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들은 헤르메스(Hermes)를 이집트 신인 토트(Thoth)와 같다고 보았다.
그리스 신화와 이집트 신화 – 신들의 비교 – 옐로우의 블로그
이집트 신화에서 토트는 달, 지혜, 지식, 문자, 상형문자, 과학, 마법, 예술 및 심판의 영역을 관장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종종 인간의 몸에 따오기(ibis) 혹은 개코원숭이의 머리를 한 형상으로 묘사되었다.

플라톤은 그의 후기 대화편에서 이집트는 문명의 대부분 측면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필레보스(Philebus)』에서 플라톤은 테우트(Theuth) 또는 토트(Thoth)를 글쓰기, 언어, 모든 학문의 창조자로서 상세히 다루었다.
토트는 성서에도 나타난다. 기원전 6세기 혹은 그 이전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욥기 38장 36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누가 thwt(투후트 : 따오기)에게 지혜를 불어넣었는가?
누가 sekwi(세크위: 수탉)에게 분별력을 주었는가?

헤르메스는 아마도 헬레니즘 이전의 신으로 보이지만, 그의 숭배 기원과 본래의 성격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에스나(Esna) 신전에서 발견된 토트의 칭호 가운데 하나인 “위대한, 위대한, 위대한 토트”라는 표현은 적어도 기원전 172년부터 헤르메스에게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훗날 가장 유명한 칭호 가운데 하나인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Hermes Trismegistus, Ἑρμῆς ὁ Τρισμέγιστος, “세 번 가장 위대한 헤르메스”)라는 명칭을 낳았다. 이후 이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라는 인물상은 여러 가지 다른 비의적 지혜 전통들을 흡수하여, 헤르메티시즘(Hermeticism), 연금술, 그리고 관련 전통들의 핵심 구성 요소가 되었다.
토트와 헤르메스의 동일시는 그리스인들로 하여금 이집트 토트의 숭배 중심지(크문,케메누,Khmun)를 “헤르모폴리스(Hermopolis, ‘헤르메스의 도시’라는 의미)”라 명명하게 하였다.
다음과 같이 자료를 찾았다.
헤로도토스 역사
– 헤로도토스 / 박현태 역 / 동서문화사 / 2008.07.01
또 그들의 말로는, 열두 신의 호칭을 정한 것도 이집트인이 처음이고, 그리스인은 이집트인으로부터 그것을 배웠다고 한다. 또 신들의 제단이나 신상(神像)이나 신전을 세우는 것도, 돌에 모양을 조각하는 것도 이집트인이 창시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항에 대해서 사제들은 대부분 실례를 제시해 그것이 진실임을 증명해 보였던 것이다.
……
디오니소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신의 이름은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들어갔다. 그리스의 신들이 그리스 이외의 나라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은, 내가 직접 조사해서 확인한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은 이집트로부터 전래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외로서는 앞에서도 말한 포세이돈과 디오스크로이 외에 헤라 · 헤스티아 · 테미스 · 카리테스 · 네레이데스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이외의 신들의 이름은 줄곧 이집트에 있었다. 이상 나는 이집트인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인이 이름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신들은, 포세이돈을 제외하고는 펠라스고이인이 명명한 것일 것이다.
블랙 아테나
– 마틴 버낼 / 오흥식 역 / 소나무 / 2006.01.10 (원서: 1987)
…… 우리는 플라톤의 후기 작품에서 나타나는 주요 관심사가 이집트(플라톤은 아마도 기원전 390년경에 한동안 이집트에 머물렀을 것이다)였음을 알고 있다. 『파이드로스』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선언하게 한다. “그(이집트 지혜의 신 테우트(Theut-토트)가 바로 수와 산술, 기하학 …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문자를 발명했다.”
『필레보스』와 『에피노미스』에서 플라톤은 토트 신을 문자의 창안자이자 심지어 언어와 모든 학문의 창안자로서 상세히 언급했다. 또한 다른 곳에서는 이집트의 미술과 음악을 칭찬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찬성했다.
