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나와 네이트

그리스인들은 아테나(Athena)를 이집트 신인 네이트(Neith)와 같다고 보았다.

 

* 그리스 신화와 이집트 신화 – 신들의 비교 : http://yellow.kr/blog/?p=1262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나일강 삼각주 서부에 있는 사이스(Sais)의 이집트인들이 네이트를 숭배하고 아테나와 동일시하고 있다고 적고있다. 또한 플라톤의 저작 『티마이오스Timaeus』에서도 군신軍神이며 직조의 여신이라는 공통점으로 네이트와 아테나을 동일시하고 있다.

“In the Delta of Egypt,” said Critias, “where, at its head, the stream of the Nile parts in two, there is a certain district called the Saitic. The chief city in this district is Sais—the home of King Amasis,—the founder of which, they say, is a goddess whose Egyptian name is Neith, and in Greek, as they assert, Athena. These people profess to be great lovers of Athens and in a measure akin to our people here. And Solon said that when he travelled there he was held in great esteem amongst them; moreover, when he was questioning such of their priests

 

1

-네이트 / 머리에 전사의 상징인 교차한 화살과 방패가 있다.

 

2

-아테나 / 독일 베를린 Antikenmuseen / BC 525

 

플루타르코스(Plutarch)는 네이트를 이시스와도 동일시하였는데(Cf. Hdt. ii. 28.), 사이스의 네이트 신전의 경구(警句) 중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전한다.(이시스 여신에서도 많이 인용됨)

“나는 지금 존재하는 동시에 과거에 존재했고, 또한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이니, 그 어떤 인간도 나의 베일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I am all that has been and is and shall be; and no mortal has ever lifted my mantle.)”

디오도로스Diodöros Sikulos(5.58), 파우사니아스Pausanias(2.36.8, 9.12.2)도 아테나를 네이트와 동일시하였다.

 

전쟁과 사냥의 여신인 네이트(Neith,Nit,Net,Neit)는 이집트 신화에서 가장 오래된 신들 중 하나이다. 고대로부터 나일강 삼각주 서부에 있는 사이스(Sais, 이집트 이름은 Zau)의 수호신이었고 이집트 남부의 에스나(Esna, 이집트 이름은 이우니트 또는 타세네트, 그리스 이름은 라토폴리스)도 네이트 숭배의 중심지였다.

사이스에 있는 그녀의 신전(神殿)에는 의술학교와 ‘생명의 집’이 함께 있었다고 한다. 보통 머리에 관을 쓴 채 손에 활과 화살을 든 여성의 모습으로 표현되며, 후대로 가면서 베틀의 북이 그녀를 상징하는 표의문자가 되었다. 때로는 방패를 꿰뚫고 날아가는 두 개의 엇갈린 화살로 표현되기도 한다.

 

처녀 신이자 스스로 태어난 여신인 네이트의 상징은 다양한데 전쟁의 여신, 사냥의 여신, 직조의 여신, 지혜의 여신, 창조의 여신, 위대한 어머니 신 등이 있다. 또한 오시리스(Osiris) 신앙 안에 수용되면서부터는 이시스(Isis)와 혼동되어 사자(死者)들의 보호 여신이 되었다. 죽음과 재생의 신으로 네이트에 부활 신앙이 있었다는 증거도 있다.

조화의 신 세베크(Sebek)의 어머니이고, 하늘의 여신 누트(Nut)나 사랑의 여신 하토르(Hathor)와 마찬가지로 하늘의 여신이라 하여 일반적으로 신들의 어머니, 최초의 신, 특히 태양의 신 라(Ra)의 어머니로 여겨졌다.

 

오시리스 신화에서는 호루스와 세트의 분쟁을 중재하였는데, 호루스에게 이집트의 왕권을 주고 세트에게는 위로의 차원으로 2명의 셈계 여신을 주자는 안이었고 세트를 제외한 모든 신은 이에 동의하였다.

 

여신의 핵심적 특징은 소의 신, 창조력을 지닌 암소(아헤트Ahet)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암소는 거대한 홍수 또는 늪지, 원시의 물인 메헤트 웨레트(Mht Wrt,거대한 습지)에 연계되어 있다.

여신 이시스 · 네프티스 · 셀케트와 함께 네이트는 특별히 죽은 자를 보호하는 신이었다.

