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국가》 – 기원전 375년경

플라톤의 《국가》 (Politeia)는 서양 철학사에서 가장 방대하고도 깊은 영향을 미친 고전 중 하나이다. 흔히 ‘이상적인 정치 체제’만을 다룬 책으로 오해받기 쉽지만, 본질적으로는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영혼, 교육, 인식론, 우주관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철학적 건축물이다.

※ 옐로우의 세계사 연표 : https://yellow.kr/yhistory.jsp?center=-375

아테네 민주정치가 쇠퇴기에 접어들며 사회·정치적으로 혼란한 가운데 플라톤은 이상국가에 대한 열망을 키워갔고, 그것이 《국가》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플라톤은 자신이 제안한 이상 국가(철인정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타락해 가는지 5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는 정치 체제의 변화인 동시에,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 영혼의 타락 과정이기도 하다.

1. 철인정치 (Aristocracy): 지혜로운 철인이 다스리는 이상적인 국가.

2. 명예정 (Timocracy): 지혜보다 승부욕과 명예(기개)를 중시하는 전사들이 통치하는 국가.

3. 과두정 (Oligarchy): 부(욕망)를 축적한 소수의 부자들이 권력을 잡는 정체. 빈부격차가 극심해진다.

4. 민주정 (Democracy): 억압받던 민중이 자유를 쟁취하며 도래하는 정체. 플라톤은 이를 모든 욕망이 평등하다는 착각에 빠진 ‘무절제하고 무정부적인 상태’로 보았다. (그의 눈에 아테네 민주주의는 스승을 죽인 중우정치였다.)

5. 참주정 (Tyranny): 민주주의의 극단적 자유가 가져온 혼란 속에서, 대중의 선동가가 권력을 독점하여 독재자(참주)로 변모한 최악의 정체.


플라톤이 《국가》에서 구상한 이상 국가 칼리폴리스(Kallipolis, ‘아름다운 도시’)의 구조와 철학에는 고대 이집트 문명에 대한 그의 깊은 동경과 관찰이 짙게 배어 있다. 플라톤은 실제로 젊은 시절 이집트를 방문해 그곳의 종교, 정치 체제, 수학적 정밀함을 직접 목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경험은 그의 중·후기 대화록 곳곳에 투영되어 있다.

또한 ‘교황 체제’와 구조적·이념적 측면에서 매우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이 크다. 사실상 현대 세계에서 고대 이집트의 신권 정치적 요소와 플라톤이 구상한 철인 정치의 이상이 가장 정교하게 결합하여 살아남은 유일한 제도적 형태가 바로 ‘교황 체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국가》는 지난 2400년 동안 정치학, 철학, 문학, 교육학 등 서양 문명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다양한 논의를 위한 토대를 제공해온 독보적 문헌이다. 20세기의 저명한 철학자 영국의 알프레드 화이트헤드는 “유럽의 철학 전통이 가지고 있는 가장 확실한 특징은 그것이 플라톤 철학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 1000명이 넘는 학자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국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서로 선정되었다. 2021년 조사에 따르면 《국가》는 미국 최고 대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는 책이다.



Gemini


현재의 가톨릭 교황 체제(바티칸의 통치 구조)와 고대 이집트의 신권 정치, 그리고 플라톤의 칼리폴리스를 비교하는 것은 정치 철학과 역사학에서 매우 깊이 있게 다뤄지는 주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구조적·이념적 측면에서 매우 놀라울 정도로 유사성이 큽니다. 사실상 현대 세계에서 고대 이집트의 신권 정치적 요소와 플라톤이 구상한 철인 정치의 이상이 가장 정교하게 결합하여 살아남은 유일한 제도적 형태가 바로 ‘교황 체제’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어떤 점에서 유사의 극치를 달리는지 세 가지 핵심 코드로 분석해 드립니다.

1. ‘지혜와 영적 권위’에 의한 엘리트 독점 통치

플라톤의 칼리폴리스와 이집트는 철저한 엘리트주의 국가였습니다. 칼리폴리스는 선의 이데아를 아는 ‘철학자’가, 이집트는 신의 뜻을 아는 ‘사제와 파라오’가 다스렸습니다.

