 이렇게 쓰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지역의 역사는, 마치 병영에서 생활하는 한 병사와 마찬가지로 길고도 지루한 기다림의 시기와 짧은 공포의 시기로 이루어진다.”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
– 스티븐 제이 굴드 / 김동광 역 / 경문사 / 2004.10.20
생물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는 최고의 암석으로부터 생물의 흔적을 보여주는 화학적 증거가 발견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형태학적 유물도 충분히 오래된 암석에서 발견되고 있다. 스트로마톨라이트(박테리아나 남조藍藻에 의해 포획되어 굳어져서 층상을 이룬 퇴적물)나 실제 세포 자체가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35억 년부터 36억 년 전의 것으로 판명된, 변성되지 않은 가장 오래된 퇴적암에서 발견되고 있다.(Knoll and Barghoorn, 1977; Walter, 1983)
최고의 생물 화석이 이처럼 단순한 구조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다윈도 무척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후 선캄브리아대 생물이 겪은 역사는 캄브리아기 폭발의 산물인 생물들을 향해 점진적으로 그 복잡성이 증가했다는 다윈의 전제와는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수아통(Isua series)의 퇴적암이 형성된 후 24억 년 동안, 즉 지구에 생명이 등장한 전체 역사의 거의 3분의 2에 가까운 기간 동안 원핵세포(prokaryotic)라는 가장 단순한 설계를 갖춘 단세포 생물밖에 살지 않았다.
약 14억 년 전의 화석 기록 속에 진핵세포가 출현했다는 것은 생물의 구조가 비약적으로 복잡하게 된 것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후 곧바로 다세포 동물이 성공적으로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최초의 진핵세포가 출현한 후 최초의 다세포 동물이 출현하기까지 캄브리아기의 폭발이 일어난 후 다세포 동물이 번성해온 전 기간보다도 긴 시간이 걸렸다.
……
원핵생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25억 년 가까운 기간, 즉 생물 진화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기록에 남겨진 생물 형태의 복잡성은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 후 7억 년 동안, 그들보다 몸 크기가 크고 구조도 훨씬 복잡한 진핵생물이 존재했지만 이들이 합쳐져서 다세포 동물이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질학적 시간 척도에서는 일순간에 불과한 1억 년 동안 에디아카라, 토모티, 그리고 버제스라는 3개의 두드러진 동물군이 잇달아 출현했다. 그 이후 5억 년 이상에 걸쳐 훌륭한 이야기들, 승리와 비극이 되풀이되었지만 버제스 동물군에 새로운 문(門)이 충원되거나 근본적인 해부학적 설계가 보충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몇 발짝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세부 사항들은 잘 보이지 않게 되고 이것을 예측된 진보의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 가령 맨 처음에 원핵생물, 그 다음에 진핵생물, 그리고 다세포 생물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개별 생물들을 자세히 조사하면, 그러한 편안한 이야기들은 무너지고 만다. 만약 복잡한 구조가 그러한 유리함을 준다면, 생물이 그 역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1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다세포 생물이 완만하고 연속적으로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3종류의 전혀 다른 동물군을 통해 짧은 기간 동안 맥동적으로 단기간에 걸쳐 발생한 까닭은 무엇일까? 생물 진화의 역사는 무궁무진하게 매력적이고 기묘하며, 우리의 일상적 사고나 희망과는 거의 부합하지 않는다.
……
…… 생명의 역사는 연속적인 발전이 아니다. 그것은 지질학적으로는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짧은 기간의 대량 멸종, 그리고 뒤이어 계속된 다양화(diversification)에 의해서 단속(斷續, punctuated)된 기록인 것이다. 그리고 지질 연대 구분은 바로 이러한 역사를 사상(寫像)하고 있다. 왜냐하면 화석이야말로 암석의 시간적인 순서를 확정하기 위한 중요한 기준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화석 기록에 명료한 각인을 남기는 것은 멸종과 급속한 다양화이기 때문에, 그러한 중요한 단속의 지점에서 연대 구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지질 연대 구분은 악마가 학생을 괴롭히기 위한 책략이 아니라 생명의 역사 속의 중요한 순간들을 명시한 하나의 연대기이다.