 

관련 형용어들은 :

“mistress of the bow“, “ruler of arrows“, “the great cow“, “the nurse of crocodiles“, “mistress of Mendes“, “The One Who Belongs To The Red Crown”. “The One Who Belongs To The Primeval Floods”. “Weaver”. “Nit, the Cow Who Gave Birth to Ra”. “Opener of the Ways.” “Guardian of Hidden Mysteries.” 등등

 

셈족의 아나트(Anat), 카르타고의 여신 타니트(Tanit)도 네이트와 동일시되는데, Ta-Nit는 ‘Nit(네이트)의 땅’을 의미한다.

 

여신의 속성, 상징과 여러 신화를 감안하면 이시스(Isis) 여신과도 혼동 또는 연관된다 볼 수 있다.

* 이시스 – 이집트 신화 : http://yellow.kr/blog/?p=1534

 

워리스 배지(E.A. Wallis Budge)에 따르면 이집트에서의 기독교 전파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와 이시스, 네이트 같은 이집트 여신과의 유사성이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처녀 생식은 그리스도 탄생 훨씬 이전부터 네이트의 특성이었고 네이트와 이시스의 다른 속성이 외경을 통해 그리스도의 어머니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오시리스도 …)

 

아테나는 잘 알다시피 지혜, 예술, 공예, 전략 등을 담당하는 그리스 신화의 올림포스 12신 가운데 하나이다. 투구, 갑옷, 창, 메두사의 머리가 달린 방패(아이기스), 올빼미, 뱀이 대표적 상징물이다.

아르테미스와 함께 처녀 여신으로 유명하다. 신화에서는 처녀성을 끝까지 지킨 여신이지만, 국가의 수호신이라는 성격 때문에 다산(多産)과 풍요의 여신이기도 하였다.

 

그리스의 아테네를 건설한 것은 네이트가 수호신으로 있던 사이스에서 온 이집트인 케크롭스(Cecrops)였다는 전승이 있다.

 

다음과 같이 자료를 찾았다.

 


헤로도토스 역사

– 헤로도토스 / 박현태 역 / 동서문화사 / 2008.07.01

 

디오니소스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신의 이름은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들어갔다. 그리스의 신들이 그리스 이외의 나라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것은, 내가 직접 조사해서 확인한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은 이집트로부터 전래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외로서는 앞에서도 말한 포세이돈과 디오스크로이 외에 헤라 · 헤스티아 · 테미스 · 카리테스 · 네레이데스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이외의 신들의 이름은 줄곧 이집트에 있었다. 이상 나는 이집트인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인이 이름을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신들은, 포세이돈을 제외하고는 펠라스고이인이 명명한 것일 것이다.

……

이집트인은 국민적 대축제를 1년에 한 번 여는 것이 아니라 빈번하게 개최하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성대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르테미스를 위하여 부바스티스라고 하는 도시에 모여서 하는 축제이고, 그 다음으로는 부시리스라는 도시에서의 이시스 축제이다. 이 도시에서는 이시스의 장대한 신전이 있고, 도시 그 자체가 이집트의 델타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이시스는 그리스로 말하자면 데메테르에 해당한다. 세 번째로 중요한 대축제는 사이스에서의 아테네 축제, 네 번째는 헬리오폴리스에서의 헤리오스(태양신) 축제이고 다섯 번째는 부토에서의 레토 축제, 여섯 번째는 파프레미스에서의 아레스 축제이다.

……

사이스 축제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하룻밤 동안 집 주위의 들판에 엄청난 수의 촛대에 불을 켠다. 촛대는 소금과 기름을 넣은 평평한 접시로, 그 위에 심지가 얹혀 있어 이것이 밤새도록 타는 것이다. 이 축제에는 ‘점등제(點燈祭)’라는 이름이 있다. 이 대축제에 참가하지 않는 이집트인도 희생식이 거행되는 밤에는 잊지 않고 각자 촛대에 불을 켠다. 따라서 단순히 사이스뿐만 아니라 온 이집트에 불이 켜지는 것이다. 왜 이날 밤에 불을 켜서 특별히 축하하는가에 대한 이유에 관해서는 설화가 전승되고 있다.(역주-잃었던 오시리스를 찾기 위해 불을 밝히는 것이다)

