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로우의 게시판

'조국 대란'이 드러낸 울타리 게임

작성자
hsy6685
작성일
2019-09-16 22:49
조회
796
‘조국 대란’은 한국의 진보 정치 세력에게 어떤 예고편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울타리 게임’을 합법의 이름으로 승인할 것인가, 울타리 밖 사람들의 편이 되겠다고 선언할 것인가.

......

좌우 구도는 가장 직관적인 정치적 세계관이다. 이 직관은 때로 현실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린다. 구의역 김군의 동료 정주영씨가 토로하는 현실은 ‘좌우로 갈린 세계’가 아니라, ‘울타리 안과 울타리 밖으로 갈린 세계’다. 울타리 안에는 좋은 대학을 다니고,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고, 상위 20% 안쪽으로 돈을 벌어, 대도시에서 중산층으로 자리 잡는, 공론장에서 발언권이 큰 사람들이 있다. 울타리 밖에는 머릿수로 다수이지만 목소리를 얻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논문 제1저자 파동은, 정치를 바라보는 상상력을 ‘좌우의 세계’에서 ‘울타리의 세계’로 바꿔낸다.

‘울타리 게임’은 불법과 비리로 작동하지 않는다. 교육과 입시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중상류층 가정은 집값이 비싼 동네에서 살 수 있다. 이런 곳은 대부분 학군이 좋다. 자녀에게 다양한 체험을 시켜줄 여유가 있다. 자녀를 인턴으로 보낼 대학교수 인맥이 있을 가능성도 더 높다. 그 결과,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라 불리는 최상위 명문 대학일수록 고소득층 비율이 높아진다. 격차는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진다. 합법이야말로 ‘울타리 안쪽’의 무기다.

어떤 의미로, ‘조국 대란’은 한국 정치를 글로벌 정치의 대세에 합류시켰다. ‘좌우로 갈린 세계’에서 ‘울타리 안팎으로 갈린 세계’로 바뀌는 경향은 세계적인 추세다. 불평등은 커지고, 계층 이동 가능성은 낮아진다. 계층과 불평등 문제를 연구하는 영국 출신 미국인 리처드 리브스는 ‘유리 바닥’과 ‘기회 사재기’라는 개념을 히트시켰다. 유리 바닥은 상위 20%가 계층의 하향 이동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설치하는 각종 안전망들을 말한다. 여기에는 육아 환경, 학군, 대학 입시, 부모들의 네트워크가 모두 포함된다. 이 트랙을 탄 상위 20% 가정의 자녀들은 계층 하락을 겪을 위험이 낮아진다. 물론 합법이다. 기회 사재기란 자녀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기회를 갖도록 기회를 싹쓸이하는 전략이다. 부모의 연줄을 동원해 자녀에게 무급 인턴 기회를 잡아주고 생활비를 부모가 부담해준다면, 연줄과 경제력이 없는 집 자녀보다 더 많은 기회를 쟁여두는 셈이다. 역시 합법이다.

지식인 대 부유층의 ‘울타리 안 싸움’

악순환 고리가 드러난다. 불평등이 커질수록, 중상류층은 계층 하락을 더 두려워한다. 중상류층 부모가 자녀에게 유리 바닥을 깔아줄 필요도 커진다. 기회 사재기가 만연한다. 이 노력이 성공하여 유리 바닥이 튼튼해지면, 이제 중상류층은 자녀가 계층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을 돕는 정책에 세금을 쓰지 말라고 요구하게 된다. 다시 불평등이 증가한다. 리브스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계층 이동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하위 계층의 무기력이 아니다. 그보다는 상위 계층이 자기 자리를 유지하려고 쓰는 여러 전략이 성공해서다. 우리 용어로 울타리 게임이 성공해서다.

‘좌우로 갈린 세계’와 ‘울타리 안팎으로 갈린 세계’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인식은 새롭게 떠오른 아이디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동안, 이 두 세계관은 같은 말이었다. 대체로 좌파 정당은 가난한 사람을 대변하고 우파 정당은 부자를 대변했으니, ‘좌우’란 ‘울타리 안팎’과 동의어였다. 그런데 이게 흔들렸다. 그 때문에 21세기 정치의 최대 지각변동이 등장했다.

토마 피케티는 불평등 연구서인 <21세기 자본>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경제학자다. 그는 후속 작업으로 “왜 정치는 불평등의 증가를 막지 못했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2018년에 나온 논문 ‘브라만 좌파 대 상인 우파:불평등의 증가와 정치 갈등 구조의 변화(Brahmin Left vs Merchant Right:Rising Inequality & the Changing Structure of Political Conflict)’에서 그는 이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2차 대전 이후인 1950~1960년대에, 좌파 정당의 핵심 지지 기반은 저학력·저소득 노동자였다. 1970년대 이후로, 고학력 유권자가 좌파 정당의 핵심 지지층으로 부상했다.

대학에 가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났는데, 고학력자들은 대체로 진보 성향이 강했다. 이것은 좌파 정당에게 기회로 보였다. <그림 2>는 미국·영국·프랑스 세 나라의 좌파 정당 득표를 교육수준에 따라 분석한 결과다. 대졸 유권자들이 좌파 정당에 투표한 비율에서, 고졸 이하 유권자들이 좌파 정당에 투표한 비율을 뺀 값이다. 즉, 그래프에서 플러스 값이 클수록 고학력 유권자의 영향력이 강하고, 마이너스 값이 클수록 저학력 유권자의 영향력이 강하다. 세 나라 모두에서, 좌파 정당(미국 민주당, 영국 노동당, 프랑스는 좌파 계열 정당 합산)을 고학력자들이 장악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고학력자들이 핵심 지지층이 되면서 좌파 정당들은 저학력·저소득 노동자와의 연결고리를 놓쳐버렸다. 좌파 정당은 재분배 정책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압력을 점점 덜 받게 되었다. 고학력 유권자들이 관심 있는 인권, 환경, 정치적 올바름, 정체성 문제가 중요하게 떠오른 반면, 불평등과 재분배 이슈가 시나브로 뒤로 밀렸다. 피케티는 이 새로운 좌파 정당을 ‘브라만 좌파’라고 불렀다. 인도 카스트 제도의 최상층이면서 지적 기능을 수행하는 사제 계급이다. 여전히 부자들의 대변자인 우파의 별명은 ‘상인 우파’다.

이렇게 해서 정치는 상하 계층의 대결에서 상층 엘리트들 간의 대결(지식인 대 부유층)로 바뀐다. 이제 좌우 갈등은 울타리 안팎의 갈등을 대변하지 않는다. 좌우 모두가 울타리 안에서 싸운다. 울타리 밖에는 거대한 유권자 블록이 정치적 대변자를 찾지 못해 좌절하며 뒤처진다.

...

- 출처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264
전체 1

  • 2019-09-17 09:32
    좋은 기사 공유 감사드립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