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별 Stella Maris’, ‘지혜의 의자 Sades Sapientiae’, ‘하늘의 여왕 Regina Coelis’인 이시스(Isis)
이시스(Isis, 고대 그리스어: Ἶσις, 이집트어로는 Iset, Eset, Aset에 가까웠을 것)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숭배를 받았고 이후 그리스, 로마 제국 전역에서 숭배된 최고의 여신이며, 고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여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시스 여신의 숭배는 근본적으로 그녀가 어머니일 뿐만 아니라 기적을 행할 수 있다는 사상과 관련이 있었다. 이시스는 웨레트-헤카우(위대한 마법사 : Weret-Hekau, the great magician)와 무트-네티어(신들의 어머니 : Mut-netjer, the mother of the gods) 등과 같은 이름들로 대개 알려졌고,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남편 오시리스(Osiris)와 더불어 이집트 문명을 세웠고, 사람들에게 농업과 의술을 가르쳤다.
이시스(Isis)라는 이름은 ‘왕좌’를 뜻하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그리스어로 바꾼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상징적 의미와 은유적 의미는 불명확하다(일반적으로 이집트 신들의 이름은 우주론적 또는 자연적 요소의 역활을 가지는 이름이다).
다음은 이집트 미술에서 가장 많이 묘사되고 있는 이시스의 형상들인데 왼쪽은 ‘왕좌’ 모양의 왕관을 쓰고 시스 드레스(sheath dress)를 입은 이시스이고, 오른쪽은 이집트 여신 하토르(Hathor)와 동일시되면서 머리장식물이 하토르의 것으로 대체된 이시스이다.
이시스는 ‘이름을 셀 수 없는 여신’이다. 참고로 ‘이름을 셀 수 없다’라는 의미의 Myrionymos는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뜻의 Polynomos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고대신화에 나오는 남신과 여신은 보통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이시스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녀의 존재와 힘이 모든 삼라만상에 존재한다는 뜻, 즉 인간의 모든 면을 나타내는 여신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시스는 여신(Goddess) 그 자체이다.
※ 참조 : 이시스 – 이름을 셀 수 없는 여신 : http://yellow.kr/blog/?p=1525
고대 로마의 소설가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Lucius Apuleius, 125 ~ 180)의 『황금 당나귀』의 절정에서 이시스는 주인공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가장 이른 시기의 종족인 프리기아인은 나를 모든 신들의 어머니인 페시눈티아라고 부른다. 자신의 토양에서 솟아난 아테네인은 나를 케크롭스의 미네르바라고 부르고, 바다에서 솟아난 키프로스인은 나를 파포스의 비너스라고 부르며, 궁수인 크레타인은 디아나 또는 딕티나, 그리고 세 가지 언어를 말하는 시실리인은 프로세르피네라고 부른다. 엘레우시스인에게 나는 고대의 여신 케레스이고, 다른 자들에게는 유노, 또 다른 자들에게는 벨로나, 헤카테, 그리고 람누시아이다. 그러나 매일 태어나는 태양신의 첫 햇살을 받는 에티오피아인은, 본래의 교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탁월한 아프리카인 및 이집트인과 더불어, 나의 독특한 의식을 통해 내게 영광을 돌리며 여왕 이시스라는 나의 진정한 이름을 내게 부여한다.
이시스와 동일시되거나 관련이 있는 여신 등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이난나(이슈타르) :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나오는 여신
– 하토르 : 이집트신화에 나오는 하늘·사랑·기쁨·결혼·춤의 여신으로 그리스인는 아프로디테와 동일시하였다.
– 네이트 :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초기의 여신으로써, 사이스의 수호신이었다. 후기에 그녀는 전쟁과 수호의 여신이 되었다.
– 소티스 : 이집트 여신으로 시리우스(천랑성天狼星, 큰개자리 알파)와 동일시
– 바스테트 :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풍요와 다산의 여신이다.
– 아스타르테 : 이슈타르의 페니키아계 셈족이 부르는 이름
– 아타르가티스 : 고대 시리아인들이 섬기던 풍요의 여신
– 키벨레 : 아나톨리아 반도의 프리기아 왕국에서 숭배된 대지모신이다.
– 딕티나(브리토마르티스) : 크레타의 여신
– 데메테르(케레스) : http://yellow.kr/blog/?p=1737
– 헤라 :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의 여신으로 주신 제우스의 누이이자 아내이다. 결혼과 가정의 여신으로 숭배받았다.
– 헤스티아(베스타)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 가운데 하나로 화덕을 지키고 가정과 가정의 질서를 담당하는 여신이다.
– 아테나(미네르바)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혜·전쟁·직물·요리·도기·문명의 여신이다. 로마 신화의 미네르바와 동일시된다.
– 아프로디테(비너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와 사랑의 여신이다.
– 아르테미스(다이아나)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과 사냥·야생동물·처녀성의 여신이다.
– 페르세포네(코레,프로세르피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제우스와 데메테르의 딸로 지하(地下)의 여왕이라 이른다.
– 마이아 : 그리스 신화의 플레이아데스 일곱 자매 중 맏언니이다. 마이아는 어머니 또는 유모라는 뜻이다.
– 레토(라토나) :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으로,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낳았다.
– 헤카테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으로 ‘야성의 여신’, ‘출산의 여신’, ‘대지(大地)의 여신’, ‘달의 여신’,‘저승의 여신’.
