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건국 신화인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대한 여러 이야기 중의 몇 개는 아래의 자료에 소개하였지만, 간략한 내용을 두산백과에서 먼저 살펴보자.
로물루스는 전설에서 로마의 초대 왕이라고 되어 있다. 알바롱가의 왕 누미토르의 딸인 레아 실비아가 마르스신(神)을 통해 낳은 쌍둥이 가운데 형이다. 동생 레무스와 함께 티베르강(현재의 테베레강)에 버려졌으나, 늑대의 젖으로 자라다가 양치기 파우스툴루스에게 발견되어 양육되었다. 그 후 동생과 협력하여 새로운 도시 로마를 건설하였으나(BC 753), 형제는 반목하여 도시의 신성한 경계를 넘었다는 이유로 동생 레무스를 죽였다고 한다. 또 이웃인 사비니인(人)과 싸웠으나, 화의가 성립된 후로는 로마인과 사비니인의 두 민족을 지배하면서 30년 이상 왕으로 재위하며, 인구증가 · 판도확대, 제도(원로원)의 확립 등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로물루스의 건국전설은 BC 3세기경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 옐로우의 세계사 연표 : http://yellow.kr/yhistory.jsp?center=-753
기원전 509년 로마 공화국은 로마인들이 폭군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아테네인들은 기원전 510~509년에 참주를 축출했다. 고대 그리스인 또는 그리스어로 글을 쓴 로마인 역사가에게 이것은 꽤나 마음에 드는 우연의 일치였다.
고대 역사가들은 이 날짜를 기준으로 로마 왕들의 통치 기간을 역산한 끝에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의한 로마 건국연도를 기원전 813년에서 729년 사이로 추산했다. 파비우스(Quintus Fabius Pictor)는 기원전 747년일 것으로 추정했으나, 최종적으로 기원전 1세기에 활동한 작가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Marcus Terentius Varro)에 의해 기원전 753년 – 그리스 역사의 ‘시작점’인 첫 올림피아 제전이 열렸던 기원전 776년과 비슷한 시점 – 으로 ‘밝혀졌다(?)’. 그리하여 로마가 지중해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던 시기에 활동한 역사가들이 희망했던 대로, 로마 역사는 그리스와 로마 사이의 문화적 · 정치적 유사성 위에서 확정되었다.(그리스 역사가들은 전통적으로 로마가 그리스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신화에 관련하여 가장 널리 읽히는 작품은 티투스 리비우스(Titus Livius, Livy, BC 59~AD 17)의 《로마사(Ab Urbe Condita)》, (할리카르낫소스의) 디오니시오스(Dionysius of Halicarnassus, BC 60~BC 7)의 《로마사(Roman Antiquities)》, 플루타르코스(Plutarch, 46~120년)의 《영웅전 – Life of Romulus》이다. 파비우스(Quintus Fabius Pictor, BC 270~BC 200)가 앞의 책들의 출처로 사용된다. 다른 중요한 출처는 오비디우스(Ovid)의 <Fasti>와 버질(Virgil)의 서사시 <Avenid>이다. 그 외 타키투스(56~120),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BC 70~BC19) 등의 유명한 작가들 작품에 들어 있다.
※ 위 3개의 작품 영문 온라인 자료
– https://oll.libertyfund.org/titles/livy-the-history-of-rome-vol-1
– http://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Dionysius_of_Halicarnassus/1D*.html
– http://penelope.uchicago.edu/Thayer/E/Roman/Texts/Plutarch/Lives/Romulus*.html
로물루스에 관한 신화는 몇 개의 에피소드로 나눌 수 있다. 신비로운 탄생과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어린 시절, 쌍둥이 형제 시절, 레무스의 죽음과 로마의 창건, 사비니 여자들 납치 사건과 사비니와의 전쟁, 티투스 타티우스, 로마 기관의 설립, 로물루스의 죽음, 누마 폼필리우스의 계승으로 나눌 수 있다.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신화가 로마 신화의 원래 부분이었는지 아니면 나중에 만들어졌는지와 함께 이 신화의 역사적 근거에 대해서는 계속 논쟁의 대상이다. 로마인들의 지도자상에다 낯익은 신화의 형식을 덧입힌 것으로 추측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역사적인 인물이 신화 로물루스의 근간을 이루는 정도는 분명하지 않지만 신화에 나오는 사건과 제도 · 기관은 로마의 기원과 문화적 전통을 둘러싼 신화의 핵심이다.