  • 현대 교황 체제와의 유사성: 가톨릭 교회의 통치 방식은 민주주의가 아닌 신권적 엘리트 정치입니다. 최고의 권력자인 교황은 대중 투표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선발된 최고위 지식인이자 사제인 추기경단(Conclave)의 투표로 선출됩니다.
  • 무오류성(Infallibility): 플라톤의 철인이 절대적 진리인 이데아를 파악하므로 그 통치에 오류가 없다고 가정되듯, 가톨릭에는 교황이 신앙과 도덕에 관해 엄숙하게 선언할 때 오류가 없다는 ‘교황 무오류성’ 교리가 존재합니다. 이는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신성한 권위와 맥을 같이 합니다.

2. 사유재산 금지와 ‘수호자’의 삶 (공산주의적 속성)

플라톤은 칼리폴리스의 통치자와 방위자 계급이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국가를 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유재산 금지, 가족 해체(독신주의)라는 극단적인 규칙을 세웠습니다.

  • 현대 교황 체제와의 유사성: 가톨릭 성직자, 특히 교황을 비롯한 수도자들은 청빈(사유재산 포기)과 정결(독신주의)을 서약합니다.
  • 세속적인 부와 혈연(가족)을 상속하지 않음으로써 오직 신과 교회(국가)라는 절대적 가치에만 헌신하게 만드는 이 구조는, 플라톤이 수호자 계급에게 요구했던 도덕적 자격 요건이 완벽하게 종교적으로 발현된 형태입니다.

3. 영원불변의 질서와 문화적 보수성

이집트 문명은 예술과 법률의 정형을 1만 년 동안 바꾸지 않았고, 플라톤은 이를 본받아 칼리폴리스에서 급격한 법률 개정이나 대중문화의 유입을 엄격히 통제(시인 추방론)했습니다. 체제의 불변성이 곧 정의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 현대 교황 체제와의 유사성: 바티칸과 가톨릭 교회는 인류 역사상 가장 보수적이고 변화가 느린 조직 중 하나입니다.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교리와 라틴어 전례의 틀을 유지해 왔으며,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여성 사제 서품, 낙태, 동성애 문제 등) 속에서도 전통적 교리를 수호하는 방어벽 역할을 합니다.
  • 이는 이집트의 신전이나 플라톤이 꿈꾼 “변하지 않는 이상적 법률의 도시”가 보여준 문화적 보수주의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러나 이 세 체제 사이에는 치명적인 철학적 차이점도 존재합니다. 통치 권위의 ‘원천’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비교 기준고대 이집트 체제플라톤의 칼리폴리스현대 교황 체제
권위의 원천신화와 혈통 (태양신의 아들)인간의 이성 (Reason)과 학습신의 계시 (Revelation)와 믿음
궁극적 목적우주 질서(마아트)의 유지지상에서의 ‘정의(조화)’ 실현인류의 구원과 ‘하느님 나라’의 도래

플라톤은 신화나 믿음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최고의 ‘이성’을 극한으로 훈련시켜 진리를 깨달은 자가 통치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교황 체제는 인간의 이성 위에 존재하는 신의 ‘계시와 믿음’을 최고의 가치로 둡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 선동과 포퓰리즘에 휘둘리기 쉬운 현대 민주주의 세계에서, “세속적 욕망을 절제하고 오랜 교육을 거친 현자가 절대적 가치를 수호하며 공동체를 이끈다”는 고대 이집트와 플라톤의 이상은 오늘날 바티칸이라는 작은 국가 속 교황 체제를 통해 여전히 그 흔적을 선명히 남기고 있습니다.



철학의 책 (The Philosophy Book)

– 윌 버킹엄 외 공저 / 이경희,박유진,이시은 공역 / 지식갤러리 / 2011.06.15 (원서: 1987)


플라톤은 《국가》에서 가치관이나 도덕적 개념들에 관한 명백하고 정확한 정의를 세우기 위해 소크라테스가 그 개념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묘사한다. 소크라테스는 “덕은 곧 지식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이는 예를 들어 정의롭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의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

플라톤에게 있어 철학자의 과제는 이데아적 형상, 즉 이데아를 발견하기 위해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다. 《국가》에서 그는 지배계급이 되어야 하는 사람은 철학자들, 또는 다소 철학자의 소명에 맞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오직 진정한 철학자만이 세상의 정확한 본질과 도덕가치관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수들이 그들의 그림자를 실제 대상이라 여기는 ‘동굴의 비유’에서처럼, 사람들은 대부분 그저 편안하게 느끼는 세상으로만 돌아갈 것이다. 플라톤은 흔히 그의 동료 철학자들에게 철학자의 소명의 진정한 본질을 납득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플라톤은 그야말로 이상적이면서 진정한 철학자의 전형이었다. 그는 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의 추종자들이 이전에 제기했던 윤리학의 문제에 관해 논쟁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지식 자체에 대한 길을 탐구하게 되었다. 플라톤은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형상이론에 대해 근본적으로 일치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이후 플라톤의 사상은, 그의 사상을 교회의 사상과 결합한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해 중세 이슬람과 기독교 사상가들의 철학속으로 흘러들어갔다.

