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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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 | 유스티니아누스 정복전쟁 |
유스티니아누스는 비잔티움 황제 중에서 가장 큰 군사적 업적을 이루었다. 그리스도인 황제로 그는 과거 로마 제국의 영토를 회복하는 데 큰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본인이 직접 군사 원정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벨리사리우스, 나르세스 같은 당대의 명장들을 기용하여 정력적으로 영토를 회복하고 6세기 비잔티움 제국의 영토 확장을 이루었다.
* 날짜 : 533 ~ 555 | |
536 | 535-536년 사건 |
535-536년 극단적인 기후 변화(?).
* 날짜 : 536 | |
538 | 백제,사비 천도 |
국력을 회복한 백제는 협소한 웅진을 벗어나 538년(성왕 16) 사비(부여)로 수도를 옮기고, 나라이름을 남부여라고 바꾸었다. 이때 22부의 중앙 관부와 수도의 5부, 지방의 5방ㆍ군ㆍ성 등 지배체제를 다진 것으로 보인다.
* 날짜 : 538 | |
540 | 신라,진흥왕 재위 |
진흥왕 때는 신라의 전성기였으며, 정복 군주로 불렸다. 고구려의 영토였던 원산만까지 진출한 흔적은 마운령비에서 알 수 있다.
* 날짜 : 540 ~ 576 | |
541 |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
541~750년 비잔틴 제국에서 유행한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은 14세기 흑사병과 같은 선(腺)페스트로, 북아프리카 에티오피아와 이집트에서 유럽으로 옮아갔다. 전염병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는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서만 하루에 1만명씩 숨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날짜 : 541 ~ 542/12 | |
550 | 인도,굽타 왕조 멸망 |
서부 영역은 에프탈족에 의하여 잠식되고, 요충지인 에란도 6세기 초에 그 수중에 떨어졌다. 이리하여 6세기 초 굽타왕조는 거의 바라나시(베나레스) 이동(以東)으로 영역이 한정되었고, 이 지방의 정치적 ·경제적 중요성이 높아감에 따라 왕자를 지방장관에 임명하는 등 영역의 확보에 진력하였으나, 6세기 중엽 멸망하였다. 그리하여 북인도는 여러 지방지배자가 할거하여 통일제국은 붕괴되었다.
* 날짜 : 550 | |
550 | 테오티우아칸 몰락(?) |
테오티우아칸의 몰락(?)
* 날짜 : 550 | |
552 | 돌궐제국 성립 |
튀르크(Türk)의 음을 따서 한자화한 말로, 처음에는 철륵鐵勒의 한 부족으로 알타이산맥 방면에서 유연柔然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중 한 씨족인 아사나씨의 족장 토문土門이 유연ㆍ철륵을 격파하고 독립하여 일리가한이라 칭하였다.
* 날짜 : 552 | |
553 | 신라,한강 유역 차지 |
553년 7월, 진흥왕은 백제의 한강 유역을 침략하여 여러 성을 빼았아, 신주(新州)를 설치하고 아찬 무력(武力)을 군주로 삼았다.
* 날짜 : 553 | |
562 | 신라,대가야 병합 |
신라는 진흥왕 때 체제정비, 국력강화 등 발전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특히 554년 백제의 한강 유역을 빼앗음으로써 세력을 확장한 신라는 대가야를 병합할 수 있었다. 대가야 공격시 소년 화랑 사다함은 큰 공을 세웠지만, 친구 무관랑이 전사하자 슬퍼하다 죽었다.
* 날짜 : 562 | |
581 | 수(隋)나라 |
수(隋, 581년 ~ 618년)는 중국 남북조 시대의 혼란을 진정시키고, 서진이 멸망한 후 분열되었던 중국을 약 300년 만에 재통일한 왕조이다. 그러나 2대 황제 양제 때 폭정(暴政)으로 인해 멸망하고, 그 후 약간의 혼란기를 거쳐 당나라가 중국을 재통일 하였다. 수도는 대흥성(大興城: 현재의 시안(長安))이었다.
* 날짜 : 581 ~ 618 | |
602 | 비잔틴과 페르시아 전쟁(클라이막스) |
당시 서쪽 세계의 양대 제국이던 비잔틴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가 벌인 대결 중 가장 치명적이고, 치열하고, 결정적이었던 전쟁이다. 602년부터 622년까지 사산조 페르시아의 군대는 아나톨리아 반도와 발칸 반도를 제외한 모든 비잔틴 제국의 영토를 유린했고, 아나톨리아 반도로 진군하여 626년에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610년 10월에 비잔틴 제국 황제가 된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622년부터 626년 사이에 사산조 페르시아를 향한 성공적인 원정을 감행하고 627년에 사산조 페르시아의 심장부인 이라크 지역까지 침공함으로써 결정적인 반격에 성공한다. 결국 사산조 페르시아는 방어적인 입장에서 불리한 평화조약에 서명할 수 밖에 없었고, 전쟁은 비잔틴 제국의 승리로 종결된다.
* 날짜 : 602 ~ 628 | |
612 | 고구려,살수대첩 |
612년 수 양제는 113만 대군을 이끌고 요동으로 출병하였다. 수 양제는 내호아를 수군대장으로 임명하여 평양성으로 곧장 향하게 하고, 육군은 요동성으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요동성 군사들과 백성들의 끈임없는 저항으로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결국 수 양제는 우중문과 우문술을 각각 우장군과 좌장군으로 임명하여 30만의 별동대를 평양으로 직접 보냈다. 그러나 고구려의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이 살수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살수대첩). 결국 수는 이 전쟁의 충격으로 멸망하였으며, 고구려도 국력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 날짜 : 612 | |
618 | 당(唐) 건국(~907) |
당(唐 618년 ~ 907년)은 수나라(隋) 이후 건국된 중국의 황조이다. 당나라는 선비족 계열의 귀족인 이연(李淵)에 의해 세워졌다.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할 정도로 매우 번영했고, 정치와 경제와 문화 등 다방면적으로 완벽히 발달된 제국이었다. 현재까지도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대제국으로 평가받는다.
* 날짜 : 618 | |
622/07/16 | 이슬람교,헤지라 |
헤지라는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사건이다. 이슬람교의 기원(紀元) 원년.
* 날짜 : 622/07/16 | |
630 | 당,동돌궐 복속 |
당태종은 630년에 출병하여 동돌궐을 공격하였다. 당의 승리로 끝난 전투에서 실리 카간은 생포되어 장안으로 압송되었다. 여기서 동돌궐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동돌궐 세력의 소멸로 이제 당은 서돌궐과 접경하면서 새로운 중국-서역 관계가 성립되었다.
* 날짜 : 630 | |
632/06/08 | 정통 칼리프 시대 |
무함마드가 죽은 뒤, 아부 바크르, 우마르, 오스만, 알리 등 4명의 장로들이 교도(敎徒)의 총의에 의하여 잇따라 칼리프(후계자)로서 이슬람 교단을 통솔하던 시대를 말한다.
* 날짜 : 632/06/08 ~ 661 | |
634 | 이슬람,레반트 정복 |
이슬람, 레반트(현재의 시리아,요르단,팔레스타인,이스라엘,레바논) 정복
* 날짜 : 634 ~ 638 | |
636/08/15 | 야르무크 전투 |
야르무크 전투는 정통 칼리프 아랍 무슬림 세력과 비잔티움 제국간에 일어난 대전투이다. 이 전투는 서기 636년 8월에 갈릴리 해 남서쪽 오늘날의 시리아와 요르단 국경 사이 지대를 따라 난 야르무크 강 주변에서 6일간 벌어졌다. 야르무크 전투에서 무슬림은 완승하여 비잔티움 제국은 아나톨리아 남부의 지배권을 영영 잃게 된다. 이 전투는 전쟁사에서 결정적인 전투로 손꼽히며, 무함마드가 죽은 뒤 이슬람이 당시 기독교 세력이 지배하던 레반트로 급속히 진출할 것을 예고하며 무슬림의 정복 역사상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 날짜 : 636/08/15 | |
646 | 왜,다이카 개신 |
다이카 개신(大化改新)은 일본 아스카 시대 고교쿠 천황 재임 중인 646년에 일어난 정치 개혁 운동이다.
