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의한 지구 온난화 논리는 이제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회의론자들도 존재한다. 지구 내부,외부 시스템에 의한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주장이 그것인데, 개인적으로 나는 회의론에 동의한다. <세계사 연표> http://yellow.kr/yhistory.jsp 를 통해서도 기후 변화와 세계사의 변동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약 950년 ~ 1250년의 ‘중세 온난기’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한다.
중세 온난기는 약 950년 ~ 1250년 동안의 온난기를 말하는데 전 지구적인 현상이었는지는 논란이 있다. 역사적으로 십자군 전쟁과 같은 유럽의 팽창 못지않게 몽골의 팽창을 감안하면 당연히 전 지구적인 현상이었던 것 같은데…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이 기간의 기후 변화에 대한 자료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또한 인간에 의한 지구 온난화 이론에 ‘중세 온난기’는 일종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았던 그 시기가 오히려 지금보다 더 더웠다는 학설이 만만찮은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는 상반된 주장을 한눈에 이해시켜주는 2개의 기온 그래프이다.
IPCC 3차 보고서에 담긴 윗 부분의 ‘하키 스틱 그래프’는 미국의 기후학자인 마이클 만(Michael Mann)이 창안한 것으로 지구 온도가 1970년대 이후 급격히 치솟은 모습을 나타낸다. 아래의 그래프는 1990년 IPCC가 처음 발간했던 보고서에 수록된 그래프이다. 그러니까 IPCC가 2001년에 온난화에 대한 관점을 변경한 것이다.
2003년 이른바 하키스틱 논쟁에 불을 지핀 과학자들은 스티븐 매킨타이어(Stephen McIntyre)와 로스 매키트릭(Ross McKitrick)이다. 이들은 “IPCC가 사용한 추정치는 지나치게 인위적이며 계산상 오류가 다수 발견됐다”고 주장했는데, 논란이 커지자 미국 의회는 지난 2006년 진상 조사 끝에 “매킨타이어의 반론은 타당성과 설득력이 있으며, 마이클 만의 연구 결과는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떤 그래프가 맞을까? 참고로 아래는 2012년 자연기후변화저널(Nature Climate Change)의 자료인데, 스칸디나비아 북부의 여름(6~8월) 데이터를 분석한 것이다. 로마 온난기, 중세 온난기 모두 현재 보다 높았던 것으로 나온다.
– Figure 1. The summer (June-July-August) temperature reconstruction of Esper et al. (2012), adapted from their paper.
– http://www.co2science.org/articles/V15/N30/EDIT.php
우선 중세 온난화와 관련하여 유럽 쪽의 기후대의 변화를 살펴보자.
현재 유럽의 대륙성 기후대와 지중해성 기후대의 경계를 보여준다. 고고학자 크럼리(Carole Crumley)는 지난 3천 년간 이 추이대의 이동을 추적했다. 그 결과 기온이 낮았던 시대에 그 경계는 지금보다 훨씬 남쪽으로 북위 36도에 해당하는 북아프리카 해안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온이 올라가면 그 경계는 북해와 발트 해 연안까지 북상한다. 그 거리는 약 880km로, 위도 차이가 12도나 된다. 크럼리는 이러한 기후 지대의 북-남 이동이 유럽의 역사에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한 극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아래는 유럽의 추이대 변동(Carole L. Crumley 엮음, Historical Ecology)을 보여 준다. 로마 제국의 번영과 쇠퇴가 기후의 변동이 상당한 변수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BC 1200 ~ BC 300년 기단의 상대적 위치> <BC 300~300년 기단의 상대적 위치 – 로마 온난기>
<500~900년 기단의 상대적 위치> <충적세 후기 온대 지중해 추이대의 위치- 아래 위를 이동>
※ 로마 온난기 : http://yellow.kr/blog/?p=3970
※ 중세 온난기 이후의 소빙기 관련글
– 14세기의 위기 – 기근과 흑사병 : http://yellow.kr/blog/?p=1376
– 17세기 위기 – 소빙하기(소빙기) 절정 : http://yellow.kr/blog/?p=939
※ 관련 세계사 연표
* yellow의 세계사 연표 : http://yellow.kr/yhistory.jsp?center=1000
기후의 문화사
– 볼프강 베링어 / 안병옥,이은선 역 / 공감 / 2010.09.10
중세 중기의 온난기라는 개념은 1965년 램(Lamb)에 의해 정식화되었는데, 그의 추론은 역사기록과 물리학적인 기후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램은 온난기의 정점을 1000년경부터 1300년경까지, 다시 말해서 중세중기로 보았다. 이 시기에는 덥고 건조한 여름과 온화한 겨울이 자주 등장한다. 램은 이 시기의 온난화 정도를 1931~1960년 기후 ‘정상기’의 평균기온보다 1~2℃가량 높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심지어 북반구 고위도 지역에서는 기온이 4℃까지 더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사이에 유빙(遊氷)이 존재했었다는 기록은 전무하다. 그린란드의 묘지들은 20세기 후반 토양이 두꺼운 영구동토층으로 덮여있던 상태에서 발굴되었다.
