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를 통일한 메네스(나르메르 ?)

고대의 기록에 따르면 메네스Menes는 상 · 하이집트를 최초로 통일한  이집트 제1왕조의 첫번째 파라오이다. 사실 ‘메네스Menes’라는 이름은 기원전 3세기 이집트 역사가 마네토Manetho에 의해 알려진 그리스어이다. 헤로도토스는 민Min, 요세푸스는 Minaios, 디오도로스는 Menas라고 불렸으며 다른 변형들도 존재한다.

 

메네스와 관련된 다양한 형태의 그리스어 존재는, 비록 어원에 문제가 있지만 아비도스Abydos와 토리노Turin의 왕명록에 있는 Mni라는 이집트 이름에서 파생된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mn’을 어떤 학자들은 “to endure”의 의미로 연결했고, 다른 학자들은 “so-and-so”의 의미로 연결했다. 또한 제임스 알렌James Allen은 ‘Meni’라는 이름을 메네스가 세운 도시인 멤피스Memphis(Mn-nfr)의 이집트 이름과 연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네토에 의하면 메네스는 8명의 파라오가 재임한 이집트 제1왕조를 창시하였고, 62년간 파라오로 재임했다. 메네스는 나일강에 거대한 제방을 쌓아 만든 매립지인 멤피스를 건설하였는데, 멤피스는 이집트 초기왕조(1~2왕조)부터 이집트 고왕국까지(3~6왕조)의 수도였다. 마네토는 메네스의 해외 원정을 얘기했고, 디오도로스는 메네스가 최초의 입법자이며 신성한 숭배를 창시하였다고 말했다. 플리니우스Pliny는 메네스가 문자를 발명했다고 했다.

 

강력하고 아름다운 동물로서 황소는 다른 여러 문화에서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었다. 이집트에서 황소 및 황소의 뿔은 전前왕조(제1왕조 이전의 왕조) 이래 숭배적 중요성을 지닌 것이었다. 파라오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수많은 황소 숭배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피스(Apis) 황소 숭배였다. 이것은 후에 그리스인에게 메네스Menes 또는 민Min으로 알려진 제1왕조의 첫 지배자이자 위대한 입법자에 의해 멤피스(또는 멘 네페르Mnnfr) 근처에서 확립되었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그는 멤피스에 광대한 프타(Ptah) 신전을 건립했다고 했는데, 아피스는 프타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한 3개의 대신전은 멤피스의 프타Ptah 대신전, 헬리오폴리스의 라Ra 대신전, 테베의 아문Amun 대신전

 

마네토는 메네스가 하마에게 죽었다고 했다.

 

메네스가 이집트 제1왕조 몇몇의 왕들을 혼합한 전설적인 인물이 아니라면, 메네스는 잘 증명된 제1왕조 왕들 중의 한 명으로 다른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태조 이성계’에서 태조와 이성계가 같은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많은 학자들은 메네스라는 이름이 특정 왕을 나타낸다고 믿었지만 누구인지에 대한 논쟁은 이집트학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이었다. 오늘날, 주요 두 후보가 나르메르Narmer와 아하Aha이다.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 확실한 사실은 이 두 왕이 연속으로 군림했으며 나르메르가 아하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만약 나르메르가 메네스라고 간주하면 아하는 이집트 제1왕조의 두 번째 통치자가 될 것이고, 아하가 메네스이면 나르메르는 이집트 원왕조의 마지막 통치자가 되거나, 어느 학자가 제안한 0 왕조의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

 

* yellow의 세계사 연대표 : http://yellow.kr/yhistory.jsp?center=-3000

 

일부 학자들은 최초의 국가 형성과 입법자(lawgiver), 치수자 등의 업적과 메네스라는 비슷한 이름 등을 근거로 미노아 문명의 미노스(Minos)와 독일의 마누스(Mannus), 인도의 마누(Manu)등과 관련있다고 한다.

※ 메네스, 미노스와 마누, 마누스 그리고 함무라비, 모세 등등 : http://yellow.kr/blog/?p=1428

 

자 자세히 살펴본다.