* 날짜 : 646 | |
651 | 사산조 페르시아,이슬람에 멸망 |
동로마 제국과의 장기간에 걸친 전쟁으로 인해 사산 왕조의 세력은 쇠퇴했고, 이슬람화된 신흥 아랍족의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페르시아군은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있었던 네하벤드 전투에서 크게 패하였고, 야즈데게르드 3세도 651년에 메르브 근처에서 암살되었다. 이로써 이슬람 이전의 이란 역사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 날짜 : 651 | |
660 | 백제 멸망 |
백제 의자왕 때인 660년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하여 백제가 멸망하였다. 황산벌에서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에 의하여 백제의 5천 결사대가 패배하고, 금강 기벌포에서 당의 소정방이 이끄는 13만 대군에 의하여 백제군이 항복하였으며, 양군이 집결하여 사비성을 공격하였다. 7월18일 공격이 있은 지 열흘이 못 되어 백제는 항복함으로써 백제 건국 678년 만에 멸망하였다.
* 날짜 : 660 | |
661 | 우마이야 왕조 |
우마이야 왕조는 아랍 제국을 다스린 첫 번째 이슬람 칼리파 세습왕조이다. 우마이야 왕조는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장악했다.
* 날짜 : 661 ~ 750 | |
663/08/27 | 백강 전투 |
백강 전투(白江戰鬪, 일본어: 白村江の戦い 백촌강의 전투[*])는 663년 8월에 한반도의 백강(현재의 금강 부근)에서 벌여진 백제·왜의 연합군과 당·신라의 연합군 사이의 전투이다. 당·신라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 대륙에 당이 등장하여 동아시아의 세력 판도가 새롭게 바뀌는 가운데 일어났던 전쟁이며, 왜도 영토가 빼앗기지는 않았지만 국방체제·정치제제의 변혁이 일어났으며, 백제부흥군 활동이 종언을 고하게 되는 등 큰 영향을 미쳤다.
* 날짜 : 663/08/27 | |
668 | 고구려 멸망 |
백제가 멸망한 후 고구려에 대한 당의 공격에 버티고 있었던 고구려가 668년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멸망하였다. 고구려는 내부 분열로 인해 힘이 약해지고 있었고, 666년 연개소문이 사망하자 구심점을 잃게 되어 666년 이후 요동성이 함락되고, 668년 9월 21일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보장왕이 백기를 들게 되었다. 당은 고구려 점령 후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여 한반도를 지배하겠다는 야망을 서서히 펼쳤고, 이때부터 신라와 당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 날짜 : 668 | |
670/07 | 당-토번,대비천 전투 |
대비천에서의 패배로 서역에서의 당나라 위상은 실추되었고, 가르친링은 여세를 몰아 670년에 당나라가 장악하고 있는 서역을 공격했다. 그 결과 당나라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에 속한 중요한 4개 도시인 안서사진(安西四鎭), 즉 카라샤르(焉耆)ㆍ쿠차(龜玆)ㆍ호탄(于闐)ㆍ카슈가르(疏勒)등의 주요 도시들이 토번의 영토가 되어 서역이 토번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국경의 완충지대였던 당의 속국 토욕혼도 사실상 멸망되어 수도 장안도 안전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동아시아의 역학구조에도 변화가 왔는데 신라의 한반도 패권, 발해의 건국, 돌궐의 독립, 거란의 성장 등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 날짜 : 670/07 | |
672/07/23 | 왜,진신의 난 |
진신의 난(일본어: 壬申の乱 じんしんのらん)은, 서기 672년에 일어난 고대 일본사 최대의 내란이다. 덴지 천황의 태자 오오토모 황자에 맞서, 황제(皇弟) 오오아마 황자가 지방 호족들을 규합해 반기를 든 사건. 일본 역사에서 예외적으로 반란을 일으킨 측이 승리한 내란이었으며, 사건이 일어났던 서기 672년이 간지로 임신년(壬申年)에 해당되므로 간지의 이름을 따서 '진신의 난'이라 부른다. 진신란(壬申亂)으로도 칭한다.
* 날짜 : 672/07/23 | |
674 | 이슬람,콘스탄티노플 포위 |
이슬람 교도의 지중해지역 진출이 시작되었으며 마르말라해의 키지코스를 발판으로 거기에서 매년 반복되는 그들의 콘스탄티노플 포위공격(674~678)은 '그리스의 불'로 겨우 격퇴되었다. 그 후 비잔티움제국은 이슬람 제국의 칼리프와 30년간의 휴전협정을 맺었다.
* 날짜 : 674 ~ 678 | |
676/02/25 | 신라,삼국통일 |
평양에 있던 당의 안동도호부가 요동으로 옮겨가고 신라는 676년 당의 세력을 대동강 이북으로 밀어냄으로써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 날짜 : 676/02/25 | |
683 | 돌궐이 당에서 독립 |
돌궐이 당에서 독립.
* 날짜 : 683 | |
698 | 대조영,발해 건국 |
고구려 멸망 이후 당의 지배에 저항해 온 고구려 유민들은 말갈인과 연합하여 당을 격파하고 동모산에 정착하였다. 거란인 이진충의 당 영주성 습격으로 당이 약해져 있을 때, 고구려 장수 대조영은 말갈족과 함께 당을 벗어났고 이를 추격하던 당과 천문령전투에서 대승리함으로써 당의 추격을 물리치고 발해를 건국하게 되었다.
* 날짜 : 698 | |
711 | 이슬람,이베리아 반도 정복 |
서고트 왕국이 711년 이슬람 우마이야(옴미아드) 왕조의 침입으로 붕괴된 후, 1492년까지 약 800년간 이베리아 반도는 이슬람의 영토였습니다.
* 날짜 : 711 | |
717 | 비잔틴,콘스탄티노플 방어 |
레오 3세가 즉위한 717년 여름 마슬라마가 이끄는 아랍의 8만 대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했다. 레오는 이미 제위에 오른 직후부터 이슬람의 침공에 대비하여 이를 잘 막아내었다. 이슬람군은 1년 동안 육상과 해상을 포위하여 공격했으나 난공불락의 성은 결코 함락되지 않았다. 해전에서는 비잔티움의 유명한 그리스 화약으로 이슬람 함대를 공격했고 역사상 유례가 없었던 혹독한 겨울의 추위는 포위군을 괴롭혔다. 급기야 일부 아랍의 함대가 전선에서 이탈하고 트라키아에 주둔한 이슬람군을 불가르족이 공격해오자 아랍군은 포위를 풀어야만 했다. 용의주도한 레오의 공성전의 승리로 아랍인들은 유럽으로 진출하지 못하게 되었고 레오는 훌륭한 황제라는 평을 얻었다.
* 날짜 : 717 ~ 718 | |
732 | 투르-푸아티에 전투 |
투르-푸아티에 전투는 732년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의 궁재인 카를 마르텔이 프랑스 투르와 푸아티에에서 옴미아드 왕조의 이슬람군을 무찌른 전투로 이 전투의 승리로 이슬람 세력의 서유럽 확장은 한풀 꺾였다.
* 날짜 : 732 | |
735/08 | 덴표 역병 |
덴표 역병(天平の疫病大流行, 덴표 역병대유행)은 일본에서 발생한 천연두의 유행을 지칭한다. 일본 전체 인구의 약 1/3을 죽였으며, 전국에 걸쳐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영향을 미쳤다. 735-737년 일본의 천연두 유행이라 부르기도 한다.
* 날짜 : 735/08 ~ 737/08 | |
740 | 아크로이논 전투 |
동로마 황제인 레오 3세는 공세로 돌아서서 군을 이끌고 아랍군과의 대규모 결전을 준비하였고 지금의 터키 동부 아피온카라히사르(아크로이논)에서 2만의 아랍군과 마주쳤다. 이 싸움에서 동로마군은 대승을 거두고 움마이야 왕조의 급격한 약화를 틈 타 터키 동부까지 영토를 늘렸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움마이야 왕조는 이미 지는 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종교분쟁이 일어났고 움마이야 왕조는 750년에 망하고 그 자리에 아바시드 왕조가 들어섰다.
* 날짜 : 740 | |
744 | 동돌궐, 위구르에 멸망 |
투르크계 위구르가 동돌궐을 굴복시키고 동서 교통로를 장악.
