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 시대의 붕괴 (기원전 1200년경 ~ 1150년)

고대 세계사의 미스터리 중 하나가 지중해 동부 지역에 번성하던 청동기 문명의 갑작스러운 몰락이다. 청동기 시대 붕괴는 에게 해 지역, 서남아시아, 북아프리카, 발칸 반도, 지중해 동부 등에서 일어난  문명을 파괴하는 형태로 나타난 시기를 가리킨다. 이 시기는 청동기 시대 후기로부터 철기 시대 초기로의 전환의 시기 동안이다. 이후 위키백과 기준으로 기원전 1100년경 ~ 기원전 800년경의 ‘그리스 암흑의 시대’, 기원전 1069년경 ~ 기원전 664년경의 ‘이집트 제3 중간기’라는 암흑기가 시작된다.

 

※ 옐로우의 세계사 연표 : http://yellow.kr/yhistory.jsp?center=-1200

 

기원전 1200년경에서 1150년의 기간에 미케네 왕국, 바빌로니아의 카시트 왕조, 아나톨리아와 레반트의 히타이트 제국, 그리고 이집트 제국이 몰락하였다. 이 시기의 첫 단계에서, 트로이와 가자 사이의 거의 모든 도시들이 폭력적으로 파괴되었으며 이 파괴된 도시들 중 많은 곳들이 그 이후로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도시가 되었다. 철저하게 파괴되어 폐허가 된 도시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하투사, 미케네, 우가리트가 있다.

 

기원전 2200년경의 초기 청동기 시대의 붕괴와 비교하여 후기 청동기 시대의 붕괴(Late Bronze age collapse)라고도 한다.

※ 4200년전 기후변화 사건 – 이집트 제1 중간기 : http://yellow.kr/blog/?p=716

 

로버트 드류스(Robert Drews)는 후기 청동기 시대의 붕괴를 “서로마 제국의 멸망보다도 처참했던, 고대 역사상 최악의 재앙”으로 묘사했다. 그만큼 기원전 15세기에서 기원전 13세기까지 약 300년 동안 이집트를 포함한 지중해 동부, 에게해, 중동 지역에서는 청동기 문명이 번창했다. 이집트 · 미노아 · 미케네 · 히타이트 · 앗시리아 · 바빌론 · 키프로스 등이 이 청동기시대 후기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이들은 활발한 무역, 문화교류 등으로 현대사회처럼 글로벌화를 이룩하며 발전했다. 그런데 기원전 1200년경에서 1150년 사이, 궁전과 도시들이 하나씩 무너지고, 무역로가 끊기며, 굶주린 사람들이 집단 이동을 하는 등 융성하던 문화는 붕괴한다. 문명의 몰락 이유를 밝히는 것은 수십년 전부터 학계의 관심사였지만, 여러 학설이 있을 뿐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은 실정이다.

 

청동기 시대의 붕괴를 하나의 요인보다는 기후의 변화로 인한 가뭄과 기근, 지진, 그리고 이로 인한 반란, 대규모 이주, 해양민족의 침략 등 복합적 요인들이 함께 작용한 결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에릭 클라인(Eric H. Cline)은 《고대 지중해 세계사》에서 기원전 1177년을 붕괴의 정점으로 보고있다.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 이르기까지, 에게 해와 지중해 동부 지역 청동기 시대 후기의 종말은, 밀물처럼 밀려온 사건의 연속이었고, 수십 년 동안 혹은 심지어 한 세기 내내 지속되었던 사건이었다. 어느 한 해에 국한되어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특정하자면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3세의 재위 8년째 되던 해인 기원전 1177년(현재 대부분의 이집트학 연구자들이 이용하는 연대표에 의거)은 전체적인 붕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해라고 할 수 있다. 이집트의 기록에 따르면 그 해에 해양민족이 이집트 지역을 휩쓸었고 두 차례나 파괴를 자행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해가 나일 강 삼각주의 육지와 바다에서 큰 전쟁이 있었던 해였고,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투쟁해야 했던 해였으며, 청동기 시대의 고도로 발달했던 문명이 파국을 맞이했던 해였다.

실제로 기원전 1177년은 청동기 시대 후기가 막을 내린 해였다. 이는 마치 로마와 서로마 제국이 멸망했던 기원후 476년과 같다. 즉 이들 시점은 현대의 학자들이 편의상 한 시대의 종말로 획정한 때인 것이다.

 

– 기원전 1200년경의 침략, 파괴, 이주의 흐름 예상도 (아틀라스 세계사,  Patrick Karl O’Brien, Oxford University Press, 2002)

 

※ 역사지도 – 기원전 1200년 : http://yellow.kr/maps.jsp?y=-1200&l=1#map=5/3884458.07/4235625.28/0

 

Rhys Carpenter가 1965년에 “청동기 시대는 재앙적인 가뭄으로 끝났다”고 주장을 한 이후 점점 더 많은 학자들이, 지속된 가뭄이 최소한 13세기 말에서 12세기 초의 에게 해, 아나톨리아, 동부 지중해에 영향을 미쳤다는데 동의한다. 논쟁 중이기는 하지만, 이 가뭄이 결국 후기 청동기 시대의 붕괴를 초래했고 암흑기(Dark Age)를 시작되게 하였다는 것이다.