……
램이 프록시 데이터에 근거해 단순하게 평가한 중세 중기의 2℃ 온난화 주장은 많은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주장하는 기온 상승폭이 20세기에 측정된 0.6℃ 상승폭을 훨씬 뛰어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세 중기 온난기 이론의 신빙성을 전반적으로 흔들어보려는 시도도 존재한다. 레이몬드 브래들리(Ramond Bradley)와 하키 스틱 이론의 창시자 마이클 만(Michael Mann)과 같은 연구자들이 대표적이다.
……
기후자료를 중세초기와 뒤따른 소빙하기의 기후조건을 대비해 분석해 본다면 중세 중기의 온난기 이론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그 근거는 무엇보다도 900~1250/1300년경에 있었던 거대한 빙하들의 후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있었던 빙하의 후퇴는 유럽과 북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입증된 상태다.
……
재배작물의 생육한계를 살펴보면 중세 중기의 온난기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들을 발견하게 된다. 알프스에서 나무들의 생육한계선은 해발 2,000m 이상으로 상승했는데, 이는 비록 청동기시대의 기후최적기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20세기보다는 훨씬 높은 것이었다. 나무들의 생육한계선은 생태계 전체의 이동을 가늠하는 지표이다. 나무에 앞서 이끼류, 풀, 꽃이 더 높은 쪽으로 이동하고, 그에 발맞추어 곤충들과 작은 포유류, 새들이 함께 이동한다. 중세 중기에 포도는 마인, 라인, 모젤에서만이 아니라 지금의 포도밭보다 200m쯤 더 높은 곳에서도 재배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세에는 그보다 위도가 더 높은 폼머른(Pommern), 동(東)프로이센, 일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남부, 노르웨이 남부에서도 포도가 생산되었다. 포도재배가 가능했다는 것은, 밤에 서리가 내리는 일이 드물고 여름에 충분한 양의 햇볕이 내리쬐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20세기 말까지 독일에서 잘레-운슈투루트(Saale-Unstrut)산 와인은 포도재배의 북방한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 와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떫은 맛을 선호하는 와인 애호가들의 기호품이었다. 하지만 21세기 초 메클렌부르크(Mecklenburg)와 벨기에에서의 양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재배지역이 새로이 생겨났다. 물론 최근 북상하고 있는 포도재배 북방한계선이 중세 와인재배의 북쪽 경계선까지 도달한 것은 아니다.
……
식생(植生)의 북방이동은 아시아에서도 눈에 띄는 현상이었다. 옛 중국의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감귤과 모시풀의 재배한계선이 13세기처럼 북쪽에 위치했던 적은 없었다. 이 두 식물은 아열대 종이어서 수확량은 따뜻한 기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264년 이들 식물의 재배한계는 20세기에 비해 수백 킬로미터 더 북상한 상태에 있었다.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 브라이언 페이건 / 남경태 역 / 예지 / 2007.08.25
900년경 지중해 추이대는 또다시 북상했다. 마침 그때는 수백 년간 끊이지 않던 전쟁과 정치적 혼란이 다소 안정되고, 수도원이 더 세련된 농경 방식을 도입하여 수도원 자체와 도시를 부양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이후 4세기 동안은 여름마다 풍작을 거두어 먹을거리가 충분했다.