 


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역사기행

–  요시무라 사쿠지 / 김이경 역 / 서해문집 / 2002.11.05

 

나르메르의 팔레트

 

1

 

여러 팔레트 중에서도 눈에 띄게 큰 것이 카이로의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나르메르의 팔레트’이다. 길이가 64센티미터이고 그 양쪽 면에 빽빽하게 부조 장식이 되어 있다. 이 팔레트가 ‘나르메르의 팔레트’로 불리는 이유는, 양면의 맨 윗 부분에 상형문자로 나르메르의 이름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팔레트의 뒷면에는 나르메르가 상이집트의 지배자를 상징하는 백관을 쓰고 적과 싸우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또 앞면 상부에는 개선 행군을 하는 모양이 그려져 있는데, 여기서는 나르메르가 하이집트의 지배자를 뜻하는 붉은 관을 쓰고 있다.

이 팔레트의 그림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상이집트와 하이집트가 다툼을 되풀이했던 선왕조 시대가 종지부를 고하고, 상이집트 출신의 나르메르가 하이집트를 정복하여 마침내 이집트 전역을 통일한 제1왕조가 탄생했음을 얘기하는 것이다. 실용품이라기엔 너무나도 거대하고 호화찬란한 이 팔레트는 그 사실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것임이 분명하다. 이 유물이 히에라콘폴리스Hierakonpolis 신전의 유적에서 출토된 것을 보면 아마도 신에게 봉납되었던 듯하다.

한마디로 이 팔레트는 이집트 건국을 이야기하는 기념비적인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르메르의 이름을 새긴 상형문자로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것이다. 나르메르란 ‘미친 듯이 날뛰는 메기’라는 뜻이다. 좀 이상한 이름이지만 나르메르가 실재했다는 것은, 이 팔레트 외에도 그의 이름이 적힌 비석이 발견된 것으로 볼 때 거의 확실하다.

그런데 기묘한 일이 있다. 후대에 편찬된 왕명표(王名表)에는 나르메르라는 이름이 어디에도 써 있지 않다. 왕명표란 발굴된 유적 속에서 발견된 것으로, 문자 그대로 역대 왕 이름의 일람표이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비도스의 왕명표’라는 것인데 제19왕조 세티 1세 장례사원의 복도 벽에 새겨져 있었다. 똑같은 것이 사카라의 분묘와 카르나크 신전에서도 발견되었으며, <토리노 파피루스>라 불리는 파피루스 문서에도 왕명표가 기재되어 있었다. 이들 왕명표는 모두 제1왕조 초대왕에 메네스라는 이름을 쓰고 있으며 나르메르의 이름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이밖에도 기원전 3세기 이집트의 신관(神官) 마네토가 쓴 『이집트사』라는 책이 있다. 상형문자가 해독되기 이전, 이 책은 고대 이집트 역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자료로 꼽혔는데 거기에도 제1왕조의 초대 왕은 메네스로 되어 있다. 상·하이집트를 통일하고 왕조 시대를 세운 인물로서 나르메르와 메네스, 두 이름이 나온 것이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신관 마네토의 『이집트사』

수수께끼를 풀기 전에 먼저 왜 이런 문제가 나왔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우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고대 이집트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 역사는 왕조 시대만 해도 3천년이 넘는 장구한 시간이라는 사실. 예컨대 아비도스의 왕명표가 만들어진 것은 신왕국 시대 제19왕조 세티 1세 때의 일로 기원전 13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당시 사람들에게 왕조 시대의 시작은 1700년도 더 된 옛 일인 것이다. 마네토의『이집트사』는 기원전 3세기에 쓰여진 것이니 2천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그런 만큼 왕명표나『이집트사』의 기록이 과연 얼마나 정확한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

 

