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5 – 536년의 극단적인 기후 사건

6~7세기는 로마온난기(Roman Climate Optimum)가 끝나고 전세계적으로 기후가 한랭했던 시기이다.  이 시기는 17세기의 소빙기 절정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 고대 후기의 소빙하기 : https://en.wikipedia.org/wiki/Late_Antique_Little_Ice_Age

※ 17세기 위기 – 소빙하기(소빙기) 절정 : http://yellow.kr/blog/?p=939

 

그런데 535~536년에는 대규모 자연재해마저 발생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535년 ~ 536년의 극단적인 기후 현상들은 과거 2000년 내에 북반구에서 발생했던 가장 심각하고 지속된 기후 냉각의 사례들이다. 이 극단적인 기후는 대형 화산의 폭발 또는 혜성이나 소행성의 충돌로 인한 광범위한 대기 먼지 베일(dust veil)에 의하여 발생했다고 판단된다. 그것은 전세계 단위의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날씨, 작물 실패 및 기근등을 초래하였다.

※ Extreme weather events of 535–536 : https://en.wikipedia.org/wiki/Extreme_weather_events_of_535%E2%80%93536

 

미국의 고고학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키즈(David Keys)는 세계 각국의 사료를 조사해서 쓴 저서 ‘대(大)재해(Catastrophe, 2000년)’에서 서기 535, 536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대기가 혼탁해지면서 태양을 가려 큰 기근과 홍수가 나고 전염병이 창궐해 구시대가 몰락하고 새 문명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 그는, 아마 인도네시아의 거대한 화산이 초래한 535년, 536년의 글로벌 기후 대재앙이 고대에서 중세 세계로 변형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말한다. 고대 연대기 작가들은 그 당시의 재난을 기록했는데, 먼지 등으로 가려진 태양으로 초래된 기근, 가뭄, 홍수, 폭풍 및 전염병 등을 말하고 있다. 이 재난으로 그는 황폐화된 고향 땅에서 이동한 아바르, 슬라브, 몽골과 페르시아의 공격으로 비잔틴 제국의 붕괴가 촉발되었고, 6세기에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 문명이 붕괴되고 이슬람이 출현할 수 있는 종교적 종말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또한 멕시코에서는 테오티오아칸의 붕괴를 촉발하였지만 반면에 중국에서는 반세기의 정치적 사회적 혼란에서 통일된 국가로 나아가게 하였단다.

 

데이비드 리버링 루이스의 『신의 용광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유대인들은 유대력으로 4291년, 기독교력으로 531~532년 사이의 어떤 날에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단정했다(필요에 따라 수정을 했다). 유대인들 중 학식있는 사람들은 경고했다. “왕국들이 서로 싸울 때 당신은 메시아의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전쟁, 기근, 전염병이 중동 지역을 휩쓸자 종말론에 대한 확신도 커졌다. 6세기는 후대의 10세기 처럼 천년왕국설의 조짐, 궁극적 기대 등으로 가득 찬 시대였다.

 

당시의 이러한 분위기가 이슬람의 출현 배경 중의 한 요소로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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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 극단적인 기후 사건과 당시의 한랭화와 관련있을 듯한(?)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해 보았다.

◎ 엘살바도로의 일로팡고(Ilopango)에서의 분화(?),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타우 화산, 파푸아뉴기니의 라바울 화산,

◎ 530년 핼리 혜성의 근접

◎ 532년 『삼국사기』와 중국의 『양서』에 “별이 비 오듯이 떨어졌다”는 표현이 있음

◎ 536년 동로마 제국이 비잔틴 대성당(현재는 아야 소피아)을 만들다.

◎ 541~542년 :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유행

◎ 동로마 제국의 쇠락 :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이주

◎ 사산조 페르시아의 말기

◎ 아바르의 쇠퇴 -> 서쪽으로 이동

◎ 인도의 굽타 왕조 멸망

◎ 중국의 혼란

◎ 돌궐의 팽창

◎ 테오티오아칸의 몰락

◎ 고구려의 쇠약

◎ 535년 신라 법흥왕 불교공인 / 536년 신라 법흥왕 23년에 처음으로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 (?)

◎ 538년의 백제 웅진에서 사비로의 천도와 불교의 일본 전래 (?)

 

* yellow의 세계사 연표 : http://yellow.kr/yhistory.jsp?center=536

 

다음과 같이 자료를 찾았다.

 


날씨와 역사

–  랜디 체르베니 / 김정은 역 / 반디출판사 / 2011.05.11

 

536년 무렵에 대단히 기이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대부분 확실하게 알려져 있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특히 지중해 인근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단히 소름끼치는 방식으로 죽었다. 536년 직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관해 내가 허구의 이야기를 지어내는 대신, 토머스 쇼트(Thomas Short) 목사라는 역사가가 1749년에 쓴 『이곳저곳과 이 시대 저 시대의 날씨와 계절과 기상 현상 따위에 관한 연대사(A General Chronological History of the Air, Weather, Seasons, Meteors, etc. in Sundary Places and Different Times』라는 책에서 생생하게 묘사된 내용을 소개하겠다. 쇼트 목사는 로마 시대에 살던 비잔틴 제국의 역사학자 프로코피우스(Procopius)의 글을 읽기 쉽게 바꿔 썼다.