……
중세 온난기라고 불릴 만한 4세기 동안 서유럽의 여름 평균 기온은 20세기 평균보다 0.7~1.0℃가량 높았고 중부 유럽도 더 따뜻했다. 성장기는 길어졌고 영국 남부와 중부에는 포도밭이 크게 늘었다. 프랑스의 영주들이 영국의 고급 포도주에 심취한 탓에 프랑스는 영국산 포도주를 대륙에 수입하지 못하게 하는 무역협정을 체결하려 했다.
……
지나간 과거와 다가올 미래에 비하면 이 수백 년의 기간은 기후상의 황금기였다. 물론 지역에 따라 식량 부족 사태도 있었고, 평균 수명도 짧았으며, 뼈가 희는 노동이 근절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흉년이 드물었기 때문에 농부나 영주나 신이 미소를 짓고 있다고 믿었다.
……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그 5세기에 혹독한 가뭄과 굶주림을 겪었다. 북아메리카에서는 전쟁이 벌어졌고, 남아메리카에서는 두 개의 큰 문명이 붕괴했다.
가뭄 같은 단기적인 기후 변동은 대개 명확한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중세 온난기는 아메리카 서부 일대, 심해 표층, 꽃가루 샘플, 나무의 나이테, 안데스 고원의 얼음층에 두루 흔적을 남겼다.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 프레드 싱거 / 김민정 역 / 동아시아 / 2009.08.05
우리는 900년과 1300년 사이 오랜 중세기 기간 동안 세계가 아주 온화한 날씨를 가지고 있었다고 알고 있다. 이 기간은 역사적으로 중세 온난기 또는 소기후 최적기라고 알려져 있다(훨씬 더 따뜻하고 긴 홀로세 기후 최적기가 5000년 전과 9000년 전 사이에 나타났다).
유럽의 많은 유명한 성들과 교회들이 이 중세 온난기 동안에 지어졌는데, 이것은 이 시기에 농작물, 풍부한 식량, 그리고 주요 건축 프로젝트들을 수행할 노동력들이 충분했음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허버트 램은 “다음 3,4세기 동안에 걸쳐 아주 높은 언덕 위에서도 경작이 가능할 만큼 기후가 계속 더워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분명 중앙유럽의 수목 서식지 고도의 상한선이 17세기보다 100~200미터 더 높았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나무 나이테들이 유럽과 마찬가지로 기원후 1100년과 1300년 사이에 온난화 정도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노르웨이 영웅담들과 기록서들은 우리들에게 노르웨이 사람들이 그린란드를 식민화한 것이 이 온난기 동안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개척자들은 대구를 잡거나 얼음이 없는 바다에서 바다표범들을 사냥하고, 소나 양들을 방목하면서 살았다.
……
바이킹들은 새롭게 발견된 땅을 “빈란드(Vinland)”라고 이름 지었다. 앞에서 쓴 것처럼 포도 넝쿨들은 지난 1200년간 기후의 온난화와 한랭화를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좋은 지표가 되어왔다. 예를 들어 영국의 둠스데이북(Domesday book)은 지금은 포도 재배가 불가능한 지역에서 포도나무들의 성장이 왕성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럽 북서쪽은 지금보다 기후가 훨씬 따뜻하고 건조했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지구과학연구소의 리처드 카처크는 다음과 같이 단언하고 있다.