 

– 기후는 변한다. 그 변화에 따라 생물물리학적 영역(Biophysical regions)과 사회정치학적 영역(sociopolitical regions)도 변한다. 지중해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의 위치를 주목 (Crumley 1993)

 

 

프랑스 툴루즈 대학의 다비드 카뉴스키(David Kaniewski)와 엘리스 반 캄포(Elise Van Campo), 그리고 예일 대학의 하비 웨이스(Harvey Weiss) 등이 참여한 다국적 발굴팀의 연구 결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초기 청동기 시대와 후기 청동기 시대의 종말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시리아 북부에 있는 텔 트웨이니(고대의 기발라)의 자료를 근거로 발굴팀은 기원전 제2차 천년기 말경 그 지역에 “기상 이변과 간헐적으로 심각한 가뭄”이 있었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특히 그들은 유적지 인근의 충적토에서 추출한 꽃가루를 연구했다. 그 결과 “기원전 13세기 말 혹은 기원전 12세기 초부터 시작해서 기원전 9세기까지 시리아의 지중해 인근 지역에서 기후가 건조해졌음”을 밝혔다.

카뉴스키 발굴팀은 당시 키프로스 섬에서도 건조기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를 추가로 발굴했다는 보고서도 출간했다.

청동기 시대 후기의 위기는 3200여 년 전에 시작된 300년 가뭄의 시작과 불가분의 관계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후 변화로 인해 곡물 생산량이 급격히 줄었고, 식량 부족과 기근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사회경제적 위기가 촉발되었고 지중해 동부 지역과 서남아시아 지여그로 사람들이 대거 이주하게 되었다.(Kaniewski et al. 2013:9)

뉴멕시코 대학의 브랜든 드레이크(Brandon Drake)는 <고고학 저널(The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에 수록한 논문에서 그는 카뉴스키의 가설을 입증하는 근거를 제시하면서, 기후가 특히 건조해졌던 시기를 정확히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기원전 1250년에서 기원전 1197년 사이였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주장했다.(Drake 2012: 1868)

그는 또한 미케네 궁전이 붕괴되기 직전 시기에 북반구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갔던 사실에 주목했다. 이는 가뭄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한편 미케네 궁전이 폐허가 되었던 시점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졌다. 즉 처음에는 날씨가 더웠졌다가 갑자기 추워졌던 것이다. 그 결과 “그리스의 암흑 시대에는 더 춥고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었다.” 드레이크가 말했던 것처럼, 기원전 1190년 이전, 지중해 해수면 온도 하락 등 기후 변화가 강우량 감소를 초래했고, 이는 미케네 궁전이 있던 지역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을 수밖에 없다. 미케네 시대의 그리스는 농업 생산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Drake 2012: 1862, 1866, 1868)

 

텔아비브 대학의 이스라엘 핀켈슈타인(Finkelstein)과 다프나 란구트는 독일 본 대학의 토마스 리트와 함께 가뭄 가설에 더 많은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그들은 갈릴리 호수 바닥 퇴적층을 뚫어 20미터에 달하는 코어를 캐냈다. 거기서 추출한 꽃가루 화석을 분석한 결과 레반트 남부 지역에서 기원전 1250년부터 심각한 가뭄이 시작되었음이 드러났다. 그 다음에는 사해 서부 해안을 뚫어 코어를 캐냈다. 여기서는 기원전 1100년경 이전에 이미 가뭄이 해갈되어서 생명이 되살아난 것으로 드러났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그곳에 정착했을 것이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세계적인 현상이었을까? 이 시기 중국에서는 상나라가 멸망하고 주나라가 건국된다. 중국의 하상주단대공정은 상나라의 멸망을 기원전 1046년의 일로 보고 있다. 상나라 멸망을 가장 오래전으로 보는 것은 기원전 1127년, 가장 나중으로 보는 것은 기원전 1018년이다. 기원전 1100년경의 기후변화를 주장하는 자료를 몇 개 찾았다. 상나라 때까지도 코끼리, 코뿔소 등이 황하 지역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기원전 1200년경의 침략, 파괴, 이주의 흐름 중심에 기원이 분명치 않은 ‘해양 민족(Sea People)’이 있다. 마틴 버낼(Martin Bernal)은 이 시기에 있었던 ‘해양 민족들’의 침입에 비견되는 가장 근접한 역사적 사례로 십자군의 침입으로 보았다. 즉 십자군은 프랑크인이 주축이었다면 해양민족은 그리스인이 주축이라는 의견이다.

 

‘해양 민족들’ 중에서도 유명한 필리스티아인(Philistines)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블레셋인이다.  더 이상 이주를 하고 않고 ‘필리스티아’로 불리던 지역(현재의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경우다. 유대인 양치기 소년 다윗의 돌팔매에 이마를 맞아 쓰러진 거인 골리앗이 바로 블레셋인이다. 블레셋인은 난민보다 이주 민족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이 둘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팔레스타인의 토착세력이 아닌 고대 미케네 문명을 건설한 그리스계 이주세력으로 추정된다. 구약성서에는 필리스티아인에 대하여 약 250번의 언급이 나오는데 이들을 “할례받지 않은 자”라고 부르며, 할례 풍습이 있었던 이스라엘인 등 셈족들과 구분하고 있다.

 

‘해양 민족들’에 대해서는 따로 정리하도록 하겠다.

 

 

※ 에트루리아의 기원 :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최초의 에트루리아인들이 기근을 피해 서쪽으로 항해해 온 소아시아의 서해안에서 온 리디아인이었다고 하였다.(역사 제1권 94)

 

다음과 같은 자료를 찾았다.