– 테미스 : 그리스 신화의 법과 정의의 여신이다.
– 티케(포르투나) :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다. 한 도시의 번영과 운명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 에니오(벨로나)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여신이다. 아레스의 아내 혹은 누이이고, 로마 신화에 벨로나에 해당한다.
– 프락시디케 : 그리스 신화의 사법과 형벌의 여신이다.
– 셀레네(루나) : 그리스 신화에 있는 달의 여신이다.
– 이오 :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의 사랑을 받았다가 암소로 변한 여인.
– 칼리 : 힌두교의 여신으로, 힌두교 전통에 따르면 우주의 영원한 에너지와 관계가 있는 여신이다.
– 성모 마리아 : 신약성경에서 언급된 갈릴리 나사렛의 유대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다.
– 관세음보살 : ‘모든 것을 내려다보시는 지배자’라는 뜻. 불교의 보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보살 중 하나.
등등등
이시스 신앙의 기원은 확실치 않으나 이집트 제5왕조의 기록, 즉 피라미드 텍스트(BC 2375경~2200경)에 이시스가 살해된 자기의 남편 오시리스 신을 애도했다는 언급이 되어 있고, 그 보다 훨씬 이전인 선왕조 시대(기원전 3100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주장도 있다.
이시스에 관한 전설은 이시스가 본래 독립된 신이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오시리스의 아내로서 이시스가 주역을 맡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시리스가 죽은 후이다.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시신(屍身) 조각을 발견하여 그것들을 재결합했으며, 그의 장례식에서 상주 역할을 했고, 자신의 권능으로 그를 소생시켰다.
이후 이시스는 수천 년이나 살아남아 그리스와 로마를 비롯해 다른 문명으로 전파된 종교 의식의 구심점이 되었다(이시스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을 것이다). 대모신(大母神)이자 헌신적인 아내, 마법의 강력한 원천으로 알려진 이시스 숭배는 기독교 시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다음, 378년에 이시스 숭배를 공식적으로 금지하면서 이시스 신전들은 파괴되거나 교회로 개조되었다.
– 신을 별과 관련지을 때 이시스는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천랑성天狼星, 큰개자리 알파)와 동일시되었다.
– 여신 네프티스 · 네이트 · 셀케트와 함께 이시스는 죽은 자를 보호하는 신이었다.
– 장미(rose)도 아프로디테(비너스), 성모 마리아 등의 여신들과 마찬가지로 이시스와도 관련있다.
– 프랑스의 파리(Paris)의 이름도 Par Isis(이시스에 의해) 혹은 Pre Isis(이시스 가까이)라는 표현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 달러의 상징인 $도 이시스(ISIS)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1달러 지폐에 피라미드, 호루스의 눈 등 이집트적 요소가 많다).
–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스타벅스의 로고에 나오는 여신……
관련된 신화에는 ‘이시스와 오시리스 신화’, ‘라(Ra)의 감춰진 이름’ 이 있다.
이시스에 관한 자료는 너무나 광범위하기 때문에 아래에 없는 자료는 관련글에 따로 정리하였고 계속 보강하겠다.
※ 관련 글
– 이시스와 오시리스 신화 (Osiris Myth) : http://yellow.kr/blog/?p=1218
– 이시스(Isis)와 데메테르(Demeter) : http://yellow.kr/blog/?p=1737
– 이시스 – 이름을 셀 수 없는 여신 : http://yellow.kr/blog/?p=1525
– 이시스, 자신을 찬양하다 – Cyme의 비문 : http://yellow.kr/blog/?p=1555
– 라(Ra)의 감춰진 이름 : http://yellow.kr/blog/?p=1557
다음과 같이 자료를 찾아보았다.
황금가지
–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 박규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05.30
이시스라는 이름의 원래 의미는 오빠이자 남편인 오시리스보다도 판단하기가 더 어렵다. 그녀에게 부가되는 속성과 형용사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집트 상형문자로 그녀는 ‘많은 이름을 가진 자’ 혹은 ‘천 개의 이름을 가진 자’로 부르며, 그리스 비문에는 ‘만 개의 이름을 가진 자’라고 나오기도 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첨가된 여러 상이한 요소들이 이시스 고유의 핵심적인 본질을 중심으로 모여지면서 이 여신은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
이시스 또한 틀림없이 곡물의 여신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즉 이집트 역사가 마네토가 근거로 삼았다고 보이는 디오도로스 시켈로스를 믿을 수 있다면, 밀과 보리를 발견한 자는 바로 이시스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시스 축제 때 그녀가 베풀어준 은혜를 기념하기 위해 열을 지어 곡식 다발들을 나르는 것이다.
……
한편 여러 비문에서 이시스를 가리키는 형용어로 ‘초록색 자연물을 창조한 여자 창조주’, ‘대지의 초록색과 같은 초록 빛깔을 한 신록의 여신’, ‘빵의 귀부인’, ‘맥주의 귀부인’ 등이 있다.