* 날짜 : 744 | |
750 | 아바스 왕조(~1258) |
우마이야조의 뒤를 이어 750∼1258년에 동방 이슬람 세계를 지배한 칼리프조(750~1258). 13세기 중엽까지 명백을 유지했으나 아바스가의 칼리프가 종교와 정치 양면에서 최고의 지도자 권력자로서 군림한 것은 945년까지이고, 그 이후는 정치상의 실권이 거의 없었다.
* 날짜 : 750 | |
751 | 탈라스 전투 |
탈라스 전투 (Battle of Talas)는 751년 7월~8월사이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수 고선지장군이 지휘하는 당나라군과 동맹군 티베트가 압바스 왕조, 카르룩 연합군을 상대로 지금의 카자흐스탄 영토인 타쉬겐트 부근 탈라스 강 유역에서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싸운 전투였다.
* 날짜 : 751 | |
755 | 당,안사의 난 |
중국 당(唐)나라 중기에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 등이 일으킨 반란(755∼763).
* 날짜 : 755 ~ 763 | |
771 | 샤를마뉴,프랑크왕국 통일 |
카롤링거왕조의 제2대 프랑크 국왕(재위768~814)으로 카를대제 또는 카롤루스대제라고도 한다. 부왕 피핀이 죽은 뒤 동생 카롤만과 왕국을 공동통치하였으나 771년에는 동생 역시 죽어 단일 통치자가 되었다. 서유럽의 정치적 통일을 달성하였다.
* 날짜 : 771 | |
793 | 바이킹의 대이동 |
바이킹의 대이동.
* 날짜 : 793 ~ 1066/09/25 | |
819 | 신라,전국 곳곳에서 민란 |
신라,전국 곳곳에서 민란.
* 날짜 : 819 | |
828 | 장보고,청해진 설치 |
완도 출신 장보고는 당의 장교로 있다가 신라로 돌아와 당의 해적이 신라인을 납치해 노비로 팔지 못하도록 청해진을 설치하자고 하였다. 장보고는 828년 지방민 1만 명을 뽑아 청해진을 신설, 해적을 쫓아내고 서해무역을 주도하였다.
* 날짜 : 828 | |
840 | 위구르 카간국 멸망 |
832년 전염병이 휩쓸어서 위구르에게 큰 타격을 입었다. 결국, 투르크계인 키르기스 족이 쳐들어오자 840년 결국 멸망하였다. 그러나 일부 위구르족들은 서진(西進)하여 4~5개의 위구르왕국을 건설하였다.
* 날짜 : 840 | |
843 | 프랑크왕국 분열 |
베르됭 조약(Treaty of Verdun)은 843년 카를 대제의 손자인 루트비히 경건왕의 세 아들이 카롤링거 제국을 세 왕국(동 프랑크 왕국, 중 프랑크 왕국, 서프랑크 왕국)으로 분할하는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카를 대제가 세운 제국은 해체되기 시작했으며 서유럽의 세 근대국가(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모태가 탄생하였다.
* 날짜 : 843 | |
862 | 바이킹,노브고로트 점령(러시아 기원) |
후기 러시아인이 남긴 연대기에 의하면, 862년 노르만인 류리크가 교역도시 노브고로트의 공이 되었고 류리크의 일족이 동슬라브인의 거주지역으로 지배를 하러 가는 과정에서, 동슬라브인 사이에서 몇 개의 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나라들이 있던 이 지역은 류리크가 속하는 부족 루스인의 이름을 따서 루시로 불리게 되었지만, 루시라고 하는 명칭이 후에 러시아라고 하는 국명의 어원이다.
* 날짜 : 862 | |
875 | 당, 황소의 난 |
중국 당 말기에 일어난 대농민반란. 당 말기 희종(僖宗)의 건부(乾符)~중화(中和) 연간(875~884)에 일어났다. 당 말기에는 지방 번진의 세력이 흔들리고 있다.
* 날짜 : 875 ~ 884 | |
882 | 키예프 대공국 성립(~1240) |
키예프대공(大公)이 지배한 시대(9∼13세기)의 러시아.
* 날짜 : 882 | |
892 | 후삼국 시대 |
후삼국 시대(後三國時代, 892년~936년)는 892년 견훤이 광주를 점령하고 왕을 칭한 때부터 936년 고려가 한반도를 통일하기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 날짜 : 892 ~ 936 | |
895 | 마자르족의 유럽 침공 |
마자르족의 유럽 침공.
* 날짜 : 895 ~ 955 | |
900 | 마야 문명의 몰락(250~900) |
마야 문명의 몰락(고전기, 250~900)
* 날짜 : 900 | |
907 | 당 멸망, 5대10국 |
오대 십국 시대(五代十國時代, 907년~960년)은 중국 역사에서 당나라가 멸망한 907년부터, 송나라가 건립된 960년까지,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화북을 통치했던 5개의 왕조(오대)와 화중·화남과 화북의 일부를 지배했던 여러 지방정권(십국)이 흥망을 거듭한 정치적 격변기를 가리킨다. 오대 십국의 오대는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를 뜻하며, 십국은 오월, 민, 형남, 초. 오, 남당, 남한, 북한, 전촉, 후촉을 포함한다.
* 날짜 : 907 ~ 960 | |
907 | 거란,요(遼)의 건국(~1125) |
중국의 왕조로 정복왕조(916~1125)의 하나이다. 창시자는 동호계 유목민인 거란족의 야율아보기이다. 거란족은 4세기 이후 네이멍구자치구 시라무렌강 유역에서 유목생활을 하다가 6~9세기경, 수ㆍ당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였는데, 9세기 말 당이 쇠약해진 틈을 타서 점차 발흥하였다.
* 날짜 : 907 ~ 1125 | |
909 | 파티마 왕조,이집트 정복(~1171) |
파티마 왕조, 파티마 칼리프조는는 아랍 제국의 시아파 이슬람 왕조로 909년부터 1171년까지 이집트, 북아프리카, 레반트를 다스린 왕조이다. 이 왕조의 군주 (칼리프)들은 이슬람의 시조인 마호메트의 딸 파티마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며 왕조의 이름도 파티마라고 정했다. 이들은 이슬람 시아파의 또다른 분파인 이스마일파였다.
* 날짜 : 909 | |
911 | 바이킹,노르망디 공국 |
9세기 후반 이후 노르만인의 수장(首長)들은 프랑크의 봉토를 받아서 가신(家臣)으로 되는 경향이 강하였다. 노르만의 침구(侵寇)에 대한 회유책으로, 프랑스 왕 샤를 3세가 911년 노르만의 추장(酋長) 롤로에게 센 강 하류 지대를 양여하여 노르망디 공(公)에 봉(封)하자, 다수의 노르만인이 이 지방으로 이주하여 영지를 확장하고, 특수지역을 만들어 실질적인 독립국을 만들었다.
* 날짜 : 911 | |
918 | 왕건,고려 건국 |
왕건은 개성지역의 호족으로 궁예를 도와 후삼국 통일에 앞장섰다. 그러나 궁예의 횡포가 심해지자 불만세력들이 918년 '태봉의 정변'을 일으켰고, 왕건이 왕위에 올라 나라를 고려, 연호를 천수라 하였다.
* 날짜 : 918 | |
926 | 발해,거란에 멸망 |
916년 거란의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 872년 - 926년, 재위 : 907년 - 926년)는 부족을 통일하고 요나라를 세워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 그는 중원 지방으로 진출하려고 노력하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배후 세력인 발해를 먼저 제거하고자 하였다. 마침내 925년 음력 12월 말, 야율아보기는 군대를 이끌고 발해를 공격하였고, 발해는 요나라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없었다. 결국 발해는 보름여 만인 926년 3월 1일(음력 1월 15일)에 멸망하였다.