원더풀 라이프
– 스티븐 제이 굴드 / 김동광 역 / 궁리 / 2018.09.10
– 김동광 역자 후기
이 책은 입지전적 인물로 자신이 수집한 화석을 위대한 지질학자이자 동물학자였던 루이스 아가시에게 파는 일을 하면서 처음 고생물학에 입문해서, 이후 스미소니언 연구소장, 국립과학아카데미와 미국과학진흥협회 회장을 두루 역임한 지질학자이자 과학행정가 찰스 두리틀 월콧이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동쪽의 캐나다 로키산맥 사면(斜面)에 있던 버제스 혈암에서 캄브리아기 대폭발로 불리는 놀랄 만큼 이질적인 생물들의 신체 설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연체성 화석들을 대량 발굴한 극적인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굴드는 이 화석들에 대한 월콧의 전통적인 해석이 이후 세 명의 고생물학자에 의해 뒤집히는 과정을, 그 자신이 버제스극(劇)이라고 부른, 5막에 걸친 흥미로운 지적 드라마의 형식으로 재구성해낸다.
이 드라마를 통해 그는 우리가 생명의 역사, 특히 진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얼마나 잘못된 허위의식인지 밝히려고 한다. 월콧은 굴드가 ‘월콧의 구두주걱’이라 부른 전통적인 관점의 신봉자이며, 버제스 혈암에 나타난 폭발적인 이질성을 현재 살아 있는 생물종의 원시적인 선조로 간주하고, 현생종의 분류구조라는 틀 속에 억지로 밀어넣으려고 시도한다.
이것은 진화가 단순성에서 복잡성, 하등한 생물에서 고등한 생물로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이루어진다는 고정관념의 발로이다. 그는 이런 관념을 진화란 생명의 다양성이 거꾸로 된 원뿔 모양으로 퍼져나갔고, 새로운 종이 과거의 종을 대체했다는 ‘역(逆)원뿔의 도상학’이라고 비판한다.
굴드는 이후 학자들이 월콧의 해석을 뒤집는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생명관을 제기한다. 그것은 생명의 역사에서 지금의 분류체계로 포괄할 수 없는 이질성이 폭발적으로 나타났다가 지질학적으로 극히 짧은 순간에 이유를 알 수 없는 격감(激減)을 거쳐, 살아남은 소수의 설계가 다시 다양성을 이루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는 것이다.
이런 생명관은 그가 생물학자 닐스 엘드리지와 함께 제기했던 단속평형설(斷續平衡說)과 맥이 닿는다. 생명의 역사는 점진적으로 누적적인 과정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폭발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그 뒤에 상대적으로 긴 평형상태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가 조개화석을 주운 날
– 스티븐 제이 굴드 / 김동광,손향구 역 / 세종서적 / 2008.10.20
이런 일반적인 비판 라인은 1988년에 폴 반과 베르터트가 지은 『』에 잘 설명되어 있다(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비판이론을 정립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고생물학의 단속평형이론을 알고 있는 것을 보고 참으로 기뻤다).