……

사이스의 아테네 신역(神域)에는 또 신전 뒤편, 아테네 신전의 담을 따라 그 끝과 끝 사이에 어떤 귀하신 분의 묘소가 있는데, 그 분의 이름을 여기서 들지는 않겠다.(역주-오시리스를 가리킨다)  이 안에는 거대한 돌로 만든 오벨리스크가 몇 기(基) 서 있고 묘소에 이어서 연못이 있는데, 연못 주위의 가장자리에는 보기 좋게 돌이 깔려 있고 그 크기는 내가 보는 바로는 데로스에 있는 이른바 ‘수레바퀴의 연못'(역주-레토는 이 연못가에서 아폴론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아폴론 신전 서북부에서 지금도 이 연못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과 같을 정도였다.

 


블랙 아테나

–  마틴 버낼 / 오흥식 역 / 소나무 / 2006.01.10

 

제5장은 한 도시, 즉 아테네만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여기서 나는 도시의 이름인 아테나이(Athēnai)와 신의 이름인 아테네(Athēnē) 혹은 아테나(Athena)가 이집트어 Ht Nt(헤트 네트)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고대에 아테나는 이집트 여신 Nt(네트) 혹은 네이트(Nēit)와 시종일관 동일시되었다. 두 여신 모두 전쟁과 길쌈, 지혜를 상징하는 처녀 신이었다. 네이트 숭배의 중심지는 서부 삼각주에 있는 사이스Sais라는 도시였는데, 사이스 시민은 아테네인에 대해 특별한 친근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이스는 세속적인 이름이었고, 그 도시의 종교적인 명칭은 Ht Nt(헤트 네트), 즉 네이트의 신전 또는 집이었다.

……

이집트에서 신을 부를 때 보통 그 신이 거처하는 곳의 이름을 사용했다는 점은, 그리스어에서 여신의 이름과 그 여신의 도시를 지칭하는 이름이 혼동된 이유를 설명해 준다. 마지막으로, 기원후 2세기에 페르가몬Pergamon의 카락스Charax가 “사이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아테나이라고 불렀다”라고 진술한 기록이 있는데, 이는 사이스 사람이 Ht Nt(헤트 네트)를 사이스 이름으로 여긴 경우라야 비로소 이치에 맞는 이야기가 된다.

제5장은 계속해서 네이트와 아테나 사이의 도상학적 연결성을 살핀다. 네이트는 왕조 이전 시기부터 막대기에 붙은 바퀴벌레로 상징화되었는데, 이는 종종 무기와 관련되는 8자형 방패로 발전했다. 이러한 상징화는 미노아 문명기 크레타에서 발견된 소위 ‘방패 여신’의 기원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방패 여신’은 미케네에서 발견된 채색 석회석 판과 연결되는데, 그 석회석 판은 8자형 방패 뒤편에 서서 팔과 목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한 여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는 팔라디온Palladion(팔라스Pallas 아테나 및 팔라스 아테나 숭배와 관련된 갑옷 입상立像)에 대한 초기의 묘사로 여겨져 왔다. 이런 식으로, 기원전 4000~2000년의 이집트로부터 2000~1000년의 크레타와 미케네를 거쳐 기원전 1000년 이후의 잘 알려진 여신에 이르는 도상학적 발전(이는 전설로 내려오는 네이트와 아테나 사이의 연결성 및 앞서 행한 어원 추정과 정확히 일치한다)을 추적할 수 있다. 더욱이 아테네에서 아테나 여신에 대한 국가적 숭배가 정점에 이르렀던 시기는, 기원전 6세기 중반 사이스 출신 이집트 파라오 아모세 2세가 동부 지중해의 다른 곳에서 아테나 숭배를 장려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사이스가 이집트와 리비아 접경 지역에 위치해 있었으며 도시의 일부가 때때로 리비아 영토에 속했다는 사실은, 아테나와 리비아의 관련성에 관한 헤로도토스의 상세한 기록을 설명해 준다. 이 위대한 최초의 그리스 역사가는 또한 이집트인과 일부 리비아인이 흑인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미케네에서 발굴된 초기 그리스의 아테나 초상에서는, 여신의 팔과 다리가 미노아 관습(이집트로부터 차용된 관습으로, 남자는 붉은색과 갈색, 여자는 황색과 백색으로 채색한다)에 따라 채색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트/아테나의 이집트-리비아적 기원과 헤로도토스가 네이트와 아테나의 관련성을 알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가 이집트인을 흑인으로 묘사했다는 사실은 이 책의 제목에 영감을 불어 넣었다.

