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의 행정 구역 – 삼국지 자료

< 후한 13주 >

 

한대(漢代) 초기에는 군현제와 봉건제가 혼합된 군국제(郡國制)를 실시하였으나 한무제 시기에 이르면 사실상 유명무실화되고 군현제가 자리잡았다.

후한의 행정 구역은 중국 전역을 13개의 주(州)로 나누고 각 주에 자사(刺史)를 파견하여 실무를 담당하는 관리의 감찰을 맡게 했다. 주 밑에 군(郡)과 국(國)을 두었다. 군태수(太守)는 지방 행정의 중추를 구성하는 군의 통치자였는데, 관리를 천거하고 범죄를 단속하며 전시에는 군대의 지휘권도 주어졌으므로 태수를 하다 자립한 장수가 많았다. 주자사(州刺史)가 군태수를 관리하는 입장이었으나 태수보다 지위도 낮고 군사 기반도 없었다. 그러나 황건의 난 등으로 혼란에 빠지자 군사력을 동원하는 등 자사의 권한을 강화한 주목(州牧)이 등장했다. 위 · 오 · 촉한 모두 자사 혹은 목을 두었다.

군 밑의 현(縣)에는 현령(縣令) 혹은 현장이라는 행정관이 배치되었다.

 

※ 옐로우의 삼국지 역사지도 : http://yellow.kr/sammaps.jsp

 

 

1. 사례(司隸)

◎ 사예교위부(司隸校尉部)는 한나라 당시 사예교위(司隸校尉)가 관장하며 행정을 감독하는 지역을 일컫는다. 삼국 시대 이후에는 사주(司州)라고 불렸으며, 경조윤(京兆尹)과 하남윤(河南尹)이 각각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을 다스렸다. 7개 군 106개 현.

◎ 낙양(洛陽) : 허난 성 뤄양 시

 

2. 예주(豫州)

◎ 예주는 중국 역사상의 옛 행정 구역이며, 중심지는 초현(譙縣, 패군)이다. 6개 군국 99개 현. 현재의  안후이성, 허난성 일대. 허창이 여기 있었다. 조조를 비롯한 조씨, 하후씨 일족의 출신지인 초 또한 이곳. 연주와 같은 하남 일대의 핵심. 특히 소속 고을인 ‘영천군'(허창은 이 영천의 속현)은 재사들이 엄청나게 모여 있던 터전(고향)이었다. 유비가 예주목 지위를 가지고는 있었으나 실권은 없는 명예직. 213년 하남윤이 예주로 편입되고 하남군이 된다.

◎ 초현(譙縣) : 현재의 안후이 성 보저우 시

초현은 예주의 주도이다. 위 · 서진에서도 예주의 중심도시가 됐다. 조조의 출신지로 당연히 하후일족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적벽의 패전후, 조조는 오에 대한 공격지점을 형주에서 동방의 유수구, 합포방면으로 옮기는데, 초는 그 원정시의 출발점, 위의 수군 근거지가 됐다. 조비가 제위에 오르자, 초는 위의 오도중 하나가 됐다.

 

3. 기주(冀州)

◎ 기주는 현재의 허베이 성 중남부와 산둥 성 서부, 허난 성 북부에 존재한 후한 13주 중 한 지역이며, 9개 군국 100개 현. 중심지는 고읍(高邑, 상산국)이다. 조위말엽 중심지가 안평군 신도현으로 옮겨졌다. 이후 수나라부터 주현제가 실시될때는 안평군이 기주로 대체되었다.

기주목  한복이  공손찬과  원소의 공격으로 몰락한 다음에는  공손찬과  원소가 패권을 놓고 대립하다가  원소가 공손찬을 물리치고 주요 거점으로 삼는다.

◎ 고읍(高邑) : 현재의 허베이 성 스자좡 시 가오이 현

 

4. 연주(兖州)

◎ 연주는 현재의 산둥 성 서남부와 허난 성 동부에 존재하였고 8개 군국 80개 현. 중심지는 창읍(昌邑, 산양군)이다. 순욱이 “천하의 중심”이라며 극찬한 곳. 연주목으로 추대된 뒤에는  조조의 거점이다.

◎ 창읍(昌邑) : 현재의 산둥 성 지닝 시 진샹 현

 

5. 서주(徐州)

◎ 서주는 현재의 산둥 성 동남부와 창 강 북부의 장쑤 성 일대에 존재하였고 5개 군국 63개 현. 중심지는 담현(郯縣, 동해국)이다. 도겸이 차지하고 있다가 잠시  유비가 차지하고 그 뒤에는 여포가 먹었다가 조조에게 빼앗긴다. 잠시 또 유비가 차지하지만 다시 조조에게 빼앗기고 그 뒤로는 쭉 조조의 영토가 된다.