 


기후의 문화사

–  볼프강 베링어 / 안병옥, 이은선 역 / 공감IN / 2010.09.10

 

기원전 13세기 후반 발생했던 자연재해로 미케네 문명은 혼란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때 그리스에서는 모든 왕궁건설이 중단되었다. 기원전 1200년경 미케네 성채와 그리스 왕족들의 저택 대다수는 약탈당하고 불태워졌다.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고, 수십 년 동안 내륙의 모든 지방에서 거주가 포기되었다. 이후 그리스가 경험했던 수백 년간은 ‘암흑의 세기(Dark Ages)’나 다름없었다. 예술, 건축, 문학이 시들었으며, 400년이 흘러 대문호(大文豪) 호머의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역사의 암흑을 밝히는 어떠한 문헌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미케네 문명의 몰락은 트로이 전쟁과의 연관성 속에서 해석되어 왔다. 호머의 일리아스에 따르면, 트로이 전쟁은 미케네의 지휘아래 그리스의 아카이아 연합군에 의해 치러졌다. 하지만 트로이 전쟁으로 미케네가 몰락했다는 가설이 그다지 신빙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잘 알려진대로 그리스인들이 트로이를 파괴했던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었다. 몰락의 원인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근거로 지진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지만, 미케네의 성들에서는 지진 발생을 유추할만한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청동자원결핍이론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원전 12세기에는 미케네뿐만 아니라 모든 지중해 국가들이 위기에 처해 있었으며, 미케네에서 청동이 부족했음을 말해주는 그 어떤 실마리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에 따르면, 미케네는 호머시대 훨씬 전부터 이집트처럼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 트로이 전쟁 시기 미케네의 땅은 비옥한 편이었지만, 긴 가뭄이 시작되면서 사막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늪 아르고스(Argos)는, 가뭄이 지속되면서 경작가능한 땅으로 변모했다. 이는 특정 지역의 사례에 불과하지만 비슷한 일들이 보다 광활한 지역, 더 나아가 영토 전체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미케네 문화의 몰락 원인을 건조한 기후에서 찾는 이론은 1970년대에 체계화되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미케네 문명을 몰락으로 이끌었던 장본인은 그리스를 건조한 땅으로 변모시켰던 장기간의 가뭄이었다.

물 부족은 히타이트왕국이 몰락하게된 배경이기도 하다. 히타이트왕국은 약 200년간 번영기를 누린 후 기원전 1200년경에 붕괴되었다. 히타이트인들은 아나톨리아에서 심각한 기근이 발생하자 이집트에 원조를 요청했으며, 고산지대에 있던 왕국의 중심지를 시리아의 평원으로 옮겨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새로운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지중해지역의 기근은 호전적인 ‘해양민족의 이동’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호전적인 민족이 대규모 유입되면서 우가릿(Ugarit)문화와 히타이트왕국은 몰락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히타이트인들에게 대지는 기후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기후신은 왕 일족에게 왕국 관리를 위임하였는데, 왕이 져야했던 가장 중요한 책무는 기후신과의 소통이었다고 한다.

……

아보레알(Subboreal)기에 건조했던 기후는 유럽뿐만이 아니라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도 영향을 미쳤다. 캘리포니아의 아리스타타 소나무를 연륜연대학으로 조사한 결과, 기원전 1200년경 나무의 생장속도는 수백 년 동안 감소했으며 이는 몬순이 이동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남아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원전 1300년부터 900년까지 라자스탄(Rajasthan)에서는 가뭄으로 수확량이 70%나 줄어들었으며, 꽃가루 분석 결과는 이 시기에 고대 인도문명이 몰락했음을 말해준다. 인도 라자스탄과 파키스탄에 걸쳐있는 타르(Thar)사막은 이때 생겨난 것이다. 중국의 상왕조(기원전 1766~1122경) 시대의 경우에도 마지막 수십 년 동안 매우 불안정한 기후가 지속되었다. 마른 안개로 해가 어두워지고 태양이 세 개로 보이는가 하면, 7월에 예기치 않은 추위와 함께 서리가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평상시에는 따뜻했던 황하의 물이 밤 사이에 얼어붙는가 하면, 흉작과 기근이 발생하기도 했다. 폭우와 홍수 역시 잦은 편이었다. 하지만 폭우와 홍수가 물러간 뒤에는 7년에 걸쳐 긴 가뭄이 찾아왔다. 이러한 기후 대혼란은 결국 왕조의 몰락을 불렀으며, 이러한 상황은 주왕조(기원전 1122~249년경) 초기까지 지속되었다. 기원전 1200년경의 격변기는 광범위한 문화적 변동을 수반하고 있었다. 근동아시아에서 철기의 등장은, 청동 부족보다는 빈번하게 발생했던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철광상(鐵鑛床)들은 구리나 주석과는 달리 광활한 지역에 퍼져있었다. 신기술 보유자들은 군대를 무장시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수공업자와 농민들에게 값이 싸면서도 오래 쓸 수 있는 연장들을 제공할 수 있었다. 철기시대와 함께 새로운 왕국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훗날 다수의 옛 상업도시들을 흡수하면서 영토를 넓히게 된다. 하지만 도시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았다. 도시화는 새롭게 등장한 왕국에서도 더욱 진전되었다. 신생왕국의 경제체제는 더 이상 원거리무역이나 근린지대에서의 농업이 아닌 광범위한 조공체제에 기반하고 있었다.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는, 기원전 3000년경의 신석기혁명처럼 인류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 간주된다. 최근에는 많은 연구자들이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러한 문화변동을 기후변화의 맥락에서 이해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  브라이언 페이건 / 남경태 역 / 예지 / 2007.08.25 (원서 2003년)

 

기원전 1200년경의 가뭄에 대한 기후학적 증거 역시 단편적으로만 남아 있다. 지질학자 부처(Karl Butzer) 같은 학자들은 대규모 기후 변동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뭄과 기근으로 인한 사회 혼란의 증거는 명백하다.