포도주를 만들기 위한 포도 재배가 1100 ~ 1300년 사이 영국의 남부지역에 걸친 넓은 지역에서 이루어졌다. 이것은 현재 포도가 재배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보다 북쪽으로 약 500km 떨어진 곳에서도 포도 재배가 가능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1400년이 되면서 기온이 떨어져 포도 재배가 불가능해졌고, 북부지역의 포도 농장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북부지역에서 포도 재배가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 온난기에 독일의 포도 농장들은 해수면 위 750미터에서 발견되었다. 오늘날은 약 560미터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상층으로 100미터 올라 갈수록 기온이 평균 0.6 ~ 0.7도 떨어진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 당시의 평균 기온이 현재보다 약 1.0 ~ 1.4도 정도 더 높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국의 북부에 자리 잡은 도시 요크 지역에서 발굴 작업을 하던 고고학자들은 쐐기풀 벌레(Heterogaster Urticae)의 화석을 발견했는데, 이 벌레들은 오늘날 영국 남쪽의 햇살이 강한 지역의 쐐기풀에서 발견된다. 즉, 이 벌레들이 로마 온난기와 중세 온난기에는 훨씬 더 북쪽에 위치해 서식했다는 것이다. 이 또한 분명 기온이 오늘날보다 그 당시가 훨씬 더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식량 생산을 통해서일 것이다. 유럽의 인구는 중세 온난기 동안 약 50% 정도 증가했다. 이것은 곧 식량 생산이 그보다 훨씬 더 증가했다는 것을 말한다. 농작물의 수확량이 부족했던 시기일수록, 인구는 식량 공급에 의해서 지배를 받았을 것이다. 살충제들이 생산되기 이전인 당시에는 다음해를 위해 많은 식량을 저장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
코르도바(Cordoba) 대학의 마르셀라 치오칼레 교수는 아르헨티나의 원주민들이 과거 1,400년간 살았던 위치를 찾기 위해 아르헨티나 선사시대 마을들에서 나온 유적들을 분석하였다. 그녀는 당시의 시간을 추정할 수 있는 탄소-14 동위원소를 이용하여 암흑기 동안에는 원주민들이 계곡의 하부에 모여서 살았고, 중세 온난기 동안에는 더 높은 언덕 위까지 퍼져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약 1000년경에는 중세 온난화의 기후가 기온만 상승시켰을 뿐 아니라 훨씬 나은 농경 조건을 조성함에 따라서 페루 중앙의 안데스 산 4,300미터 고도까지 사람들이 거주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소빙하기가 시작되어 기후가 한랭해지고 불안정해지자 1320년 이후 사람들은 다시 계곡 아래로 거주지를 옮겼다.
중국 과학아카데미의 양 바오는 빙하 코어들, 호수 침전물들, 토탄 습지, 나무 나이테, 그리고 역사적 기록들을 이용해 지난 2,000년간 중국의 기온 변천사 자료를 만들었는데, 그 자료들은 2~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는 중국이 2세기와 3세기, 다시 말해 로마 온난기 말경에 온도가 가장 높았다는 것과, 중국의 기후가 800년부터 1400년 사이에 따뜻했다는 것, 1400년과 1920년 사이에 추웠고, 1920년 이후 다시 따뜻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
우리는 지금 빙하기에 살고 있다
– 더거 맥두걸 / 조혜진 역 / 말글빛냄 / 2005.12.12
800 ~ 900년 전에는, 유럽에 중세의 온난기가 진행 중이었다. 여름은 대체로 따뜻하고 작물이 풍부했다. 그린란드 빙하에서 수집한 온도 데이터와 역사 기록문을 비교하면 이 기간에는 전체적으로 따뜻했고 기후도 양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에서는 포도원이 번창하여 프랑스에서 자신들의 와인 사업이 타격을 받을까 우려했다. 북대서양에서는 빙하 더미들이 북쪽으로 움직였고 가혹한 폭풍도 줄어들었다. 이미 몇백 년 전에 아일랜드 해안과 영국 그리고 나머지 유럽 지역을 침입한 바이킹족은 날씨가 좋은 덕택에 새로운 식민지를 찾아 북쪽과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결국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까지 정복했다.