‘로물루스와 레무스’와 같은 건국신화는 민족의 조상 또는 창설자로서 각 민족들의 선두에 서 있거나 민족의 상상력이 사랑하는 모습으로서 민족의 영웅시대로 옮겨진 사람들이다. 부분적으로는 빛이 바랜 신들이고, 여러 신들의 아들들이며, 지리적 · 정치적 추상화인 신화의 영웅들이 여기 속한다. 그것도 무엇보다 한 민족에게 이름을 준 영웅이자 수장들은 그 민족의 통일성에 대한 신화적 대변자들이다.
쌍둥이가 도시를 세운 ‘로물루스와 레무스’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의 ‘암피온과 제토스(Amphion and Zethus)’와도 유사하다. 암피온과 제투스는 제우스와 안티오페의 아들이었고, 그들은 쌍둥이 형제로 함께 테베(테바이)를 건국한 것으로 유명하다. (테베의 7개 성문과 고대 로마의 7개 언덕)
프로이트의 초기 협력자였던 오토 랑크(Otto Rank)의 『영웅 탄생의 신화』의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다루고 있다.
유력한 문화 민족은 어느 민족이 되었든…… 태곳적의 저희들 영웅이나 전설적인 왕이나 왕자, 종교의 교조(敎祖), 왕조의 개조(開祖), 제국이나 도시의 건설자, 요컨대 저희들의 민족적 영웅을 시적인 이야기나 전설을 통해 찬미해 왔다. 이들 민족은 이런 인물의 탄생이나 성장기 이야기를 환상적인 필체로 미화한다. 그런데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따라서 서로 아무 관계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각 민족이 보유하고 있는 이야기는 놀라우리만치 비슷한 양상을 보이거나, 부분적으로는 그 한마디 한마디가 서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던 이런 현상에 주목해 왔던 것이다.
‘추방당한 아기’라는 신화적 주제가 적용될 역사적인 인물 중에 가장 오래된 인물은 바빌로니아의 시조인 사르곤(Sargon)이다. 이를 이어 시작되는 영웅 이야기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영웅은 모세, 키루스(Cyrus), 그리고 로마의 시조 로물루스(Romulus)다. 그러나 오토 랑크는 이런 이름 이외에도 서사시나 전설에 등장하는 무수한 영웅적인 인물을 소개하는 데 이들 영웅에게는 ‘아기 추방 모티프(기아설화, 棄兒說話)’의 테마가 그대로 되풀이 되거나 그중의 일부가 중복되거나 한다. 그런 영웅이 바로 오이디푸스, 카르나(Karna), 파리스(Paris), 텔레포스(Telephos), 페르세우스(Perseus), 헤라클레스(Heracles), 길가메시(Gilgamesh), 암피온(Amphion) 그리고 제토스(Zethos) 등이다.
큰 범주로 보면 헤롯 왕의 유아 학살을 피해 예수 가족이 이집트로 피신하는 성경의 내용과 이집트 신화에서 이시스가 자신들을 죽이려는 세트를 피해 그녀의 어린 아들을 데리고 도망하는 이야기도 포함시킬 수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주몽신화가 예가 되겠다. 또한 제우스의 탄생, 비슈누의 화신 크리슈나의 탄생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찾았다.
로마제국 쇠망사
– 에드워드 기번 / 강석승 역 / 동서문화사 / 2016.06.09
전설에 따르면 로마건국의 기초를 다진 사람은 트로이 사람 아이네아스(Aeneas)이다.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그리스군과 치열하게 싸우다 간신히 살아남았다. 성곽이 붕괴되던 밤, 그는 아버지와 아들을 데리고 탈출한다. 그 뒤, 유랑생활을 하다가 이탈리아에 도착해 마침내 라비니움이라는 도시를 세웠다. 그의 아들 아스카니우스(Ascanius)는 새로운 땅을 찾아 알바롱가(Alba longa)를 세우고, 여기서부터 왕통이 길게 이어졌다.
오늘날 학자들은 로마 남동쪽 24km에 위치한 카스텔 간돌포를 옛날 알바롱가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한편, 아스카니우스 이후 알바의 왕통은 아이네아스의 혈통과 상관없이 이어졌다. 아스카니우스로부터 13대째 왕 프로카(또는 프로카스)에게 왕자가 둘 있었다. 형 누미토르(Numitor)와 동생 아물리우스(Amulius)이다. 왕위계승권은 당연히 누미토르에게 있었다. 또한 그것이 프로카 왕의 의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아물리우스가 왕이 되었다.