하인리히 브룩슈 Heinrich K. Burgsch에 따르면, “그녀는 대지를 뒤덮고 있는 식물의 신록을 창조한 여자 창조주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여신으로서 인격화 된 초록색 곡식의 들판 그 자체이기도 하다”고 한다. 이는 ‘곡식의 들판’을 의미하는 그녀의 형용어 ‘소키트 Sochit’ 혹은 ‘소케트 Sochet’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콥트어에서는 지금도 이 말을 이런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스인은 이시스를 곡물의 여신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녀를 데메테르와 동일시했다. 그리스의 어떤 풍자시에는 이시스가 ‘땅의 열매를 낳게 한 분’ 혹은 ‘이삭의 어머니’라고 묘사되어 나온다. 또한 이시스 찬가에는 ‘보리밭의 여왕’이나 ‘풍성하게 익은 보리밭의 감독자’라는 식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그리스나 로마의 예술가들은 그녀를 머리나 손에 곡물 이삭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
이시스 숭배는 로마와 제국 전역에 걸쳐 가장 인기 있는 축제 중 하나가 되었다. 심지어 몇몇 로마 황제들까지 공공연하게 열광적으로 이시스를 숭배할 정도였다.
……
영적인 고요와 영생을 약속하는 이시스의 자애로운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흐린 날의 밝은 별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시스에 대해 중세 유럽인이 성모 마리아에 대해 가졌던 것과 같은 신앙의 환희를 가슴 한가득 품게 된 것이다. 사실 단정하게 면도하고 삭발한 사제들,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조용한 음악, 세례와 성수(聖水)를 뿌리는 의식, 엄숙한 행렬, 보석으로 장식된 ‘신의 어머니’의 신상 등이 수반된 장엄하고도 품격 있는 이시스 의례는 여러 면에서 가톨릭 의례와 비슷한 점이 많다. 이 같은 유사성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고대 이집트는 가톨릭 신학의 창백한 추상주의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의 현란한 상징주의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다.
<호루스에게 젖을 물리는 이시스 /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 기원전 304~30 / http://www.metmuseum.org/toah/works-of-art/55.121.5 >
확실히 예술 방면에서도 갓난아이 호루스에게 젖을 물리는 이시스의 모습은 아들을 안고 있는 마돈나와 너무도 흡사한 나머지, 때때로 기독교도들조차 그게 누구인지도 모른 채 이시스 여신에게 예배를 드릴 정도였다. 또한 성모 마리아를 칭하는 ‘스텔라 마리스(Stella Maris)’ 즉 ‘바다의 별’이라는 아름다운 형용어도 뱃사공의 수호여신으로서의 후기 이시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성모 마리아는 실제로 이런 칭호 아래 항상 폭풍우의 위험에 직면해 있는 뱃사공들의 숭배를 받았기 때문이다.
돈 그 영혼과 진실 (돈의 본질과 역사를 찾아서)
– 버나드 리테어 / 강남규 옮김 / 참솔 / 2004.03.20
음과 양의 논리에 따르면, 이시스는 한마디로 음의 성격인 모호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시스의 그리스 이름은 이시스 판세아(Panthea, “of all gods”의 뜻)이다.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어머니이고 모든 것들의 여주인이며, 모든 시간의 기원이다. 나는 모든 신과 여신 가운데 우두머리이며 …… 나는 모든 것을 지배한다.” 달이자 태양의 어머니인 그녀는 구슬피 우는 아내이면서 자상한 누이이기도 하다. 그녀는 인간에게 문명을 가르쳐준 신이면서 치료사이다. 또한 모든 예술의 창시자이면서 인간의 삶을 편안하고 가치 있게 하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였다.
그녀는 ‘하늘의 여왕’이고 바다의 항해를 안내하는 별이다. 또 즐거움과 풍요를 상징하는 여성으로 푸른 여신으로도 통했다. 또한 킹 메이커이면서 해돋이와 사랑의 여신이기도 하다. 그녀는 토트(Thot)의 도움을 받아 상형문자를 창제하여 글자에 신비적인 의미를 불어넣기도 했다.
안드로스섬의 노랫말에 의하면, 그녀는 “나는 상형문자의 비밀을 발견했고 끌로 이를 새겼노라” 라고 말했다고 한다. 소티스(나일강의 범람을 알려주고 새해의 시작을 주관하는 신)이면서, 나일강의 상류 도시 덴데라의 수호신이기도 한 그녀는 인간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는 여신이었으며 날씨를 주관하고 파도와 바람을 관장했다. 그녀는 사람의 운명을 관장하는 신으로도 추앙받았다. “나는 운명을 극복했으니 …” 라는 말에 그 의미가 잘 드러난다. 그녀는 올바름이 모든 세상에 퍼지도록 하는 존재였고 ‘이시스 메디카(Isis Medica)’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질병을 치료하는 여신이기도 하다.
