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 – 명승 제32호

※ 황성열의 세계 – 문화재 : http://yellow.kr/nt.jsp

※ 명승 제32호 / 문경새재 (聞慶 새재) / 2007년 12월 17일 지정 /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1156, 등 (상초리)

 

문화재청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문경새재』는 조선 태종 14년(1414년) 개통된 관도 벼슬길로 영남지방과 기호지방을 잇는 영남대로 중 가장 유명하며 조선시대 옛길을 대표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초점(草岾)’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으로 기록된 길로 조선시대 영남도로에서 충청도(한강유역권)와 경상도(낙동강유역권)를 가르는 백두대간을 넘는 주도로의 역할을 했다.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관도로 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 등 3개의 관문과 원(院)터 등 주요 관방시설과 정자와 주막 터, 성황당과 각종 비석 등이 옛길을 따라 잘 남아 있고, 경상도 선비들의 과거길로서 수많은 설화가 내려오고 있는 등 역사적, 민속적 가치가 큰 옛길이다.

 

또한 문경새재가 위치한 주흘산, 조령산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식생 경관과 옛길 주변의 계곡과 폭포, 수림터널 등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경관 가치가 뛰어나며, 문경시의 ‘옛길 걷기 체험“, ”과거길 재현“ 등 옛길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 행사가 매년 개최되고 있어 현대인들이 조선시대 옛길 문화 및 선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훌륭한 옛길 자원이다.

 

문경새재(聞慶-)는 백두대간의 조령산(鳥嶺山) 마루를 넘는 재이다. 조령산은 충청북도 괴산군과 경상북도 문경시의 경계에 있는 높이 1,017m의 산이다. 새재 또는 한자어로 조령(鳥嶺)이라고도 한다.

 

문헌상으로 처음 나타나는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鳥嶺 在縣西二十七里 延豊縣界 俗號草岾’이라 하여 ‘조령, 현의 서쪽 27리, 연풍현의 경계에 있는데 속칭 초점이라고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에 발간된 ‘팔도지리지(八道地理誌)'(1650년대),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1660년대), ‘여지도서(輿地圖書)'(1757년), ‘문경현지(聞慶縣誌)’를 비롯한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문헌에는 ‘조령진(鳥嶺鎭)’, ‘조령산성(鳥嶺山城)’ 등과 같이 ‘조령’이 매우 일반화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1400년대까지는 초점이라는 지명이 널리 사용되었고 150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령이라는 말이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경상도 문경에서 충청도 충주로 넘어가는 백두대간 고갯길은, 신라시대 때부터 있었던 계립령(鷄立嶺, 하늘재), 조선시대의 관도(官道)였던 문경관문(聞慶關門, 문경새재), 그리고 일본 강점기에 신작로로 닦여진 이화령(梨花嶺)의 세 곳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록이 전하는 가장 오래된 옛길은 계립령(鷄立嶺)으로 ‘하늘재’라고도 하는데 문경읍 관음리 포암산 중턱에 있으며 “156년(신라 아사달이사금 3년) 여름 4월에 계립령 길을 열었다”고 <삼국사기(三國史記)>가 기록하고 있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사용되어 오던 계립령 길은 서서히 쇠퇴하고 고려시대부터 조령(鳥嶺)으로 새 길을 내주었으며 급기야 근대에 이르러 이화령(梨花嶺)으로 찻길이 나면서 현재의 주 교통로는 이화령 방면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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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재’의 어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유력한 설들이 있다:

– 새도 넘기 어려운 길

– 계립령(하늘재)을 버리고 새로 만든 길

– 새는 사이, 재는 고개의 의미, 즉 충주와 문경의 두 지역을 연결하는 고개라는 의미 또는 이화령과 계립령 사이의 고개

– 고대에는 조령의 이름이 “초점”이니, 초점은 풀초(草)에 고개 점(岾)으로 한글로 새재이었다. 억새 따위의 식물을 새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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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관문(聞慶關門), 즉 문경새재는 영남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한양으로 가는 관로인 영남대로(嶺南大路) 주변에 흐르는 조령천(鳥嶺川)의 양안으로 우뚝 솟은 주흘산(主屹山), 부봉(釜峰), 기산(箕山), 조령산(鳥嶺山) 등이 이루는 8㎞ 남짓한 험준한 계곡에 구축한 요새입니다.
이 관문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선조 26)년에 논의가 있었으나 전란중의 경제사정과 조정내의 찬반양론으로 설치를 미뤄오다가 그 이듬해 비로소 조곡관에 중성(中城), 즉 제2관문을 개설하고 그 후 1708년(숙종 34)에 중성(中城)을 크게 중창하였습니다. 또 남쪽에 있는 주흘관에 초곡성을, 북쪽에 위치한 조령관에 조령산성을 축조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제1관문과 제3관문입니다.
제1관문인 주흘관(主屹關)은 숙종 34년(1708년)에 축조하였고, 영조 때 조령진이 설치되어 문경현감이 수성장을 겸하였습니다. 한말 항일의병전쟁 때 일본군이 불태웠던 문루를 1922년 다시 지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협문(夾門) 2개가 양쪽에 있고, 물을 흘려보내는 수구문(水口門)이 있습니다. 세 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제2관문인 조곡관(鳥谷關)은 선조 27년(1594)에 충주 사람 신충원(辛忠元)이 축성하였으며 세 관문 중 가장 먼저 축조되었으나 숙종 때 관방을 설치할 때 3관문인 영성(嶺城)과 1관문인 초곡성(草谷城, 주흘관)에 관을 설치하고 2관문에는 조동문(鳥東門)만 설치하였습니다.
제3관문인 조령관(鳥嶺關)은 새재 정상에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해 선조 때 쌓고 숙종 때 중창하였습니다. 1907년에 소실되어 훼손된 것을 1976년에 홍예문, 석성, 누각을 복원하였으며 문루의 북쪽에는 조령관(鳥嶺關)이란 편액이, 남쪽에는 영남제3관(嶺南第三關)이란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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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새재 제1관문 주흘관(主屹關) (출처 : KBS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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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관문인 주흘관(主屹關)은 숙종 34년(1708년)에 축조되었다. 영조 때에 조령진이 설치되어 문경현감이 수성장을 겸하였다. 한말 항일의병전쟁 때에 일본군이 불태웠던 문루를 1922년에 다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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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1위에 뽑힌 문경새재는 걷기 좋은 곳이다. 제1관문 주흘관에서 제3관문 조령관까지 총길이는 약6.5km로 산책하며 거닐기 적당한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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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령 원터

원(院)은 조선시대에 공무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던 시설이다. 조령은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많은 길손이 오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조령원터 외에도 동화원, 신혜원의 원터가 있다. 조선 후기에는 일반인도 이용을 했으며 물물 교환 등 시장의 역할도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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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관문인 조곡관은 선조 27년(1594)에 충주인 신충원이 축성하였다. 숙종조에 관방을 설치할 때 옛 성을 개축하였으나 관은 영성(3관문)과 초곡성(1관문)에만 설치하고 이 곳에는 조동문을 설치하였다. 1907년 훼손되어 1978년에 복원하고 문루를 옛 이름 ‘조동문’이라 하지 않고 조곡관이라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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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관문 조령관은 해발 650m의 새재 정상에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해 선조 때 쌓고 숙종 초(숙종 34년:1708)에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에 홍예문과 석성, 그리고 누각을 복원했다. 조령관을 기준으로 남쪽은 경상북도 문경땅이고 북쪽은 충청북도 충주땅이다.

 

트랙킹시 출발점을 제3관문으로 잡으면 좋은 이유는 제3관문에서 제2관문을 지나 제1관문까지는 줄 곧 내리막길이어서 제1관문에서 출발하는 것보다는 발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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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경새재를 지나는 영남대로

 

아래 그림은 조선시대의 10대 간선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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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로(一路)는 한양-고양-파주-평양-정주를 거쳐 국경 의주(義州)에 이르는 길
2로(二路)는 한양-원산-영흥-함흥을 거쳐 국경 두만강 하구 서수라(西水羅: 우리땅 山經 長白正幹의 종점)에 이른다.
3로(三路)는 한양-원주- 동해안 강릉을 거쳐 평해(平海: 현 경북 울진군 평해읍)에 이르는 소위 관동로(關東路)
4로(四路)는 한양-판교-용인-양지(陽智: 현 용인시 양지면)-광암-달내(達川;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충주로 흘러 남한강에 합수, 삼대 名水의 하나)-충주-조령-문경-유곡역(幽谷驛: 문경시 남쪽에 있음)-낙원역-낙동진(洛東鎭: 현 상주시 낙동면)-대구-청도-밀양-황산역을 거쳐 동래(東萊), 부산(釜山)에 이르는 길,
5로(五路)는 한양—유곡역은 4로(四路)와 같고, 유곡역-상주-성주-현풍-칠원-함안-진해-고성을 지나 통영(統營)에 이르는 길
6로(六路)는 한양-동작나루-과천-수원-천안-공주-여산-삼례역-전주-남원-함양-진주를 거쳐 통영(統營)에 이르는 길인데 한양에서 봐서 경상도로 가는 길 3개 중에서 오른쪽에 있다 하여 ‘경상우로(慶尙右路)’라 하였다.
7로(七路)는 한양—삼례역은 6로(六路)와 같고, 삼례역-태인-정읍-장성-나주-영암-해남을 거쳐 수로로 제주(濟州)에 이르는 길.
8로(八路)는 한양-평택-소사를 거쳐 충청수영(忠淸水營: 현 충남 보령시 오창에 있었음)에 이르는 길
9로(九路)는 한양에서 강화(江華)에 이르는 길.
10로(十路)는 한양-충주를 지나 안동(安東)과 봉화(奉化)에 이르는 길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문화재청 : http://www.cha.go.kr/

문경관광 : 문경새재길

위키백과 : 조령 관문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한국지명유래집 충청편 지명) : 조령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여행 1001 (마로니에북스) : 문경새재

충북지명산책 – 나는 새도 쉬어 넘는 문경 새재

프레시안 – 영남대로의 관문, 문경고을

 

문경새재 – 명승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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