때 : 536년

곳 : 유럽 이탈리아의 로마

 

3월 초하루가 되기 14일 전, 아침부터 숨어 있던 태양이 오후 3시가 될 때까지 보이지 않았다. 이탈리아 땅은 작년부터 농사를 짓지 않고 버려져서 대기근이 찾아왔다. 에밀리아Emilia에 살던 사람들은 땅과 재산을 버리고 피체눔Picenum으로 들어갔고, 심지어 굶어죽은 사람이 5만 명이 넘었다. 굶주린 사람들은 인간성을 내던지고 서로를 죽이고 인육을 먹었다. 배고픔에 제정신이 아닌 어머니는 자신의 어린 아기를 잡아먹었다. 어떤 두 여자는 17명을 죽여서 인육을 먹었다. 밀라노에 살던 한 여자는 자신의 죽은 아들을 먹었다. 사람들은 땅바닥에 엎드려 풀을 뜯어먹었고 배고픔에 쓰러져 죽어갔지만 누구도 묻어주지 않았다. 또, 어떤 이들은 개, 쥐, 고양이는 물론, 가장 더러운 동물까지 닥치지 않고 먹었다.

질병이 거대한 소떼처럼 퍼졌다. 신경은 날카로웠고 몸에는 생기가 하나도 없었다. 뼈에 착 달라붙은 거친 살갗은 가죽처럼 건조해져서 검게 변했다. 사람들은 숯덩이 같았고 얼굴은 아무 표정도 없이 무덤덤했다. 어디서나 사람들이 죽어갔다. 어떤 사람은 굶어죽었고, 어떤 사람은 배가 불러서 죽었다. 너무 굶주렸기 때문에 마음껏 먹을 기회가 와도 음식을 소화할 수 없어서 훨씬 빨리 죽었다.

이런 끔찍한 기근과 역병이 생긴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536년 이후 처음 몇 년 동안 죽은 사람의 수는 30만 명으로 추정된다. 여러 자료로 볼 때, 훗날 유스티니아누스 역병(Justinian Plague)이라고 불린 이 역병은 이집트에서 시작된 그 유명한 흑사병이 지중해를 거쳐 마침내 유럽까지 휩쓴 것으로 보인다. 이후 사태는 훨씬 악화되었다. 이 역병을 시작으로 542~565년까지 수십 년 동안 유럽은 몇 가지 다른 타격을 입었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유럽 전체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수백만 명이 이 역병과 관련해서 목숨을 잃었다.

……

화산학자인 R.B.스토더스(Stothers)는 536년의 역사 기록을 조사해 네 개의 흥미로운 직접 증언을 찾아냈다. 먼저, 스토더스 박사도 앞서 나왔던 쇼트 목사처럼 프로코피우스의 말을 인용했다. “올해 내내 태양은 빛을 냈지만 밝기가 달과 같았고, 일식이 일어난 것 같았다. 예전처럼 태양빛이 깨끗하게 비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터키 콘스탄티노플에 살던 어떤 편년사가는 다음과 같이 썼다. “인딕티오indictio(15년 간격의 징세 주기)의 열네 번째 해를 지나면서 거의 1년 내내 태양빛이 희미해서 과일들이 맺지 못하고 시들었다. 때는 벨리사리우스Belisarius가 가장 명성을 떨칠 때였다.” 콘스탄티노플에 살던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썼다. “그해 3월 24일부터 이듬해 6월 24일까지… 낮에는 태양이, 밤에는 달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콘스탄티노플에 살던 또 다른 사람은 다음과 같이 썼다. “태양은 어두웠고, 그 어둠은 18개월 동안 이어졌다. 날마다 네 시간 정도만 비추었고, 지금도 여전히 희미하다…. 과일은 익지 않았고포도주는 신 포도 같은 맛이 났다.”

이 네 자료가 모두 암시하는 내용은, 뭔지 모를 일이 벌어져 약 14개월 동안 태양빛이 희미해졌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전문 용어로 마른 안개(dry fog)라고 한다. 마른 안개란 물방울보다 작은 먼지 입자가 떠다니는 안개를 말한다. 마른 안개는 삽시간에 발생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