* 날짜 : 926 | |
929 | 후後우마이야 왕조(~1031) |
후우마이야 왕조는 코르도바 칼리프국(아랍어: خلافة قرطبة Khilāfat Qurṭuba) 또는 서칼리프국이라고도 한다. 우마이야 왕조 멸망 후 일족인 아브드알 라흐만이 에스파냐의 코르도바에 피신하여 독립했다. 제8대 아브드 알라흐만 3세 때 칼리프를 자칭하고 왕조는 최성기에 달했다. 그리하여 후우마이야 왕조를 서칼리프국, 아바스 왕조를 동칼리프국이라고도 했다. 양국은 정치적으로는 대립해 있었지만, 문화·경제적 교류는 활발하여 이베리아 반도에는 고도의 이슬람 문화가 꽃피었다.
* 날짜 : 929 | |
935 | 신라 멸망 |
935년 10월 신라의 경순왕 김부는 김봉휴를 고려에 파견하여 신하의 예로서 왕건을 뵙기를 원한다는 항복 의사를 밝힘으로써 실질적인 멸망의 길을 걸었다. 왕건은 김부의 배례를 받고 정승으로 임명하여 태자 이상의 품위를 조치하였으며, 맏딸 낙랑공주를 김부와 결혼시켰다. 이로써 신라는 1000여 년 역사의 문을 닫고 완전히 사라졌다.
* 날짜 : 935 | |
946 | 백두산 화산 폭발 ? |
946년 백두산 분화(영어: 946 eruption of Paektu Mountain)는 화산 폭발 지수 7에 달하는 역사적으로 강력했던 화산 분화 기록이다.
* 날짜 : 946 | |
960 | 송(宋) 건국(~1279) |
960년 조광윤이 오대십국 시대 오대 최후의 왕조 후주로부터 선양을 받아 개봉(카이펑)에 도읍하여 나라를 세웠다. 국호는 송(宋)이었으나, 춘추시대의 송, 남북조 시대의 송 등과 구별하기 위해 황실의 성씨를 따라 조송(趙宋)이라고도 부른다. 통상 1127년 금나라의 확장에 밀려 장강 이남으로 옮기기 전을 북송, 이후 임안(지금의 항저우)에 도읍을 옮긴 것을 남송이라고 불러 구분하였다. 북송·남송 모두 합쳐 송, 송 왕조라고도 한다.
* 날짜 : 960 | |
962 | 신성로마제국 성립(962~1806) |
신성 로마 제국(독일어: Heiliges Römisches Reich, 神聖羅馬帝國)은 중세에서 근대 초까지 이어진 중부유럽 나라들의 정치 연방체이다. 프랑크 왕국이 베르됭 조약(843년)으로 나뉜 동쪽에서 독일 왕이 마자르족을 격퇴한 후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수여받아 신성 로마 제국 건국을 선포하였다.
* 날짜 : 962 | |
993 | 고려-거란 전쟁(1) |
거란(요나라)은 송과 친선을 유지하는 고려에 불만을 품고 고려에 침입해 왔다. 서희는 거란의 소손녕을 만나 거란과의 친선을 약속하고 물러가게 하였다. 또한 강동 6주를 획득하여 영토를 넓혔다.
* 날짜 : 993 | |
1004 | 송-요,전연의 맹 |
전연의 맹(澶淵之盟)은 중국의 송(宋)에 침입한 요(遼)의 성종(聖宗)과 이를 막기 위해 북상(北上)하였던 송의 진종(眞宗)이 전주(澶州)에 대진(對陣)하고 체결한 강화조약이다.
* 날짜 : 1004 | |
1010 | 고려-거란 전쟁(2) |
1010년(현종 1) 강조의 정변을 문제삼은 거란군이 재차 고려 침략을 단행하였다. 40만 거란군은 흥화진(의주)과 서경(평양)은 격파하지 못했지만 곽주, 안북도호부와 숙주 등을 함락시키며 개경의 궁궐과 건물들을 불태웠다. 결국 고려는 거란군과 화친약속을 맺었다.
* 날짜 : 1010 | |
1019 | 고려-거란 전쟁(귀주대첩) |
고려 현종 때 거란 침략군을 귀주에서 물리쳐 승리한 싸움이다. 태조 때부터 적대관계를 유지해 온 거란에 대한 고려의 북진정책이 원인이 되어 993년 거란의 1차 침입과 1010년 2차 침입에 이어, 1018년 소배압이 이끈 10만 대군에 의한 3차 침입이 있었다. 이때 고려는 강감찬을 상원수로 하여 거란을 물리쳤으며, 특히 귀주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종현의 공격을 받아 크게 패배하였다.
* 날짜 : 1019 | |
1025 | 1025년의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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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1025 | |
1037 | 셀주크 투르크 제국 |
셀주크 튀르크는 11세기경부터 14세기까지 중앙 아시아와 중동 일대를 다스린 수니파 무슬림 왕조를 말한다. 셀주크 왕조라고 하기도 한다. 셀주크 튀르크는 중앙아시아의 부족연합체로 발흥하여 중동에서 튀르크 세력의 시조를 이루었고 제1차 십자군의 공격대상이 되었다.
* 날짜 : 1037 ~ 1194 | |
1038 | 서하 건국(~1227) |
서하(중국어: 西夏 병음: Xī Xià)또는 민약(Minyak)은 1038년에서 1227년까지 중국 북서부의 간쑤 성(甘肅省), 산시 성(陝西省)에 위치했던 티베트계 탕구트족의 왕조이다. 전성기에는 북으로는 고비 사막, 남으로는 난주, 동으로는 황허, 서로는 옥문에 이르는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 날짜 : 1038 | |
1054 | 동서 교회의 분열 |
로마가톨릭과 동방정교회.
* 날짜 : 1054 | |
1066 | 노르만족,영국 정복 |
1066년 에드워드가 죽은 뒤 동생 해럴드 2세가 왕위에 오르자 노르망디공 기욤이 왕위계승권을 주장하여 진격해 왔으며, 헤이스팅스전투에서 해럴드국을 격파, 윌리엄 1세(정복왕)가 되었다. 이것이 영국사에서 말하는 노르만정복이다.
* 날짜 : 1066 | |
1071/08/26 | 만지케르트 전투 |
만지케르트 전투(Battle of Manzikert)는 1071년 8월 26일에 비잔티움 제국과 알프 아르슬란이 지휘하는 셀주크 제국(Seljuq) 군대간의 전투로서, 제국의 바스프라카니아 테마에 있는 아르메니아의 만지케르트 근교에서 벌어졌다. 이 전투는 비잔티움 제국의 결정적인 패배 중의 하나로 결말이 났으며 제국의 황제 로마누스 4세 디오게네스는 적에게 포로로 잡혔다. 만지케르트 전투는 아나톨리아에서 투르크 부족에 대한 제국의 저항을 완벽하게 무력화시켰다.
* 날짜 : 1071/08/26 | |
1077/01 | 카노사의 굴욕 |
1077년 1월경,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의 카노사 성으로 가서 관용을 구한 사건을 말한다. 교회의 성직자 임명권인 서임권을 둘러싸고 분쟁하던 신성 로마 제국 황제와 로마 교황의 대립의 정점에 있었던 사건으로 이후 교회의 권력에 세속 권력이 굴복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지칭 된다.
* 날짜 : 1077/01 | |
1085 | 카스티야, 톨레도 함락 |
무슬림이 카스티야의 알폰소6세에게 톨레도를 내줌. 1085년 스페인의 아랍성 톨레도가 함락된 후 기독교 군대들은 꿈도 꿔보지 못했던 문화적 보물들을 발견했다. 톨레도는 711년 이슬람 세력의 이베리아 반도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점령 이래 엘 시드에 의해 기독교 세계로 넘어가기 전까지 고대 그리스의 과학문명을 보관해온 보고였다. 톨레도가 무너지자 북부 유럽 학자들은 마치 불나방처럼 톨레도로 몰려와 지식의 약탈을 시작했다. 유클리드 기하학을 비롯해 의학, 점성술학, 천문학, 약학, 심리학, 생리학, 동물학, 생물학, 식물학, 광물학, 광학, 화학, 물리학, 수학, 대수학, 삼각술, 음악, 기상학, 지리학, 역학, 유체학, 항해술, 역사서 등 방대한 지식을 가져갔다.
