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게시판

박문환 - 일본을 통해서 중국을 보다 (2023-07-28)

작성자
hsy6685
작성일
2023-07-29 10:31
조회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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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통해서 중국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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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압제가 불가능한 동물입니다.
처음에는 총 칼에 굴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저항을 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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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만드는 자는 망할 것이요, 성을 넘는 자는 흥할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던 <톤 유쿠크>나 18개의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만들었던 위대한 제왕 <알렉산더>도 결국 그가 사망한 이후에 제국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던 이유는 그 국가를 지탱하는 시스템이 없고 단지 정복민들을 힘으로 제압하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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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제국을 유지한 나라도 있었습니다.
바로 로마죠.
로마는 일단 전쟁에서 이기고 항복을 받게 되면 그 나라의 왕을 그대로 두거나, 혹은 친 로마 성향의 인물을 내세웠거든요.
그러면 당연히 저항 운동의 가능성이 적고 로마는 단지 정복지를 지배하는 수뇌부만 상대하면 되니까 효율적인 경영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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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로마는 정복지를 식민지라고 하지 않고 <형제국>이라고 했었는데요, 말로만 형제가 아니었습니다.
정복지에서도 로마 시민이 될 수 있는 거의 비슷한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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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설령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도 단지 로마에서 군대에 복무하는 것만으로도 로마의 시민 자격이 부여되었습니다.
물론 군 복무 기간이 무려 20년이나 되었고 제대 후에도 예비군에 편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단 군에 들어가게 되면 적어도 40대 중 후반이 되어야만 나올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원자가 끊이지 않았었는데요, 아주 풍족하지는 않았었지만 가족 부양이 될 수 있을 정도의 월급이 나왔었고 제대한 이후에도 로마 시민으로서 사회 보장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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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었던 <로마 시민>에 대한 기회의 균등은 국가를 지탱하는 아주 중요한 시스템이었던 것입니다.
입증할 수는 없지만, 어느 기록에 의하면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는 북아프리카 출신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요, 물론 지금은 북아프리카에 백인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그 당시로 가정해보면 흑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굳이 흑인이 아니더라도 이방인이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열린 사회였던 것을 알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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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그럼 어떨까요?
미국도 그런 면에서는 로마의 국가 경영 시스템과 아주 비슷한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과거와 같은 포악한 정복자와는 다르게 주로 정복지와는 <혈맹>이라는 이름으로 형제국처럼 지냅니다.
또한 그 형제국의 경제를 실제로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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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때 일본과 싸웠던 미국은 일본을 식민지로 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돈을 쏟아 붓습니다.
미국의 달러는 완전히 폐허 상태에 있던 일본을 눈부시게 발전시키게 되죠.
고작 30여년 만에 미국과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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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이후에는 한국에도 돈을 쏟아 붓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고, 역시 30여년 만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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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로마의 시민권에 대한 균등한 기회가 결속의 도구였다면, 미국은 <달러>라는 점만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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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미국과 손을 잡은 이후 부흥하는 모습을 본 <덩샤오핑>은 구 소련의 패망 이후, 미국이 내민 손을 잡게 됩니다.
핑퐁 외교로 유명한 <헨리 키신저>가 워싱턴과 북경 사이를 빠르게 오가면서 결국 중국의 개방을 이끌어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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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본으로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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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들어, 승승장구하던 일본은 제조업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게 되죠.
돈 좀 벌었다고 뉴욕의 마천루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등 미국 정치인들의 심기를 거스르게 됩니다.
심지어 <일본 침공>이라는 제하의 기사들까지 나오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결국 일본을 억누르는 정책을 시작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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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갖다 쓰던 반도체나 그 외 일본에서만 사다 쓰던 수 많은 제조업 부품 소재들에 대한 공급망을 한국과 대만 등으로 분산시켰습니다.
공급망 분산의 효과는 수년 후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플라자 협약 이후, 1990년대 초반까지, 잠시 증시가 상승하더니만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맙니다.
부동산은 10년 동안 31%의 가치가 날라갔고, 증시는 65%가 폭락할 정도로 긴 고통이 진행되었죠.
불야성으로 돌아가던 일본의 공장들이 하나 둘 불이 꺼지기 시작했습니다.
잃어버린 30년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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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늘 가져다 쓰던 물건을 다른 곳에서 쓰다 보니 일본 내에서 생산된 재화들은 남아돌게 되고 결국 물가는 하락했겠죠?
이후로 일본은 심각한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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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은행들은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 돈을 풀기 시작합니다.