구석기 시대 예술의 발전은 아마도 진화 그 자체와 흡사한 것 같다. 쭉 뻗은 선이나 사다리 같은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우회적인 길 – 평행한 가지나 아주 많은 분지(分枝)를 갖고 있는 관목처럼 복잡한 모양으로 자라는, 느리고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가끔가다 날카로운 섬광이 나타나는 “단속적인 평형”…… 구석기 시대 전반기의 각 시기는 많은 종류의 스타일이나 기법들이 공존하고 그 중요성의 정도에도 변화가 심하다……. 재주와 능력의 정도도 광범위하고 …… 결과적으로 ‘원시적’이거나 ‘고풍스러운’ 생김새라고 해서 반드시 오래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르르와-구르앙은 이점을 온전히 인정했다). 그리고 가장 오래된 몇몇 예술품 중에도 정교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다윈의 식탁
– 장대익 / 김영사 / 2008.11.21
다윈의 식탁 셋째날이다. 예고된 대로 오늘은 진화의 속도에 관한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이 주제가 선택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굴드는 진화의 속도와 양상에 대한 그의 독특한 이론 때문에 학계에 스타로 떠올랐었다. 그는 1972년에 동료인 나일즈 엘드리지와 함께 다윈의 점진론에 대한 대안으로 ‘단속평형론’을 제안했다.
그렇다면 도킨스는 어떤 사람인가.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굴드의 단속평형론을 반박하기 위해서 아예 한권의 책을 썼을 정도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단속평형론 끝장내기’는 도킨스의 역작 ‘눈먼 시계공’(1986년)의 9장 제목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굴드팀) : 미국 하버드대 고생물학교수
굴드(G팀): “내 책의 반은 라이엘의 머리에서 온 것 같이 느껴진다.” 이 말은 1844년에 다윈이 어떤 편지에 쓴 고백입니다. 다윈이 1831년에 비글호에 승선하면서 챙겼던 재산 목록 1호는 놀랍게도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1권)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이 책에 열광했는지는, 집에서 보낸 온 소포들 중에서 그를 가장 즐겁게 만든 것은 가족의 편지가 아니라 1832년에 출간된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2권)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연유가 어찌됐든 그는 비글호에 승선하고부터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됩니다.
사실, 다윈이 햇병아리 과학도였던 시절에는 지질의 급격한 변화를 지지하는 사람들(프랑스의 퀴비에)과 점진적 변화를 주장하는 사람들(라이엘) 간에 심각한 대립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과거의 열쇠다”라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과정과 법칙들이 지구의 전 지질 역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주장입니다.
쉽게 말하면, 오늘날 지구가 대규모 화산 폭발, 운석 충돌, 해수면 급상승 등과 같은 격변에 늘 시달리지 않는 것처럼 과거에도 그랬을 것이라는 발상이죠. 라이엘의 이론에 심취한 다윈은 생명의 진화가 그 누구도 살아서 목격할 수 없을 정도로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장중하고 정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을 ‘점진론’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화석기록은 점진적 변화보다는 오히려 갑작스런 변화를 말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실제로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닐 만큼 다윈을 철저히 신봉했던 헉슬리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서점 진열대 오르기 하루 전날, 다윈에게 “당신은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라는 말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괜한 어려움에 처해 있구려”라고 애정 어린 충고를 했습니다. 실제로 다윈은 화석상의 기록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심하게 불연속적으로 보인다는 사실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죠. “지질학적 기록은 불완전하다”라는 그의 대답은 그야말로 궁여지책이었습니다.
엘드리지(G팀): 맞습니다. 그것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화석기록이 불연속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불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불연속적인 변화들, 즉 격변들이 지질학적인 과거에 빈번히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고생물학자들이 다윈 이후로 1백년이 넘게 연구를 거듭했지만 대부분의 화석기록은 여전히 진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입니다. 1972년에 저와 굴드가 함께 발표한 단속평형론은 바로 이런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진화는 오랫동안 정체 상태로 있다가 갑자기 급변하는 형태를 띱니다.