건국의 시조, 메네스의 정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어쨌든 분명한 것은 상·하이집트를 통일한 제1왕조가 탄생하면서 왕조시대가 막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이 제1왕조와 그 다음 제2왕조를 초기 왕조라고 부른다. 제1왕조는 초대 나르메르에 이어서 아하, 제르, 제트, 덴, 안지브, 세메르케르, 카로 계승되어 간다. 각 왕의 업적 등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어쩌면 왕의 이름도 여기 적힌 것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문제는 마네토의 『이집트사』와 후세의 왕명표에 나오는 건국의 시조 메네스와 나르메르가 이들 중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가장 단순한 해결 방법은 메네스와 나르메르가 동일인이라는 해석이다. 상이집트에서는 나르메르라 불리고 하이집트에서는 메네스로 불렸을지도 모르며, 혹은 성과 이름, 두 가지 명칭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2대째인 아하부터는 개인의 이름에 상·하이집트의 지배자임을 나타내는 네부티명이 붙여져 두 가지 이름을 갖게 된다. 그 후 점점 이름이 늘어나서 제19왕조 람세스 2세 시대가 되면 한 사람의 왕이 다섯 가지 이름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므로 나르메르에게 하나의 이름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그 후에 2대 아하의 왕비 메르네이트의 분묘가 발견되면서 새로운 설이 제기되었다. 거기서 출토한 라벨에서 아하의 호루스명 옆에 ‘메니’라는 네부티명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메니’라는 말은 고대 이집트어로 ‘확립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보면 메네스는 이 ‘메니’에서 파생한 말이고, 따라서 아하야 말로 후세의 왕명표에 기록된 메네스 왕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무슨 말인고 하면 나르메르는 ‘거친 메기’라는 의미에서도 추측할 수 있듯이 전쟁에서 눈부신 활약으로적을 무찌르고 통일을 달성했지만 아직 국가 기구의 정비까지는 이르지 못했고, 다음 대인 아하 시대에 비로소 국가 체제가 확립되면서 그에 따라 아하가 확립자, 즉 메네스로서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는 얘기다.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나르메르가, 개인 나르메르나 아하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통일하고 확립한 역대 여러 왕을 총칭할 가능성이다. 어느 설이든 이치는 다 통한다. 허나 이치가 통한다고 해서 곧바로 그것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과연 어느 설이 옳은지 혹은 의외의 새 학설이 등장하여 증명될 것인지, 앞으로의 조사가 기대된다.

 


헤로도토스 역사

–  헤로도토스 / 박현태 / 동서문화사 / 2008.07.01

 

또 그들이(멤피스 사제들) 하는 말에 따르면, 이집트 초대 인간왕(人間王)은 민(Min)이었다고 한다. 이 왕의 시대에는 테바이주(州)를 제외하고는 이집트의 모든 국토가 소택지로, 현대 모이리스호(湖) 아래 쪽(북방)에 해당하는 지역 일대는 오늘날 바다에서 나일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7일간이 소요되는 거리에 걸쳐 있는데, 당시에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었다고 한다.

……

사제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집트 초대 왕인 민(Min) 왕의 업적으로는, 먼저 제방을 쌓아 현재의 멤피스 땅을 안정하게 한 것이라고 한다. 그 무렵 나일은 그 전체에 걸쳐서 리비아 쪽의 사질(砂質) 산맥을 따라 흐르고 있었는데, 민 왕은 멤피스의 남쪽 약 100스타디온(약 18km)의 상류에서 강을 막아서 이를 굴곡 시켜 애초의 강바닥을 말리고, 흐름을 바꾸어 산간의 평야를 흐르도록 했다고 한다. 나일의 하류가 갇혀 있는 만곡부(彎曲部)는 오늘날에도 페르시아인에 의해서 해마다 제방의 보강 공사가 실시되고 엄중히 경계되어 있다. 만일 나일이 이 지점에서 제방을 부수고 범람하는 일이 있으면 온 멤피스 시가 수몰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초대 왕인 민 왕은 나일 하류를 막아 여기에 간척지를 조성하자 먼저 도시를 세웠는데, 바로 오늘날의 멤피스이다(사실 멤피스는 아직 델타에는 이르지 않고 있는 이집트의 협소한 부분에 있다). 도시 외곽의 북쪽과 서쪽(동쪽은 나일 그 자체가 경계를 이루고 있다)으로 나일로부터 물을 끌어 호수를 만들고, 또 이 도시에 화제가 될 만한 광대한 프타(Ptah) 신전을 건립했다고 한다.

사제들은 한 권의 책을 펴고 민 왕 이후의 330명에 이르는 왕 이름을 차례로 들었다. 이 엄청난 수에 이르는 세대에 걸쳐, 18명은 에티오피아인이고, 단 한 사람 순수한 이집트 여성이 있고, 다른 사람은 모두 이집트 남자들이다. 이 왕위에 있었던 여성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바빌론의 여왕과 마찬가지로 니토크리스라고 했다.