플라톤은 관찰보다는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 지식을 얻는 유일한 길이라고 제안함으로써 17세기 합리주의의 토대를 마련했다. 플라톤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영향력을 느낄 수 있는데, 플라톤이 남긴 넓은 범위의 주제로 인해 20세기 영국의 논리학자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가 그 이후의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사상에 여러 각주를 달아 이루어진 것”이라고 언급했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이언 모리스 / 최파일 역 / 글항아리 / 2013-05-27 (원서: 2011)


어쨌거나 축의 사상에서 그리스의 진정한 공헌은 민주주의자들이 아니라 소크라테스를 필두로 한 민주정의 비판자들로부터 나왔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에 민주정이 필요하지 않으며 민주정이란 모든 것을 외양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무지를 합쳐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그리스에 필요한 것은 자신 같은 사람들, 중요한 단 한 가지 문제-선의 본성-에 관해서 자신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만이 철학적 논증으로 다져진 이성을 통해 선을 이해할 수 있다(과연 누구라도 선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확신하지 못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은 스승이 생각하는 좋은 사회에 대한 두 가지 버전을 내놓았는데 《국가》는 어느 유학자한테도 좋을 만큼 이상적이고 《법률》은 상앙을 흐뭇하게 할 만큼 권위주의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의 제자)도 인간적인 《윤리학》부터 냉정하고 분석적인 《정치학》까지 유사한 영역을 다룬다.



블랙 아테나

– 마틴 버낼 / 오흥식 역 / 소나무 / 2006.01.10 (원서: 1987)


…… 《국가》가 기원전 380년과 370년 사이에 씌어졌고, 《부시리스》가 그보다 앞선 기원전 390년경에 씌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또한 《국가》는 여러 해에 걸친 사색과 가르침의 결과로서 필시 보다 이른 시기의 초고가 있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부시리스》가 시기적으로 앞선다고 보는 편이 옳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리스》와 플라톤의 《국가》 사이에는 놀랄 만한 유사점이 있다. 《국가》에서도 신중한 선발 과정과 엄격한 교육을 통해 견식 있는 수호자들이 양성되고, 그들이 지배하는 신분제를 바탕으로 분업이 이루어진다. 플라톤은 소요를 일삼는 아테네 민주정에 대해 몹시 적대적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국가 모델에서 위안을 찾았음에 틀림없다.

그러한 국가 모델은 어느 정도까지 이집트와 관련될 수 있을까? 이집트적인 성향이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부시리스》와의 유사성은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플라톤의 후기 작품에서 나타나는 주요 관심사가 이집트(플라톤은 아마도 기원전 390년경에 한동안 이집트에 머물렸을 것이다)였음을 알고 있다.

……

《필레보스》와 《에피노미스》에서 플라톤은 토트 신을 문자의 창안자이자 심지어 언어와 모든 학문의 창안자로서 상세히 언급했다. 또한 다른 곳에서는 이집트의 미술과 음악을 칭찬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찬성했다. 사실, 플라톤의 《국가》가 이집트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유일한 근거는, 그가 자신의 글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그가 왜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가를 밝혀주는 고대 자료가 있다. 가장 이른 시기의 플라톤 주석자인 크란토르(Krantor)는 플라톤에서 몇 세대 지나지 않은 시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플라톤의 동시대인은 그가 《국가》를 창안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의 제도를 베꼈을 뿐이라고 말하면서 그를 비웃었다. 그는 사람의 비웃음에 너무 크게 신경 쓴 나머지 이집트인의 입을 빌려 아테네인과 아틀란티스인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내용은, 아테네인이 과거 어느 시점에 실제로 이러한 정체 하에서 살았다는 것이었다.