1990년대 이전에 그린란드 얼음 코어를 분석한 결과에서는 536년의 얼음 코어 부분에 황산 농도가 대단히 높다는 징후가 확인되었다. 앞서 토바 초화산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황산 농도가 높다는 것은 화산에 의한 한랭화와 뚜렷한 연관이 있다는 의미다. 결론은 확실해 보였다. 모든 증거로 볼 때, 엄청난 화산 폭발이 일어나 몇 년 동안 기후가 급격히 추워질 정도의 화산재가 공기 중으로 뿜어져 나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몇 년 전에 일어났던 피나투보 화산 폭발이 전 세계 기후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말이다. 한 저명한 과학자는 1984년에 과학 잡지인 『네이처』에 기고한 기사에서, 536년의 마른 안개는 거대한 화산 폭발의 결과라고 정확히 지적했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화산이 폭발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폭발한 화산이 무엇인지 밝히는 사소한 일만 빼면 이 미스터리는 풀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의 소지는 남아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빙하 연구 학자들은 그린란드 얼음 코어 자료를 철저히 재분석했다. 그리고 분석을 마친 후, 얼음 코어에서 나온 화산재의 연대가 536년이 아니라 50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506년은 유스티니아누스 역병과 연관된 심각한 기후 문제의 원인이 되기에는 너무 일렀다. 그린란드 얼음 코어에 대한 후속 연구가 이어지면서 이 분석은 재확인되었다. 결국 1990년대 중반이 되자 얼음 코어 과학자들은 536년에 큰 화산 폭발이 없었다고 명확하게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나이테 분석과 역사 기록 모두 536년 무렵에 정말 뭔가 끔찍하고 큰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는 것을 기억하자. 만약 화산 폭발이 확실히 아니라면, 이 큰일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1980년대 중반, 나이테를 연구하던 베일리는 대격변 비슷한 개념을 내놓았다. 그는 공룡을 멸종시킨 것보다는 규모가 작은 혜성이나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그의 추측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대격변을 이용한 설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증명하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한두 번 밖에 일어나지 않는 사건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에 비해 일치하는 증거를 찾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

천문학자들은 모형을 활용한 연구를 통해, 536년 수준의 기온 하강을 일으킬 만한 양의 먼지를 형성하려면 혜성의 크기가 600미터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축구장 여섯 개보다 약간 더 큰 크기다. 또 확률로 따졌을 때, 이 정도 크기의 혜성이 지구에 떨어질 확률은 수천 년에 한 번꼴이라고 한다. 확실히 역사 시대의 범위 안에 들어간다.

536년의 끔찍한 날씨와 그 후 이어진 기근과 질병의 원인은 혜성이었을까? 확실한 답을 내놓기에 앞서, 기후 과학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끊임없이 새롭게 고쳐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어제까지 믿었던 것이 내일의 관점에서는 아닐 수도 있다.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그 사건에 대한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 미스터리의 경우에는 2008년에 그린란드 얼음 코어가 새롭게 분석되면서, 베일리는 혜성의 충돌로 536년의 태양빛 약화가 일어났다는 학설을 포기하게 되었다. 얼음 코어 과학자들은 새로운 그린란드 얼음 코어 자료를 면밀히 분석해 534년의 얼음 코어 기록에서 거대한 화산 폭발이 있었다는 징후를 찾아냈다. 특히 지구 냉각을 일으키는 결정적 원소인 황의 농도가 대단히 높았다는 것이 얼음 코어 분석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534년에 태양빛이 흐려질 정도로 규모가 크고 고농도의 황을 포함한 화산 폭발이 일어나 ‘지구 밖의 천체를 끌어들여 설명할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다.

여전히 바뀌고는 있지만 우리에게는 흥미로운 증거들이 무수히 많다. 536년 무렵에 뭔가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단기간 동안(약 10년 정도) 추위가 이어졌다는 증거가 나이테와 역사 기록에 남아 있다. 일부 과학자들은 희귀한 현상, 이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작은 혜성의 충돌 따위로 이 사건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얼음 코어 기록을 재분석하자, 이 사건이 설명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풍부한 황을 포함하는 화산 폭발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다시 대두되었다. 이 순간 어떤 학설이 더 호응을 얻고 있는지에 관계없이, 새로운 과학적 증거는 계속 밝혀질 것이고 이 논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  브라이언 페이건 / 남경태 역 / 예지 / 2007.08.25

 

