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탈리 칼럼] 민주주의 환상과 자본주의 몰염치
작성자
hsy6685
작성일
2019-02-26 00:03
조회
3716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이 세상의 대부분을 나누어 갖는 동안, 그리고 그들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갈수록 드물어지는 가운데 시민들은 각자가 속한 작은 구역 속에서 제 운명의 주인으로 거듭나는 날이 오리라는 막연한 환상을 품고 산다. 그리고 진정한 세상의 주인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재력가들은 계속해서 그들이 내키는 대로 세계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짓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가진 돈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최선일지 혼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맡긴 예금을 사회에 보탬이 되는 프로젝트를 펼치는 자들에게 투자함으로써 모두의 선을 위해 일하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금융은 세상을 바람직하게 만드는 데 쓸모가 있다.
그런데 이에 반해 양심과는 거리가 멀고,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데다가 심지어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이들이, 통제 메커니즘을 어떻게 작동시켜야 하는지 모르기에 더욱 위험한 투기 활동에 욕심을 내며 그 예금을 사용한다. 역사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겪었던 일이다. 이런 상황은 언제나 절정기에 다다랐을 때 위기 발발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참사의 최종 희생자들은 위기를 일으킨 금융기관 사람들이 아닌, 수상쩍은 중개인들과 금융기관을 믿고 돈을 맡긴 빈곤한 직장인들이다.
이런 일은 되풀이된다. 우리는 1929년과 2007년의 일은 실수이며,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지만, 현실은 이미 진행형이다. 2007년에 양심에 아랑곳하지 않은 미국 은행원들이, 집을 사려면 많은 돈을 빌리면 그만이고 해당 주택의 가치 상승 덕에 대출 상환이 충분히 가능해질 것이라는 말로 가난하고 정보에 어두운 직장인들을 꾀어냈다. 이후 이야기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서브프라임이라 불리는 대출은 CDO(부채담보부증권)라는 이름으로 쪼개지고, 채권화돼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한몫을 잡고, 돈을 빌린 사람들은 파산하는 것으로 종결됐다.
그리고 오늘날 그것이 판박이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다른 것은 비상장 미국 기업들이 빚을 내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점이다. 이 기업들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수익을 기대하며 대출을 받는데, 그 액수는 기업 가치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이상으로 상승할 때에야 상환 가능한 수준이다. 은행과 금융기관들은 이 대출을 승인하고는 CLO(대출채권담보부증권)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쪼개고 채권화해 세계 금융 시스템에 되팔면서 대출을 청산한다. 또한 평가 기관들은 10년 전 그대로 위험천만한 대출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포장해 준다. 원인도 결과도 그때 그대로다. 새로운 위기가 벌어질 참이다. 저들이 기대하는 주식 상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해당 대출들은 상환되지 않을 것이다.
몇 가지 관련 수치를 살펴보자. 대출의 절반은 원금의 다섯 배를 상회하는 금액 및 변동 금리로 승인돼 있다. 위험 가중 요소다. 이 대출들의 총액은 2018년 9월 기준으로 이미 1조 30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금융 위기 발발 당시 서브프라임 총액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대출의 절반 이상이 이미 채권화돼 전 세계에 되팔렸다. 2007년 당시 전체 대출 중 비우량 대출이 55%에 머물렀던 데 비해 지금은 61%가 비우량 대출이다. 돈을 빌려준 사람에 대한 보호도 10년 전보다 훨씬 허술하다.
중앙은행들이 그 빚을 모두 다 사들이고, 잔고를 부풀려주지 않는 이상 위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전 세계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붕괴가 다가온다. 광증, 몰염치, 투기. 최악의 결과를 빚어내는 진부한 재료들이 거기 모여 있다. 국경을 닫아 걸음으로써 스스로 보호할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은 자력에 의지하여 기후 온난화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여기는 것만큼이나 덧없는 생각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도를 넘는 이익 추구의 위험성을 인식하며 다른 인간들과 같은 리듬으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해야만 한다. 그들이 발휘한 혁신이 그 정도의 이익을 얻을 만 하다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수익은 혁신의 결과이지 혁신을 만드는 동력이 아니다.
기이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취약 계층에 속한 시민들은 그들이 당면한 문제와 지엽적인 근심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합당한 요구를 하고 있지만, 그들의 이익을 놓고 볼 때 무엇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장기적인 쟁점들과 세계적인 리스크를 살피는 일이다. 이 도전들을 헤쳐나갈 자는 국가의 앞날을 위해 자신의 인기를 과감하게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오늘날 가혹하리만치 찾기 힘든 존재다.