국가 재정도 총 동원되죠.
실제로 1990년대 초 버블이 붕괴된 이후, 5 년 동안 일본 은행은 6%였던 정책 금리를 0.5%까지 인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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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해보세요
금리를 낮춰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은, 정상적인 스테이지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금리가 낮으니 기업들에게 투자를 하라는 취지의 정책말입니다.
하지만, 재화가 남아돌아 물가가 하락하는 판에, 기업들이 금리 좀 낮추어 준다고 투자를 하겠습니까?
당연히 금리 인하는 해결책이 되지 못했고, 90 년대 후반까지도 0.5%의 금리는 유지되었지만 꺼져가는 불씨를 되살릴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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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는 아시아 외환위기가 왔습니다.
일본은 일본대로 그동안 경기를 살리기 위해 마구잡이로 쓰던 재정을 보충할 필요가 있었고, 결국 소비세를 인상했는데요, 당연히 수요가 급격하게 둔화되기 시작합니다.
다급해진 일본은 오랜 시간 유지해오던 0.5% 정책 금리를 다시 한 단계 낮추어 0.25%까지 인하하게 되지요.
하지만 원인 치료가 되지 않은 일본의 경제가 되살아날 리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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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999년 10월에는 세계 최초로 정책 금리를 0%까지 인하하면서 돈의 보유 가치를 아예 제로로 만들어버립니다.
보유 가치가 없다는 것은 은행에 저축을 해봐야 이자가 붙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지간하면 은행에 두지 말고 투자하라는 취지의 정책이었지요.
하지만 국내외의 소비가 크게 감소한 상황에서 단지 금리를 내려준다고 투자를 이끌어 낼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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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일본은 0.25% 금리를 올렸다가 다시 내리고만 반복했었고, 이 때부터 캐리 트레이드라는 독특한 현상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돈의 보유 가치가 제로인 나라에서 돈을 빌려, 좀 더 많은 금리를 주는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방식인데요, 시장 위험이 커지면 해외에 투자되었던 돈들이 다시 일본으로 기어 들어가게 되면서 엔화 강세가 만들어졌죠.
이 때부터 엔화는 어처구니 없게도 안전 통화로서의 대접을 받게 된 겁니다.
시장 위험이 커질 때마다 엔화가 강세를 보였으니 사람들이 안전통화라고 착각할만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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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로 금리에도 이미 잠들어버린 일본은 깨어날 줄 몰랐습니다.
아무리 금리를 내려도 물가는 오르지 않고, 경기를 깨울 수 없게 되자...
드디어 양적 완화를 시작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설명을 드렸듯이, 미국의 벤 버냉키가 훈수를 둔 겁니다.
훗날, 그러니까 2008년에 미국의 양적 완화에 앞서 실질적 데이터가 필요했던 미국이 일본에서 먼저 양적 완화를 시도해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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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 완화는 결국 화폐 발행입니다.
처음에는 발행된 화폐로 국채만 좀 사다가, 2008년부터는 회사채와 CP까지 돈을 찍어 매수하게 됩니다.
우량한 회사들에게 이자 없는 공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좀 세워보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이미 한국도 커지고 있었고 대만도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국제 무대에서의 일본 역할은 계속 계속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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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아베라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2013년부터는 일단 양적 완화의 크기를 무한대로 늘리고 그 돈으로 회사채는 물론이고 주식 시장까지 매수하게 됩니다.
채권은 그나마 위험이 매우 작은 자산입니다.
하지만 주식은 하락할 경우 손실을 볼 수 있는 매우 위험도가 높은 자산이었는데요,
누가 이기나 보자...
주가가 오를 때까지 계속해서 매수하겠다...
물가가 오를 때까지 계속 돈을 찍어내겠다...라며 밀어 붙이게 됩니다.
심지어, 2016년부터는 그 유명한 마이너스 금리를 세계 최초로 선보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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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마구잡이로 찍어서 주식까지 매수했으니, 주가는 안 오를 수 없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주가가 오르기 시작해서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되기 직전의 주가까지 비로서 오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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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본의 지난 역사에서 중국의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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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처음에는 달러로 묶인 미국의 맹방이었습니다.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 공급망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었습니다.
하지만 돈이 좀 되자, 생각이 또 바뀌었습니다.
과거 일본처럼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말죠.
로마의 시스템이 시민권이라면 미국의 시스템은 달러라고 했었는데요, 그 달러에 대한 반역을 시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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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즉각 과거 1990년대 일본에게 했던 행동을 이번에는 중국에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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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이전까지 중국은 공산품의 세계 공장이었습니다.