……

…… 가뭄이 사회를 위협했을 때 청동기 시대의 지배자들도 신전을 짓고 성소를 마련했다. 버려진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는 바로 신전이 있었다.

그러나 그 노력은 실패였다. 사람들이 영주를 불신하고 그 그늘에서 달아나자 신전은 폐허가 되었고 도시는 유령 도시가 되었다. 레반트 남부 전역에서 사회가 완전히 붕괴되었다. 도시를 벗어난 사람들은 항구적인 수원이 있는 작은 촌락과 유목민 진영으로 들어갔다. 살아남은 소수의 도시들은 모두 적당한 곡식을 키울 힘이 있는 마르지 않는 강둑에 위치해 있었다.

……

그러다 갑자기 기원전 1200년경에 잘 잡힌 균형이 무너졌다. 히타이트가 멸망하고, 미케네 문명이 파괴되고,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가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레반트의 도시들은 경제 침체에 시달리며 고고학자들이 ‘해상민족’이라고 부르는 수수께끼의 뱃사람들에게 약탈을 당했다. 이집트는 살아남았지만 리비아에서 온 침략자들을 격퇴하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람세스 2세의 열셋째 아들인 메르넵타는 카르나크의 아문 신전에 “할례를 받지 않은 리비아인들을 6239명이나 죽였다”는 문구를 자랑스럽게 남겼다. 후기 청동기 시대 문명은 정체되었고 여러 곳에서 소멸했다.

이렇게 광범위한 문명의 파괴는 또 한 차례의 광범위한 가뭄과 시기적으로 일치했다.

 

고대의 많은 사실들이 그렇듯이 기원전 1200년대의 대가뭄도 논란의 대상이다. 1966년 고전학자인 카펜트(Rhys Carpenter)는 『그리스 문명의 불연속성』이라는 짧은 책에서,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이 쇠퇴한 것은 사하라의 건조한 사막풍이 북쪽으로 이동한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미케네 문명의 근거지인 펠레폰네소스는 크레타와 아나톨리아처럼 몹시 건조해졌다. 가뭄은 미케네와 히타이트 두 문명의 붕괴에 한몫을 했다. 카펜터의 책은 기후 변동을 핵심 요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

1954~55년에는 지중해 서부의 겨울 기압골이 평소보다 서쪽에 위치했고, 터키에는 평소보다 높은 고기압이 자리 잡았다. 그에 따라 평소에는 그리스 남부에 비를 뿌리던 비바람의 궤도가 북쪽으로 크게 꺾였다. 아테네와 아티카 일대는 예년보다 더 습해졌고, 아나톨리아와 그리스 남부는 훨씬 더 건조해졌다.

……

세 연구자(브라이슨Reid Bryson, 돈리Don Donley, 램Hubert Lamb)는 카펜터의 주장이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약 1954/1955년의 기후 패턴이 기원전 1200년에 일어났다면, 미케네 농경은 바로 이듬해에 불안정해졌을 것이다. 그런 해가 3~4년 지속된다면 재앙은 불가피하다.

……

가뭄이 닥칠 경우 한 해 정도는 쉽게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가뭄이 몇 년씩 지속된다면 그건 다른 문제였다. 처음에 지배자들은 곡식을 후배지에 배급했으나 이듬해까지 흉년이 들면서 배급 체계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카펜터와 기후학자들이 옳다면, 기원전 1200년의 심한 가뭄은 미케네의 지배자들에게 결정타를 가했다. 그들의 경제적 토대는 신민들에게서 거둔 잉여 곡물과 해외 무역에 있었다. 왕궁은 불타고 버려졌으며,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소규모 자급자족 촌락을 이루었다.

문명의 흐름은 4세기 이상이나 끊어졌다. 이 암흑기는 많은 세대에게 집단적 기억으로 남았다. 기원전 5세기까지도 아테네 장군 투키디데스는 옛날의 그리스를 이렇게 말했다. “상업도 없었고, 육로나 해로를 통한 교통도 없었다. 겨우 먹고 살 만큼을 얻는 것 이상으로 농사를 짓지 않았다. 수도는 빈곤해졌으며, 큰 도시를 건설하지도 못하고, 어떤 형태의 위대함도 이루지 못했다.”

미케네와 크레타를 덮친 가뭄은 아나톨리아와 히타이트 제국도 유린했다.

……

…… 가뭄이 격화되자 싸움이 일어났다. 주로 굶주린 함대와 군대, 유랑민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수수께끼의 해상민족은 에게 해를 무대로 지중해 동부의 문명세계를 약탈했다. …… 기원전 1200년 직후 히타이트 제국은 여러 작은 나라들로 분해되었다. 남은 히타이트 군대는 해상민족에게 격렬히 저항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해상민족은 육로와 해로로 이동하면서 항구와 내륙 도시들을 포위하고, 왕궁의 보물을 약탈하고, 정주할 곳을 찾았다.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건조해진 땅을 버리고 필사적으로 항구적인 터를 찾아 나선 유랑민들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들은 나일 강변으로 가서 비옥한 삼각주에 정착하고자 했다. 기원전 1200년경 리비아인들과 해상민족의 동맹 세력이 시리아 방면에서 육로와 해로로 이집트를 공격했다. 이들은 소가 끄는 수레에 짐을 싣고 여자와 아이들까지 함께 이동했는데, 단순히 나일 강 유역을 침략하려는 게 아니라 아예 그곳에 눌러앉으려는 것이었다. 수백 척의 선박들이 육로로 이동하는 무리를 따라 항해했다.