……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동정녀 마리아가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5세기 경으로 보인다. 이 상은 이집트 예레미아의 기독교 수도원에서 처음 제작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 또한 이시스가 호루스(이시스의 아들로 일종의 태양신 명칭이며, 줄곧 아폴론과 동일시되어 왔다)에게 젖을 먹이는 상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저런 사실을 감안하면, 자크 드 보라지네(Jacques de Voragine)가 전하는 전설은 사실상 예수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집트인들이 비밀리에 동정녀 마리아를 숭배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는 이시스 숭배문화가 변화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블랙 아테나
– 마틴 버낼 / 오흥식 역 / 소나무 / 2006.01.10
프톨레마이오스와 그 후계자들(클레오파트라까지)은 이집트 종교를 잘 활용함으로써 이집트 신민의 존경과 애정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이 갈라지면서 생겨난 다른 나라들을 상대하는 과정에서는 문화적인 권력으로 삼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만으로는 이 시기 동안 소위 ‘오리엔트 종교의 서방 정복’에서 일어난 이집트 종교의 거대한 확장을 설명하기에 충분치 않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어머니 신인 이시스는 기원전 5세기부터 아테네에서 숭배되었다. 아테네에 거주하는 이집트인뿐만 아니라 아테네인도 이시스를 숭배했다. 기원전 2세기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아크로폴리스 근처에 이시스 신전이 들어섰고, 아테네는 이집트 제례를 거행할 신전 부속 건물 조성을 공식적으로 후원했다. 심지어 아폴론에게 특별히 봉헌된 델로스에서조차, 프톨레마이오스 왕국과는 무관하게 이시스와 아누비스 숭배가 공식화되었다. 그 시기에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은 이미 델로스에 대한 장악력을 잃은 상태였다. 게다가 기원후 2세기에 파우사니아스는 다른 오리엔트 제례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아테네와 코린토스, 테베, 그리고 아르골리스와 메세니아Messenia, 아카이아Achaia, 포키스Phokis 등 여러 곳에 있는 이집트 신전이나 사당들을 기록했다.
여기서 강조해야 할 것은, 그리스가 경험한 물결은 로마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간 물결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기원후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파묻힌 폼페이에서 발굴한 가장 중요한 사당은 이집트 사당이었다. 티베리우스는 로마 시에서 이집트와 유대 종교를 추방했다. 그러나 그 제례는 곧 복원되었으며, 그 이후의 황제들 특히 도미티아누스와 하드리아누스는 이집트 신들을 열정적으로 섬겼다.
축제의 문화사
– 윤선자 / 한길사 / 2008.04.15
오리엔트 문명의 양대 지주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이다. 이집트에서는 바빌로니아의 축제처럼 역활의 뒤집기 · 가면 · 변장 등의 특징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계절의 변화를 표현하는 신화와 축제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시스(Isis) 축제이다. 이시스 축제는 이후 헬레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그리스와 로마 전역으로 확대되었고 그곳의 신화들과 결합, 토착화되어 ‘카니발적인’ 축제들로 발전하였다.
……
로마의 이시스 축제는 일 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거행되었다. 봄 축제는 5월5일 이시스의 나일강 항해를 기념하기 위해 열렸고, 가을 축제는 10월28일에서 11월1일 사이 이시스가 오시리스의 신체 조각들을 발견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열렸다. 봄 축제 때 로마인들은 경건하게 의례를 마친 뒤 거대한 ‘이시스의 배 Isidis Navigium’를 바다까지 끌고 가는 긴 행렬을 벌였다. 그 행렬에는 여성과 관리 · 검투사 · 신화의 영웅으로 변장한 사람들 · 사제 · 음악단 · 군중들이 뒤따랐다. 그들은 항구까지 행진한 뒤, 끌고 온 배를 이시스 신에게 봉헌하는 의미로 바다에 집어 던졌다. 가을 축제 때에는 비의적인 성격을 가진 입교식이 거행되었다. 입교식은 워낙에 비밀리에 행해졌기 때문에 잘 알려진 바가 없지만 『변신』의 저자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Lucius Apuleius)에 따르면, 몽환적 상태에서 입교 의식과 이시스를 향한 충성 서약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끝나면 새 회원을 축하하는 공동 식사가 벌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이시스 숭배는 그것의 진원지인 이집트보다는 헬레니즘 시대의 그리스와 이후 로마에서 더욱 성행하였다. 당시 이시스는 제설혼합주의의 영향을 받아 데메테르나 미네르바(Minerva) · 빅토리아(Victoria) · 포르투나(Fortuna)와 동일시되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고대 저술가들은 이시스 숭배와 데메테르 숭배, 더 나아가 디오니소스 숭배까지도 본질적으로 동일한 유형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시스 숭배는 유럽 카니발에 영향을 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와 로마의 2월 축제 등에 섞이게 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 베르나르 베르베르 / 임호경,이세욱 역 / 열린책들 / 2011.03.03
< 신비 의식 >
고대의 많은 종교에는 입문자들에게 심오한 교의를 전수하기 위한 비밀 의식이 있었다. 그리스어로는 그것을 ‘미스테리아(신비 의식)’라고 부른다.
일찍이 기원전 18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엘레우시스의 미스테리아는 서양의 신비 의식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이 의식은 여러 과정을 포함하고 있었다. 바닷물에 들어가 몸을 씻는 목욕재계, 3일 동안의 금식, 기도, 성스러운 잔으로 보리차를 마시는 의식, 죽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내려가는 상황의 재연, 구원과 부활에 관한 깨달음의 전수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디오니소스 신을 숭배하는 오르페우스 밀교의 신비 의식은 다음과 같은 7단계의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째, 자각. 둘째, 결단. 셋째, 음복飮福. 넷째, 성적으로 하나 되기. 다섯째, 시련. 여섯째, 디오니소스와 하나 되기. 마지막으로 춤을 통한 해방.