이집트로부터의 유래를 뒷받침하는 이 모든 증거에 직면했을 때, 초기의 근대 학자들도 여전히 플라톤의 《국가》를 이집트와 관련지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국가의 형성 원리로서의 분업에 관한 한, 플라톤의 《국가》는 단지 이집트 신분제의 아테네적 이상화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 역사를 만나다

– 안광복 / 웅진지식하우스 / 2005


스파르타 인들은 재물에 욕심이 없는 대신 ‘영예로운 인생’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국가로부터 노예들이 가꾸는 토지를 평등하게 분배 받았기에, 그들은 생계를 위한 ‘천한 일’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사생활이 어떤 것인지 모를 뿐더러 원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꿀벌처럼 공동체를 이루어 살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삶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나라, 스파르타. 이러한 스파르타는 탐욕에 가득 찬 시민들이 지극히 이기적인 주장만을 내뱉고 사는 아테네의 지식인들에게 ‘꿈의 나라’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인지 조국 아테네의 쇠락과 부패를 직접 목격한 플라톤이 《국가》에서 그린 이상 사회는 왠지 스파르타의 모습을 닮아 있는 듯하다. ……

……

이 같은 플라톤의 이상 국가론은 지난 2,500여 년 동안 서양 문명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 사실 엘리트 교육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영국의 ‘신사(gentleman) 교육’은 플라톤이 《국가》에서 주장한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욕구를 절제하고 인내력을 기르며, 용기와 명예, 희생 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은 지금도 엘리트 교육의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인류 문명 속에 깊이 드리워진 스파르타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개설철학사

– 中村雄二郞 외 / 우리기획 옮김 / 백산서당 / 1983


이와 같이 선(善)의 이데아를 분명히 본 사람, 즉 사람들 가운데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인 철인(哲人)이 위정자가 되어 국가를 통치할 때, 그는 이 선의 이데아를 밝히며 국가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소위 철인정치가 행해지는 이상국(理想國)은 플라톤에 따르면 각 사람의 능력과 자질에 부응하여 위정자, 방위자(防衛者), 생산자(生産者)라는 세 계급으로 나뉘어짐으로써 구성된다. 그것은 마치 인간에게 머리와 가슴과 배가 있고, 각 기관에 의하여 지혜와 정념과 욕망의 세 기능이 조화적으로 움직여질 때에만 건강이 유지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또 그것은 화음(和音)에서는 고음, 중음, 저음과 같은 것으로 어느 하나가 조화를 깨고 다른 것을 압도할 때 정의(正義)는 파괴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피타고라스와 데모크리투스에게서도 볼 수 있었던 그리스적인 조화의 이상이 보여지나, 정의는 그리스어로 원래 분배를 의미하는 말로서 플라톤의 사상에는 모든 점에서 그리스적 전통이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위 ‘플라톤 공산주의’라고 알려진 것은 이 이상국에서는 생산자에게만 재산의 사유를 인정하고 다른 계급에 대해서는 그들이 이기심 때문에 그 지위를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엄격한 공산제를 제창한 것이었다. 이것을 현존하는 사회주의 사회와 비교하여 보면 몹시 흥미로운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더우기 흥미로운 사실 중의 하나는 플라톤이 이 사상에 의하여 국가를 건설하고 분업적 질서를 혼란시키지 않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스스로 ‘고귀한 거짓말’이라고 부른 일종의 선전에 의존해야만 한다고 말한 점이다. 즉 신은 소수의 철인에게는 금(金)을 섞었고, 방위자의 정신에는 은(銀)을, 생산자의 정신에는 동(銅)과 철(鐵)을 섞어 만들었다는 신화가 그런 것이었다. 이 설화가 얼핏 보면 플라톤의 귀족주의와 우민사상(愚民思想)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플라톤의 생각이 어떤 종류의 정치적 허위의 문제까지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또 그 자신이 이 신화를 거짓말이라고 하는 이상 뒤집어보면 플라톤은 마치 아르키다마스와 같이 “신은 만인을 자유인으로서 풀어 놓았다”고 생각했었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상주의자라고 말해지는 플라톤에게 이와 같은 현실적 수단에 관한 고찰이 있었다는 것은 주의해 보아야 한다.



# 관련 그림

Title page of the oldest complete manuscript: Paris, Bibliothèque Nationale, Gr. 1807 (late 9th century)
Title page of the oldest complete manuscript: Paris, Bibliothèque Nationale, Gr. 1807 (late 9th century)



# 관련 자료

Republic (Plato) – Wikipedia

Plato – Wikipedia

Theory of forms – Wikipedia

Philosopher king – Wikipedia

[안치용의 고전산책] 플라톤을 전체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품은 오해 < 안치용의 프롬나드​ < 기고 < 기사본문 – 르몽드디플로마티크(LeMonde Diplomatique)


플라톤 《국가》 – 기원전 375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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