……

이동할 수 없고 인간이 관리하는 농경에 의존하는 도시로, 더 큰 거주지로 들어왔을 때, 인간은 취약성의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제 인간은 어느 때보다도 갑작스런 기후 변동에 취약해졌다.

 


고대 지중해 세계사

–  에릭 클라인 / 류형식 역 / 소와당 / 2017.01.10

 

청동기 시대 후기가 왜 막을 내렸는지뿐만 아니라 해양민족이 왜 이주했는지, 그 이유를 모두 찾고자 하는 학자들이 선호하는 해답이 있다. 바로 기후변화이다. 가뭄과 그로 인한 기근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고고학자들이 출간한 책에서 기상 재해가 일어났던 기간이 한 세대 전체라고도 하고, 혹은 10년, 혹은 1년이라고 하는 등 여러 설이 있지만, 어쨌든 재해가 일어났던 시기는 우리가 주목하는 사건에 비해 수십 년 전에 일어났다고 한다.

……

일단 가뭄은 논외로 하고 기근으로 주제를 돌려보도록 하자. 청동기 시대 후기가 끝나갈 무렵, 히타이트 제국과 지중해 동부 지역 곳곳에서 고통스러웠던 기근과 식량 부족을 언급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적지 않은 학자들이 이 기록에 주목했다.

……

텔아비브 대학의 이타마 싱어는 기원전 13세기 말에서 기원전 12세기 초에 걸쳐 발생한 기근은 전례가 없을 정도였고, 그 영향은 단지 아나톨리아 지역을 넘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고 확신한 바 있다.

……

이 장을 시작할 때 언급했던 것처럼, 청동기 시대 후기의 이른바 붕괴 혹은 재앙에 대해서 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의가 있었다. 로버트 드류스는 1993년에 출간된 그의 책에서 제기된 각각의 가능성에 대해 한 챕터에 한 문제씩 체계적으로 검토했다. 하지만 그가 잘못 판단하거나 과소평가했던 논점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그는 시스템 붕괴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해버리는 대신 스스로 주장했던 전쟁 원인설을 선호했다. 그러나 모든 학자들이 전쟁설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로버트 드류스의 책이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이후로도 논쟁이 이어졌고 학술 출판이 계속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는 여전히, 청동기 시대의 황혼에 마침표를 찍었던 주요 도시의 파괴에 대하여, 누가 혹은 무엇이 파괴의 원인을 제공했는지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문제는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다.

 

주요 관찰 요점

1. 기원전 15세기에서 기원전 13세기까지 번성했던 에게 해와 지중해 동부 지역의 수많은 문명들에 대해서 우리는 알고 있다. 미케네와 미노아를 비롯하여 히타이트, 이집트, 바빌론, 앗시리아, 가나안, 키프로스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독립적인 문명이었지만 끊임없이 서로 교류했고, 교류는 특히 국제 무역로를 통했다.

 

2. 에게 해, 지중해 동부, 이집트, 근동의 많은 도시들, 청동기 시대 후기의 문명들과 그 주민들이 기원전 1177년 혹은 그 직후에 종말을 맞이했다.

 

3. 문명의 붕괴와 청동기 시대 후기의 종말을 초래한 사람들이 누군지, 혹은 어떤 재앙이었는지에 대한 이론의 여지가 없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가능성 검토

청동기 시대 후기의 붕괴를 초래했거나 혹은 그에 기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인들은 많지만, 그 중 어느 것도 그 자체 하나만으로는 재앙의 전적인 원인이 될 수 없다.

 

A. 당시에 지진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들은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B. 기근이 있었다는 문헌자료가 있고, 현대 과학으로도 가뭄과 기후변화가 에게 해 및 지중해 동부 지역에서 발생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당시 사회들은 당시에는 물론 그 이전에도 이러한 문제를 계속해서 극복해 나왔다.

 

C. 그리스를 비롯하여 레반트 등 다른 곳에서도 분명하지는 않지만 반란이 일어났던 정황이 있다. 당시 사회들은 이러한 반란 또한 흔히 극복해왔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반란이 그처럼 광범위한 지역에서 그토록 오래도록 지속되지는 않는다.

 

D. 침략자 혹은 최소한 새롭게 유입된 사람들의 흔적이 고고학적으로 드러났다. 아마도 에게 해 지역이나 아나톨리아, 키프로스 섬 혹은 이 모든 곳에서 온 사람들의 흔적이 북으로는 레반트 지역의 우가리트까지, 남으로는 라치쉬까지 발견된다. 이들 도시 중 일부는 파괴가 자행된 뒤 방치되었고, 또 일부에는 다시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았으며,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던 곳도 있다.

 

E. 국제무역로가 운영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때때로 중단되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단절이 무역로에 의존했던 모든 개별 문명 간에 한꺼번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부는 생존을 위해 외국의 상품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미케네와 같은 경우이다.