6세기에 추이대가 이동한 것은 대규모 자연재해와 시기를 같이했다. 535년에 일어난 대규모 화산 폭발은 유럽, 서남아시아, 중국에 역사상 가장 심하고 가장 오래 지속된 건무(乾霧)를 가져왔다. 전년도의 수확물을 다 소비한 뒤에는 기근, 굶주림, 전염병이 덮쳤다. 역사가 프로코피우스는 카르타고에서 이렇게 썼다. “1년 내내 태양은 마치 달처럼 희미한 빛을 발할 뿐 열기를 주지 않았다. 일식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태양에서 빛줄기라는 것을 도통 볼 수 없었다.” 메소포타미아에 눈이 내렸다. 이탈리아와 이라크 남부에서 흉작이 잇달았고, 브리타니아의 날씨는 그 세기에 최악이었다. 중국은 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하늘에서 노란 먼지가 눈처럼 쏟아졌다.” 눈은 8월에도 내려 농작물을 망쳤다. 스칸디나비아와 서유럽의 나이테는 536~545년에 나무의 성장이 갑자기 느려진 것을 보여주며, 북아메리카 서부에서도 536년과 542/3년에 가뭄이 기록되었다. 안데스 산지의 얼음층은 페루 북부 해안의 모체 문명권도 심각한 건조화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535/6년의 사태는 지난 2천 년 동안 가장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였다. 그것은 아마 1816년 탐보라 화산 폭발보다 더 큰 강도의 화산 폭발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린란드와 남극의 얼음층에는 6세기에 화산 폭발로 발생한 황산층이 남아 있는데, 화산이 폭발한 뒤에도 오랫동안 그 후유증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황산층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연대가 정확하지는 않다. 황산이 발생하는 경우는 대규모 화산 폭발로 수백만 톤의 미세한 화산재가 대기 중에 방출되었을 때-헤클라나 탐보라 화산처럼-혹은 일부 과학자들이 생각하듯이 혜성이 바다로 떨어지거나 지구가 성간가스층을 통과할 때뿐이다. 현재의 과학적 견해로는 대규모 화산 폭발설이 우세하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내지 못했다. 화산 폭발의 후보지는 멕시코의 치아파스에 있는 엘치촌 화산이다. 또 다른 후보는 태평양과 동남아시아, 즉 사모아와 수마트라 사이에 기다랗게 이어진 화산지대의 어느 곳이다.

갑작스런 추위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유럽과 유라시아에서 나무의 성장이 크게 느려진 증거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기온이 낮아진 것은 그린란드 일대에 고기압이 형성되고 대서양 한복판 아조레스 제도에 저기압이 발달한 시기와 일치한다. 그 때문에 편서풍이 느려졌고 유럽이 건조해졌다. 그 결과로 유라시아 깊은 곳까지 광범위한 가뭄이 발생했다.

심한 가뭄은 536~538년에 북중국을 공격하고, 몽골과 시베리아로 번졌다. 이 지역의 나이테는 그 무렵에 지난 1500년 동안 보기드문 추위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기후의 문화사

–  볼프강 베링어 / 안병옥, 이은선 역 / 공감IN / 2010.09.10

 

로마 비잔티움의 역사가 프로코피우스(Procopius of Caesarea, 500~562)는, 유스티아누스 황제(482~565, 재위 527~565)의 통치년 10년째에 태양빛이 일 년 내내 어두웠으며 태양이 마치 달처럼 보이기도 했다고 썼다. 콘스탄티노플의 역사가 리두스(Lydus)는, 벨리사리우스(Belisarius) 장군의 명성의 최고조에 달했던 해에 태양이 계속 흐린 상태로 있었고 농작물의 생장은 비정상적이었다고 기록했다. 자카리아스(Zacharias of Mytilene)가 썼던 기록도 있다. 이 기록에는 536년 3월 24일부터 다음해 6월 24일까지 태양이 어두운 색깔을 띠고 밤에는 달빛이 어두워졌다는 언급이 나온다. 에페소스의 요한(John of Ephesus)은, 소아시아에서 어두운 상태가 18개월 동안 지속되었으며 태양은 낮에 최대 4시간 정도만 볼 수 있었다고라고 기록했다. 여기에는 과일이 잘 익지 않고 포도주가 시게 된 것도 이러한 비정상적인 현상 때문이었다는 설명까지 곁들여진다. 요한은 자신이 서술한 교회사에서 536~537년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으며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엄청난 양의 눈이 내렸다고 썼다. 이처럼 당시의 근동과 유럽은 매우 특이한 기후조건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기록들은 화산학자들로 하여금 기후아카이브에서 그 원인을 찾게끔 동기를 부여했다. 실제로 그린란드의 빙심들은 강한 산성반응을 나타낸다. 이 반응은 두 개의 시추에서 각각 540년(+,- 10년)과 535년쯤에 화산폭발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주변 지역에서는 화산낙진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린란드 빙심의 산성반응은 프로콥(Prokop) 화산의 분출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리처드 스토더스(Richard B. Stothers)는 기묘한 안개의 원인이 파푸아뉴기니의 화산 라바울(Rabaul)의 폭발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현지에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을 적용한 결과, 이 화산은 540년경(+,- 90년)에 폭발했으며 이 때와 가까운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어떤 화산분출도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만일 라바울 화산폭발에 의해 화산재 구름과 에어로졸이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의 경우와 유사한 수준으로 확산되었다면, 이 화산은 536년 3월 초에 분출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린란드 얼음 속에서 라바울 화산폭발과 연관되어 관찰된 산성반응이 1815년에 있었던 탐보라 화산폭발에 비해 2배가량 강하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화산폭발의 영향도 그만큼 더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530년대 후반의 기근들과 유스티아누스 시대의 흑사병은, 이렇듯 화산폭발로 하늘이 암흑으로 변했던 당시의 상황과 관련있음이 분명하다.