 


블랙 아테나 2

–  마틴 버낼 / 오흥식 역 / 소나무 / 2012.03.25

 

미노스라는 이름이 최초의 이집트 파라오 메네스(기원전 3400년경)의 이름 Mn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이 좀 더 그럴듯한데, 그 파라오의 이름은 후기 그리스어 음역으로는 메네스Mênês이다. 그런데 헤로도토스는 몇 세기 전에 그를 민으로 불렀다. 그러나 이 이름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신왕국의 공식적인 이집트 왕명록에는 제1왕조의 초기 지배자들을 하나의 네브티Nbty 이름(역주: 파라오에게는 공식적으로 5개의 칭호 또는 이름이 있는데, 그 중 하나이다)으로만 표현했기 때문이다. 반면 당대인은 살아 있는 군주를 또 다른 이름인 호루스 이름으로도 칭했다. 그런데 왕명록에는 네브티 이름 메니Mni가 나타나지만 한두 개의 당대 비문에서는 Mn이라는 이름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어느 호루스 이름에 덧붙여졌는지 알기 어렵다. 가디너와 로이드는 Mn을 호루스명이 나르메르Narmer인 제1왕조 최초의 파라오와 동일시했는데, 아마도 옳을 것이다.

 


고대 문명의 이해

–  브라이언 페이건, 크리스토퍼 스카레 / 이청규 역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15.03.16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는 다양한 문화를 가진 별개의 지역이었으며, 전자는 사막의 영향을 받았고 후자는 아시아와 일상적인 접촉을 하였다. 통일 전이기는 하나 이미 삼각주는 코스모폴리탄 세계의 거점이었다.

……

…… 그러나 이 모든 코스모폴리탄적 방식에도 하이집트는 결국 강 상류의 보다 강력한 왕국에 흡수되었다.

……

그러면 누가 이집트를 통일하였는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능력 있는 상이집트의 통치자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당시의 왕조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데, 아마도 이집트 전설에 등장하는 네켄의 영혼(the Spirits of Nekhen)일지도 모른다. 스콜피온(Scorpion)과 나르메르는 그 왕조의 일원이었으며, 나르메르의 유명한 승리로 정복활동은 완성되었다. 그러나 서기전 3100년경 통일 이집트의 진정한 첫 번째 통치자는 그를 계승한 호루스 아하(Horus Aha)였다.

서기전 3100년경 상하 이집트를 묶는 정치적 통일을 형상화한 기념물이 나르메르의 석판이다. 후대의 이집트 예술 작품에서는 상하 이집트가 각각 호루스와 세트로 상징된다. 이 통일 사건을 통해 호루스와 세트로 표현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양쪽이 조화를 이루면서,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지리적 공간을 무대로 하여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였다. 수천 년 동안 이집트인은 잠재적인 혼돈과 질서 사이에 놓여 있는 분열된 세상에 관심을 두어 왔다. 그들은 왕의 통치와 태양의 힘이 무질서, 불균형을 포용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집트인의 관점에서는 우주의 본질과 정치적 힘의 구조가 일치한다.

 


이집트 역사 100장면

–  손주영 / 가람기획 / 2001.03.10

 

이집트를 통일한 최초의 왕은 메네스이다. 그가 호루스 왕, 나르메르였는지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대다수가 동일 인물로 말하고 있으며, 많은 학자들은 그를 스콜피온과 나르메르가 혼합된 완전히 전설적인 인물로 간주하고 있다. 나르메르는 통일 제1왕조와 제2왕조의 왕들의 묘지 안에 최초로 기념묘를 세운 통치자로 알려져 있다. 즉, 그가 왕위에 있을 때 이집트에서는 하나의 통일 왕조가 성립된 듯하며, 스콜피온은 나르메르 이전에 통일의 대업을 완성단계까지 끌고 간 인물로 추측된다.