점진론 단속평형론
……
도킨스(D팀):
……
두분께서는 진화의 템포에 대한 입장을 ‘등속설’과 ‘단속평형설’로 이분해 놓고 사람들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윈 자신뿐만 아니라 저같이 가장 극단적인 점진주의자도 등속설을 주장한 적은 없습니다. 왜 허수아비를 공격하십니까? 그리고 조금 전에 단속평형설의 증거를 말씀하셨는데 오히려 그런 사례들보다는 점진론의 증거들이 더 많습니다. 예컨대 웨일스 지방에서 발견된 오르도비스기의 삼엽충 화석은 점진적 진화 양상을 보여줍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이 마치 대단한 혁명가라도 된듯이 말씀하시는데 진상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
루즈(특별 손님): 아까 굴드 교수도 잠깐 언급했듯이 한때 다윈은 지질학적 기록의 불완전성을 말하면서 자신의 점진론을 궁색하게 방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다윈은 어떤 대목에서 마치 단속평형설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말들도 했습니다. 실제로 다윈의 ‘종의 기원’ 4판부터는 “많은 종들이 일단 형성된 다음에는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 …… 종이 변화하는 기간은 연수로 측정하기에는 무척 긴 기간이지만, 그 종이 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기간에 비하면 틀림없이 짧을 것이다”라는 진술이 슬그머니 삽입돼 있거든요. 이것을 현대식으로 풀어보면 다윈은 종분화 사건의 속도와 종분화 사건들 사이의 진화 속도가 뚜렷하게 차이난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있는 셈입니다.
…….
도킨스(D팀): 저는 진화생물학의 일차적인 목표가 생물의 적응을 설명하는데 있다고 봅니다. 누적적인 자연선택만이 복잡한 적응의 존재를, 기적을 동원하지 않고 설명하는 유일한 길이지요. 적응은 갑작스런 도약으로는 진화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굴드 교수가 비판하고 있는 등속적 선택은 제가 주장하는 누적적 선택과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까지 하긴 좀 그렇지만, 굴드 교수의 단속평형설은 다윈의 점진론을 깎아내림으로써 진화론의 맹위로부터 기독교를 구원하길 원했던 사람들에게 결과적으로 반진화론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굴드(G팀): 저는 단지 다윈의 진화론이 불완전하다는 점을 지적했을 뿐인데 왜 내가 그런 비난까지 받아야 하는지 몹시 불쾌하네요. 그리고 도대체 왜 적응에 대한 설명이 진화생물학의 일차 목표입니까? 적응말고도 설명해야 할 중요한 현상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모르니까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신지식의 최전선 4
– 이우경, 최혜실 / 한길사 / 2008.05.10
시기적으로 1970년대의 진화학계는 이렇게 유전자 이론으로 무장한 신다윈주의자들과 당시에 막 태동하기 시작한 사회생물학자들의 경연의 장이었다. 이런 현대 종합주의자들의 잔치 속에서, 굴드는 현장에서 달팽이 연구에 기초한 새로운 진화이론을 들고나왔다.
원래 고생물학자로서 교육을 받은 굴드는 같은 고생물학자인 닐스 엘드리지(Niles Eldredge)와 함께 수많은 화석기록 속에서 달팽이들이 보이는 다양한 변이에 주목하였다. 그들의 관찰에 의하면 달팽이들은 오랜 기간 아무런 변화없이 세대를 계속하다가 갑자기 짧은 기간 동안에 획기적인 변화를 나타내곤 했다. 이런 식의 진화 양상은 다윈이 주장했던, 변이가 점진적으로 축적되어 종이 변화한다는 진화이론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굴드와 엘드리지는 이러한 자신들의 진화이론을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이라고 지칭하였다.
단속평형설은 수 세대에 걸쳐서 개체군 수준 이상에서 일어나는 생물의 대변화, 즉 대진화(macroevolution)를 설명하는 데에 특히 유용하다. 일례로, 인간의 조상에게서 두뇌의 용적은 과거 200만 년 동안 점진적으로 증가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 종족이 출현할 때마다 급속히 증가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두뇌 용적의 증가는 변이의 점진적인 축적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단속평형설로 설명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더욱 큰 두뇌를 가지고 출현한 후대의 우리 조상들이 그보다 두뇌 용적이 적었던 선대의 조상들보다 생존에 더 유리했을 것이므로 자연선택과 거의 유사한 이러한 ‘종족 선택'(species selection)이 진화에 작용했던 것임은 분명하다.