 


신의 용광로

– 데이비드 리버링 루이스 / 이종인 역 / 책과함께 / 2010.04.23

 

현대의 한 권위있는 학자가 말한 것처럼, “이슬람은 메카의 상업적 번영에서 불거진 문제들에 대한 답변으로 발전했다”라고 하면 지나친 단순화가 되겠지만, 그 안에는 상당한 진실이 들어있다. 사회계층 사이에 생긴 균열은 하지즈와 다른 지역(가령 야트리브와 타이프)의 상당수 카라반 도시들에 심각한 불안정을 가져왔다. 또한 메카의 사회적 불안정도 6세기 말에 이르러서는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전례없는 상업적 번영은 일상적인 가난을 더욱 잔인하고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번영과 가난은 역사적으로 전쟁과 참사를 일으키는 특별메뉴였다. 그리하여 6세기에는 ‘세상의 종말’이라는 습속이 널리 퍼졌다. 설교자들(하니프)과 예언자들(카힌)이 아랍인들 사이에서 번성했다. 유대인들은 유대력으로 4291년, 기독교력으로 531~532년 사이의 어떤 날에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단정했다(필요에 따라 수정을 했다). 유대인들 중 학식있는 사람들은 경고했다. “왕국들이 서로 싸울 때 당신은 메시아의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전쟁, 기근, 전염병이 중동 지역을 휩쓸자 종말론에 대한 확신도 커졌다. 6세기는 후대의 10세기 처럼 천년왕국설의 조짐, 궁극적 기대 등으로 가득 찬 시대였다.

 


지구의 물음에 과학이 답하다

–  악셀 보야노프스키 / 송명희 역 / 이랑 / 2013.02.05

 

한창 꽃피우던 로마문화는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불안과 두려움, 미신과 무지가 시대를 지배했다. 4세기가 지나면서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고 날씨가 추워지고 빙하가 늘어났다.

536년부터 546년까지 유럽은 최대 위기를 겪었다. 여름 기온이 기록적으로 떨어진 것이다. 울프 뷘트겐은 “우리가 작성한 데이타를 보면 이 시기는 매우 우울한 10년이었다”라고 보고한다. 차가운 바람과 우중충한 날씨는 경작지를 황폐하게 만들었다. 536년에는 오랫동안 하늘이 어둡고 붉은 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지중해조차도 차가웠다. ‘536년의 불가사의한 구름’이 기록에 등장하기도 한다. 당대 역사학자인 프로코피우스(Procopius)는 “일년 내내 태양이 달빛만큼 희미하게 비추었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불행은 전쟁도 전염병도 아닌, 창백한 태양이었다”라고 썼다. 정오에도 그림자가 지지 않는 창백한 태양이 일년 내내 하늘에 떳다고 한다.

학자들은 중세 초기의 이러한 기후 재앙은 그 시대에 세계적인 정책 변화를 일으켰다고 말하다. 인도네시아와 페르시아, 그리고 남미의 고도 문화가 스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도시가 몰락하고 536년 비잔틴제국에서 반달리즘(Vandalismus, 다른 문화나 종교 예술 등에 대한 무지로 그것들을 파괴하는 행위)이 시작되었다. 뉴욕 컬럼비아 대학의 지질학 교수인 댈러스 애봇Dallas Abbot과 엘파소 텍사스 대학의 크리스티나 섭트Cristina Subt는 오스트레일리아의 해변에서 당시 해가 뜨지 않았던 냉각의 원인을 찾아냈다. 그들은 그곳에서 약 600미터 두께의 운석 분화구를 발견했다.

그들은 운석의 충격으로 불가사의한 구름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퀸스 대학Queen’s University of Belfast의 해양학 교수인 마이크 베일리Mike Baillie는 두 가지 자연 재해가 있었다고 분석한다. 운석에 의한 커다란 화산 폭발이 그중 하나였다. 그로 인해 10년 동안 세상이 짙은 안개에 뒤덮였다는 것이다. 현대에도 이러한 재앙이 반복된다면 세계 핵전쟁과 유사한 결과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지구과학 산책

–  반기성 / 네이버 지식백과 / 2017.11.03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4347799&cid=58947&categoryId=58981

 

“마을은 황폐해진 모습으로 신음하고 있었고, 사방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 묻어줄 사람 하나 없는 시체들은 쩍 갈라져 길거리에 방치된 채 썩어갔다. 그 어디를 돌아봐도 온통 썩어 들어가고 있는 시체들뿐이었다.”

에페수스의 존이 기록한 이 끔찍한 상황은 서기 541년에 발생한 전염병인 선(線)페스트로부터 시작되었다. 선페스트는 흑사병(黑死病)이라고도 불린다. 이때 발생한 흑사병이 역사를 바꾸는 원인이 되었다. 흑사병으로 영국 본토에서 벌어졌던 켈트족과 앵글로색슨족의 전쟁이 끝나고 영국 전역을 장악했던 켈트 문명이 몰락한 것이다.