메네스 왕이 누구였든 지간에 두 영토의 통합은 창조주가 우주를 만든 것과 맞먹을 정도로 이집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즉 ‘최초의 시간’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런 사실에 대한 증거는 얼마든지 많다. 그는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의 국경을 이루며, 전략적 요충지였던 델타의 하단에 수도를 정하고 이름을 멤피스라고 명명했다. 멤피스는 ‘백색의 벽’이라는 뜻으로, 그곳은 죽음과 소생의 비밀을 관장하는 오시리스 신이 묻힌 곳이었다.

그 지역은 멤피스 인들에게 풍부한 식량을 영원히 제공해줄 수 있는 비옥한 땅이었다. 사람들은 의학과 결혼, 농업의 여신이 오시리스 신을 위해 울 때, 그 눔물이 나일 강물 속으로 떨어져 수위가 최초로 높아진다고 믿었는데, 강수량의 증가로 강변에는 양질의 진흙이 충적되었고, 그 덕분에 나일 강 주변의 농촌과 농지를 나라 전체의 곳간으로 만들어주었다. 따라서 통일왕국의 최초의 수도였던 멤피스는 언제나 풍요와 이익을 가져다주는 곳이었다.

메네스는 상이집트의 백색왕관과 하이집트의 적색왕관을 합친 이중왕관을 사용했으며, 파라오라고 불리었다. 메네스의 아들이 멤피스에 궁전 하나를 세우면서 ‘위대한 거처’라는 뜻의 페르-아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파라오는 이 ‘페르-아’라는 궁전의 이름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파라오와 그의 대신들은 벽돌로 된 궁전에서 일하고 생활했다. 파라오의 궁전에는 기거할 방들과 공식적인 접견실, 중앙행정부의 집무실, 도살장과 주방들이 있었다. 그곳에는 일군(一群)의 술을 따르는 사람들, 왕의 의류 관리인들, 주방장들, 하인들이 일하고 서기관들이 관리와 감독을 맡았다. 파라오는 왕궁에서 ‘왕의 지인(知人)들’인 ‘현인(賢人)위원회’에 자문을 구하곤 했다. 파라오의 명령은 궁전에서 이집트 정부의 각 부서로 하달되었으며, 그 부서들을 재집결시키는 몇몇 기관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기관이 재무성인 ‘이중의 백관(白館)’이었다. 국왕의 문서보관소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했으며, 이곳에서는 서기관들이 국왕의 칙령을 기록하고 연대기를 작성하는 등 국가의 공식 자료들을 분류 정리했다.

메네스는 위대한 행정가였다. 그는 나라를 ‘노메스’라 불리는 여러 지방들로 나누었다. 노메스는 지리와 경제, 종교적인 행정단위이다. 노메스의 책임자를 노마르크라 부르는데, 그들은 담당하는 지방에서 숭배하는 신을 모시는 고위사제를 겸했다. 메네스는 또한 군사의 최고 지휘자이자 위대한 재판관이었다. 구전되는 법전에 따라 법을 집행했을 뿐만 아니라 강력한 중앙권력을 만들어 국가적인 사업을 추진했다. 노마르크들 역시 왕인 파라오를 보필하고, 대기술자들이 설계한 프로젝트를 각 지역에서 실행했다.

메네스는 이집트 전역에 제방을 세우고 운하를 팠다. 패어진 곳을 메우고 충적토로 쌓인 언덕은 평지로 만들었으며, 강에 산재한 섬들을 경작했다. 메네스가 죽은 후 첫 두 왕조는 그의 작업을 계속 추진했고, 제2왕조 말엽 이집트는 완전히 체계가 잡힌 부유한 통일 왕국이 되었다.

 


세계 역사의 관찰

–  아코프 부르크하르트 / 안인희 역 / 휴머니스트 / 2008.06.02

 

수많은 학문 연구가 근원이라는 부분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역사만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가 역사에 대한 이미지는 대부분 만들어진 구조로서, 앞으로 특히 국가를 다루는 부분에서 보게 되겠지만, 우리 자신의 반영일 뿐이다. 민족이나 종족 단위로 이루어진 추론들은 타당성이 매우 허약하다. 우리가 첫 시작임을 입증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어짜피 아주 뒷날의 단계다. 예를 들어 이집트 메네스(Menes, 제1왕조의 첫째 왕) 왕도 아주 길고 엄청난 그 이전의 역사를 전제로 한다.