부당하게 형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아물리우스는 이제 그 왕위를 지킬 수단을 강구해야만 했다. 누미토르의 아들을 그냥 놔두면 훗날 화의 근원이 될 것이 너무나 뻔했으므로 아물리우스는 그를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새 누미토르의 아들이 성인이 되었다. 아물리우스는 조카가 사냥갈때를 맞춰서 산속 깊은 곳에 미리 부하를 매복시켰다. 그리고 조카가 말을 타고 산속으로 들어오자, 조카를 살해하고 강도에게 당했다고 거짓소문을 퍼뜨렸다.
한편, 왕위에서 쫓겨난 누미토르는 알바롱가의 한적한 시골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는 자신과 자식들에게 가해지는 박해의 손길을 팔짱을 낀 채 바라보고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누미토르에게는 레아 실비아(Rhea Silvia)라는 딸이 하나 있었다. 마침내 그녀에게도 마의 손길이 뻗쳐왔다.
아물리우스는 형의 아들을 극도로 경계하여 결국 살해하고 말했지만, 조카딸 레아 실비아만큼은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갖가지 잔인한 방법을 써서 레아를 학대했다. 죽이는 것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어쨌든 아물리우스로서는 장래의 신변의 안전과 왕위 고수를 위해 만전을 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조카딸이 왕위를 빼앗을 염려는 조금도 없었지만, 그가 두려워한 것은 그녀가 아들을 낳을 경우였다. 이리하여 왕은 레아가 영원히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녀를 강제로 여신 베스타(Vesta, 헤스티아)의 제녀(祭女)로 만든다. 제녀란, 베스타를 섬기고, 그 제사 전통을 지키기 위한 모든 일을 해야만 하는 여사제를 말한다.
베스타의 제녀가 된 실비아가 어느 날 아침 제사도구를 씻기 위해 물을 푸러 나갔다. 좁은 길이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내려가는 둔덕에 다다른 그녀는 머리에 이고 있던 점토항아리를 내리고, 피곤했으므로 자기도 땅바닥에 앉아서 가슴께를 열고 미풍을 쐬고, 흐트러진 머리칼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쉬고 있으려는데 버드나무 그림자와 새들의 지저귐,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처녀를 잠으로 이끌었다. 달콤한 잠의 유혹을 견딜 수 없게 된 눈꺼풀은 살며시 잠겼고, 턱을 받치고 있던 손이 나른하게 풀려 비껴간다. 전쟁의 신, 마르스가 그녀를 보고 있다. 보고 있는 사이에 열정이 끓어올라 그녀를 자기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이 사랑의 절도를 신의 힘에 의해 속인다. 잠을 깨보니 처녀는 누워 있다. 몸이 무겁다. 즉, 이미 태내에는 수도 로마의 건설자가 잉태해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레아 실비아는 신의 혈통을 잉태한 몸이 된다. 그녀는 자신이 바랐든 바라지 않았든 간에 베스타의 제녀로서의 계율을 깨뜨리고 말았다.
잠에서 깨어난 실비아는 녹초가 되어 몸을 일으킨다. 자기도 왜 몸이 이렇게 녹초가 되어 일어나는지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버드나무 그림자에 싸여 자는 동안 꿈을 꾸었다. 나무에 기대어 그 이상한 꿈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 꿈에서 본 환영이 부디 유익하고 감사한 것이기를!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확실하지 않은가. 내가 이리온(트로이)의 불을 지키고 있을 때, 내 머리에서 털실로 짠 머리끈이 미끄러져 내려와서 존엄한 불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머리끈에서 두 그루의 종려나무가 자라난 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그중에 한 그루가 쑥쑥 자라나 그 육중한 나뭇가지가 전 세계를 뒤덮고, 꼭대기의 우듬지는 하늘, 아니 높은 별들에 닿았다. 그런데 거기서 나의 숙부가 이 두 그루의 종려나무에 도끼질을 하고 있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무서워서 지금도 심장이 떨린다. 마르스님의 새 딱따구리와 암컷 늑대가 쌍둥이 나무를 위해 싸우고, 그 덕분에 둘 다 살아났다.”
제녀는 기운을 다해 물을 가득 담은 항아리를 들어올렸다. 환영을 말하면서 물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에게는 꿈도 또한 신탁에 필적하는 것이었다. 실비아는 로물루스와 로마의 운명을 꿈이 알려주는 형태로 가르침 받은 것이다.
이리온의 불이란 것은 아이네아스가 트로이에서 베스타의 신상과 여신의 이마를 장식할 머리끈과 함께 영원한 불을 운반하여 로마에 전한 것을 가리킨다.