그런가 하면, 이집트에서 거행되던 이시스 신비 의식은 4원소와 연관된 네 가지 시련을 포함하고 있었다. 먼저 흙의 시련이라는 단계에서, 교의를 전수받으려는 입문자는 기름 램프에 의지해서 혼자 깜깜한 미로 속을 나아가야 했다. 이 미로는 깊은 구렁으로 이어져 있었고, 입문자는 사다리를 타고 거기로 내려가야 했다. 불의 시련이란 빨갛게 달군 쇳덩이들을 넘어가는 의식이었다. 쇳덩어리들은 한 발로 겨우 디딜 수 있는 자리만 남겨 놓고 마름모꼴로 배치되어 있었다. 물의 시련은 램프를 든 채로 나일 강을 건너는 것이었다. 공기의 시련은 도개교 위에서 거행되는 의식이었다. 입문자는 다리가 열리는 순간 허공으로 몸을 날려 심연으로 추락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러고 나면 교의 전수자는 입문자의 눈을 가리고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런 다음 눈가리개를 풀어 주고 입문자를 두 개의 각기둥 사이에 세워 두었다. 입문자는 거기에서 자연학과 의술과 해부학과 상징체계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세계 신화 사전
– 낸시 헤더웨이 / 신현승 역 / 세종서적 / 2004.04.20
이시스는 여신으로서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춘 신이었다. 전능하고 동정적인 그녀는 하늘과 땅의 여왕이요, 지하세계의 여신이요, 위대한 어머니요, 헌신적인 아내요, 수많은 이름을 가진 여신이었다. 언제나 적극적인 신화의 주인공이었던 그녀는, 오시리스의 죽음으로 인해 인간의 슬픔에 공감하는 개인적인 구세주였다. 그녀는 멀리 떨어진 올림포스가 아니라 현세의 인간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스와 로마로 유입된 신비 종교 중에서 이시스 제례가 가장 널리 대중화되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기원전 80년경부터 이시스를 숭배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2세기 동안 노예와 귀족, 고급 매춘부, 정치인 및 많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그녀를 섬기는 의식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의식 입문은 다음과 같은 절차로 이루어졌다.
● 11일간 단식한다. 이 기간에 입문자들은 고기와 술과 섹스를 금한다.
● 타인 앞에서 자신이 살아온 생애의 모든 죄를 고백한다.
● 사제의 머리 주변에 후광이 나타나는 극적인 저녁 예배를 올린다. 불타는 유황 횃불을 물 속에 던져 넣지만 계속 불탄다.
● 익사, 참수, 미라되기 또는 석관 매장으로 상징적인 죽음을 맞는다.
● 더 높은 세계와 더 낮은 세계를 통과하는 상징적인 여행을 한다.
● 물 또는 불로 세례를 받는다. 그 후 입문자는 태양신, 즉 이시스의 노예로 ‘재탄생’한다.
● 비밀의 맹세와 서약을 한다.
서기 378년 기독교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이시스 숭배를 공식적으로 금지시켰다. 로마 제국 전역에서 그녀의 신전이 파괴되었으며, 그 폐허 위에 기독교 교회들이 세워졌다. 그리하여 이시스 숭배는 로마인의 생활에서 차츰 멀어졌다.
그러나 이시스는 여전히 인간의 상상력을 지배했다. 혹자는 이시스 숭배가 다른 형태로, 즉 동정녀 마리아 숭배로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542년 과거 이시스 신전 위에 건축된 생 제르맹 데 프레 성당에서 파리인들은 1514년까지 이시스의 검은 조상을 동정녀 마리아로 숭배했다.) 그러나 그녀의 지속적인 매력에 대한 증거를 찾기 위해 굳이 다른 인물과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18세기에 이시스의 비밀 의식은 모짜르트의 오폐라 <마술피리 The Magic Flute>의 탄생에 기여했다.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은 그녀를 숭배했다. 블라바츠키 부인은 자신이 그녀의 입문자라고 주장했다.
크리스티앙 자크와 함께 하는 이집트 여행
– 크리스앙 자크 / 김병욱 역 / 문학세계사 / 2006.11.10
문자 기록들이 가리키고 있듯이, 이시스는 생명의 원천이요, 죽음을 이길 수 있는 마법사이며, 천신(天神)들에게 별자리를 정해주는 여(女)군주이다.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그의 동의 없이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모든 것에 그의 봉인이 표시되어 있다.
수의 신비 (숫자는 어떻게 태어나, 어떤 상징과 마법의 힘을 갖게 되었나)
– 마르크 알랭 우아크냉 / 변광배 역 / 살림 / 2006.09.20
이처럼 결혼수는 3,4,5라는 신성한 삼각형과 연결되어있다. 이 삼각형은 더 오래전에 이집트에서 ‘이시스의 삼각형’이라고 불렀던 신성한 삼각형의 변형체이다. 『이시스와 오시리스에 대하여』의 56장에서 플루타르크는 이 삼각형의 이름이 여신 이시스의 이름과 관계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집트인들은 이 직각삼각형을 가장 아름다운 삼각형으로 여겼으며, 이 삼각형의 형태에서 우주의 본질을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플라톤 역시 『공화국』에서 결혼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설명하면서 이 삼각형을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직각 삼각형에서 3이라는 수는 직각을 이루는 변, 4는 밑변, 5는 빗변을 가리키고, 5의 제곱은 직각을 이루는 3과 4의 제곱의 합과 같다. 직각을 이루는 변을 남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밑변은 여성, 빗변은 이들의 결합으로 생산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여 오시리스Osiris를 제1의 원칙으로, 이시스Isis는 오시리스로부터 영향을 받는 실재로, 호루스Horus를 이 둘의 결합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각 변이 3, 4, 5와 같거나 이와 같은 비율을 가지는 직각삼각형은 아주 오래 전부터(이미 수메르인들도 이 삼각형을 언급했다는 것을 살펴본 바 있다)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 직각삼각형이 이집트에서 가장 잘 알려졌었다는 사실을 한 번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시스의 삼각형’이라고 불리는 이 삼각형은 현실적으로는 직각을 그리는데 사용되었으며, 형이상학적으로는 이집트의 세 신인 오시리스, 이시스,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호루스를 상징하는 데 사용되었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이 삼각형의 빗변에 ‘정복할 수 없는’ ‘지배하는’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이 삼각형의 세 변에 해당하는 3, 4, 5는 완전수 6과도 관련되어 있다. 즉, 3³ + 4³ + 5³ = 6³ 이 되는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이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유대인이자 피타고라스학파의 일원이었던 알렉산드리아인 필론Philon(서기 150년경)은 그의 저서 『명상적인 삶에 대하여』에서 유대-피타고라스학파의 한 분파인 은둔 치료사들이 매 7일과 50일마다 집회를 가졌다고 밝히고 있다. 7은 동정수이며, 50은 신성한 삼각형을 이루는 수들의 합(3² + 4² + 5² = 50)과 같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소우주와 대우주의 결합을 나타내는 5와 10의 결합에 해당되었던 것이다.
