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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승 제68호 / 양양 하조대 (양양 河趙臺) / 2009년 12월 9일 지정 /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조준길 99, 일원
문화재청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양양 하조대는 온갖 기암괴석과 바위섬들로 이루어져 있는 암석해안으로, 주위의 울창한 송림과 어울려 동해안의 절경을 볼 수 있으며,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이 은둔하며 혁명을 도모한 곳이라 하여 하조대라 명하였다는 등 많은 설화와 전설이 담겨있는 역사문화 경승지이다.
<하조대> 전설을 알아보자.
여기를 <하조대>라고 부르게 된 것은 고려말기 사람인 하륜과 조준 두 사람의 성을 따서 붙인 것이다. 하륜은 최영(崔榮)장군의 요동공략이 불가하다고 반대하다가 양주(楊州)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사람이요, 조준은 최영장군의 휘하에 있다가 윤소종, 허금 등과 우왕의 폐위를 도모한 바 있던 사람이다. 하륜과 조준이 이 곳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고려왕조가 기울어 나라안이 어지러워 졌을때 두 사람이 같이 벼슬을 버리고 경색이 좋은 이 곳을 찾아와 소요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이 곳에서 새왕조 건립의 모사를 했고 이조가 건국되자 벼슬길에 오르기 위하여 함께 여기를 떠났다. 그들은 여기에 있는 동안 혁명을 꾀했고 이 곳에서 꾀한 혁명이 성사되어 후일 그들이 현관이 되자 글들의 성자를 따서 여기를 <하조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전설 외에도 이곳 <하조대>에는 또 다른 전설이 있다. 옛날 하광정리 하조대 근처에 하씨 성을 가진 준수하게 생긴 청년 한 사람이 있었고 이웃 조씨 가문에는 혼기가 찬 두 처녀가 있었다. 이 두 처녀는 하씨청년의 준수함에 혹하여 둘이 다 같이 한 청년에 연정을 품게 되었다. 두 처녀중 한 처녀가 양보를 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나 두 처녀는 한사코 양보를 하지 아니하였다. 이렇게 되자 세 사람은 그 해결책을 협의하였다. 그러나 이 세상의 관습이나 윤리가 세 사람을 함께 결합할 수는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청년은 “이 세상에서 우리 세 사람이 함께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죽어 저 세상에서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번거로움이 없을 지도 모른다. 우리 다같이 저 세상에 가서 셋이서 함께 살자.”고 제의하여 세 사람은 함께 하조대 절벽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하조대 근처에는 해당화(海棠花)가 많고 그 해당화의 빛깔이 동해안의 다른 곳 해당화보다 훨씬 붉다 한다. 그 이유는 이들 세젊은이의 애절한 넋이 해당화에 얼켰기 때문이라 한다.
백년송이라고도 불리는 소나무가 기암괴석 위에 용케 뿌리를 내려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생명의 강인함을 보여준다. 이를 배경으로 일출을 구경하는 것은 이제 유명하다. 소나무 수령은 400여년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예전에 이 소나무와 어우러진 일출 장면이 방송시작과 끝에 방영되는 애국가 화면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조대는 드넓은 백사장, 울창한 소나무숲, 그리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룬다. 특히 정자와 하조대 등대에서 바라보는 동해 바다는 기암절벽과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양양8경)
조선 정종 때 정자를 건립하였으나 퇴락하여 철폐되었으며, 수차례의 중수를 거듭하여 1940년에 8각정을 건립하였으나 한국전쟁때 불에 탄것을 1955년과 1968년에 각각 재건되었다.
하조대라는 현판이 걸린 이 작은 육각정은 1998년에 해체복원한 건물로 초익공굴도리양식의 육모정으로 지붕에 절병퉁을 얹어 소나무와 함께 주위의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고 있다.
정자 앞에 조선 숙종때 참판 벼슬을 지낸 이세근이 쓴 ‘하조대河趙臺’ 세 글자가 암각된 바위가 있다.
근처에 있는 하조대해수욕장은 낙산해수욕장과 과 함께 양양의 대표 해수욕장으로 꼽힌다.
<참고자료 및 관련자료>
문화재청 : 양양 하조대
하조대 홈페이지 : http://www.hajodae.org/