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국가명승 (구)제36호로 지정된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 북악산 자락에 숨겨져 있는 조선 시대의 유서 깊은 별서(별장) 유적입니다. ‘백석’은 백악산(북악산)의 다른 이름을 뜻하고, ‘동천’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의미하여, ‘북악산의 아름다운 계곡’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도심과 가까운 곳임에도 불구하고 수려한 자연경관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의 전통 정원 양식과 선비들의 풍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 명승 제36호 /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 2008년 1월 8일 지정 / 서울 종로구 부암동 115번지 등
국가유산청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은 1800년대 도성에 인접하여 조성되었던 별서 관련 유적으로 주변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 건물지(사랑채, 안채 등)와 연못 등이 남아있으며, 인근에"백석동천(白石洞天)"·"월암(月巖)"등의 각자(刻字)바위가 위치하고 있다.
백악산(북악산) 뒷자락에 북한산을 정면으로 자연 경관이 수려한 백사골에 조성된 동천(洞天 :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의 하나로 주변에 흰 돌이 많고 경치가 아름답다고 하여 “백석동천”이라 불린다고 전하며, ‘백석’이란 중국의 명산인 ‘백석산(白石山)’에서 비롯된 것으로 ‘백석산’은 ‘백악산(북악산)’에서 착안된 것으로 풀이 된다.
서울 지역의 별서로서는 김흥근(金興根) 별서인 석파정(石坡亭), 김조순(金祖淳) 별서인 옥호정(玉壺亭), 황윤명의 별서(서울 성북동 별서) 등이 남아 있다.
백석동천은 남북을 중심으로 육각정자와 연못이 있고, 약 3.78m 정도의 높은 대지 위에 사랑채 부분과 안채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현재 사랑채와 정자 등은 건물터에 기초만 남아 있고, 담장과 석축 일부가 남아 있다.
백석동천은 사랑채 등의 건물지와 연못, 각자바위 등이 잘 남아 있고 마을과의 거리감을 확보하고 있는 등 별서의 구성요소를 두루 갖춘 격조 높은 조원(造園)의 면모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개요
- 지정번호: 명승 제36호
- 지정일: 2008년 1월 8일
-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 115번지 일원
- 면적: 약 50,861㎡
- 분류: 자연유산 / 명승 / 역사문화경관
‘백석동천’이라는 이름의 의미
‘동천(洞天)’은 원래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경승지를 뜻하는 말입니다.
‘백석(白石)’은 이 일대에 흰 바위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면서, 동시에 북악산의 옛 이름인 백악(白岳)을 상징하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백악산 아래의 아름다운 별천지’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
백석동천은 19세기 초 조성된 별서(別墅)입니다. 별서는 도심을 벗어난 곳에 지은 별장으로, 선비들이 자연 속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시와 그림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던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는
- 사랑채
- 안채
- 육각정
- 연못
- 담장
- 석축
등이 갖추어져 있었으며, 당시 서울의 대표적인 별서 정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현재는 건물은 사라졌지만 건물터와 연못, 석축 등이 남아 당시의 모습을 짐작하게 합니다.
추사 김정희와의 인연
오랫동안 소유자가 알려지지 않았던 백석동천은 2012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사 결과, 김정희(1786~1856)가 실제 소유했던 별서였다는 사실이 문헌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조선 최고의 서예가이자 실학자인 추사가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학문과 예술 활동을 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발견으로 평가됩니다.
주요 볼거리
① 백석동천 각자바위
가장 유명한 유적으로 바위에 ‘白石洞天(백석동천)’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인근에는 ‘月巖(월암)’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도 있어 당시 별서의 품격을 보여줍니다.
② 연못터
조선 후기 정원 양식을 보여주는 둥근 연못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계곡의 물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여 풍경을 감상하도록 설계한 전통 조경기법을 엿볼 수 있습니다.
③ 육각정 터
연못을 바라보던 육각정의 주춧돌이 남아 있습니다.
이곳은 선비들이 차를 마시고 시를 짓거나 풍경을 감상하던 장소였습니다.
④ 백사실계곡
백석동천을 감싸는 백사실계곡은 서울 도심에서는 보기 드문 자연 생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이 이어져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주며, 도롱뇽과 개구리 등이 서식하는 청정 계곡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문화재적 가치
백석동천은 단순한 계곡이 아니라,
- 조선 후기 서울의 별서 문화
- 전통 정원 조경기법
- 자연과 건축이 조화를 이루는 경관
- 당시 문인들의 풍류와 생활상
을 함께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서울에는 김흥근(金興根) 별서인 석파정, 김조순(金祖淳) 별서인 옥호정, 심상응(沈想應)의 별서로 알려진 성낙원(城樂園) 등 일부 별서가 남아 있지만, 백석동천은 건물터와 정원, 각자바위, 계곡이 함께 남아 있는 희귀한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세검정에서 현통사쪽으로 이동

현통사에서 오른쪽 계단으로 이동하여 백사실 계곡으로 이동



별서터로 이동


별서터에서 바라본 연못터와 연못을 바라보던 육각정의 주춧돌이 보인다.

이제 백석동천 각자바위와 응선사쪽으로 빠져 나온다.

# 관련 자료
명승 서울 부암동 백석동천 (서울 付岩洞 白石洞天) | 국가유산포털 | 국가유산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