……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서부 삼각주의 사이스에서 온 이집트인 케크롭스가 아테네를 건설했다는 전승(비록 뒤늦게 입증되기는 하지만)이 널리 퍼져 있었다. 또한 사이스의 여신인 네이트가 아테나와 동일하다는 인식도 있었다. 아틀란티스 신화에 관한 그 유명한 구절에서, 플라톤은 크리티아스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즉 위대한 아테네의 입법자 솔론이 기원전 6세기 초에 당시 이집트 수도였던 사이스를 방문했을 때, 아테네인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낀 사이스인이 그를 친족으로 대접했다는 것이다.

 


블랙 아테나 2

– 마틴 버낼 / 오흥식 역 / 소나무 / 2012.03.25

 

2장은 고전기 및 헬레니즘시대 저자들이 보았던 보이오티아와 이집트 사이의 연계에 대한 개관으로 시작된다. 이러한 연계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 것은 부분적으로는 ‘테베’라고 불린 두 도시(그리스의 테베와 이집트의 테베)이지만, 더 크게는 나일 강의 둑 및 삼각주와 코파이스 습지 연안 사이의 유사점 때문이다. 나는 그 유사점의 기원이 물의 관리자인 아테나 여신의 이집트 짝인 네이트 숭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네이트는 후에 여신의 신성한 도시 사이스가 될 곳에 정착하기 위해 삼각주에서 수영하고 있는 암소로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테베의 건국자인 카드모스에 관한 그리스 신화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데, 카드모스는 장차 그의 도시가 될 지역에서 암소가 쓰러질 때까지 그 뒤를 따라간다.

카드모스는 그곳에서 암소를 희생 제물로 바쳤고 옹가 또는 옹카라는 신비한 별칭을 지닌 아테나 숭배를 확립했다. 고대의 저자 파우사니아스는 이 별칭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는데, 어떤 이들은 그것을 이집트어로 보았지만 그는 페니키아어로 보았다. 옹카라는 별칭은 헬레니즘시대의 그리스인에게 아누키스로 알려진 이집트 여신 안케트에서 유래했음이 거의 확실하다. 아누키스는 나일 폭포와 여러 지류 사이에 박혀 있는 섬들의 여신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의 테베가 세 개의 개울물이 떨어지는 가파른 경사지의 가장자리에 세워졌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

그런데 태양 돛배에 탄 네이트의 모습, 여신과 태양(특히 레의 눈으로 상징화되었을 때)의 연계, 여신과 우레우스(태양원반으로 그 원반으로부터 코브라가 나온다)의 연계는 적어도 제18왕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태양이 레의 눈과 우레우스로 상징화되었을 때 그렇다. 이보다 더 이른 시기에는 갑충류 투구벌레와 네이트의 연계가 있었는데, 그 도안은 스카랍의 도안을 앞섰던 것으로 보이며 빛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태양과 비슷한 기능을 가졌을 것이다. 네이트와 태양의 가장 강력한 연계는 기원전 3천년기 전반 고왕국에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태양 투구벌레 도안은 이미 전기미노아 시대 크레타에서 널리 퍼졌다는 증거가 있다. 그리스에서 후기에 입증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단히 오래된 이집트 전승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아테나를 태양 원반에 연계시킬 수 있는, 그리고 고르곤의 얼굴(이 얼굴을 여신은 방패나 흉갑에 거의 항상 달고 있다)의 형태 속에 있는 뱀들에 연계시킬 수 있는 기원전 2천년기 에게해권의 증거가 있다는 것을 제3권에서 주장할 것이다. 그 여신의 사나운 성격은 아테나 이토니아의 전사적 특성과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
……