……
페트리의 특수한 주장을 제외하더라도, 헤르메스가 이집트의 토트와 동일한 존재라는 데에 모든 학자들이 동의한다는 점은, 헤르메스 원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부분의 연대를 이르게 추정하는 중심적인 증거가 된다. 17세기에 헤르메스 원문을 헐뜯었던 카조봉은 헤르메스 트리메기스토스라고 불리는 고대 현인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근대의 저자들은 지혜의 신인 토트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헤르메스 원문과 헤르메스 트리스메시스토스라는 인물이 과연 고대의 소산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토트 숭배, 즉 헬레니즘 시기의 이른바 이란적인 혹은 그리스적인 숭배와 헤르메스 원문의 철학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기란 그다지 쉽지 않다. 최근 스트릭커 교수와 데르셍 교수는 헤르메스 전집에서 나타나는 이집트적인 요소가 아리안 모델의 절정기에 연구했던 페스튀기에와 그 밖의 학자들이 가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두드러진다는 점을 상세히 보여주었다. 더욱이 ‘토트의 저술’이라는 생각은 분명 매우 오래된 것이다. 그 생각은 제18왕조에 유행했던 『사자의 서』에 자주 등장한다. 1920년대에 토트에 관한 책을 썼던 보일런 신부는 ‘도서관에 있는 토트의 저술’에 대한 제19왕조의 언급을 거론한다. 플루타르코스와 초기 그리스도교 저자인 티투스 플라비우스 클레멘스는 ‘헤르메스의 저술’을 언급한다. 비록 제18왕조와 제19왕조 시기의 이 저술들이 후기의 전집과 거의 유사점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학자들이 너무나도 성급하게 그 둘 사이의 연결성을 부인한다고 믿는다.
또한 전에는 로마 시대에야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던 헤르메스 전집의 특징은 최근의 발견을 통해 보다 과거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기원전 3세기 초에 씌어진 것으로 보이는 ‘세 배로 위대한 토트(Thoth the great, the great, the great)’라는 이름이 상上이집트의 에스나(Esna)에서 발견되었고, 멤피스 바로 외곽의 사카라에서 발굴된 기원전 2세기 초의 민용문자 원문에는 ‘세 배로 위대한 토트’ 즉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라는 이름이 나타난다. 이 원문은 토트와 관련된 한 사제의 문서들 안에 들어 있었다. 『호루스의 보고』라는 이 모음집의 또 다른 항목에는 토트가 이시스의 아버지였다는 전승이 있는데, 이는 오로지 헤르메스 원문에서만 나타났다. 헤르메스 전집과의 연결 고리인 이 두 가지 사항은, 그 둘을 소위 헤르모폴리스의 우주창조설과 연결짓는 다른 저술에서도 발견되었다. 그러한 연결의 근거는 우주창조설의 전통적인 뿌리, 그리고 토트 및 그의 신성한 새인 따오기에 대한 엄청난 대중적인 숭배와 관련이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해에는 사카라에 1만 마리의 따오기가 있었던 것으로 추산되었다. 토트 숭배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크게 확장되기는 했지만, 그보다 1천 년 앞선 시기에 씌어진 『사자의 서』에서 토트는 이미 매우 강력한 신이었으며 사람이 자주 기도를 바치는 신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의 토트 숭배가 고대 전승에 확고히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데에는 대체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
……
…… 『멤피스 신학』이 묘사하는 우주창조설에 따르면, 멤피스의 지역신인 프타와 그에게서 나온 아툼은 최초의 존재들이었다. 프타는 그의 정신이 위치한 심장에서 세계를 창조했으며, 그의 혀를 통해, 즉 말이라는 행위를 통해 세계를 실현했다. 비록 페스튀기에 신부와 보일런 신부가 서둘러 부정하기는 했지만, 이는 플라톤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로고스, 즉 ‘말씀’과 대단히 유사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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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주창조설에서 토트의 역활은 프타의 심장이었고, 프타의 혀는 호루스였다. 토트를 심장과 연결시키는 이러한 전승은 2천 년 후 『호루스의 보고』의 출판자인 존 레이는 심장이 지성과 관련됨을 올바르게 지적하는데, 토트는 특히 지성의 주인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신학들에서, 토트는 문자의 발명자이자 수학의 창시자이며 주술의 주인이었고, 신들을 서로 관련짓고 신과 인간을 관련짓는 신성한 행위인 말이었으며, 심지어 세계의 창조주였다.
토트가 위대한 전달자였다는 사실은 그를 죽은 자를 보호하는 재칼 신이자 영혼의 안내자이며 죽음의 사자인 아누비스와 통합시킨 한 요인이 되었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죽은 자를 심판하는 과정에서 토트와 아누비스가 서로 밀접하게 뒤얽힌 역활을 수행했다는 사실이다. 그 둘은 기원전 3000~2000년의 시기로 소급되는 『피라미드 원문』에서도 이 역활과 긴밀하게 관련되었으며, 제19왕조 혹은 기원전 13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 신의 통합 이미지가 발견된 바 있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까지는 이집트 종교에서 공식적인 헤르마누비스 숭배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마지막 발전 단계가 그리스 종교에서 토트와 아누비스의 역활을 겸하는 헤르메스의 존재와 관련되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본래의 결합이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이지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의 통합 형태가 그리스 종교에서 유래했다는 데에는 거의 의문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이 복합적인 양상과 더불어,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는 앞에서 논의한 신학 혹은 ‘이중 철학’에서 모든 역활을 수행할 수 있었다. 신들의 아버지이자 지고의 지성으로서 그는 숨은 신일 수 있었고, 활동하는 지성 혹은 말이라는 행위로서 조물주일 수 있었으며, 전달자로서 숨은 신과 조물주를 연결하거나 분리하는 성령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영혼을 불사로 이끌어 그들에게 우주의 경이를 설명해주는 사자 혹은 안내자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지배적인 후기 전승은 헤르메스가 철학자이자 도덕 교사임을 분명히했다.