그들은 새로운 식민지와 스칸디나비아 지역을 오가며 장사를 했고, 그린란드에서는 북미 동부 해안을 탐험했다. 그들은 신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하지는 않았지만, 약 1천 년 전 그들이 세운 작은 마을 중 뉴펀들랜드 북쪽에 자리한 랑스 오 메도 L’Anse aux Meadows는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유럽에서는 따뜻하고 잔잔한 기후가 지속되자 왕족과 지주들이 번창했고, 노동자와 농부들도 배고플 일이 없었다. 농업지대는 확장됐고 북쪽지역에서는 고지에 있는 언덕 비탈에까지 농사를 지었다. 전체적인 번영 덕택에 석공들을 불러들여 유럽 전 지역에 아름답고 웅장하고, 무엇보다 값비싼 성당을 지었다. 아마 이때 유럽인들은 곡 닥칠 ‘작은 빙하시대’의 가혹함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13세기가 막을 내리면서 ‘중세의 온난기’도 동시에 막을 내렸다. 그린란드 빙하 자료와 다른 기후 기록들을 보면, 1300년에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했고 19세기까지 낮은 온도는 지속되었다.
들풀에서 줍는 과학
– 김준민 / 지성사 / 2006.08.22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장악했던 나라는 몽골 민족이 세운 원(元)나라였다. 몽골 민족은 불과 70년 만에 마치 질풍과 같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일본 제외) 그리고 중앙아시아, 동유럽의 대부분을 정복하였는데 그들이 어떻게 단시간에 초거대 제국을 이룩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몽골의 전성기였던 13세기는 제2한기가 완전히 물러간 시기였다. 이는 미국 학자들이 알래스카 유콘(Yukon) 지역 만년설을 분석하면서 일반에게 알려졌다. 다시 말해서 만년설의 각 층 속에 존재하는 탄소화합물들의 연대를 방사성탄소(C14) 연대측정법으로 면밀히 측정했던 결과 12세기경에 이르러 북반구 전역에서 온난한 기후가 나타났던 것으로 밝혀졌던 것이다.
……
제2한기가 마감되면서 알타이 산맥의 눈이 녹아 물이 풍성해지자 몽골 사람들의 생활은 활기를 띠었고 따라서 인구도 급격히 증가했다. 그들은 말을 타고 수렵을 했으며, 가축의 먹이를 구하러 다녔는데 그 결과 몽골 영토는 북으로 계속 확대되었다.
쿨잇
– 비외른 롬보르 / 김기응 역 / 살림출판사 / 2008.07.18
지난 1,000년 동안 기온은 자연적인 원인으로 올랐다가 내리고 다시 올랐다. 대략 900년에서 1200년 사이에는 중세 온난기(Medieval Warm Period)라고 알려진 비교적 따뜻한 시기가 있었다. 기후가 따뜻해지고 바다의 얼음이 줄어든 덕분에 전에는 살기에 안 좋았던 그린란드와 빈랜드(뉴펀들랜드)에 바이킹이 자리 잡고 살 수 있었다. 11세기에 알래스카의 평균 기온은 현재보다 약 1.7도에서 2.8도 높았고, 로키 산맥의 설선(만년설의 최전선)은 현재보다 약 274미터(300야드) 정도 더 높았다.
대재앙
– 리처드 A. 포스너 / 김소연 역 / 말글빛냄 / 2006.02.20
중세의 이산화탄소 배출 수준은 오늘날보다 현저히 낮았는 데도 기후가 더 따뜻했던 걸로 보아, 이산화탄소 배출이 오늘날 온난화의 원인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주장의 전제가 옳은 지는 일단 논외로 하자. 또 이산화탄소 배출 이외의 다른 조건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까 이산화탄소 배출이 원인은 아니라는 이상한 주장도 문제삼지 말자.
흥미로운 점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복합적이고, 회의론자들이 누누이 강조하듯 확실치 않다면 급격한 기후 변화의 위험은 오히려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중세 때 지구를 따뜻하게 했던 조건이 다시 발생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지구 온도에 미치는 영향을 증폭 시킬 수도 있다.