트로이가 함락되던 밤에 침대 곁에 서 있던 헥토르의 격려를 받은 아이네아스는 영웅의 환영이 사당 깊은 곳에서 가져온 신상과 그 밖의 것을 제단에 소중히 모시고, 자신은 불꽃을 헤치고 탈출했다. 그가 무사히 이탈리아로 가져온 그 성화가 그 뒤에 줄곧 지켜져 지금 베스탈리스들이 지키는 바가 된 것이다. 실비아의 꿈에 나타난 것은 이 불이다.
털실로 짠 머리끈은 베스타 제녀의 유니폼의 일부였다. 그 머리끈이 불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는 것은 레아 실비아가 남성신과의 교합에 의해 제녀로서의 자격과 권위를 상실했음을 상징한다.
떨어진 머리끈에서 자라난 두 그루의 나무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크게 자란 쪽이 로물루스임은 말할 것도 없다. 풍성한 가지와 잎으로 전 세계를 감싸고, 우듬지가 하늘에 닿는 등의 이야기는 로물루스가 로마를 일으키고 지배자가 되어 초인적인 높이에 이른다는 것을 나무에 비유하여 말하고 있다. 이 쌍둥이 형제와 아물리우스와의 갈등, 딱따구리와 늑대 등의 동물들은 각각 이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중요한 요소로서 꿈속에서 미래의 사건으로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베스타의 제녀로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레아 실비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디오니소스에 따르면 마르신은 실비아와 교합한 뒤에 신과 언약을 맺은 것이므로 한탄할 것 없다, 또 그 결과로서 용맹함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쌍둥이가 태어나리라고 말하여 이 처녀를 위로했다고 전해진다.
자기의 임신사실을 안 뒤에 실비아는 아프다는 핑계로 의식에 참가하지 않았다. 아물리우스는 실비아의 불참이 이상하게 길어지는 것에 의심을 품는다. 평소 신뢰하던 몇 명의 의사를 조카딸에게 보냈다. 그리고 그녀 주위의 여자들이 이 병은 타인에게 알려져선 안되는 성질의 것이라고 말했으므로 왕은 자기의 아내에게 조카딸을 감시하도록 명령했다. 왕비는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비밀을 감지하고 왕에게 알렸다. 그래서 아물리우스는 산달이 가까운 이 처녀가 남몰래 자식을 낳는 일이 없도록 무장병들에게 감시하게 했다. 그녀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비밀스러운 곳에서 출산하고, 아물리우스가 죽을 때까지는 햇빛을 볼 수가 없었다.
디오니소스가 묘사하는 아물리우스의 궁전은 독재자가 의원집단을 지휘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뭔가 일이 있으면 그는 의원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열고, 공공장소에서 자기 생각을 주지시켰다고 한다.
레아 실비아의 일에 대해서도 왕은 회의를 열었다. 아물리우스는 이 회의에 형을 불러다 놓고 그의 딸이 종교적 규율을 어기고 순결을 잃은 사실을 먼저 알리고, 이어 형 부부가 이 사건에서 딸과 공모한 것이 틀림없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죄를 저지른 상대 남자를 인도하도록 요구한다.
누미토르에게는 모든 것이 아닌 밤중에 홍두께였다. 그는 먼저 자기가 아무것도 모르며, 따라서 잘못이 없다고 항의하고, 진상을 밝히기 위한 시간을 요구했다. 아내는 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남편에게 소상히 말했다.
다음 회의에서 누미토르는 자기가 새삼스럽게 알게 된 사실을 밝혔다. 딸의 임신은 신의 사랑을 받은 결과이며, 그때 신이 쌍둥이 탄생을 예고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자기의 이 보고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출산 사실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의원 대부분은 누미토르의 필사적 변론에 수긍했다. 그러나 아물리우스는 형의 요구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이리하여 회의장에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출산을 감시하던 자들이 달려와서 쌍둥이의 탄생을 알렸다.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첫울음을 터뜨린 것이다. 그 뒤, 왕족 형제는 논쟁을 거듭했지만, 조카딸을 없애고 싶은 아물리우스의 결의는 굳어졌고, 의원들도 왕의 깊은 분노를 알고 영합했다. 즉 신분을 더럽힌 베스탈리스는 태형에 처해져 죽고, 아기는 강물에 버리라는 법규의 실시가 결정되었다.
갓 태어난 쌍둥이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강에 버려지기로 정해진 자에게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었으리라. 로물루스, 레무스란 이름은 그 아이들을 주워 기른 양치기가 붙인 것이다. 여기서는 이 쌍둥이 형제가 버려지고, 암컷 늑대와 딱따구리가 기르다가 이 양치기가 주울 때까지의 경위를 살펴보자.