 

실제로 어떤 문명이 침략자나 지진으로 인해 예전의 상태로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가뭄이나 반란으로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청동기 시대 후기의 종말에 대해서는 이 모든 요인들이 다 함께 문명의 종말을 초래했다고 설명하는 것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다. 따라서 기존에 제시된 증거들로 보자면, 우리는 시스템 붕괴가 원인이 되어 일련의 사건이 서로 연결되면서 “복합 효과”가 나타났고, 그 속에서 하나의 요인이 다른 요인들에 영향을 미쳤고, 각각의 요인들이 극대화되었던 것이다.

……

그러나 필자가 앞에서 논평한 바와 같이, 시스템 붕괴 이론은 에게 해, 지중해 동부, 근동 지역의 청동기 시대 후기의 종말을 너무 단순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른바 융복합 학문 혹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복잡계 이론(complexity theory)”이라고 하는 쪽으로 관심을 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이들 문명이 붕괴한 원인을 포착할 수 있을 것 같다.

……

그러나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마찬가지로 청동기 시대 지중해 동부 지역 제국들의 멸망 또한 단 한 번의 침략이나 단 하나의 원인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었다. 여러번에 걸친 침략과 중층적인 이유들이 중첩되어 일어났던 일이다. 기원전 1177년에 침략을 했던 침략자들 중 상당수가 기원전 1207년 파라오 메르넵타의 재위 중에도 살아 있었다. 지진, 가뭄, 그리고 기타 자연 재해들 또한 에게 해와 지중해 동부 지역을 수십 년 동안 휩쓸었다. 따라서 청동기 시대의 종말을 초래한 단 하나의 사건이란 있을 수 없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대의 종말은 에게 해와 동부 지중해 지역의 서로 연결된 왕국과 제국들을 모두 혼란에 빠뜨렸던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이어진 결과였으며, 마침내 시스템 전체가 무너졌던 것이다.

……

청동기 시대의 붕괴와 함께 새로운 세계가 등장했을 때, 그것은 아주 새로운 시대였고, 성장의 기회가 주어졌던 시대였다. 특히 청동기 시대 후기의 상당 기간 동안 주변의 시리아와 가나안 지역을 광범위하게 지배했던 히타이트가 사라지고 이집트가 쇠락했기 때문이었다. 몇몇 지역에서는 어느 정도 연속성이 있었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앗시리아 신왕조의 경우가 그랬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새로운 권력이 창출되었고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었다. 아나톨리아 남부와 시리아 북부 및 더 멀리 동쪽까지 히타이트 신왕조가 아울렀다. 가나안 지역에서는 페니키아, 필리스티아(블레셋), 이스라엘이 등장했다. 그리스는 암흑기-고졸기-고전기로 이어졌다. 구세계의 잿더미 위에서 알파벳이 출현했고 다른 발명품들도 쏟아졌다. 철기의 급격한 사용 증가는 물론이다. 이로 인해 새로운 시대의 이름이 철기 시대가 되었다.

 


블랙 아테나

–  마틴 버낼 / 오흥식 역 / 소나무 / 2006.01.10

 

…… 당시, 즉 기원전 13세기 후반과 12세기에 그리스인이 키프로스와 남부 아나톨리아의 팜필리아 및 킬리키아에서 활동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들 가운데 일부가 육로로 건너오지 않을 이유는 없다. 기원전 7세기에 활동한 시인 칼리노스에 따르면, “모프소스(트로이 전쟁의 그리스 영웅)가 이끈 사람은 토로스를 통과했으며, 그들 가운데 일부는 팜필리아에 남았지만 나머지는 킬리키아와 페니키아만큼이나 먼 곳인 시리아로 흩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설명은 일찍이 기원전 12세기에 씌어진 람세스 3세의 비문과 대단히 유사해 보인다.

 

… 그들은 자신들의 섬에서 외국에 대한 음모를 꾸몄다. 한꺼번에 온나라가 동요하더니 제각각 전쟁에 휩싸였다. 하티(중앙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와 코데(킬리키아), 카르케미시(유프라테스 상류), 아르자와, 그리고 알라시아(키프로스), 그 어느 국가도 그들의 무기 앞에 버텨낼 수 없었다. 그 국가들은 고립되었고, 아무르(시리아)에 하나의 진지가 세워졌다. … 그들 동맹은 Prst(페레세트)와 Tkr(체케르), Skls(세케레쉬), Dnn(다난), 그리고 Wss(우셰쉬)였다.

……

‘해상 민족들’의 침입에 비견되는 가장 근접한 사례는 십자군의 침입으로 보인다. 커다란 혼란의 시기에 북쪽 침입자들이 육로와 해로를 통해 밀려들었고, 무리들은 약탈품과 정착할 땅을 찾아 서로 교차했다. 십자군은 주로 로망스어를 사용했지만 서로 다른 방언을 사용하는 국민들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에는 독일인과 영국인도 포함되었다. 해상 민족들 역시 그리스어 사용자와 아나톨리아어 사용자를 포함한  서로 다른 언어 집단으로 구성된 것처럼 보인다. 다른 집단은 대부분 아나톨리아어 사용자들로 구성되었을지 모르지만, 필리스티아인은 거의 대부분 그리스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 (유재원 교수의 그리스 그리스 신화)

–  유재원 / 리수 / 2007.03.28

 