Temperatures of the Past Six Millennia in Alaska
– http://www.co2science.org/articles/V14/N4/C2.php
Clegg, B.F. 등은 알래스카 Moose호수(61°22.45’N, 143°35.93’W) 퇴적물에서 깔따구라는 곤충을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Mean July near-surface temperature (°C) vs. years before present (cal BP) for south-central Alaska (USA). Adapted from Clegg et al. (2010).
RWP (Roman Warm Period) 로마온난기
DACP (Dark Ages Cold Period) 중세초기 한랭기
MWP (Medieval Warm Period) 중세 온난기
LIA (Little Ice Age) 소빙하기
CWP (Current Warm Period) 현재의 온난기
지구온난화연구 논란, 과학 전체 신뢰에 흠집 (2010-03-08)
다음은 <BBC>와 기후변화 연구로 잘알려졌고 영국 하원 청문회에 불려나간 이스트앵글리아대의 기후변화연구소장 필 존스 교수가 나눈 일문일답의 주요 내용이다.(일부 발췌)
–중세 시대에 온난화가 전지구적 현상으로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만일 중세 시대의 온난화가 전지구적 현상이었다는 것이 입증되면, 20세기 후반 동안 평균 지표면 대기온도가 유례없이 상승했다는 전제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인정할 것인가?
중세시대에 북반구 일대에서 온난화 현상이 있었다. 하지만 적도 지역과 남반구 일대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
온도 측정 기록에 따르면 북반구와 남반구의 온도가 항상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중세시대에 북반구 온도가 높았다고 해서 전지구 평균 온도가 비슷하게 높닸다고 가정할 수 없다.
물론 중세 시대의 온도 상승이 전지구적이었으며, 지금 못지 않게 더웠다면 20세기말 지구온난화 현상이 유례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세시대가 지금처럼 더워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현재의 온난화가 유례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코펜하겐 기후회의] 기후변화 ‘진실 혹은 거짓’ 공방 치열 (2009-12-08)
‘기후변화 회의(懷疑)론자’의 주장은 무엇이고, 온실가스와 기후변화를 인정하는 학계는 여기에 어떻게 반론하는지 BBC 인터넷판이 8일 짚었다.
異端 온난화론 (2009-12-08)
2004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는 “지난 2000년 동안 지구가 가장 더웠던 시기는 로마제국과 중세시대였고, 그때는 지금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았는데도 지금보다 더 더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후는 세상을 어떻게 바꿔 왔나 (2007-09-07)
13세기 몽골 고원에 불어닥친 한파는 몽골족의 대이동을 일으켜 중국에서 동유럽까지 몽골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계기가 됐다.
(15) 변조될 수 없는 발해의 정체성 (2004-09-13)
그 옛날 발해의 민족적 얼은 농경문화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신당서>는 쌀이 발해의 한 주인 노주(盧州)의 특산물이라고 전하고 있다. 비옥한 노주는 중경현덕부에 속한 주로서 서고성이나 연길분지라고 한다. 북위 43도의 북방에서 쌀이 생산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아마 당시 북방의 온난화가 일어나 가능했을 것이다.
<환경> “중세 기온, 오늘날보다 훨씬 더웠다” (2003-04-07)
미국 하버드 대학 연구진이 240여건의 과학적 연구 결과를 최근 재검토한 결과, 오늘날의 기온이 지난 1천년 중 가장 무더운 날씨도, 가장 극단적 기후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환경론자들의 주장과는 크게 대조되는 것이다.
연구진이 재검토한 것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지구 여러 곳의 기온을 추계할 수 있게 해주는 역사적 이야기들과 나이테, 빙판의 속 등과 같은 이른바 `기온 대리물’에 관한 연구결과이다.
연구진은 이번 조사를 통해 세계가 9세기와 14세기 사이에 중세의 온난기를 겪은 바 있으며 당시 세계기온은 오늘날보다 훨씬 높았음을 알아냈다.