여기서 우리는 헤르메스의 에우헤메리즘화(euhemerization), 즉 신에서 현인으로의 전환이라는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에우헤메리즘화를 또 다른 후기의 특징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보다 이른 시기의 선례들이 있다. 기원전 4세기 초에 플라톤은 테우트와 토트를 문자와 수, 그리고 천문학 등의 발명자로 일컫는다. 더욱이 테우트/토트는 신인 동시에 현인으로 나타난다. 50년 후, 아브데라의 헤카타이오스는 헤르메스/토트를 위대한 발명을 이룬 인간으로 묘사했다. 또한 헤르메스가 이른 시기에 에우헤메리즘화되고 합리화되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증거가 페니키아에서 나타난다.
……
토트는 또한 성서에도 나타난다. 기원전 6세기 혹은 그 이전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욥기 38장 36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누가 thwt(투후트 : 따오기)에게 지혜를 불어넣었는가?
누가 sekwi(세크위: 수탉)에게 분별력을 주었는가?
욥기에 대한 권위 있는 주석에서, 마빈 포프 교수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쓴다.
호프만이 thwt(투후트)를 토트 신과 관련지은 것은 분명 옳았다. 자음의 순서가 제18왕조에서 널리 유포되었던 이름의 형태인 dhwty(제후티)와 꽤 긴밀하게 대응한다. 당시 토트 숭배는 정점에 이르렀고, 페니키아로까지 퍼져나갔다 … 비블로스의 필론은 타우토스Taaut(os)라는 페니키아 발음을 제시하는데, 이는 타후트tahut라는 형태를 반영한다 … 세크위sekwi를 수성Mercury의 콥트어 이름 수키souchi와 연결시키는 호프만의 제안은, ‘수탉’과의 의문스런 연결보다 바람직스럽게 보인다. 알파벳의 발명자이자 모든 지식의 창시자인 전지하고 현명한 토트-타우토스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트레막시무스라는 이름 하에 그리스-로마인의 헤르메스-메르쿠리우스와 동일시되었다.
thwt(투후트)가 주主에게서 받은 지식으로 충만했으므로 현인이자 지혜의 전형이었을 뿐 신이 아니었음은 반드시 강조해야 한다. 따라서 바움가르텐처럼 그리스 이전의 합리성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지 않는다면, 기원전 4세기에 방대한 그리스의 영향이 이집트에 미치기 오래 전에 신을 현인과 영웅으로 전환하는 에우헤메리즘화가 이집트 문화와 페니키아 문화 모두에서 이미 나타났다는 유력한 증거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이는 특히 토트와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의 경우에 해당한다.
Thoth – 위키백과
– https://en.wikipedia.org/wiki/Thoth
토트(Thoth)(코이네 그리스어: Θώθ Thṓth, 콥트어 차용: Ⲑⲱⲟⲩⲧ Thōout, 고대 이집트어: Ḏḥwtj, ḏḥwtj의 반사형, “[그는] 따오기와 같다”라는 의미)은 고대 이집트의 신으로서, 종종 인간의 몸에 따오기 혹은 개코원숭이의 머리를 한 형상으로 묘사되었다. 이 두 동물은 토트와 밀접하게 연관된 신성한 동물로 간주되었다. 토트의 여성적 대응자는 세샤트(Seshat)이며, 배우자는 마아트(Maat)로 전승된다. 토트는 달, 지혜, 지식, 문자, 상형문자, 과학, 마법, 예술 및 심판의 영역을 관장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토트의 주요 신전은 헤르모폴리스(Hermopolis)에 위치하였으며, 고대 이집트어로는 ḫmnw(/χaˈmaːnaw/, 학술적 발음: 케메누 Khemenu), 콥트어로는 Ϣⲙⲟⲩⲛ(Shmun)이라 불렸다.