그러나 이렇게 실패를 모르고 뻗어만 가던 미케나이 문명의 몰락은 갑작스러웠다. 기원전 13세기 끝 무렵, 갑자기 방어를 위한 건물들이 세워진 흔적이 나타나고 미케나이와 티린스, 아테네 같은 곳에 포위를 대비한 비밀샘을 파는 등 심상치 않은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그리고 기원전 1200년 직전에 큰 재앙이 닥친 듯하다. 본토의 마을들이 대부분 버려지고 소아시아의 이오니아와 아이올리아 지방과 키프로스 섬의 식민 도시 국가에 갑작스러운 이민들이 들이닥친다. 기원전 1100년에 다시 이런 현상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 뒤로 옛 미케나이 문명의 중심지였던 도시들은 완전히 황폐화되어 다시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다. 이런 갑작스러운 멸망의 원인은 아직도 잘 밝혀지지 않았다. 고대 역사가들은 도리아족의 침입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현대 고고학은 이 시기의 유적에서 특별히 폭력적인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쇠락과 몰락은 시간을 두고 완만하게 진행되었다는 증거들이 더 많이 나온다. 왕위 계승 때문에 빚어진 내란이나 사회 계급 간의 갈등과 폭동, 갑작스러운 페스트의 창궐, 기후 변화와 이에 따른 지속적 가뭄, 지진에 의한 자연 재앙 등 수많은 가설이 이 갑작스러운 종말을 설명하려 하지만 아직까지 딱 부러지게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학설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원전 1100년을 고비로 그리스는 그 후 거의 400년 동안 물질적 · 문화적으로 상당히 낙후된 삶을 살았다는 것뿐이다.

……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1500년쯤 크레타 섬 북동쪽에 있는 테라(산토리니) 섬의 화산 폭발이라는 자연의 대재앙으로 갑작스레 끝나고 미케나이 문명이 그 뒤를 잇는다. 미케나이인들은 그리스에 이주한 최초의 그리스인들로서 기원전 2000년쯤에 북쪽에서부터 지금의 그리스 본토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이 활동하던 시대가 바로 이 미케나이 문명이 한창 꽃피던 시대다. 미케나이 문명과 같은 시기에 아나톨리아 반도에는 히타이트 제국이 번영했었고 이집트에서는 모세가 유대인들을 이끌고 시나이 반도를 방황했다. 이 시대의 끝 무렵인 기원전 1250년쯤에 그리스인들은 아나톨리아 반도 북서쪽에 위치한 트로이아를 공격하여 함락시킨다. 이것이 그 유명한 트로이아 전쟁이다.

그러나 위대한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1100년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끝나고 극도의 혼란기가 시작된다. 몇몇 학자들은 몇 년에 걸친 큰 한발과 이에 따른 흉년으로 굶주리게 된 부족들의 약탈과 침략이 당시의 교통 통로를 마비시키고 이에 따라 청동기 제작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주석의 공급이 끊기면서 찬란했지만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던 청동기 문명이 일거에 무너졌으리라고 추측할 뿐이다. 하여간 청동기 문명의 끝은 갑작스럽고도 폭력적이었다. 바로 이 시기에 그리스에는 발칸 반도 북쪽에서부터 새로운 그리스 부족인 도리아인들이 남하한다. 이 야만인들의 이주는 흔히 폭력적인 파괴와 약탈과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혼란스럽던 사회를 더욱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그전까지 힘겹게 일구어 놓았던 문명도 속절없이 붕괴되었다. 히타이트 제국을 지탱해 주던 ‘쐐기 문자’와 미케나이 시대에 그리스인들이 쓰던 ‘선형 문자B’를 비롯한 청동기 시대의 문자들이 잊혀졌다. 이제 문명은 사라지고 문자를 모르는 호전적인 야만인들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스와 동부 지중해, 그리고 그 주변의 지역은 깊은 암흑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왕을 중심으로 한 궁정 문명이 사라지고 몇몇 소수 귀족들이 다스리는 귀족정이 생겨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흔히 이 시기를 ‘그리스의 중세’, 또는 ‘그리스의 암흑 시대’라고 부른다.

 

암흑 시대에 들어선 지 300년쯤 지난 기원전 800년쯤부터 그리스에는 알파벳을 사용하는 새로운 문명이 싹트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와 같은 작품들이 쓰여졌다. 이 시대 이후 그리스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유대인 이야기

–  홍익희 / 행성B / 2013.01.20

 

미케네 문명이 파괴될 무렵, 에게 해와 근동지역의 청동기시대도 붕괴되고 이웃 문명인 이집트와 히타이트 역시 파괴된다. 이는 당시 인류 최초로 철기시대를 열어 철제무기로 무장한 해양 해적 ‘바다의 사람들’이 맹위를 떨쳤기 때문이다. 바다의 사람들이란 기원전 1400년경에 코카서스 지방에 살다 이동을 시작한 인도유럽어족의 조상인 아리안족의 후예들로 이들의 전면적인 대이동은 막을 길이 없는 인류의 대이동이었다. 에게 해에서 지중해 동남부로 휩쓸며 내려와 기습이 점점 빈번하고 심각해지자 그리스인들은 해안지역을 떠나 좀 더 쉽게 방어할 수 있는 지역을 찾아 떠났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구릉지나 절벽 위를 택한 이유이다.