……

가장 초기의 국가 모습들에서 가장 오래된 전승이 반드시 가장 옛날의 것은 아니다. 사막 민족들은, 그 개인이 다른 상황에서라면 곧 바로 현대적인 삶을 일궈낼 수 있을 정도로 고급 종족조차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주 고대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곧 가부장제다. 그에 비해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국가 형태들조차(갠지스 시대 이전의 인도인들, 유대인, 이집트인들의 국가) 이미 초기 단계에서 많이 벗어난 상태를 보여준다. 자연을 길들이는 시기, 곧 수천 년 이상을 이미 경과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 국가에서는 모든 것이 벌써 성찰을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 부분적으로는 뒷날 편찬된 형태로 전해지는 이 민족들의 거룩한 권리에는(마누, 모세, 젠드아베스타) 분명 사람들이 그에 따라 살아야 하지만 이미 열심히 따르지 않는 법규들이 기록되어 있다. 메네스가 세운 이집트(기원전 약 4000년)는 가부장제가 이미 오래전에 극복된 다음에 시작된다. 그에 비해 아랍에서는 가부장제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살아남아 있다.

 


최초의 문명은 고대 인도에서 시작되었다

–  게오르그 포이어스타인 / 정광식 역 / 사군자 / 2000.08.07

 

여기서 우리는 일반적인 파라오 연대기에는 많은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상왕국(고지대의 왕국, 상이집트)과 하왕국(저지대의 왕국, 하이집트)을 통합하여 제1왕조를 출범시켰던 메네스 왕에 대한 이집트학 학자들이 추정한 연대는 기원전 5,867년(유명한 로제타석을 해독한 쟝 샹폴리옹 Jean F. Champollion 주장)에서 기원전 2,224년(에드워드 팔머 Edward H. Palmer 주장)에 이르기까지 무려 2,500여 년이나 차이난다. 거의 혼자서 이집트학을 창설하였던 플린더스 페트리 경(Flinders Petrie)은 이집트의 정치적 통합 시기를 기원전 5,546년으로 추정하였다. 저명한 이집트학 학자인 제임스 헨리 브레스테드(James Henry Breasted)는 메네스 왕의 시기를 기원전 3,400년 경으로 잡았지만, 최근에는 학자들의 견해가 기원전 2,900년경으로 모아지고 있다.

제1왕조 이전의 이집트의 연대도 비슷한 이유로 수많은 이견에 싸여있다. 지금은 기원전 5,000년경에서 기원전 3,000년경까지 지속되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영국의 고고학자 마이클 라이스(Michael Rice)는 『이집트의 형성』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제1왕조 이전의 이집트인들은 수메르인들과 교류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확실히 이 두 민족간에는 상징주의와 예술적 표현에 있어서 황홀할 정도로 유사한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 분야는 아직도 철저한 탐구를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세계의 모든 신화

–  케네스 C. 데이비스 / 이충호 역 / 푸른숲 / 2008.11.20

 

이집트의 오랜 역사는 외국인들에게도 큰 관심을 끌었는데, 그들 중에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헤로도토스 시대의 그리스인도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집트학’은 불과 200년 전에 로제타석이 해독되면서 시작되었다. 로제타석의 해석으로 이집트에 관한 이전의 많은 이론과 가설은 순식간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집트의 선사 시대에 관한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라, 이집트 문명 초기에 대해 오랫동안 받아들여져 오던 견해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최근 남부 왕국(상이집트)의 왕들(그중에는 전갈Scorpion이라 불린 왕도 있었다)이 기원전 3000년대에 세력이 더 강해졌다는 증거가 나왔고, 이집트의 유명한 신들에 대한 언급들이 이미 이 시기에 발견되었다. 이집트 역사가 시작되던 이 무렵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은 기원전 3100년 경에 상이집트의 한 왕(전통적으로 통일왕 메네스(Menes)라고 불러왔지만, 나중에 나르메르(Naemer)로 밝혀졌다)이 하이집트를 정복한 것이다. 이 사건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 가운데 하나는 나르메르 팔레트(Narmer Palette)인데, 양면이 조각된 이 석판에는 왕이 포로를 복종시키는 장면이 묘사돼 있고, 통일 왕국을 시사하는 다른 기호들도 있다.