……
이집트 신화에서 토트는 다면적이고 중대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그는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로 간주되었으며, 태양신 라(Ra)의 태양선(太陽船, solar barque) 양편에 자리한 두 신(다른 하나는 마아트) 가운데 한 명으로 묘사되었다. 이집트 후기 종교사에서 토트는 신들 간의 분쟁을 중재하는 권능, 마법의 기술, 문자 체계의 정립, 그리고 사후 심판과 긴밀하게 연관된 존재로 자리매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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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인들은 토트가 지닌 속성과 기능이 자국의 신 헤르메스(Hermes)와 유사하다고 판단하여 양자를 동일시하였다. 토트의 칭호 가운데 하나인 “세 번 위대한 자”(Thrice great)는 그리스어 τρισμέγιστος(trismégistos)로 번역되었으며, 이는 후대에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Hermes Trismegistus)”라는 개념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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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신화에서 토트는 다방면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는 신들의 서기관으로서, 문자와 이집트 상형문자의 발명을 주관한 존재로 전승된다. 저승(두아트, Duat)에서는 원숭이 형상인 아아니(Aani), 곧 균형의 신으로 나타나 죽은 자의 심장을 마아트(Maat)의 깃털과 저울질할 때 균형이 정확히 맞춰졌음을 보고하는 역할을 하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토트를 ‘유일자’이자 ‘스스로 탄생하고 스스로 생성된 존재’로 인식하였다. 그는 물리적 질서와 도덕적 질서(즉, 신성한 법)의 주재자로서, 마아트를 적절히 활용하는 존재로 이해되었다. 천상과 별, 지구 및 그 안에 존재하는 만물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필요한 계산을 수행한 존재로도 간주되었다.
이집트인들은 과학, 종교, 철학, 마법에 관한 모든 저술의 저자로 토트를 찬미하였다. 그리스인들은 더 나아가 그를 천문학, 점성술, 수학적 계산, 기하학, 측량학, 의학, 식물학, 신학, 문명화된 통치 체제, 알파벳, 독서, 필기, 웅변술 등의 발명가로 선언하였다. 나아가 그들은 인간적이든 신적이든 모든 학문과 지식의 모든 분과에 속하는 모든 저작의 진정한 저자가 바로 토트라고 주장하였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루타르코스(Plutarch)는 토트가 365일 달력을 창안한 것으로 전한다. 신화에 따르면 원래 1년은 360일에 불과하였으며, 이 기간 동안 누트(Nut)는 불임 상태로 자녀를 잉태할 수 없었다. 이에 토트는 달과 도박을 벌여 그 빛의 1/72(즉, 360/72 = 5일)에 해당하는 기간을 획득하였다. 이로써 새로이 확보된 5일 동안 누트와 게브(Geb)는 오시리스(Osiris), 세트(Set), 이시스(Isis), 네프티스(Nephthys)를 출산할 수 있었다.
오시리스 신화의 중심 서사에서 토트는 이시스에게 주문을 부여하여 그녀가 남편 오시리스를 부활시킬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를 통해 두 신은 호루스(Horus)를 잉태하게 되었다. 이후 호루스와 세트 간의 전투가 전개되자, 토트는 조언자이자 지혜의 전달자로서 개입하여 판정과 질서 유지에 기여하였다.
고대 이집트 말기에 이르러 토트의 신앙은 크게 부상하였는데, 이는 그의 주 숭배 중심지인 크문(Ḫmun, 그리스어: Hermopolis Magna)이 수도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수백만 마리의 따오기가 토트에게 봉헌되는 의례로 미라화되어 매장되었다.
토트는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현명한 조언자이자 설득자로 등장하였다. 학문과 계량과의 연관성으로 인해, 그는 종종 지혜의 신격화의 초기 형상인 세샤트(Seshat)와 연결되었는데, 전승에 따라 세샤트는 그의 딸 혹은 아내로 간주되었다. 또한 토트의 속성은 그리스인들로 하여금 그와 가장 유사한 자국의 신 헤르메스(Hermes)와 동일시하도록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토트는 결국 헤르메스와 결합하여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Hermes Trismegistus)로 형성되었다. 이와 같은 동일시는 그리스인들로 하여금 토트의 숭배 중심지를 “헤르모폴리스(Hermopolis, ‘헤르메스의 도시’라는 의미)”라 명명하게 하였다.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의 아니 파피루스(Papyrus of Ani) 사본에서 서기관은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오 토트여, 나는 당신의 필기 팔레트(palette)이며, 당신의 잉크 단지를 가져왔노라. 나는 은밀한 곳에서 불의를 행하는 자가 아니니, 악이 내게 닥치지 않게 하소서.
『사자의 서』 제175장(버지[Budge] 판, 제29판)은 토트 자신이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전승으로 여겨진다.
또한 제16왕조에는 토트의 이름을 따서 제후티(Djehuty, Thoth)라 불린 파라오가 있었으며, 그는 3년간 재위하였다.