이번 조사결과는 또한 지난 1300년경 소(小)빙하기가 출현, 지구가 급격히 냉각되었다는 주장을 확인했다. 세계는 지난 1900년 이래 다시 더워지기 시작했지만 중세의 기온에 미치려면 아직도 멀었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2003/04/07)
<관련 그림>
– 기원전 2500년부터 기온 변화 (출처 : http://www.longrangeweather.com/)
– http://joannenova.com.au/2010/02/the-big-picture-65-million-years-of-temperature-swings/
– Reconstructed SSTs based on the Sr/Ca ratios of T. gigas specimens during AD 50 (±40), AD 990 (±40) and AD 1994–2005. Adapted from Yan et al. (2014).
– http://www.co2science.org/articles/V18/jan/a9.php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브라이언 페이건 / 남경태 역 / 예지)
2013-09-16 “지구온난화 과장…예측 수정한다”<영 신문>
2010-10-03 [해외논단] 기후변화 연구의 허구
2010-07-28 [코펜하겐 기후회의] 기후변화 ‘진실 혹은 거짓’ 공방 치열
2010-07-28 [지구온난화의 숨겨진 진실] 더 따뜻했던 중세 온난기…CO2 영향 미미
2010-06-22 [WT논평] Nero was hotter than Al Gore
2010-03-08 지구온난화연구 논란, 과학 전체 신뢰에 흠집
2010-02-20 지구 온난화는 착한 거짓말?
2010-02-21 [세계는 지금] 기후·빙하게이트 공방… ‘뜨거워진 지구’ 회의론 득세
2008-06-27 ‘문명의 生死’ 기후변화에 달렸다
2008-04-29 [기고]불편한 진실인가, 사기극인가
2007-09-07 기후와 환경이 세계사를 바꾼다
2004-03-25 [고정관념을 깨는 사람들] <3> 권원태 기상연구소 기상연구실
1992-06-18 지구온난화의 비밀을 벗긴다
Medieval Warm Period : http://en.wikipedia.org/wiki/Medieval_Warm_Period
http://wattsupwiththat.com/2010/03/10/when-the-ipcc-disappeared-the-medieval-warm-period/
http://www.c3headlines.com/climate-history/page/2/
http://www.globalresearch.ca/global-cooling-is-here/10783
http://enthusiasmscepticismscience.wordpress.com/global-temperature-graphs/
2010 – where does it fit in the warmest year list?
단순한 탄소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보기에 더 다양하고 심층적인 연구가 있어야 합니다. 블로거님의 관점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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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에 대한 내용 감사드립니다. 지금 환경단체의 주장은 감성, 주장에 치우쳐 사실을 외면하는 느낌이 듭니다. 과학은 주장이나 의견이 아니라 사실에 근거를 둔 내용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탄소배출 억제 등의 주장도 개도국의 경제발전을 어렵게 하는 정치적 어젠다로 포장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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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공감하는 동지를 만났군요.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온난화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로 사고할 있길 바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고기후의 변화를 보면, 지금 온난화 인간책임론은 그 근거가 희박하다는 생각입니다.
밀류신밀란코비치의 천문학적원인론(지축기울기변화, 세차운동, 공전궤도 이심률변화)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도 고기후와 일치하는 것으로 봐서도, 지구 내부의 원인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거의 정설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온난화 모델은 대기의 95%가 이산화탄소인 화성에나 해당되는 모델이지, 기껏 0.4%인 지구에서는 너무 비약입니다. 실제 지구 복사열을 가두는 절대적 영향은 수증기입니다. 이산화 탄소가 아니고!! 그리고 수증기가 많아지면, 다시 극지방에 눈을 뿌리는 부귀환회로가 동작하기도 합니다.
이산화탄소는 바닷물에 50배가 녹아 있고, 이는 칼슘이온을 만나 탄산칼슘으로 바닥에 침전하고, 그것이 광범위하게 지구에 퍼져있는 석회암(탄산칼슘)대지들입니다. 그렇게 이산화탄소는 암석에 고정됩니다.
기온이 올라서 바다 용존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나온건지, 이산화탄소가 늘어 기온이 오른건지도 아직 잘 모릅니다.
이산화탄소배출권 사업을 하는 자들과 그 자본에 부응하는 자들이 온난화 인간책임론을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