* 날짜 : 1085 | |
1095 | 십자군 전쟁 |
십자군은 교황의 호소로 조직된 기독교적인 성향을 강하게 띤 군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경우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감행된 중세 서유럽의 로마 가톨릭 국가들이 중동의 이슬람 국가에 대항하여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행해진 대규모의 군사 원정을 가리킨다. 넓은 의미로는 직접적으로 성지와는 관계없는 레콩키스타나 동유럽에 파견된 동방십자군, 발트해 연안의 여러 나라에 원정을 감행한 북방십자군, 이단에 대한 알비 십자군 등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 취지와는 다르게 십자군측이 예루살렘을 확보한 기간은 1099년 ~ 1187년 및 1229년 ~ 1244년뿐이었다. 이후 20세기까지 예루살렘은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게 된다
* 날짜 : 1095 ~ 1291 | |
1100 | 중세 온난기 |
중세 중기의 온난기라는 개념은 1965년 램(Lamb)에 의해 정식화되었는데, 그의 추론은 역사기록과 물리학적인 기후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램은 온난기의 정점을 1000년경부터 1300년경까지, 다시 말해서 중세중기로 보았다. 이 시기에는 덥고 건조한 여름과 온화한 겨울이 자주 등장한다. 램은 이 시기의 온난화 정도를 1931~1960년 기후 ‘정상기’의 평균기온보다 1~2℃가량 높은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심지어 북반구 고위도 지역에서는 기온이 4℃까지 더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 날짜 : 1100 | |
1115 | 여진,금(金)의 건국(~1234) |
만주 원주민인 퉁구스족의 일파인 여진족이 요의 압박을 물리치고 금을 건국하였다. 금은 1125년 요를 멸망시키고, 1127년 북송을 무너뜨려 만주에서 화북 일대를 지배하였다.
* 날짜 : 1115 ~ 1234 | |
1125 | 요,금에 멸망 |
금金의 2대 태종 때인 1125년에는 송나라와 동맹을 맺고 요를 협격하여 만주지역으로부터 요를 멸망시켰다.
* 날짜 : 1125 | |
1126 | 고려,금과 군신관계 |
이자겸은 이듬해(1126년) 3월 마침내 금나라에 칭신(稱臣)하기로 결정한다.
* 날짜 : 1126 | |
1127 | 송,정강의 변 |
정강의 변(靖康之變)이란 1126년 송나라가 여진족의 금나라에 패하고, 중국 사상 정치적 중심지였던 화북을 잃어버리고, 황제 휘종과 흠종이 금나라에 사로잡힌 사건을 말한다. 정강(靖康)은 당시 북송의 연호이다.
* 날짜 : 1127 | |
1127 | 남송(南宋) 건국 |
흠종의 동생 고종은 1127년 여진족의 금이 송의 수도를 함락시키고 휘종과 흠종을 잡아가자, 남중국 임안을 도읍으로 하고 남송을 건설하였다.
* 날짜 : 1127 | |
1135 | 묘청의 난 |
묘청의 난(1135년 1월 19일(음력 1월 4일) ~ 1136년)은 승려 묘청 등이 금국정벌론과 서경천도론이 개경 귀족들의 방해로 무산되자 서경(西京)에서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 군호(軍號)를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이라 하여 대위국(大爲國)을 선언하고 일으킨 반란이다. 대위국이라는 새로운 국가이념 차원의 반란은 김부식이 지휘하는 진압군의 공격을 받고 내부 분열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1년간 치열하게 지속되었다.
* 날짜 : 1135 | |
1143 | 포르투갈 왕국 성립 |
유럽 이베리아 반도 서부에 위치한 나라로 A.D. 1143년 포르투갈 왕국이 성립되었다. 15~16세기에 해양왕국으로서 지위를 확립하면서 세계 최대의 영토를 소유했지만 18세기 중반 나폴레옹의 침입, 브라질의 독립 이후 국력이 쇠퇴하였다. 1910년 공화제가 성립되었다.
* 날짜 : 1143 | |
1170/08 | 무신정변 |
무신정변(武臣政變)은 고려시대 의종 24년(1170년) 8월에 상장군 정중부와 이의방, 이고 등의 휘하장수들이 보현원(普賢院)에서 일으킨 쿠데타이다. 무신들의 주도로 일어난 정변이었기 때문에 무신의 난(武臣의 亂)이라고 부르고 정변이 일어난 해가 경인년이었기 때문에 경인의 난(庚寅의 亂)이라고도 부르며 정변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정중부의 이름을 따서 정중부의 난(鄭仲夫의 亂)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170년 이후 계속된 무신정권은 100년 후인 1270년, 마지막 무신집권자인 임유무가 살해당하기까지 100년간 존속되었다.
* 날짜 : 1170/08 | |
1200 | 주자朱子 사망 |
주희(朱熹, 1130년 ~ 1200년)는 중국 남송의 유학자로, 주자(朱子)라는 존칭으로도 불린다. 중국 복건성(福建省) 우계(尤溪)에서 출생했으며 19세에 진사가 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맹자, 공자 등의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주돈이, 정호, 정이등의 유학 사상을 이어받았다. 그는 유학을 집대성하였으며 오경의 진의를 밝히고 주자학을 창시하여 완성시켰다.
* 날짜 : 1200 | |
1204 | 십자군,콘스탄티노플 약탈 |
종교의 통일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학살이 자행되었으나 그 동기는 십자군원정을 위한 자금 마련이었다. 십자군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여기에 라틴제국을 건설하였다.
* 날짜 : 1204 | |
1204 | 베네치아,동부 지중해 장악 |
베네치아는 비잔티움 제국의 간섭에서 완전히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으로 발전했으며 결국 1204년 제4차 십자군 때에는 당대 최대의 도시이자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침공하여 함락시키기도 하였다. 이것을 결정적인 계기로 중세 동안 베네치아는 아드리아 해는 물론 동지중해에 무역거점도시를 줄줄이 건설하여 무역강국으로 발전했으며 로마 교황청의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신성로마제국의 세력권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또한 강력한 무역과 해상의 라이벌인 제노바 공화국과 120여년에 걸쳐 네 번의 전쟁을 벌여 결국 승리했다.
* 날짜 : 1204 | |
1206 | 칭기즈칸 재위 |
칭기즈 칸(1162년? ~ 1227년 8월)은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대륙을 점유한 몽골 제국의 창업자이자 초대 대칸이다. 원래 이름은 보르지긴 테무진이었다.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출신이 아닌 능력에 따라 대우하는 합리적 인사제도인 능력주의에 기반한 강한 군대를 이끌어 역사상 가장 성공한 군사, 정치지도자가 되었다. 중국사에는 원(元) 태조(太祖)로 기록된다.
* 날짜 : 1206 ~ 1227/08 | |
1218 | 몽골,오고타이한국(~1310) |
칭기즈칸의 셋째 아들 오고타이를 시조로 하여 몽골제국의 일부를 이룬 오고타이가(家)의 국가(1218∼1310).
* 날짜 : 1218 | |
1221/05 | 호라즘,몽골에 멸망 |
항복을 거부한 하레즘 시민은, 기술자와 사제 계층을 제외하고는 무참히 학살되었다. 부하라와 사마르칸트가 파괴되고, 발흐, 니샤푸르가 몽골군에 의해 유린되었다. 술탄 무함마드는 항전을 포기하고 구르간즈에서 발흐로, 다시 카스피 해 남동부의 아베스쿤(Abeskun) 섬에 피신하였다가 1220년 12월에 사망하였다. 1221년 5월, 하레즘의 수도 구르간즈가 완전 페허화됨으로써, 하레즘 제국은 그 존재가 사실상 소멸되었다.
* 날짜 : 1221/05 | |
1225 | 몽골,차가타이한국(~1680) |
칭기즈칸의 둘째 아들 차가타이가 중앙아시아에 건립한 몽골 왕국(1225∼1680).
* 날짜 : 1225 | |
1227 | 서하 멸망 |
결국 서하는 1227년 칭기즈 칸의 몽골군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 날짜 : 1227 | |
1231/08/28 | 고려-몽골 전쟁 |
고려-몽골 전쟁 또는 여몽 전쟁(麗蒙戰爭)은 고려와 몽골 제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 날짜 : 1231/08/28 ~ 1259/03 | |
1234 | 금,몽골에 멸망 |
1234년 금의 제9대 애종은 몽골, 남송 연합군의 추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살함으로써 금은 건국 120년 만에 멸망하였다.