현재 영국의 브리튼에 살았던 원주민은 켈트족이었다. 켈트족은 449년 영국 본토를 침략해온 앵글로색슨족 때문에 서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몇십 년에 걸친 앵글로색슨족의 공격에 켈트족은 산악지역인 서쪽의 웨일스와 북쪽의 스코틀랜드로 밀려났다. 물자가 부족했던 켈트족은 살아남기 위해 프랑스와 스페인, 지중해 사람들을 교역 상대로 택했다. 그런데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었다.

서기 540년에 흑사병은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의 주민 중 40%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동로마제국의 멸망은 선페스트가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흑사병의 강도는 점차 약해졌지만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어 오랫동안 영향을 주면서 켈트족에게 치명타를 안겼다. 콘스탄티노플을 폐허로 만들고 서북진하던 흑사병이 교역로를 따라 영국의 웨일스와 스코틀랜드에 상륙한 것이다.

……

 

켈트 문명을 몰락시킴으로써 대영제국을 이루게 했던 흑사병의 유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날씨였다. 535~536년에 역사상 가장 큰 자연재해 중 하나가 일어났다. 역사가이자 주교였던 에페수스의 존은 무려 18개월 동안 계속해서 태양이 어두워진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일식은 매일 몇 시간 동안 나타났다. 그런데 그 빛은 마치 창백한 그림자 같았다.”

많은 기록에 의하면 이 당시 태양이 창백한 그림자처럼 비쳤고, 때로는 흐리고 어두웠으며, 때로는 달처럼 어슴푸레했고, 햇볕의 따뜻함까지도 약해졌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화산 폭발이나 혹은 소행성과의 충돌로 인해 대기 상공에 엄청난 먼지층이 존재할 때 나타난다. 그리고 강력한 기상재해가 발생하는 특징을 보인다.

 

고기후의 기록에 의하면 이 재해로 동아프리카에서는 극심한 가뭄이 발생했다. 농작물이 말라죽으면서, 곡식의 낟알을 먹고 살던 쥐들이 죽어갔다. 다음으로 그러한 설치류를 먹고 살던 조금 더 큰 동물들이 죽었다. 그러나 기상의 급격한 변화로 가뭄이 끝나고 많은 양의 비가 내리면서 식물들이 급속도로 자라기 시작했다. 성장과 번식이 빠른 쥐는 금방 개체수를 회복했다.

그러나 쥐를 먹고 사는 조그만 육식동물들이 개체수를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쥐들의 포식자가 서서히 개체수를 늘려가는 사이 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최적의 환경에서 동아프리카의 쥐는 한 쌍이 1년에 1,000마리의 새끼를 낳을 수 있다. 결국 아주 짧은 기간에 동아프리카는 쥐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쥐는 전염병균에 대한 면역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쥐의 몸에 기생하는 벼룩은 면역성이 없었다. 전염병에 감염된 쥐의 피를 빤 벼룩들이 병에 걸리면서 무차별적으로 다른 동물의 피를 빨았다.

흑사병을 전달하는 벼룩은 기온이 20~32℃ 범위로 온난할 때 급속히 번식한다. 또한 벼룩의 수명은 상대습도가 30% 이하일 때가 90% 이상일 때에 비해 1/4로 감소한다.

즉 기온이 높고 습도가 높을수록 흑사병을 옮기는 벼룩은 더 맹위를 떨친다. 당시의 기후는 벼룩이 급속히 번식하고 맹위를 떨칠 수 있는 조건이었다. 대가뭄과 열파, 그리고 간헐적인 대규모 폭풍이 지배하는 날씨를 보인 것이다.

쥐의 벼룩이 다른 동물의 피를 빠는 과정을 통해 무역선의 화물칸에 살고 있던 곰쥐에게 전염병이 퍼졌다. 곰쥐들은 무역선을 타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상륙했고 흑사병이 켈트족 기사들을 쓰러트렸다. 켈트 문명을 몰락하게 만든 원인은 기후였던 것이다.

 


동로마 제국의 몰락과 아랍 제국의 성장이 기후 변화와 연관있다?

http://phys.org/news/2016-02-ice-age-coincides-fall-eastern.html

 

기후 변화는 현재도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전적으로 농업과 목축에 의존해서 살았던 근대 이전에는 인류 문명에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잉여 농산물도 많지 않았고 지금처럼 발달된 농업 기술도 없었던 시절이라 사실 기후 변화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기후를 연구하는 국제 과학 연구인 international Past Global Changes (PAGES) 프로젝트의 과학자들은 1500년 전의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기후 변화를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이 시기 발생한 기온 하강이 화산 폭발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당시 기후 변화는 후기 앤티크 소빙하기(“Late Antique Little Ice Age”)라고 불리는데 기원후 536년, 540년, 547년 있었던 대규모 화산 폭발의 결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소빙하기가 진행된 시기는 짧았지만, 이 시기에 발생한 기온 하강으로 인해 당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치하에서 세력을 크게 확장한 동로마 제국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연구의 주저자인 스위스 연방 연구소의 울프 뷔트겐 (Ulf Büntgen from the Swiss Federal Research Institute)에 의하면 이 기후변화는 2000년간 가장 극적인 변화였다고 합니다.