플라톤은 『파이드로스(Phaedrus)』에서 토트를 Θεὺθ(Theuth)라는 이름으로 언급하였다. 플라톤은 토트의 신화를 인용하여 문자가 게으름과 망각을 초래한다는 점을 논증하였다. 이야기에서 토트는 이집트의 타무스(Thamus) 왕에게 문자가 기억을 대신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라고 주장하였으나, 타무스 왕은 그것이 진정한 기억이 아니라 단순한 상기(喚起)의 도구일 뿐이며, 겉보기에는 지혜를 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였다. 미래 세대는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않고도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으나, 참된 지혜 없이 현명한 체할 것이라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이집트계 유대인 아르타파누스(Artapanus, 기원전 3~2세기 활동)는 토트-헤르메스를 실존 인물로 에우헤메리즘(Euhemerism)적으로 해석하였으며, 그를 모세(Moses)와 동일인으로 주장하였다. 이는 주로 두 인물이 모두 저술과 율법 제정에 관여했다는 공통점에 기초한 것이었다. 아르타파누스의 모세 전기는 모세와 토트에 관한 전승을 융합하고 많은 세부 사항을 창작한 것이다. 이후 고대 후기에서 르네상스에 이르는 여러 저자들 역시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를 모세와 동일시하거나, 혹은 동시대 인물로 간주하여 유사한 신념을 설파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Hermes – 위키백과
– https://en.wikipedia.org/wiki/Hermes
헤르메스는 아마도 헬레니즘 이전의 신으로 보이지만, 그의 숭배 기원과 본래의 성격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Frothingham은 이 신이 메소포타미아의 뱀의 신, 즉 인간과 신들—특히 이슈타르—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했으며, 미술에서 카두케우스(지팡이와 두 마리 뱀으로 이루어진 상징)로 묘사된 닌기쉬지다(Ningishzida)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존재였다고 생각했다. 안젤로(Angelo, 1997)는 헤르메스가 토트(Thoth) 원형(archetype)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본다. 헤르메스의 속성이 토트와 결합 · 융합되는 현상은 호메로스 이후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 사이에서 발전하였다. 헤로도토스는 처음으로 그리스 신을 이집트 신과 동일시했으며(헤르모폴리스), 플루타르코스와 디오도로스도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플라톤은 두 신이 서로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다(Friedlander, 1992).
……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이후 그리스 문화와 영향력이 확산되면서, 종교적 혼합(syncretism) 또는 “interpretatio graeca”라 불리는 현상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전통적인 그리스 신들이 외국의 신들과 동일시되었다. 예를 들어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의 이집트에서, 이집트 신 토트(Thoth)는 그리스어를 쓰는 사람들에 의해 이집트판 헤르메스(Hermes)로 인식되었다. 두 신은 케메누(Khemenu)의 토트 신전에서 함께 숭배되었으며, 이 도시는 그리스어로 헤르모폴리스(Hermopolis, “헤르메스의 도시”)라 불리게 되었다. 이로 인해 헤르메스는 번역과 해석의 신, 더 넓게는 지식과 학문의 신이라는 속성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기원전 3세기, 아마도 기원전 15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쓰인 것으로 보이는 제사장 페토시리스(Petosiris)가 네콥소(Nechopso) 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드러난다. 그 편지에는 “헤르메스는 모든 비밀 지혜의 스승이며, 이는 종교적 황홀경을 경험함으로써 접근할 수 있다”라고 적혀 있다.
에스나(Esna) 신전에서 발견된 토트의 칭호 가운데 하나인 “위대한, 위대한, 위대한 토트”라는 표현은 적어도 기원전 172년부터 헤르메스에게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훗날 가장 유명한 칭호 가운데 하나인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Hermes Trismegistus, Ἑρμῆς ὁ Τρισμέγιστος, “세 번 가장 위대한 헤르메스”)라는 명칭을 낳았다. 이후 이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라는 인물상은 여러 가지 다른 비의적 지혜 전통들을 흡수하여, 헤르메티시즘(Hermeticism), 연금술, 그리고 관련 전통들의 핵심 구성 요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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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융(Carl Jung)에게 있어, 영역들 사이의 전령이자 저승의 안내자로서의 헤르메스의 역할은 그를 무의식의 신, 즉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매개자, 그리고 내적 여정의 안내자로 만들었다. 융은 토트(Thoth)와 헤르메스(Hermes)를 서로 대응되는 신(counterparts)으로 보았다. 그는 헤르메스가 중세 연금술 실천에서 차지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강조했는데, 융은 연금술을 자신이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부른 심리적 과정의 상징으로 해석하였다. 특히 융 심리학(Jungian psychology)에서 헤르메스는 동시성(synchronicity) 현상의 연구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며, 이때 판(Pan)과 디오니소스(Dionysus)와 함께 언급된다.