◎ 담현(郯縣) :  현재의 산둥 성 린이 시 탄청 현

 

6. 청주(青州)

◎ 청주는 동남부를 제외한 현재의 산둥 성 일대에 존재하였고 6개 군국 65개 현. 중심지는 임치(臨淄, 제국)이다. 공손찬의 지배하에 있을 때는  공융과  전해가 다스렸으며, 원소의 지배하에 있을 때는 원담의 영토였다. 조조의 2대 특수부대 중 하나 청주병은 여기서 발호한 황건적에서 차출되어 시작되었다.

◎ 임치(臨淄) : 현재의 산둥성 쯔보시 린쯔구

 

7. 형주(荊州)

◎ 형주는 장강(양쯔강)의 중류에 위치하여 풍부한 수자원과 수운 활동으로 경제가 번성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형주의 중심지는 한수(漢壽, 무릉군) · 양양(襄陽, 남군)이다. 7개 군 117개 현.

삼국지시대의 화약고인 형주를 두고 여러 세력의 형주 공방전이 벌어졌다. 현재 형주라는 이름은 과거에 강릉이었던 도시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 한수(漢壽) : 현재의 후난 성 창더 시 한서우 현 -> 양양(襄陽) : 현재의 후베이 성 샹양 시

190년(초평 원년) 형주자사 왕예가 장사태수 손견에게 살해당하여 그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소대(蘇代)가 장사에서 일어나 패우(貝羽)를 화용현장(華容―)으로 삼는 등 장강 이남의 토호들이 할거하는 바람에 장강 이남에 있는 본래 형주의 주도(州都) 무릉군 한수현(漢壽縣)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홀로 남군 의성현(宜城縣)으로 들어갔다. 남군 지역의 유력 호족인 채모, 괴월, 괴량의 조력을 얻어 궐기한 토호들의 우두머리를 유인하여 처단하고 그 휘하 무리들을 흡수했다. 오직 장호(張虎)와 진생만이 양양(襄陽)성을 점거하고 버텼는데 괴월과 방계(龐季)로 하여금 설득하니 항복하여 마침내 강남 일대를 평정하였다. 양양을 주도로 정해 통치하고 반동탁 연합군에 합류하였다. 208년 유표의 후계자인 유종의 항복으로 양양은 조조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남북조때의 쟁탈전, 원과 남송의 공방 등 옛부터 여러번 남북세력의 대결장이 됐다.

삼국시대 말 강릉이 중심지가 되면서 형주성 = 강릉성이 되었다.

 

8. 양주(揚州)

◎ 양주는 현재의 장쑤 성 남부, 안후이 성 남부, 저장성, 장시 성 그리고 푸젠 성 지역에 해당한다. 6개 군 93개 현. 후한 말부터  삼국시대까지 초기에는 호족들이 난립했으나  손책에 의해 장악된 이후 손씨 오나라의 근거지가 되었다. 후한 때 치소는 역양歷陽, 말년에는 수춘壽春, 합비合肥로 옮겼다.

◎ 역양(歷陽) : 현재 안후이 성 차오후 시 허 현 -> 수춘(壽春) : 현재 안후이 성 화이난 시 서우 현 -> 합비(合肥) : 현재 안후이 성 허페이 시 서북쪽

유요가 회포에서 난을 피하고 있을 때 조정으로부터 양주자사로 임명한다는 조서가 내려왔는데, 원술이 이미 전임 양주자사  진온이 죽은 후 스스로 양주자사를 임명하고 양주의 치소가 있는 수춘 등 회남 일대를 점거했기에 이를 두려워해서 유요는 감히 부임하지 못하고 있었다.

건안 5년(200년), 손책이 임명한 여강태수 이술이 조정에서 파견한 양주자사 엄상을 죽이자, 원래 엄상이 관할하여 아직 손책이 장악하지 못한 양주 일대에 행정력 공백이 발생했고 여강의 매건, 뇌서, 진란 등이 이 틈에 양주의 각 군현을 공략했다. 당시 조조는 원소와 맞서고 있었으므로 표를 올려 유복을 양주자사로 삼아 그 방면의 모든 일을 맡겼다. 유복은 조조에게 별도의 지원 없이 단기로 부임했으나, 합비의 빈 성을 주 치소로 삼고 매건, 뇌서, 진란을 설득해 항복시켜 기반을 잡았다.