네이트는 전사로서, 직물 짜는 자로서, 상층 공기인 에테르의 신으로서 많은 기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여신의 핵심적 특징은 소의 신, 창조력을 지닌 암소(아헤트Ahet)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암소는 거대한 홍수 또는 늪지, 원시의 물인 메헤트 웨레트(Mht Wrt,거대한 습지)에 연계되어 있다. 이것에 관한 자세한 것은 사이스에 있던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문서에서 분명히 입증된다. 그런데 『피라미드 문서』(고왕국 후기)와 중왕국(기원전 2100~1750년)의 『관 문서Coffin Texts』를 볼 때 이러한 생각이 훨씬 더 오래된 것임이 분명하다. 그 여신에 대한 숭배는 서부 삼각주 늪지대에 있는 사이스에서 제1왕조 때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것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피라미드 문서』는 여신의 중심적 국면을 묘사하고 있다. “네이트는 메헤트 웨레트(Mht Wrt,거대한 습지)의 가장자리에 있는 여신의 호수에서 왔다. … 네이트는 지평선의 두 둑 위의 풀을 푸르게 만든다.” 『낮으로 들어가기 위한 지침서』의 신왕국 판에서 여신은 둑과 섬에 연계된 것으로 보인다. 후기의 문서는 어떻게 네이트가 ‘섬과 둑을 분리해’ 물로부터 땅을 창조했는지를 상술하고 있다. 고왕국에서 여신은 ‘길을 열었다.’ ‘길을 연다’는 것은 종종 돛단배를 타고 물길로 종교적 행렬과 장례 행렬을 이끌었음을 의미한 것이 분명하다. 웨프(웨피)Wp(i)는 물길 ‘열기’도 의미했다. 이처럼 네이트는 수로를 만들어내고 사나운 습지를 제어한 여신이다.

영양분을 담은 홍수, 수로, 관개, 땅, 간척의 신으로서 네이트의 역활은 오늘날의 학자들에게 그동안 설명할 수 없었던 아테나의 신화적 성격의 많은 국면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보자. 여신이 아테네와 트오이젠 등지에서 포세이돈과 싸운 것은 네이트가 포세이돈의 이집트 닮은꼴인 세트 그리고 사악한 큰 뱀 아포피와 싸운 것과 유사하다.
……

명백한 것은, 떠오르는 태양의 상징으로서 아폴론은 그의 이집트 짝인 호루스와 케프리Khepri처럼 젊은이로서 여겨지며 그의 삼촌 포세이돈(세트)보다 더 젊은 신으로 묘사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포세이돈의 조카딸임에도 불구하고 아테나(또는 네이트)는 반드시 더 젊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테나와 네이트 모두 흥미롭게도 늙은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젊지도 않기 때문이다.
……

여러모로 보아 아테나 포세이돈의 싸움터인 아테네는 네이트와 세트의 싸움터인 헤트 네트(Ht Nt, 사이스)를 그리스로 옮겨놓은 것이다.
……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코파이스 호숫가와 테베에서 아테나에 대한 고대 숭배는 습지의 여신이자 습지 개간의 여신으로서 네이트를 둘러싼 신화와 비슷한 것 같다. 이집트와 리비아에서 그 여신과 포세이돈은 경쟁관계인데, 이는 농경과 자연 사이의 투쟁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테베에서 아테나 옹카의 숭배가 시사하는 것은, 이집트 신 아누키스를 통해 네이트/아테나를 네프티스/페르세포네/에리니스에 동화시키고 물의 흐름 및 제어에 연계시킨다는 점이다. 아케트/옹카와 아르크/알케 사이에도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옹카와 알크메네를 연결시킨다. 이토니아와 알랄코메나에서 아테나 관련 숭배는 아테나와 알크메네(아몬/제우스의 배우자이자 헤라클레스의 어머니)의 동일시를 가리킨다. 이집트에서 네이트는 제11왕조 파라오 멘투호테프 2세의 신성한 어머니로 나타난다.


세계의 모든 신화

– 케네스 C. 데이비스 / 이충호 역 / 푸른숲 / 2008.11.20

 

네이트는 이집트 신화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신 가운데 하나로, 선왕조 시대와 초기 왕조 시대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 나일 삼각주 지역에서 어머니 여신으로 숭배되었던 네이트는 출산을 발명하고, 신과 동물과 사람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에 나타난 신이라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속성까지 추가되어 전사의 여신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한 이야기에 따르면, 네이트가 강에다 침을 뱉자 침이 하계에 사는 용처럼 생긴 뱀인 아페프로 변했다고 한다. 아페프는 매일 밤 레가 두아트를 지나갈 때마다 레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바로 그 뱀이다.