기원전 1200년경 바다의 사람들은 히타이트의 영토를 유린하고 시리아로 진격해 이집트까지 위협하게 되었다. 그리스 지역에 지적 발전이 멈추자 기원전 1200년부터 3백 년간 ‘암흑시대’가 에게 해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이것이 중국의 역사다

–  홍이 / 정우석 / 애플북스 / 2018.07.20

 

기상학자 주커전(竺可楨)의 연구에 따르면 앙소문화 시기부터 온난한 기후가 시작되어 하나라와 상나라 때까지 지속되다가 주나라 무왕(武王) 연간이 되어서야 끝나고 한랭 시기로 들어섰다. 이때부터 코끼리 같은 열대 동물이 중원에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씨춘추(呂氏春秋)》<고락(古樂)>, 《맹자》<등문공하(滕文公下)>에 모두 주周 무왕이 주(紂)를 멸할 때 ‘호랑이, 표범, 코뿔소, 꼬끼리를 먼 곳으로 내쫓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시기가 코뿔소, 야생 코끼리가 황화 유역에서 사라진 중요한 시기였음을 보여준다.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주효왕(孝王) 시대에 장강, 한수에 얼음이 얼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China: Its Environment and History

–  Robert B. Marks / Rowman&LittlefieldEducation / 2016.01.25

 

중국 상나라 때의 기후는 현재보다 상당히 따뜻하고 습도도 높았다. 아마 화씨 5-8도 정도 더 높았을 것이다. 북중국의 평원에는 비가 지금보다 더 규칙적으로 떨어져 농업에 대한 조건이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갑골문자 일부에는 안양(安陽, 은허) 지역에서 매년 쌀과 기장의 수확이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1100년 전의 상나라 때 그랬듯이 안정적인 기후에 기초한 삶의 방식은 기후의 변화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아직 기후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상나라가 새로운 도읍지 안양(은허)를 건설한 직후 기후가 갑자기 추워지고 건조해졌다. 이는 상나라가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고 이후 기원전 1050년경의주나라에게 멸망되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Abruptly increased climatic aridity and its social impact on the Loess Plateau of China at 3100 a B.P.

– Chun Chang Huang *, Jiangli Pang, Pinghua Li / Journal of Arid Environments Volume 52, Issue 1, September 2002, Pages 87-99

 

기후변화와 역사를 통합한 다학제간(多學際間) 연구가 중국 황하 중류의 황토고원 남쪽에서 수행되었다. 고해상도의 토양 퇴적물 자료는 이 지역에서의 기후가 3100년경 전에 급격한 건조를 보여준다. 그것은 동아시아에서 해양 계절풍 보다 대륙 계절풍의 힘이 세진 것에 기인한다. 현저한 건조로 인해 환경이 심각하게 악화되었고 토지 자원이 파괴되었다. 결과적으로, 북쪽 유목민의 유목 실패와 남쪽 한족의 작물 실패는 유목민의 대규모 남쪽으로의 이주, 상나라의 정치적 수도와 문화 중심 도시들의 해체를 초래했다. 황토고원은 경작 가능한 농경지의 토지 이용은 목축 양식으로 대규모로 대체되었다. 심각한 가뭄과 그로 인한 대규모 기근의 결합은 기원전 1000년경의 상왕조의 사회적 불안정과 궁극적인 붕괴의 근본 원인이었다. 이는 현재의 반건조 지대에서 기원전 1100년경 급격한 기후 변화의 충격이 엄청났다는 것을 암시한다.

 


<관련 그림>

 

 

 

– 그리스 서부에 있는 불카리아 호수의 폴렌 코어(pollen core)에서 추출한 3500년전 ~ 현재까지의 기후 자료

 

 

– 해양민족(Sea peoples)을 묘사한 그림

 

 

– 이집트 왕들의 계곡 근처 메디넷 하부에 그려진 람세스 3세의 해양민족과의 전투

 

 

– Variation in three major climatic regimes—Atlantic (A), Continental (C) and Mediterranean (M)—from 1200 bc to 900 ce (adapted from Crumley 1993).

 

 

– 18,000년 전 부터의 기온변화 (출처:기상청, 기상기술정책 2010년12월 호)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https://en.wikipedia.org/wiki/Late_Bronze_Age_collapse

https://en.wikipedia.org/wiki/Sea_Peoples

https://en.wikisource.org/wiki/1911_Encyclop%C3%A6dia_Britannica/Etruria

위키백과 : 바다 민족

위키백과 : 에트루리아

위키백과 : 필리시테인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 청동기시대

http://etc.ancient.eu/interviews/what-caused-the-bronze-age-collapse/

http://www.unz.com/isteve/did-the-late-bronze-age-collapse-or-was-it-pushed/

https://journals.plos.org/plosone/article?id=10.1371/journal.pone.0071004

http://imra.org.il/story.php3?id=62135

http://blog.daum.net/psi66/197169

https://us-issues.com/2016/06/24/climate-and-human-civilization-for-the-past-4000-years/

https://dailyhistory.org/How_did_climate_change_influence_ancient_Chinese_societies%3F

https://evolutionistx.wordpress.com/2016/05/10/new-frontiers-of-the-bronze-age-collapse-pt-23/

2017-11-26  동지중해 문명이 몰락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017-07-07  ‘바다 사람들’은 정말 사라졌을까

2016-09-16  고대 그리스의 갑작스러운 멸망, 왜?

2016-08-23  현직 외교관이 쓴 韓中 5000년

2014-11-16  아내에게 도끼로 당한 아가멤논의 최후, 이유가…

2011-01-03  [SEA&] 해양노마드 1 / 지중해의 무법자

2009-12-08  지구가 따뜻해지면 중국이 잘산다?

http://cy.cyworld.com/home/58685861/post/

https://www.newscientist.com/article/mg21528761-600-climate-change-the-great-civilisation-destroyer/

청동기 시대의 붕괴 (기원전 1200년경 ~ 1150년)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