이집트의 3신인 이시스, 오시리스, 호루스에 대해 글로 씌어진 전설은 이들의 형상만큼이나 널리 퍼져 있었다. 이마에 초승달을 상징하는 황소의 뿔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여신’인 이시스 숭배는 이집트에서 가장 널리 행해지고 꾸준히 행해졌던 의식이었다. 그것은 점차 지중해 전역에 퍼져나갔다. 우선 이시스가 세레스Ceres-주논Junon-프로세르피네Proserpine와 동일시되었던 그리스를 시작으로 로마와 골 지역을 거치면서 수많은 변신을 거듭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지역의 몇몇 종파들은 이시스를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와 동일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남편인 오시리스와 아들인 호루스와 더불어 이루어진 이시스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숭배는 종종 기독교에 있어서의 삼위일체와 비교(다른 모든 차이점들을 감안하면서)되기도 한다.
플루타르크는 또한 이 여신 숭배에 대해서도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동지 경에 행렬을 이루어 황소를 데리고 가 신전 주위를 일곱 바퀴 돈다.
그들은 또한 이시스는 달과 같다는 사실을 소리 높여 이야기한다. 그 증거로 그들은 이시스의 형상에서 초승달 모양을 한 뿔을 내세운다.
그들은 성공적인 사랑을 위해 달에게 기원했다. 에우독소스Eudoxe(크니도스Cnide의 에우독소스, 기원전 409-356, 그리스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에 따르면 이시스는 애정을 주관했다는 것이다.
이시스는 여성적 성질로 자연 속에 존재하고, 모든 생산의 씨앗을 받아들이는 부인으로서 존재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이시스는 모든 존재들의 어머니이자 보편적인 그릇이다. 그녀는 최초의 존재, 그 자체로 선한 원칙과 동일한 모든 것들의 주관자에 대한 타고난 사랑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그를 욕망하고 추구한다…….
그녀는 자진해서 그에게 스스로를 내어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씨를 잉태하고, 내부에 그의 활동적인 영향을 받기를 원하고, 결국 그를 닮은 자를 생산하기를 원한다. 자신 안에 행복한 수태의 확실한 징후들을 느낄 때면 그녀는 감미로운 쾌락과 전율을 체험한다. 존재들의 생산은 그녀를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실재의 이미지이고, 생산된 존재는 모태 안에 각인된 최초의 존재의 재현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신화
– 케네스 C. 데이비스 / 이충호 역 / 푸른숲 / 2008.11.20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신비한 이시스는 이집트 만신전에서 가장 중요한 여신이 되었다(어머니신이자 치유자이며 마법과 성적 능력에 대한 심오한 지식을 가진 막강한 여신으로서). 한 전설에 따르면, 이시스는 늙은 레를 속여 그의 비밀 이름들을 털어놓게 했다. 이시스는 마법으로 만든 뱀에게 레를 물게 한 다음, 그 이름들을 모두 말하게 하고 나서야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이집트어로 이시스라는 이름은 ‘왕좌’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으며, 이집트 미술에서 이시스를 왕좌로 묘사할 때가 종종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시스는 데메테르(대지의 여신 또는 곡물의 여신)와 동일시되며, 로마 제국 시대에 들어서는 더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 로마 제국 방방곡곡에 이시스를 숭배하는 신전이 세워졌는데, 심지어 오늘날의 런던 거리 밑에서도 하나가 발견되었다. 이집트 미술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인, 어린 호루스에게 젖을 먹이는 이시스의 이미지는 훗날 초기 그리스도교도가 성모 마리아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성모 마리아가 입고 있는 전통적인 파란색 드레스와 스텔라 마리스(Stella Maris, ‘바다의 별’이란 뜻)라는 칭호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언급, 그리고 마리아와 연관된 초승달 상징은 모두 로마 시대의 이집트 숭배 의식에서 차용한 것이다.