“헤르메스는 원형적(archetypal) 인물이며, 모든 인간의 정신 속에 잠재된 가능성이다…”
신세계사 1
– 쑨룽지 / 이유진 옮김 / 흐름출판 / 2020.01.20(원서: 2015)
이집트 통일 왕국이 흥기한 곳이라고 해서 반드시 전국적인 종교 중심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진·한제국은 모두 관중關中에서 흥기했지만, 봉선封禪 의식은 제노齊魯의 태산泰山으로 가서 거행해야 했던 것이 그 예다. 고왕국의 종교 중심지는 따로 있었다. 그 가운데 한 곳이 헤르모폴리스(Hermopolis)다. 이곳에서는 여덟 신 오그도아드(Ogdoad)를 받들었다. 오그도아드는 창세 이전 혼돈의 여덟 측면을 상징한다. 그것은 물 · 무형 · 무한 · 어둠이 각각 남신과 여신 한 쌍으로 체현된 것이다. 헤르모폴리스의 신화에서 말하길, 태초에 태양신 라가 태초의 물 위로 솟은 언덕에 있던 알을 깨고 나왔다고 한다.
태양신 라를 탄생시킨 알은 토트(Thoth)의 선물이다. 그 알은 따오기 형태의 토트가 낳은 것이다. 이로써 토트는 혼돈과 질서의 교량이 되었다. 토트는 태양의 배를 호위하는 신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따오기 머리 혹은 비비 머리를 하고 있는 토트의 직능은 매우 많다. 그는 신들의 중재자이자 마법 · 기록 · 과학의 우두머리이며, 사자의 심판에도 참여한다. 후에 토트는 헤르모폴리스의 원래 주신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스인은 토트를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Hermes)와 동일시했다. 그래서 토트의 숭배지를 헤르모폴리스 마그나(Hermopolis Magna)라고 칭했다. 이집트어로 이곳의 원래 명칭은 크문(Khmun)이다.
크문은 상이집트의 종교 중심이었다. 하지만 고왕국의 수도는 이미 하이집트로 옮겨졌다. 때문에 나일강 삼각주, 멤피스 동북에 자리한 태양의 도시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의 지위가 더욱 중요해졌다.
멤피스 창세신화 – 발화를 통한 창조행위의 비교종교학적 의미
– 유성환 / 종교와 문화 (ISSN : 19767900) / 2016년 12월
『멤피스 창세신화』는 고대로부터 전승된 이집트의 종교 문서 중 가장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멤피스 창세신화』는 이집트의 종교를 다룬 여러 문서를 통해 단편적으로만 소개된 것이 사실이다. 이집트로부터 전승된 창세신화 중 『헤르모폴리스 창세신화』는 창조 이전의 상황에 초점을 두고 태초의 대양이 보유한 본질적인 속성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집트의 가장 기본적인 창세신화라 할 수 있는 『헬리오폴리스 창세신화』는 태초의 대양을 배경으로 창조주이자 원발자인 아툼이 자신의 몸을 발현하여 우주를 창조하는 창조과정을 기술하는데 여기서 아툼은 자위 혹은 체액 방출과 같은 물리적인 방법을 통해 우주의 구성요소를 이루는 신들과 다른 모든 대상을 창조한다. 한편, 앞서 언급한 두 창세신화보다 비교적 후대에 창작된 『멤피스 창세신화』는 기존 창세신화에 제시된 구조를 변형하는 방법으로 멤피스의 주신 프타의 창조행위를 설명하는데 이 창세신화에 따르면 프타는 태초의 대양과 동일한 신격을 보유한 창조주로서 아툼에 선행하며 창조과정 역시 심장을 통한 창조적 인식과 혀로 대표되는 조음기관을 통한 창조적 발화가 핵심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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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샤바카石》 53열에는 m HAtj pn xpr.n Hrw jm.f / ns pn xpr.n DHwtj jm.f “프타로부터 호루스가 발현한 이 심장을 통해, 프타로부터 토트(Thoth)가 발현한 이 혀를 통해”라고 언급되는데 창조적 인식을 담당하는 프타의 심장에서 왕권을 보유한 호루스가, 창조적 발화를 담당하는 프타의 혀에서 지혜의 신이자 언어와 성각문자의 신인 토트가 각각 생겨났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호루스는 권위 있는 창조적 인식을, 토트는 창조적 인식을 실현할 수 있는 실행력을 각각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헬리오폴리스의 원발자 아툼과 마찬가지로 호루스와 토트 모두 결국은 프타가 수행하는 창조행위의 한 측면이 체화된 것이다. 이어 프타로부터 발현한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는 그의 창조능력이 신체의 모든 기관 중 가장 중요한 심장과 혀의 형태로 깃들어 있으며 창조주의 기획력과 실행력이 심장과 혀를 통해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 편재한다는 사실이 선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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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바카石》 56열에서는 창조의 과정에서 창조의 권능을 보유하고 있는 기관은 심장과 조음기관인 혀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강조되는 동
시에, 지식이 창조되는 과정도 설명된다. 《멤피스 창세신화》에 따르면 지식은 감각기관이 인식한 것이 심장으로 보고됨으로써 생성되며 이렇게 심장에서 생성된 지식은 혀를 통해 전달된다. 여기서 지식을 생성하는 심장은 앞서 53열에서 언급된 권위 있는 창조적 인식을 구현한 호루스와, 생성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심장의 의도를 전달하는 혀는 창조적 인식을 실현할 수 있는 실행력을 구현한 토트와 각각 조응한다. 이어 심장과 혀의 기능에 기반을 둔 창조의 결과 발현된 우주의 다양한 면모가 열거된다.