* 날짜 : 1234 | |
1241/04/19 | 레그니차 전투 |
레그니차 전투(리그니츠 전투)는 폴란드의 레그니차에서 몽골 제국의 바투가 지휘하는 군대와 슐레지엔 공 하인리히가 지휘하는 폴란드와의 전투이다. 몽골군의 승리로 끝났으며 유럽에 몽골군의 전투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바투는 뒤이어 벌어진 모히 전투에서도 3만 군사를 이끌고 5~6만 유럽 연합군을 격파해 유럽을 공포에 떨게 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원나라의 오고타이 칸이 사망하는 바람에 회군 명령으로 몽골군은 유럽 정복을 포기한다.
* 날짜 : 1241/04/19 | |
1243 | 몽골,킵차크한국(~1502) |
남러시아에 성립한 몽골 왕조(1243∼1502).
* 날짜 : 1243 | |
1250 | 맘루크 왕조 성립(~1517) |
맘루크 왕조는 1250년부터 1517년까지 이집트와 시리아 일대를 통치하던 맘루크가 세운 왕조이다. 맘루크는 노예라는 뜻의 아랍어이다. 맘루크 왕조는 1517년에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셀림 1세의 공격을 받아 멸망한다.
* 날짜 : 1250 | |
1256 | 몽골,일한국(~1335) |
메소포타미아에서 중앙아시아에 걸친 광대한 지역을 통치했던 투르크계 몽골 제국(1256-1335).
* 날짜 : 1256 | |
1257 | 사말라스 화산 폭발 |
인도네시아 사말라스 화산 폭발. 화산 폭발 지수 7로 산 정상부 500m가 통째로 사라진 초대형 폭발이었단다.
* 날짜 : 1257 | |
1258 | 아바스 왕조,몽골에 멸망 |
1258년, 아바스 왕조는 훌라구가 이끄는 몽골에 의해 멸망하였다.
* 날짜 : 1258 | |
1260/09/03 | 아인잘루트 전투 |
아인잘루트 전투(영어: Battle of Ain Jalut)는 1260년 9월 3일 현재는 웨스트 뱅크라 불리는 지방의 북부인 팔레스타인의 갈릴리, 제즈리엘 계곡에서 쿠투즈가 이끄는 이집트계 맘루크 왕조군이 키트부카가 이끄는 시리아 주둔 몽골 제국군 및 기독교도 제후연합군을 격파한 전투이다. 넓게 본다면 서방에게 있어 몽골제국의 영토확장이 무산된 것이 아인잘루트 전투가 있던 1260년인 것이 확인되고 있어 그 의미로써 매우 상징적인 전투라 할 수 있다.
* 날짜 : 1260/09/03 | |
1260 | 칸 계승전쟁 |
뭉케 칸의 사망 후 쿠빌라이와 아릭부케의 계승전쟁. 절대 다수의 황금씨족의 지지를 받았던 아릭부케가 패배하고 비정통성으로 비난을 받았던 쿠빌라이가 승리하였다.
* 날짜 : 1260 ~ 1264/07 | |
1270 | 개경 환도,몽골 간섭기 시작 |
몽골에 간 원종은 태자와 몽골 공주의 혼인을 제의하고, 무신정권의 제거를 위해 병력 지원을 요청하였다. 1270년(원종 11년) 음력 2월 궁지에 몰린 임연이 원종의 귀국 직전에 병사하였으나 그의 아들 임유무(林惟茂)가 무인집정이 되어 반몽 노선을 고수하였다. 그는 강화도로부터 개경으로의 환도를 명하는 원종과 대립하다가 살해되었다(1270년). 이로써 무신정권은 끝이 나고 제정이 복고되었으며 개경으로 환도가 결정되었다. 이로부터 고려는 몽골의 간섭하에 들어갔다. 이는 강화도로 천도한지 39년 만의 일이다.
* 날짜 : 1270 | |
1271 | 원(元) 제국(~1368) |
13세기 초, 칭기즈칸은 몽골제국(蒙古帝國)을 구축하였다.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는 수도를 대도(大都:北京)로 옮겨 화북의 건조농경지대를 중심으로 한 중국식 집권적(集權的) 관료국가의 확립을 꾀하였다. 그리고 1271년 《역경(易經)》의 ‘大哉乾元’을 따서 국호를 대원(大元)이라 하고 중국 역대왕조의 계보를 잇는 정통왕조임을 내외에 선언하였다.
* 날짜 : 1271 ~ 1368 | |
1274 | 원의 일본 원정(1) |
고려가 몽골에 굴복하게 되자 몽골은 고려를 통하여 수차 일본에게 수교를 재촉했다. 그러나 일본의 막부로부터 아무런 대답이 없자 마침내 전쟁이 일어났다.
* 날짜 : 1274 | |
1279 | 남송 멸망, 원의 중국 통일 |
남송 멸망, 원의 중국 통일.
* 날짜 : 1279 | |
1281 | 원의 일본 원정(2) |
제2차 원정은 1281년(충렬왕 7년)에 행해졌다. 2차 원정은 고려군이 원정군을 지휘했다. 고려를 거쳐 가는 동로군(東路軍)은 함선 900, 병원(兵員) 4만, 강동군(江東軍)은 함선 3,500, 병원 10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태풍으로 인하여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여기에는 물론 해상의 기후에 대한 인식의 결핍에도 원인이 있었지만, 동시에 당시 일본의 정권을 쥐고 있던 가마쿠라(鎌倉) 막부의 완강한 저항과 일본 정벌에 전력을 기울일 수 없던 원의 국내 사정에도 원인이 있었다.
* 날짜 : 1281 | |
1283 | 모스크바 대공국 성립(~1547) |
모스크바 대공국(러시아어: Московское княжество)은 원래 루리크의 지배를 받았던 공국이었다. 러시아의 시초다.
* 날짜 : 1283 | |
1287 | 몽골, 나얀의 반란 |
중국 원나라 초기에 모반을 일으킨 왕. 몽골제국 태조(칭기즈칸)의 막내동생 테무게오치긴의 현손(玄孫). 13세기 후반 몽골제국 종주권을 둘러싸고, 카이두[海都]가 막강한 세력으로 원나라 쿠빌라이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동방의 여러 영주들도 반란에 가담하였다. 특히 그는 맹주(盟主)가 되어 가담하나, 과단성 있는 쿠빌라이에 의해 쉽게 평정되고 처형되었다.
* 날짜 : 1287 | |
1299 | 오스만 제국 건국 |
1299년 셀주크투르크왕조가 멸망하고 소아시아를 주축으로 투르크족의 이슬람 국가 오스만투르크제국이 등장하였다. 이후 소아시아 지역을 통일하고 발칸반도를 장악하는 등 세력을 널리 떨쳤다.
* 날짜 : 1299 | |
1309 | 아비뇽 유수(~1377) |
아비뇽 유수는 13세기 로마 가톨릭의 교황청의 자리가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겨 1309년부터 1377년까지 머무른 시기를 말한다. 고대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교황의 바빌론 유수라고도 불렸다.
* 날짜 : 1309 | |
1315 | 14세기의 위기 - 기근과 흑사병 |
14세기의 끔찍한 일들에 대해 책을 쓴 바 있는 바버라 터크먼(Barbara Tuchman)은 이 시기를 '폭력적이고, 고통스럽고, 당황스럽고, 붕괴되던 시대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대로 사탄이 승리를 거둔 시기였다.'고 표현했다.
* 날짜 : 1315 ~ 1351 | |
1315 | 유럽 대기근 |
유럽에 대기근(~1317).
* 날짜 : 1315 ~ 1317 | |
1334 | 중국에서 흑사병 확산 |
중국에서 흑사병 확산.
* 날짜 : 1334 | |
1336 | 일본,무로마치 시대(~1573) |
무로마치 시대(일본어: 室町時代)는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가 일본을 통치하던 시기로,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가 막부를 세운 1336년부터 1573년까지를 가리킨다. 아시카가 가문이 중앙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아시카가 시대(足利時代)라고도 한다.