1980년 10월 시카고에서는 전 세계의 진화과학자들이 집결하는 대규모 국제학회가 개최된 바 있다. 이 회의에서 굴드와 엘드리지의 단속평형설이 다윈의 점진적 진화이론을 보완할 수 있는 대체학설로서 대단한 각광을 받았는데, 이후 그들은 현대 진화학계를 대표하는 과학자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다윈 이후 거의 한 세기 반이 지난 지금까지, 다윈의 점진적 진화론에 상대되는 새로운 진화이론이 제안된 경우는 굴드의 단속평형설이 유일하다.
히든커넥션
– 프리초프 카프라 / 강주현 역 / 휘슬러 / 2003.06.03
다른 유기체들이 독립된 단위로서, 때로는 인간의 장腸에 존재하는 박테리아처럼 서로의 내부에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현상인 공생(共生)은 어디에서나 쉽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마굴리스는 한 단계를 더 나아가, 큰 세포 속에서 살아가는 박테리아 등 미생물들이 관련된 장기적인 공생이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로 발전되었고 지금도 이런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가정을 제시했다. 마굴리스는 1960년대 중반에 이런 혁명적인 가정을 처음 발표한 후, 오랜 세월을 다듬고 다듬어 ‘공생’이라 알려진 훌륭한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지속적인 공생을 통한 새로운 생명체의 창조가 모든 고등한 유기체의 진화에서 주된 방향이었을 것이란 가설이다.
……
수십억년에 걸친 생명체의 혁명적인 확산은 실로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린 마굴리스와 도리언 세이건(Dorian Sagan)은 『마이크로 코스모스(Microcosmos)』에서 이 현상을 감동적으로 표현해냈다. 돌연변이, 유전자 교환, 공생으로 표현되는 모든 생명체에 내재된 창조적 능력에 자연도태가 덧붙여지면서 생명의 그물은 전 지구로 확산되었고 끊임없이 복잡해지면서 무수히 다양한 생명체들을 낳았다.
생명체의 이런 확산이 꾸준히 점진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화석기록에서 확인되듯이, 이 혁명적인 기간은 안정상태의 반복, 즉 특별한 유전자 변이는 없었지만 급작스럽고 극적인 변환이 뚜렷이 눈에 띄는 균형상태가 반복되는 역사였다. 이런 ‘단속평형’은 급작스런 변환의 원인이 신다윈론의 돌연변이와 사뭇 다른 메카니즘이라는 뜻이다. 공생을 통한 새로운 종의 창조가 결정적인 역활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마굴리스의 주장대로라면, “지질학적 시간으로 계산할 때 공생은 진화과정에서 찰나에 불과하다.”
또 하나의 놀라운 패턴은 대재앙이 있은 후 성장과 혁신의 기간이 뒤따랐다는 점이다. 따라서 2억 4500만년 전, 지구에 존재하던 대부분의 생명체가 멸종한 후 포유동물의 진화가 있었다. 또한 6600만년 전에는 지구에서 공룡을 사라지게 한 재앙이 최초의 영장류가 진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진화할 수는 길을 열어놓았다.
리처드 도킨스 – 우리의 사고를 바꾼 과학자
– 앨런 그래펀, 마크 리들리 / 이한음 역 / 을유문화사 / 2007.03.25
하지만 도킨스의 주요 비판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한 듯했다. 굴드와 도킨스의 개인적 싸움은 계속되었다. 1995년 굴드는 도킨스를 “엄격한 다윈주의 열광자(strict Darwinian zealot)”라고 불렀다.