……
리처드 윌킨슨(Richard H. Wilkinson)이 쓴 『고대 이집트의 제신 The Complete Gods and Goddesses of Ancient Egypt』은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종교의 확산에는 이집트인이 자신들의 신화와 믿음을 배경으로 그리스도교의 많은 측면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 먼 옛날부터 이집트인은 왕을 신의 화신으로 여겨왔는데, 이것은 예수를 하느님의 화신으로 보는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로마 세계의 어떤 곳보다 이집트에서 훨씬 쉽게 받아들여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 심지어 그리스도교의 주요 사상이 이집트에서 기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리스도교의 신성한 어머니와 아기는 이시스(이집트인이 ‘신의 어머니’라 부르는)와 그 아들 호루스의 수많은 이미지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십자가 상징도 이집트 십자가, 즉 T자형 십자가(앙크 기호 형태)에서 먼저 나타 났다.
이집트 문명 (람세스는 가장 위대한 파라오인가)
– 디미트리 라부리 / 임미경 역 / 웅진지식하우스 / 2007.09.12
이집트에 대한 이러한 열광은 헬레니즘 세계 전체로 확산되었으며, 그리스 문화의 정신적 계승자인-혹은 계승자로 자처했던- 공화정 시대의 로마, 이어서 로마 제국으로 전해졌다. 이집트문화가 불러일으킨 매혹은 이집트광(egyptomania)으로 바뀌었다. 로마인들은 파라오의 자취를 쫓아 이집트 땅으로 여행을 떠났고, 스핑크스에서 오벨리스크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작품들을 모방하고 수입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이시스 여신과 이 여신의 ‘성(聖)가족’ 숭배를 중심으로 하는 이집트 종교제의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이시스 숭배는 처음에는 로마 하층민들 사이에서 유행했지만 나중에는 황제들의 궁정으로 침투했고(여러 명의 로마 황제가 이시스 숭배자였다), 서유럽 본토를 포함 로마 제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4세기 말에는 로마 귀족들이 이시스 숭배를 기독교 확산에 대항하는 무기로 이용하기도 했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다.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가톨릭을 국교로 선포한 이후, 지중해 지역에서는 천년 간의 파라오 문화 유행이 끝나고 이집트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된다. 비록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5세기 초까지도 농민들이 해마다 오시리스의 부활을 기리는 축제를 벌이긴 했지만 말이다. 파라오 문화의 근본 토대인 이 종교는,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상이집트 필라에(Pilae) 섬의 이시스 신전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제들을 추방함으로써 약6천 년간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서양 (위대한 창조자들의 역사)
– 이바르 리스너 / 김동수 역 / 살림 / 2005.11.05
이시스와 오시리스 신에 관한 숭배가 무역선과 상인들에 의해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로 전파됐다. 아테네 인근의 항구 피레우스, 로도스, 레스보스와 테라, 스미르나를 비롯해 신성한 도시 델로스 등 도처에서 오시리스 신에서 파생한 세라피스와 이시스를 모셨다.
이집트의 파라오와 원만한 관계를 원하는 곳에서는 이집트의 신을 신성하게 떠받들었다. 이처럼 정치가 이들 신과 손을 잡아 키프러스와 시실리, 안티오키아, 아테네까지 이끌었다. 이집트의 신들은 계속 서쪽으로 뻗어나가 이탈리아 반도의 남쪽과 로마에까지 이르렀다.
……
로마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신앙에 빠져들었다. 이에 따라 강력한 종교 활동이 대두됐다. 국가는 이집트의 신을 숭배하는 데 따른 현실적인 위험을 깨닫게 됐다. 기원전 59년과 48년 사이에 이시스 신전이 다섯 번이나 파괴됐다.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로마 시내에서 이집트 신 숭배에 관한 금지령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로마에는 새롭고 초감각적인 사상이 파고들기 쉬웠다. 때문에 나중에 기독교가 전파될 수 있는 입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티베리우스 황제는 몇 차례 추문이 있고 난 뒤 서기 19년에 이시스 신전의 신관을 십자가형에 처했다. 신전은 파괴되고 여신상은 티베르 강에 토막 난 채 가라앉았다.
그리고도 이시스와 세라피스는 나중에 로마의 신으로 떠받들어졌다. 이집트의 신앙은 사실상 서양 세계를 정복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총애하던 젊은이 안티노우스가 나일 강에서 뱃놀이하다가 물에 빠져 죽자 황제가 이 젊은이를 이집트의 반신반인으로 추켜올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 우울한 젊은이를 로마에서 장례를 치르고 만든 묘지는 이집트식이었다. 하드리아누스가 곳곳에 세우도록 한 많은 신전들은 이집트 신관들이 운영하고 예배를 주관했다.
거대한 로마제국 영토 안에서 이집트의 신을 숭배하지 않는 지방은 거의 없었다. “온 세상이 세라피스 신을 섬기고 있다.”는 테르툴리안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잉글랜드에서도 이시스와 세라피스에게 바치는 명문이 발견되고 있다. 보젠의 남쪽에 있는 논스버그에서 아누비스와 이시스에 대한 예배를 드렸다. 이시스의 성소가 글란탈의 풀스트와 캐른텐에 들어섰다. 독일 쾰른의 성 우르줄라 교회에도 이 불굴의 조그만 여신상이 있다. 이시스는 중세에 건물 기둥에 장식되기도 했다. 유럽 전역에서 이시스 신앙이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이들 이집트의 신들은 유럽에 살아있었다.
고대 문서에 나타나는 이시스(Isis/Aset)
다음은 각 문서들에서 이시스(Isis 또는 Aset)가 등장하는 예(sample)이다. Wesir는 오시리스(Osiris)이다.