* 날짜 : 1336 | |
1337 | 백년전쟁(~1453) |
1328년 프랑스 샤를 4세가 후계자 없이 죽자 영국 국왕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왕위계승권과 플랑드르 지방의 상업적 이익 때문에 프랑스와 충돌한 전쟁으로 1337년부터 1453년까지 계속되었다. 유명한 잔 다르크가 황태자 군대를 도와 영국군을 격파해 프랑스는 차츰 국토를 회복하였다.
* 날짜 : 1337 ~ 1453 | |
1346 | 유럽 전역에 흑사병 |
유럽 전역에 흑사병 유행.
* 날짜 : 1346 ~ 1353 | |
1350 | 왜구 침입 |
고려시대에 왜구가 본격적으로 침입하기 시작한 것은 1350년(충정왕 20)부터였다. 이를 ‘후기 왜구’라고도 부르는데, 동해·서해·남해의 연안뿐만 아니라 내륙까지 침범하였다. 수도인 개경 입구인 강화의 교동과 예성강 어구에까지 출몰해 개경의 치안을 위협하기도 하였으며, 고려는 왜구 때문에 천도를 고려하기도 했다.
* 날짜 : 1350 | |
1351 | 홍건적의 난 |
홍건의 난(紅巾之亂) 또는 홍건적의 난(紅巾賊之亂)은 원 말기에 한산동(韓山童)을 수장으로 뭉친 백련교도가 중심이 되어 봉기한 한족의 농민 반란군으로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둘렀기 때문에 홍건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홍건적은 홍적(紅賊)·홍두적(紅豆賊) 등으로도 불렸다.
* 날짜 : 1351 ~ 1368 | |
1360/10 | 홍건적 고려 침공(2) |
홍건적의 고려 침공은 원나라에 쫓겨 요동으로 물러선 홍건적[1]이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공한 사건으로 1359년 12월에 1차 침공과 1360년 9월 2차 침공이 있었다. 또한, 1차 침공 이전에도 약 3천여 명의 홍건적이 압록강을 건너 식량과 물자를 약탈하기도 했다.
* 날짜 : 1360/10 | |
1368 | 원, 명에 쫓겨 몽골고원으로 |
주원장은 즉위하는 동시에 대규모의 북벌을 개시하여 원나라의 수도 대도(大都)에 육박했다. 1368년에 주원장이 건국한 명나라에 의해 수도인 대도를 빼앗기고 몽골 고원에 있는 상도(上都)로 천도하였다. 하지만 1369년 상도도 명나라가 점령해, 혜종은 상도의 북쪽에 있는 응창부(應昌府)로 천도를 하였다. 명나라에게 쫓겨 수도를 북쪽에 있는 응창부로 천도하였지만, 북원은 여전히 몽골 고원을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1634년 후금에게 공격당해 공식적으로 멸망하였다.
* 날짜 : 1368 | |
1368 | 명(明) 건국(~1644) |
몽골족의 원에 대항하여 주원장을 비롯한 홍건적 등 한족이 곳곳에서 난을 일으켜 마침내 전 국토를 통일하며 1368년 명을 건국하였다.
* 날짜 : 1368 | |
1370 | 티무르 제국(~1507) |
티무르 제국은 티무르에 의해 14세기 중엽에 세워진 중앙 아시아의 수니파 무슬림 왕조로 중앙 아시아, 오늘날의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메소포타미아, 카프카스 산맥등을 통치했다.
* 날짜 : 1370 | |
1370 | 티무르의 정복 전쟁 |
티무르는 칭기스칸이 쌓아 올렸던 세계제국의 꿈을 이상으로 삼았고, 또한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투에서 승리를 계속해, 전리품을 휘하의 여러 부족에게 분배해 주어야 할 필요도 있었기 때문에 대외 원정을 계속 되풀이하였다.
* 날짜 : 1370 ~ 1405 | |
1388/05/18 | 명,북원 대파 |
1388년 주원장의 명령을 받은 대장군 남옥은 15만의 대군을 지휘하여 몽골로 원정하여 동북 몽골의 부이르호 湖 전투에서 북원군을 대파했다.
* 날짜 : 1388/05/18 | |
1388/05/22 | 위화도 회군 |
고려 말기인 1388년에 요동정벌군의 장수였던 이성계(李成桂), 조민수(曺敏修)가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정변(政變)을 일으키고 권력을 장악한 사건이다.
* 날짜 : 1388/05/22 | |
1392/08/05 | 조선 건국 |
조선(朝鮮)은 1392년부터 1897년까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 지역을 통치하였던 왕국이다. 일반적으로 조선 왕조(朝鮮王朝)라고 하며, 내부적으로 대조선국(大朝鮮國)이라는 명칭을 어보(御寶), 국서(國書) 등에 사용하였고, 외부적으로도 제한적으로 대조선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1897년에 대한제국이 되었다.
* 날짜 : 1392/08/05 | |
1396/09/25 | 니코폴리스 전투 |
니코폴리스 전투(Battle of Nicopolis)는 1396년 9월 25일(혹은 9월 28일이란 말도 있다)에 도나우강변의 니코폴리스에서 오스만 제국의 바예지드 1세(제위:1389년~1402년)와 헝가리 왕 지기스문트가 이끄는 유럽연합(참가세력:헝가리 왕국,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왈라키아, 폴란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왕국, 구 스위스 연합, 튜튼 기사단, 베네치아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성 요한 기사단)사이에서 일어난 전투이다. 흔히 니코폴리스 십자군이라고 불리며, 중세 최후의 대규모 십자군이었다. 전투 결과는 오스만 제국의 결정적 승리로 끝났고, 바예지드 1세는 카이로의 맘루크 왕조 보호하에 있던 칼리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술탄의 칭호를 하사받았다.
* 날짜 : 1396/09/25 | |
1398 | 티무르,델리 술탄 왕조 격파 |
1398년에는 인도를 침략, 델리에 있던 술탄 마흐무드 투굴르크의 군대가 파니파트에서 패배하면서 델리는 티무르의 군사들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이로써 델리 술탄국은 왕년의 영화를 잃고 약소국으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 날짜 : 1398 | |
1399/08/08 | 명,정난의 변 |
정난의 변(靖難之變)[1]은 명의 영락제가 제위를 건문제로부터 탈취한 사건을 말한다. 1399년 8월 6일 건문제 원년에 발생하여 4년간 지속되었다.
* 날짜 : 1399/08/08 ~ 1402/07/13 | |
1402/07/20 | 오스만,티무르에 패배 |
앙카라 전투, 혹은 앙고라 전투라 불리는 이 전투는 1402년 7월 20일 쿠북(지금의 앙카라 근처)에 있는 벌판에서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바예지드 1세와 티무르 제국의 지배자 티무르가 지휘하는 투르크-몽골계 군단간에 벌어진 싸움이다.
* 날짜 : 1402/07/20 | |
1405/07/11 | 명,정화의 남해원정 |
정화(鄭和, 1371년~1434년)는 중국 명나라시대의 장군이자 환관이다. 영락제(永樂帝)의 심복으로 영락제의 명령에 따라 남해에 일곱 차례의 대원정을 떠난 것으로 유명하다. 원래 성씨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중국식 한자인 마(馬) 씨이고, 이름은 삼보(三保)였다. 환관의 최고위직인 태감(太監)이 되었기에 중국에서는 삼보태감(三保太監 혹은 三寶太監)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정화의 함대는 동남아시아, 인도를 거쳐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까지 항해해서 가장 멀리간 지점은 아프리카 동해안의 마린티(현재 케냐의 마린티)였다. 그가 지휘한 함대에서 가장 큰 배인 보선(寶船)은 전체 길이가 120미터가 넘는 대형 선박이었다고 한다.
* 날짜 : 1405/07/11 ~ 1433 | |
1419/06/19 | 이종무,대마도 정벌 |
1419년(세종 1) 음력 6월 19일 거제도 남쪽 주원방포를 출발하여 20일에 쓰시마 섬에 도착하였다. 이종무는 도주 사다모리에게 항복을 권하였으나 대답이 없자 왜구를 수색하여 1백여 명을 참수하고 2천여 호의 가옥을 불태웠다. 131명의 명나라 포로를 찾아내었다. 29일에는 가옥 70여 호를 태우고 명나라 사람 15명과 조선인 8명을 구출하였다.
