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명

관산성 전투, 백제 성왕의 전사 – 554년

백제와 신라 사이에 벌어진 관산성(管山城)전투는 두 나라 미래의 명운을 결정짓는 한판의 승부였다. 이 전투의 중요성을 보면 작지가 않은데, 백제는 중흥의 기틀을 빼앗기고 신라는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그런 역사적 사건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이를 전문적으로 다룬 논문이 적지 않게 나왔음은

신라가 한강을 차지하다 – 553년

백제 성왕이 551년 한강유역을 재점령(http://yellow.kr/blog/?p=2395)했지만 신라가 백제를 공격하여 553년 한강유역을 차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백제가 신라에게 한강유역을 빼앗기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신라의 기습 공격설이 대표적이지만 백제의 포기설도 있다. 백제의 한성 포기는 『일본서기』의 552년 부분에 “이 해에 백제가 한성과 평양을 포기하였다.

백제 성왕, 한강 유역 재점령 – 551년

일반적으로 교과서나 백과사전 등을 보면 551년의 백제 한강유역 재점령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538년 사비로의 천도 후 백제 성왕은 한강 유역 회복작전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자력으로 고구려를 공격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신라·가야군과 연합군을 형성하였다. 이 시기 고구려는 대외적으로는 서북으로부터 돌궐(突厥)의 남하에 따른 압력을

모세의 출애굽 – 기원전 16세기 ?

모세(Moses)의 출애굽(The Exodus, “going out”)은 이스라엘의 건국신화이다. 이 이야기가 나오는 출애굽기(出埃及記, 탈출기, 脫出記)는 구약성경의 두 번째 부분인데, 야훼가 모세를 통해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출애굽이라는 명칭은 ‘이집트에서 나옴’을 뜻한다. 히브리어로는 쉐모트(שמות)라고 한다.   출애굽 이야기의 역사성은

라이덴의 아이퓨어(이푸베르,이푸워) 파피루스 (Ipuwer Papyrus)

네덜란드 라이덴 박물관(Leiden Museum)에 있는 Ipuwer 파피루스는 고대 이집트인 Ipuwer(아이퓨어, 이푸베르, 이푸워)가 작성한 글의 이집트 신왕조 제19왕조 이후에 작성된(대략 기원전 1250년) 필사본으로 알려져있다. 원 글 자체는 훨씬 오래전인 이집트 중왕국 시기의 12왕조 후반 정도(대략 기원전 1991 ~ 1803년)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공식적인 이름은 Papyrus Leiden I

테라 화산 폭발 – 기원전 1628년

그리스의 산토리니(Santorini)는 에게해의 눈부신 풍경을 지닌 유럽 최고의 관광지로 꼽히는 섬이다. 옛날에는 테라(Thera)로 불렸는데, 이 섬은 기원전 1620년경에 대규모 폭발을 일으킨 화산섬이다.   – 산토리니를 대표하는 이아 마을에서 바라 본 칼데라   – 산토리니의 항공사진으로 둥근 칼데라의 흔적이 보인다.  

중국 최초의 왕조 하나라 – BC 2070년(?)

하 왕조(Xia dynasty, 대략 기원전 2070 – 1600년)는 논란이 있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조이다. 하 왕조의 근거는 죽서기년, 서경(書經), 사기(史記) 등의 기록과 하 왕조의 유적지로 추정되는 얼리터우 문화(二里頭文化, 이리두 문화, 허난성 옌스시) 유적과의 연관성에 대한 고고학적 성과이다. 하 당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이집트 기자(Giza)의 피라미드 단지이다. 피라미드의 정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서도 대표격인 쿠푸(Khufu)의 대피라미드가 있고 가장 크고 오래된 유명한 스핑크스도 있다.   기자의 3대 피라미드는 이집트 수도 카이로 도심지에서 남서쪽으로 13㎞ 정도 떨어진 기자의 사막고원에 있다. 이집트의 다른

이집트학과 유사 피라미드학 발전사

고대 이집트와 피라미드에 관련된 책을 접했을때 많은 학자들이 등장하는데 이 학자들의 학문적 경향이나 시대적인 위치, 배경 등을 알아야 좀 더 편하게 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이후의 이집트학과 그 학문적 이단인 유사 피라미드학의 역사를 한 번 간략하게 정리하고자 한다(계속 내용을

사르후 전투 (명청교체의 판가름) – 1619년

누르하치가 1616년 후금을 건국했다. ※ 누르하치, 여진을 통일하고 후금을 세우다 – 1616년 : http://yellow.kr/blog/?p=1815   누르하치가 여진 세계를 통일할 의지를 실천에 옮기자, 몽골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해서여진의 여허 부족은 명과 몽골 세력 등을 끌어들여 이를 저지하려 했다. 이들 외부 세력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