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건국 – 기원전 753년

로마 건국 원년(Ab urbe condita)은 초대 로마왕 로물루스(Romulus)가 고대 로마를 창립한 해로, 전통적으로 기원전 753년을 원년으로 삼는다. 기원전 753년이라는 연대는 500년도 더 지난 뒤의 로마 학자들이, 솔직하게 말해 신빙성이 없는 복잡한 계산을 수없이 한 끝에 얻은 숫자다.

 

기원전 509년 로마 공화국은 로마인들이 폭군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아테네인들은 기원전 510~509년에 참주를 축출했다. 고대 그리스인 또는 그리스어로 글을 쓴 로마인 역사가에게 이것은 꽤나 마음에 드는 우연의 일치였다. 고대 역사가들은 이 날짜를 기준으로 로마 왕들의 통치 기간을 역산한 끝에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의한 로마 건국연도를 기원전 813년에서 729년 사이로 추산했다.

 

파비우스(Quintus Fabius Pictor)는 기원전 747년일 것으로 추정했으나, 최종적으로 기원전 1세기에 활동한 작가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Marcus Terentius Varro)에 의해 기원전 753년 – 그리스 역사의 ‘시작점’인 첫 올림피아 제전이 열렸던 기원전 776년과 비슷한 시점 – 으로 ‘밝혀졌다(?)’. 그리하여 로마가 지중해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던 시기에 활동한 역사가들이 희망했던 대로, 로마 역사는 그리스와 로마 사이의 문화적 · 정치적 유사성 위에서 확정되었다.(그리스 역사가들은 전통적으로 로마가 그리스에 의해 설립되었다고 주장했다.)

 

※ 옐로우의 세계사 연표 : http://yellow.kr/yhistory.jsp?center=-753

 

우리에게 알려진 로마의 창립은 전설과 신화들뿐이다. 로마의 모든 신화 중 가장 친숙하고 유명한 것은 ‘로물루스와 레무스’ 이야기이다. 전설에 따르면, 로마는 기원전 753년 고대 그리스의 영웅인 아이네아스의 후예이자 전쟁의 신 마르스의 쌍둥이 아들로 태어난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에 의해 테베레 강가에서 동쪽에 위치한 로마의 일곱 언덕 가운데 하나인 팔라티노 언덕 위에 건설되었다.

※ 로물루스와 레무스 – 로마 건국 신화 : http://yellow.kr/blog/?p=3925

 

로마 초기의 왕정과 공화국 수립에 관한 역사는 기원전 2세기부터 특히 그리스어를 사용하고 그리스에 주목한 역사가들이 그리스라는 렌즈를 통하여 바라본 관점에 따라 구성되었다. 수세기가 흐른 후에도 그리스와 로마의 연결 고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로마의 왕들은 그리스 도시 코린토스 귀족의 후손이라거나 그리스인 지식인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는 얘기가 언급된다. 로마의 건국 자체도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의해 펠레폰네소스반도의 아르카디아의 그리스 식민지로 건설되었다거나, 혹은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와 마녀 키르케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탈리아 반도의 중간, 서해안으로 흐르는 테베레(Tiber, 옛 이름은 티베르)라고 불리는 강이 있다. 로마 건국 신화에 나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버려진 곳이 티베르 강이었고, 역사적으로 티베르 강은 로마 제국이 있게 했던 뿌리이다.

 

티베르 강 남쪽에있는 해안 평야는 고대에 라티움(Latins)이라고 불렸다. 이곳은 이탈리아반도에 침입한 인도유럽어족 중의 이탈리아인 일파인 라틴인이 BC 1000년경에 남하하여 정주한 지역으로 고대 로마의 발상지이다. 라틴인은 티베르강 하류에 로마를, 알바니산(山) 구릉지대에 알바롱가(Alba Longa) · 토스쿠룸 등의 도시국가를 건설하고, 처음에는 알바롱가를 중심으로 도시동맹을 결성하였으나, 그 후에 주도권이 로마로 넘어갔다. 다음에는 로마를 제외한 라틴인의 동맹이 결성되어 로마와 다투었지만, BC 338년에 해체되어 로마의 패권이 확립되었다.

 

티베르 강의 왼쪽 강둑에는 7개의 낮은 언덕이 있고, 이 지점에서 강은 얕고 건너기가 쉬웠다. 라틴 상인들은 강 북쪽의 부유한 에트루리아 인(Etruscans)과 교역하기 위해, 7개의 언덕 중 팔라티노(Palatine)라 불리는 언덕에 마을을 세웠다. 이후 다른 언덕에도 정착지가 세워졌으며, 마침내 7개의 언덕에 있는 정착지가 하나의 도시인 로마를 만들기 위해 합쳐졌다.