……
게다가 연구 주제의 상대적으로 주변적인 사항들에 대해서는 무난한 설명을 내놓지만, 적응적 복잡성의 기계적 설명을 접하면 틀에 박힌 표현과 모호한 속임수에 아주 쉽게 만족하고 마는 동료 과학자들을 그냥 두고보지 못한다는 점에서 도킨스는 나와 같았다. 도킨스는 스티븐 제이 굴드가 단속 평형, 종 선택, 외적응 같은 것들을 제시하면서 진화론을 혁신했다고 주장할 때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도킨스는 그런 부가적인 것들은 생명의 적응적 복잡성이라는 핵심 문제를 다루지 않으며, 따라서 자연선택(그 문제를 해결하는) 이론의 핵심을 건드리지 않은 채 남겨둔다고 지적했다. 나는 많은 인지과학자들도 전략, 일반 지능, 유연성, 규칙 도출 같은 설명 메커니즘 대신 상투적인 표현에 만족하는 듯하다고 투덜거리곤 한다.
용어 정리
◎ 종분화 – 식물학 백과
종분화(種分化)는 새로운 생물 종이 만들어지는 진화의 과정이다. 생물학자 오러터 F. 쿡(Orator F. Cook)은 친족 관계의 생물들에게서 나타나는 향상진화(Anagenesis)로서의 발생진화를 보고하여 친족 관계의 생물들에게서 나타나는 종분화의 사례를 최초로 제시하였다. 유전자 부동이 종분화에 기여하는 정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 이소적 종분화(allopatry speciation)
지리적 격리를 계기로 해서 2집단 간에 생식격리를 초래하는 것과 같은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는 결과로 달성되는 종분화.
– 근소적 종분화(peripatric speciation)
이소적 종분화의 종속적 형태로서 새로운 종은 주요 개체군과 유전자를 교환하지 못하도록 격리된, 주변의 작은 개체군에서 형성된다. 이것은 창시자 효과(founder effect) 개념과 관련이 있다. 창시자 효과는 생물 개체군 내의 유전자 빈도가 우연이나 확률에 근거한 사건에 의해 변하게 되는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의 한 예로, 원래의 개체군으로부터 아주 적은 수의 개체가 떨어져 나와 새롭게 개체군을 만드는 경우에 두 개체군에 나타나는 유전자 빈도의 변화를 말한다. 이 효과는 두 개체군 사이의 유전자 빈도 변화를 일으켜 결과적으로 종 분화를 통해 새로운 종이 생겨나는데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 근지역 종분화(parapatric speciation)
측소적인 두 집단이 다른 선택을 받음으로써 명확한 지리적 장벽 없이 생식격리를 발달시켜서 달성하는 종분화.
– 동소적 종분화(sympatric speciation)
지리적으로 격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일 분포역 내에서 일어나는 종 분화.
◎ 분기진화(cladogenesis, 分岐進化) – 생명과학대사전
하나의 계통(lineage)이 2개 이상의 계통으로 분열하는 현상. clados는 가지의 뜻으로 아나게네시스(anagenesis)와 대치한다. 분열 후에 분기한다는 의미를 이 용어에 담고 있지만, 현재의 계통학에서는 계통지의 분열만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 분기진화, 아나게네시스 및 형의 영속성(후에 스타시게네시스라고 함)이 진화에 있어서 3가지 주요 경로라고 한다. 분기진화가 가장 낮은 단계, 즉 종의 분출내지 다양화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종분화와 거의 동의어가 된다.
◎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 遺傳的浮動) – 두산백과
유한한 크기의 집단에서 세대를 되풀이하고 있는 경우에, 나타나는 세대마다 배우자가 유한하기 때문에 유전자의 빈도가 변하는 것을 말한다.
<관련자료 및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지구과학사전) : 단속평형설
https://evolution.berkeley.edu/
2018-10.22 과학을 넘어선 우리 시대의 고전
2002-08-28 인류는 조금 더 겸손해져야 한다
2002-06-30 [과학으로 본 세상]단속평형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