갓 난 두 아기는 용모도 몸집도 수려했다. 두려움을 품은 아물리우스는 신하들에게 아기들을 내다버리라고 명령했다.
신하들은 쌍둥이를 통에 담아서 티베리스 강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마침 겨울비가 내린 뒤였으므로, 강물은 누런 소용돌이를 이루어 흐르고, 양쪽 기슭에 물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보통 때의 강바닥까지 내려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눈앞에 넘실대는 수면에 통을 띄웠다.
물결은 한동안 요동을 쳤지만, 이윽고 물이 빠져 통은 땅에 닿았다. 아기들이 버려진 곳은 파라티움 언덕 기슭이다. 티베리스에서 넘친 물이 언덕 기슭을 씻어내고 있었다. 가까이에는 우거진 숲이 있고, 그 속에 샘이 솟는 동굴이 있었다. 이것이 쌍둥이를 기른 암늑대의 집, 루페르칼이다. 또한 아기들을 태운 통이 닿은 기슭에는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가 서있었다.
예쁜 쌍둥이 아기들은 울어 젖히기 시작했다.
그때, 새끼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암늑대가 다가왔다. 암늑대는 머뭇거림 없이 잔뜩 불은 젖을 아기들에게 물리고, 동시에 그들의 몸에 묻은 진흙을 혀로 햝아 주었다. 그곳에 목초지로 가축을 몰고 나가는 양치기들이 지나간다. 그중에 하나가 이 광경을 보고 자기 눈을 의심한다. 그는 동료에게 다가가 이 모습을 말하지만 상대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을 데려와 자기 눈으로 확인하게 한다. 암늑대는 두 아기를 마치 새끼처럼 애무하고, 갓난아기도 실제 엄마에게대하는 것처럼 암늑대를 따르고 있다. 양치기들은 있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일제히 앞으로 나아가 짐승에게 겁을 주려고 소리를 친다. 암늑대는 이 도발에 개의치 않고 가축처럼 얌전하게 아기들 곁을 떠나간다.
그 근처에는 울창하게 나무들이 우거진 신성한 숲과, 샘이 솟는 바위가 있었다. 암늑대는 이 숲으로 가서 바위 동굴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암늑대가 사라지자 양치기들은 아기들을 안아 올린다. 두 생명을 구하는 것은 신들의 의지에 적합하다고 확신하고, 그들을 키우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아기들은 왕가의 가축지기 파우스트루스의 집에서 자라게 된다.
그 뒤, 늠름하게 성장한 쌍둥이는 자신들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양치기들을 규합하여 아물리우스 왕을 타도한다. 왕위를 되찾은 형제는 자신들이 자라난 티베리스 강변에 새로운 도시를 세웠다. 그것이 로마의 기원(기원전 573년)이다.
신화의 이미지
– 조지프 캠벨 / 홍윤희 역 / 살림 / 2006.02.15
<마태복음>에 자세히 나와 있는, 헤롯 왕의 유아 학살을 피해 예수 가족이 이집트로 피신하는 전설은 이집트 신화에서 이시스가 자신들을 죽이려는 세트를 피해 그녀의 어린 아들을 데리고 도망하는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이 두 가지 전설은 세계의 민간 전승을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널리 알려진,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아기추방 모티프의 테마 중 두 가지 일화일 뿐이다. 프로이트의 초기 협력자였던 오토 랑(Otto Rank)은 그의 유명한 연구서 『영웅 탄생의 신화(The Myth of the Birth of the Hero)』(1922)에서 이 일반적인 테마에 관한 70개 정도의 예(여기에 수천 개는 더 더해질 수 있을 것이다)를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 본질적 요소를 밝히고 논의하였다.
1. 아기는 고귀하며 신성한 부모의 혈통이거나, 신과 지상의 처녀 사이에서 태어난다.
2. 탄생 과정에는 매우 이례적인 난관들이 수반되는데, 이 난관들은 보통 자신의 아버지이거나, 잔인한 삼촌이나 왕처럼 아버지의 대리격이 아이에게 살의를 품으면서 생겨난다.
3. 아기는 버려지거나 어딘가로 보내지거나 유괴되는데, 홀로 버려지기도 하고 그 어머니와 함께 버려지기도 한다.
4. 버려진 아이가 구출된다. 동물에 의해 구출되거나 대개는 시골에 사는 평범한 사람에 의해 구출된다.