 

 

티베르 강은 자연의 경계였으며 언덕은 다른 쪽에서 안전한 방어 위치를 제공 할 수있었다. 더욱이 로마는 사비나(Sabinum)(북동쪽)와 에트루리아(Etruria)(북서쪽)의 교차로에 위치한 교통 요충지였다

 

476년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다.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는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Romulus Augustulus)이다. 로마는 로물루스에서 시작해서 로물루스로 끝이 났다.

 

기원전 800년과 기원전 500년 사이에 기후가 바뀌면서 북유럽과 서유럽에서는 인구가 감소했지만 지중해에서는 증가했다. 그리스의 폴리스와 로마와 같은 이탈리아 도시국가 등장의 배경이 될 것도 같다.

 


기원 전후 천년사, 인간 문명의 방향을 설계하다

–  마이클 스콧 / 홍지영 역 / 사계절 / 2018.08.03

 

…… 공화국은 로마인들이 폭군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아테네인들은 기원전 510~509년에 참주를 축출했다. 고대 그리스인 역사가에게 이것은 꽤나 마음에 드는 우연의 일치였다.

고대 역사가들은 이 날짜를 기준으로 로마 왕들의 통치 기간을 역산한 끝에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의한) 로마 건국연도를 기원전 813년에서 729년 사이로 추산했다. 파비우스는 기원전 747년일 것으로 추정했으나, 최종적으로 기원전 1세기에 활동한 작가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에 의해 기원전 753년 – 그리스 역사의 ‘시작점’인 첫 올림피아 제전이 열렸던 기원전 776년과 비슷한 시점 – 으로 ‘밝혀졌다’. 그리하여 로마가 지중해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던 시기에 활동한 역사가들이 희망했던 대로, 로마 역사는 그리스와 로마 사이의 문화적 · 정치적 유사성 위에서 확정되었다.

로마 초기의 왕정과 공화국 수립에 관한 역사는 기원전 2세기부터 특히 그리스어를 사용하고 그리스에 주목한 역사가들이 그리스라는 렌즈를 통하여 바라본 관점에 따라 구성되었다. …… 수세기가 흐른 후에도 그리스와 로마의 연결 고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로마의 왕들은 그리스 도시 코린토스 귀족의 후손이라거나 그리스인 지식인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는 얘기가 언급된다. 로마의 건국 자체도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의해 펠레폰네소스반도의 아르카디아의 그리스 식민지로 건설되었다거나, 혹은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와 마녀 키르케 사이에서 태어난 자손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

기원전 1세기 중엽에 공화국 최후의 위기가 닥쳐오자, 많은 역사가들은 로마 초기 역사를 저술하는 데로 관심을 돌렸다. 예를 들어 메가스테네스의 저서와 그가 묘사한 인도를 최초로 인용한 (‘시칠리아의’)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는 당시 전해 내려오는 세계의 신화와 역사를 지리와 시대별로 개관한 40권에 달하는 대작을 남겼다(당대 로마의 역사로 마무리된다). 기원전 1세기 말엽에 할리카르나소스의 디오니시오스는 로마의 기원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의 역사를 다룬 저작을 남겼다(그도 로마의 기원을 그리스로 봤다). 그리고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티투스 리비우스가 집필한 142권짜리 대작 『도시가 세워진 이래(Ab Urbe Condita』도 이 시기의 작품이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이언 모리스 / 최파일 역 / 글항아리 / 2013.05.27

 

로마는 주변부의 식민화와 사회발전이 결합해 어떻게 핵심부를 확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실례다. 로마는 기원전 8세기 이후로 그리스에 강하게 영향을 받아왔지만 주변 지역과의 국지적 대립을 통해 강력해졌으며 고가와 저가 전략이 묘하게 결합된 조직을 창조했다. 귀족적인 원로원이 커다란 사안을 대부분 결정한 반면, 중간층 자영농이 지배적인 민회는 전쟁과 평화와 관련한 사안에 투표했다. 진나라처럼 로마도 고가 국가로 이행하는 데 더뎠다. 기원전 406년에야 병사들에게 봉급을 지불하기 시작했고, 아마도 그 시기에 처음으로 조세제도를 마련했던 것 같다. 수 세기 동안 로마 정부의 예산은 대체로 약탈에 의존했고 패배한 적에게 세금을 물리는 대신 그들과 거래를 하여 더 많은 전쟁을 치를 병사를 얻어냈다.