 


주머니 속 그리스 신화

–  야마다 무네무쯔 / 박옥선 역 / 가라뫼 / 2007.11.30

 

제우스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자란 아테나를 지상으로 내보낸 곳은 트리톤(Triton) 강변(그리스 중동부 보이오티아 지역)이었다. 이 강은 그리스 반도의 여러 강에 걸쳐 있다. 닐손은 ‘아테나는 그리스 인이 이동해오기 전의 성시의 수호신’ 이라 했다.

또 바다의 신에는 트리톤(포세이돈과 암피트리테의 아들)이 있는데 이 역시 아테나가 그 배경에 들어 있어 강과 해양, 즉 물과의 관계를 배제할 수가 없다. 아테나의 별명에는 트리토니스Tritonis도 있는데 이것은 트리톤의 여신 형이다.

북쪽계의 아테나 외에 또 다른 경로인 남방계의 아테나 상도 볼 수 있다. 아테나는 리비아의 트리토니스 호반에서 태어났고, 크레타 섬을 경유해서 그리스에 왔을 때 포이오티아의 트리톤 강가에 살았다는 게 그것이다.

리비아 인의 크레타 섬 이주는 기원전 4000년경에 시작된다. 특히 기원전 3000년경 제1왕조 지배 하의 이집트 북부와 남부가 강제적으로 합병되었을 때 나일 강 서방의 델타 지역에서 크레타 섬으로, 여신을 숭배하던 리비아 인이 탈주해온 것으로 짐작된다. 그 뒤 곧 크레타의 미노아 문명 제1기가 시작되었고 이 크레타 문명이 북상하여 남방계 이야기가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그레보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아테나 신을 리비아의 여신 네이트와 동일하게 간주하고 있다.

한편, J.E. 하리손은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아테나에서 여가장 제도의 성격을 제거하기 위한 신화적인 방편이라고 지적했다. 저자의 견해로는 북방계의 제우스와 남방계의 아테나 신을 통합하는 방편이었기도 하다.

 


Hymn to Neith

– 피라미드 텍스트

 

Open the gates of the horizon.
Withdraw the bolts (of Heaven) for he has come to thee, O Neith.
He has come to thee, O Flame.
He has come to thee, O Great One.
He has come to thee, O Great One of Spells.
He is pure for thee, for he fears thee. Yet art thou satisfied with him.
Thou art satisfied with his purity. Thou are
Satisfied with the words he speaks unto thee:
‘How beautiful is thy face, happy, renewed,
Refreshed as when God, the father of gods,
First fashioned thee.’

He has come to three, Great Lady of Spells.”

 

~ from “Feasts of Light” by Normandi Ellis, pg. 22

 


<관련 그림>

 

3

– 네이트의 여러 형태 / 하이집트 상징인 붉은 왕관을 쓰고 있다.

 

 

4

– 네페르타리(람세스2세의 왕비, Nefertari)의 무덤

오른쪽 끝은 네이트, 그 왼쪽은 Ra Horakhty, 왼쪽 끝은 오시리스, 그 오른쪽은 Scarab Beetle 머리의 케프리(Khepri)

 

 

5

– 오시리스를 마주하고있는 왼쪽의 네이트(Neith), 오른쪽은 네프티스(Nephthys)

20왕조 카엠와세트(Khaemwaset)의 묘 / 룩소르 왕비의 계곡(Valley of the Queens)

 

 

6

– 네이트의 이지스(Aegis) / BC 664~525(이집트 26왕조) / Museum of Fine Arts of Lyon

이지스는 제우스가 아테나에게 주었다는 방패이다.

 

 

7

– 네이트의 청동상

 

 

8

– 왼쪽의 제우스와 오른쪽의 아테나 이토니아(Athena Itonia)가 있는 동전 / 테살리아 연맹, BC 196~146

 

 

9

– 이집트, 아테나-네이트 / 로마제국 / 루브르 (East Mediterranean in the Roman Empire antiquities in the Louvre)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위키백과 : 아테나

위키백과 : Neith

위키백과 : 사이스

https://en.wikipedia.org/wiki/Tanit

https://en.wikipedia.org/wiki/Anat

위키백과 : 케크롭스 1세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 네이트(Neith)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 : 아테나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3Atext%3A1999.01.0180%3Atext%3DTim.%3Apage%3D21

[理知논술]고대그리스문명은 혹시 오리엔트의 지배 결과?

 

아테나와 네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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