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게시판

왜란 후…명나라 재정위기로 수탈당한 조선

작성자
hsy6685
작성일
2017-10-03 10:10
조회
92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의 패배와 1592년 임진왜란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두 사건은 비슷한 시기에 4년이란 짧은 기간을 두고 벌어졌다. 또 두 사건은 동양과 서양에서 커다란 변혁을 몰고 왔다.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해군에 패배한 이후 세계 해양의 패권이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이동했다. 또 임진왜란의 후유증으로 일본과 중국에서 정권 교체가 발생하고 조선에선 극심한 사회변동이 전개됐다.

하지만 두 사건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별개의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 서양은 동양을 새롭게 발견하고, 동양은 서양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던 단계였다. 국제 무대라는 개념이 막 생겨나던 시절이었다.

국제화의 초기 단계에서 벌어진 동양과 서양의 두 사건을 연결하는 가느다란 실마리가 있다. 그 끈은 은(銀, silver)이었다. 그 스토리를 연결해보자.

......

1588년 아르마다(Armada)라 불리던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함대에 완패했다. 이 전투는 해상왕국 스페인의 몰락을 초래했다. 세계 해양의 제해권이 영국에 빼앗기면서 스페인 상인들이 명나라로 보냈던 은의 양도 급격하게 줄었다.

중국의 재정지출이 조금도 줄지 않은 가운데 은의 공급량이 급격히 감소하자, 국제 은 가격이 폭등했다. 명나라에 재정 위기가 닥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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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이야 가격차(arbitrage)를 노리고 들어오지만, 명나라 정부는 조선에 은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망해가는 나라를 살려 주었으니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은으로 갚으라는 얘기였다.

중국에 은이 부족해지고 은 가격이 치솟는 상황에서 명의 사절단은 조선에 오면 은만 요구했다. 함경도 단천에 대규모 은광이 있지만, 개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았다.

명나라 사신들의 은 징발은 선조 다음 임금인 광해군 때 절정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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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http://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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