두 이집트를 하나로 통일시킨 나르메르와 그 후계자들(그중에 메네스도 포함돼 있었는데, 일부 역사학자는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한다)은 세계 최초의 국가 정부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기원전 3000년경에 오늘날의 카이로 근처에 위치한 멤피스가 수도로 건설되었다. 나르메르 팔레트와 아주 오래된 다른 유물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또 한 가지 사실은 왕국이 통일될 무렵에 신과 왕 사이의 밀접한 관계가 이미 확립돼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집트는 초기부터 신권 정치 국가였고, 태곳적부터 존재한 신들이 긴 역사 동안 이집트 정부와 깊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메네스라는 왕의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도 제기되지만, 기원전 332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될 때까지 이집트에 존재했던 31개에 이르는 많은 왕조의 왕들 중 최초의 왕은 아하(Aha)라는 이름의 왕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집트 역사 초기부터 이집트인은 관개 시설을 발달시켰고, 소가 끄는 쟁기와 세계 최초의 관료 제도를 발명했다. 멤피스를 기반으로 하고, 종교적 믿음에 뿌리를 둔 이집트 정부(신과 국가가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서로 완전히 얽혀 있는)는  피라미드 건설을 포함해 거대한 공공 사업을 수행할 수 있었고, 그것을 수많은 필사자를 시켜 모두 기록하게 했다.

 


페르시아 전쟁사

–  헤로도토스 / 강은영 역 / 시그마북스 / 2008.08.01

 

BC 5000년경에 나일강에서 농업과 목축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BC 4000년경에는 나일강 주변에 상(上)이집트와 하(下)이집트가 형성되었고, 각기 독립적인 왕정 체제를 유지했다. 나일강 삼각주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곳은 ‘붉은 왕관의 지역’, 리비아 사막에서 상이집트에 이르는 곳은 ‘흰 왕관의 지역’이라 불렀다.  BC 3100년에 상이집트의 왕 메네스가 하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이집트 왕국이 통일되었다. 이집트는 최초의 인류가 생활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연환경이었다. 토질이 워낙 비옥해서 특별히 노동을 하지 않아도 어느 곳에서나 먹을 것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이를 바탕으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나일강이 준 선물이었다.

 


황금의 지배

–  피터 L. 번스타인 / 김승욱 역 / 경영정신 / 2001.05.24

 

이집트인들은 기원전 4000년에 이미 금괴를 화폐로 사용했다. 각각의 금괴에는 파라오 메네스(고대 이집트 제1왕조의 창시자-옮긴이)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이집트인들은 심지어 금과 은 사이의 비율까지도 분명하게 규정해놓고 있었다.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은의 가치는 금 가치의 5~8%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은 12~20 대 금 1의 비율이었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은 은의 가치를 금 가치의 10%와 같은 것으로 정해놓았다.

 


<관련 사진>

 

2

– 나르메르 팔레트 / 기원전 3100년 제작,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https://en.wikipedia.org/wiki/Narmer_Palette

 

 

3

– mn 표시와 함께 아하Hor-Aha를 언급하고 있는 상아로 만든 라벨

 

 

14

– 하이집트의 주요 도시들

 

 

5

– ‘하얀 벽’이라고도 불리던 멤피스의 상상도. 오른쪽이 프타 대신전(?) (출처 : http://www.ancient-origins.net )

 

 

6

– 멤피스 프타Ptah 대신전의 서쪽 부분의 상상도 (출처 : 위키백과)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 메네스

위키백과 : 메네스

위키백과 : 나르메르

위키백과 : 호르-아하

위키백과(영문) : Narmer Palette

https://en.wikipedia.org/wiki/Abydos_King_List

https://en.wikipedia.org/wiki/Memphis,_Egypt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 프타

Herodotus on Menes : http://www.reshafim.org.il/ad/egypt/herodotus/min.htm

http://www.harris-greenwell.com/HGS/MenesFirstToWriteTheLaw

List of pharaohs :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Pharaohs

List of ancient king lists :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ancient_king_lists

이집트를 통일한 메네스(나르메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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