 

이 당시의 기온 하강으로 인해 기근이 발생했고 이는 동로마 제국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특히 당시 기록을 보면 기근 후 찾아온 전염병이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는데, 이는 굶주림으로 면역이 약해진 사람들에게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실제로 당시 기록에는 북아프리카 지역을 비롯해서 여러 지역에서 기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영토를 크게 팽창했지만, 결국 동로마 제국은 내부적으로는 매우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다음세기에 발생한 아랍 제국의 팽창에 중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물론 동로마 제국의 영토 상실과 아랍 제국의 팽창을 이것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동로마 제국 내부의 종교적 분열과 정치적 갈등 역시 붕괴의 중요한 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고기후를 복원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제 우리는 실제로 기근이 발생할수 있는 조건이었고 이것이 동로마 제국의 쇠락을 일으킨 중요한 이유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를 변화시킨 힘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는데 중요할 것입니다.

 


Eruption of El Salvador’s Ilopango explains A.D. 536 cooling

–  http://www.earthmagazine.org/article/aag-eruption-el-salvador%E2%80%99s-ilopango-explains-ad-536-cooling / 2012.2.25

 

 

2

엘살바도르의 수도인 산살바도르 근처에 있는호수 일로팡고(Ilopango)는 보트, 다이빙, 그리고 칼데라 호수를 둘러싼 바위투성이의, 경치가 좋은 100 미터 높이 절벽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1500 년 전, 그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무서웠던 자연 재해의 장소였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텍사스 대학교 Robert A. Dull 박사의 보고에 따르면, 오랫동안 찾았던 서기 535-536년의 극단적인 기후 냉각 및 작물 흉작의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

 


AD 536년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http://www.injournal.net/sub_read.html?uid=19224&section=section10&section2=

 

20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중세시대 지구재난사를 보도하며 “기원후 536년을 기점으로 최악의 기상이변으로 당시 인류가 큰 변화를 겪었다”며, “기원전뿐 아니라 기원후에도 역사상 최악의 대재난이 존재했다”고 보도했다.

 

슈피겔은 또 “기원후 536년 이후로 당시 지구촌은 유성충돌과 화산폭발에 이은 대규모 기상이변으로 인해 기후가 크게 변했다”고 서술했다. “여름은 기근으로 겨울은 폭설로 식량생산 차체가 안되게 됐다”고 밝혔다.

 

물론 조심스럽게 개진된 주장중에는 “536년 오세아니아일대를 암흑으로 만들어낸 유성충돌 사건 이전에 태양폭풍으로 지구 자전력이 감소하고 이로인한 지구재난이 먼저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위 기사를 토대로 당시 동서양 역사를 살펴보면 536년 전후로 지구 곳곳에 기상악화로인한 폐해가 극심했음을 알 수 있다. 536년 전후 서양의 경우 기상이변으로 매년 기근과 폭설로 서로마제국이 무너졌고, 특히 535년부터 37년까지 3년동안 아가피토1세와 실베리오가 1년밖에 재임하지 못했다. 반대로 비잔티움제국(동로마제국)은 유스티아누스황제의 영향력이 확대된 시기다.

 

식량부족으로 인한 민란과 이재민 유입이 당시 서로마와 동로마제국 사이의 주된 갈등원이었다. 또 당시는 유럽내 수많은 사람들이 어린 자식들을 수도원에 맡기는 진풍경이 시작된 때다.

 

중국은 위진남북조시대 말기였으며, 역시 매년 기근과 홍수가 전역을 뒤덮으며 식량난이 각 영주들의 심각한 위기로 등장한 시기다. 그 때부터 돌궐 같은 국가에서 일부 정신나간 귀족들이 즐기던 인육요리가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송나라에 이르러 인육만두로 둔갑한다.

 

종합해보면, 유럽은 536년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통제력이 강화된 시기이자 중세 암흑기가 시작된 때다. 당시 중국도 사람고기가 흔했던 역사상 최악의 시대였던 위진남북조가 무너지고 결국 6세기 말엽에 이르러 수나라가 열렸다.

 


기후는 역사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http://news.joins.com/article/22182550

기후는 신념도 좌우한다. 이슬람교가 아라비아반도를 지배한 배경엔 기후가 있다. 서기 300년~525년 아랍 지역은 힘야르족이 지배했다. 하지만 520년~537년 이곳에 극심한 가뭄이 든다. 가뭄으로 힘야르족 지배력이 약화하자 비잔틴제국·사산제국 등 기독교 세력이 이곳을 침략한다. 기독교에 맞서기 위해 아랍 지역에서 이슬람교가 널리 확산했다고 도미닉 플라이트만 영국 리딩대 고기후학·고고학과 교수는 말한다.
그는 “호티동굴에서 자라는 석순의 과거 유효 수분을 조사해 가뭄을 증명했다”며 “아랍권에서 이슬람교가 자리 잡은 결정적 요인은 6세기 가뭄”이라고 말했다.

