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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한국독립당(한독당)

작성자
hsy6685
작성일
2017-08-09 11:51
조회
190
1945년 8월 28일 상해에서 한국독립당이 대표대회를 열고 선언문을 발표했다.
......

이틀 뒤 임시정부 대표들이 중경 미 대사관을 방문해서 귀국 희망을 표명했다. (<한국 현대 민족운동 연구>(서중석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275쪽) “미국식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기독교 신자가 많은 자신들이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공산주의자들의 대거 입국 때문에 희망을 잃고 있다고 표명하고, 임정의 지도적 요인들이 점령군의 보좌역 또는 통역의 자격 등으로 입국시켜 줄 것을 요망하면서, 미국의 도움으로 입국한다면 그들은 미 점령군이나 혹은 국무성의 의사에 반하는 일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망록을 남겼다.”고 한다.

 




<신편한국사>

식민지시기 임시정부와 한독당의 활동이 다른 정치세력들의 활동에 비교하여 뚜렷하게 중요한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국내의 민중들이 느끼는 비중은 다른 독립운동단체에 비하여 월등하게 큰 것이었다. 따라서 일반 민중들뿐만 아니라 정치세력들에게 있어서도 8·15 이후 임시정부와 한독당의 귀국 및 활동은 국내의 정치상황을 뒤바꾸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태풍의 눈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국내에 미군정이 설치되어 있었고 중국 내 한국인들의 문제 때문에 임시정부와 한독당이 쉽게 귀국할 수 없었지만, 이들의 귀국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은 미군정이었다.

미군정은 38선 이남의 정치세력 재편계획의 일환으로 임시정부의 귀국을 추진하였다.

이에 따라 임시정부와 한독당은 8·15 이후 3달이 지난 11월 23일과 12월 2일 2차에 걸쳐 귀국하였다. 이들이 귀국한 시점은 이미 좌파에서 인공을 조직하여 미군정과 대립하고 있었고, 이승만이 미군정의 후원하에 大韓獨立促成中央協議會(이하 독촉중협)를 조직하여 정치활동을 전개하고 있을 때였다.
환국한 임시정부와 한독당의 정치노선과 활동은 臨政法統論과 반탁운동으로 대표된다. 특히 반탁운동은 임시정부와 한독당이 주도한 가장 중요한 정치활동이었으며, 임정법통론 역시 반탁운동을 통해서 표출되었다.

환국한 직후 인공과의 합작, 독촉중협과의 합작 등을 추진하였지만,

임시정부는 ‘임정법통론’을 고수하였고, 이로 인하여 정치세력간의 단결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8·15 이후 많은 정치세력들은 임시정부가 정치세력들을 통합할 수 있는 중심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지만, ‘임정법통론’은 이러한 국내 정치세력들의 희망을 어렵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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