신화적 상상력과 문화
– 정재서, 전수용, 송기정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 2008.02.29
그리스 신들의 사자인 헤르메스(Hermes)는 서양 연금술의 아버지이자 보호자로 여겨진다. 또한 그는 이집트의 치료의 신이자 지혜의 신, 그리고 동시에 학문의 신인 토트와도 동일시된다. 원래 그리스어로 헤르메스는 학문의 능력을 뜻한다. 그는 막 태어난 신생아로 묘사되기도 하고, 풍요와 음악의 수호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연금술서에서는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두 마리의 뱀이 감겨 있으며 꼭대기에 쌍날개가 달린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 지팡이는 순환성을 상징하는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모양을 한 우로보로스와 함께 연금술의 상징화에 자주 등장한다. 헤르메스는 연금술에 관하여 3만 6천 권의 원전을 집필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저작은 난해한 표상들로 가득한 『에메랄드 평판』이다. 『에메랄드 평판』에 대해서는 그 출처가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연금술사들의 바이블이 되었고, 13세기 이래 연금술의 저작들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이것은 진리이다. 조금의 거짓도 없이 최고로 진실한 것이다.
- 하나의 물질이 기적을 이룸에 있어서, 아래에 있는 것은 위에 있는 것과 같고, 위에 있는 것은 아래에 있는 것과 같다.
- 하나의 존재에 의해 모든 사물들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모든 사물들은 이 하나의 물질로부터 만들어진다.
- 그의 아버지는 태양이며, 어머니는 달이다. 바람이 그것을 자궁에 옮겨주었고, 흙은 그에게 양분을 주었다.
- 그것은 전 세계의 모든 완전함의 뿌리이다.
- 만약 그것이 흙으로 변화하게 된다면 그 힘은 완벽해질 것이다.
- 신중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흙을 불에서 분리시키고, 정밀한 것을 조잡한 것에서 분리시켜라.
- 최고로 위대한 총명함으로 흙에서 하늘로 올라가라. 그리고 다시 흙으로 내려오라. 그대는 자신의 내부에 위의 힘과 아래의 힘을 동시에 품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온 세계의 영광을 얻게 될 것이며, 모든 어둠은 그대를 멀리 떠나게 될 것이다.
- 이것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힘인데, 왜냐하면 모든 미세한 것들을 정복하며, 또한 모든 단단한 것들을 관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세상은 이렇게 창조되었다.
- 따라서 여기에 설명되어 있는 경이로움을 따르라.
- 나는 전 세계 철학의 세 부분을 가지고 있기에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라 불린다.
- 나는 태양의 작업에 관해 할 말을 다하였다.
그림으로 보는 세계신화사전
– 아서 코트렐 / 편집부 역 / 까치 / 1997.04.01
토트 (Thoth)
이집트 신들의 서기이다. 크문 또는 헤르모폴리스라고도 불리는 도시의 이 주신(主神)은 머리가 이비스(ibis: 성조로 여겨진 따오기과 검은 따오기속의 아프리카 검은 따오기) 또는 비비의 머리라고 여겨졌다. 초기의 시대에 토트는 창조신이었으나, 기원전 3000년경의 하반기부터는 법률의 제정, 학문의 발전, 신성 문자의 발명이 토트의 공적으로 여겨졌다. 현대의 게임용 카드 한 벌은 신성 문자를 개작하여 만든 것이라는 설이 있으며, 그래서 때때로 그것은 “토트의 책(the book of Thoth)”이라고 불린다.