- 자크 아탈리 아탈리에아소시에 대표·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출처: 중앙일보] [아탈리 칼럼] 민주주의 환상과 자본주의 몰염치
이들 중 일부는 가진 돈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최선일지 혼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맡긴 예금을 사회에 보탬이 되는 프로젝트를 펼치는 자들에게 투자함으로써 모두의 선을 위해 일하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금융은 세상을 바람직하게 만드는 데 쓸모가 있다.
그런데 이에 반해 양심과는 거리가 멀고,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데다가 심지어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이들이, 통제 메커니즘을 어떻게 작동시켜야 하는지 모르기에 더욱 위험한 투기 활동에 욕심을 내며 그 예금을 사용한다. 역사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겪었던 일이다. 이런 상황은 언제나 절정기에 다다랐을 때 위기 발발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참사의 최종 희생자들은 위기를 일으킨 금융기관 사람들이 아닌, 수상쩍은 중개인들과 금융기관을 믿고 돈을 맡긴 빈곤한 직장인들이다.
이런 일은 되풀이된다. 우리는 1929년과 2007년의 일은 실수이며,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지만, 현실은 이미 진행형이다. 2007년에 양심에 아랑곳하지 않은 미국 은행원들이, 집을 사려면 많은 돈을 빌리면 그만이고 해당 주택의 가치 상승 덕에 대출 상환이 충분히 가능해질 것이라는 말로 가난하고 정보에 어두운 직장인들을 꾀어냈다. 이후 이야기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서브프라임이라 불리는 대출은 CDO(부채담보부증권)라는 이름으로 쪼개지고, 채권화돼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한몫을 잡고, 돈을 빌린 사람들은 파산하는 것으로 종결됐다.
그리고 오늘날 그것이 판박이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다른 것은 비상장 미국 기업들이 빚을 내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점이다. 이 기업들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수익을 기대하며 대출을 받는데, 그 액수는 기업 가치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이상으로 상승할 때에야 상환 가능한 수준이다. 은행과 금융기관들은 이 대출을 승인하고는 CLO(대출채권담보부증권)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쪼개고 채권화해 세계 금융 시스템에 되팔면서 대출을 청산한다. 또한 평가 기관들은 10년 전 그대로 위험천만한 대출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포장해 준다. 원인도 결과도 그때 그대로다. 새로운 위기가 벌어질 참이다. 저들이 기대하는 주식 상승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므로 해당 대출들은 상환되지 않을 것이다.
몇 가지 관련 수치를 살펴보자. 대출의 절반은 원금의 다섯 배를 상회하는 금액 및 변동 금리로 승인돼 있다. 위험 가중 요소다. 이 대출들의 총액은 2018년 9월 기준으로 이미 1조 30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금융 위기 발발 당시 서브프라임 총액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대출의 절반 이상이 이미 채권화돼 전 세계에 되팔렸다. 2007년 당시 전체 대출 중 비우량 대출이 55%에 머물렀던 데 비해 지금은 61%가 비우량 대출이다. 돈을 빌려준 사람에 대한 보호도 10년 전보다 훨씬 허술하다.
중앙은행들이 그 빚을 모두 다 사들이고, 잔고를 부풀려주지 않는 이상 위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전 세계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붕괴가 다가온다. 광증, 몰염치, 투기. 최악의 결과를 빚어내는 진부한 재료들이 거기 모여 있다. 국경을 닫아 걸음으로써 스스로 보호할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은 자력에 의지하여 기후 온난화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여기는 것만큼이나 덧없는 생각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도를 넘는 이익 추구의 위험성을 인식하며 다른 인간들과 같은 리듬으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해야만 한다. 그들이 발휘한 혁신이 그 정도의 이익을 얻을 만 하다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수익은 혁신의 결과이지 혁신을 만드는 동력이 아니다.
기이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취약 계층에 속한 시민들은 그들이 당면한 문제와 지엽적인 근심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합당한 요구를 하고 있지만, 그들의 이익을 놓고 볼 때 무엇보다 더 중요한 일은 장기적인 쟁점들과 세계적인 리스크를 살피는 일이다. 이 도전들을 헤쳐나갈 자는 국가의 앞날을 위해 자신의 인기를 과감하게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오늘날 가혹하리만치 찾기 힘든 존재다.
- 자크 아탈리 아탈리에아소시에 대표·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출처: 중앙일보] [아탈리 칼럼] 민주주의 환상과 자본주의 몰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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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뭐하는분인데 이런블로그 하세요? 너무 전문적이어서 개인블로그 아닌것같은데 무튼 사이트 잘 쓰고갑니다 너무좋아요 ^^
저랑 프로그램으로 밥먹고 사는데 관심사가 많이 겹치네요.
그런데 정말 대단하심니다. 종종 들어와서 놀다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