5. 결국 청년이 되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영웅은 자신의 아버지( 또는 삼촌, 왕)를 타도하고 스스로 아버지가 차지하고 있던 지위에 오르거나, 아버지와 화해하고 아버지의 과업을 완수한다.
종교의 기원
– 지그문트 프로이트 / 이윤기 역 / 열린책들 / 2004.02.25
…… 그 까닭은 신화가 영웅을 고귀한 신분으로 인증하는 것은 물론 그 사회적 지위를 드높이는 데도 이용되기 때문이다. 가령 메디아 인들에게 키루스는 이방에서 온 정복자이지만 여기에다 기아 설화(棄兒說話) 한 토막을 끼워 넣으면 메디아 왕의 손자로 둔갑하기도 하는 것이다. 로물루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일에 로물루스 같은 인물이 실존했다면 그는 출신 성분 미상의 벼락 출세한 모험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설은 그를 알바 롱가(Alba Longa) 왕가의 후예이자 그 계승자로 만들었다.
기원 전후 천년사, 인간 문명의 방향을 설계하다
– 마이클 스콧 / 홍지영 역 / 사계절 / 2018.08.03
…… 공화국은 로마인들이 폭군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아테네인들은 기원전 510~509년에 참주를 축출했다. 고대 그리스인 역사가에게 이것은 꽤나 마음에 드는 우연의 일치였다.
고대 역사가들은 이 날짜를 기준으로 로마 왕들의 통치 기간을 역산한 끝에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의한) 로마 건국연도를 기원전 813년에서 729년 사이로 추산했다. 파비우스는 기원전 747년일 것으로 추정했으나, 최종적으로 기원전 1세기에 활동한 작가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에 의해 기원전 753년 – 그리스 역사의 ‘시작점’인 첫 올림피아 제전이 열렸던 기원전 776년과 비슷한 시점 – 으로 ‘밝혀졌다’. 그리하여 로마가 지중해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던 시기에 활동한 역사가들이 희망했던 대로, 로마 역사는 그리스와 로마 사이의 문화적 · 정치적 유사성 위에서 확정되었다.
로마 초기의 왕정과 공화국 수립에 관한 역사는 기원전 2세기부터 특히 그리스어를 사용하고 그리스에 주목한 역사가들이 그리스라는 렌즈를 통하여 바라본 관점에 따라 구성되었다. …… 수세기가 흐른 후에도 그리스와 로마의 연결 고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로마의 왕들은 그리스 도시 코린토스 귀족의 후손이라거나 그리스인 지식인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는 얘기가 언급된다. 로마의 건국 자체도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의해 펠레폰네소스반도의 아르카디아의 그리스 식민지로 건설되었다거나, 혹은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와 마녀 키르케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세계 역사의 관찰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 안인희 역 / 휴머니스트 / 2008.06.02
예술과 시문학으로부터 이제는 본질적으로 예술과 문학 덕분에 삶을 얻은 저 위대함으로 넘어가 보자. 곧 신화의 인물들이다. 이어서 우리에게 서술된 것과는 달리 전혀 서술되지 않았거나 완전히 다르게 존재한 인물들, 곧 이상적인 또는 이상화된 남자들이 온다. 그들은 민족의 조상 또는 창설자로서 각 민족들의 선두에 서 있거나 민족의 상상력이 사랑하는 모습으로서 민족의 영웅시대로 옮겨진 사람들이다. 그 때문에 이들을 그대로 건너뛸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사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새로 창조하는 이 장 전체가, 각 민족들이 가진 위대한 대표자에 대한 욕구의 가장 강력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는 빛이 바랜 신들이고, 여러 신들의 아들들이며, 지리적 · 정치적 추상화인 저 신화의 영웅들이 여기 속한다. 그것도 무엇보다 한 민족에게 이름을 준 영웅이자 수장들은 그 민족의 통일성에 대한 신화적 대변자들이다.
그들은 (특히 이름 영웅들) 거의 술어가 없거나 노아와 이스마엘, 헬렌, 투이스토, 마누스 등의 경우처럼 오직 극소수의 증인들만을 통해 창설자로 여겨진다. 그들을 다우었을지도 모르는 노래들은(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에 따르면 투이스토와 마누스의 경우가 그러한데) 없어졌다.
또한 그들의 생애 이야기는 아브라함, 잠시드, 테세우스, 로물루스와 그의 보충인 누마 폼필리우스 등의 경우처럼 상징적으로나마 민족 역사의 한 조각, 곧 민족의 가장 중요한 기관을 포함한다.