 


황금가지 1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 박규태 역 / 을유문화사 / 2005.06.01

 

신빙성 있는 어떤 전승에 의하면, 로마는 알바롱가에서 이주해온 주민들에 의해 그 기초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알바롱가는 호수와 캄파냐 평원이 내려다보이는 알바 언덕의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로마 왕이 스스로를 천공신이자 우레신이고, 동시에 떡갈나무의 신이기도 한 유피테르의 대리자 혹은 그 화신임을 주장했다고 한다면, 그런 로마의 기초를 마련한 저 알바의 왕들 또한 로마 왕보다 앞서 그와 동일한 주장을 했으리라고 생각해볼 만하다. 가령 알바 왕조는 ‘실비(Silvii, 숲)’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시인이자 고고학자이던 베르길리우스가 묘사한 환상, 즉 저승에서 아이네아스(Aeneas)에게 계시된 영광스런 로마 역사의 환상에서 실비(알바) 왕조의 모든 왕들이 떡갈나무 잎 화관을 쓴 채 등장한다는 사실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 떡갈나무 잎 화관은 옛날에 알바롱가 왕들의 휘장이었으며, 그들의 계승자인 로마 왕들의 휘장 가운데 하나였다고 보인다. 두 경우 모두 떡갈나무 잎 화관은 떡갈나무 신인 유피테르를 나타내는 구체적 표현으로서 왕들에게 특별한 성격을 부여했던 것이다.

 


기후의 문화사

–  볼프강 베링어 / 안병옥, 이은선 역 / 공감IN / 2010.09.10

 

기원전 800년경에 있었던 기온급락은 고고학적인 발굴에 의해 확인되었으며, 이후 고생물학자들에 의해서도 입증되었다. 고고학자들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기온급락을 전후해 중부유럽에서는 매우 다양한 문화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

문헌에서 ‘할슈타트 재앙’으로 묘사되곤 하는 기원전 800년경의 기후변화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유럽인들의 대규모 이동을 강제했음이 틀림없다. 이 시기 인구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땅을 소유하는 것이 어떤 마찰도 없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철광산과 소금 확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교통로의 이설 또한 불가피해지면서 사람들은 주거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기원전 800년경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기온급락은,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이주와 함께 격렬한 대립을 불러일으켰다. 이집트는 파라오 타켈로트 2세(Takeloth II, 기원전 860~835) 이후 정치적으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데, 이는 결국 이집트제국의 멸망과 끊임없는 내전으로 귀결된다. 지금까지 이 시기의 무정부적인 상황을 기후변화와의 관계속에서 해석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기원전 7세기 이집트의 경제부흥기에 세워졌던 비문은, 나일강 홍수를 축복으로 가득찬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보면, 경제부흥기 이전의 이집트가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서늘한 여름과 온화하고 비가 많은 겨울로 대변되는 서브애틀랜틱기의 습하고 서늘한 기후는, 예수가 탄생할 때까지, 다시 말해서 로마 도시왕국과 로마공화국을 아우르는 시기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 지하수위는 오늘날보다 높았을 것이며, 북아프리카의 오아시스들은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생활기반을 제공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북아프리카가 왜 로마제국의 곡식창고가 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 주는 열쇠를 발견하게 된다. 로마공화국의 문화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의 도시국가들과 함께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유리했던 기후 덕분이었다.

 


기후의 문화사

–  볼프강 베링어 / 안병옥, 이은선 역 / 공감IN / 2010.09.10

 

…… 기원전 800년경 유럽의 기후는 갑자기 서늘해지고 상당히 습해졌다. 그러자 목축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한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 무렵 북쪽의 대륙성 기후대와 지중해성 기후대를 구분하는 추이대는 멀리 남쪽의 북아프리카로 이동했다. 이후 500년 동안 현재 프랑스와 독일 남부는 겨울이 몹시 추우면서 습한 해양성 기후와 건조한 대륙성 기후가 뒤섞인 변화무쌍한 환경이었다.

 

북유럽 전설에는 ‘핌불 겨울’이 나온다. 늑대가 해와 달과 별을 모두 집어삼켰다는 전설의 시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이야기는 아마 이 시기의 호된 기후 변동의 기억이 민간에 전승되어 생겨났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추위는 기원전 850년 넓은 지역을 동시에 덮쳤다. 이때는 마침 태양의 흑점 활동이 급격히 위축되어 우주선(宇宙線) 유입량이 증대하고 대기 중에 탄소 14(탄소의 방사성 동위원소)의 생산량이 늘어난 시기다. 이 모든 변화는 태양 활동의 위축을 말해준다.

 


<관련 사진>

 

– 로마의 7개 언덕 : 팔라티노, 캄피돌리오, 퀴리날레, 비미날레,에스퀼리노, 첼리오, 아벤티노

 

 

– 로마 테베르 강의 산탄젤로 다리(Ponte Sant’Angelo)

 


<관련자료 및 참고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Ab_urbe_condita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 라티움

https://en.wikipedia.org/wiki/Latins_(Italic_tribe)

https://en.wikipedia.org/wiki/Alba_Longa

http://www.thelatinlibrary.com/historians/narrative/romanhistory.html

로마 건국 – 기원전 7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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