 

9.익주(益州)

◎ 익주는 현재의 쓰촨 분지와 한중 분지 일대에 존재한 중국 역사상의 옛 행정 구역이며, 중심지는 낙현(雒縣, 광한군) · 면죽(綿竹, 광한군) · 성도(成都, 촉군)이다. 12개 군국 118개 현.

산지로 둘러싸인 내륙 분지라서 방어가 쉬운 지형이다. 게다가 토질도 좋아서 생산력도 좋은 지역이다.

◎ 낙현(雒縣) : 현재의 쓰촨 성 더양 시광한 시 -> 면죽(綿竹) :  현재의 쓰촨 성 더양 시 몐주 시 -> 성도(成都) : 현재의 쓰촨 성 청두 시

188년 극검이 살해당한 후에 익주목으로 들어온 유언이 익주자사의 치소를 낙현雒縣에서 면죽綿竹으로 옮겼다. 194년(흥평 원년), 유언은 유범과 정서장군(征西將軍) 마등을 도와 이각·곽사·번조 연립 정권을 몰아내려 했으나 패하고 유범과 유탄이 목숨을 잃었으며 주도(州都)엔 엄청난 화재까지 덮쳐 광한군 면죽현(綿竹縣)에서 촉군 성도현(成都縣)으로 옮겨야 했다. 이 충격으로 유언이 병사했다.

 

10. 량주(涼州)

◎ 량주는 현재의 간쑤 성과 닝샤 후이족 자치구, 칭하이 성 동북부, 신장 위구르 자치구 동남부, 내몽골 자치구 아라산 맹 일대에 존재한 중국 역사상의 옛 행정 구역이며, 중심지는 농현(隴縣, 한양군)이다. 12개 군국 98개 현.

옹주와 분리와 합체를 자주 반복했다. 전통적으로 진(秦)나라의 근거지. 동탁, 마등 세력의 본거지였으며 서역 지배의 중심지였으며, 오나라의 양주와 구별하기 위해 흔히 서량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 농현(隴縣) : 현재의 산시성 바오지시 룽현

 

11. 병주(并州)

◎ 병주는 현재의 산서성 일대를 중심으로 섬서성 북부와 내몽골 자치구의 접경지역 일부를 포함하는 중국 역사상의 옛 행정 구역이며, 중심지는 진양(晉陽, 태원군)이다. 9개 군 98개 현.

흉노족의 침범이 많아 만들어진 준 군사주였다. 그래서 이곳 출신들은 하나같이 무예가 뛰어났다. 병주 태원은 후대 당나라의 건국 세력인 농서 이씨의 근거지가 된다.

원소의 조카 고간의 지배지역이었다. 여포와 장료, 왕윤의 고향이다. 정원이 자사를 지내기도 했는데, 가끔씩 형주자사로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 동탁은 병주의 목 신분으로 소제를 위협해 제위를 박탈시키고 헌제를 등극시킨 후 스스로 상국(相國)에 취임했다.

◎ 진양(晉陽) : 현재의 산시성 타이위안시

 

12. 유주(幽州)

◎ 유주는 현재의 베이징시와 톈진시 일대, 허베이성의 일부 북부 지역, 랴오닝성, 지린성 서남부, 북한 일부에 존재하였고, 중심지는 계현(薊縣, 광양군)이다. 옛날 연국(燕國)의 도읍이었다. 11개 군국 90개 현.

◎ 계현(薊縣) : 지금의 베이징 근처

 

13. 교주(交州)

◎ 교주는 현재의 베트남 북부와 중부, 중국 광시 좡족 자치구 일대 (경우에 따라서는 현재의 광둥 성 일대와 하이난 성 또한 포함)에 존재한 중국 역사상의 옛 행정 구역이다. 원래는 교지자사부(交趾刺史部 ,交阯刺史部)라 했는데, 후한 말에 교주자사부(交州刺史部)로 이름을 고쳐 다른 주와 같이 -주 꼴의 이름이 됐다. 중심지는 용편(龍編, 교지군)이다. 7개 군 56개 현.

삼국 시기 손오孫吳가 치소를 반우番禺(광둥성 광저우廣州)로 옮겼다.

◎ 용편(龍編) : 현재의 베트남 하노이 북쪽

 


<관련 사진>

 

– 189년 후한 13주 행정구역

 

 

– 출처 :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thirdbad&logNo=220596090792

 


<관련자료 및 참고자료>

 

https://zh.wikipedia.org/wiki/东汉行政区划

위키백과 : 삼국 시대 (중국)

위키백과 : 군현제

 

후한의 행정 구역 – 삼국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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