 


1천500년 전 기근, 핼리 혜성과 관련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01&aid=0006666056

 

서기 536년에 핼리 혜성의 커다란 파편이 지구에 떨어져 대기 중에 엄청난 먼지가 일어나 기온이 크게 떨어졌으며 이에 따라 가뭄과 기근이 전 세계를 휩쓸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라이브사이언스 닷컴이 2013년12월23일(현지시간) 최신 연구를 인용 보도했다.

학자들은 이 기근 때문에 많은 사람이 유럽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전염병 창궐 사건인 A.D.541~542년의 ‘유스티아누스 역병’에 취약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스티아누스 역병은 비잔틴 제국을 휩쓸면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 과학자들은 서기 533~540년 사이에 퇴적된 그린란드의 얼음을 분석한 결과 7년 동안 대기 중에 많은 먼지가 떠 있었고 이 먼지가 모두 지구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미국 지구물리학연맹(AGU) 연례회의에서 발표했다.

……

 


삼국사기 제26권 백제본기 제4(三國史記 卷第二十六 百濟本紀 第四) – 성왕

10년(서기 532) 가을 7월, 갑진일에 별이 비오듯 떨어졌다.
十年 秋七月甲辰 星隕如雨

 

 

삼국사기 제19권 고구려본기 제7(三國史記 卷第十九 高句麗本紀 第七) – 안원왕

5년(서기 535) 봄 2월,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여름 5월, 남쪽 지방에 홍수가 나서 가옥이 유실되었다. 2백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겨울 10월, 지진이 났다.
12월, 우레가 치고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五年 春二月 遣使入梁朝貢 夏五月 國南大水 漂沒民屋 死者二百餘人 冬十月 地震 十二月 雷 大疫

 

6년(서기 536), 봄과 여름에 큰 가뭄이 들었다. 사신을 보내어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가을 8월, 메뚜기떼가 나타났다. 동위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六年 春夏 大旱 發使撫恤饑民 秋八月 蝗 遣使入東魏朝貢

 

7년(서기 537) 봄 3월, 백성들이 굶주렸다. 임금이 두루 살피고 돌아다니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구제하였다.
겨울 12월, 동위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七年 春三月 民饑 王巡撫賑救 冬十二月 遣使入東魏朝貢

– 1 : 경주의 동쪽 명활산 꼭대기에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둘레 약 6㎞의 신라 산성이다. 성을 쌓은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신라 실성왕 4년(405)에 왜병이 명활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보이므로 그 이전에 만들어진 성임을 알 수 있다.

 

 

※ 일본서기 권 제18 – 센카천황 (536~539년)

536년 여름 5월 신축삭(1일)에 “먹는 것은 천하의 근본이다. 황금 만 관이 있더라도 배고픔을 낫게 할 수 없다. 백옥이 천 상자가 있더라도 어찌 추위를 막을 수 있겠는가.

三十二年 秋七月 王欲襲新羅 親帥步騎五十 夜至狗川 新羅伏兵發與戰 爲亂兵所害薨 諡曰聖

 


<관련 그림>

 

 

3

– 핼리 혜성의 공포, 1456년

 

 

4

– Average of the high-frequency components of 7 northern European tree ring reconstructions from Larsen et al, 2008. The filtering ensures that uncertainties in long term trends (which are not important in this context) don’t confuse the issue.

 

 

newlittleice

– Summer temperatures were reconstructed from tree rings in the Russian Altai (red) and the European Alps (blue). Horizontal bars, shadings and stars refer to major plague outbreaks, rising and falling empires, large-scale human migrations, and political turmoil. Credit: Past Global Changes International Project Office

 

 

5

– 로마온난기(Roman Climate Optimum)이 끝나고 한랭기가 엄습했을 떄, 이 자연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6

– 라베나Ravenna 산 비탈레San Vitale 성당의 모자이크에서의 푸른 태양이 이 기후 사건과 관련있다는 주장이 있다.

https://malagabay.wordpress.com/2016/05/01/justinians-raging-bulls/

 


<관련자료 및 참고자료>

 

http://en.wikipedia.org/wiki/David_Keys_(author)

위키백과 : 라바울

위키백과 : 크라카타우 산

2013-04-05  Scientist says volcanic eruption behind ‘perfect storm’ that kicked off Dark Ages

The Great Year of Darkness and the Rise of Islam

New Light on the Black Death: The Cosmic Connection

2018-11-20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해는 ‘서기 536년’

2011-03-09  백두산이 곧 폭발한다고?

2005-06-10  후기 고분시대를 전개한 백제사람들 이주 물결의 ‘타이밍’

http://cosmictusk.com/6th-century-wasteland-secret-volcano-or-cosmic-interaction/

http://www.realclimate.org/index.php/archives/2008/03/536-ad-and-all-that/

http://onlinelibrary.wiley.com/doi/10.1029/2007GL032450/full

http://www.ancient-origins.net/unexplained-phenomena/why-global-climatic-cataclysm-sixth-century-virtually-unheard-001360

535 – 536년의 극단적인 기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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