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 로물루스
– 네이버 지식백과 / 안성찬, 성현숙, 박규호, 이민수, 김형민
–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97767&cid=58143&categoryId=58143
탄생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아이네이아스의 후손인 누미토르의 딸 레아 실비아가 낳은 쌍둥이 형제다. 알바롱가 왕국의 13대 왕인 프로카스의 맏아들이었던 누미토르는 부왕에 뒤이어 왕위를 물려받았지만 동생 아물리우스에 의해 왕좌에서 쫓겨났다. 아물리우스는 자신의 왕위 찬탈에 대한 후환을 없애기 위해 누미토르의 아들들을 모두 죽이고 딸 레아 실비아는 베스타 여신의 사제로 만들었다. 베스타 여신을 모시는 사제는 평생 처녀로 지내야 하므로 누미토르의 후손이 태어날 염려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레아 실비아는 제단에 바칠 물을 길러 신성한 숲으로 갔다가 마르스를 만나 그와 사랑을 나누었다(일설에는 그녀가 잠든 사이에 마르스가 겁탈하였다고도 한다). 얼마 후 그녀가 쌍둥이 아들을 낳자 아물리우스는 두 아이를 티베리스 강에 내다버리게 하였다. 아물리우스의 시종들은 쌍둥이를 광주리에 넣어 강물에 띄워 보냈다. 하지만 홍수로 강물이 불어 광주리는 바다로 흘러가는 대신 상류인 팔라티누스 언덕 기슭에 있는 무화과나무 아래로 밀려갔다. 거기서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암늑대에게 발견되었는데, 암늑대는 두 아이를 자기 새끼들과 함께 젖을 먹여 돌보았다. 일설에 따르면 이 늑대는 마르스가 자기 자식을 위해 보낸 것이라고 한다. 또 딱따구리도 날아와 암늑대와 함께 아이들을 보살폈다(늑대와 딱따구리는 마르스에게 바쳐진 동물이다).
얼마 뒤 두 아이는 왕의 가축들을 돌보는 목동 파우스툴루스에게 발견되었다. 파우스툴루스는 두 아이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자식처럼 키웠다. 일설에 따르면 두 아이는 목동 파우스툴루스의 아내 아카 라렌티아가 젖을 먹여 키웠는데, 그녀는 부정한 행실 때문에 ‘암늑대’라는 별명을 얻고 있었다고 한다. 라틴어로 암늑대는 창녀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편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어머니 레아 실비아는 동정을 지켜야 하는 계율을 어긴 죄로 산 채로 매장되었다고도 하고, 티베리스 강에 던져졌지만 강의 신 티베리누스에게 구출되어 그와 결혼하고 강의 여신이 되었다고도 한다.
알바롱가의 왕을 죽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두 아이는 파우스툴루스의 집에서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파우스툴루스는 두 아이를 라티움의 중심지인 가비이에 보내 공부도 시켰다고 한다. 공부를 마치고 고향인 팔라티누스의 마을로 돌아온 두 형제는 어느 날 누미토르의 목동들과 싸움이 붙었다. 로물루스가 그들에게서 빼앗은 양떼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이에 레무스는 다시 공격해온 누미토르의 목동들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누미토르는 레무스를 심문하다가 이들 쌍둥이 형제가 자신의 손자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이상의 증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한편 뒤늦게 레무스가 붙잡혀간 사실을 알게 된 로물루스는 파우스툴루스와 함께 동생을 구출하기 위해 누미토르의 집으로 갔다. 이 과정에서 누미토르는 파우스툴루스로부터 쌍둥이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 듣고 그들이 레아 실비아가 낳은 자신의 손자들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출생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젊은이들을 규합하여 아물리우스의 궁전으로 쳐들어가 왕을 죽이고 원수를 갚았다.
로마의 건설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알바롱가의 왕권을 정당한 왕위계승자인 누미토르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떠났다. 두 형제는 자신들이 목동에게 처음 발견되었던 장소에 도시를 건설하기로 뜻을 모았다. 하지만 누가 그 일을 지휘할 것인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그래서 두 형제는 각자가 선택한 지점에서 하늘을 나는 새들을 통해 신들의 뜻을 묻기로 하였다. 그 결과 레무스는 아벤티누스 언덕의 전망 좋은 지점에서 여섯 마리의 독수리가 하늘을 나는 것을 보았고, 로물루스는 팔라티누스 언덕에서 열두 마리의 독수리를 보았다.