* 날짜 : 1419/06/19 | |
1433 | 4군 6진의 개척 |
세종은 최윤덕을 보내 조선의 동북쪽 국경을 자주 침입하던 여진족을 몰아내고 4군을 개척하였으며, 뒤이어 김종서를 보내 여진족을 토벌하고 두만강 일대에 6진을 개척하였다. 이로써 조선의 국경은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로 확정되었으며, 현재까지 한반도와 중국의 국경으로 자리잡았다.
* 날짜 : 1433 | |
1438 | 몽골, 에센 타이시 |
1438년 토곤이 죽자 뒤를 이어 오이라트의 지도자가 되어 토곤이 착수한 차가타이 한국에 대한 영토 공략에 박차를 가해 일리와 투르판, 하미를 평정하고, 현재의 신강위구르 자치구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동시에 주치 가문의 킵차크 칸국에 대한 공략도 서둘러서 그 영토의 일부를 편입시켜 에센 시대 오이라트의 영토는 서쪽으로는 발하시 호에서 바이칼 호, 동쪽으로는 만주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었다.
* 날짜 : 1438 | |
1439 | 구텐베르크 활판 인쇄술 |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ensfleisch zur Laden zum Gutenberg, 1398년경 ~ 1468년 2월 3일)는 약 1440년 경에 금속 활판 인쇄술을 발명한 독일의 금(金) 세공업자이다. 본명은 요한 겐스플레이슈이고, 구텐베르크는 통칭이다. 구텐베르크의 업적은 활자 설계, 활자 대량 생산 기술 발명이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업적은 이런 기술과 유성 잉크, 목판 인쇄기 사용을 결합시켰다는 점이다. 그는 활자 제작 재료로 합금을 사용하고, 활자 제작 방식으로 주조(鑄造)를 채용하였다.
* 날짜 : 1439 | |
1446/10/09 | 훈민정음 반포 |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조선 초기 세종대왕이 지은 책의 제목, 그리고 그 책에서 해설하고 있는 뒷날 한글로 불리게 된 한국어의 표기 문자 체계를 말한다.
* 날짜 : 1446/10/09 | |
1449 | 명,토목의 변 |
토목의 변(土木之變) 또는 토목보의 변(土木堡之變)은 명나라 정통제 14년(1449년)에 발생한 명나라와 몽골 부족을 통일한 오이라트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영종은 친정을 하다가 오이라트의 포로로 잡혀 중국 역사상 야전에서 포로로 잡힌 유일한 황제로 기록되었다.
* 날짜 : 1449 | |
1451 | 《고려사》완성 |
《고려사》(高麗史)는 조선 초기 1392년부터 1451년까지 59년 동안 조선 태조, 태종, 세종, 문종에 이르기까지 만들고 수정한 고려 시대에 대한 역사서로서, 기전체(紀傳體)로 된 고려 왕조의 정사이다.
* 날짜 : 1451 | |
1453/05/29 | 오스만,콘스탄티노플 함락 |
비잔티움제국은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전성기를 누렸으나 그 후 십자군과의 전쟁(1202), 오스만 제국의 공격, 내란과 교황 자리 상속 분열 등으로 차츰 세력을 잃어 1453년 투르크군의 공격을 받아 콘스탄티누스 11세가 살해되어 결국 멸망하게 된다.
* 날짜 : 1453/05/29 | |
1453/10 | 계유정난 |
계유정난(癸酉靖難)은 1453년(단종 1) 음력 10월 수양대군이 친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기 위하여 김종서와 황보인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을 말한다. 이 정변이 계유년에 일어났으므로 계유정난이라 한다.
* 날짜 : 1453/10 | |
1455 | 장미 전쟁 |
장미 전쟁 (薔薇戰爭, 영어 : Wars of the Roses)은 붉은 장미를 표시로 삼은 랭커스터 가 와 흰 장미를 표시로 삼은 요크 가 사이의 왕위 쟁탈전이었다. 1455년에서 1485년까지 벌어졌다.
* 날짜 : 1455 ~ 1485 | |
1467 | 일본,전국 시대(~1573) |
센고쿠 시대(전국시대)는 일본의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후반까지 사회적, 정치적 변동 및 계속되는 내란의 시기이다. 1493년의 메이오 정변 또는 1467년의 오닌의 난에서 시작하여 1573년에 무로마치 막부 제 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교토에서 추방되어 무로마치 막부가 무너질 때 까지의 시대를 가리킨다.
* 날짜 : 1467 | |
1469 | 메디치 家의 전성기 |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일명 로렌초 일 마그니피코) 때에 피렌체와 메디치가의 번영은 정점에 달하고, 그의 뛰어난 외교수완으로 피렌체가 이탈리아 정치의 중추적 지위를 차지하였다. 피렌체의 르네상스문화가 최고조에 이른 것도 이 때인데, 인문주의적 교양을 폭넓게 지녔던 그는 학예, 특히 철학 연구를 장려하였다.
* 날짜 : 1469 ~ 1492 | |
1474 | 부르고뉴 전쟁 |
부르고뉴 전쟁은 부르고뉴 공작(Dukes of Burgundy)과 프랑스 왕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전쟁으로 이후 스위스 연방도 참여하여 이 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었다. 1474년 개전해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부르고뉴 공작 용담공 샤를(Charles the Bold)은 1477년 낭시 전투(Battle of Nancy)에서 크게 패하고 전장에서 전사했다. 부르고뉴 공국과 기타 부르고뉴 영지는 프랑스에 병합되었으나, 부르고뉴령 네덜란드(Burgundian Netherlands)와 프랑슈콩테( Franche Comté)는 샤를의 딸 부르고뉴의 마리(Mary of Burgundy)가 상속받고, 그녀가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 Holy Roman Emperor)와 결혼한 뒤 사망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합스부르크 가(House of Habsburg)의 영지가 되었다.
* 날짜 : 1474 ~ 1477 | |
1492/01/02 | 스페인,그라나다 정복 |
스페인은 이베리아 반도 내에 남아 있던 이슬람교도 최후의 국가인 그라나다를 공격,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들을 내쫓고 800년 만에 스페인을 통일한다.
* 날짜 : 1492/01/02 | |
1492/03/31 | 알람브라 칙령-유대인 추방령 |
철저한 로마 가톨릭 국가가 되기 위해 종교재판을 통해 이단을 색출하여 화형에 처하고 개종을 거부하는 이슬람교도들과 유대교신자들을 추방하였다. 이를 알람브라 칙령(Alhambra Decree)라고 부른다.
* 날짜 : 1492/03/31 | |
1492/08/03 |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 날짜 : 1492/08/03 | |
1494 | 이탈리아 전쟁 |
이탈리아 전쟁은 흔히 대이탈리아 전쟁(Great Italian Wars) 혹은 이탈리아 대전쟁(Great Wars of Italy)으로 역사상 알려져 있는데, 주로 1494년부터 1559년까지를 포함한 일련의 투쟁을 가리킨다. 여러 시기 동안 대부분의 이탈리아의 도시국가(city-states of Italy), 교황령(Papal States), 서유럽의 주요 국가 대부분(프랑스, 스페인, 신성로마제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및 오스만 제국이 참가하였다. 원래는 나폴리 왕국(Kingdom of Naples)과 밀라노 공국(Duchy of Milan)의 왕위에 관련된 갈등으로 시작되었지만 전쟁은 순식간에 힘과 영토를 둘러싼 각국의 이익을 위한 권력투쟁으로 번졌다. 그 때문에 동맹의 단계에서 기호에 따라 늘어나거나 정기적으로 배신하는 역동맹(counter-alliances)이 일어났다.
* 날짜 : 1494 ~ 1559 | |
1498/05/20 | 바스코 다 가마, 인도 항로 |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 1460년 또는 1469년~1524년 12월 24일)는 포르투갈의 항해자이며 탐험가다. 1497년~99년, 1502년~03년, 1524년 3차례에 걸쳐 인도로 항해했다. 유럽에서 아프리카 남해안을 거쳐 인도까지 항해한 최초의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때때로 인도까지의 항로를 최초로 발견한 유럽인으로도 불리고 있다. 이 인도 항로의 개척으로 인해 포르투갈 해상 제국의 기초가 다져졌다.
* 날짜 : 1498/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