토트는 연구에 의해서 히케(hike), 곧 “마술”을 터득했다. 크문 시에서 전해오는 창조 신화에 의하면, 자기 창조를 한 그 지혜의 신이 “그들은 존재를 입게 되었다(they were clothed with being)”는 말을 하면 그것이 곧바로 생명체가 되었다고 한다. 그 신화는 특히 훗날의 마법사나 요술사의 마음을 끌었다. 크문의 우주론의 흥미로운 변종의 하나가 연꽃 전설이다. 원초의 물에서 자라난 연꽃이 피자 세계의 창조자인 아름다운 아이가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아기 태양이었다는 것이다.
헤르메스 (Hermes)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와 요정 마이아의 아들이다. 헤르메스는 그리스 인들에게는 인기 있는 신이다. 신들의 사자(使者)인 그는 가끔 인간을 못된 길로 빠지게 했다. 프쉬코폼포스(Psychopompos), 곧 “영혼을 인도하는 존재”이기도 한 그는 사자(死者)를 하이데스의 왕국인 지하세계로 호송했다. 그 역활 때문에 훗날 게르만 족의 신 오딘은 로마의 신 메르쿠리우스와 동일시되었다. 메르쿠리우스는 로마의 헤르메스이며, 오딘은 전사자들의 아버지, 곧 그들을 인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헤르메스는 좋은 기회, 행운의 후원자이자 상인이나 도둑의 후원자로 여겨졌다. 날개 달린 샌들은 그가 자신의 이복형제인 아폴론의 소를 훔칠 때 도움이 되었다. 또 날개 달린 사고력은 성난 아폴론으로부터 그를 지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때 그는 불법 침입의 대가로 그가 발명한 리라를 아폴론에게 줄 생각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는 또 도로의 신, 풍요의 신이기도 했다. 그러한 역활들은 헤르메니아에게 지워진 것이었다. 헤르메니아란 헤르메스의 원시적인 모습인데, 그것은 네모난 돌기둥으로서 위쪽은 신의 머리로 되어 있고 아래쪽에는 남근을 새겨놓은 것이었다. 그 대부분은 길가나 밭의 경계에 세워져 있었다. 보다 이른 시기에는, 길가의 그의 사당은 그저 하나의 돌 무더기일 뿐이었다. 나그네들은 그의 가호를 빌면서 그 무더기에 돌 하나를 더 보탰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관습적인 행위는 신에게 기름을 붓는 것으로 바뀌었다. 기원전 3세기에 테오프라스투스는 미신을 조롱하면서 이렇게 썼다. 어떤 사나이가 “십자로에 서 있는 조각된 기둥 곁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는 그 기둥에 자기의 병을 기울여서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그는 미끄러져서 넘어졌고 그 바람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해버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가까스로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 산 속의 작은 길들에는 그리스도 교의 조그마한 기둥 사원들이 마련되어 있다. 그것들은 저 헤르메이아의 성스러운 자손들이다.
# 관련 그림

이시스 여신의 앞에는 영원한 빛의 창조자이며 지배자인 아몬-레(Amon-Re)가 서서 그녀에게 생명의 징표인 앙크 십자가를 선사하고 있다. 토트(Thoth)는 그녀의 뒤에서 그녀의 오른팔을 쥐고 보호의 주술을 걸어 주고 있다. 월리스 버지(E.A. Wallis Budge)는 “아몬-레와 토트 신은 오늘날의 남편과 주술사의 역활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시스가 대단히 고통받았으며 그녀가 얼마나 많은 역경을 헤쳐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메테르니히 스텔레(Metternich Stele)의 판본에서는 이시스가 겪은 처절한 고통과 외로움이 강조되어 있는데, 그중 이시스가 호루스를 낳는 장면의 묘사가 이런 가정을 뒷받침해준다.” 고 말했다.

아래쪽 장면에서는 고인인 휴네퍼는 아누비스를 따라 오시리스의 재판장으로 인도되어 온다. 거기서 그의 심장은 진리의 여신의 깃털과 함께 저울에 달아진다. 저울 꼭대기에 달려 있는 것은 마아트(ma’at, 진리)의 머리이다. 아누비스는 저울이 평형을 이루는지 판정하고, 그의 앞에는 ‘죽은 자를 잡아먹는 자’라고 불리는 괴물이 서 있다. 그 괴물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자들을 다 잡아 먹어 버린다. 그 괴물은 고개를 돌려 토트(Thoth)의 신호를 보고 있고, 토트는 결과를 기록하고 있다. 휴네퍼는 심사를 통과하여 호루스를 따라 오시리스에게로 인도되고 있다.

위의 이집트 그림과 비교하면 그리스에서는 헤르메스가 무게 재기에서 중심적 역활을 했고 이집트에서는 그의 짝인 토트가 항상 무게를 기록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 관련 자료
Hermes Trismegistus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