중국보다 더 싸게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모두 중국에서 값싼 공산품을 가져다 썼죠.
오죽하면 중국의 값싼 공산품의 공급이 세계 물가를 낮추어 디플레 수출국이라는 닉까지 얻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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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 미국은 프렌드 쇼어링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조달처를 다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비용은 더 들어갈지라도 중국의 도전을 찍어 눌러야 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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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중국은 몰라보게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의 2Q GDP는 6.3%로 예상치 7.3% 대비 큰 폭으로 하회했습니다.
지난해 경제 봉쇄에 대한 기저 효과까지 감안한다면 6.3%의 성장률은 정말 최악의 성적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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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수출의 감소폭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무려 -12.4%나 감소했지요.
직전 분기에 기록했던 -7.5%보다 더욱 악화된 수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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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가져가던 물건들이 고스란히 중국 땅에 남아 있으니 물가는 당연히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자물가는 0.0%로 사실상 디플레이션 상황을 보여주었고, 생산자 물가는 -5.4%로 사실상 침체 국면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30년 전, 일본에서 가져다 쓰던 물건들을 해외로 이전시키면서 일본에게 심각한 디플레이션을 만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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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국은 금리를 내리는 등, 용을 쓰고 있습니다.
중국은 부동산 부실이 매우 위중한 상황인데요, 실제로 6월의 주택 판매 면적은 전년 동기 대비 -17.2%나 급락했고 주택 판매액 역시 전년 동월 대비 -25.1%나 급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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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7월 정치국 회의에서는 부동산에 중점을 둔 부양책을 발표했습니다.
심지어 그간 시 주석이 꾸준히 강조해온 <방주불초...집은 거주하는 곳이지 투기 대상이 아니다>라는 경고성 슬로건을 빼버렸을 정도로 이례적 조치였지요.
그 외에도 가전하향, 이구환신 등의 내수 부양책이 발표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화요일부터 중국 증시가 상승 전환하는 모습인데요...
내수 부양은 정말 단기적 조치에 불과합니다.
소비가 잠시 일어나겠지만 부양책이 끝나면 오히려 더 심각한 소비 공백이 오게 되죠.
원인 치료가 되지 않은 경기 부양책은 단기간의 상승 효과만 있을 뿐입니다.
과거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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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여기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차이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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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미국과 중국은 통화 정책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은 제약적 수준의 긴축을 퍼붓고 있음에도 핵심 CPI 가 5% 근처에서 잘 내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에 중국은 금리를 내리는 등 확장적 통화 정책에도 심각한 디플레이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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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중국에서 가져다 쓰던 값싼 공산품을, 좀 더 높은 비용을 들여서 다른 벤더로부터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당연히 기저 물가를 높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제 생각이 맞다면,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핵심 물가는 오랜 시간 동안 2%에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그 이유로 인해 높은 금리 수준도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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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그 반대죠.
아무리 금리를 낮추어 봐야, 남아도는 물건을 보고 기업들이 투자를 감행하지는 않습니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있으니 청년 실업률은 드디어 21%를 돌파했지요.
물가는 계속 낮아질 수밖에 없고, 이런 흐름 역시 상당 기간에 걸쳐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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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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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을 겪게 될까요?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본과 중국의 민족성은 완전히 다릅니다.
일본의 경우 얼굴이 감자가 될 정도로 푹푹 찌는 여름에도 에어콘을 잘 틀지 않을 정도로 자체 소비가 약합니다.
외부에서 소비해주지 않을 경우, 남아도는 공급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가 잃어버린 30년의 단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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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국은 씀씀이가 큰 자체 소비 시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고통을 겪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수출 위주의 경제 구조를 내수 위주로 바꾸는 과정에서 상당한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7월 정치국 회의에서 대규모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지만, 아직은 중국 시장에 대한 비중 축소 의견에 변화를 줄 생각은 없습니다.
경기 부양책이 원인 치료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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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풍선 효과라는 게 있습니다.
누군가 억눌리면 누군가는 그 수혜를 받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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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이 저물어갈 때, 한국과 대만이 그 수혜를 입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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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중국이 저물고 있는데요, 그 수혜는 인도와 멕시코가 받고 있죠.
인도는 중국에 버금가는 인구 대국이라는 점, 멕시코는 미국과의 근접성 때문에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나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의 프렌드 쇼어링의 수혜를 받을 수 있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꾸준한 관심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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