신들의 선택을 받은 로물루스는 즉시 황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로 고랑을 파서 도시의 경계를 정하고 흙으로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늘이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화가 난 레무스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성벽을 훌쩍 뛰어넘으며 이렇게 빈약한 벽으로 어떻게 도시를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 로물루스를 비웃었다. 그러자 동생의 모독에 분개한 로물루스는 단칼에 레무스를 죽이고는 ‘나의 성벽을 뛰어넘는 자는 누구나 이렇게 되리라’고 외쳤다고 한다(또 다른 설에 의하면 레무스는 로물루스의 작업을 조롱하다 그의 부하인 케레스가 휘두른 곡괭이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레무스의 장례식 때 로물루스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였으며, 심지어 낙담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까지 했다고 한다. 레무스는 아벤티누스 언덕에 묻혔다.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도시를 건설한 뒤 로물루스는 부족한 주민을 보충하기 위해 새 도시를 도망자와 망명자들의 피난처로 제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는 젊은 남자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범법자이거나 달아난 노예들인 이들 새 이주자들은 이웃나라로부터 별로 호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아내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물루스는 이웃나라 사비니 족의 여자들을 훔쳐올 계획을 세웠다.
그는 팔라티누스 언덕과 아벤티누스 언덕 사이의 골짜기에서 대대적인 콘수스 축제(농업축제)를 열고 인근 지역의 주민들을 초대하였다. 그리고 부하들에게 신호가 떨어지면 젊은 여자들을 모조리 납치하고 남자들은 쫓아버리게 하였다. 이때 납치된 사비니 여인들은 수백 명에 이르렀다(일설에 납치된 사비니 여인들은 로물루스의 아내가 된 헤르실리아 한 명만 유부녀고 나머지는 모두 처녀였다고 한다).
졸지에 딸들을 빼앗긴 사비니 인들은 티투스 타티우스 왕을 중심으로 군대를 조직하여 로마로 쳐들어왔다. 로물루스는 점점 패색이 짙어지자 유피테르(제우스)에게 형세를 역전시켜 달라고 기도하면서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그 자리에 신전을 지어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로물루스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싸움터에 갑자기 사비니 여인들이 나타나더니 남편과 아버지가 서로 죽이고 있는 꼴을 더 이상 잠자코 볼 수가 없다며 눈물로 화친을 호소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양측의 휴전협정이 성사되었다. 그 후 로물루스와 티투스 타티우스 왕은 두 민족을 하나로 합치고 로마를 수도로 하는 연방 국가를 수립하여 공동의 통치자가 되었다. 타티우스 왕이 죽은 뒤 로물루스는 로마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다.
로물루스의 죽음
로물루스는 그 후 33년 동안 로마를 다스리며 나라를 발전시켜 ‘조국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다. 로물루스의 통치는 기이한 방식으로 끝이 났다. 그가 ‘마르스 평원’에서 군대를 사열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일식과 함께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쏟아졌는데 날이 개이고 보니 왕이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로물루스가 신이 되었다고 믿었다. 그 후 율리우스 프로쿨루스라는 로마인이 꿈에서 로물루스를 보았는데 신들이 자신을 데려갔다고 말하더라고 했다. 또 로물루스는 자신이 퀴리누스 신이 되었다면서 퀴리날리스 언덕에 자신을 위한 신전을 지어줄 것도 당부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역사가들 중에는 로물루스 왕의 지나친 인기를 우려한 원로원이 왕을 제거한 뒤 민심을 달래기 위해 그와 같은 이야기를 지어낸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관련 사진>
–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마의 상징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오랫동안 BC 5세기에 에투루리아인(人)이 만든 것으로 믿었으며, 쌍둥이의 모습은 15세기에 조각가 안토니오 폴라이올로(Antonio Pollaiolo)가 덧붙인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2008년 방사성 탄소에 의한 연대측정 결과 13세기에 만들어졌다는 결론이 나왔다. 카피톨 언덕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박물관인 카피톨리니 박물관(1473)의 콘세르바토리 궁전(Palazzo dei Conservatori)에 소장되어 있다.
– 양치기들에게 발견된 로물루스와 레무스 (오스티아Ostia 출토, 로마 마시모 궁전 국립박물관Palazzo Massimo alle Terme)
– 마르스와 레아 실비아 (Rubens, 1617)
–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오두막의 아내에게 데려오는 파우스툴루스 (Nicolas Mignard, 1654)
– 사비니의 여인들 (자크 루이 다비드, 1799)
– 로물루스 인물관계도
<관련자료 및 참고자료>
네이저 지식백과(그리스로마신화 인물백과) : 로물루스
https://en.wikipedia.org/wiki/Romulus_and_Remus
https://en.wikipedia.org/wiki/Romu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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