피라미드 텍스트(The Pyramid Texts)
Utt. 4
Recitation by Nut:
“…O King, I have given to you your sister Isis, that she may lay hold of you and give to you your heart for your body.”
§ 210
Ascend and descend; descent with Nebt-Het, sink into darkness with the Night-bark.
Ascend and descend; ascend with Aset, rise with the Day-bark.
Utt. 406
§ 707
Bring me the milk of Aset, the flood of Nebt-Het, the overspill of the lake, the surge of the sea, life, prosperity, health, happiness, bread, beer…
Utt. 535
§1280-1
Thus said Aset and Nebt-Het: The ‘screecher’ comes, the kite comes, namely Aset and Nebt-Het; they have come seeking their brother Wesir, seeking ther brother the King…. Weep for your brother O Aset; weep for your brother, O Nebt-Het; weep for your brother! Aset sits down with her hands on her head, Nebt-Het has grasped the tips of her breasts because of her brother the King…
코핀 텍스트(The Coffin Texts)
In Spell 24 we get an idea of Aset´s role in the funerary context:
“…the arm of your foe is chopped off for you, the Two Kites, who are Isis and Nephtys, scream for you, striking for you on two gongs in the presence of the gods…”
사자의 서(The Book of the Dead)
In Chapter 15 can be found a hymn to Osiris which also contains an important descriptions of the roles of Aset:
“Aset will embrace you in peace
she will drive away the opponent from your path,
Place your face to the West
that you may illumine the Two Lands with electrum
The sleepers have stood up to look at you,
breathing the air and seeing your face
like the rising of the sun-disk in its horizon,
Their hearts are pleased with what you have done.
To you belong eternity and everlastingness.”
In same book, Spell no: 142:4 can be read following, which gives us an idea of the many epiteths that Aset was given:
“…Aset the great, Mother of the God; Aset the Divine, Aset the daughter of Nut; Aset the Great of Magic; Aset the possessor of magical protection, Aset the possessor of rolls; Aset who protected her Father, Aset the Ruler of rolls; Aset in Asyut, Aset as ruler of (the city of) ‘Shesmin’, Aset in Bahbit (Iseum); Aset in Pe, Aset in Dep, Aset in Coptos, Aset ‘in charge of’ Pe, Aset in Akhmim, Aset in Abydos, Aset in King´s House; Aset in the Sky, Aset in the earth, Aset in the southern (and northern) chapel (of Sais), Isis in the northern chapel (of Sais); Asset in all her Manifestations, Aset in all her characters, Aset in all her Aspects, Aset in (every) place where her Spirit desires to be;…”
<관련 그림>
– 이시스 여신, 세티1세 무덤(KV17) 벽화, 기원전 1360 년
–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에게 젖을 먹이는 이시스 / 기원전 1512 – 1504
– 투트모세 3세(Thutmose III, 기원전 1504 – 1450)가 빨고 있는 sycamore 나무는 이시스가 변한 모습
– 이시스는 큰뱀(serpent)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 기원전 1300년 / 세티 1세(Seti I)의 무덤
– 호루스에게 젖을 먹이는 이시스 / 기원전 680 – 640 / 미국 볼티모어 월터스 미술관(Walters Art Museum)
– 연꽃을 쥐고 있는 이시스 / 이집트 필라에(Philae) 신전
– 이시스는 솔개(kite)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이시스의 바구니>, 이시스에게 바쳐진 칼리굴라(Caligula)의 사원에서, 1세기, 로마 / 옆면에는 아누비스(Anubis)가 왼손에는 마아트의 깃털을 오른손에는 도리깨(flail) 혹은 fetish를 들고 있다.
http://www.vroma.org/images/raia_images/index9.html
– 가운데 왕관을 쓰고 있는 이시스와 왼쪽의 모세, 오른쪽의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
핀투리키오(Pinturicchio) / 1493, fresco, Sala dei Santi, Appartamento Borgia, Vatican Palace, Rome.
Athanasius Kircher, Oedipus Aegyptiacus (1652)
http://lotuspharia.freeyellow.com/thecircleofisis/id78.html
<이시스의 봄 축제 Isidis Navigium / Procession in Honor of Isis(1902), Frederick Arthur Bridgman>
http://en.wikipedia.org/wiki/Navigium_Isidis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위키 백과 : http://en.wikipedia.org/wiki/Isis
네이버 지식백과 : 이시스
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295449/Isis
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17a3835a
http://isiopolis.wordpress.com/
http://www.philae.nu/philae/goddess.html
http://rosicrucian.org/publications/digest/digest1_2010/table_of_contents.html
http://www.per-aset.org/PyramidTexts.htm
http://www.per-aset.org/coffin_texts_referencing_aset.htm
http://www.per-aset.org/BoD.htm
http://en.wikipedia.org/wiki/Helena_Blavatsky
http://nadri.hankooki.com/lpage/weekzine/200602/wz2006021718055373280.htm
네이버 블로그 : 이시스 신앙의 긴 그림자 그리고 그 생명력의 비밀 – 이길용
네이버 캐스터 > 서양미술 산책 > 이오와 이시스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4987
[고고학으로 읽는 성서-(1) 가나안 땅의 사람들] 베니게(시돈과 두로) 사람들 ④
http://mirrorofisis.freeyellow.com/id161.html
http://www.sacred-texts.com/eso/sta/sta1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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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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